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과 성경


법화경의 세 가지 주요 사상은 왜 이렇게도 성경을 닮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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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蓮。 니치렌. 彼は法華経に帰依(きえ)することを広めた 그는 법화경에 귀의 (사라져)하는 것을 넓힌


法華経=日本仏教のバイブル

 법화경 = 일본 불교의 바이블

法華経(ほけきょう)は、いわば日本仏教におけるバイブルのようなものとして、古くから宗派の別なく、仏教徒の間で読まれてきた経典です。 법화경 (법화경)는 이른바 일본 불교의 성경의 일종으로 오래전부터 교단의 구별없이, 불교도 사이에서 읽어 온 경전입니다.
法華経は、日本でははじめ、叡山(比叡山の略称)の天台宗において研究されました。 법화경은 일본에서 시작해 叡 山? (히에이의 약어)의 천태종에서 연구되었다. 法然、親鸞、道元、日蓮など鎌倉新仏教の祖師とされる人々も、一度は叡山の学僧となりましたから、彼らはみな法華経にふれています 然, 신란,道元니치렌 등 가마쿠라 신 불교의 소시로하는 사람들도 한번叡山?의 학승이 있었 으니까, 그들은 모두 법화경에 접해 있습니다.
彼らのうち、とくに道元と日蓮は、最後まで法華経と深い関係を持ちました。 이들 중 특히 道元과 니치렌은 끝까지 법화경과 깊은 관계를 가졌습니다.
道元の著した『正法眼蔵』 (しょうぼうげんぞう)には、法華経の言葉が数多く引用されています。道元의 쓴 「긍정적法眼창고」(소방源蔵)는 법화경의 말이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また彼は、病重きを悟ったとき、法華経の詩句を口に唱えながら、死に対する心の準備をしたといいます。 또한 그는 병 무게를 깨달은 때 법화경의 시구를 입에 외우면서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했다고합니다.
一方、 日蓮は、法華経をシャカの唯一の真の教えとし、「南無妙法蓮華経」の題目を説き、法華経信仰を広めました。 한편, 니치렌은 법화경을 샤카의 유일한 진정한 가르침 며 "南無妙法蓮華経"의 제목을 설득 법화경 신앙을 전파했습니다. 彼はまた、自分を「法華経の行者(ぎょうじゃ) 」と呼び、苦難の中でも法華経信仰に生きました。 그는 또한 자신을 「법화경의 행자 (行者) '라고 고난 속에서도 법화경 신앙에 살았습니다.
法華経は、仏教の発祥地インドでは、ほとんど見向きもされなかった経典です。 법화경은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는 거의 거들떠도되지 않았다 경전입니다. しかし、大乗仏教の伝わった中国や日本では、非常に重要視される経典となりました。 그러나 대승 불교가 전해진 중국과 일본에서는 매우 중요시되는 경전되었습니다.
今日、中国の大乗仏教はほとんど消滅状態にあるので、日本は、法華経が今なお篤く信奉されているほとんど唯一の国です。 오늘 중국의 대승 불교는 거의 소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일본 법화경이 지금도 독실 신봉되고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天台宗では、法華経を"第一の"経典とし、日蓮宗では、法華経をシャカの"唯一の"真の教えとしました。 천태종에서는 법화경을 "첫째"경전으로, 니치렌 종에서는 법화경을 샤카의 "유일한"진정한 가르침했습니다. こうした宗派では、法華経は絶対的な権威を持った経典なのです。 이러한 교단에서 법화경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경전입니다.
近代の仏教系新興宗教の中にも、法華経を信奉するものが、数多く現われました。 현대 불교계 신흥 종교 안에도 법화경을 신봉하는 것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霊友会」「立正佼成会」は法華経信奉団体ですし、「アメニモマケズ」の宮澤賢治も法華経信者でした。 "霊友会" "입 정교 성회 '는 법화경 신봉 단체이며,"아메니모마케즈 "의 미야자와 켄지도 법화경 신자였습니다.
彼らの"法華経信仰"すなわち"一書に対する信仰"は、ある意味では、クリスチャンの"聖書信仰"にも比べられるものです。 그들의 "법화경 신앙"즉 "한 설명서에 대한 믿음"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성경 신앙"에 비교당하는 것입니다. クリスチャンが聖書のみを信仰の拠り所とするように、日蓮・法華信奉者においては、法華経のみが信仰の拠り所とされているのです。 기독교인이 성경만을 신앙의 근거가되도록 니치렌 · 법화 추종자에서는 법화경 만이 믿음의 근거가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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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蓮臨終の時、枕頭にかか げられたとされる大曼陀羅。

니치렌 임종 때 枕頭 서면있게되었다고하는 대 만다라.


