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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소요리문답 해설


성경소요리문답해설
토마스 빈센트 지음

홍병창 옮김

여수룬 출판사



1. 역자 서문 (요약)

한국 장로교회는 선교 1세기만에 세계 선교 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면 그러한 발전을 가능케 했던 신앙의 근본원리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칼빈주의 신앙원리에 입각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 요리문답에 근거한다. 일찍이 우리 장로교회는 “1907년에 발간한 요리문답을 위시하여 1917년 9월 제6회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헌법을 적당히 수정 채용한 이래” 그것을 신앙의 원리로 삼아 전 교회에게 학습시키도록 명하여왔다. 이 헌법의 신조 서언에서는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와 성경대소요리문답은 성경을 밝히 해석한 책으로 인정한 것인즉 우리 교회와 신학교에서 마땅히 가르칠 것으로 알며 그 중에 성경 소요리문답은 더욱 우리 교회 문답 책으로 채용하는 것이다”라고 소요리문답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이런 연유로 인해 한국교회에서는 소요리문답 해설집들은 대부분 소요리문답이 완성된지 3세기 이후 미국교회를 배경으로 하여 작성되었기 때문에 그 원래의 의도에서 떠나간 느낌이 든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성경 소요리 문답해설]‐(The Shorter Catechism Explained from Scripture)은 [Westminster 신앙고백 작성](1643‐47) 당시의 정신을 가장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완성된 이후 30년이 채 못되는1674년에 청교도 신학자 T. Vincent에 의해 저작 출간되었다.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문답을 다시 세부적으로 조목조목 나누어 가장 상세하게 성경의 예증을 들어 설명하고 있기에 교육하기에 좋도록 했다는 점이다.


매사 다 그러하겠지만 특별히 신앙의 원리에는 언제나 역사성과 정통성이 요구된다. 그렇지 못하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넘어짐을 면할 수 없다.(마7장) 우리 교회의 이 신앙의 원리는 예수님과 사도에게서 유래된다. 우리 예수님은 사도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는 신앙고백을 들으셨을 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약속을 하셨다. 그러므로 참다운 신앙고백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참다운 교회가 있기 마련이다. 이 신앙고백은 단순히 고백적인 요소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역사를 일으키는 power를 동반한다.


역사상 최초의 신조는 사도신경이다. 이후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 등 훌륭한 신조가 작성되었다. 그후 중세시대 로마 교회의 ‘이탈된 신조’로 인하여 역사는 근 1000년을 암흑기에 빠지게 된다. 그들의 카톨릭은 신령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교황을 중심으로 한 보편성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비 성경적인 제도로 인하여 그릇된 길로 떠나가게 되었다. 그후 하나님은 Luther와 Calvin을 보내셔서 종교개혁을 하게 하시고 복음적 교회로 하여금 바른 신조를 작성케 하셨다. 이 신조가 바로 오늘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이다. 이 요리문답은 기독교 진리를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문답형식으로 엮어져 있다. 이상과 같이 우리의 신앙고백은 정통성과 전통성을 갖고 있음을 알아야겠다. 잠언23:10에는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전통성과 정통성을 동시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구미를 비롯한 한국의 어떠한 교회들은 이 신앙의 원리를 약화, 변질 혹은 떠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미국 연합장로교회에서는 1924년 이미 성경 무오,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이적, 속죄, 부활 등을 무시한 [Auburn Affirmation]에 서명한 자가 1,300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1967년에 이르러서는 범교단적으로 한 걸음 진일보한 ‘67 신앙고백‐[’67 신앙고백의 전체 주제는 ‘화해’(reconciliation)이다.]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성경이 의도하고 있는 바 전통적 정통적 개혁신앙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대로 고후5:19의 ‘화목’은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원수 된 관계에서 화목케 하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 기독교강요II, 5,6 참조). 그런데 ‘67 신앙고백은 여기에 비해 도덕적 주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해와 같은 형이상학적 신화적 사변을 피하고 인간 사이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화해의 문제를 내세우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고백에는 빈부, 정의, 인종, 평화, 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들의 입장은 기독교가 그 시대 환경 속에서 본질은 전제되면서 재 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사실 일정한 신조의 form 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비판 못하는 신성 불가침 한 것이거나 하나님도 꼼짝 못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67 신앙고백과 같이 원리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피상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클로즈업 시켰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리스도’, ‘성경’, ‘교회’…등에 대해 실재성을 잃어버리고 상징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느껴야 한다. 아무리 역사가 변한다고 실재(reality)를 제쳐두고 상징만 내세울 때 세상이 더 변한다면 과연 우리의 뇌리와 어휘에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나 ‘성경’등이 용납될 수 있을 것인가? 실재가 아닌 것을 실재라고 위장하거나 빙산의 일부만이 전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우리가 극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떠나간 길목에서 돌아오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 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 오라”(렘 31:21)


2.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요약)

무지를 헌신으로 삼았던 로마교회의 원리가 타파된지 오래되었다. 세상은 이제 지식 없는 마음을 선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의 본질과 원리에 대한 지식보다 더 긴요한 지식은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을 인간의 심성에 전달하는 방편으로서 교리문답이라 불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리스도 말씀의 원리에 대해 기초훈련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에 미궁 속에 헤매고 있다. 이 책은 원래는 저자의 특수한 회중들을 상대로 작성된 것이지만 우리는 이것이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가정교육에 상당한 가치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3. 나의 회중에 속한 가정의 가장들과 주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요약)

그러나 우리 국가와 도시에 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조차도 지식이 없어서 영적인 몽매가 되어 멸망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르침을 받지 못해 지식이 없습니다. 가르침의 방법에는 교리문답식 신앙의 원리와 지식을 더욱 분명하게 전달하며 그 이외에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가정의 주인들과 사역자들이 이것을 무시한다는 것은 그들의 책임 하에 있는 자들의 영혼에게 불성실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제가 권하고 싶은 것은 가정의 주인 되신 여러분들은 매 주 두 번씩이나 최소한 한번 시간을 구별하여 소요리문답서로 여러분의 자녀들과 종들을 시험하여 가르치시라는 것입니다.


4. 나의 회중에 속한 초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요약)

만일 여러분들이 가장 훌륭하고 가장 현명한 철학자와 같은 본성에 대한 신비와 비밀에 관해 광범위한 지식을 갖고 있다면 만일 여러분이 하늘아래 있는 모든 언어들을 구사할 수 있고 사람과 천사의 방언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이 모든 인간의 지식은 그것이 아무리 고상하고 발전된 것이라 해도 여러분들에게 알게 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이나 구원의 신비와는 비교도 될 수 없습니다.


 이제 나의 가장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은 이 해설집을 학습하는 일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미 여러분을 대신해 그 모든 수고를 지불하였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시간이 많지 못하거나 기억력이 좋지 못한 사람들도 있겠지요. 나는 그러한 여러분들에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만일 가정을 떠나 있을 때는 홀로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말미암아 짧은 시간에 놀라운 유익과 역사를 일으킬 것이고 체험케 할 것이고, 증명할 것이고, 보여줄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들이야말로 얼마나 복된 자들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생애 초반부를 참다운 지식으로써 무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 1 강  인간의 삶의 목적


제1문 : 인생의 제일 된 목적은 무엇인가?

답 : 인생의 제일 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일이다.


① 인생의 제일 된 목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생의 제일 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인 바, 인간의 모든 삶과 행위에 있어서 그것이 그의 지고한 선과 행복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것을 사모하고 찾기 위해 뜻을 두고 계획하며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②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겁게 즐거워하는 것 이외에 다른 중요한 목적은 갖고 있지 않는가?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갖고 있지 않으나, 부차적인 목적들은 갖고 있다.


이를테면 ⑴ 인간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부름 받는 직업에 힘써 일해야 한다.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살전 4:11,12)

⑵ 인간은 영양을 섭취하고 새로운 힘을 공급받기 위해 먹고 마시고 수면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부차적인 목적으로서 그러한 것들을 계획하고 사모하고 구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모든 것들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을 계획하고 구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하라”(고전 10:31)

⑶ 인간은 세상에 있는 필요하고 유용한 것을 얻기 위해 합당한 방법으로 사모하고 노력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5,26)


③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⑴ 부정적으로 말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그에게 부가적인 영광을 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보다도 더 영화로운 존재는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그리고 무한히 완전하시고 영광스런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본질적인 영광에 조금도 덧붙일 필요가 없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과 같이…”(마 5:48),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시 16:2)


⑵ 긍정적으로 말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다. 피동적으로 종교나 이성을 갖고 있지 않는 피조물들이 드러내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인생들을 그들의 삶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존귀하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너희를 어두운 가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하신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벧전 2:9)


① 인생들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지고한 자리에 모시고 그를 확신하며 그에게 강한 애정을 표시할 때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② 인생들은 외부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내시는 계시에 따라 하나님을 인식하고 입술로써 하나님을 찬양 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감사로(원문에는 ‘찬양’으로 나와 있음)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50:23)


③ 인생들이 그 모든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세상에서 그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고 그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그에게 예배드리고 순종할 때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나와 함께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시34:3),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14:7)


④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은 자원하는 심령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를 의지하는 것이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 지어다”.(시116:7)


⑤ 여기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되는가?

⑴ 인생들이 믿음으로 주를 의지하고 붙잡음으로.  

“오직 너희 하나님을 여호와를 친근히 하라”(수23:8)

⑵ 인생들이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고 그의 자비로우신 존전에서 기쁨을 누리며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명백히 감사함으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34:8),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⑥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므로 기쁨을 누리시는가?

그들이 그의 자비로우신 존전에 들어가서 그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고 천국에 있는 그의 사랑을 만끽하며 거기서 완전 무결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를 의지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로 인하여 즐거움을 누리실 것이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며 볼 것이요”(고전 13:12),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주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⑦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거론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들은 상호 불가분리의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고로 인생들은 후자 없이 전자만을 구하거나 전자 없이 후자만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 위 그의 집에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린 자들은 그를 가장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자들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84:4)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국에 있는 성도들에 의해 즐거움을 만끽하실 때 그는 최고의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으시고”(살후 1:10)


⑧ 인생들이 그 모든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⑴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인하여 인생들을 지으셨으며 비이성적인 피조물과는 달리 그것을 능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그 영혼에 주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 100:3),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으니”(잠16:4),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시103:1)


⑵ 하나님께서 인생들로 그를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양식을 주사 보전하시기 때문이다.

