예수님의 부활과 현현(3)

- 누가복음 24:36~49 -

샬롬선교회 


[누가복음 24:36~49]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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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장은 세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의 필연성이 기록되어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1~12)에서는 예수님을 수행하던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인자는 반드시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던 것을 상기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 사실을 기억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씀이 진리임을, 특히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을 확신시키려 하고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13~35)에서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리스도는 반드시 ... 고난을 받고, 그 후에 영광을 얻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물으시고, 그 필연성을 성경 전체에 걸쳐서 말씀하셨다.

 

세 번째 에피소드(36~49)는 예수님께서 11명의 사도들과 제자들의 한가운데에 서서 '성경에 기록된 것은 반드시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셨고,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제자들에게 맡겨질 사명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1. 예수님의 부활의 필연성과 현현의 의미

 

흥미롭게도 1~3번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사자나 예수님의 말씀 속에 '반드시'라는 단어가 각각 등장한다. 이것은 '반드시'를 의미하는 동사 '데이' δει이다. , 하나님에 의해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다는 '필연성'을 나타내는 어휘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사실에 대해 이미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것이 성취된 필연적인 사건임을 예수님께서 직접 성경(구약성경*각주)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증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책인 성경을 통해 그 사실의 필연성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종종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계심을 보여주기 위해 기적적인 치유를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고 치유 집회를 의미화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기적을 보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설령 그런 기적적인 사건을 보지 못했더라도 성경이 하나님의 참된 계시의 책임을 믿을 수 있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당연히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 현현의 의의는 거기에 있다.

 

2.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주신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 후의 현현은 단순히 부활 사실의 필연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무엇이 실현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에비소드에서는 그것이 드러나고 강조되고 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핵심 키워드는 성경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열다'는 것이다. 마음을 '열다'로 번역된 원어는 '디아노이고' διανοίγω이다. 이 단어는 '디아' διά(닫힌 눈꺼풀을 떼다) + '아나' άνα(다시) + '오이고-οίγω(열다)'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디아노이고」διανοίγω의 용례로는...

(1) 마가복음 7:34: "마음을 여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실제적인 예화로 농아(귀머거리, 벙어리)에게 '열라'(히브리어로 '에파타'라고 명령하셨는데, 그 사람의 귀가 열리고, 혀의 얽힘이 풀려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2) 누가복음 24:31: "엠마오의 두 제자의 눈이 '열려' 예수님임을 알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3) 어머니의 태가 '열리고'(2:23), 하늘이 '열리고'(사도행전 7:56)

(4) 누가복음 24:32: "성경을 설명해 주시는 동안에도 우리의 마음은 뜨겁지 아니하였느냐?"

(5) 사도행전 16:14: "사도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가서 처음으로 구원받은 사람 중에 자색 옷감 상인 '루디아'라는 아주 부유한 부인이 있었다. 그 여인에게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 바울이 말하는 것에 마음을 두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성경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 '마음이 열리는 것''지혜와 계시의 영이 주어지는 것'은 동의어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에베소서 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마음'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감정적인 영역의 '마음'이 아니다. 그리스어 '누스'는 지성, 이성의 영역을 나타내는 '마음'으로 이해력(), 판단력(), 분별력, 생각하는 힘을 뜻한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주신 것은 그들이 성경의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고 논증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위함이다.

 

3. 제자들이 전해야 할 복음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신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사역을 통해 주어지는 '죄 사함'이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복음''용서'(아페시스)이다.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 메시지는 이사야서 61:1 말씀을 낭독하시며 이것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이 말씀에 나오는 복음은 '아페시스' άφεσις'자유', '해방', '용서'를 뜻하는 단어이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데(누가복음만), 그것은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였다. '아페시스' 동사, '용서하다'('아피에미' άφίημι)였다. '용서''자유'는 누가복음의 복음이자 구원의 용어이다.

 

제자들의 사명은 십자가의 죽음과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증인이 될 힘을 위로부터 부여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주님께서 구원받은 자도 마찬가지로 죄 사함, 죄로부터의 해방(자유)을 가져다주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주어졌지만, 위로부터의 힘, 즉 성령의 세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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