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저메인 토머스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Robert Jermain Thomas, 1840년 ~ 1866년)는 웨일스개신교 선교사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흔히 토마스 목사로 불린다.]


웨일스 라예다에서 로버트 토마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토머스의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영국 회중교회의 사역자였다. 런던 대학교를 졸업한 뒤 해외 선교에 뜻을 두고 런던 선교회 소속으로 부인과 함께 중국(청나라)으로 떠났다.

몇 달간의 여행 끝에 상하이에 도착하였고 부인인 케더린은 동료 선교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충격에 유산하고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토마스는 이일로 고통에 잠기게 된다. 또한 런던선교회 중국 지부장인 뮤어헤드의 사립학교 엥글로-차이니즈라는 학교의 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받았으나 그는 거절한다. "저는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근거를 토대로 반대합니다. 저는 돈을 원하지 않습니다. 또한 교육이라는 명분에 갇혀 선교사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교사가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라고 런던 선교회에 의사를 피력한다.

중국에서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1865년에는 조선에 잠입해 성경을 배포하며 선교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조선에서 돌아온 후에는 베이징에 있는 선교회 산하 학교에서 교장으로 부임했다.

이듬해인 1866년 프랑스 신부들의 학살에 항의하기 위하여 조선으로 떠나는 프랑스 함대에 통역관으로 합류하기로 되어있었으나,

로즈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는 때마침 베트남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상해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토머스는 미국의 상선인 제너럴셔먼호에 항해사 겸 통역으로 탑승하여 다시 조선으로 떠났다.

제너럴셔먼호는 대동강에 진입하여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만경대 한사정(閑似亭)에까지 올라와 그들의 행동을 제지하던 중군(中軍) 이현익(李玄益)을 붙잡아 감금하였다. 토마스는 이 일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했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평양성 내의 관민(官民)은 크게 격분하여 강변으로 몰려들었고, 셔먼호에서는 소총과 대포를 이들 관민에게 마구 쏘아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제너럴 셔먼호는 모래톱에 좌초되었고, 이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는 철산부사(鐵山府事) 백낙연(白樂淵) 등과 상의하여 음력 7월 21일부터 포격을 가한 뒤 대동강 물에 식용유를 풀고 불을 붙여 셔먼호를 불태워 격침시켰으며, 승무원 23명 가운데 대부분이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배는 소실되고 승무원 전원이 죽었으며 통역관 역할을 한 토머스는 이 과정에서 사로 잡혀 순교했다. "내가 오늘 서양 사람 하나를 죽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이 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 할 때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무슨 말을 한 후에 웃으면서 책 한 권을 내밀며 받으라고 권했다. 결국 그를 죽이기는 했지만, 그 책을 받지 않을 수 없어서 가지고 왔다."라고 그를 죽인 병사는 회고 했고, 평양신학교 제 1회 졸업생으로 조선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한석진 목사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평양에 온 것은 임진년 10월, 즉 주후 1892년으로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 지 26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이 때 저는 성경을 팔며 전도하러 다니면서 토마스 목사의 순교를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너럴셔먼호가 불에 탈 때 바깥으로 성경을 던지면서 "야소(예수)!"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전도하는 내용과 팔러다니는 책자가 그 서양인이 배에서 던진 책과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순교자 논란

일부 개신교계에서는 토머스는 참수되면서 성서를 자신을 처형하려는 군인에게 전달했다고 알려져있지만, 토머스는 평양군민에게 맞아죽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에서 개신교 신자가 늘어나면서 토머스를 순교자로 기념하게 되어 유명해졌다. 특히 평양장로교 계열 교육자인 오문환이 주동이 되어 1926년 순종 국장 중에 순교기념회를 발기하였다. 오문환은 서해 섬 지역 선교를 위해 토머스의 이름을 딴 배를 띄우는 등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큰 몫을 했다.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 헌정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토마스를 선교자로 우상화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오문환은 일제시절, 서북지역의 목회자들을 포섭해 신사참배를 하게하는 등의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로 장로교 목사에서 제명된 인물이다. 역사학계에서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로 토머스를 기념하는 일부 개신교 측의 전승에 동의하지 않거나, 제너럴셔먼호 사건의 정황상 토머스를 종교적 '순교자'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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