“만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 송축 소리로 들리게 할지어다.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시 66:8,9),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시 95:6,7)


⑶ 하나님은 인생들로 그를 영화롭게 하게 하시기 위해 그들을 구속하셨으며 그의 아들의 피값으로 사셨기 때문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롬 8:26), “하나님이 …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 2:5)


⑨ 왜 인생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즐거움을 사모하고 구해야 하는가?

⑴ 하나님은 지고한 선이시오 그의 즐거움이 곧 인생의 지고한 복락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외에는 선한 자가 없느니라”(마 19:17),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4:6,7)

⑵ 하나님은 현세에서는 다만 불완전하고 일시적인 기쁨만을 누리시며 인간은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복락에 이르기 전까지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아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 13:9,10),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3:12),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나이다.”(시14:11).


제 2 강  인간의 의무


제2문 : 하나님께서 어떠한 규칙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 할 것을 명령하셨는가?

답 : 신. 구약 성경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 할 것인가를 지시하는 유일무이한 규칙이다.


① 신 . 구약 성경 속에 기록된 말씀이 왜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리는가?

그것은 성경을 기록한 자들의 착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신 성령의 직접적인 영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


② 당신은 성경에 있는 말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거하는가?


⑴ 성경의 권위로 인해서이다.

ⅰ. 하나님은 빈번히 그의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거나 그들을 통하여 말씀하곤 하셨다. 그때 그의 권위는 어떠한 인간의 저작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웅장한 면모가 표현되어 있었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사 57:15),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딤전 6:15)


ⅱ. 성경의 문체나 제시하는 방법은 다른 어떠한 저작들 속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웅장한 권위가 내재되어 있다. 거기에 묘사된 의무는 하나님 이외엔 어느 누구도 요구할 수 없으며, 거기에서 제시하는 형벌의 위협은 하나님 이외엔 어느 누구도 부과할 수 없으며, 거기에서 표현된 보상의 약속은 하나님 이외엔 어느 누구도 내려줄 수 없으며, 이와 같이 웅장한 방법을 볼 때 하나님만이 성경의 저자이시라는 사실이 증명된다.


⑵ 성경의 거룩성과 순결성으로 인해서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롬1:2),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연단한 은 같도다”.(시 12:6)

성경은 기록 초기부터 끝까지 거룩하다. 성경은 현세적이고 불순한 냄새를 전연 풍기지 않는다. 특별히 말씀의 율법은 거룩한 모든 것들을 통어하며(거느리어서 제어함=rule) 불순하고 거룩치 못한 모든 것들을 금지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것을 기록한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도함을 받았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⑶ 성경의 일치와 조화로 인해서이다.

성경 속에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사이에 일치가 있으며, 성경의 예언과 이 예언의 성취 사이에 일치가 있다. 성경에는 또한 명령들의 조화, 역사적 사건들의 조화, 그리고 계획의 조화가 있다. 성경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장구한 시대에 걸쳐 각기 다른 장소에서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기록들은 모두 조화를 이루었으며 어떠한 상이함도 그 속에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든 기록자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인도함을 받았음이 분명하며,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⑷ 성경에 표현된 신비한 요소들로 인해서이다.

우리는 성경이나 신성의 삼위일체,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들의 신비한 연합에 대해 읽는다. 이러한 모든 것들 즉 신비한 요소들은 가장 박식한 현자들과 박사들의 지능을 능가하는 것인데 더군다나 불학무식한 어부들의 지능이야 능가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것들이 바로 그들에 의해 나타났다. 이것으로 보아 그들은 자신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직접적인 영감의 가르침으로 기록한 것임이 명백하다.


 ⑸ 성경의 고대성으로 인해서이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인간의 다른 어떠한 기록보다도 이전에 기록되었으며, 이것은 가장 고대의 역사, 이를테면 고대 세계의 창조, 홍수 그리고 기타 등등의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와 같은 고대의 역사는 하나님 이외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분명히 성경의 저자이시다.


 ⑹ 성경의 능력과 효능으로 인해서이다.

 ① 성경은 확신을 시키고 분기시키며 양심을 뒤흔드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히 4:12) ② 성경은 심령을 변화시키고 개종시키는 능력이 있다.“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시 19:7) ③ 성경은 인간을 영적인 죽음과 사망 가운데서 살리는 능력이 있다.“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55:3), “주의 말씀으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 119:50). ④ 성경은 가장 깊은 고뇌 속에서도 기쁨과 위로를 주는 능력이 있다.“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시19:8). 성경을 펼쳐 적용하면 자연의 능력을 초월하는 막강한 효능을 일으킨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서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하나님만이 성경의 저자이시다.


 ⑺ 성경의 의도와 계획으로 인해서이다.

 ① 성경의 의도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데 있다. 그 의도는 어떤 누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생들을 낮추며 떨어뜨리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은혜를 높이는데 있다. ②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비참한 상태로 전락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비참한 상태로 전락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과 구원의 방법을 제시한 것을 볼 때 이 신기한 지혜의 방법은 인간의 어떤 두뇌로도 고안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이 방법이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에게서 추출되었다는 점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이것을 제시해 준 성경이 하나님의 책임을 보여준다.


⑻ 성경은 기적에 의해 확증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 가운데 여러 가지 기적들을 대면한다. 특히, 예수님과 사도들에 의해 역사 되어진 기적들은 그들의 교훈을 확증시킨 것으로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것들 중에는 나면서 장님이었던 자를 볼 수 있게 한 역사, 죽은 자를 살린 역사, 말씀 한 마디로 바다를 잔잔케 한 역사 등 이보다 더한 것들도 많이 있었다. 이 모든 기적의 역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길에 의해 발생된 것들이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충실하게 전달하였다. 성경은 우리 중에 현존하는 기록들, 즉 기적들에 대한 그리고 그것들에 관한 여러 명의 거룩한 사람들의 기록들을 충실하게 전달하였으며, 또한 그 기록들(위조될 수 없고 발견되지도 않은)의 사본들 ― 하지만 이것은 원본과 일치됨 ― 을 충실하게 전달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기적들에 대해 확실히 역사하셨던 이상 하나님은 명백히 성경의 저자이시며 이것들로써 성경의 진정성은 확인된다.


 ⑼ 성경은 순교자의 피에 의해 확증되기 때문이다.

 초창기 시대에 생명을 잃으면서도 성경의 진정성을 확증하고 증거 했던 그리스도인들은 수 없이 많았다. 성경 진리를 믿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위대한 신앙은 그리고 고난을 당하면서도 보여주었던 위대한 인내와 시종일간 변치 않는 정신은 다른 것들과 비교하여 성경의 신적 진정성을 증명함에 있어서 훌륭한 논증이 되었다.


 ⑽ 성경 안에서 성경으로 말미암아 성경으로 더불어 신자들의 마음속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증거로 인해서이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이는 “오직 그의 기름 부으심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기”때문이다.(요일 2:20,27) 이 증거와 성령의 가르치심이 없이 다른 모든 논증은 구원하는 믿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③ 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으로 남겨져야 했는가?

⑴ 말씀의 역사와 교훈은 후세에 전달되기 위해 더 나은 방편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말씀이 여러 시대 거룩한 사람들에게 계시된 이후 그들의 기억에만 의존하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을 타고 내려왔다고 한다면(말씀을 위탁받은 사람이 신실하다고 가정해도),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고 믿을 만한 것이 약하기 때문에 십중팔구 대부분의 진리들은 현 시대에 와서는 퇴색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 세대에 알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는 것 외에 달리 없다. “내가 이제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벧후 3:1)

⑵ 복음이 말씀으로 기록되어짐으로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선지자와 사도들이 친히 받은 계시의 기록은 다른 어떤 기록보다도 쉽사리 믿어 질 것이다.

⑶ 모든 교훈을 통괄하고 모든 행위를 제어하는 신앙과 생활의 항구적인 규칙이 교회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쉽사리 젖어들기 쉽고 보다 그럴듯해 보이는 원리와 관습들(이것들은 부패한 것들임)은 성경에서 표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근절되어야 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④ 구약 성경은 어떤 것이고, 신약 성경은 어떤 것인가?

구약 성경은 성경 전반부에 실려 있는 것으로 이것은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말라기에서 끝난다. 신약 성경은 성경 후반부에 실려 있는 것으로 이것은 마태복음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에서 끝을 맺는다.


⑤ 왜 성경 전반부를 구약 성경이라 부르는가?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우신 은혜언약 혹은 은혜계약이 옛 시대 때 계시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계약의 주재자요, 언약의 중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상징과 모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번거로운 직무와 의식적인 율법의 준수가 요구되었다.


⑥ 왜 성경 후반부를 신약성경이라 부르는가?

 하나님의 계약 혹은 은혜언약이 새 시대에 계시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상징이나 모형이 없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육체를 입고 오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였으며 그것을 폐지하심으로 그의 백성을 모든 예속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이제는 보다 신령한 예배를 요구하신다.


⑦ 외경에 나와 있는 경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

 이 책들에는 여러 가지 진정하고 훌륭한 사실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여느 다른 책들과 같이 읽어 유용한 것들이 많지만) 이것들은 정경이나 하나님의 말씀의 부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⑴ 이것들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던 유대인들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⑵ 이 책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틀린 부분과 일치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⑶ 이 책에는 정경에서와 같이 능력과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⑷ 지혜서(Ecclesiasticus: 모든 외경서 중 가장 우수한 것)의 저자가 이 책에 어떤 오류가 있다면 용서하길 바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그가 무오하신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⑧ 성경은 교황주의자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그 권위가 교회에 의해 생겨난 것인가?

아니다.

⑴ 그들이 성경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하는 교회는 변절되고 타락된 교회요 적 그리스도의 좌소가 되기 때문이다.

⑵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본질을 성경에 두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므로 성경은 그 권위를 교회에 의존할 수 없다.

“너희는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19,20)

 ⑶ 만일 성경의 권위가 교회에 의존되어 있다면 성경 없는 교회는 본질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경의 증거로부터 믿는 우리의 믿음은 확실한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이 없는 교회는 무오할 수가 없다.


