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들에게 정탐꾼의 혐의를 거는 요셉의 조처

창세기 421~38

 

꿈이 나타난 것처럼, 애굽과 그 주변에도 기근이 찾아왔다. 처음 겪는 기근에 야곱의 아들들은 망연자실했던 모양이다. 이대로 가다가 굶어 죽을 것을 우려한 야곱은 아들들을 애굽까지 보내려고 한다. 애굽까지는 400킬로나 되기 때문에 주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식량을 손에 넣고 돌아오는 것은 힘든 여행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족장 야곱은 애굽에 가서 곡식을 구한다는 것을 알고 아들들에게 애굽까지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시켰고, 아버지 야곱은 막내 베냐민을 같이 보내지 않았다. 재앙이 그에게 임할까 보아서 그랬다. 아마 야곱은 요셉의 사건으로 슬픔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42장 동사의 강의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대로 42장 흐름이 확인된다.

 

1.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주저하고 있던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부추겨져서 애굽으로 갔다. 426절에는 요셉의 형제들이 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그에게 엎드려 절했다고 쓰여 있다. 예전에 요셉이 17살 때 꾼 꿈이 바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요셉은 그들이 자기 형들임을 금방 알아차렸지만 형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 형들은 요셉을 몰랐을까, 그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는 자세의 문제도 있지만, 요셉이 이 때 애굽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3절에 나와 있듯이 요셉은 통역자를 통해 이야기를 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요셉은 형들에게 정탐꾼의 혐의를 걸었다. 여기서 '너희들은 정탐꾼이다'라고 하는 '정탐꾼'란 이 장에서만 7번이나 사용되어 그 혐의 뒤에 요셉의 조처를 간파할 수 있다. 그 혐의의 목적은, 자신의 동생인 베냐민과 아버지 야곱의 안부를 살피기 위한 것이었다. 형들은 혐의를 벗기려고 아버지 야곱의 일이나 베냐민을 이야기했지만 요셉은 그렇게 쉽게 믿지 않다. 요셉은 형들 중 한 명을 시켜 동생을 데려올 때까지 모두를 감금하겠다며 사흘 동안 그들을 감금했다. 그러나 3일이 지나고 나서 요셉은 그것을 변경한다. 왜냐하면 요셉은 형들이 이것은 자신들이 예전에 요셉의 일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형제들 중 하나인 시므온을 인질로 감금하고, 다른 형들에게는 곡식을 들려 돌려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막내 동생을 데려와 정탐꾼의 혐의를 벗도록 했다.

 

2. 요셉의 사랑의 조처

 

요셉이 형들을 돌려보낼 때 부하들을 시켜 형들의 자루에 곡식을 채우고, 또 대가의 은을 각각 자루에 넣고, 또 가는 길에 먹을 식량을 주도록 명하였다. '명하다'라고 하는 동사가 강의형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 명령은 요셉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부여된 권위에 의해서 비로소 행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요셉의 명령에 의해서 요셉의 형들은 은혜를 입은 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길에서 형제들 중에 한 사람의 자루 안에서 은화가 되돌려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때 형제들은 몸을 떨면서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라고 말하며 놀랐지만, 이윽고 아버지 곁으로 돌아와 자루를 열었을 때, 각각의 자루에서 은화가 나왔을 때는, 그들도 아버지 야곱도 '두려워하더니'고 기록되어 있다. (35)

 

3. 아버지 야곱의 망설임

 

애굽에서 돌아온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있는 그대로를 보고한다. 야곱은 요셉을 잃은 슬픔으로 인해 시므온이 인질로 잡혀 지금 베냐민마저 잃을까봐 애굽에 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라고 말했다.

 

야곱의 우려가 이런 형태로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덧붙여서,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라고 하는 동사에 강의형(능동태)이 사용되고 있다.

야곱은 베냐민을 애굽에 보내는 것은 아무래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베냐민에 대한 편애이자 고집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근이 다가오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셉이 만든 책략 속에 야곱과 그 아들들은 무의식중에 필연적으로 빠져들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의 최대 고비는 아버지 야곱이 쥐고 있었다. 야곱의 망설임이 무너질지 어떨지가 그 후의 일을 결정하는 열쇠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교훈이 생각난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 16:25).

 

여기서의 '생명'이란 ψυχή(프슈케-),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이 소중히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고집한다면, 그것을 잃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위해서 그것을 포기하면, 모든 것이 연결될 뿐만 아니라, 보다 소중한 것을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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