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의 문제(1)
오늘날 교회의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는 복음주의의 문제이다.
복음주의는 16세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개신교회를 복음주의라고 부른 것은, 신약성경에 밝히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왜곡시키고 복음 대신 성례나 신자의 공로적 선행을 가르쳐왔던 천주교회와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복음주의는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믿는 입장, 곧 성경적 기독교를 가리키는 용어이었다.
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이 미국 교회에 퍼지기 시작하고 1940년대에 소위 ‘신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복음주의는 전통적 개신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근본 진리들을 수호하는 전투적 입장을 취했던 근본주의도 복음을 믿고 옹호한다는 점에서 복음주의임에 틀림 없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이 역사적 개신교회들 속에 들어와 교회들을 부패시키고 변질시켰던 20세기 중엽 이후, 복음주의적 교회들은 두 입장과 진영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포용적이고 타협적인 입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자들과의 교제의 단절을 주장하는 입장이었다. 전자는 신복음주의128) 혹은 복음주의라고 불리웠고 후자는 근본주의라고 불리웠다.
미국에서 1920년대의 소위 보수주의(근본주의)와 자유주의(현대주의) 간의 신학적 논쟁에서 자유주의가 외형적 승리를 거둔 후, 1930년대에 성경적 교회들이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주의적 대교단들로부터 분리되는 일이 있었고, 1940년대에 와서 ‘신복음주의’라는 새 경향이 일어났다. 그들은 진리를 위해 계속 싸우기보다 평화와 안정을 더 좋아하였다. 그들은 성경을 그대로 믿는 보수적 교회들 간의 교제와 협력보다 자유주의 교회들을 포함하는 넓은 교제와 협력을 추구하였다.
이런 입장을 처음으로 대변했던 인물은 미국의 풀러신학교 초대 교장이었던 해롤드 오켕가129)이었다. 그는 풀러신학교 교장 취임시 분리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자기 신학교는 대교단들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130) 그는 1948년 풀러신학교 강연에서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1957년의 한 소식지에서 “신복음주의는 그 전략을 분리에서 침투로 바꾸었다”고 말했고,131) 또 후에 그는 “신복음주의는 분리를 거절함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달랐다”고 회고하였다.132)
1942년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가 조직되었고, 1947년 미국의 풀러(Fuller)신학교가 설립되었다. 1951년 20개국의 복음주의자협회들이 모여서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를 만들었다(2001년 WEA로 개명함). 1956년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지가 창간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신복음주의의 대표적 기관들이 되었다.
역사적 대교단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넓어진’ 교회들이 된 후, 거기에서 분리되어 나온 소수의 보수적 교회들이 과연 기독교회의 참된 계승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리의 입장을 포기하고 대교단들 속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것들을 개혁시키고 회복시키기를 원하는 소위 ‘침투’의 입장과 전략을 가지게 되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라는 용어를 싫어하였고 ‘복음주의’라는 말을 전유물처럼 사용하였다. 각국의 ‘복음주의자협회’(NAE)나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는 다 ‘복음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죠지 마스든의 관찰과 판단대로, 신복음주의자들은 점차 자신들을 단순히 복음주의자로 부르기 시작하였고 신복음주의는 오늘날 흔히 단순히 ‘복음주의’로 불리운다.133) 이와 같이 오늘날 ‘복음주의’는 신복음주의와 거의 동의어이며 신복음주의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윌리엄 애쉬브룩은 복음주의를 근본주의에 대해 혹평하면서 자유주의에 대해 동정적인 ‘신중립주의’라고 표현하였다.134) 개리 코우언은 신복음주의를, 자유주의자가 이단이 아니고 견해가 다른 형제이며 따라서 그를 전도의 일에 참여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표현하였다.135) 박형룡 박사는 신복음주의를, 근본주의에 대해 가혹히 비판하고 어떤 전통적 교리들에 대해 양보하고 WCC의 사회복음운동에 따라가고 자유주의자들과 우호적, 협력적 관계를 가지고 배교적 교단을 떠나지 않고 거기 머무는 입장이라고 비평하였다.136)