⑨ 왜 성경이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데 규칙이 된다고 하는가?

 우리 믿는 모든 도리들은 측량되고 판단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야 하는 모든 의무들은 이 규칙에 일치해야 하고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무릇 이 규칙을 행하는 자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 지어다”(갈 6:16)


⑩ 왜 성경이 유일한 규칙이라 불리는가?

성경이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겁게 해 드리도록 인도하는데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⑪ 자연의 이성은 성경의 빛을 받지 않고 우리를 인도하는데 충분치 못한가?

⑴ 자연의 이성은 심성에 심기운 신성의 본래적인 발로에서 그리고 창조와 섭리와 사역에 나타난 신성의 증거에서 나온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은 계시다는 것과, 이 하나님은 그 존재와 능력과 지혜와 선함이 무한하시다는 것과 그러므로 그는 지으신 모든 피조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고 존숭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⑵ 그러나 자연의 이성은 하나님에 대해 완연히 구원의 역사를 보여줄 수 없다. ① 이것은 죄인에 대한 자기 아들 안에 있는 사랑과 긍휼을 보여줄 수 없다. ② 이것은 그가 어떻게 영광을 받으시고 존숭을 받으시는가를 보여줄 수 없다. ③ 이것은 우리가 현세에서 혹은 이후에 세계에서 그를 어떻게 즐겁게 해드리는가를 보여 줄 수 없다.


⑫ 로마교회의 기록되지 않은 유전은 우리의 행위의 규칙으로 사용되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권고하기를(살후 2:15) 기록에 의해서든지 입의 가르침에 의해서든지 그들이 배운 유전을 굳게 지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⑬ 로마교회의 기록되지 않은 유전은 우리 행위의 규칙으로 사용되지 못한다.

 ⑴ 왜냐하면 어떠한 기록되지 않은 유전도 입술의 말을 통해 사도 시대부터 우리 시대까지 오류와 부패의 위험 없이 전달되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소위 그들이 사도적이라 부르는 유전을 규칙적으로 사용하려 할 때 이것이 부패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없다.

 ⑵ 왜냐하면 우리는 로마교회가 너무나 부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그들의 유전도 부패했다는 것을 자연적으로 추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역사가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들의 교회 어떤 세대, 이를테면 9세기와 10세기 그리고 그 이후 얼마동안 부패, 무지. 악독이 극단적으로 만연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간의 변천과정을 통해 순수한 유전 받기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

 ⑶ 왜냐하면 그들의 여러 가지 유전은 하나님 말씀의 표현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정죄하였던 바리새 장로들의 유전과 같이 부패한 것이다.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 15:6,9)

 ⑷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얼마동안 기록되지 않은 유전을 굳게 붙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스도의 역사와 복음의 상당 부분이 사도들의 입과 증거를 통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그리스도의 모든 역사, 구원 얻기 위해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하고 행해야만 하는 이 모든 것들은 현재와 미래의 교회들을 위해 신약 성경책들에 기록되어졌다. 기록됨으로 복음은 세월이 흘러도 기록되지 않은 유전들로 인해 부패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록되지 않는 유전들은 단연 거부되어야 한다.


⑭ 사람 안에 있는 광명과 성경을 떠난 하나님의 영은 우리 행위의 지침으로 사용되지 못하는가? (퀘이커 교도들과 열광주의자들이 그렇게 주장한다.)


 ⑴ 말씀 없는 빛은 단지 어두움일 뿐이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리라”.(사8:20)

 ⑵ 성경의 규칙 없이 혹은 그것에 역행하는 영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영도 아니요, 진리의 영도 아니요, 넘어짐과 미혹의 영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기를 말씀 속에서 말하고 있는 사도들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자는 미혹의 영에게 지배를 받게 된다고 하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1‐3,6)



제 3 강  성경이 가르치는 것


제3문 : 성경은 주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답 :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믿을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이다.


①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믿는다는 것은 진리에 동의하고 진리를 신뢰하는 것이다.

 

②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믿는 다는 것은 거기에서 나온 진리에 동의하고 진리를 신뢰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거룩한 믿음이다.


③ 성경이 하나님에 관해 가르칠 때 어떠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가?

 성경이 하나님에 관해 가르칠 때 믿음의 모든 요의가 내포되어 있다


④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 이외에 어떠한 것도 믿음의 요소로 받아들일 수 없는가?

 그렇다. 이 세상 어떠한 책도 성경 이외에는 신적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책들은 절대 무오 할 수 없다.


⑤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에 대하여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이며, 어떤 것을 행해야 하는 가이다. 우리는 피조물이요 백성이요 자녀이기 때문에 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⑥ 우리는 성경에서 요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아무 것도 행위의 본분을 갖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은 너무나 넓고 광대하여 인간의 내부와 외부 그리고 모든 대화에 이르기까지 미치며 주장한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직접적으로 시종일관하여 묘사되어 있는 것 이외 어떤 것도 우리가 행하는 본분이 못된다.


⑦ 성경은 믿음과 행실의 문제에 관해 어떻게 가르치는가?

 성경은 믿음과 행실의 문제에 관하여 가르침에 있어서 이것들을 외부적으로 확연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내부적으로 유효하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역사할 때만이 가능하다.


⑧ 왜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에 관하여 어떻게 믿을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하시는가에 대해 주로 가르친다고 하는가?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은 신적 권위의 인을 갖고 있기에 동일하게 진리이지만 성경에 있는 모든 것들은 동일하게 필요하고 유용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구원에 이르도록 믿어야 하고 행해야 하는 것을 성경은 주로 가르치고 있다.



제 4 강  하나님은 누구신가


제4문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답 : 하나님은 영이시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분이시다.


①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신가?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② 영이란 무엇인가?

 영은 살도 뼈 육체적인 지체도 갖고 있지 않은 비물질적인 존재이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먼저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있느니라”.(눅24:39)


③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눈과 귀와 입과 손과 그밖에 다른 지체를 가지셨다고 말하는데 이는 어찌된 영문인가?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시 34:15), “여호와의 입이 그것을 말씀하셨느니라”(사1:20),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1)

이와 같이 육체적인 지체를 가졌다고 하는 표현은 사람에게와 같이 하나님에게도 고유적으로 지체를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보잘것없는 이해력으로 인하여 인간의 방편에 따라 표현하시기를 기뻐하셨다.(여기에 자신을 표현하신 것과 같이) 우리 인간은 그 같은 유사성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잘 쉽사리 깨닫게 된다.


④ 하나님은 역시 영적이며 비물질적 존재인 천사나 인간의 영혼과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⑴ 천사와 인간의 영혼은 영으로 지음 받았으며 존재에 있어서는 하나님께 의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음 받지 않은 영이시며 그 존재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

 ⑵ 천사와 인간의 영혼은 유한한 영들이나 하나님은 무한한 영이시다.


⑤ 무한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무한하다는 것은 정도, 범위, 혹은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⑥ 하나님은 어떤 점에서 무한하신가?

 ⑴ 하나님은 그의 존재나 완전성에 있어서 무한하시며 범위가 없으시다. 그러므로 그는 측량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온전히 알겠느냐”(욥 11:7)

 ⑵ 하나님은 장소에 있어서 무한하시며 정도와 범위가 없으시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것에 편재하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4),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치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왕상 8:27)

 ⑶ 하나님은 시간에 있어서 무한하시며 정도와 범위를 초월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하시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딤전 1:17)

 ⑷ 하나님은 그의 모든 공유적 속성에 있어서 무한하시며 정도의 범위를 초월하여 계신다.


⑦ 영원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영원하다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을 말한다.


⑧ 하나님은 영원하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내는가?

 ⑴ 성경에서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다”.(시90:20)

 ⑵ 이성으로 ① 하나님은 태초에 세상과 그 안에 만물을 존재케 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 이전, 즉 시간세계 이전 영원 전부터 존재하셔야만 한다. ② 하나님은 제 1 존재자이시기 때문에, 절대 자존자이시기 때문에, 어떠한 능력도 그를 비존재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불변하시며, 그러므로 그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시다.


⑨ 하나님은 영원성에 있어서 피조물들과 어떻게 다르신가?

 ⑴ 어떤 피조물들(하늘과 땅의 기초들)은 시간과 함께 시작되었다가 시간과 함께 종말을 맞는다.

 ⑵ 어떤 피조물들은 시간과 함께 시작되었다가 시간 안에 종말을 맞는다. 땅위의 피조물들은 생성하고 부패하며 태어나서 잠시 동안 그 생명을 부지하다 죽는다.

 ⑶ 어떤 피조물들은 시간 안에 시작하였으나, 시간과 함께 혹은 시간 안에 끝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된다.(천사와 인간의 영혼)

 ⑷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시는데 그는 영원 전부터, 시간 세계 이전부터 시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영원까지 존재하실 것이다


⑩ 불변하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불변하다는 것은 어떤 변화가 없이 항상 동일한 것을 말한다.

 ⑴ 하나님은 그의 본질과 본성에 있어서 불변하시다.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며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시 102:25‐27)

 ⑵ 하나님은 계획과 목적에 있어서 불변하시다.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사 46:10), “하나님은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 6:17))

 ⑶ 하나님은 그의 사랑과 특별하신 은혜에 있어서 불변하시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⑪ 하나님을 어찌하여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능력과 거룩과 공의와 선 그리고 진리에 있어서 무한하시며 영원하시며 불변하시다고 하는가?

 공유적이며, 피조물에게서도 어느 정도 발견되어지는 존재, 능력, 지혜, 거룩, 정의, 선 그리고 진리는 하나님 안에서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며 그래서 이것들은 완전히 비 공유적인 양태(incommunicable manner)로 존재한다.

 ⑴ 피조물도 존재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한한 존재이며 시간상의 변화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무한, 영원, 불변하다.

 ⑵ 피조물도 지혜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지혜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며 절대 완전하다.

 ⑶ 피조물도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유한하고 한정된 능력이다. 이것은 곧 없어질 것으로서 하나님께 의존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능력에 있어서 무한하시며 전지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독자적으로 수행하실 수 있으시다.

