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 - 제권 교회론 - 요약

권의 전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구원사업과 구약과 신약의 말씀이 어떻게 성령에 의하여 교회라고 하는 은혜의 수단을 통하여 우리에게 매개될 수 있나를 다룬다. 말씀설교, 세례, 성만찬 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매개시키는 수단인 바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사귐에 초대하며 이 사귐 안에 머물러 있게 한다.

  

참 교회 :

우리는 모든 믿는 자들이 어머니인 이 참 교회와 하나되어야 한다.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불가시적 교회가 아니라 가시적 교회이다. 사도신경이 말하는 우리는 교회를 믿는다라고 하는 구절은 가시적 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피택자를 포함하는 바 이미 세상을 떠난 모든 피택자를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도들을 순간적으로 완전하게 하실 수도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교회의 교육하에 성숙해 가도록정하셨으니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들의 복음설교요 교사들의 말씀에 대한 가르침이다. 구원의 능력은 하나님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능력을 복음설교자의 복음설교를 통하여 전개하신다.

 

가시적 교회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설교되고 있고 순수하게 경청되고 있으며 성례전들이 그리스도의 의도대로 베풀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곳마다 거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교회가 현존한다. 교회가 거룩하다는 뜻은 매일매일 전진하면서도 아직 완전하지 못하며 매일매일 전진하여도 그 거룩함의 목표에 아직 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은 죄의 용서를 믿는다고 하였다. 죄의 용서없이 교회의 거룩성이라는 이상만을 향하여 치닫을 때 교회는 분열되고 말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은 주님의 예언자들에 의하여 비판받았던 유대인들의 맹목성, 불경건, 우상숭배를 자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교회를 통치하시고 그의 말씀만으로 그의 권위를 행사하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직접 우리의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목회활동을 사용하신다. 여기에서 사역이란 넓은 의미의 말씀사역 혹은 말씀봉사이지 결코 설교직 하나로 집중된 것이 아니다. 칼빈은 목사직은 사도직의 기능을 물려받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교사직이란 치리와 성례집행, 그리고 권면과 경고의 책임을 맡는 것이 아니라 성경해석의 책임만을 맡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목사의 직책은 이 모든 기능을 전부 포함한다고 한다.

 

칼빈은 가능한 한 교직제도를 신약성경에 근거시키고 있다. 칼빈이 제시한 교직체제는 귀족주의적 민주주의이다. 칼빈은 각 목사가 하나님의 존전에서 의식하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소명과 믿는 자들이 어떤 평신도의 자질과 자격을 보아 부르는 외적인 소명을 말한다.

 

누가 교역자를 선출하는가? 칼빈은 교회가 교역자를 투표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성경귀절에 근거하고 그의 예정신학 및 성화론에 부합하는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폭군적인 교황주의는 고대교회의 교직 체제를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칼빈은 교회의 왕권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에 관하여 논한다. 베드로와 그의 후계자들인 교황에게 왕권이 부여되지 않았다. 칼빈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교회의 머리되신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는 베드로와 교황들에게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가 세우신 사도들, 목사들, 전도자들, 교사들과 함께 하신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 결정권 :

이 권한에 의하여 교회는 그동안 모든 교리의 순수성을 얼마나 타락시켰던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선생님이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우리는 청종해야 한다. 교황의 모든 교리전통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진리와 비교될 수도 없다.

 

칼빈은 성령과 말씀의 긴밀한 관계를 말한다. 칼빈은 신랑되신 그리스도와 신부된 교회의 살아있는 연합을 말하며 선생이신 그리스도와 제자인 교회의 생명적 관계를 말하였다.

칼빈은 교리문제 혹은 성경해석의문제로 교회가 싸울 때 노회나 총회 차원에서 결정하되 말씀과 성령을 따라 그렇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교황은 그를 지지하는 감독들과 더불어 법을 제정하는 권한을 가졌는데 이로 말미암아 뭇 영혼들이 야비한 폭정과 유린 하에 억눌리고 신음하고 있다. 양심을 교회의 법이나 그 어떤 전통도 속박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칼빈의 주장이다. 결국 교황이나 감독들은 양심을 속박하는 그 어떤 법도 제정할 권한을 소유할 수 없다.