오늘날 복음주의의 자유주의 포용의 대표적 예는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활동이다. 빌리 그레이엄의 본래 입장은 건전하였다. 그는 1951년 4월 파일롯지에 “우리는 어떤 형태의 현대주의도 너그럽게 보거나 교제하지 않는다”고 썼고, 밥 죤스에게 보낸 1952년 6월 3일자 편지에서도 “현대주의자들은 어디에서나 우리를 후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린스보로와 슈립포트 외에 어느 도시에서나 교회협의회(NCC)의 후원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는 그 후 뉴욕,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컬럼버스 등에서의 전도 집회들에서 자유주의적 교회협의회의 후원을 공공연히 받았다.137)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전도집회시 제랄드 케네디 감독을 명예대회장으로 임명했는데, 케네디 감독은 하나님의 좋은 소식이라는 그의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명확히 부정한 자이었다.138)
데이빗 클라우드는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점에 대해, 성경이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변호하지 않는 점,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 부분이 아니라고 말하는 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하지 않는 점, 지옥이 불 붙는 고통의 장소라고 믿지 않는 점,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 신학이 더 이상 자기에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 점, 이단적인 로버트 슐러의 복음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에 동의한 점,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자유주의자들을 칭송한 점, 수천명의 회심자들을 배교적 자유주의 교회들에 넘겨준 점 등을 열거하였다.139) 컬럼비아 국제대학교 명예총장 로벗슨 맥퀼킨은 빌리 그레이엄이 근본주의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 즉 천주교인, 헬라정교인, 자유주의자에게 따뜻한 에큐메니칼 포용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140)
신복음주의 기관인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는 처음부터 자유주의적 대교단들의 지교회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성경의 무오와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교리를 포함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는 마틴 마티는 1992년 미국복음주의자협회에서 강연하였다.141) 또 그 협회 회장 돈 아규는 그 협회가 창설된 이래 최초로 자유주의적 미국교회협의회(NCC) 총회에서 연설하였다.142)
풀러신학교는 처음부터 대교단들의 목회자들을 훈련시키기를 원했다. 그 학교는 프린스톤 신학교 전 교장인 신정통주의자 죤 매케이를 연사로 초청하였었다. 그 학교의 1984-85년 요람은 자유주의적 천주교 신부 레이몬드 브라운을 강사로 열거하였다.143) 아더 후크는 1999년 7월 27일 풀러신학교를 방문하여 죤 골딘게이 교수의 강의에 참석했는데, 골딘게이 교수가 “여리고성이 있었고 그 성벽들이 무너져내렸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 . . 아마 이것은 비유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거하였다.144) 이 학교는 처음에는 성경의 무오를 옹호했으나 오늘날에는 이 교리를 거부하고 은사운동을 조장하며145) 여성 안수를 강하게 지지한다.146)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회장 데오도르 윌리암스는 WEF 뉴스레터 1993년 8월호에서 “WCC(WCC) 소속 교단 내의 복음주의자들은 그대로 머물러 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그 교회 안에서 복음주의적 영향을 끼치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147)
신복음주의 대변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1998년 9월 7일자는 레이몬드 브라운의 신약개론을 높이 추천하였다. 그러나 브라운은 예수께서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 아니고 오류를 범하였다고 말한 자유주의적 천주교 신부이다. 그는 WCC에서 활동적이고 1971년 미국 뉴욕의 자유주의적 유니온 신학교에서 처음으로 종신직 천주교 교수가 되었다.148)
오늘날 복음주의가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우리나라에서의 예들을 보자. 1986년 9월 8일 한국장로교협의회는 새문안교회에서 노춘경씨 수세 100주년 기념 행사로 예장통합, 예장합동, 기장, 예장고신, 예장대신 등 5개 장로교단 연합성찬예배 및 강연회를 가졌다.149)
1990년 11월,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홍콩 국립경기장에서 개최되는 빌리 그레이엄 홍콩 전도대회의 한국 위성중계 전도대회의 장소로 부산 수영로교회, 대구 서문교회, 대전 중앙교회 등 예장합동측의 큰 교회들을 채택하였다.150)
1991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총회는 “기감과 기장의 가입 문제는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거듭 밝혔다.”151) 이 단체는, 자유주의 교단인 기감과 기장을 배제할 의사가 없다.