 ⑷ 피조물도 어느 정도 거룩과 정의와 선함과 진리를 갖고 있으나 이것들은 인간 안에 있는 것으로서 유한하며 하위의 것이며 변화에 굴복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원래 하나님 안에 있는 본질이며 그 안에서 무한하고 완전하다 그의 거룩은 무한하며 그의 정의는 무한하며 그의 선함은 무한하며 그의 진리는 무한하다. 이것들은 그 안에서 어떤 변화나 변경의 가능성 없이 영원히 지속된다.


⑫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고유한 본성이며 단 하나의 영원, 완전한 행위로써 그 자신과 모든 가능한 것들로 완전히 아시며 그 지혜로 말미암아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미래의 사실들을 조성하시고 운행하시고 명령하신다.


⑬ 하나님의 지혜는 어디에 나타나는가?

 ⑴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가능한 것들, 즉 과거 모든 것들, 현재 모든 것들, 미래 모든 것들의 본성, 원인, 효력, 그리고 작용에 대해 완전히 알고 계심 가운데서 생겨난다. 이것들은 인간들이 어떤 사물을 대할 때와 같이 관계, 관찰, 혹은 이성의 추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번의 간단한 그리고 영원하신 지혜의 행위에 따라 행하시는 것이다.

“주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147:5),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시139:1,6),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3)

 ⑵ 하나님의 지혜는 그가 천상 천하에 만드신 아름다운 그리고 다양한 피조물 가운데 나타난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나이다.”(시104:24)


 ⑶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아들로 말미암은 구원 계획에서 나타난다. 그것을 통하여 그의 공의는 만족되고 그의 백성들은 자비로운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고전2:6,7) 이것은 교회에 의해서 천사들에게 알게 한 지혜이다.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엡3:10)


⑷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시는 그 탁월함 가운데 나타난다.

ⓐ 비이성적인 피조물에 대해서  

이들은 자신들을 인도할 이성을 갖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그들의 존재 목적에 맞게 다스리신다.

ⓑ 악한 이성적 피조물에 대해서  

이들은 자신의 불명예를 위해 의도되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들의 모든 행위는 다스리심을 받는다.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시76:10)

ⓒ 그의 교회와 백성들에 대해서

그는 가장 무가치한 자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푸심으로 그들의 생각과 의도를 뛰어넘어 그들에게 자격을 부여하시고 도구로 사용하시며 그의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다.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때에 맞는 양식을 주시고 교묘하고 막강한 원수들의 해악에서 그들을 지켜주시며, 세상에서 인생들이 그것을 역행시키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수단으로 사용하시어 그의 관심사를 이루어 가신다. 이와 같은 사실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명백히 선포한다.


⑭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은 그의 고유한 본성 가운데 있는 것으로 그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로라”.(창17;1)


⑮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⑴ 하나님의 능력은 그가 행하셨던 사역 가운데서 나타난다.

그는 만물을 창조하셨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롬 1:20).우리가 신. 구약 성경에서 접하게 되는 바, 자연의 능력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기적들을 그는 일으키셨다. 그는 스스로 일어나셨으며 교회를 박멸하려 안간힘을 다 쓰는 세상과 지옥 모든 권세의 분노와 해악의 와중에서도 모든 세대 가운데 그의 교회를 보존하셨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⑵ 하나님의 능력은 그가 행하고 계시는 사역 가운데 나타난다.

그는 모든 피조물의 존재와 활동을 주장하고 계신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 ”.(히1:13) 그는 그의 택한 백성들을 마귀의 올무로부터 모으시며, 그들을 능력 있게 이끄시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신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9)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은혜로 역사 하시고 그의 사역을 계속하시며 그들로 인내하게 하신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5) 그는 행악자를 벌주시며 사단을 자기 백성들 발아래 두신다. 그는 계속적으로, 쉽사리, 불가항력적으로 그리고 지치지 않으시고 일을 하신다. 이 모든 것은 그의 능력을 보여준다.


 ⑶ 하나님의 능력은 그가 행하실 사역 가운데서 나타난다.

그는 이 땅의 왕국들을 그의 아들에게 굴복케 하실 것이다. 그는 현재 그렇게도 막강해 보이는 적 그리스도를 멸하실 것이다. 그는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을 무덤에서 일으키실 것이며 가시적인 세계를 멸망시키실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진노의 능력을, 행악자들을 지옥에 넣어 영원히 벌하심으로써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⑷ 하나님의 능력은 그가 하실 수 있는 사역 가운데서 나타난다.

그는 무엇이든지 그가 기뻐하시는 바를 행하실 수 있으시다. 그는 무엇이든지 능력이 무한하며 무엇에든지 모순이 없으시고 불완전이 없으시다.


⑯ 하나님의 거룩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거룩은 그의 본래적인 속성인 바 그는 무한히 순수하시다. 그는 그 자신의 순수성을 사랑하시고 즐거워하시며 그의 피조물 중 어떤 것이나 이 속성을 그대로 닮기를 원하신다. 그는 모든 비 순수에 완전히 자유하시고 이 비 순수를 보실 때마다 그것을 미워하신다.


⑰ 하나님은 어찌하여 거룩하다고 일컬어지는가?

⑴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이다.

“그 이름은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시 11:9)

⑵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하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계 4:8)

⑶ 신성의 인격은 거룩하시다.  

아버지는 거룩이다.“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사”(요17:11) 아들은 거룩하시다.  “ 하나님의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 ”(행 4:27). 성령은 거룩하시다.  “성령(Holy Ghost)안에서 기뻐하라”.(롬 14:17)

⑷ 하나님의 사역은 거룩하시다.

“여호와는 그의 모든 길에서 의로우시고 그의 모든 사역에서 거룩하시다”(시 145:17)

⑸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다 .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Holy Scriptures)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롬1:2) 그의 율법은 거룩하다.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그의 복음은 거룩하다.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눅 1:72)


 ⑹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거룩하다.  

그것의 재료가 거룩하다.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여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말1:11) 그것의 태도가 거룩하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요 4:24) 그것의 때가 거룩하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히 지키라“(출 20:8)


 ⑺ 하나님의 처소는 거룩하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사 57:15)


 ⑻ 천상에서 하나님께 시중드는 천사는 거룩하다.

 “인자가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원문에는 “all the holy angels with him”이라 나와 있음.)(마 25:31)


 ⑼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하다.  

 “너희는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이니라” (신 7:6)


 ⑽ 하나님은 거룩을 요구하시고 거룩 중에 일하시고 거룩을 사랑하시고 거룩을 기뻐하신다.

“너희는 거룩하라”(벧전 1:15),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니라.”(살전 4:3)


 ⑾ 하나님은 죄와 죄인들을 무한히 미워하시며 거룩함이 없는 자는 누구도 그의 나라로 들어감을 허락 받지 못한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리이다.”(시 5:5),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⑱ 하나님이 공의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공의는 그의 본래적인 속성으로서, 그 자신 안에서와 그의 피조물들을 다루심에 있어서 무한히 의롭고 공평함을 일컫는다.


⑲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서 보여지는가?

 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그리스도께 형벌을 내리심에 있어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 53:5)

 ⑵ 하나님께서 진노의 날에 불신자들의 죄를 갚으심에 있어서.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 불 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순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히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7‐9)

 ⑶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공로를 인하여 보상을 베푸심에 있어서.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니라”(마5:12),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


 ⑷ 하나님께서 현 세상에서 백성들이나 개인의 죄를 잠정적으로나마 갚으심에 있어서.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의 죄로 형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애3:39),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단 9:7)


⑳ 하나님의 선하심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의 본래적인 속성인 바 그는 온전히 선하며 모든 선의 조성자이시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시 119:68)


21. 하나님의 선은 어디에 나타나는가?

하나님의 선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⑴ 그가 만드신 작품 속에서.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⑵ 그 모든 피조물을 위하여 자비와 양식을 주심에 있어서 .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 145:99),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오며”(시145:15)

⑶ 행악자와 원수들을 향해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심에 있어서.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롬 2:4)

⑷ 하나님의 선하심은 주로 그의 백성들을 향하신 특별한 사랑과 자비 가운데 나타난다.

그는 선택하시고 구속하시고 부르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양자로 삼으시고 거룩케 하시고 모든 특권을 부여하시고 세상에서 그의 사랑을 명백히 보여주시고, 그들을 취하셔서 오는 세상 그의 왕국을 소유케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시며 선함이 풍성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며 허물과 불의와 죄를 용서해 주시느니라”(출 24:6,7)


22.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그의 본래적인 속성인 바, 그는 성실하시고 미쁘시며 모든 거짓과 위선에서 자유하시다.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딛 1:2),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히 6:18)


23.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어디에 나타나는가?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여러 부분에서 나타난다.

⑴ 그가 계시하셨던 흠 없고 점 없는 가르치심의 건전함에서이다.

“너는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딤후 1:13)

⑵ 그가 기록하셨던 거짓이나 실수가 없는 역사의 확실성에서이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함이로라”.(눅 1:3,4)

⑶ 그가 예언하셨던 바 실책이나 오류가 없었던 예언의 성취에서이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요1:4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⑷ 그가 그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던 그 약속의 성취에서이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히 10:23)

⑸ 그가 행악자들에 대하여 경고하셨던 바 심판의 시행에서이다.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겠느냐”(슥 1:6)

⑹ 그러나 하나님의 진실하심의 가장 위대한 현현은 그가 성경에 예시한 대로 보상과 심판을 베푸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대심판 날에 있어질 것이다.



제 5 강  삼위일체의 하나님


제5문 : 하나님 한 분 외에 또 다른 신이 있는가?

답 : 한 분뿐이시니 곧 그는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① 왜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라고 하는가?

여러 잡신들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 6:4),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4‐6)


② 왜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고 일컬어지는가?

죽은 우상들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시 115:4‐7), “너희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라”.(살전 1:9)


③ 왜 하나님은 참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가?

모든 거짓 신들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이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 멸망할 것이나”(렘 10:11,15)


④ 하나님이 한 분뿐이시라는 사실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이 무한하신 존재는 다른 모든 존재들에게 한계와 범위를 설정하셨기 때문에 한계와 범위가 설정된 피조물들은 무한할 수 없다. 그래서 무한하신 존재는 한 분밖에 있을 수 없다.