法華経は一~二世紀に記された

법화경은 1~2 세기에 기록되었다.

法華経の現代語訳は、岩波文庫に収録されているものを見ると、上中下の三巻となっています。 법화경의 현대어 번역은 이와 나미 문고에수록되어있는 것을 보면 상중하 세 권으로되어 있습니다. しかし、その半分のページは漢訳と文語訳に占められ、また注も多いので、本文の現代語訳そのものは文庫本一冊程度の分量です。 그러나 그 절반 페이지는 한역와 문어 역에 점유되고 또한 참고도 많기 때문에, 본문의 현대어 번역 자체는 단행본 한 권 정도의 분량입니다.
それはちょうど、マタイ・マルコ・ルカの三福音書を合わせた程度の分量に匹敵します。 그냥 마태 · 마가 · 누가의 세 복음서를 합한 정도의 분량에 필적합니다. ですから、それほどの量ではなく、読もうと思えば誰でもすぐに読み通せるでしょう。 따라서 그만큼의 양이 아니라 읽으려고하면 누구나 바로 읽기 통할 것입니다.
法華経は、いつ頃記された経典なのでしょうか。 법화경은 언제쯤 기록 된 성경적인 것입니까. 学者によると、 西暦一~二世紀にかけて記されたとされています。 학자에 따르면, 서기 1~2 세기에 걸쳐 기록 된 것으로되어 있습니다. 立正大学の田村芳朗教授は、こう述べています。 릿쇼 대학의 타무라 芳朗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方便品第二から授学無学人記品第九までを第一類とし、 西暦五〇年頃の成立と見なし、法師品第一〇から囑累品第二一までと序品第一とを第二類とし、 西暦一〇〇年頃の成立と見なし、薬王菩薩本事品第二二から普賢菩薩勧発品第二七までを第三類とし、西暦一五〇年頃の成立と見なす」。 「방편 품 제에서授学무식한 사람記제품 아홉째까지 제일 류로 서기 쉰 년경의 성립으로 간주하고 법사 품 제 10에서囑累품 제 한까지와 서품 첫째로 제 2 류로, 서기 〇〇 년경의 성립으로 간주하고薬王보살이 사건 품 둘째 두에서 보현勧発품 둘째 일곱까지 세 종류로, 서기 쉰 년경의 성립으로 간주 "
法華経は、 西暦五〇年~一五〇年頃に記された、とされているのです。 법화경은 서기 오십 년 ~ 한 오십 년경에 기록됐다고되는 것입니다. それまで口伝で伝えられていたものを、経典としてまとめた、というわけです。 그때까지 구전으로 전해지고 것을 경전으로 정리했다는 것입니다.
シャカが在世した時代は紀元前六世紀ですから、法華経はシャカの死後、じつに約六〇〇年もたって記されたことになります。 샤카가 생전 한 시대는 기원전 여섯 세기 때문에 법화경은 샤카의 사후 실로 약 1600 년이 채 기록 된 것입니다.
実際、現代の学者がインド原典について調べた結果、法華経の原典に出てくる単語はシャカの時代のものではなく、ずっと後世のものであることもわかっています。 실제로 현대의 학자들이 인도 원전에 대해 조사한 결과, 법화경의 원전에 나오는 단어는 샤카 시대의 것이 아니라, 계속 후대의 것임도 알고 있습니다.
これはちょうど、二〇世紀に生きる人が、一四世紀の人物・・たとえば後醍醐天皇の伝記を書くようなものです。 이것은 다만, 20 세기에 사는 사람이 한 4 세기의 인물 .. 예를 들어 고다이고 천황의 전기를 쓰는 것과 같다. そんなに昔の人物に関して、正確なことを書くことがいかに困難であるかは、ちょっと想像してみただけでもわかるでしょう。 그렇게 옛날의 인물에 대해 정확한 것을 쓰는 것이 얼마나 곤란한가?는 조금 상상 만해도 알 수 있습니다.
これに対し聖書・・たとえば新約聖書は、イエス・キリストの在世された時代である西暦一世紀の間に記されました。 이에 대해 성경 .. 예를 들어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전 된 시대이다 서기 세기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とくに新約聖書の福音書は、イエス・キリストの直弟子たちによって記されたものです。 특히 신약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직제들에 의해 기록 된 것입니다.
イエス・キリストと寝食を共にした弟子たちが、自分の見聞きしたありのままを記しました。 예수 그리스도와 숙식을 함께 한 제자들이 자신의 견문 한 그대로를 썼습니다. 新約聖書の書簡も、キリストの直弟子や、キリストから直接啓示を受けた者(使徒パウロ)によって記されました。 신약의 서한도 그리스도의 직제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계시를받은 자 (사도 바울)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このように新約聖書は、キリストの在世された西暦一世紀の間に、キリストを実際によく知っていた人々によって記されたのです。 이처럼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의 생전 된 서기 세기 동안 그리스도를 실제로 잘 알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기록 된 것입니다. これは、 シャカの死後六〇〇年もたって後世の人々が記した法華経とは、著しい対照をなしています。 이것은 샤카의 사후 1600 년이 채 후세 사람들이 쓴 법화경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法華経はシャカの直説ではない

