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仲介) 상의 시작

창세기 19

샬롬선교회


창세기 19장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의한 파멸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일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29절에 있는 기술이다.

 

[창세기 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1.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여기서 성경이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라는 것이다. , '중개(仲介사상의 시작'이 여기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상은 지금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서 전개해 나갈 테마이다. 롯과 그 가족들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더욱 두드러진다.

사실, 아브라함은 18장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에 의해 멸망당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여호와 앞에 서서 거기에 살고 있는 롯과 그 가족을 위해 중재를 한다. 그 일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시고, 롯과 그 가족을 구해 내셨다는 것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물었는지, 그것을 기록하고 있는 구절이 두 군데 있다.

 

(1) 여호와는 망설이는 롯을 불쌍히 여겨 성에서 끌고 나왔다.

 

19:16을 보면, 롯은 두 천사들에게 소돔 성이 멸망하게 되니 거기서 피하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롯은 왜 그런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서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다. 여기서 '자비'라고 번역된 명사 '해믈러- (חֶמְלָה)는 구약에서 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는 어휘이다. 다른 하나는 이사야 63:9에 있다. 동사는 '-' (חָמַל)이다.

 

(2) 여호와는 롯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여호와는 롯에게 산으로 도망가라고 지시했지만 롯은 작은 성읍으로 도망치게 해달라고 탄원한다(20). 결국, 여호와는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것은 아브라함 때문이다.

 

이상의 (1)(2)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고 계셨다'는 것의 구체적인 사실을 언급했다. 이 일을 아브라함이 알려주셨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18장의 아브라함의 중개를 사실상 하나님이 들은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그 기도를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큰 격려를 준다.

 

2. 철저한 멸망을 피한 롯

 

[창세기 19:29]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שָחַת)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הָפַך)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הֲפֵכָ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참고로, 19장에는 '멸망시키다'라고 번역된 '-퍼프'(חָפַךְ)3번 나오는데(21,25,29) 이 동사는 본래 '뒤집다'라는 의미인데 명사는 '파괴, 전복'으로 번역되는 '하퍼--'(הֲפֵכָה19:291회에 한함). 또한 마찬가지로 '멸망시키다'라는 뜻의 동사 '-'(שָׁחַת)19장에서는 4(13,13,14,29)이나 사용되고 있다. -핫은 노아의 홍수 때 처음 사용하는 동사이다. 멸종에 관한 두 용어가 소돔과 고모라의 멸에 관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그 성의 존재가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지워진 사건이었다. 그 증거로 29절에 나와 있는 '-'('שָׁחַת)은 강의형이다. 그야말로 철저한 멸망의 무서움을 강하게 전하고 있다. 거기에서 롯이 구출된 것은 아브라함의 중개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하고 싶다.

 

3. 롯의 그 후손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구출된 것은 결국 롯과 두 딸 등 세 명뿐이었다. 그들은 작은 성에서 나와 산에서 살았다. 두 딸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자손을 남기려 한다. 언니는 아들을 낳아 '모압'이라고 이름 짓고 '모압'의 조상이 되었다. 여동생도 아들을 낳아 '벤 암미'라고 이름 짓고 '암몬'의 조상이 되었다. 롯에게는 적어도 4명 이상의 딸들이 있었던 것 같으나, 아들은 없었던 것 같다.

훗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가려고 요단강의 동쪽을 행진하는데, 그 때 하나님은 모압인과 암몬인을 적대하여 싸움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세를 통해 백성에게 명한다. 왜냐하면 그곳은 롯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소유지이기 때문이었다(신명기 2:9,19).

 

마지막으로

 

아브라함과 롯의 친척관계는 여기서 '완전히 끊겼다(명확한 이별)'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분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아브라함은 13장에서 조카 롯과 갈라지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롯은 아니나 다를까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보고 온 땅에 물이 넉넉한 곳을 골랐다. 만약 그가 그곳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복잡한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은, 아브라함의 마음에 의해 한층,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걷는다'는 것,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로서 걷는다'는 것을 명심하게 한 사건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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