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의 대역을 자청한 유다

창세기 44 1 ~ 34

 

44장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유다(히브리어로는 '에후다-'라고 발음한다)의 언동이다. 유다는 이 장을 계기로 하나님의 구원적인 역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존재가 된다. 즉 이스라엘의 온 집의 지도자적 존재, 메시아(유다의 獅子)의 계보로 이어지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아직 유다 본인도 알아차리지 못하였지만 ··.

 

1. 요셉의 사랑의 조치로 준비한 획책

 

44장에서도 요셉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조치이지만, 1절의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라는 지시에 볼 수 있다. 그것은 전번의 때와 똑같이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또 하나의 다른 획책이 있었다. 요셉의 생애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요셉의 획책의 목적은 이번의 애굽 방문에서 동생 베냐민과 아버지 야곱의 안부 확인이 되었지만 '형제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요셉 자신이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측 할 수 있다. 요셉 자신도 자신의 준비한 획책에 의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3000년 이상 전에 이런 역사적 드라마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놀랍다. 이야기를 엮는 실이 실오라기 하나 엉킴 없이 방적되고 있는 것이다.

 

은잔의 일로 트집을 잡고 베냐민을 자신의 노예로 자신에게 두려고 할 때, 다른 형제들은 모두 함께 베냐민의 불행을 자신의 일처럼 슬퍼했다(13). 그리고 그들 중에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머물러 있을 것을 자청하였다(33). 여기에 성경에 곧 전개하는 '속죄(대속)의 싹'을 볼 수 있다.

 

2. 유다의 아버지 야곱에 대한 관계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할 것을 자청한 것은 유다가 그의 보증인이 되기 위해 아버지 야곱과 약속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약속했다기보다는 베냐민을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그 아버지의 슬픔과 고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죽게 된다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생각 때문에 스스로 대역을 자청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여기에서 중요한 점인 것 같이 생각된다. , 아버지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한 독생자의 관계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유다는 요셉을 죽이기보다는 팔아버리는 것이 유익하다고 다른 형제들에게 제안하고, 아버지에게는 요셉이 짐승에게 먹혀죽은 것처럼 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아버지를 슬프게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행위를 범죄로 인식하면서(16), 아버지의 사랑하는 막내아들을 위해 자신이 보증인(대리)이 되겠다는 자청은 아버지에게, 그리고 형제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다는 이윽고 아버지 야곱의 죽음을 앞에 둔 축복에 있어서, 다른 형제보다 나은 축복을 받는다. 요셉도 유다와 동등한 축복을 받는다. 그것은 자신이 받은 괴로움을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명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스라엘의 온 집을 구원해, 안주의 땅인 고센으로 이끌어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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