1993년, 한국장로교회 일치를 위한 특별좌담에서 예장통합 박성원 목사는 “개인 구원, 사회 구원을 각기 외치면서 교회가 진보, 보수로 나뉘어지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한국의 진보교회와 보수교회가 일치하려면 타협이 필요하며, 예컨대 보수측에서 ‘성경이 유일한 계시이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장로교 일치는 대단히 어렵다고 주장했다. 기장 신학연구소장인 김원배 박사는 교회 일치는 진정한 교회 회복 운동인데, 교회 일치를 위해 도그마에서 벗어나 봉사의 자세를 가져야 하며 교리만 따진다면 끝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예장대신 총회 총무 김재규 목사도 한국교회가 교리를 따지지 말고 선교에 함께 참여함으로 일치를 이루자고 말하며 “신학에 대한 고집이 곧 한국장로교회 일치의 저해요인”이라고 주장했고, 또 과거엔 김재준 목사를 이단이라고 정죄했으나 오늘날 보수 신학에서 그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152)
1993년, 한국장로교협의회 소속 5개 장로교단 총회장 공동선언문은 한국 장로교회들이 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면서 “우리 한국의 장로교단은 신앙의 본질적 항목들에 있어서 결코 분열될 만큼 의견의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선언하였다.153)
1994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3·1절 기념예배 설교를 자유주의자로 알려진 강원용 목사에게,154) 3월 8일 임원취임예배 설교를 기장측의 조향록 목사에게 부탁했고,155) 또 4월 9일 남북교회협력을 위한 세미나 강사 명단에 강원용 박사를 포함하였다.156)
1995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광복 5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움의 강사 중에 기장측 조향록 목사를 포함하였다.157)
1996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발표회에서, 홍순우 목사는 진보적 교회와 보수적 교회가 다 반성하고 한국교회 전체 정서에 맞는 연합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앞으로 NCC나 한기총 등의 연합기관이 합력하여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했다.158)
1996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한명수 목사(한기총 전 총무, 당시 합동측 기독신보 주필)는 진보와 보수는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어느 한 쪽을 강조하면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고 말하면서 한기총과 교회협[NCC]이 새로운 이름을 가진 단체로 우뚝서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부회장 김명혁 목사(합동신학교 교수, 강변교회 목사)도 “양 기구는 기구적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59)
1997년 3월,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대신, 예장개혁, 기장 등 장로교 9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협의회 토론회에서 예장합동측의 한명수 목사는 “개신교계의 분열은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앞세운 데서 생긴 결과”라고 말했다.160)
1997년, 예장대신측 전 총무 조순태 목사는 사회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으로 위기상황일 때 교회연합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내가 마땅치 않게 여기는 교파도 같은 사도신경을 믿고 있으며 . . . 교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161)
1997년, 예장고신 총무 심군식 목사는 사회 문제와 사이비 이단이 판치는 현실에서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여 힘을 약화시키지 말고 일치단합된 연합운동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62)
1997년 7월,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통합 등 3개 교단의 전국남전도회 혹은 남선교회 연합회 임원들은 교단 간의 화합과 일치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163)
1998년 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지 덕 대표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차이가 이제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했다.164)
1998년 6월,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고신, 기장의 목회자로 구성된 한국장로교목회자협의회(회장: 옥한흠 목사)는 “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의 약화가 한국교회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협의회(교회협)로 나눠진 것에서 연유한다”고 말하며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은 늦출 수 없는 긴박한 과제”라고 주장했다.165)
1998년,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의 회원교단 신임총회장과 총무 임원 축하예배에서 길자연 목사(예장합동 총회장)는 “장로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자기 입장만 고집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이제라도 우리 모두 하나 되기 운동에 적극 참여하자”고 말하였다.166)
1999년 1월, 예장통합측 총회(총회장: 유의웅 목사)의 신년하례회에 초청된 예장합동측 총회장 길자연 목사(서울 신림동 왕성교회)는 “통합과 합동이 이심전심으로 장로교 연합과 일치 운동을 벌여 올해는 하나로 되어가는 분기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였다.167)
1999년, 복음주의 장로교단인 예장합동측 총회총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0% 이상이 예장통합과의 강단교류와 신학교류, 연합사업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 64%가 통합측과의 교단 통합에 대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68)
1999년 6월 27일, 예장합동측의 역사적 승동교회(박상훈 목사)와 예장통합측의 대표적 교회인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간의 강단교류가 양교단의 분열 40년 만에 승동교회에서 이루어졌다.169)
2000년 3월, 한국기독교교단총무회는 교회연합운동에 최선을 다하기로 하고 교회협과 한기총의 연합에 적극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교단총무회는 예장통합, 예장합동, 예장고신, 예장합동보수, 예장개혁합신, 침례교, 감리교 등이 속해 있다.170)
이상의 예들은 우리나라의 보수적 교단들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무지하거나 고의적으로 타협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이것이 복음주의의 문제이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단지 복음을 믿는 입장이 아니고 이단적 자유주의 신학이나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주의적 교단들과 교제를 끊지 않고 서로 교제하고 협력하는 포용적 입장을 나타낸다. 오늘날 보수적, 복음주의적 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하지 않고 포용함으로써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점점 더 해이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단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교훈하였다(딛 3:10). 복음주의는 성경의 이러한 교훈을 저버린다. 복음주의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잘못된 교제의 문제이다. 그것은 사도들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명백히 반대된다.