 

교회의 전 영적인 법적권한이란 도덕에 관한 치리를 포함하는데 이것은 국가의 법적 권한이나 법적용 권한과는 달리 영적 통치를 위한 질서이다. 칼빈은 교회의 권한은 전적으로 영적인 것으로 특징지우면서 국가가 지닌 칼의 권한과 구별한다. 그리고 교회의 치리는 한 사람의 결정을 따라 이루어지지 않고 합법적인 회중의 결정을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칼빈은 한 가정이나 사회가 살아가는데도 치리가 반드시 필요한데 교회가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더욱 이 치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 치리제도란 말의 굴레와 같아서 그리스도의 교리를 반대하는 자들을 어거하고 길들이며, “아버지의 회초리같아서 마음이 내키지 않는 사람들을 일깨우고, 타락한 사람들을 부드러운 그리스도의 영으로 벌을 준다.

 

금식의 성격에 관하여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전 생애는 금식과 유사한 검소함과 깨어있음으로 일관되어야 한다고 한다.

 

서원 : 누구든지 무모하게 서원하면 비참한 자승자박에 말려든다. 금주, 금식,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어느 특정 날을 지키는 것, 성지순례 행위 등을 위한 서원이 그 자체로서 거룩하거나 예배에 해당하는 그 무엇으로 우상화되어서는 안된다.

 

칼빈은 신약성경에 준하여 수도사와 수녀 등의 직분을 비판한다. 신약성경과 고대교회에 나타나는 성직자들에 비교하면 저들은 형편없다.

 

칼빈은 로마 카톨릭과는 달리 성례전에 참여하기 전에 무엇보다 설교를 통해서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칼빈은 설교를 들을 때에 비로소 보이는 표적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고 하였고, “약속 혹은 복음이 먼저 선행하지 않는 성례는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성례란 복음 혹은 약속 그 자체를 감각에 호소하면서 확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성례란 언약의 표증이어서, 하나님의 복음말씀의 신빙성을 더 분명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성례전은 스스로 믿음을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전달자로서 말씀과 연합하여 믿음을 확증한다고 한다. 주님께서 설교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이 말씀을 성례전으로 확인하실 때, 성령께서 조명하셔야만 이 말씀과 성례전에 대하여 마음의 문이 열린다. 믿는 자가 이 성례전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를 더욱 풍성히 받아야 신앙이 더욱 성장하고 순종이 더욱 철저해진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세례와 성만찬을 뜻한다. 구약의 성례들은 전혀 실상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후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되신 것이다.

 

칼빈은 세례란 깨끗이 씻음 받았다는 사실을 확증하고 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접붙여 지는 것을 확증하고 표시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모든 축복을 나누어 가짐을 확증하고 표시한다.” 세례는 이미 일어난 신앙을 확인하는 것이다. 유아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셨고 표시와 일치한다. 칼빈은 선택교리를 유아세례에 관계시킨다. 구원받을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중생시키신다.

 

성만찬의 중심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떡과 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듯, 그리고 손으로 만져지듯 제시된다. 떡과 즙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것은 믿는 자의 영혼에 영적 음식과 영적 음료가 된다.

 

교황주의 교회의 미사 :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만찬을 속되게 할뿐만 아니라 형편없는 것으로 만든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사용하는 5개의 성례 : 이것을 성례라 함은 성경적이 아니다.

 

칼빈은 인간은 이중적인 정부하에서 산다고 한다. 칼빈은 정부형태에 관하여 귀족주의가 가미된 민주주의가 가장 좋다고 한다. 칼빈은 국가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종교생활을 보장하고 돌보아 주는 종교 의무를 수행해야 하며, 나아가서 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

 

칼빈의 귀족주의적 민주주의 체제는 신학적 및 신앙적 차원의 것으로서 그의 교회질서와 제네바의 정치질서에까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