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이름으로 표현된 요셉의 신관

창세기 4146~57

 

+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의 요셉의 행보

 

애굽에 유례없는 대기근이 오기 전에 요셉은 애굽의 종교를 관장하는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와 결혼했다. 그리고 두 아이가 주어져 있다. 그 두 사람의 이름은 한 사람은 '므낫세', 다른 한 사람은 '에브라임' 이다. 그 이름들은 요셉이 그동안 하나님이 자신의 일생을 어떻게 돌봐주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두 아이의 이름은 요셉의 신관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아내의 종교에 감화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요셉의 신앙은 확실히 확립되어 있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 '므낫세[='מְנַשֶּׁה(마나세)]'라는 이름

 

+ 'מְנַשֶּׁה(마나세)'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라는 뜻이다. 이름의 어근으로서는, '잊는다'를 의미하는 'נָשָׁה(--), 명사화하는 'מ(-)'이 머리에 덧붙여져 '마나세'라고 하고 있다. 'נָשָׁה(나샤)' 그 자체는 창세기 41:511회만 사용하는 어휘인데 여기서는 강의형(피에르태)이 사용되고 있다.

'잊는다'를 뜻하는 어휘로는 예를 들어 요셉을 잊은 술 맡은 관원장의 경우(40:23)에는 'שָׁכַח(-하하)'가 쓰인다. 이 쪽이 일반적이어서 구약에서는 120회의 빈도로 사용되고 있다.

 

+ 요셉의 지금까지의 생애를 돌이켜 본다면, 운으로 말하자면 업 다운을 반복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가 인생의 가장 축복받은 때라고 요셉은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셉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언제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다'는 것이다. 그 걸음을 관철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모든 사건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 요셉의 신관에는 자신이 항상 하나님에 의해 인도되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지금까지 요셉의 발언을 보면 하나님의 선취성(先取性; initiative)의 고백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1) 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2) 408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3) 4125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4) 4151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5) 4152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 '므낫세'라는 이름 속에 요셉은 지금까지 자신이 겪은 고통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일과 형제들에게 당한 일을 잊게 할 정도로 하나님의 임재의 축복과 계획을 찾아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당한 고통을 이겨낼 정도의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섭리가 거기에 있었음을 받아들인 것을 의미한다.

 

2. '에브라임'이라는 이름

 

+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브라임(אֶפְרַיִם)'의 어근은 '많은 열매를 맺다, 번식하다'를 뜻하는 'פָּרָה(-)'의 히필태(사역)이다. 구약에서는 30회의 빈도로, 창세기에서는 15회나 사용되었다. '생육하라, 번성하라, 혹은 '늘어나게 되었다'라는 문구로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게 말하고 있다. 요셉 자신은 '열매를 맺는 어린 가지'라고도 칭한다.

덧붙여 'פָּרָה(--)'는 흥미롭게도 바로가 꾼 꿈에 나온 '암소'와 같은 말이다. '암소'라는 말이 '많은 열매를 가져다주다.'는 어휘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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