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보존하신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에 내가 너희를 명하노니”(딤전 6:13),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행17:28)


⑵ 하나님은 영원히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오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왕이시라”.(렘 10:10)


⑥ 하나님은 참되시고 진정한 존재를 갖고 계시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세상의 모든 무신론자들이 자신의 이성으로써 여러 가지 논증을 경청하면 충분히 납득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실은 논증으로 나타난다.


⑦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증명함에 있어서 제1의 논증은 무엇인가?

⑴ 천상의 존재.

거기에 세워진 상층천, 거기에 위치된 휘황찬란한 광명들, 거기에 운행하는 반짝이는 별들.

⑵ 지상의 존재.

그것이 공중에 공처럼 매달려 있지만 그 기초는 확고하고, 폭풍이 휘몰아쳐도 움직이지 않는다.

⑶ 광대한 바다의 존재.

거기에는 물이 넘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바다가 지상보다 높다고 생각하지만 그 경계가 정해져 있고 제한되어 있어 그 땅과 어민들은 엄몰하지 못한다.

⑷ 천상과 지상에 있는 여러 가지 피조물의 존재들 특별히 자체에 생명이 있어 활동하는 존재들.

⑸ 가장 중요한 인간의 존재들.

대중에 들어 있는 기묘한 인간의 솜씨, 특별히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이고 이성적이고 불멸의 존재인 영혼은 물질의 능력으로부터 나타나지 않고 (동물의 각 혼과 같이) 그 작용이 육체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의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게 되는 이 모든 작품들을 볼 때, 하나님은 계시고 그들에게 존재를 주시고, 그들을 그 안에 피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⑧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만물의 존재로부터 증명함에 있어서 논증의 효력은 어디에 있는가?

 존재를 가지는 만물은 다음과 사실 중 하나여야만 한다.

⑴ 만물은 그 존재를 영원 전부터 취했다.

⑵ 만물은 그 존재를 스스로 취했다.

⑶ 만물은 그 존재를 하나님에게서 취했다.

  ⑴ 에 대해 ‐ 만물은 그 존재를 영원 전부터 취할 수 없다. 그렇게 되자면 만물은 기간에 있어서 무한해야 하며 시간에 있어서 제한이 없어야 하고 필연적이고 어떠한 변경이나 파괴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성과 경험이 이것과 반대가 됨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영원한 것이 못된다.

  ⑵ 에 대해 ‐ 물질은 스스로 그 존재를 부여할 수 없다. 물질에 존재를 부여하자면 그 물질 이전에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나 물질은 동시에 존재하고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상호 모순이며 억측이다.

  ⑶ 에 대해 ‐ 이것은 하나님이 필연적으로 계시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는 필연적이고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이시고 전능자이시며 모든 피조물들을 존재케 하신 자이시다.


⑨ 하나님의 존재 사실을 증명하는 제2의 논증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제2의 논증은 만물을 운행하심에서 이끌어 내어진다.

⑴ 천체의 아름다운 질서, 항구적인 운행, 지상에 빛과 열과 세력을 미침, 이것들 없이는 지상의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은 순식간에 시들어 죽고 만다.

⑵ 구름 속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거기서 메마르고 건조한 땅위에 비를 뿌린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아무 과일도 열매맺지 못함.

⑶ 바람날개로 공기를 깨끗케 하고 땅을 시원케 함. 이것이 없다면 좀 뜨거운 날씨에선 사람이 죽고 만다.

⑷ 강하고 사나운 동물들이 약하고 겁많은 인생들에게 굴복함.

⑸ 비이성적이고 생명이 없는 피조물들이 다른 피조물에게 굴복함, 자신들의 의사가 없이도 그들을 인도하며 목적에 이르게 함.

⑹ 세상 여러 피조물이 가지는 목적에 분명히 모순되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혼란 없이 모두가 일치하는 공통된 목적으로 인도하심. 이것은 분명히 무한하시고 능력이 많으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지고하신 세상의 통치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⑩ 하나님의 존재 사실을 증명하는 제 3의 논증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제 3의 논증은 모든 시대, 모든 국가, 모든 인생들의 양심에 신성이 심기어져 있음에서 이끌어 내어진다. 만약 그것이 일시적인 환영이나 근거 없는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렇게도 깊이 뿌리 박혀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⑴ 악명 높은 죄를 지은 그 양심에 역사하는 지옥의 고통과 고뇌, 무시무시한 두려움과 전율, 이런 것들은 인간으로부터의 형벌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그들 마음속에 심기어진 신성의 역사로 말미암아 미래 언젠가 보복을 당하리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신성의 존재를 증명한다.

⑵ 일반적으로 이교도들이 거짓 신을 숭배하는 그 숭배는 비록 그들이 그에 대해 무지할지라도 참되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⑪ 하나님의 존재 사실을 증거 하는 제 4의 논증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제 4의 논증은 성경의 계시에서 이끌어 내어 진다. 성경이 하나님이외 어느 누구도 저자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것의 장엄함과 신비, 능력 그리고 그와 같은 논증들이 증명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은 계신다는 것을 풍부하게 지적해 주며 그의 피조물의 책에서 보다 이 책에서 그 자신을 보다 명백히 계시하시며 그의 뜻을 나타내 보이신다.


⑫ 하나님의 존재 사실을 증명하는 제 5의 논증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증명해 주는 제 5의 논증은 그의 백성들에게 심기어진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이끌어 내어진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여된 거룩함의 인은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시켜주는 요소가 되며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도 개종 이전과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들은 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전능하신 그의 영의 능력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


⑬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그렇게 확실하다면,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자들이 왜 그렇게 많은가?

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삶을 살고 하나님이 없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은연중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그들의 양심에 그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⑵ 혹자가 하나님에 대한 인상을 마음속에서 대부분 씻어냈으며 그 자신에게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설득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쓰고 있지만 그것을 마음에 계속적으로 견지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큰 위험에 봉착할 때 때로는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느낀다.

⑶ 그들 스스로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설득을 해 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것에 대한 관심을 돌리고 그 안에서 그것을 흐리게 할뿐이다. 그들은 너무 악하여 하나님이 계신다면 자신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⑷ 물질은 혹자가 믿든지 안 믿든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태양이 비췰 때 비록 어떤 사람은 눈이 어두워 그 빛을 식별하지 못할지라도 그들로 하나님을 발견케 해 준다.


제6문 : 하나님의 신격에는 몇 위가 계시는가?

답 : 하나님의 신격에는 삼위(三位)가 계시는데, 곧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오, 본체가 동일하며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다.


① 신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격은 거룩한 본성 혹은 본질을 의미한다.


② 세 가지 거룩한 본성 혹은 본질을 갖고 계시는가? 아니면 세 하나님이 계시는가?

삼위(三位)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지만, 이들은 세 하나님이 아니요 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본질은 삼위에서 있어서 동등하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 5:7)


③ 신성 안에 있는 삼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신성 안에 있는 삼위로서 각위가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으며 세 가지 방법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하게 된다


④ 성부 하나님의 개성은 무엇인가?

성부 하나님의 개성은 영원 전에 아들을 낳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히1:5, 8)


⑤ 성자 하나님의 개성은 무엇인가?

 성자 하나님의 개성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것이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자의 영광이요”.(요1:14)


⑥ 성령 하나님의 개성은 무엇인가?

 성령 하나님의 개성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발출된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요15:26)


⑦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아버지는 다른 위들과 그밖에 모든 것의 원천이 되시며 신의 속성과 예배는 그에게 돌려진다.


⑧ 아들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⑴ 그는 성경에서 하나님이라 불리우시기 때문이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요 1:1),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 9:5)

⑵ 하나님의 속성이 그에게 돌려진다.

영원성 ‐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나는 있었느니라”.(요 8:58)

전지성(omniscience) ‐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 21:17)

편재성(omnipresence) ‐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과 함께 있느니라”.(마 18:20).

신적인 능력 ‐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 1:3)

⑶ 하나님께만 마땅히 돌아가는 존영과 예배가 그에게 속한다. 우리는 그를 믿어야만 한다. “또한 나를 믿으라”(요14;1)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28:19) 우리는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고전1:2).만일 아들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는 합당한 중보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⑨ 성령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⑴ 성령이 하나님이라 불리우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5:3,4)


 ⑵ 하나님의 속성이 그에게 돌려지기 때문이다.

 편재성(omnipresence) ‐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Whether shall I go from thy spirit? 시139:7). 특별히 그는 모든 신자들의 마음속에 계신다.  “저는(보혜사 곧 진리의 영)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전지하심 ‐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⑶ 하나님 이외엔 아무도 할 수 없는 역사, 이를테면

ⓐ 중생과 같은 것을 성령께서 행하신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 그는 신자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

ⓒ 그는 거룩하게 하신다.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15:16)

ⓓ 그는 위로하시는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보혜사(comforter)라 불리우신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5:26)

ⓔ 그는 교통하신다.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고후 13:14 )


⑷ 하나님께만 응당 돌아가야 할 존영과 경배가 성령에게도 속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믿어야 한다. 이것은 신조(일반적으로 사도신경이라 불리움)의 한 조항이다(내가 성령을 믿사오니).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28:19)


⑩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면서도 세 가지 독특한 인격을 갖고 계심은 어떻게 된 것인가?

⑴ 낳으시는 아버지는 성경에서 한 인격이라 불리운다.(히1:3). 그리스도는 그의 인격의 형상을 표현하였다고 하며 똑같은 이유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들도 한 인격이시며,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발출된 성령도 한 인격이시다.


⑵ 아버지와 아들이 각기 독특한 인격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은 요한복음 8:16‐18에서 명백히 증거된다.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⑶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과 구별되는 인격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은 요한복음 14:16,17에 나타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⑷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세 가지 독특한 인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 본체 안에 있다는 사실은 요한일서 5:7에 총체적으로 나타난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그러나 원문은 흠정역[KJV]을 이용하였으므로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ree are on e’이라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Living Bible], [New International], [Revised standard]를 차례로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So we hear these three witnesses; the voice of the Holy spirit in our hearts, the voice from heaven at Christ's baptism, and the voice before he died. And they all say the same thing’, ‘For there that testify, the spirit,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in agreement’, ‘There are three witnesses, the spirit,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gree’‐역자 주)

 이들 세 개는 세 가지 본체 혹은 세 가지 현현 혹은 세 가지 인격 혹은 인격외 그 밖의 어떤 것이다. 그러나 ⓐ 그들은 세 가지 본체가 아니다. 동일한 구절에서 그들은 하나라고 불리우기 때문이다. ⓑ 그들은 세 가지 현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속성들은 현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가지나 혹은 열 세 가지 이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현현이 다른 현현을 낳거나 보낸다고 할 수 없다. ⓒ 그들은 인격이외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 가지 독특한 인격이며 그들의 관계와 고유한 개성에 의해 구별된다.


