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선교사 죽어가며 던져준 성경


                         <<토마스 선교사와 기념교회>>

 

1866년 8월 9일 토마스목사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목적지인 평양에 가기 위하여

대동강을 출발하였고 제2차 조선선교여행에 오른 토마스목사는 이번 조선여행에서 선교를 잘 감당하기 위하여 뱃머리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셔어먼호가 조선국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8월 21일에 포리에 다다랐을 때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 배는 미국배로 조선과 무역을 하려고 왔습니다."
"프랑스 배가 아닌가요?" 주민들은 프랑스배가 아니라는 말에 실망한 듯 하였다.
 
"하나님께서 조선을 사랑하십니다. 자 이걸 받으세요. 성경책입니다."
"이걸 그냥 받아도 됩니까?"
"여러분들에게 선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 소문이 사람들에게 퍼지자 수 많은 사람들이 배 위에 올라와서 배는 가라앉을 지경이었다.
이 때 나누어 준 성경이 500여 권이나 되었다.그리고 셔먼호가 북상하여 석호정까지 올라왔을 때 토마스목사는 배의 갑판으로 나와 "야소 (예수)를 믿으세요! 야소를 믿으세요!"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던져 주었다.
 
이때 4일간 머물면서 100여 권의 성경을 주민들에게 주었다. 

셔먼호가 석호정에서 만경대까지 다다르자 팽팽한 긴장이 고조되었다.

조선에서는 그 배가 닿는 곳마다 문정관을 파견하여 목적지와 항해의 목적을 물었다.

통역으로 승선한 토마스는 목적지가 평양이며 통상을 원한다는 것을 밝혔다.
 
셔어먼호에서는 양식과 땔감을 요구하였고 조선에서는 그것을 공급해 주었다.

그러나 셔먼호의 미국인 선장은 조선인 이익현을 협상을 하는 것처럼 속여 배로 유인한 다음 그를 억류하였다. 이것을 알게 된 토마스목사는 선장에게 "이러면 안됩니다. 어서 저 사람을 보내주시오."
"당신은 상관마시오. 내가 선장이요."
"정말 조선과 교역을 원하신다면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두고 보시오 저들은 곧 내 말을 듣고 통상을 요구해 올 것이오."
"이건 비겁한 짓입니다. 빨리 저 사람을 보내고 저들에게 잘못을 사과하시오"
그러나 선장은 토마스목사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익현의 억류로 화가 난

조선의 군사들은 소극적이던 자세를 버리고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틈에 박춘권이라는 부교가 이익현을 셔먼호에서 구출하였다. 

 대포로 공격을 하던 셔어먼호 선장은 조선군사들의 공격이 거세지자 퇴각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홍수로 불어났던 물이 줄어들어 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배는 모래에 좌초되었다.

이 순간을 놓칠리 없던 조선의 군사들은 일제히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순간에 토마스 목사는 "야소" "야소 믿으시오!" "야소!"

소리치며 배 안에 있던 성경을 군사들에게 던졌다.


"잠깐, 항복하겠으니 우리를 돌려 보내주시오."

배 안에 있던 선장이 외쳤다.


"항복하면 돌려보내주겠오. 잠깐만 기다리시오."

하는 소리와 함께 대포는 조선의 군사들을 향해 발사되었다.


선장의 비열한 처사에 화가 난 조선의 군사들이 일제히 횃불을 싣고

셔먼호에 접근하여 불화살을 쏘아대었다. 배에 떨어진 불화살로 셔어먼호는 불타기 시작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강으로 뛰어내렸고 목숨을 건져 뭍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성난 조선의 군사들에 의하여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그리하여 대동강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배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와중에서도 누군가 한손에 백기를 들고는 "야소, 야소" 외치면서 성경책을 던졌다.
"야 저러다가 저 사람 불타 죽겠다. 야소교 목사라고 했던 사람이지 않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의 옷에서도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순간 두 팔을 높이 든 토마스는 "야소!" 큰 소리로 외치더니 강물에 뛰어내렸다.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온 그를 목베이려고 누군가 칼을 쳐들었을 때, 부교인 박춘권은 그를 생포하도록 명령하였다.
"당신은 총 한번 쏘지 않고 책만 던지던데." "저희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오."
토마스목사 외에도 3명의 사람이 생포되었다.
 
평양감사는 이들에게 국법을 어기고 사교를 전하고 백성들을 살해하였으므로 모두 부교인 박춘권으로 하여금 참수토록 명하였다.

죄수로 묶여 있는 그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조용히 눈을 감고 주님만을 찾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대동강변에서 국법에 따라 한 사람씩 목을 베는 형벌이 실시되었다.

선장과 중국서기인 조능봉, 이팔행이 먼저 목베임을 당하였다.
 
"다음 영국 야소교목사 토마스"하자 북소리가 둥-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칼을 잡은 박부교의 손이 높이 올려진 순간이었다.
"잠깐만 이걸 받아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마지막 물건입니다."
 
이 말에 멈칫하고 놀란 박부교는 토마스목사가 내미는 작은 보따리를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그러자 토마스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일로 조선땅에 뿌린 복음이 열매로 맺게 하여 주옵소서."
 
1866년 9월 3일 28세의 젊은 나이로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목사는 대동강의 한사정 백사장에서 순교의 피를 뿌렸다.

 

토마스가 죽고난 다음 33년이 지난 1899년의 일이다.
"목사님! 저는 이제 더 이상 이대로는 못살겠습니다. 제가 토마스 목사를 죽인 박춘권입니다. 
그 때 그가 죽어가면서 제게 주었던 작은 보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경책이었습니다.
그것을 읽고 제 마음이 찔려서 이렇게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있던 마펫선교사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영감님, 영감님이 토마스목사를 직접 보셨단 말입니까?"
"보다마다요. 제가 토마스목사를 죽였다니까요?"
 
"하나님께서는 토마스목사의 죽음을 통하여 영감님과 같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이제부터 영감님도 예수를 믿고 전하면 됩니다."
 
"목사님, 정말 그럴까요? 그때 셔어먼호가 불타는 가운데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을 던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어느 여관에 갔을 때 방안이 온통 성경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여관주인을 불러서 연유를 알아보니 토마스목사가 포리에서 500여 권의 성경을 배포할 때 박영식이라는 평양감청 경비가 사람들이 버리는 책을 주워다가 도배를 했답니다.
 
그것을 여관주인인 최치량이 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관에 묵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이 글을 읽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제게 들려주면서 자신도 예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알기로도 토마스목사에게 성경을 받고 예수를 믿은 사람이 많습니다. 

홍신길은 후에 대동문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의 동생도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었고,
김영섭은 원래 천도교였으나 동생 종권과 함께 교인이 되어 장로가 되고, 황명대는 셔먼호가 불탈 때 "야소, 야소"하는 소리를 듣고 평양 초대교회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습니다."
 
이렇게 토마스목사가 죽음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뿌렸던 성경은 
살아서 조선의 교회가 세워지는 초석이 되었다.

 

[출처] 한국 최초의 선교사 로버트 토마스 |작성자 주님닮기 원해

http://cafe.daum.net/shalomtalent/cFF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