법화경은 샤카의 직설적이 아니다.

ここで、六〇〇年も後に記された法華経が、本当にシャカの言説そのままなのか、という疑問が当然わいてきます。 여기에서 1600 년 이후에 기록 된 법화경이 정말 샤카의 담론 그대로인가하는 의문이 당연히 솟았습니다. これについて、田村教授(仏教徒)はこう述べています。 이에 대해 타무라 교수 (불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キリスト教ではバイブル一冊なのに、なぜ仏教では、いくつもの経典ができあがったのか。・・・・合理的な批判精神の発達した現代人なら、すぐ察しがつくように、経典の多くは、 シャカなきあと、長期にわたって仏教徒が作りあげていったものだろう、ということである。 "기독교는 성경 한 권인데, 왜 불교에서는 몇 개의 성전이 완성 된 지 ···· 합리적인 비판 정신 발달 한 현대인이라면 바로 짐작이 붙는 것처럼, 성경의 많은 샤카 사후 장기에 걸쳐 불교가 조성 갔다 것일까,라는 것이다.
経典を読めば、現実とかけはなれた空想的な事柄やフィクションでいっぱいなことを知るので、『法華経』とても例外ではない。 경전을 읽으면 현실과 동 떨어져 공상적인 일이나 허구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법화경"아주 예외는 아니다. これだけでも、後世の産物であることがわかる。 이것만으로도 후대의 산물임을 알 수있다.
では、仏教徒が勝手に作り上げたと一見してわかるものを、どうしてシャカの言説としたのだろうか。 는 불교가 마음대로 만들어 냈다고 눈에 알 수있는 것을 왜 샤카의 담론으로 한 것일까. 悟りを開いてブッダ(仏陀)となったシャカの名を語るわけであるから、あつかましいと言えば、これほどあつかましいことはない。 깨달음을 열고 부처님 (불상)이 된 샤카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뻔뻔스러운라고 말하면, 이렇게 뻔뻔스러운 것은 없다.
この点については、いろいろと理由が考えられているが、その一つとして、インド人は歴史というものに関心が薄かったからだとされる。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하나로서 인도 사람은 역사라는 것에 관심이 적었다 때문이라고한다. ・・・・」 ····」
当時のインド人は、現代の欧米人や日本人とは違い、歴史を正確に保存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意識が、きわめて希薄でした。 당시 인도 사람은 현대의 서양인과 일본인과는 달리 역사를 정확하게 저장해야한다는 의식이 매우 희박했다. 実際、インドには歴史書がないと言われます。 실제로 인도에는 역사서가 없다고합니다.
インド人は、自分の新しい考えを述べようとするとき、著者を自分とはせず、あたかも過去の偉大な人物が語ったかのように記すのが、常でした。 인도 사람은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야기하자로 할 때, 저자 자신은하지 않고, 마치 과거의 위대한 인물이 말했다 것처럼 쓰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今日で言えば歴史の歪曲にあたりますが、当時のインド人の間ではそうしたことは日常的であり、とくに責められることもなかったのです。 오늘로 말하면 역사 왜곡에 해당하지만 당시의 인도인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것은 일상적이며, 특히 거리낌도 없었습니다.
こうして、後世の仏教徒の作である法華経も、シャカが語った言説とされました。 이렇게 후세의 불교 작품 인 법화경도 샤카가 말했다 담론과되었습니다. 田村教授は言っています。 타무라 교수는 말하고 있습니다.
「インドの仏教徒たちは、シャカについていえば、その歴史的な事実に興味はなく、ひいては後世の作である経典を、シャカの言葉や教説としてはばからなかった 」。 "인도의 불교도들은 샤카 대해 말하면, 그 역사적 사실에 관심 아니라 나아가 후세의 작품 인 성경을 샤카의 말이나 교리로 서슴지 않았다."