⑪ 신성 안에 세 가지 독특한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⑴ 우리는 그들을 신성 모독자로 판단해야 한다. 그들은 성경에서 하나님 자신에 대해 이러한 차이를 분명히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영광스런 하나님을 거슬려 말했기 때문이다.

⑵ 이들은 본질의 연합 안에 독특한 인격이 있음을 가르치는 이 기본적인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이므로 저주받아 마땅한 이단들이다. 이 교훈은 오래 전부터 여러 이단들에 의해 부인되어 왔다. 그들은 사벨리우스주의자(Sabellians)들이며, 아리안주의자(Arians)들이며, 포티네안주의자(Photineans)들이다. 이들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의 신성을 거부하는 자들이었다. 이 무리들 중에 퀘이커 교도들(Quakers) 또한 계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도 신성 안에 삼위가 존재함을 부인한다.


제 6 강  하나님의 작정하심


제7문 : 하나님의 작정은 무엇인가?

답 : 하나님의 작정은 그 뜻대로 하신 영원한 경륜인데, 이로 말미암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앞으로 되어질 일을 미리 정하신 것이다.


① 하나님의 작정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작정은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영원 전에 계획하시고 미리 명하시고 정하시고 결정하신 것이다.


② 앞으로 되어질 일을 하나님은 어떻게 계획하셨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따라 그의 의지에 따라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가장 자유스럽게 가장 현명하게 모든 행사를 작정하셨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엡1:11)


③ 하나님은 왜 앞으로 되어질 일을 작정하셨는가?

 그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만물을 작정하셨다.


④ 하나님의 작정에는 어떠한 종류가 있는가?

하나님의 일반 작정(general decrees)과 하나님의 특별 작정(special decrees)이 있다.


⑤ 하나님의 일반 작정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일반작정은 그의 영원하신 목적으로 세워진 것인데, 그는 그것으로써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들을 미리 정하셨다. 그는 모든 피조물들의 존재와 활동과 행위, 그리고 선한 행위 뿐 아니라 모든 악한 행위의 허용까지도 미리 정하셨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 자”(엡1:11),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행4:27,28)


⑥ 하나님의 특별작정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특별작정은 천사와 인간의 작정, 특별히 인간의 선택(selection)과 유기(reprobation)에 대한 작정을 말한다.


⑦ 하나님의 인간 선택에 대한 작정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인간선택에 관한 작정은 그의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계획을 말하며 그는 그의 기뻐하심에 따라 어떤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끝날에 영원한 생명과 복락에 이르게 하셨으며, 거기에 이르는 수단으로 믿음과 거룩을 부여하심으로 그의 지극히 부요하신 은혜를 찬양하게 하셨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⑧ 하나님의 인간 유기에 관한 작정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유기에 관한 작정은 선택받지 못한 모든 자들에게 임할 영원한 계획(그의 주권과 불변하는 의지에 따라)을 말한다. 그는 그들을 그들의 죄에 따라 멸망 받도록 버려 두셨으며 영원한 형벌의 날에 그의 진노와 무한한 공의의 능력을 찬양 받으신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 9:21,22)


⑨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선택으로 작정하시고 어떤 사람은 유기로 작정하시는가?

그것은 선택된 자 안에 예견된 선행으로 인해 되어진 것도 아니요, 유기된 자 안에 예견된 악행으로 인해 되어진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그렇게 하시고자 원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선택하셨고 그렇게 하시고자 원치 아니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선택하지 아니하셨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롬9:11,13,18)


⑩ 어떤 사람이 현생에서 선택함을 받았는지 버림을 받았는지 알 수 없는가?

⑴ 선택받은 자들은 효과적인 부르심에 의해 자신들의 선택을 알 수 있다.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

⑵ 그러나 어떤 사람도 이생에서 자신들이 버림받았는지를 확실히 알 수 없다.(성령을 거스리는 죄를 제외함) 왜냐하면 가장 중한 죄를 지은 죄인도(여기서 성령을 거스리는 죄를 범한 자는 제외함) 부름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6:9‐11).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 20:6,7에서 어떤 사람들은 11시에 부름 받기도 한다는 말씀을 유의해야겠다.



제 7 강   작정의 시행


제8문 : 하나님은 그의 작정을 어떻게 시행하시는가?

답 :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의 사역으로 그의 작정을 시행하신다.


① 하나님께서 그의 작정을 언제 시행하시는가?

하나님은 영원 전에 행하려고 뜻하셨던 것을 행하려 하실 때, 그리고 그가 이전에 정하셨던 것을 나타나게 하려 하실 때 그의 작정을 시행하신다.


② 하나님은 어디에서 그의 작정을 시행하시는가?

하나님은 그가 영원 전에 만물을 만들기로 작정하신 뜻에 따라 만물을 만드시는 바, 창조의 사역에서 그의 작정을 시행하시며, 영원 전에 의도하셨고, 계획하신 그 뜻에 따라 만물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바, 섭리의 사역을 수행하심에 있어서 또한 그의 작정의 사역을 수행하신다.


제9문 : 창조사역은 무엇인가?

답 : 창조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에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그 권능의 말씀으로 매우 선하게 만물을 창조하신 일이다.


① 창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⑴ 부정적으로 말해 창조는 제 2원인을 사용하여 피조물을 만들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⑵ 긍정적으로 말해 창조는 ⓐ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나 ,이전에 아무 존재가 없는데서 존재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늘은 무에서 만들어졌고, 땅과 물과 하등동물들도 무에서 만들어졌다. 여전히 인간의 영혼들도 하나님께서 직접 불어넣으심으로 무에서 만들어졌다.

ⓑ 창조는 자연적으로 적합치 않는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것, 즉 어떠한 능력(제 2원인과 같은 것)도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모든 짐승과 가축 그리고 땅에 기는 것, 그리고 인간의 몸이 땅에서와 땅의 흙에서 만들어졌으며 최초의 여자는 남자에게서 취한 갈비뼈로써 지음 받았다.


② 지음 받은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인가?

⑴ 그렇다. 최초 6일간 창조된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가장 합당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지음 받았다.

⑵ 지금 생산되고 있는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 그들의 질료는 최초의 하나님에 지음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 한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을 발생시키는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 모든 발생과정에서 하나님은 최초의 제1원인 즉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서 작용하시기 때문이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물이 존재함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물질의 보존은 이를테면 계속적인 창조행위에 속하기 때문이다.


③ 하나님은 최초 창조 시 무엇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은 만물을 능력의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지의 아름다운 골격을 세우심에서 발하신 무한한 능력의 표현이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창 1:3,6,7),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6,9)


④ 하나님은 어느 때에 만물을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은 만물을 6일 동안에 창조하셨다. 그는 만물을 모두 순식간에 창조하실 수 있었으나, 6일 동안 일하셨으며 제 7일에는 쉬셨으므로 우리로 하나님 창조의 질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하셨으며 우리도 일을 함에 있어서 그를 본받아 주중 6일 동안 일하고 제 7일에는 휴식을 취하게 하셨다.


⑤ 하나님은 첫째 날에 무엇을 창조하셨나?

첫째 날 ‐  ⑴ 하나님은 하늘을 창조하셨다. 이 하늘은 가장 높은 하늘, 즉 삼층천(the third heaven)이라 불리우는 하늘이며, 모든 가시적인 하늘 위에 있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며, 복받은 자들의 자리가 있고, 거기에서 천군(the hosts of heaven)이라 불리우는 천사들과 다른 작품들을 보고서 기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지음 받았다.(욥38:7)

⑵ 하나님은 땅과 물을 창조하셨다. 그때 물은 어떤 구별 없이 아름다운 형체를 뒤덮고 있었다.

⑶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으며 그 빛은 나중에 만들어질 해 달 별들에게 덧입혀졌다..


⑥ 하나님은 둘째 날에 무엇을 창조하셨나?

둘째 날 ‐ ⑴ 하나님은 궁창을 창조하셨다. 이 궁창은 나중에 해와 달별들이 놓여질 하늘과 후에 새들이 날게 될 공중(성경에서는 종종 하늘이라 불리운다.)과 같은 것을 포함한다.

⑵ 하나님은 공중 궁창 위에 있는 물과 공중 궁창 아래에 있는 물을 나누셨다. 즉 그는 구름 위에 있는 물과 땅에 뒤섞여 있는 물을 구분하셨다.


⑦ 하나님은 셋째 날에 무엇을 창조하셨나?

셋째 날 ‐ ⑴ 하나님은 땅에 덮여 있는 물들을 한 곳으로 모으시고 그 곳을 바다라 칭하시고 드러난 마른땅을 육지라 칭하셨다.

⑵ 그는 땅위에 태양이나 비가 생기기 전에 모든 종류의 나무, 식물, 풀들을 지상에 생기게 하셨다.


⑧ 하나님은 넷째 날에 무엇을 창조하셨나?

넷째 날 ‐ ⑴ 하나님은 큰 광명인 해, 달을 만드시고 작은 광명인 별들을 만드셔서 그것들을 하늘에 두셨다.

⑵ 그는 이 광명들로 지구를 두르고 밤낮을 주관하고 징조와 계절과 날들과 연수를 있게 하기 위해 운동과 직책과 용도를 부여하셨다.


⑨ 하나님은 다섯째 날에 무엇을 창조하셨는가?

다섯째 날 ‐ ⑴ 하나님은 물들로부터 큰 고기와 모든 종류의 크고 작은 물고기와 바다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만드셨다.

⑵ 하나님은 물들로부터 활짝 열린 창공에서 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새들을 만드셨다.


⑩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무엇을 창조하셨는가?

여섯째 날 ‐ ⑴ 하나님은 땅에서부터 모든 짐승들과 가축들 그리고 땅에 기는 것들을 만드셨다.

