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의 의미


제96문 : 성찬( the Lord's supper)이란 무엇인가?

답 : 성찬이란 성례의 하나로서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대로 떡과 포도주를 주고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나타내 보이는 예식이다. 그것을 합당하게 받는 자들은 육체적이고 육욕적인 방식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믿음에 의한 자로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자가 되며 그의 모든 혜택을 받고 은혜 가운데서 영적인 양육과 성장을 얻게 되는 것이다.


① 성찬에서 가장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몇 가지가 있는가?

성찬에서 가장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여덟 가지가 있다.

  ⑴ 그것의 본질 ⑵ 그것의 창시자 ⑶ 외적인 요소와 행위 ⑷ 내적인 신비와 의미하는 바 ⑸ 그것의 객체 혹은 그것을 받아들일 권리를 가진 자 ⑹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 ⑺ 그것의 유익 ⑻ 그것의 목적


② 성찬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찬의 본질은 성례의 일종이며 은혜 언약의 보증이다. 하나님 편에서와 인간 편에서 세례로 인해 맺어졌던 상호간의 의무가 이 안에서 새롭게 되고 확증된다.


③ 성찬의 창시자는 누구인가?

 성찬은 성례의 일종으로서 인간의 고안품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의 창시자이시다. 그것은 그의 세우신 제도이며 관례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게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고전 11:23)


④ 언제 주 예수께서 이 성찬의 예식을 제정, 설립하셨는가?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그날 밤에 이 성찬의 제정, 설립하셨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고전 11:23), 그것은 유월절 방에서 있었기 때문에 밤이었다. 그것은 그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가 잡히시던 날 밤이었다..


⑤ 우리 주님께서 최초로 이것을 시행하시고 제정하셨던 때가 그리스도인들이 최초로 이것을 받아들였던 때 밤이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도 밤에 이 성례를 받아야 할 의무가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밤에 이 성례를 받았던 이러한 전례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으며, 또한 다락방에서 그것을 받아야만 한다거나 최초에 그것에 참여했던 자들이 12명이었다는 전례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때 유월절에 먹었던 사도들이 했던 대로 밤에 그것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비록 그것을 받는 때는 무관할지 몰라도 정오(우리 주님이 영으로 일어나셨을 때) 때가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안성마춤일 것이다. 특히 그때부터 몸과 마음은 정상적으로 볼 때 가장 원기왕성하고 거의 지치거나 나른해지지 않은 때이기에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최상의 상태일 것이다.


⑥ 어떠한 자세로 이 성례를 받아들였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친히 계셔서 그것을 그들에게 행하셨을 때 그 자세는 가장 겸손했을 것이며 결코 불손하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⑦ 이 성찬의 예식은 누구에 의해 시행되어야 하는가?

 이 성찬의 예식은 세례의 그것과 같이 어느 누구에 의해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규례에 따라 이 직무에 부르심을 받고 취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에 의해 시행되어야 한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사자들이다. 이들 외 어느 누구도 이 천국의 인을 치는 권위를 부여받지 못했다.


⑧ 성찬의 외적 표지와 요소는 무엇인가?

성찬의 외적 표지와 요소는 떡과 포도주이다.


⑨ 성찬에서 어떠한 떡이 사용되어야 하는가?

 일반적인 떡이 사용될 뿐이며 교황주의 자들의 방식에 따른 성체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흰떡이 가장 무난하다.


⑩ 성찬에서 어떠한 포도주가 사용되어야 하는가?

 성찬에서 어떤 종류의 포도주가 사용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포도나무의 열매를 마셨다는 것을 읽는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포도주인지 알 길이 없다. 그것의 가장 가능성이 있는 바는 그리스도의 피를 생생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인 붉은 포도주(tdnt)나 진홍빛 포도주(claret wine)와 같은 붉은 빛깔일 것이다.


⑪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은 떡과 포도주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은 떡과 또한 포도주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이 성례에 대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었던 교훈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11:26,28),그러므로 교황주의자들이 백성들로부터 잔을 제거해 버리는 관례는 보증받지 못하는 것이며 위험한 발상에서 나온것이다.


⑫ 이 성만찬의 예식에서 외적인 행위는 무엇인가?

이 성만찬의 예식에서 외적인 행위는 다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⑴ 사역자의 역할로는 그 요소들에 축복을 하고 성례의 사용을 위해 구별을 지우며 해당되는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위해 감사와 기도를 드린다. 주님께서 최초로 이 성례를 세우셨을 때와 같이 그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떡을 취하여 떼며 잔을 취하여 떡과 잔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준다.

