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3:14-21 강해
[14-15절]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2)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이라는 말씀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family)’이라는 말로서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키며, 하늘에 있는 가족은 이미 천국에 들어가 영광 중에 있는 성도들을 가리키고, 땅에 있는 가족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성도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하늘에 들어간 이들은 승리하여 안식을 누리고 있고, 땅에 사는 우리들은 죄와 세상과 마귀와 싸우며 살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주어져 있다. 모든 성도에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이름이 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간절한 기도의 모습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스스로 시작하였거나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그가 친히 이루시는 일이다. 여기에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하다.
바울은 단지 에베소 교인들의 의지에 호소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의 선한 결심이나 노력은 마땅히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여전히 연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의 생활이다.
[16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바울의 첫 번째 기도 내용은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에베소 교인들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옵소서라는 것이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은혜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라는 뜻을 포함할 것이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은 성령께서 성도들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심을 보인다. 성령께서는 성도들 속에 오셔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권면하실 뿐 아니라, 그들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신다.
‘속사람’은 ‘중생한 영혼’을 가리킨다고 본다. 중생한 영혼들에 심겨진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려는 새 성향은 더욱 자라고 강건케 되어야 한다.
영적으로 장성한 자 곧 의의 말씀을 체험하고 선악을 분별하며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성도들을 대조시켰다(히 5:12-13).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2:2에서 갓난아이들같이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함으로 자라가야 할 것을 가르쳤고 베드로후서에서는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말했다(3:18).
[17-19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바울의 기도의 두 번째 내용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에 계시게 하옵소서라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마 28:20).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영께서는 그들 속에 거하신다.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나 성도는 그와 연합되어 있음을 믿음과 순종으로 표현해야 하며 체험해야 한다.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항상 계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과 같다. 예수님 믿는 우리는 그가 성령으로 우리 속에 늘 계심을 믿어야 한다.
+ 바울의 기도의 세 번째 내용은 사랑 가운데 굳게 서서 그 사랑을 온전히 알아 충만한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랑은 하나님의 크신 구속(救贖)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죄 많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십자가에 희생시키셨다(요 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롬 5: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구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그 사랑 가운데 확고하게 서야 한다.
바울은 또 모든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그 넓이’란 그 사랑이 각 민족, 각 나라에서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무식을 막론하고 주어짐을 보이며, 그 ‘길이’란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그가 끝까지 사랑하심을 보이며, 그 ‘높이’란 그의 자기희생적 사랑의 고상함과 가치를 보이며, 또 그 ‘깊이’란 그의 사랑의 심오함, 곧 사람의 머리로 다 측량할 수 없고 사람의 가슴으로 다 느낄 수 없는 그의 긍휼의 사랑을 보인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다. 그것은 자신을 속죄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것은 ‘지식에 넘치는’ 사랑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자신의 몸과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이었다. 누가 그 사랑을 다 깨달을 수 있겠는가?
[20-21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는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넉넉히 주시는 하나님,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약 1:5)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을 영원히 돌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