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이론과 실재
 
1. 교회 성장의 원리
1) 동일 집단의 원리
이 원리를 처음으로 체계화하여 이론화시킨 사람은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이다. 그는 그이 저서에서 교회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 구조적인 부분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사회 구조 속에 동일 집단, 즉 언어, 문화, 인종 등의 요소가 같은 부류를 하나의 그룹으로 형성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이론이다.
맥가브란(D.A.MeGavran)은 인간은 독립된 개인으로 인식하지 않고 전체 속에 한 부분으로 보았다. 그해서 교회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 구조적인 이해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전도에 대한 중요한 장애물은, 인간이 마음이 악해서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이 인종, 언어, 계급 등의 장애물을 넘지 않고 신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도자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한 사람을 개종시켰으면 그 사람을 교회나 선교사의 마을에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마을에 그대로 살게 함으로써 동료나 친척을 전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2) 대중 운동의 원리
맥가브란은 대중(people)이란 용어가 부족, 계급, 씨족이라는 용어보다도 더 정확하고 보편적 의미를 지닌 용어라고 주장한다.
그가 이것을 집단 운동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대중이 의식없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좇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대중 운동의 근거를 마28:19에 나오는 '족속'이라는 단어에서 찾았다. 그리고 초대 교회 때 베드로의 설교에 한번에 3,000명이 회심한 사건을 대중의 회심 사건으로 취급한다. 이렇게 맥가브란은, 신약성서의 개종 사건을 동질 단위의 부족이 집단으로 개종한 예라고 주장한다.
3) 수용성 원리
어느 그룹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반면 복음에 대하여 저항하는 그룹도 있다. 성서에서도 바리새인들보다는 일반 대중들이 더 수용적이었고, 유대인들보다는 갈릴리 사람들이 더 수용적이었다. 또한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는 뵈레아 사람들이 더 수용적이었다.
맥가브란은 새 정착민이 사는 사회, 교통 왕래가 심한 곳, 다른 나라에 정복당한 나라, 통제가 심한 나라, 문화변동이 심한 나라, 민족주의가 심한 나라일수록 수용성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이 수용성 원리의 문제는 교회 성장이 사회 문화적인 요소에 너무 의존한다는 것과 사람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4) 사회 과학의 원리
교회의 성장을 위한 전략 수립에 사회 과학을 잘 이용하면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맥가브란 교수의 사회학 이론에서는 문화와 사회를 유기적 동일체로 보면서 고전적인 사회 이론에 크게 의존한다. 교회 성장의 심리적인 장애 요인으로는 구속과 상승(Redemption and Life)이 있는데, 이 구속과 상승은 대부분 상류층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류층에서 일어난다. 하류층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사회적인 상승을 이루어 간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과거의 자기들과 같은 하층 계급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전도하기 보다는 중류 계급의 포로가 된다고 주장한다.
 
