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욕을 되찾은 야곱

창세기 45:1~28

 

창세기 45장은 요셉의 생애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그려져 있는 장이다. 유다의 열렬한 변명에 감동한 요셉은 여기에서 "나는 요셉이다"라고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밝힌다. 그 때의 두 반응을 45장에 볼 수 있다. 하나는 형들의 반응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버지 야곱의 반응이다.

 

전자의 형들의 반응은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라고 묻는 요셉을 앞두고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라고 한다(45:3). "놀라서"로 번역된 '-하루'(בָּהַל)는 구약에서 50, 창세기는 여기의 1회뿐이다. '매우 경악했다'(세키네역.関根訳), '너무 심한 일이라 당황해서'(나카자와역.中沢訳), '경악한 나머지'(이와나미역.岩波訳), '놀라고 두려워했다'(프란체스코역)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하루'(בָּהַל)의 원뜻은 '떠들다, 두려워하다, 불안하게 만들다'이다. 그러므로 놀라움과 공포, 그리고 불안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후자의 아버지 야곱의 반응은 처음 아들의 말을 믿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신개역.新改訳)로 번역되어 있다. '정신이 몽롱해졌다'(신공동역.新共同訳) '어이가 없었다'(이와나미역.岩波訳), '감동했다'(프란체스코역), '마음은 쇠약해져 있었다'(나카자와역.中沢訳)로 번역된 '-와구'(פָּוַג)는 구약에서 4, 창세기는 여기서 1회뿐인 어휘이다. 아마 망연자실 같은 상태, 말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미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왜냐하면 야곱이 들은 말 중에는 자신의 아들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팔았다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혹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야곱이 "기운이 소생한지라"이다. 아버지 야곱이 왜 "기운이 소생한지라"인가. '기운이 소생하다'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 점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1. "기운이 소생한지라"라는 표현

 

이 부분도 여러 가지 번역이 되어 있다.

신개역 · 프란체스코회역 "기운이 소생했다"

신공동역 "건강을 되찾았다"

이와나미역 "기력을 되돌렸다"

나카자와역 "간신히 제정신이 됐다"

세키네역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KJV, NKJV, NIV"the spirit of Jacob their father revived.“

 

원문에서는 '-- · -앗하'(הָיָה רוּחַ)이다. , '야곱의 영은 살았다(회복했다)'이다.

'영이 살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기운이 소생했다'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부분이 '생기를 되찾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산 것이 된 것은 하나님이 그 코에서 생기(-앗하)를 불어 넣었기 때문이다. '루앗하' 앞에 '--'가 있는 예는 구약에 그 밖에 4회 사용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이사야 57:15에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라고 한다. 정확히 (원문에는) '겸손한 사람의 영혼을 소생시키기(사역형) 위해'이다. 영혼이 살아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곱이 기운이 소생하여, 삶의 의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이 소생했기 때문이다.

 

크리스찬(Christian) 작가 三浦綾子(미우라 아야코) 씨가 "건강(元気)는 삶에 대한 의욕이다."라고 정의했지만 참으로 멋진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건강하십니까'라는 인사 용어를 항상 사용하고 있지만, 미우라 아야코 씨가 정의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적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로 하나님에 의해 삶의 의욕을 얻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건강'이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고 나서부터는 그러한 '건강'을 잃었다고 했다. 살 기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따라서 야곱이 이후에 애굽의 바로 앞에서,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고 자신이 불행한 인생을 걸어온 것을 회고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고 그 라헬에서 태어난 요셉까지도 잃고, 재회할 때까지의 23년 가까이 살 기력을 잃었다. 그 야곱이 애굽에서 돌아온 아들들의 보고를 들었을 때, 그들이 말하는 것이 너무 믿지 못하고 멍하니 하고 있던 것은 삶의 의욕을 잃고, 그것이 마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야곱의 영혼이 소생하기 시작했다.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인지 몇 가지 일을 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2. 야곱의 "기운이 소생한지라(הָיָה רוּחַ)"의 이유

 

(1) 요셉이 말한 것을 들려줄 수 있어서

 

애굽에 갔다 돌아온 아들들이 아버지 야곱에게, 그곳에 요셉이 살아 있는 것, 그리고 요셉이 한 모든 말을 들려주었다. 요셉이 한 말은 놀라운 믿음의 증거의 말이었다.

 

[창세기 45. 개역개정]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이상의 요셉이 한 말 중에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는 사실이며, 그 발단이 된 사건, 그리고 그 목적이 기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셉이 애굽에서 단지 살아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거기에 요셉을 미리 보내었다는 기이한 인도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는 것. 게다가 그 요셉이 "내게로 내려오사"라고 하는 초빙이다. 여기가 중요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인도를 알게 된 야곱이 삶의 의욕을 되찾지 않을 리가 없다.

 

(2) 요셉이 보낸 수레(마차)를 보고

 

또 한 가지 야곱이 삶의 의욕을 회복 할 수 있었다는 증거로서, 요셉이 보낸 수레가 있다. 이 수레는 단순한 짐을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정중하게 아버지를 맞이할 만한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야곱은 요셉의 사랑의 마음을 짐작했음에 틀림없다.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이 말씀에서 "보낸"으로 번역 된 '-라하'(שָלַח)는 창세기에서 중요한 동사이다. 그것은 사랑과 호의를 가지고 선물을 주고 '(물건을)보내다, (윗사람이)파견하다'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45장에는 이 동사가 무려 6(5, 7, 8, 23, 24, 27)나 사용되고 있다.

 

결론

 

삶의 의욕을 잃은 야곱의 영이 소생하여 70명 정도의 일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려고 결심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계획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야곱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셉이 팔린 것도 기근이라는 위기가 찾아온 것도, 모든 것이 합당해서 유익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야곱과 그의 가족을 위해, 이윽고 향하는 애굽에서 최고의 땅과 최고의 것(טוּב)을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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