仏教の経典には数多くのものがあり、それらはどれもシャカの語った言説という形をとっていますが、互いに教えが矛盾しています。 불교 경전에는 많은 것이 있고, 그들은 아무도 샤카가 말했다 담론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서로 가르침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本当にシャカが語ったものなら、どれも同じ教えのはずなのに、経典ごとに教えが違っているのです。 정말 샤카가 말했다 것이라면 모두 같은 가르침 것인데, 성경에 대해 가르침이 다른 것입니다.
これは大乗仏典というものが、じつはシャカの説いた直説ではなく、後世の仏教徒の作であるからなのです。 이것은 대승 불전이라는 것이 실은 샤카가 말한 직설적이 아니라 후세의 불교 작품이다 때문입니다.
こうした事情は、キリスト教ではどうでしょうか。 이러한 사정은 기독교에서는 어떨까요.
キリスト教では、六六巻から成る聖書が「正典」とされています。 기독교에서는 66 권으로 구성된 성경이 "정경"라고되어 있습니다. しかし、じつはこれ以外にも、「外典」「偽典」と呼ばれる書物が存在しています。 그러나 사실은이 밖에도 '외전' '위경'라는 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たとえば私たちの聖書には、マタイ・マルコ・ルカ・ヨハネの四つの福音書が収録されていますが、じつはこれ以外にも、聖書中に収録されなかった『ナザレ人福音書』(二世紀)、『エビオン派福音書』(二世紀)、『ヘブル人福音書』(二世紀)、『エジプト人福音書』(二世紀)、『ペテロ福音書』(二世紀)、『トマス福音書』(二世紀)、その他の『福音書』が存在しています。 예를 들어 우리 성경에는 마태 · 마가 · 누가 · 요한 사복음서가수록되어 있습니다 만, 실은이 외에도 성서에수록되지 않은 「나사렛 복음 "(2 세기)" 에비온 파 복음 "(2 세기)"히브리인 복음 "(2 세기)"이집트인 복음 "(2 세기),"베드로 복음 "(2 세기), '토마스 복음서'(2 세기), 기타" 복음 '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けれども、これらはみな、キリストを直接知らない後世の人々が記したものなので、キリスト教会はこれらの書物をみな、聖書正典から除外しました。 그러나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직접 모르는 후세의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므로, 그리스도 교회는이 책을 다 성경 정경에서 제외했습니다. これらは神の霊感を受けていない、としたのです。 이들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않았다고 한 것입니다.
もしキリスト教会が、これらの書物も『聖書』正典としていたら、キリスト教の教えは仏教界と同様に混乱したものとなったでしょう。 만약 교회가이 책을 "성경"정경하고 있다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불교계뿐만 아니라 혼란 한 것으로 되었 겠지요. しかしキリスト教では、信頼に値しないものは、正典に入れなかったのです。 그러나 기독교는 신뢰 가치가없는 것은 정경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また反対に、もし仏教界が、キリスト教会のとったような取捨選択を行なっていたら、仏教界の混乱は避けられたかもしれません。 또한 반대로, 만약 불교계가 그리스도 교회 취한 같은 취사 선택을하고 있으면, 불교계의 혼란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しかし、シャカ自身の記したものや、シャカの直弟子たちの記したものは何も残っていないので、それもできなかったのでしょう。 그러나 샤카 자신의 쓴 것이나, 샤카의 직제들의 기록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도하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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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リストは久遠実成(くおんじつじょう) 그리스도는 구원実成(구원 실정)
の救い主であるホフマン画 구주 인 호프만 화면


