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기쁨과 불온한 분위기

창세기 211~34

샬롬선교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생각할 때 계속 남편을 따라다니기만 할 뿐, 지금까지 그녀에게 행복이라고 생각되는 때가 과연 있었는가 하면, 이렇다 할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여자 노예 하갈을 믿고 아이를 얻고자 했지만, 하갈이 임신한 것으로 인해 멸시를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사라의 일면을 보는 심정이었다. 잘되리라 생각했던 일이 뜻하지 않은 사태로 번져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 21장에서는 그녀의 생애 최고의 기쁨, 최고의 웃음을 안겨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건 약속된 이삭의 탄생이다.

 

1. 사라와 기쁨과 불온한 분위기

 

먼저, 엄마가 된 사라의 기쁨을 살펴본다.

新改譯 일본어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나를 웃게 하셨다'(6)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新共同譯에서는 '하나님은 나에게 웃음을 주셨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口語譯'하나님이 나를 웃게 해주셨다.'라고 동사처럼 번역이 되어 있다. 히브리어 원문 직역으로는 '하나님은 나를 위해 웃음을 만드셨다(-- עָשָׂה)'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 웃음을 함께 해줄 것이라고 되어 있다. 오랫동안 아들을 갖지 못한 여자가 하나님에 의해 아들을 낳았을 때 그 기쁨은 한결같다. 구약에서는 그 외에 사무엘을 낳은 한나, 신약에서는 세례 요한을 낳은 엘리사벳이 그 대표라고 말할 수 있다.

 

모두가 놀라고, 그리고 함께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라가 이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삭이 젖을 떼고 나서였다. 유대의 규례에는 생후 24개월째에 젖을 떼게 한다고 한다. 218절에는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사람이 젖을 떼는 것은 그 가족에게 있어서 매우 다행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젖을 뗀 후에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사라는 목격했다. 여기서의 "희롱하는지라"라고 번역된 말은, "웃는다(이짜하-יִצְחַק)"의 분사(分詞), 더구나 강의형(強意形)이다. 악의를 가진 '희롱하는 쪽'으로 사라는 불온한 분위기를 읽었다고 할 수 있다.

 

2. 하갈과 이스마엘과의 결별

 

이 사실을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알려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남편에게 부탁한다. 남편에게 "내쫓아라"고 사라가 명령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 '쫓아내다'라고 하는 동사에 강의형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삭을 "희롱한"것에 대해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는다"라고 하는, 양쪽의 동사 모두 강의형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양자의 알력이 강했던 것을 보여준다.

 

남편 아브라함은 모두 자기 자식이라 무척 괴로워하지만, 16장의 때와 달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나타나서 사라의 말을 잘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게다가 '이삭에서 나온 자가 너의 후손이라고 불린다'는 것과 이스마엘의 후손도 '하나의 국민으로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은 '이튿날 아침 일찍'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보냈다. 보내진 두 사람은 "바란 광야에 거했다"(21:21)고 한다.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을 위해 애굽의 여인을 아내를 맞이했다. 그렇게 하여 아브라함의 두 아들은 여기서 부터 확연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참고로, 바울은 갈라디아 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비유로 사용하면서, 복음과 율법, 시내 산과 예루살렘, 육체와 성령, 노예와 자유라는 것을 언급했다. 그리고 우리들, 즉 그리스도에게 있는 자는 노예인 여자(하갈)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하는 여자(사라)의 자녀라고 선언하고 있다(갈라디아 4:21).

 

아브라함도 사라도 아이가 태어난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마음속에 '웃음'을 가졌다. '웃음'은 의문의 웃음이다. 그러나 여기 21장 사라의 웃음은 인생 최대의 기쁨을 나타내는 웃음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웃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기쁨을 나눌 수 없는 '놀리거나 조롱하거나 경멸하거나 바보 취급한다'는 의미의 악의를 담은 '웃음'도 있다.

다양한 의미의 '웃음'(יִצְחַק)을 사람들에게 준 것은 '이삭'('이짜하-'יִצְחָק)이라는 약속의아이의 존재였다.

 

3. 브엘세바(지명)의 발상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이 있다. ''이나 '브엘세바' 모두 지명으로 이 문구로 '북에서 남까지의 전역'을 뜻한다. 이번에는, "브엘세바"라고 하는 지명이 붙여진 배경이 된 사건이 22-34절에 기록되어 있다.

 

빵과 물의 가죽주머니가 주어져 집에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은 '브엘세바'의 황야를 떠돌아다녔다고 한다(14). 이윽고 가죽주머니의 물이 다하여 절망의 구렁에 빠졌을 때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열어 주시니, 하갈은 우물을 찾을 수 있었고, 하갈과 소년인 이스마엘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브엘세바'라는 이름의 유래가 뒷이야기에 나온다.

 

'브엘세바'('베에-르 샤-בְאֵל שָׁבַע)'일곱 개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우물이 있는 곳에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자신이나 친척들에게도 속이거나 배신하지 않고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하나님에게 맹세해 주기를 바라며,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맹세한다. 그 때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부하들이 자신이 판 우물을 빼앗은 것을 책망한다. 우물의 주인이 아브라함이라는 증거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양과 소 떼를 주고, 또 양의 다른 무리로부터 일곱 마리의 암컷 어린 양을 따로 아비멜렉에게 받게 했다. 우물이 아브라함의 소유라는 것을 그 증거로 일곱 마리의 암컷 어린 양을 보내어 그 자리를 '우물'(브엘)'일곱 마리'(세바)'브엘세바'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21:31).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자리에 한 그루의 에셀나무(버드나무)를 심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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