  ⑵ 백성들의 역할로 그 외적인 행위는 떡과 포도주를 취하여 전자는 먹고 후자는 마시는 것이다.


⑬ 이 성례에 있어서 떡과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나타내는가?

 이 성례에 있어서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의하고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고전 11:24,25)


⑭ 우리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성례에 사용되는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으로 변화거나 황하는 것이 아닌가?

 이 성례에 사용되는 떡은 그리스도의 실제 몸으로 변화거나 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몸의 상징이나 표현일 뿐이다.


⑮ 당신은 이 성례에서 사용되는 떡이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증거하는가?

  이 성례에서 사용되는 떡이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다음 여러 가지 논증들에 의하여 증거될 수 있다.


◉ 논증I.

떡이 성별된 후에도 전과 같이 여전히 그 떡으로 남아 있음은 감각과 이성 모든 것으로 볼 때 명백히 판명된다. ① 먼저 그것은 감각의 면에서 명백해지는 데 , 즉 떡의 양이나 크기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떡의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떡의 조각이나 위치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떡의 색깔, 맛,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이 그 떡이 성별되었다 해서 감각적으로 볼 때 전혀 변경된 것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② 다음은 이성의 면에서도 명백해지는데, 즉, 그 떡이 또 다른 물질로 변화될 수 없으며 그것의 성격기 도무지 변경되거나 바꾸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을 때 그 물은 그것의 본래적인 재료를 잃었으며 또한 그것은 색깔, 냄새, 맛 그리고 다른 속성들도 상실했다. 물에서 만들어진 그 포도주는 포도주의 속성은 물론 포도주의 색깔과 맛 , 냄새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성례를 통해 그 떡의 색깔, 맛, 모양 그외 어떤 속성들이 변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성적으로 판단해 볼 때에도 그 떡이 어떤 다른 속성으로 변해진 것은 아니다. 성례식에 우리는 떡의 속성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옷 입혀드려야 하며 그의 몸이 바로 그 떡과 같은 모양, 맛, 색깔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의 몸을(지금은 하늘에서 영광 중에 계시겠지만) 떡의 모양과 같이 품격을 떨어뜨리며 모양도 풍채도 없는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결과가 되어 그것은 어느 누구도 시인하지 못하는 터무니없는 신성모독이 되는 것이다. 그외 또 다른 것으로 만일 떡의 속성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전가될 수 없는데 떡의 재료가 나가고 그리스도의 몸의 재료가 그곳에 들어온다고 한다면 떡의 속성은 그 내용물이 없이 존재하는 셈인데 이것 역시 가장 터무니없는 이성에 어긋나는 논리이다. 우리는 감각으로써 그와 같은 색깔, 맛 그리고 모양을 감지한다. 그러면 그와 같은 색깔, 맛 그리고 모양이 그리스도의 몸일 수 없다. 만일 이 같은 속성들이 있는 곳에 다른 물질이 없다면 이 색깔, 맛 그리고 모양을 가지고 있는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결론이다. 따라서 성례에의 그것은 흰색의 무(無), 향긋한 무(無), 한 덩어리의 무(無), 한 조각의 무(無)를 말하는데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이다. 떡의 속성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동안 떡의 재료가 그대로 변치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은 이성적 판단으로 볼 때 이보다 더 명백한 증거는 있을 수 없다.


◉ 논증II.

이 성례에서 떡이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다고 한다면 두 가지 문제가 대두되는데, 하나는 모든 성례에서 먹는 떡의 조각들 만큼이나 그리스도의 몸이 많아야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은 모두 하나이고 동일한 몸이라는 것이다.