⑵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을 만드셨다. 땅의 티끌로부터 몸을 만드시고 그에게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심으로 영혼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의 옆구리에서 갈비뼈를 취하여 여인을 만드셨다.


⑪ 하나님은 무엇을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

⑴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로 무에서부터 모든 것을 지으심으로 이와 같은 위대한 능력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 지라”(계 4:11)

⑵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들의 질서와 다양함을 인하여 지혜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나이다”.(시 104:24)특별히 인간을 향하신 주의 선하심의 영광을 보라, 그는 인간을 존재케 하시기 전에 먼저 거주지와 모든 유용한 피조물들을 제공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최초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 그 상태는 어떠하였는가?

하나님께서 최초 창조하신 만물은 매우 좋았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세상에 들어온 모든 악은 죄 자체에 스며 있거나 죄의 열매 혹은 결과를 일으킨다. 하나님은 인간을 선하고 행복하게 지으셨으나 인간은 자신을 죄와 비참한 상태로 몰아넣었다.



제 8 강  인간을 창조함


제10문 : 하나님은 사람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답 :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거룩과 의로 남녀를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게 하셨다.


① 하나님은 왜 남녀를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은 남녀를 창조하심으로 서로 돕고 종족을 번식케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 27,28)


② 인간이 최초로 지음받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되어졌다고 했는데 그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과 비슷함 또는 유사함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③ 인간이 최초 지음 받을 때 덧입은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⑴ 부정적으로 말해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에게 육체적 형체가 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 형상은 인간의 몸이 하나님과 가시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유사하게 닮았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⑵ 긍정적으로 말해 하나님의 형상은 내적으로 인간의 영혼이 지식과 의와 거룩에 있어서 하나님을 닮았음을 의미한다.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골 3:10),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④ 인간이 최초 지음 받았을 때 가졌던 하나님의 형상, 지식, 의, 그리고 거룩 속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었는가?

인간이 최초 가졌던 하나님의 형상은 보편적이고 완전한 전인(全人)의 의를 갖고 있었다. 그의 깨달음에는 지식이 그의 의지에는 정의가, 그의 사랑에는 거룩함이 있었다.

 

⑤ 인간은 지음 받을 때 그의 깨달음 속에 어떠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가?

인간은 최초로 지음 받을 때 하나님에 관한 지식, 그의 율법에 관한 지식, 그의 피조물에 관한 지식, 그리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만물(all things)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⑥ 최초 인간의 의지 속에 어떠한 의가 있었는가?

최초 인간은 그의 의지 속에 모든 옳은 것을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을 동반한 의지를 갖고 있었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만약 그때 그 자신 이외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행해야 할 의무를 능히 수행할 수 있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⑦ 최초의 인간의 감정 속에 어떠한 거룩을 갖고 있었는가?

 최초 인간의 감정은 거룩하고 순수했으며 모든 죄와 오염에서 벗어난 그리고 모든 무질서와 혼란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그 감정은 가장 고상하고 원대하고 거룩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최초의 인간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의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이었으며 그의 기뻐하는 것은 그 안에서였다. 세상 어떠한 피조물도 이같이 위대한 특권을 부여받지 못했다. 슬픔과 수치 그리고 그 같은 감정들은 인간 안에 격렬한 자극을 주는 요소가 되지만, 인간이 최초의 죄를 범하고서 슬퍼하고 부끄러워하기까지 아직 행동의 단계에까지 와 있지는 않았다.


⑧ 인간은 처음 지음 받을 때 어떤 통치권을 부여받았는가?

인간은 자신이 자신의 감정을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하등동물, 물고기, 가금 그리고 짐승들까지도 지배하는 통치권을 위임받았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후 그 중 많은 것들이 인간의 통치에 불순종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제 9 강  하나님의 섭리 사역


제11문 : 하나님의 섭리사역은 무엇인가?

답 : 하나님의 섭리사역은 지극히 거룩함과 지혜와 능력으로써 그의 모든 피조물과 그것들의 행동을 보존하고 통치하시는 일이다.


① 하나님의 섭리의 요소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섭리 요소는 ‐ ⑴ 물질들을 보존하는 것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시 36:6)

⑵ 물질들을 통치하는 것이다.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판단하시며 땅위의 열방을 치리하실 것임이니이다.”(시 67:4)


② 하나님은 물질들을 어떻게 보존하시는가?

하나님은 물질들을 ‐ ⑴ 계속 존재하게 하심으로써 보존시키신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시 119:89‐91)

⑵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심으로써 보존시키신다.

“중생의 눈(the eyes of all)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서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시 145:15,16)


③ 하나님은 어떻게 만물을 통치하시는가?

하나님은 만물을 지배하시고 가지런히 하시고 자기와 만물의 목적에 따라 인도하심으로 만물을 통치하신다.

“저가 그 능으로 영원히 자리하시며 눈으로 열방을 감찰하시나니 거역하는 자는 자고하지 말지어다”(시 66:7),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④ 하나님의 섭리의 대상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섭리의 대상은 ‐  ⑴ 그의 모든 피조물, 특별히 그의 자녀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1:3),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시 103:1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9,30),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26,28,30)


 ⑵ 피조물들의 모든 행위.

 ⓐ 모든 자연적인 행위. ‐  “그 안에서 우리가 살며 활동하나니”(행 17:28) ⓑ 모든 도덕적인 행위.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 15:5). 즉 선한 일을 도무지 할 수 없다는 뜻이다. ⓒ 모든 인간관계의 행위. ‐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출 21:12,13) ⓓ 도덕적인 모든 악행이나 죄.


⑤ 하나님의 섭리는 죄지은 행위들을 어떻게 관장하시는가?

⑴ 하나님은 인생들이 죄짓는 것을 허용하신다.

“하나님이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행 14:16),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시 50:21)

⑵ 하나님은 인생들이 죄짓는 것을 제한하시고 금하신다.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시리이다.”(시76:10),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로 내 코에 꿰고 자갈을 네 입에 먹여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왕하 19:28)

⑶ 하나님은 인생들의 죄를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선한 목적으로 인도하시고 조정하신다.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사 10:5‐7),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⑥ 하나님의 섭리의 성격은 어떠한 것인가?

⑴ 하나님의 섭리는 가장 거룩하다.

“여호와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시 145:17)

⑵ 하나님의 섭리는 가장 지혜로우시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이것은 창조사역 만큼 섭리의 사역이 많다는 것을 의미함)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시 104:24)

⑶ 하나님의 섭리는 가장 능력이 있으시다.

“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단4:35), “저가 그 능으로 영원히 치리하시며”.(시 66:7)



제 10 강  인간과 맺은 언약


제12문 : 사람이 지음 받은 원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섭리하셨던 것 중 특별하신 행위는 무엇이었나?

답 :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후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아 생명의 언약을 맺고, 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은 사망의 벌로서 금했다.


① 언약이란 무엇인가?

언약은 어떤 것을 주고받기 위해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상호조약 혹은 약속을 의미한다.


②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은 어떤 것을 주신다는 것이나 인간 편에서 어떤 것이 행해지기를 요구하는 계약을 의미한다.


③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우신 언약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인간과 세우신 언약은 두 가지가 있다.

  (1) 행위언약  (2) 은혜언약


④ 하나님은 언제 인간과 행위 언약을 세우셨는가?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그 즉시 인간과 행위 언약을 세우셨다. 그때 인간의 상태는 순수 무흠의 상태였으며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상태였다.


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우신 행위 언약의 약속은 무엇인가?

행위언약의 약속은 생명의 약속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불순종할 때 사망의 경고를 하셨으므로(창 2:17)이는 인간이 순종 할 때 생명의 약속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⑥ 하나님께서 행위언약을 세우시고 인간에게 어떤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는가?

하나님께서 행위언약으로 우리 인간에게 약속하신 생명은 자연적이고 영적인 생명의 계속성, 그리고 영생의 부여이었다.


⑦ 자연적이고 영적이고 영원한 생명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⑴ 자연의 생명은 인간에게 영혼과 육신이 연합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⑵ 영적인 생명은 인간에게 하나님과 영혼이 연합해 있음을 의미한다.

⑶ 영원한 생명은 지고한 선되신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을 덧입음으로 불변하는 영원한 행복을 영육이 누리게 됨을 말한다.


⑧ 하나님께서 행위언약을 세우셨을 때 인간편에 요구하셨던 최초 언약의 조건은 무엇인가?

행위언약에서의 인간에게 요구되었던 조건은 완전한 순종 그것이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갈 3:12). 그리고 이 구절을 10절과 비교해 보라. “무릇 율법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⑨ 이러한 순종은(제 1언약에서 인간에게 요구되었던 순종임) 어떤 점에 있어서 완전하게 지켜져야 했는가?

제 1언약에서 인간에게 요구되었던 순종은 다음에 열거된 면에 있어서 완전해야 했다.

⑴ 그것은 질료면에 있어서 완전해야 했다.

영혼의 모든 능력과 기능들, 육체의 모든 지체와 부분들은 의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되어야 했다.

⑵ 그것은 원리의 면에 있어서 완전해야 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어떤 것을 마치 천사가 하늘나라에서 순종하듯이 조금도 싫어하거나 마음 내키지 않은 마지못해 하는 자세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성향과 자발적인 의사로써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⑶ 그것은 목적의 면에 있어서 완전해야 했다.

그것은 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모든 행위를 지배하는 가장 으뜸되는 원리인 것이다.

⑷ 그것은 방법의 면에 있어서 완전해야 했다.

그것은 순종 시 요구됐던 완전한 사랑과 기쁨 그리고 철두철미함을 동반해야 했다.

⑸ 그것은 시간상의 면에 있어서 완전해야 했다.

그것은 항구적이며 영원한 순종이었다.


◆ 행위언약 시 금지되었던 금기사항은 무엇이었는가?

행위언약에서 금지되었던 사항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 2:16, 17)


◆ 왜 이 나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 불리우는가?

그것은 사람이 이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그가 선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즉 하나님의 형상과 은총을 잃었다는 사실을 시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며, 그가 악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즉 죄와 비참의 상태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 행위언약을 위반함으로 어떠한 형벌과 죄값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가?

행위언약을 위반함으로 받아야 할 형벌은 죽음이었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지니라”(창 2:17),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 하나님은 죄의 형벌로서 어떠한 죽음을 경고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해 형벌로써 경고하셨던 죽음은 일시적 죽음(temporal death),  영적인 죽음,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이었다.


