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의 계승

창세기 241~67

샬롬선교회

 

+241절에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 일생의 총괄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이다. "나이 많이 늙었고"라는 말은 원문에서는 완료형인 '--(זָקֵן)'을 사용하고 있어 완전히 늙었다는 뜻인데, 아브라함은 35년간을 살았고, 그 사이에 또 다른 아내 그두라와의 사이에 여섯 아들을 두고 있다.

아브라함은 모든 면에서 주께 축복받았지만, 또 하나, 마지막 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을 계승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는 일이었다. 아브라함의 집의 전 재산을 관리하게 하고 있는 늙은 종에게 그 임무를 맡긴다.

 

+ [창세기 242~4] 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3.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2"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라는, 당시 맹세의식이다. 창세기 4729절에도 야곱이 요셉에게 맹세를 청하고 있는 구절과 같다. "환도뼈"는 히브리어의 '--(יָרֵךְ)'이다. '고관절', '생식기, '치부'를 의미한다.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는 맹세를 하는 자가 맹세를 청하는 남성의 생식기, 즉 일족이 태어나는 기점이 되는 부분에 손을 둠으로써 '자자손손에게 서약'을 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최고 연장자인 종은 이를 위해 아브라함의 친족이 있는 고향(아마도 '하란'을 말하고, '아람 나하나임의 나홀 마을'이라고도 함)으로 여행을 떠난다. 과연 하나님의 축복을 계승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삭의 아내를 찾을 수 있을지, 설사 찾았다고 해도 긴 여행을 하면서까지 따라올 수 있을지 오직 하나님의 인도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생애

 

아브라함은 75세에 '축복의 담당자'로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 담당자에게 어울리도록 그를 이끌어, 그 신앙을 성장시켜 갔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175년이므로, 100년간,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의해 축복받은 생애를 걸어 온 것이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하다'라고 하는 동사는, 하나님이 사람에 대한 은총을 통괄하기에 알맞은 어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직 '구원'이라는 말도, '사랑', '은혜', '동정'이라는 말도 아직 없는 아주 먼 옛날부터 쓰이고 있던 하나님의 은총용어는, '축복하다(-라흐)'라는 말이었다.

이 말이 창세기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122절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에, 그것들을 축복하고 "생육하라, 번성하다"라고 말씀하셨다. 129절에서는 창조의 관()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남자와 여)을 만들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시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축복하다'라는 동사를 세밀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은총이 모든 피조물을 통해 지상으로 확대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정점적 존재로서 그들을 지배하는 권위를 부여받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죄로 인해 그 축복의 은총이 멈춰졌기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홍수에 의해 멸망시키고,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다시 인간에게 축복을 약속하신다. 하지만 인간 마음속에 있는 죄의 힘은 다시금 더해지면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력을 만들어 간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바벨탑'이었다.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을 통해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의 담당자로 선택되었다.

 

+ [창세기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소명의 말씀에는 '구원'이란 말은 하나도 없지만, '축복'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다섯 번이나 나왔는데 그 중 네 번은 동사 '-라흐' בָּרַך이고, 나머지 하나는 명사 '벨라--(בְּרָכָה)'이다.

놀랍게도 성경에서 하나님이 '축복하다'라고 하는 동사는 대부분 강의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축복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친히 강한 결정을 내리시는 것이라는 뜻이다.

 

+ '축복하다'의 원의(原義) :