① 모든 성례에서 먹는 떡의 조각들 만큼이나 그리스도의 몸이 많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이유로, 첫째,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수천 아니 수백만 몸체를 가진 거대한 괴물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둘째, 사역자의 권한에 따라 그의 마음대로 그리스도의 몸을 자르고 하나님은 그때마다 기적을 창출하는 역사를 시행하셔야만 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것은 그리스도의 일체감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그리스도의 일체감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그리스도의 몸은 오직 하나이외 다른 어떠한 것들도 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오직 한 몸만이 십자가상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리스도께서 천국에서 갖고 계신 이들 모든 몸들은 오직 하나만을 제외하고는 영혼이 없으며 그래서 이것들은 모두 성례에서 이것들을 먹는다고 영혼을 구원하기에 미흡하여 신령한 생명이나 은혜를 주입하기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② 성례에서 변화된 떡이 그리스도와 같은 한 몸일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다음의 문제가 야기된다. 첫째, 그리스도의 몸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몸으로 천국에서 가시적이고 성례에서 비가시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같은 한 몸은 천국에서와 지상 여러 곳에 동시에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장소에서 할례받은 동일한 한 몸이 수천의 다른 곳들에 동시에 현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 이성에 배치되는 발상이다. 결과적으로 말을 정리하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며 존재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는 이만저만한 억측이요 엉터리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성례에 있다면 천국에는 존재치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나누어지지 않으며 부분 부분으로 어떤 것은 이쪽에 어떤 것은 저쪽에 동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리스동의 몸은 무한하지도 않으며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계시지만) 그렇다면 그의 몸은 육신 입기를 원치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은 여러 곳에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천국에 계시며 성례에 계시지 않는다.

 

◉ 논증 III.

 만일 성례에서 떡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다고 한다며 그것을 먹은 후, 그것이 하늘로 되돌아가거나 (그것은 이미 거시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것을 먹는 자들과 함께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부분은 우리 몸의 재료로 화할 것이고, 우리가 악하게 된다면 이 동일한 몸들이 일으킴 받을 때, 그것은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받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어떤 부분은 외진 곳에 던져져 부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두 부분의 발상은 가장 잔인한 신성모독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교황주의자들의 화체설 교의(the popish tenet transubstantiation)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증오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 논증 IV.

만일 성례에서의 떡이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으로 변한다면, 그 성례의 성격과 목적은 와해되고 말 것이다. 성례의 성격은 상징이며 그것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생각되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이 성례는 상징과 기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만일 이 떡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화한다면 그것은 현존해야만 한다.


◉ 논증VI.

 이 성례에서 먹는 것은 떡이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다. 그래서 사도는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분명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다. “누구든지 주의 떡이니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 11:26‐28) 그래서 그것이 이 성례에서 먹게 되는 바 떡이 사실이라면 분명코 그 떡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이 될 수 없다.


⑯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성례를 세우실 때 명백히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하셨으며 그가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 떡이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으로 변화된 것을 뜻하지 않겠는가?

 모든 성경의 표현들이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면 이 표현도 그렇게 이해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상에서 자주 비유적인 표현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스도에 관한 표현 역시 비유적인 표현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스도에 고나한 표현 역시 비유적인 것이 많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그렇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위나 돌로 변하셨다는 뜻인가? 동일한 의미로 유대인의 성례에서 쓰이는 유월절 어린양(Paschal lamb)이 유월절(Passover)로 불리우고 그리스도인의 성례에서 쓰이는 떡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불리우는데 그러나 유월절 어린양은 어떠한 의미로도 유월절이 될 수 없다. 유월절(Passover)이라는 말은 천사가 애굽의 장자를 죽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위를 통과한 그 천사의 행위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어린양이 천사의 행위로 변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 같은 어불성설이 또 어디 있겠는가?(What absurdity is it to say) 확실히 현존하는 물질은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이나 행위로 변화될 수 없다. 그것은 다만 그 행위에 대한 상징이요 기념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 몸이 또 다른 몸으로 그 속성들을 그대로 두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떡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내는 표지이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것이다.


⑰ 하나님은 그의 무한하신 능력을 통하여 떡을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으로 변화시킬 수 없으신가?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으실진대 왜 우리는 그가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실제로 그것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가?

 하나님은 실로 그의 무한하신 능력을 통하여 모든 것을 실행할 수 있으시지만,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상호 모순된 것을 조작하거나 터무니없는 것이나 신성 모독적인 결과를 낳게 하는 것들은 행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⑱ 이 성례에서 떡과 포도주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가?

 이 성례에서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의미한다는 것은 떡과 포도주가 육신을 강건케 하고 거기에 영향을 공급하고 새 힘을 주며 본래적인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이것을 성례에서 받음으로 영혼을 강건케하고 거기에 영양을 공급하고 새 힘을 주며 신령한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⑲ 사역자가 떡을 취하여 떼며 잔을 취하여 이 두 가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에 있어서 그의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역자가 떡을 취하여 떼며 잔을 취하여 이 두 가지를 백성들에게 나눠줌에 있어서 그의 행위가 뜻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의 아들을 취하시고 그로 상하게 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심을 의미하며, 그가 이 성례를 통하여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구속자와 구주가 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⑳ 백성들이 떡과 포도주를 받고 그것들을 먹는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가?

