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에게 주어진 꿈의 해석

창세기 401~23

 

* 창세기 40장에서 요셉이 수감된 감옥은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있는 감옥이었음을 처음으로 알 수 있다. , 요셉이 보디발의 관할을 떠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두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서 요셉과 같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친위대장 보디발은 이 두 사람을 돌보는 사람으로 요셉을 임명했다. 한때 보디발은 아내의 고발을 듣고 화가 나서 요셉을 감옥에 가두긴 했지만 요셉이 갖고 있던 관리능력을 사서 이를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 40장은 요셉에게 부여된 '관리능력'과 그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꿈을 해석하는 힘'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데, 그 힘이 요셉의 일생에 크게 꽃피우게 될 전조를 느끼게 해주는 장이다.

무대는 이미 감옥 안이지만 친위대장 집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보디발에서 두 명의 죄수를 직접 관리하는 임을 요셉에게 주었다. 이것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셨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면, 40장의 어디에 강의형의 동사가 쓰이는지 살펴보자. 4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위에서 보이는 강의형 동사를 포인트로 40장을 명상해보자.

 

1. 요셉의 '관리능력의 은사'가 활용되었다.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신다는 축복은 그가 어디에 있든지 모두 성공한다는 것이다. 감옥에서 옛 주인은 요셉에게 새로 죄수가 된 왕의 관리인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 두 사람의 신변을 돌보는 일을 맡겼다. 그것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요셉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그것을 살릴 수 있는 자리가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404절에 '섬겼더라'고 번역된 '-라토(שָׁרַת)'의 강의형은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394절에도 요셉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주인을 '섬겼다'는 대목에서도 마찬가지로 '-라토'가 사용되었는데, 신개역(新改訳)에서는 주어를 주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측근의 사람으로 삼았다'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원문인 '-라또'의 주어는 어디까지나 요셉이며, 요셉은 기꺼이 주인을 '섬겼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비록 404절 역시 보디발이 맡겼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준 주인의 명에 따라 요셉이 흔쾌히 두 사람을 돌보아준 점이 여기 강조되어 있다.

 

* 참고로 '-라토(שָׁרַת)'와 유사한 단어에 '-바도(עָבַד)'가 있다. 전자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직책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후자는 일반적인 의미로 '섬기다'라는 뜻이다. '-라토(שָׁרַת)'는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의 종(섬기는 자)이 된 여호수아 및 성막의 제사장으로서 특별한 직책을 위해 섬기는 일에 사용되고 있다.

 

2. 꿈의 내용을 이야기한 관리

 

* 40장에는 죄수가 된 두 명의 관리가 각각 꿈을 꾸는데, 그것을 해석하여줄 사람이 없음을 요셉에게 고한다. 요셉은 이때 꿈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 하면서, 그 꿈을 자기에게 말하도록 촉구한다. 그 촉구에 나오는 8절의 '고하소서'라고 하는 동사 '-(סָפַּר)'에는 강의형이 쓰이고 있다.

'-(סָפַּר)'은 본래 '세다, 재다, 정확하게 쓴다'라는 뜻인데, 강의형으로는 '말하다, 그리고 '정확하게 정리하여 말하다'는 뜻이다. 요셉으로부터 꿈의 내용을 말하도록 재촉을 받은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에게 꿈에 대해 '말했다', 여기도 강의형이 사용되고 있다. 덧붙여 '-(סָפַּר)'이라는 말이 명사가 되면 '서기관'이라는 뜻이 된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또 다른 떡 굽는 관원장이 요셉에게 꿈을 말할 때에는 강한 뜻이 아니라 보통 '말했다'는 뜻의 '-(אָמַר)'이 사용되고 있다. 똑같이 꿈을 말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의 경우에는 강의형이 사용되고, 떡 굽는 관원장의 경우에는 보통의 파울태(능동태)가 사용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수수께끼 풀이 같지만 구절이 성령에 의해 쓰여졌다면 놓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 경우 전자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이 훗날 요셉의 생애와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요셉이 해석하여준 두 사람의 꿈 내용은 극도로 대조적이어서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여주는 경우에는 너무나 매정하고(그 운명이 비극적이기 때문에), 요셉은 그 자와 관계를 가지려 하지 않다. 당연한 일이지만 ...

 

3. 술 맡은 관원장에게 '도둑맞은' 자신의 생애를 맡긴 요셉의 잘못과 2년간의 침묵

 

*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한 후에(,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기 전에 이미), 요셉은 감옥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함과 동시에 자신의 결백을 강력히 호소하고 있다. 15절의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끌려온'이라고 번역된 '-나브(גָנַב)'의 강의형 푸알태가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다. 푸알태란 강의형의 수동태를 말한다.

 

* '-나브(גָנַב)'의 본래 수동태 의미는 '도둑맞다'는 뜻이다. 그 강의형의 푸알태(수동태)에서는 '훔쳐진다'라고 하는 의미가 된다. 게다가 원문에서는 '-나브'가 두 개 겹쳐져 있어서 억지로 데려왔다는 사실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자신의 생애를 도둑맞았다니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 그런데 요셉은 자신의 여태까지의 삶이 '훔쳐졌다'는 사실을 술 맡은 관원장을 통해 바로에게 직접 무죄를 호소하는 방법으로 한시바삐 이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나브'의 강의형 푸알태는 그 기대의 표출이 강조된다. 하지만 그 요셉의 기대는 저버리고 만다. 그것은 하나님의 배제이며, 하나님의 계획에는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이 있음을 요셉으로 하여금 배우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41장에서 확실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배우게 하기 위해 2년간의 시간을 준 것 같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이상과 같이 히브리어 동사의 강의형의 용법은 결코 변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사의 강의형(强意形)의 존재가 하나님의 계획에서의 전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 그렇다 치더라도, 40장에서 요셉이 자신에게 꿈을 해석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꿈꾸는 사람''꿈꾸는 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꿈을 해석하는 사람'으로서의 본령이 발휘되기 시작하는 장이다. 39장에서 요셉은 자신이 꾼 두 가지 꿈에 대해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이야기하는데 요셉은 그 꿈이 의미하는 바를 확신하는 힘이 부여된 것이 된다. 이 확신이 있어야 애굽에서 '도둑맞은' 자신의 처지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진 것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왜냐하면 요셉 스스로 '꿈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여 자신과 하나님의 연결고리를 강하게 느끼게 하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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