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

(주제별성서연구:신현주목사)

      성령 충만이란 성령 세례의 결과이다. 세례는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성령을 부어 주심이요 충만은 제자들이 받는 것입니다. 세례는 단 하나 밖에 없는 최초적인 체험으로서 반복될 수 없고 상실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충만은 계속적이며 반복될 수 있고 유지되어야 합니다.

      성령충만이란 그리스도로 충만해짐을 말합니다. 생수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요 7:37-39). 성령충만은 은밀하고 신비스러운 경험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과 바른 관계를 맺어 주십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은 계속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목마른 심정으로 마시면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찰스 피니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이 죄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는 것도 죄이다. 그리스도인은 더 많은 빛을 소유했으므로 죄인이 회개 안하는 죄보다 성령 충만하지 않는 죄가 더욱 크다"

      앤드류 머레이 "성령충만을받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이나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고 일하기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온 마음을 다하여 성령충만을 구해야 한다"

      성령충만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안에 성령께서 충만히 임재하시어 그분의 뜻을 우리를 통해 나타내심을 뜻한다. 이에 대해서는 몇가지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첫째로,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의 충만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 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습니라?(요 16:13-14).

      성령님이 역사하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아지며 그 이름이 증거되었습니다.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어려움을 당하자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가하나님의 말씀을 전싸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더욱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분은 자기 모습을 강조하시지 않고 그분이 일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임하기에 성령님은 "숨어계시는 하나님"이라도 했습니다.

       

      둘째로, 성령충만은 예수 그리스도가 높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남을 뜻합니다.

      주께서도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엡 5:18을 보면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말씀을 골로새서 3:16-18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켜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로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성령충만" 대신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여"로 바꾸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성령충만이란 말과 그리스도의 말씀이 충만히 거한다는 것은 같은 뜻입니다. 성령충만은 단순히 우리의 감정적인 변화가 아니고 영원하신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그 말씀으로 우리를 충만히 지배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한 성령충만은 술취함으로 비교 설명하고 있습니다. 술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의 중추신경을 지배해 버리는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지배하되 그분의 말씀 다라 우리의 삶을 지배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삶을 우리 속에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두가 지 의미

      1)특별한 경우에 주어지는 충만

      성경에 보면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성령충만을 입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출 31장 2-3절에서는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만들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장막짓는 일을 감당케하기 위함입니다.

      눅 1:15에서 세례 요한에 대해 "저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했습니다.요한의 모친 엘리사벱에 대해 "엘리사벱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41)라고 했으며, 부친 사가랴에 대해서는 "성령이 충만을 입어 예언자가 예언하여 가로되"(눅 1:67)라고 했습니다. 이상에서 예언을 하거나, 어떤 특별한 사역을 위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았음을 알수있습니다. 즉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입는 권능입니다.

      오순절 사건도 이와같은 것입니다. 행 2: 4 "저희가 성령으 가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충만은 선명한 체험을 갖갖게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성령이 자기에게 임한 것을의식했고, 새능력과 환희로 옷입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평상시에는 일어 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체험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이 일을 우리의 신앙현장에서, 목회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2) 생활상의 성령충만

      엡 5:18에서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한 충만은 오순절사건과 같은 충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능력이나 신비한 체험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상에서 누리는 영적인 " 상태를말합니다.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이같은 인물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행 6장에서 일곱집사를 뽑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들이 뽑고자 했던 일곱 집사의 조건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스데반이 뽑혔고 7장 순교하기 직전에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것을 "보았다고 말하였습니다(행 7:55).

      하나님께서 그에게 순교를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을 허락하셨는데 이때의 충만은 곧 능력의 충만입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앞서서 받았던 성령충만은 엡5:18에서말하는 충만입니다.

      엡 5장의 성령충만하라는 동사는 현재 계속적인 명령법이요, 특별한 경우에 일시적으로 임했다가 사라지는 그런 것을 명령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속적으로 받으라는 명령입니다.

      행 2장의 성령충만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실 때 받는 것입니다. 엡 5장의 성령충만함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그리스도께서 주시기를 원하시는 성령충만함을 받아들일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둘째로, 성령충만으로 나타난 상태가 다릅니다.
      엡 5장의 성령충만은 시와 찬미의 생활로 나타나며(엡 5:19), 감사와 복종의 생활로나타난다(엡 15:20, 21).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리고 난 후 마음이 즐거운 상태를 맛보는 것은 보통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병고칠 능력이 없어도 누릴 수 있는 충만이다.