 백성들이 떡과 포도주를 받고 그것들을 먹는 행위는 그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바 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성례에서 그를 먹는 것을 뜻한다.


21. 이 성례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은 새 언약의 혜택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게되는 것인가?

 오직 합당하게 받는 자들만이 새 언약의 혜택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22. 합당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은 어떻게 그 모든 혜택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게 되는 것인가?

 합당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 모든 혜택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게 된다

  ⑴ 육체적이고 육신적인 방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거기 참여하여 음식과 음료로써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들과 그의 실제적인 살과 피와 연합함으로써이다.

  ⑵ 그러나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그들의 영혼과 연합하며, 그래서 그의 죽으심의 효능과 능력과 열매와 혜택들이 그들에게 적용되고 그들은 신령한 양식을 먹고 은혜 가운데서 성장해 나간다. “우리는 이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고전 10:16)


23. 신자들은 어떻게 이 성례에 참여함으로써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고 은혜 가운데 성장하게 되는가?

신자들은 이 성례에 참여함으로써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고 은혜 가운데 성장한다.

  ⑴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효능을 이끌어 내며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고 죄를 죽이고 정화시킨다. 육체와 죄는 신령한 양식을 먹고 성장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⑵ 주님은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전달하시며 그들은 이 성례를 통해 믿음으로 그의 은혜를 더욱 많이 받아 누리게 된다. 그것은 그가 죽으심으로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것이며 그의 은혜의 언약을 통해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다.(이 성례를 보증하는 인이기 때문이다.)


24. 이 성찬(the Lord's supper)예식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성찬 예식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받아들인 것을 공적으로 공언하고 신앙을 증거하고 구원의 소망 가운데 서게된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제97문 : 성찬을 합당하게 받으려면 무엇이 요구되는가?

답 :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들이 주님의 몸을 분간하는 지식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의 회개와 사랑과 새로운 복종에 대해서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다. 성찬에 합당하지 않게 참여하다가 결국 자신에게 임하는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① 성찬을 합당하게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⑴ 성찬을 합당하게 받아들이려면 우리가 마치 우리자신의 공로나 가치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방자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와 그의 혜택의 결과임을 인식해야 한다.

  ⑵ 우리가 성찬을 합당하게 받아들이기 위하여는, 거기에 나아가기 전에 온전한 준비를 함으로 그리고 주님의 식탁을 대할 때 조심스런 행동으로 성찬을 받아야 한다.


② 성찬을 합당하게 받기 위한 준비사항은 무엇인가?

 성찬을 합당하게 받기 위해 요구되는 준비사항은 ⑴ 성찬을 받는 자가 은혜스런 상태에 있기 위해 평상시에 준비하는 것이며 ⑵ 그들의 은혜가 실제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③ 성찬을 합당하게 받아들임에 있어서 평상시의 준비(habitual preparation)와 실제적인 준비(Actual preparation)의 필수요건은 무엇인가?

 성찬을 합당하게 받아들임에 있어서 평상시의 준비와 실제적인 준비의 필수요건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피는 일이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 11:28)


④ 성찬을 준비함에 있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인가?

성찬을 준비함에 있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 있어서 자신을 살펴야 할 것이다.

  ⑴ 우리는 떡에 의해 의미되는 바 주의 몸을 분별하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9)

  ⑵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를 먹음으로 그에게서부터 효능과 신령한 양식을 이끌어내어야 한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

  ⑶ 우리는 주님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바 우리의 지은 죄에 대하여 참회와 자기자신을 판단함과 경건한 슬픔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고전 11:31)

  ⑷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에 사랑으로 그에게 보답하며 동일한 피로써 구속함을 받은 형제들을 사랑하여야 한다.

  ⑸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주님의 능력으로 강건함을 받기 위해 복음에 새롭고 성실한 순종을 다 바친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8)


⑤ 성찬을 준비함에 있어서 자신을 살피는 일 외에 다른 필수요건은 무엇인가?

잔을 준비함에 있어서 자기를 살피는 일 외에 다른 필수요건은,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과 성령의 도우심을 위해 그에게 기도 드리고 우리의 사랑을 북돋우고 우리의 은혜를 일깨우기 위해 묵상하는 일이다.


