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님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가 영국 런던선교회를 통해 중국으로 파송 받은 후 중국선교를 포기하고 있는데 그에게 조선선교라는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그는 한국의 백령도 근처 섬에 1차로 선교여행을 와서 한문으로 된 성경 200권을 주민들에게 전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시 중국으로 왔다가 1866년 2차로 평양근처 대동강변에 왔습니다. 그러나 조선군과의 무력충돌이 생겨 토마스 선교사님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한권이라도 더 조선에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그는 조선군에게 잡힐때까지 사력을 다해 강가로 성경책을 던졌습니다. 그는 즉시 생포되어 칼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선교사님을 죽인 사람은 조선군 군인 박춘권 이라는 자였습니다. 박춘권이 칼을 뽑아들자 토마스 선교사는 급히 자기품에 들렸던 성경책을 꺼내어 웃으며서 그에게 내밀었고 그리고 두손을 모아 마지막 기도를 올렸습니다.

“오 하나님이 사람이 자기의 하는 일을 모르오니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조선 땅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훗날 이 토마스 선교사님의 성경보급으로 평양에 유력한 신앙 가문을 일으킨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선교사님을 죽인 박춘권은 토마스 선교사님이 건내준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고 후에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대원군 집권 3년인 1866년 병인년 우리나라 교회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한해였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나라안의 천주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병인박해가 일어났고 곧이어 병인양요까지 치뤘으니 외세에 대한 조선의 쇄국정책은 극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같은해 8월 평양의 대동강에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나타났는데 이 배에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후원을 받은 로버트 토마스라는 선교사가 통역관으로 동승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한국 개신교의 첫 순교의 피를 흘린 주인공입니다.

1840년,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토마스. 어려서부터 선교사에 대한 소망이 남달랐던 그는 드디어, 1863년 24살의 나이에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꿈에도 그리던 중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이은 부인의 죽음과 선임 선교사와의 갈등으로 한때 선교사역을 포기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세관에서 통역일을 하던 그에게 조선 선교라는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다시금 복음 사역의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같은해 9월 백령도 근처의 작은 섬에 도착해 주민들에게 성경책 200여권을 전하며 전도했습니다. 베이징으로 되돌아간 그는 런던으로부터 정식으로 조선 선교를 허락받았고 다시 조선에 갈 배편을 찾던 그 앞에 제너럴셔먼호가 나타났습니다. 중국을 떠난 셔먼호는 일주일후 평양근처 대동강변에 도착했고 역시 우려하던 대로
조선군과 무력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대동강변에 좌초하게된 셔먼호는 최대의 위기를 맞게되는데. 한편 불바다가 된 셔먼호 위에서는 백기를 들고 화염속을 헤치며 사력을 다해 강가로 책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토마스 선교사였습니다.

 

단 한권이라고 더 조선인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십시오. 그는 마지막 남은 한권의 성경책을 품안에 넣고 강물로 뛰어들었고 곧 조선군에게 생포되었습니다.

그의 처단은 즉시 집행?고 그 임무를 맡은 조선 군사가 바로 박춘권 이라는 자였습니다. 박춘권이 칼을 뽑아들자 토마스는 급히 자기품에 들렸던 성경책을 꺼내어 웃으며서 그에게 내밀었고 그리고 두손을 모아 마지막 기도를 올렸습니다.
오..하나님... 이 사람이 자기의 하는일을 모르오니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조선땅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과연 토마스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에게 성경을 받은 이들 중에 훗날 평양에 유력한 신앙 가문을 일으킨 이들이 많은데 박춘권은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석호정 만경대의 최취량은 평양교회를 창설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준 성경을 뜯어 벽지를 바른 영문주사 박영식의 집은 널다리교회의 예배처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정식으로 조선땅을 밞아보지도 못한채 27살의 꽃다운 나이로 죽음을 당한 로버트 토마스선교사. 하지만 그의 죽음 뒤에야 비로소 조선땅에도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데. 서툰 한국말 실력에 가진 것이라곤 한문으로 된 성경책 한권 뿐이었지만,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이 땅에 복음의 부흥을 위한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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