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로 귀환한 야곱

창세기 35:1-29

샬롬선교회 


34장에 기록되어 있는 야곱의 딸 디나의 능욕 사건으로 인해 야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다른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1)고 하셨다. 아들 시므온과 레위의 한계를 넘어선 잔학한 복수에 대해 언젠가 세겜 사람들의 증오에 의한 복수가 일어나도 결코 이상하지 않은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고개를 숙이는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것이다. 야곱 일행이 세겜을 떠나자,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5)고 한다. 바로 여기에서 당당한 하나님의 수호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지켜주심에 인하여 야곱과 그 일행은 무사히 세겜을 떠나 벧엘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지혜와 힘에 의지해 어떠한 타개책을 생각하는 것으로 시종하고 있던 야곱의 모습이 여기에서는 희미해지고 있다.

, 야곱은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릴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허벅지 관절이 위골된 야곱이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것을 배워가는 하나의 과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야복의 나루에서 하나님과 싸우고 브니엘의 경험을 한 지 약 10년이 지난 것 같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는 것을 배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1. 벧엘로의 귀환

 

(1) 새로운 야곱의 결의

 

벧엘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야곱에 나타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임재 -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 증거로 야곱은 그 동안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도 하나님은 '고난의 날 내게 응답하시고 내가 걸었던 길에 늘 함께 계셨던' 분이라며 신앙고백적 행위로 제단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행에 대해서도 모든 우상을 버리게 하였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결의를 표명했음을 의미한다.

 

(2) 베냐민의 출생과 라헬의 죽음

 

야곱은 세겜을 떠나 벧엘로 간 다음, 에브라다(אֶפְרָתָה) - 후에 베들레헴을 지나 아버지 이삭이 있는 헤브론으로 향한다.

벧엘을 떠나고 나서 라헬의 출산이 있었다. 심한 난산으로 사내아이를 출산한 후에 라헬은 죽다. 라헬은 이 아이의 이름을 '벤 오니'((בֵּן-אוֹנִי)라고 지었다. 나의 고통스러운 아이, 혹은 나의 슬픔의 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때만큼은 아버지 야곱이 아이의 이름을 베냐민(בִנְיָמִין)이라고 고쳤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의 이름에 관계한 것은 이 때뿐이었다. 성경은 야곱의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적고 있지만, 야곱의 마지막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으로 개명한 것 속에서 야곱의 마음을 적잖이 느낄 수 있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자녀라는 뜻이다. 오른손(--בִנְיָמִין)은 성경에서 특별한 존재를 의미하며 믿음, 친근함, 다행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야곱에게 베냐민은 라헬의 유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였던 것 같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오른쪽''남쪽'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남쪽 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북쪽의 하란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라헬이 죽기 전에 낳은 아이만은 가나안 남쪽 지방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 이고 '남쪽 아이'이다.

 

후에 베냐민은 무럭무럭 성장하여 훗날 이스라엘 열두 부족의 하나인 베냐민족의 선조가 되었다.

베냐민족은 가나안의 중앙, 예루살렘의 북쪽에 영토를 주어졌다만, 작은 부족으로, 북부 전체를 대표하는 에브라임과 남유다라고 하는 두 개의 강력한 부족 사이에 끼어 계속 고생하고, 한때는, 동포의 격렬한 공격을 받아, 주민의 대부분을 잃을 정도의 위기를 맛본다. 역사는, 마치, 진짜 이름이 '베냐민'이 아니고, '·오니'인 것을, 사람들에게 일부러 가르치려는 것 같다. 그들은 작은 부족이었지만 다른 부족들에게서 '제곱'(늑대를 뜻함)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끈질기게 살았습니다(창세기 49:27).

 

덧붙여서, 이 베냐민의 부족으로부터 우수한 인재도 배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선정된 사울. 다윗을 끝까지 충실히 섬겼던 제사장 아비아달. 그러나 그 아비아달이 다윗의 왕위를 둘러싼 아도니야와 솔로몬의 항쟁에서 아도니야를 지지함으로써 솔로몬의 명령으로 베냐민의 한촌 아나돗으로 추방된다. 300년 후에 아나돗의 제사장의 집 아이로 태어난 것이 예언자 예레미야이다.

 

후에 기근이 들었을 때 애굽에 곡식을 사러 아들들을 보냈는데, 야곱은 베냐민만은 같이 보내지 못했다.

베냐민에게 재난이 닥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베냐민이라는 존재는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과 그를 판 다른 10여 형제들과 화해를 나누는 역할을 했다. 야곱의 아들들을 하나로 묶는 중심적 인물이 된 것이다.

 

2. 하나님의 약속의 확실함

 

35장에는 이밖에도 아들 르우벤의 간음, 이삭과의 재회와 이삭의 죽음과 장례식 등 여러 사건들이 있다. 그러나 35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다시 한 번 명확한 축복의 계승이 약속된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으로 흘러가는 축복의 계승이 하나님의 은총적인 인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바로 35장이다.

 

(1) 구원사적 약속의 갱신

 

35장에서는 하나님이 일찍이 28장에 야곱에게 '말한' 구원사적인 약속(13, 15)이 모두 강의형의 사역태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의 확실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야곱의 모든 일은 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 28장과 35장 각각의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살펴본다.

 

= 창세기 28장 하나님의 약속 - 국토획득, 만민축복, 자손번영 -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 창세기 35장에서의 약속 구원사적 약속 -

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35: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이 약속의 전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고 개명하여 주셔서 야곱도 자신이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 '나는 전능한 하나님'(아니-엘샤다이)으로서 말을 걸고 있다.

 

(2) "돌아오게 할지라."는 약속의 성취

 

28장에는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없던 특별한 약속이 있었다. 그 약속이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는 것이다"(28:15). 이 약속을 하나님은 야곱에 대해 지키셨다. '돌아오게 할지라.'는 것이다. 거기에 얼마나 하나님의 선취적 은총이 있었겠는가?

 

35장에서는 야곱이 하나님의 은총적 인도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자리에 기둥, 즉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붙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을 벧엘이라고 이름 붙였다. 야곱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걸음을 되돌아봄과 동시에 거기에 부어져 있었던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에 깊이 마음을 두었다고 생각한다.

 

http://meigata-bokushin.secret.jp/index.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