       

       

      성령충만을 방해하는 것들

      1)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
      그리스도인이 말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때 성령충만은 방해를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과의 관계에 대한 진리들을 기록해 놓았다. 이러한 말씀에 대한 지식의 결핍은 그리스도인의 사귐을 소홀히 하고 그로부터 공급받는 능력을 약화시켰다.

       

      2)교만과 거만한 마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다(잠 16:18). 교만은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신다. 교만은 사단의 죄이다(사 14:12-14).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벧전 5:5).

       

      3)다른 사람들에 대하나 두려움
      현대 크리스천들이 다른 비그리스도인들과 구별되기를 두려워하고 오히려 비기독교인 사회의 행위와 표준에 적응하려고 한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벧전 2:9) 복음을 부끄러워 말아야 한다.

       

      4)고백하지 않는 죄
      죄는 하나님의 능력의 생명선을 끊어버린다(시 66:18). 그리스도인의 심중에 아직도 곱개하지 않은 육체적, 인격적, 정신적, 영적인 죄악이 한가지라도 도사리고 있다면 결코 성령충만은 있을 수 없다.

       

      5)세속적 쾌락에 물든 마음
      물질을 사랑하고 세속사회의 풍습에 젖어서 살려는 욕망 때문에 방해 받는다. 세속적인 것을 사랑하지 않는 비결은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마 6:2433)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무엇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 충만하다고 말한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으면 그것이 내 마음을 채웠다고 말한다. "가득차"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끼치는 절대적인 영향을 그렇게 표현한다.

      엡 5:18에 철저히 인격적인 차원에서 거론된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할 때에 이는 "술기운으로 살지말라. 성령의 기운으로 살아라"는의미이다. 성령의 기운(감화)로 살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전체 인격이 다른 영향과 다른 세력에 의해서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성령이 우리를 조종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통제케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1) 첫째 성령으로 충만하라, 계속 충만하라, 계속 성령의 통제를 받으라이다. 강압적인 명령이다. 이는 경험이 아니며 계속적인 상태이다. 하나의 축복으로 구할 것이 못된다. 특출난 체험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늘 영구적으로 처해 있어야 하는 상태와 조건이다. 항상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된다고 명령을 했다. 외부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조종하고 결정할 문제인 것이다.

       

      끊임없이 말씀을 통하여 명령과 훈계와 권면을 받는다. 결코 그것을 "한 체험을 갖는다"는 차원에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순절날 제자들에게 있었던 일은 체험이다. 고넬료와 가족들도 하나님의 체험을 알았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그들을 위해 안수하여 기도할 때도 체험이 일어낫다. 성령의 "인침"을 받는 것이나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은 일정한 체험입니다. 그것은 조정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받는 것이요, 주님의 역사에 속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우리가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령과 권면의 형식으로 진술된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소관입니다. 중생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을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도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의 계속 충만함을 받고 있을까 받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소관입니다.

       

      * 어떻게 생활상의 충만을 받을 것인가?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앞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께 반대되는 것을 따라간다면 우리는 성령의 통제아래 있지 않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탐욕과 정욕에 나를 맡긴다면 성령은 나를 조종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갈 5:17-육체의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들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죄를 짓는 생활을 산다면 성령을 근심케 해 드린 것입니다. 그가 근심하게 될때 그는 나를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 뒤로 물러 앉습니다. 성령을 소멸해서도 안됩니다. 성령은 내 속에서 나를 개우치시고 아이디어를 제고하시고 생각들을 유발하시고 암시해 줍니다. 이것을 거절하거나 무시할 때마다 성령을 소 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에 충만하면서 술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벧리알이 어찌 조화되며.."(고후 6:14-15)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을 멈추고 마귀를 대적하며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또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잔재와 습관들에 대항해서 싸워야 합니다. 적극적으로는 1)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성령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계십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못하느냐?"(고전 6:19). 성령께서 '영광스럽고 반가운 분'으로 늘 거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때 성령의 통제를 받게 된다.

       

      http://kcm.co.kr/holyspirit/spirit0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