2. 교회 성장의 성경적 요인
1) 성령의 역사
초대교회의 교회 성장을 살펴 보면 성령이 임하시고(행2:14), 그 성령이 주권적으로 사도들과 신자들에게 역사하셨을 때에 이루어졌다. 초대교회의 사람들은 능력 있는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새로운 자유, 내적평안, 넘치는 기쁨, 영혼 사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소유하면서 그 결과로 전도에 대한 열심히 생겨 교회는 급성장했다.
2) 구제 사업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 이후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신자들의 공동체 운동이다. 이 공동체는 구제하는 일을 수행하였고, 부자는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팔아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공동체 운동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자진해서 귀속하였고, 이들은 성령에 의하여 변화되었다. 그렇게 영적인 힘에 의하여 모인 자들은 서로 협력하여 복음을 전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였다.
3) 전도 운동
초대교회의 성장에 성령의 역사와 구제 사업은 중요한 요인이었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복음을 전파하는 운동이었다. 사도들과 신자들은 성령충만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였고, 수많은 무리가 회심하는 역사가 나타났다. 이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최후 최선의 사명임을 알고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국내와 국외로 뻗어 나갔다. 이러한 전도 운동을 통하여 교회 성장은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본문 해설]
전도와 신학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전도 없는 신학은 이론에만 치우쳐 실제성이 없으며, 또 신학을 무시한 전도 역시 유약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도와 신학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있어서 병행되어야 한다. 전도와 신학이 병행되어야 할 이유로는 복음 전파의 보편성과 견고성에서 찾을 수 있다. 복음 전도자가 견고한 가운데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복음 전파의 내용이 성경에 확실한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한다. 한편 전도와 제자 양성과의 관계도 전도와 신학의 관계만큼 밀접하다. 전도가 구령의 일이라면 제자 훈련은 믿음 안으로 들어온 자들을 더욱 굳건히 세우는 일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일은 전도를 병행한 제자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이 두 가지의 균등한 발전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제 °해]
복음 전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명령하신 위대한 사명이다. 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전도의 개념과 당위성, 제자 양성의 참다운 의미를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본 강에서 전도학의 제반 상황들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전도와 신학의 관계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대부분의 전도자들은 신학에 거의 관심이 없으며 대부분의 신학도들도 역시 전도에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말은 사실이다. 전도와 신학은 많은 부분에서 딴 길을 걷고 있다. 신학이 전도와 교통할 길을 트지 않는다면 신학은 그 방법에 있어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이론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되어 무책임한 것이 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전도가 신학을 무시하고 신학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면 주관적인 체험이나 인간적이 노력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복음 전도와 신학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이 두 가지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 이 두 요소가 같이 병행해야 할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성경에 근거한 복음 전파
복음 전파는 성경을 떠나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바울의 심오한 교리를 살펴보면 복음 전도 및 목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때문에 바울이 쓴 교리들은 비체계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교한 기독교 신학의 틀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복음 전도 그 자체가 신학을 포함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학이 없이 주관적인 경험에 의지하여 복음을 전파하게 되면 성경에 맞지 않는 자기 생각을 전하는 경우가 많게 되고 또 효과적인 전도 사역을 하기도 힘들다. 왜냐하면 전인적인 복음을 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따라서 복음 전도에는 성경에 충실하도록 이끌어 주는 신학의 도움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2) 흔들리지 않는 견고성
신학이 없는 복음 전도는 감상주의나 감정주의에 빠지기 쉽고, 선교사인 경우 실적이 없을 때 눈속임으로 전락하기 쉽다. 또한 성경에 근거한 확실한 입장을 갖지 못하는 복음 전파자는 쉽게 좌절하거나 게을러진다. 큰 어려움이 닥쳐오면 뜨거웠던 마음도 다 사라지고 인간적인 서글픈 마음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전반적인 입장을 분명히 알고 복음을 전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복음 전도와 신학은 항상 병행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2. 전도와 제자 양성의 관계

주제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먼저 전도와 제자 양성의 상관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데이비드 왓슨의 견해
데이비드 왓슨(David Watson)은 그의 저서에서 현대 교회의 상황을 분석하면서 제자훈련의 필요성을 다섯 가지로 지적하였는데, 마지막 다섯 번째에서 전도와 제자 양성의 관계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교회 전통에 따라서 그 영역이 경시되거나 한 사람에게만 일방적으로 의존되는 경향이 있다. 신약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증인이 되어야 함을 너무나 명백히 강조하고 있다. 제자 훈련 또는 제자 양육 프로그램이 절실하게 요청되어야 할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더해 질 것이다. 만일에 교회 안에서 제자들이 분명하게 양육되지 않는다면 교회 사역을 감당할 유능한 지도자가 충분히 배출되지 아니할 것이요, 그렇게 될 때 교회는 다시 쇠퇴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교회를 속여 전도와 제자 양성을 구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 둘을 구분해 놓은 곳은 없다.
전도는 인간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과정이며, 제자 훈련은 새 시민에게 왕의 계명을 따르고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려면 전도와 제자 훈련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2) 한국교회의 문제점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교회에 적용하면서 생겨난 오류는 제자 훈련만 강조한 나머지 전도가 무시되어져 버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도자 양성 모임만 있지 재생산을 위한 전도 프로그램이 제자 훈련과 관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제자 훈련의 연쇄 반응은 계속해서 회심하여 처음으로 예수 믿는 입교인들이 늘어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 이유는 새신자들이 없는 경우 제자 훈련은 사역 장소나 훈련을 위한 현장이 없는 귀족들의 잔치로만 끝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마다 나타나고 있으며, 이제는 제자 훈련하면 으레 성경공부 모임을 통한 지도자 그룹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결국 이러한 제자 훈련을 받게 된 교인들은 자칫 신앙적 기형아가 되기 쉽다. 이것은 처음부터 가장 기본 요소인 복음 증거를 통한 재생산의 목표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도 훈련이다. 전도 훈련이 기초로 다져진 사람들이 제자 훈련을 할 때 비로소 정상적인 기능이 발휘된다. 반면 제자 훈련 없이 전도 폭발 훈련, 총동원 주일 등만 강조하게 되면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도 클 수밖에 없다. 임시 교인들의 수는 증가할지 모르나 결국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어 교회는 쇠퇴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제자 양성의 이유가 있다. 제자를 양육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자신의 신앙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린 신앙인들을 돌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제자 훈련을 통해서 강한 신앙을 소유하게 되고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창조적으로 발휘하여 돌보고 재생산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전도와 신학이 떨어질 수 없는 것과 같이 전도와 제자 훈련도 역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살펴보았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 열매를 거둘 때까지 많은 인내의 고통이 있듯이 한 생명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기까지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렇다고 전도를 포기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전도의 사명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으며 전도와 신학이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전도학을 올바로 이해하여 한 심령을 귀하게 여김으로 주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이다.
[자료 해설]
 