自画自賛の法華経

자화 자찬의 법화경

つぎに、法華経の内容について見てみましょう。 다음 법화경의 내용을 살펴 보자.
法華経には随所に、法華経自体に対する賛辞の言葉が記されています。 법화경에는 곳곳에 법화경 자체에 대한 찬사의 말이 적혀 있습니다. たとえば、 예를 들어,
「私(シャカ)の滅後(死後)、この経を信じ、他者のために生き、努力するなどの行ないをする者は、その功徳は大空が地をおおうほどのものである」 "나는 (샤카)의 滅後 (사후)이 경을 믿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 노력하는 등의 행위를하는자는 그 공덕은 하늘이 땅을 덮는 정도의 것이다"
「人々の中にあって、もし法華経を信じ、あるいは読み、唱え、説き弘め、書写する者があれば、その眼、清浄にして八〇〇〇のすぐれた能力を獲得するであろう。その者は、全世界の何であれ、くまなく見ることができる。下は地獄から、上は神々の世界に至るまで、そのなかの一人一人の様子をも明らかに見る眼を持つであろう」。 "사람들 속에 있고, 만약 법화경을 믿고, 혹은 읽고 주장, 설득 가중시키고, 필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눈 깨끗이하고 여덟 3000의 뛰어난 능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세상의 무엇이든 빠짐없이 볼 수있다. 아래는 지옥에서 정상은 신들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 중 한사람 한사람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는 눈을 가질 것이다 " .
これらはほんの一部ですが、法華経自体が、法華経を信じる者に説いている功徳の例です。 이들은 단지이지만, 법화경 자체가 법화경을 믿는 자들에게 말하고있다 공덕의 예입니다. 法華経は、こうした自画自賛に満ちているのです。 법화경은 이러한 자화 자찬으로 가득 차있는 것입니다. 『日蓮の本』(学研)と題する解説書には、こう記されています。 "니치렌의 책」(학연)이라는 해설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法華経には、常識的な考えではとんでもないような空想的な話が、次から次へと出てくる。それよりも不思議なのは、 法華経というありがたい経典があると、法華経の中で説かれていること。遠い昔から多くの仏が説いてきた究極の経典が法華経であり、信じる者には無限の恩恵が与えられると、繰り返し語られている。 "법화경은 상식적인 생각은 터무니없는 같은 공상적인 이야기가 다음에서 다음으로 나온다. 그것보다 이상한 것은 법화경라는 고마운 성전이 있으면, 법화경에서説か되어 있는 것. 먼 옛날부터 많은 부처님이 설파해온 최고의 경전이 법화경이며, 믿는 자에게는 무한한 혜택이 주어지면, 반복 말해지고있다.
しかし、そのありがたい法華経自身の中身は何かとなると、まったく語られていない。 그러나 그 고마운 법화경 자신의 내용은 무엇인가되면 전혀 얘기하지 않습니다. こういうのを自画自賛というのかも知れないが、法華経が法華経をほめちぎった経典が、いわゆる法華経という変なことになっているのである」。 이런 것을 자화 자찬하는지도 모르지만, 법화경이 법화경을 미쳐 경전이 소위 법화경라는 이상한 것이되고있는 것이다. "
法華経の内容は、大部分が自画自賛で、肝心の中身はほとんどない、と感じた人々は昔から多くいました。 법화경의 내용은 대부분이 자화 자찬으로, 중요한 내용은 거의 없다고 느낀 사람들은 옛날부터 많이있었습니다. これがいわゆる「 法華経=無内容説 」で、かつてそれを説いた一人に、平田篤胤( ひらたあつたね神道家、一九世紀)がいます。 이것이 이른바 「법화경 = 무 내용 설 '로 한때 그것을 말한 혼자 히라 타篤胤(히라 타篤胤 신도들, 19 세기)가 있습니다.
彼は、法華経は"中身のない能書き"だと評しました。 그는 법화경은 "내용없는 자기 선전"이라고 평했다. 富永仲基(儒学者、一八世紀)も、 토미 仲基 (유학자 한 18 세기)도
「法華経は自画自賛ばかりで、教理らしきものがなく、経と名づけるに値しない」 "법화경은 자화 자찬뿐만 교리 같은 것이없이 거쳐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어"
と言っています。 고 있습니다. 現代の仏教学者の中にも、法華経には理論というものがない、と評する人が少なくありません。 현대의 불교 학자 중에도 법화경은 이론이라는 것이 없다고 평한다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田村教授も次のように述べています。 타무라 교수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法華経にざっと目を通してみると、効能書きのみで内容がない、との感を受ける。前半では教説らしきものが見えるが、分析的でなく、精密な理論の展開は存せず、後半になると、盛んに法華経を信奉することの功徳が説かれてくる。 「법화경에 대충 훑어 보면 효능 기호만으로 내용이 없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상반기에는 교리 같은 것이 보이지만, 분석적이고 아니라 정밀한 이론의 전개는 존재하지 않고 후반에 되면 왕성 법화경을 신봉하는 공덕이 説か 온다.