오늘날 복음주의의 문제는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은사운동과 천주교회를 포용하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주의는 은사운동에 대해 포용적이다. 아니, 포용적인 정도가 아니고 많은 은사주의자들을 포함한다. 1993년, 카리스마지는 오순절파가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 회원교회들의 약 51%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어떤 보고서는 약 80%라고 한다. 또 미국복음주의자협회 회장 케빈 매노이아는 자신이 복음주의 운동에서 은사주의자들과 비은사주의자들 간에 일치의 다리를 놓기를 원한다고 말했고,171) 또 그는 복음주의자협회가 죤 윔버의 빈야드 운동 같은 은사운동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172)
오늘날 복음주의는 천주교회에 대해서도 포용적이다. 이런 사실은 대표적인 복음주의자들의 말들과 행위들에서 확증된다. 1993년 6월, 빌리 그레이엄은 미국 피츠버그에서 1,050개의 교회들과 65개 교단들이 협력한 세 번째 전도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대회는 여섯 명의 천주교인들을 실행위원에 포함시켰다.173)
1993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 이사 스털링 허스턴은 말하기를, “지난 10-15년간 그레이엄 전도대회에서 천주교회의 참여가 크게 늘어났으며 소수의 천주교회 지도자들은 이제 전도대회 계획위원회들의 공식적 대표자들로 봉사한다. 천주교회 신자들은 안내위원들, 성가대원들, 심지어 상담위원들로 환영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174)
휴스턴 크로니클(Houston Chronicle) 1997년 3월 30일자는 빌리 그레이엄의 알라모도움에서의 전도집회에 대한 보도에서, “그 지역 천주교회도 중심적 역할을 했는데, 그것은 교황의 1987년 성안토니오 방문 기간에 보인 그 침례교인의 후원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었다”라고 말했다.175)
복음 전파(Proclaiming the Gospel) 1997년 6월호는 말하기를, “천주교는 이제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대회들에 참여하고 있다. 전도대회를 선전하고 촉진시키고 천주교 상담자들을 사용하는 대가로, 빌리 그레이엄은 믿음을 고백하며 앞으로 나오는 모든 천주교인들을 그들의 천주교회로 돌려보내겠다고 그 지역의 주교와 약속한다”고 하였다.176)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8월 10일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구 약 백만명의 [오타와] 지역을 위한 지난 6월 25-28일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 활동에서, 천주교인들과 개신교인들 간의 간격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 전도대회를 후원한 470개의 지역 교회들 가운데, 60개는 천주교회이었다. 천주교회의 참여는 모든 그레이엄 전도대회 가운데 가장 중대하였다.” 또 그 잡지는, 새 신자들 중 얼마는 천주교회에서 데려갔다고 말했다.177)
데이빗 클라우드는 빌리 그레이엄의 문제에 대해, 그가 천주교의 복음이 자기가 전하는 복음과 동일하다고 말했고 수천명의 회심자들을 천주교에 넘겨주었고 천주교 주교들을 강단에 초청하고 그의 결신 초청시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축복하게 하였다고 말한다.178)
대학생 선교회(CCC)의 창설자요 총재이었던 빌 브라잇은 1969년 천주교회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는 천주교회를 공격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교회 안에서 힘있는 역사를 하고 계심을 믿으며 세계를 복음화시키는 일을 돕기 위하여 수백만의 천주교인들을 사용하실 것을 의심치 않는다”라고 하였다.179) 대학생 선교회에는 이미 1970년대에 간사들 가운데 천주교인들이 있었고180) 1973년의 ‘키(Key) ’73’이나, ‘여기에 생명 아메리카가 있다’는 주제의 1976년 집회들에는 천주교인들의 참여와 협력이 있었다.181)
빌 브라잇은 촬스 콜슨, 제임스 패커 등과 함께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상호 인정과 협력을 선언한 1994년의 선언서에 서명한 일로 비난을 받고 그의 입장을 취소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그는 천주교인들 가운데 수천만명의 참된 신자들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 요청을 거절하였다.182)
또한 빌리 그레이엄 뿐만 아니라, 제리 팔웰, 잭 반 임페, 제임스 로빈슨, 에드 답슨 등의 복음주의자들은 천주교회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1985년, 에드 답슨은 말하기를, “교황 제도가 적그리스도적이라고 말하는 극단주의자들은 . . .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고 했다.183)
달라스 신학교 교장 척 스윈돌은 1997년 10월의 한 서신에서 테레사 수녀를 ‘주목할 만한 여자’라고 불렀다.184) 제임스 답슨은 테레사 수녀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했고 그것은 “그가 그의 생애에서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었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다. 잭 반 임페는 그녀가 구원받지 못한 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꾸짖었다.185)
그러나 빌 잭슨은 바르게 말하기를, “테레사 수녀는 누구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영혼이 연옥을 떠나기를 기도하였고, 성찬떡에 대한 사제의 축복이 아니면 예수를 소유할 수 없다고 말하였고, 교황에게 마리아를 ‘그리스도인의 협력구속자, 협력중보자 및 보혜사라고 부르기를 공공연하게 간청하였다”고 하였다.186)
크리스챠니티 투데이 1998년 3월 2일자에 의하면, 잭 반 임페는 최근에 교황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변호하는 데 그의 전체 방송을 사용하였다. 또 그는 다음번 교황이 요한계시록의 그 거짓 선지자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 경고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들로서 결합되었다”고 말했다.187)
‘복음주의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ECT)라는 문서는 복음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 간의 다리 놓기의 한 예이다.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의 전 회장 존 화이트는 그 문서에 서명했고 천주교인들을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라고 불렀다.188)
