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과 현현(2)

- 누가복음 24:13~35 -

샬롬선교회 


[누가복음 24:13~27]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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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각각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에 대한 설명이 담겨져 있다.

(1) 빈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나타난 두 천사의 설명

(2)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의 설명

(3) 열한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설명

 

'예수님의 부활과 현현'의 두 번째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자신의 설명'에 대해 주목해 보고자 한다.

 

1. 눈이 가려져 있던 두 제자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신의 마을인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사흘 후 여자들이 무덤에 갔을 때 예수님의 모습은 없었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전한 것, 그 말을 들은 제자들 중 몇몇이 무덤에 가서 확인해보니 여자들이 말한 것이 사실이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에(요한복음 20:19), 그 전에 예수님은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을 때, 왜 그들이 예수님인 줄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 의문은 마가복음 16장 병행 기사에 나오는 정보에서 풀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기"(16:12)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처음 막달라 마리아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을 때 '동산지기'라고 생각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마리아야"라고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 마리아는 예수님임을 알았다고 한다(요한복음 20:14~16).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이전의 모습이 아니라 '다른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가가 말하는 '다른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성경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지만, 문이 닫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오는 영적인 몸을 가지고 계셨을 뿐 아니라, 이전의 익숙한 모습과는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인지 누가는 "그들의 눈이 가려져 예수인 줄 알지 못하였다"(누가복음 24:16)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여기서 분명히 외모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눈이) 가려졌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크라테오' κρατεω의 수동태 미완료형이다. '크라테오'의 명사는 '크라토스' κράτος', 지배력, 통치력, 통치력, '을 나타내는 어휘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여기서 '어떤 힘에 의해 지배를 받고',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의 '미완료형'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두 제자는 '예수님인지 몰랐다'고 누가복음은 해석하고 있다. 이를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세상의 신이 불신자의 생각을 혼미케 하는 가면을 씌워 복음의 빛을 비추지 못하게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린도후서 4:3~4).

 

그러므로 엠마오의 두 제자가 나중에 '예수님인 줄 알았다'는 것은 그들을 묶고 있던 영적인 힘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도 예수님이 하신 행위(식사 자리에서 빵을 떼어 축복하고 떼어 나누어 주는 행위)를 보고 '예수님인 줄 알았다'고 했으니, 예수님의 모습은 죽기 전의 모습과 달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행위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성경을 설명해 주시는 것으로 인해 마음이 불타게 된'(누가복음 24:35) 경험도 '눈이 뜨이는' 요인이었던 것 같다.

 

2. 성경을 설명하신 예수님

 

누가는 이 복음서를 로마의 고위 관료였던 데오빌로에게 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위해 누가는 여러 자료를 면밀히 조사하고 순서대로 기록했는데, 그 목적은 데오빌로가 '이미 가르침을 받은 것이 정확한 사실임을 잘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누가복음 1:3~4).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도 정확한 사실임을 알게 하기 위해 누가는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는 '빈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나타난 두 천사의 설명'을 들 수 있다. 거기서 예수님이 생전에 반복해서 말씀하셨던 것, 즉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잡혀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다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지금까지 여러 번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 사실을 '기억'한 것이다.

 

두 번째는 "(영의) 눈이 열리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이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반드시 고난을 받고, 그 후에 영광에 들어가야 한다'는 필연성을 성경 전체를 통해 설파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반드시 고난을 받고 그 후에 영광에 들어가야 한다'는 필연성을 성경(구약성경)을 통해 설파하는 것을 이 두 제자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아마도 구약성경의 메시아에 관한 구절들을 차례로 인용하면서, 그리고 그것들을 밀접하게 연관시키면서 하나님의 계획의 비밀을 차례로 풀어내셨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성경의 내용을 잘 알고 있다는 전제가 있다. 그래서 그것들이 어떤 관점에서 연결되고 연관됨으로써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흩어져 있던 성경 지식이 하나의 실타래를 엮어내듯 연결되는 것이다. 말씀이 풀어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말씀이 선포됨으로써 듣는 사람들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두 제자는 감동을 받아 "길에서 말씀하시는 동안에도 우리의 마음은 불타고 있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제자는 '마음이 불타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도 더 깊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머물러 달라'고 무리하게 부탁한 것이다. 예수님은 더 멀리 가시는 것 같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전술이다. 만약 제자들의 관심이 희박했다면, 그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은 이미 떠나셨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스스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바르게 이해하려고 하나님께 묻고 구할 때, 막혔던 눈이 열리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이다.

 

두 제자는 예수님께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억지로 붙잡았다. 원문에는 '우리와 함께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자발성이다. '머물다'라는 말은 '멈추다'라는 표현으로 쓰인다. 헬라어는 '메노' μενω로 요한복음의 키워드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이 선포되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은 성령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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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의 저자가 기도한 것처럼 기도한다.

[시편 119:18] "내 눈을 열어 주소서. 내가 주의 말씀 가운데 있는 기이한 일에 주의 말씀 가운데 있는 기이한 일에 주목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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