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사는 법을 배우다

창세기 261~33

 샬롬선교회


26장에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이삭의 삶을 잘 보여주는 기록이 적혀 있다. 자녀의 탄생(25)과 노년에 이르러 자녀를 축복하는 27장 사이에 이삭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여호와께 축복을 받았는지, 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1. 26장에 보이는 동사의 강의형

 

먼저 26장에 있는 강의형 피엘태 동사를 살펴보면, 이 장에는 12개의 피엘태와 1개의 히트파엘태가 있다. 24장에서도 그랬지만, 강의형 동사를 취하여, 26장에서도 성경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의도하는 메시지가 보일 것이다.

  

(1) 3"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2) 8"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3) 11"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나 그 아내에게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4) 12"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5) 14"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6) 15"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7) 18"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8) 20"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9) 24"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10) 27"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11) 29"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12) 31"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2. 이삭의 온유(=유화/柔和)라는 힘

 

여호와는 축복하실 때는 항상 강의형 피에르태를 이용한다. 이는 여호와는 축복의 하나님이시며, 주시는 것을 가장 기쁨으로 하기 때문이다.(3, 12, 24)

아브라함 때도 있었던 것과 같은 기근이 닥쳤을 때, 이삭은 여호와께서 '너는 이 땅(거랄)에 머물라. 그러면 나는 너를 축복해 줄 것이다.'라는 약속을 받았고, 이삭은 그 곳에 머물렀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기근 때 여호와의 말씀도 없이 이집트로 가버렸지만, 이삭은 머물렀다. 그리고 거랄 땅에 씨를 뿌렸더니 백배의 수확을 얻었다. 또한 양과 소 떼가 늘어나면서 많은 종들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런 만큼, 그 축복에 대한 반동이라고도 해야 할 질투나 괴롭힘이라는 것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26장에서는 거랄 사람들의 질투와 괴롭힘에 대해 이삭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기술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

 

14, 15, 17에는 질투에 의한 구체적인 괴롭힘으로서, 생명 다음으로 중요한 '우물'이 모두 흙으로 막히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 땅에서 나가라고 쫓아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이동해서 예전에 아브라함이 파던 우물인데, 이것도 아브라함이 죽은 후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지만, 이삭은 그것을 다시 팠다. 그리고 그 우물들의 이름을 아버지 아브라함이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자 거랄의 양치기들이 그 우물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삭의 양치기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할 수 없이 이삭은 더 이동해서 또 다른 우물을 팠다. 거기서 다시 이삭은 브엘세바로 가서 거기서도 또 다른 우물을 팠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 5:5)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삭은 바로 온유한 자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싸우지 않았고,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맞대응하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 손해를 보는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호와는 그런 이삭을 축복하셨던 것이다. 이삭의 온유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자들에게 대항하는 것은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이를 깨달은 아비멜렉은 이삭을 찾아가 평화의 계약을 맺고 싶다고 제안한다. 왜냐하면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라고 말한 것처럼, 이삭과 싸움을 벌여도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있는 것을 두려워 한 것이다.

 

3. 여호와의 지키심은 의외의 곳에서부터 온다.

 

268절의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라는 대목에 주목하고 싶다. '껴안다'라는 동사가 왜 강의형 피에르의 상태냐는 것이다. 이것은 이삭이 부부의 좋은 점을 보란 듯이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강의형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부부로서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을 목격한 아비멜렉은 이전에 겪은 일을 회상하게 된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 '사라'를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말한 것으로, 사라를 자기에게 불러들였을 때, 하나님은 꿈속에서 그녀가 남편의 있는 몸이며, 만약 그녀를 건드린다면, 자신 또한 자신에 속하는 모든 사람도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이 이삭 때에도 일어났다. 이삭도 자기 아내를 동생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사라의 때도 그렇지만 이삭의 아내 리브가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비멜렉이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때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보고 부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걸 모르고 만약 백성 중 한 사람이 리브가와 자는 일이 있으면 큰 죄를 지을 뿐 아니라 많은 재앙이 올 것을 염려하여, 모든 백성에게 리브가를 건드린다면 반드시 죽임을 당하겠다고 경고했다는 얘기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의외로 이삭과 그 아내는 기류자로서의 두려움으로부터 보호받게 된 것이다. 여호와의 지키심은 의외의 곳에서부터 오는 법이다. 곧 신변의 안전이 그 땅의 왕에 의하여 보장받는 형태가 된 것이다.

 

4. 마지막으로 '-라하'(שָׁלַח)의 강의형

 

마지막으로 다룰 부분은 27절의 '떠나가다'29, 31절의 ' 보내다'라는 동사에 대해서 이다. 모두 '-라하'(שָׁלַח)인데, 이 말들이 왜 피에르태로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동사 '-라하'(שָׁלַח)는 파울태든 피에르태든 둘 다 '보내다'라는 뜻으로 번역되지만, 피에르태의 경우에는 '보내다' 외에 '내쫓다'라는 의미가 있다. 전자는 긍정적, 적극적인 의미를 갖지만 후자는 부정적, 소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성경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323절에서 후자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거기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라고 쓰여 있다. 2627절도 그렇다.

 

그런데 2629, 31절은 전자, 즉 좋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즉 특별한 배려를 가지고 선물을 주고 정중하게 축복하여 '보내다'라고 하는 의미로 강조형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220절에서는, 이집트의 바로가 부하에게 명하고,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 그리고 롯, 거기에 전 재산을 주어서 '내 보내다'라고 되어 있다. 이런 예는 2114, 2459, 286, 4314절 등에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경의를 가지고 특별한 배려를 가지고 내보낸다는 것이 '-라하'(שָׁלַח)의 하나의 의미이다.

 

참고로 아브라함의 마지막 일로 이삭과 거두라에서 태어난 여섯 아들과 거리를 두게 했다. 이 때에도, 아브라함은 그 6명을 동쪽으로 '보내다'라고 한다. '보내다'도 좋은 의미의 '보내다'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일은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삭과 아비멜렉 사이에 맺은 계약은 평화로운 중에 서로 '보내다'라는 관계이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마침 찾아온 아비멜렉과 계약을 맺고 떠나보낸, 바로 그날 우물물이 나왔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래서 그 우물을 '브엘세바'라고 불렀다. 하지만 일찍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맹세를 나눌 때 아브라함이 일곱 마리('세바')의 암컷 양()을 아비멜렉에게 주었다고 해서 '브엘 세바'라고 불렀는데, 아마 여기서는 이를 바탕으로 '맹세의(=맹세했다) 우물'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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