신복음주의의 문제는, 비록 20세기 중엽에 미국 교회에서 일어난 문제였지만,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경험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많은 보수적, 복음주의적 교회들은 신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신복음주의의 문제는 신학적 변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제에 있다. 그것은 자유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의 교제의 문제이다. 복음주의자들의 다수는 자유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을 비평하거나 배격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교단들이 고의적으로 그들을 포용할 때도 그 교단들 안에 머물러 있으며 그들과 교제하고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구약시대의 유다왕 여호사밧은 신복음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경은 유다왕 여호사밧을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행한 경건한 왕으로 증거하지만(대하 17:6), 그는 부귀와 영광이 컸을 때 우상숭배자인 이스라엘왕 아합과 더불어 교제하였고 서로 사돈 관계까지 맺었다(대하 18:1). 또 그는 아합을 도와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을 치는 일에 참여했다. 그런 일이 있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후를 보내셔서 그를 책망하셨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 19:2).
여호사밧 왕의 이러한 잘못된 교제와 연혼(連婚)으로 인해 북쪽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남쪽 유다 왕국에도 들어왔고(왕하 8:18; 대하 21:6) 그것이 유다 왕국의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교제의 문제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결국 유다 왕국의 멸망을 가져왔다. 이것이 오늘날 복음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복음주의적 목사들의 넓은 교제는 교회들을 점점 해이하게 만들고 사상적으로 부패시키고 마침내 배교에 이르게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보수적,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신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분별력 없는 많은 보수적 목사들은 화평과 일치와 사랑을 표방하면서 성경의 교훈을 실행하려 하는 자들을 오히려 비난한다. 많은 목사들이, 다른 여러 일들에 열심이 있으나, 교회의 교리적 순결성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순결한 교회를 원하시고 그것을 구원 계획의 목표로 삼으셨다는 것(엡 5:25-27)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교리적 순결에 대한 진지한 노력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큰 잘못이다.
성경은 분명히 교리적 이단을 분별하고 책망하라고 말하며 또 그것을 주장하고 전파하는 자들로부터 분리하라고 말한다. 에베소서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유다서 3,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우리는 진리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고린도후서 6:14-17,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 .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우리는 잘못된 교제를 피해야 한다.
로마서 16:17,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요한이서 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우리는 이단자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한다.
데살로니가후서 3:6, 14,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무질서하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라도 성경 교훈을 불순종할 때 그와 교제를 끊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다. 첫째로,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성경에 밝히 계시되고 전통적으로 믿어온 성경의 근본적 진리들에 대한 확신이 없다. 둘째로,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이 무서운 이단이라는 바른 인식이 없다. 셋째로,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진리를 위해 싸우려는 거룩한 의지와 열성이 없다. 넷째로,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교제와 분리에 대한 성경의 교훈에 순종함이 없다.
잠언 28:4은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고 말했고, 잠언 17:15은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고 말했다.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는 명백히 이단이다. 그러므로 성경적 교회는 마땅히 자유주의 신학과 천주교회를 배격해야 하며,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가진 자들을 교회의 교제로부터 제명하고 출교해야 하고 천주교회와의 교제를 끊어야 한다. 그들을 포용하는 신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는 성경의 고귀한 진리들을 양보하고 이단과 배교와 불신앙에 타협하는 비성경적 입장이다. 그것은 분명히 사도들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요 분명히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반대된다. 그것은 분명히 주 예수께 대한 불충성과 불순종이다. 배교와 타협이 점점 가득해지는 때에,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배교로부터의 분리이다.
http://www.oldfaith.net/03modern.htm#19. 성경적 분리의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