極端な言い方をすれば、法華経とは法華経の賛嘆でしか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극단적 인 말하면 법화경은 법화경의 찬탄 밖에 없다는 것이다. 法華経とは何か、ということは語られていない」。 법화경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은 말해지고 있지 않다. "
たしかに法華経は、教理を説いた所が非常にわずかです。 분명히 법화경은 교리를 전파 한 곳이 매우 적습니다. しかし、全くないわけではなく、幾つかの新しい思想も説いています。 그러나 전혀없는 것은 아니고 몇몇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法華経には、 おもに三つの新しい思想があると言われています。 법화경에는 주로 세 가지 새로운 사상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それらは「 一乗妙法 」と呼ばれる万人成仏の思想、「 久遠本仏 」と呼ばれる永遠の救い主の思想、また「 菩薩行道 」と呼ばれる実践論です。 그들은 "이치 조 묘법 '라는 만명 성불의 사상,"구원이 부처 "라는 영원한 구주의 사상, 또한"보살行道 "라는 실천 이론입니다.
「一乗妙法」とは、 すべての人を平等に成仏させることのできる唯一の教えを意味します。 "이치 조 묘법 '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성불시킬 수있는 유일한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一乗」は"ただ一つの乗り物"の意味で、法華経の教えのことです。 "이치 조"는 "단 하나의 놀이기구"의 의미로, 법화경의 가르침입니다.
法華経が記された当時、「声聞」と「縁覚」は仏になれない、という考えが広まりつつありました。 법화경이 기록 된 당시 "声聞 '과'연각"는 부처님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퍼지고있었습니다. しかし、声聞も縁覚も菩薩も、みな平等にただ一つの教えによって成仏することができる・・それが法華経の教えだと、説かれたのです。 그러나 声聞도 연각도 보살도 모두 평등하게 단 하나의 가르침에 의해 성불 할 수있다 .. 그것이 법화경의 가르침이라고 説か 것입니다. それが「一乗妙法」です。 그것이 「이치 조 묘법 '입니다.
つぎに「久遠本仏」とは、 シャカは"永遠の仏"であるという教えです。 다음 "구원이 부처님"은 샤카은 "영원한 불"이라는 가르침입니다. シャカが二九歳で出家し、三五歳の時に悟りに達したというのは仮の姿であった。 샤카가 두 아홉 살에 출가 삼십 오 세에 깨달음에 도달했다는 것은 임시 모습이었다. シャカは実は"久遠の昔"・・永遠の過去にすでに仏になった者なのだ、という思想です。 샤카는 사실 "구원의 옛날".. 영원한 과거에 이미 부처가 된자는 같은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シャカは、過去・現在・未来にかけて、永遠に人々を教化し続けている、とされました。 샤카는 과거 · 현재 · 미래에 걸쳐 영원히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그리고되었습니다. 法華経において人間シャカは、"永遠の仏""永遠の救い主"に昇格させられ、いわば"神格化"されたのです。 법화경에서 인간 샤카은 "영원한 불" "영원한 구주"로 승격 된 이른바 "신격화"된 것입니다.
もう一つの「菩薩行道」は、 法華経を広めることが成仏のための行 (ぎょう)だという教えです。 또 다른 '보살行道"법화경을 넓히는 것이 성불을위한 행 (줄)라는 가르침입니다. 「菩薩」とは仏の候補生のことで、やがては仏になるが、今はそのために修行を積んでいる者のことです。 "보살"이란 부처님의 생도 것으로, 곧 부처님이되지만, 지금은이를 위해 수행을 쌓고있는 사람입니다.
菩薩は、布施(分け与える)、持戒(戒律を守る)、忍辱(迫害に耐える)、精進(実践する)、禅定(心を安定させる)、智恵(真理を知る)という六つの教え(六波羅蜜)を守る必要があります。 보살은 후세 (나눔) 持戒 (계율을 지키는), 마늘 (핍박을 견딜 수), 정진 (실천), 禅定 (마음을 안정시키는), 지혜 (진리를 알)라는 여섯의 가르침 (六波羅蜜)을 준수해야합니다. しかし法華経は、これら六つの教えも推奨するものの、さらにはるかに重要なのが、 그러나 법화경은 그 여섯의 가르침도 추천하지만, 또한 훨씬 더 중요한 것이,
「この経を弘めること」 "이 경을 弘める 것"
だと主張しているのです。 라고 주장하고있는 것입니다. すなわち、法華経の宣布を、菩薩行の最大のものとしたのです。 즉 법화경의 선포를 보살 행의 최대의 것으로 한 것입니다.