덧붙여서 '-라흐(בָּרַך)'의 원의는 '무릎꿇다, 부복하다'이다. 이것이 그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사용되면, 하나님을 '찬미하다, 감사하다, 칭찬하다'라고 하는 예배 용어가 된다. 그러나 이 어휘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을 향해지면 '축복하다'가 되지만, '축복하다'라고 하는 말 안에는 다양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이 원의에서 이미지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에 대한 경의(敬意)이다. 일본에도 '인사한다'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을 의미한다. 꿇어앉아(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풍습이 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무릎꿇기, 부복하기'는 예배 그 자체를 의미하고, 하나님을 축복하는 것은 찬양이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하는 이미지 속에 하나님의 신임성과 은총의 확대성·영원성을 본다. 또 하나님에게 다가서 친밀함도 이미지화한다. 이것이 히브리어 '-라흐'가 가지고 있는 뉘앙스이다. , 거기에 '선택' '사명' '인도' '육성' '풍만' '장수' '평안' '지킴'이라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귀중한 것, 다행스러운 일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라흐'는 하나님에 대한 은총의 통괄용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데 있어서 크게 집착한 인물이 성경 속에 나온다. 그것은 이스라엘이라고 자칭하게 될 야곱이다. '나를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을 수 없습니다.'라며 새벽까지 격투한 야곱이다. 그는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과도 함께 살았던 적이 있다. 계산한 바에 따르면 야곱이 15살 때 아브라함이 사망했다고 한다. 아마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는 또 다른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에 대해서도 들은 것 같다. , 이삭이 태어나 젖을 뗀 후에 이삭을 놀리는 바람에 어머니 하갈과 함께 쫓겨났다는 것을. 야곱은 축복을 계승하는 장자의 권리의 대단함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청년이 되어 형인 에서가 그 권리를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것을 간파한 야곱은, 때가 도래했다는 듯이 형을 속여 장자의 권리를 빼앗아,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만다.

 

'야곱'이라는 인물이 어찌나 지독한 인물인지 성경은 야곱에 대해 일절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빼앗긴 에서가 비난 받고, 그가 장자의 권리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적으며, 에서처럼 되지 않도록 오히려 경고되고 있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다른 기회로 미루고 싶지만 한마디만 하자면, 에서는 장자에게만 주어지고 있던 하나님의 축복을 경멸한 것이다. 그것을 우습게 보고, 하찮게 여기고, 그것을 일시적인 만족을 얻기 위한 것으로 바꾼 것이다. 하나님이 정해준 가장 고귀한 영원한 특권보다 일시적인 즐거움을 더 중요하게 여겨 양보해서는 안 될 것을 양보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 -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축복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넘어선 보다 글로벌한, 보다 널리 퍼진 하나님의 은총이다. 게다가 그것은 영원히 연결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 241절에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라고 되어 있지만, 그 축복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넘어 다음 세대에 계승되어 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삭이 결혼한다는 단순한 문제도 아니다. 아들 이삭에게 어울리는 며느리를 찾는 일은 신앙의 계승, 축복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아브라함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덧붙여서, 이스마엘의 아내는 어머니 하갈에 의해 이집트에서 맞이한다. 당시 자신의 아들에게 아내를 찾아주는 것은 부모의 의무였을지도 모른다. 이스마엘에게서는 신앙의 계승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앙의 계승, 축복의 계승은 이삭에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2. 축복의 계승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 신앙의 계승, 축복의 계승이라고 하는 점에 있어서도, 실로 이상한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 인도를 자세히 적고 있는 것이 24장이다.

 

종 에리에셀이 자신의 주인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인도를 감사하고 찬미하는 말에 주목하자.

[창세기 24:27]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창세기 24:48]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27, 48절의 "인도하사"의 히브리어는 '--(נָחָה)', 처음으로 나오는 구절은 여기 창세기 2427절이다. 39회 사용하였다. 유명한 시편 233절에도 사용되고 있다.

[시편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구체적으로, 종이 목적지에 도착한 마을의 우물가에서,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24:12)라고 가도한다. 그 기도에 하나님은 즉석에서 대답하여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손녀 리브가와 만나게 했다. 종의 말에, 리브가의 아버지와 형은 즉석에서,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24:50, 51)라고 응답했다.

종은 즉석에서 다음날 아침 리브가를 동반하고 돌아가기를 원한다. 이에 리브가는 "가겠나이다('--'אֵלֵךְ')"라고 대답한다.(24:58) 바로 이 자세는 아브라함이 행선지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가리키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과 비슷하다.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얼굴도 본 적도 없으면서 하나님의 인도라고 믿고 결혼을 결심한 리브가의 모습은 번제의 희생양으로 제단 위의 장작 위에 놓여 몸을 맡긴 이삭의 모습(영성)과도 닮았다

이렇게 하나님은 신앙의 가족을 이루기 위해, 또 축복의 계승이라는 사명을 맡도록 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인물을 이삭의 아내로 주셨던 것이다. 실로 하나님의 인도는 하나님의 축복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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