1. 한국교회의 과제

1) 신학적 과제
한국 기독교 신학은 과거 40년 동안 많은 변천 과정을 겪었다. 보수신학과 자유신학은 서로를 비난하면서 분열을 자초하였다. 결국 이러한 양극화된 신학의 양상은 새로운 시대를 받아 들임에 있어서 저해 요인이 되었다. 전통적 신학은 점점 더 폐쇄적이 되는 반면 진보주의 신학은 차차 사회 혁명의 신학으로 변질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조류의 한국적 신학, 즉 화해와 통일의 신학을 수립해야만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2) 교회적 과제
한국 개신교가 노력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일치이다. 한국 개신교는 그 동안 분열의 역사를 되풀이하였고, 지금도 분열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독선적인 교파와 교권주의를 넘어 하나됨으로써 한국 기독교 역사에 새로운 자을 열어야 한다. 성서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 구원의 개념 속에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하나됨, 그분 안에서의 신앙 공동체와 나아가서는 인류공동체의 하나됨이 전제되고 있다. 교회는 공동체의 신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신비를 재발견해야 한다. 초대교회가 지녔던 보편성과 단일성을 오늘의 한국교회가 다시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3) 문화적 과제
선교가 복음의 선포라 할 때 복음의 선포에는 선포하는 사람과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에는 그 말씀은 듣는 사람과 그 장소의 문화가 있다. 여기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이에 의해서 그 말씀은 다시 해석된다. 이 해석을 복음의 토착화라 할 때 선교와 토착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선교 없이 토착화는 가능하지 않으며 토착화 없이 선교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그 생명을 잃게 된다. 선교는 복음의 토착화를 통하여 열매를 맺게 되고 복음의 토착화는 선교를 통하여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1960년대부터 토착화 신학 운동이 일어났는데 한국교회의 문화적 과제는 60년대의 토착화 작업을 한층 더 진전시켜 복음의 진수가 그대로 전달되고 보존되는 성서적인 토착화 작업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새신자 양육의 정의와 원리

1) 새신자 양육의 정의
새신자 양육이란 믿음 안에서 새신자를 영적으로 사역하는 것, 즉 훈련과 교육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골1:28,29의 말씀과 같이 새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게 하려면 기본적이고도 영적인 진리를 알고 적용토록 해야 한다. 새신자들이 배워야 할 영적 진리는 매우 많으나 중요한 것을 보면 첫째, 구원이 확신을 갖게 한다. 둘째, 성장하는 신앙 생활을 하게 한다. 셋째,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을 영위하도록 해야 한다. 넷째, 소속된 교회를 중심으로 바른 신앙 생활을 하게 한다. 다섯째, 자신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도록 해야 한다.
2) 새신다 양육의 원리
새신자를 양육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리가 있으나 대학생 선교회(C.C.C.)에서 전개하는 영친 관계(靈親 關係)는 매우 유익한 것으로 영적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서 이미 성장한 신자가 새신자를 어린아이와 같이 돌보아야 한다는 원리이다. 성서는 신자를 어린아이로 표현하고 있다(고전3:1; 벧전2:2).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사랑, 보호, 양육 그리고 훈련이 필요한 것과 같이 새신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모두가 영친이 되도록 한다면 양육에 매우 유익할 것이다.

3. 번식(繁殖)의 어려움

1)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임
새신자가 성장하여 재생산자로서 헌신하기 위해서는 그 필요성부터 먼저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대부터 바른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대부분 2대에서 중단되는데, 2대의 헌신은 3,4대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1대는 2대를 육성할 때 재생산자로서 헌신하도록 바르게 지도하여야 한다.
2) 양육한 만큼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임
새신자가 성장하여 다른 사람을 양육할 때 자신이 그만큼 성장하지 못하였기에 다른 사람을 바르게 인도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자신이 바르게 성장하여야 다른 사람을 성장의 자리로 이끌 수 있고 바른 양육을 도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철저한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여야 한다.
3) 지도자의 지도력 부족 때문임
지도자들이 새신자 양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바르게 지도하는 방안을 제공하여야 하는데 지도자 중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육성과 번성은 한두 지도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모든 사람이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깨닫고 이것을 지도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의 사상이 신자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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