法華経の思想と共通するものをすでに聖書が説いていた

법화경의 사상과 공통점을 이미 성경이 말하고 있었다

このように、「一乗妙法」とはすべての人を平等に救うことのできる唯一の教えがあるということであり、「久遠本仏」は永遠の救い主がおられるという教えであり、また「菩薩行道」は人生において伝道が非常に重要であることを説いたものです。 이와 같이, "제곱 묘법 '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구할 수있는 유일한 가르침이 있다는 것이며,"구원이 부처님 "영원한 구주 께서 하신다는 가르침이며, 또한"보살行道 "인생에서 전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このように考えてみると、これら法華経の三大思想は、聖書の教えとの間に明確な共通点を持っていることがわかります。 이렇게 생각해 보면,이 법화경의 세 가지 주요 사상은 성경의 가르침 사이에 명확한 공통점을 가지고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これら法華経の三大思想と本質的に共通するものを、すでに聖書が説いていたのです。 이 법화경의 세 가지 주요 사상과 본질적으로 공통점을 이미 성경이 말하고있었습니다.
まず、"すべての人を平等に救うことのできる唯一の教えがある"ということから見てみましょう。 먼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구할 수있는 유일한 가르침이있다"는 것으로 보아 봅시다.
聖書は、声聞・縁覚・菩薩というように、人々の能力によって教えを変えるようなことが、もとよりありません。 성경은 声聞 · 연각 · 보살과 같이, 사람의 능력에 의해 가르침을 변화시키는 것이 물론 없습니다. すべての人に対して、ただ一つの教えを説き、その教えによってすべての人は平等に救われると説くのです。 모든 사람에게 단 하나의 성역을 그 가르침에 따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구원받는 설교입니다.
その教えとは、神の御子イエス・キリストを自分の救い主と認め、その十字架による罪の贖いを信じ、彼に従っていくことです。 그 가르침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인정하고 그 십자가에 의한 속죄를 믿고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この教えに従うなら、だれでも救われます。 이 가르침을 따른다면 누구나 구원을받습니다.
そこには、声聞・縁覚・菩薩というような別はありません。 거기에는 声聞 · 연각 · 보살이라고하는 다른하지 않습니다. 国籍や、老若男女の別もありません。 국적과 남녀 노소의 다른도 없습니다. 幼児でも、障害者でも、病人でも、ただ一つのこの教えによって救いに入るのです。 유아도 장애인도 병자도 단 하나의이 가르침에 의해 구원에 들어갈 것입니다. 聖書は言っています。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だれでも、キリストのうちにあるなら、その人は新しく造られた者です 。古いものは過ぎ去って、見よ、すべてが新しくなりました」(二コリ五・一七)。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되었습니다."(고후 15 : 열일곱).
聖書は、一乗妙法を説いているのです。 성경은 제곱 묘법을 말하고있는 것입니다.
つぎに、"永遠の救い主がおられる"という教えはどうでしょうか。 그런 다음 "영원한 구세주가 계시는"라는 가르침은 어떨까요. これも、聖書が説いているところです。 이것도 성경이 말하고있는 중입니다.
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は、久遠の昔から永遠の未来まで生きておられるかたです。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영원 미래까지 살아 계신 분입니다. 彼は万物の存在するようになる前から存在し、また永遠の未来まで存在されます。 그는 만물의 존재가되기 전부터 존재하고 또 영원한 미래까지 존재합니다.
「御子は万物よりも先に存在し、万物は御子にあって成り立っています」(コロ一・一七)。 "아들은 만물보다 먼저 존재하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골 1 : 열일곱).
聖書では、永遠の救い主がおられ、その方はイエス・キリストである、と説かれているのです。 성경은 영원한 구주가 계시고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説か되어있는 것입니다.
では、永遠の救い主は聖書でキリストとされ、法華経ではシャカであるとされているのは、なぜでしょうか。 는 영원한 구세주는 성경에서 그리스도 된 법화경에서는 샤카라고되어있는 것은 왜일까요?
先に述べたように、法華経は西暦五〇年以降に記されました。 앞서 언급 한 바와 같이, 법화경은 서기 오십 년 이후에 기록되었습니다. 当時のインドには、すでにキリストの一二弟子の一人トマスが、伝道に入っていました。 당시 인도에는 이미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하나 토마스가 전도에 들어있었습니다.
このことは、NHKの番組「シルクロード」の中でも述べられました。 이 것은 NHK 방송 "실크로드"에서도 언급했습니다. 番組によると、インドのケララ州においては人口のいまだ五分の一がキリスト教徒であり、彼らは自分たちのことを「トマ(トマス)の子」と名乗っているとしています。 방송에 따르면 인도의 케 랄라 주에서 인구 아직도 다섯째가 기독교인이며, 그들은 자신들을 「토마 (토마스)의 아들 "라고 자칭하고 있다고합니다.
トマスが建てたと言われる教会も現存しています。 토마스가 세웠다고 말하는 교회도 현존하고 있습니다. トマスはまた、その後中国へも伝道に行ったとのことです。 토마스는 또한 이후 중국 전도에 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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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ンドの聖トマス教会(チェンナイ=旧マドラス) 인도의 성 토마스 교회 (첸나이 = 구 마드라스).
もともと使徒トマスがこの地に教会をつくった。 원래 사도 토마스가이 땅에 교회를 만들었다.