⑥ 주님의 식탁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⑴ 주님의 식탁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하는 자들은 평상시에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되는대로 불신자의 경우처럼 지내다가 나아오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믿음이 없기에 주님의 몸을 분간할 수 없고 그를 영적으로 먹을 수 없다. 이런 자들은 회개와 사랑과 새로운 순종을 행치 않기에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없고 수찬을 받는다고 그와의 연합을 누릴 수도 없다.

  ⑵ 주님의 식탁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하는 자들은 또한 평소에 준비를 하고 은혜를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인 준비를 함에 있어서는 무관심하여 자기를 보살피는 일이나 기도하고 묵상하는 일에는 안중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고 이 의식의 혜택들을 상실하고 만다.


⑦ 은혜 생활을 하는 자가 자기를 살피는 일과 다른 의무들을 힘써 수행함으로 준비를 갖추고자 하였지만 아직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면 그들은 합당하게 수찬을 받을 수 없으며 주님의 식탁에 나아올 수 없는가?

 은혜생활을 하는 자가 자기를 살피는 일과 다른 의무들을 힘써 수행함으로 준비를 갖추고자 하였지만 아직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해도 그들은 주님의 식탁에 나아 올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의식을 통하여 그들을 용납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려깊고 감동있고 따뜻한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수행할 수 없다면 그들은 거기 머물러 기다리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의 성실성이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⑧ 우리가 참으로 은혜 가운데 머무르고 있는지를 몰라서 두려워하거나 의심스러울 때 주님의 식탁에 나아올 수 있는가?

우리가 합당하게 성찬에 임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주님의 식탁을 대하는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몸의 외적인 몸가짐과 우리 마음의 내적인 자세를 겸손하고 경외하는 자세로 가져야 한다. 우리는 그 의식에서 의미되고 표현되고 나타나진 그 대상을 경건하게 바라보며 우리의 외적 행동이나 요소 하나 하나에 지극히 조심스럽게 대한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그렇게도 모욕을 당했고 고통을 당하셨던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에 대해 묵상하며 그의 죽으심과 원인이 되었던 우리의 죄를 슬퍼하고 그를 간절히 찾고 사모하며 그의 죽으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혜택들을 갈구하고 언약과 신약성경에 나타난 약속들 ‐ 유언자의 죽음으로 효능을 나타내는 ‐을 적용시킨다. 주님 안에 충족히 잠재해 있는 양식과 신령한 모든 것들을 그로부터 이끌어 내며 그의 사랑을 기뻐하며 그의 은혜에 감사를 돌리며 우리의 언약을 새롭게 하며 그 중에서도 특별히 주님을 믿음과 더욱 특별히 주님을 사랑하고 또 그의 사랑 안에서 상호간에 사랑하는 것들이다.


⑨ 성찬에 참여한 자가 주님의 식탁에서 물러난 후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는 무엇인가?

 성찬에 참여한 자가 주님의 식탁에서 물러난 후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는 그들이 몸가짐과 결과에 관하여 자신을 살펴야 한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그들의 결함을 슬퍼하고 사죄를 성실히 구하고 유익을 구하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며 앞으로는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교정하기를 애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보다 힘을 얻고 신선한 용기를 얻었다면 그 도우심과 용기주심에 대해 감사드리며 그들이 그러한 마음가운데 있기 위해 애쓰며 세상과 육체와 정욕을 이기기 위해 그리스도로부터 많은 능력을 구하기를 힘쓰며 사단과 죄와 육정적 욕구에 대항해 싸우며 그들이 서약했던 서원을 수행하며 새롭게 세웠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유의한다.


⑩ 성찬을 합당치 못하게 받는 죄는 무엇인가?

성찬을 합당치 못하게 받는 죄는 주님의 살과 피를 범하는 죄, 즉 주님의 살과 피에 대하여 불손하며 무례하게 대하는 죄를 말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 11:27)


⑪ 성찬을 합당치 못하게 받을 위험성은 무엇인가?

주님의 성찬을 합당치 못하게 받을 위험성은 우리 자신 스스로의 판단에 의거하여 행함은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즉 이것은 우리가 성찬을 합당치 못한 방법으로 받아들임으로 주님의 노를 격발시킴으로써 우리는 결국 현세적인 것이나, 신령한 그리고 영원한 심판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전11: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