トマスのキリスト教思想の 仏教的焼き直しが法華経である。 토마스 기독교 사상의 불교 적 재탕이 법화경이다.

この頃のインドは、ローマ帝国との交易も盛んで、キリスト教のイエス・キリストに関する教えは少しずつ入り始めていました。 요즘 인도는 로마 제국과의 교역도 활발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은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こうした事情から、他宗教に対抗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思いを持った仏教徒の中には、 人間シャカを"永遠の救い主"に昇格させ、神格化しようとする者が現われました 이러한 사정에서 다른 종교에 맞서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불교에서 인간 샤카을 "영원한 구주"로 승격시키고 신격화하려고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インドの高名な宗教学者アーマンド・シャー博士によれば、 キリストの使徒トマスの福音に対抗して、シャカを聖人から救い主に昇格させたのが大乗仏教である 、とのことです。 인도의 저명한 종교 학자 아만드 샤 박사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사도 토마스의 복음에 대항하여 샤카 성자 구주로 승격시킨 것이 대승 불교이다,라는 것입니다.
つまり"シャカは永遠の救い主である"という法華経の教えは、"キリストが永遠の救い主である"という聖書の教えの、 仏教的"焼き直し"なのです。 즉 "샤카 영원한 구원자"라는 법화경의 가르침은 "그리스도 께서 영원한 구주"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불교 적 "재탕"입니다.
最後に、"人生において伝道が非常に重要である"という教えはどうでしょうか。 마지막으로, "인생에서 전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가르침은 어떨까요. これも、聖書の教えです。 이것도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イエス・キリストは、昇天される前に弟子たちを集めて言われました。 예수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 말씀하셨습니다.
「わたしは天においても、地においても、いっさいの権威が与えられています。それゆえ、 あなたがたは行って、あらゆる国の人々を弟子としなさい 。そして父・子・聖霊の御名によってバプテスマ(洗礼)を授け、また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命じておいたすべてのことを守るように、彼らを教えなさい」(マタ二八・一八~二〇)。 "나는 하늘과 땅에서도 모든 권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 · 아들 ·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 세례)를 부여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분부 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십시오 "(마 두 8 · 여덟 ~ 스물).
キリストは、 福音宣教を私たちの第一の義務とされました。 그리스도는 복음 선교를 우리의 첫번째 의무되었습니다. 私たちは福音宣教を実践することによって、神の子としての愛と義務を全うします。 우리는 복음 선교를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사랑과 의무를 완수합니다.
そしてこの福音宣教は、神からの啓示の書物・・聖書に土台していなければなりません。 그리고이 복음 선교는 하나님의 계시의 책 .. 성경에 기초하고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聖書にこそ、救いに必要な知識が十全な形で記されています。 성경 이야말로 구원에 필요한 지식 만전 형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聖書の伝道"こそ大切であり、それを行なう者には、神からの豊かな祝福が限りなく注がれるのです。 "성경의 전도"이야말로 중요하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한없이 부어입니다.


人々が仏教の名のもとに求めてきた ものの究極は聖書の中にある

사람들이 불교의 이름으로 요구해 온 것이 궁극적 성경 안에있다.

これらのことから、私たちは何を結論す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결론 지을 수 있겠습니까?
私たちは、 法華経を通して人々が本当に求めてきたものは、じつは法華経の中にではなく、聖書の中にこそある 、と知ります。 우리는 법화경을 통해 사람들이 정말 요구해 온 것은, 실은 법화경 속에 아니고, 성경 이야말로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すべての人を平等に救うことのできる唯一の教えは、聖書の中にあるのです。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구할 수있는 유일한 가르침은 성경에있는 것입니다. 聖書のみが、真に実在される永遠の救い主について、述べています。 성경 만이 진정으로 실재하는 영원한 구주 대해 말합니다.
それは神の御子イエス・キリストです。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また聖書を信じ、聖書を宣べ伝える者に、神の祝福は限りありません。 또한 성경을 믿고 성경을 전파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 것은 아닙니다.
人生の答えは、聖書の中にあります。 인생의 해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人々が仏教の名のもとに求めてきたものの究極は、聖書の中にあるのです。 사람들이 불교의 이름으로 요구 왔지만 궁극은 성경에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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