◆ 일시적 죽음, 영적인 죽음, 그리고 영원한 죽음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⑴ 일시적 죽음은 영과 육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사람은 선악과를 먹었던 날부터 이 죽음의 가능성 아래 놓이게 되었다.

⑵ 영적인 죽음은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이 죽음은 인간이 최초로 죄를 지은 순간에 임했다.

⑶ 영원한 죽음은 인간이 안락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존전, 영원히 지속되는 그의 영광에서 제외되어 있는 상태,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내려오는 진노를 받고서 영혼에는 가장 저주스러운 고뇌가, 육체에는 가장 극악한 고통이 지옥에서 영원히 임하는 상태를 말한다.



제 11 강  인간의 타락


제13문 : 우리의 시조가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는가?

답 : 우리의 시조가 임의로 자유함을 인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써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서 타락하여 넘어졌다.


①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자유의지란 자신의 뜻에 따라 어느 누구의 강요나 간섭을 받지 않고 선택하거나 거부하며, 행하거나 행치 않으며, 이것을 행하거나 저것을 행하는 자유를 의미한다.


② 의지의 자유에 관해서 몇 가지를 나누어 볼 수 있는가?

의지의 자유에 대해 세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⑴ 이 의지가 자유하다면 이는 선에만 관여한다. 의지가 강요받거나 제한받지 않고 자유로이 선택하는 것이라면 선한 것들에만 관여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의지는(인간적인 방법으로 말하자면) 선에만 자유하다. 그는 악한 어떤 것도 행할 수 없고 원치 않으신다. 이것은 천사들의 의지의 자유와도 같으며 천국에서 완전한 영화의 상태에 도달된 성도들의 자유와도 같은 것이 될 것이다 거기서는 영원히 악한 것이 없고 또 없을 것이나 아직 선은 자유로운 선택에 속해 있다.

⑵ 이 의지는 악한 것에만 관여한다. 이 의지가 제한받지 않고 자유로이 선택하는 것이라면 이는 악하고 죄스러운 것에만 관여한다. 이와 같이 마귀의 의지는 죄짓는 데만 자유하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자녀들의 의지는 자연적인 상태에 있는 한 죄짓는 데만 자유하다.

⑶ 이 의지는 선과 악을 선택하는 양면 모두에 자유하다. 그것은 어떤 때는 선한 것을 선택하고 어떤 때는 악한 것을 선택한다. 그러한 의지는 하나님의 형상을 어느 정도 회복함을 받은 중생 된 사람들에게서 그들 안에서 이루어진 은혜의 원리로 인해 선을 자유로이 선택한다. 그러나 그들 속에 남아있는 부패성으로 인해 때때로 그들의 의지는 죄스러운 것에 기울어지기도 한다.


③ 인간이 창조 때에 어떠한 의지의 자유를 갖고 있었는가?

인간은 최초 지음받았던 자유의지는 선과 악에 동시적인 자유의지였다. 그 인간의 의지에 부여된 자연적인 성향과 의도는 선한 것이었지만 가변적이고 변경될 여지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시험으로 인하여 변경될 수 있고 악에 빠질 수 있는 소지를 다분히 갖고 있었다.


④ 어떻게 우리의 시조가 그들의 자유의지로 돌아서게 되었는가?

우리의 첫 조상들은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시지 않으심으로 말미암아(하나님은 그들에게 꼭 주셔야만 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 그들의 자유의지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로 시험을 통해 더 굳건하게 하고 죄에 넘어짐을 방지하기 위함에서 나온 의도인 것 같다.


⑤ 우리의 첫 조상들이 그들의 자유의지로 돌아섰을 때 어떻게 넘어지게 되었는가?

우리의 첫 조상들은 뱀 속에서 역사하였던 미지의 시험을 인하여 그들의 자유의지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감각적인 소욕에 따라 금단의 열매를 사모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이성적 소욕에 따라 지혜롭게 되고 하나님 같이 되려는 욕심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사망의 형벌을 제거하고자 소망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 명백한 명령에 역행하여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모험을 감행했다. 먼저 마귀에게 속임 받고 설득당한 여자가 그것을 먹었고, 다음 그의 아내와 마귀에게 설득당한 남자도 먹게 되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창 3:4‐6),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고후 11:3),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딤전 2:14)


⑥ 우리의 첫 조상이 지음 받았던 그 상태는 어떠했는가?

우리의 첫 조상의 지음 받았던 상태는 순수 무흠의 상태였었다.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전 7:29)


⑦ 우리의 첫 조상은 어떻게 하여 최초 지음 받은 상태에서 떨어지게 되었는가?

우리의 첫 조상은 하나님께 죄를 지음으로 그들이 지음받은 원상태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제14문 : 죄란 무엇인가?

답 : 죄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은 어기는 것이다.


① 죄에 대해 규정한 하나님의 율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율법은 창조자시요 지존자시요 율법의 수여자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인생들에게 순종의 규칙으로서 내려주신 계명을 의미한다.


② 하나님의 율법은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하나님의 율법은 그것의 어느 정도가 모든 인간의 마음에 기록되었으나(롬 2:15), 보다 명백하고 완전하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그 속에서 발견된다.


③ 하나님의 말씀 속에 하나님의 율법의 종류는 몇 가지인가?

⑴ 사법적 율법(judicial law)

주로 유대 민족에 관계되면 다른 모든 민족들에게는 구속력이 없다.

⑵ 의식적 율법(ceremonial law)

그것의 어떤 부분도 구속력을 갖지 않으나 당분간, 즉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율법을 이루시고 그것을 폐지하시기 전까지 효력을 갖고 있었다.

⑶ 도덕적 율법(moral law)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돌판에 기록하신 것으로 세상 끝날까지 순종해야할 항구적인 규칙이었다.


④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 율법에 부적합했음과 불일치했음을 의미하며, 그것을 준수하지 못했음과 순종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⑤ 어떠한 죄가 율법의 불순종에 포함되었는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못했던 죄들은 다음과 같다.

⑴ 원죄(original sin) ‐ 즉 마음속에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리는 본래적인 적의감.“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니라.”(롬 8:7)

⑵ 자범죄(sins of omission) ‐ 전자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마음의 불순종을 의미하지만 후자는 생활의 불순종을 의미한다.


⑥ 하나님의 율법을 범과 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율법의 범과는 율법에 제시된 의미를 간과하는 것이다.


⑦ 율법의 범과가 죄라는 사실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것은 요한일서 3:4에 나타난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transgression)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⑧ 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리는 것인가?

죄는 하나님의 율법에 명백히 금지하고 있는 사항을 어기는 것이다.


제15문 : 우리의 첫 조상이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무엇인가?

답 : 우리의 첫 조상이 창조함을 받은 본 지위에서 타락하게 된 죄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죄이다.


①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첫 조상에게 이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였는가?

금지된 나무의 열매 안에 어떤 본래적인 고유한 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나무는 동산에 있던 여느 다른 나무와 마찬가지로 그 나무 자체 안에 괴상한 무엇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순종의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해 이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금지하신 것이기 때문에 먹지 말아야만 했던 것이다.


② 금지된 이 열매를 먹은 죄는 그 자체 안에 이물질이 없는데도 불안한 결과를 낳게 되었단 말인가?

⑴ 이 열매를 먹음으로 그 자체에는 하등 문제시 될 것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백히 금지하셨는데도 그것을 어겼으니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그것이 이젠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철저히 율법을 어긴 것이요 중대한 죄를 범한 행위였다.

⑵ 금지된 열매를 먹은 이 죄는 그것이 실증되었을 때 다른 모든 죄를 포함한 죄가 되었다.


③ 금지된 열매를 먹었던 그 죄는 다른 어떠한 죄를 포함하고 있었는가?

이 죄들은 우리의 첫 조상들이 금지된 열매를 먹었을 때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⑴ 그들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반역을 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분명히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⑵ 하나님을 거스리고 하나님의 원수 마귀와 밀통함으로 배반을 했다.

⑶ 보다 좋은 지위, 즉 하나님 같이 되려는 야심을 품었다.

⑷ 무턱대고 이 과일의 미각만을 탐내는 쾌락주의에 빠졌다.

⑸ 동산에 있는 다른 모든 나무의 열매들을 먹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불만을 가졌다.

⑹ 사망의 경고를 믿지 않은 불신앙이 지배했었다. 그들은 이 열매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surely die)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죽지 않으리라(not die)는 마귀의 말을 신뢰했다.

⑺ 이 죄로 말미암아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그들의 모든 후손들까지 사망을 당하게 함으로 살인죄를 저질렀다. 이와 같은 죄들 그리고 다른 모든 죄들은 우리의 첫 조상이 금지된 열매를 먹은 죄에 포함되었고, 거기에서 기인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극악무도한 죄였다.



제 12 강  원죄의 전가


제16문 : 모든 인류는 아담의 첫 범죄로 인하여 넘어졌는가?

답 : 아담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은 그 자신만 위하여 하신 것이 아니라 그 후손까지도 위하여 하신 것이므로 그로부터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하는 모든 인종은 모두 그의 안에서 그의 첫범죄에 참여하여 그와 함께 넘어졌다.  


① 모든 인류는 예외 없이 전부가 아담의 첫 범죄로 인하여 넘어졌는가?

그렇지는 않다. 아담의 후손 중 하나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담과 함께 넘어지지 아니하고 원죄와 자범죄에서 모두 그리고 완전히 벗어나 계셨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 보다 높이 계신 자라”(히 7:26),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벧전 2:22)


②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해서 아담의 넘어짐에서 제외되셨는가?

우리 주 예수께서는 동정녀에게서 나심으로 비상한 계대를 통하여 오신 아담의 후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 1:18)


③ 그리스도를 제외한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그의 첫 죄로 함께 넘어졌는가?

그리스도를 제외한 아담의 모든 후손들 즉 일반 생육법에 의해 태어난 자들은 아담과 함께 넘어졌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④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데 어떻게 그들이 아담과 함께 넘어지게 되었는가?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그들이 아직 태어나기 전에도 아담 안에 있었고 그래서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고 그와 함께 넘어졌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⑤ 아담이 최초로 죄를 지었을 때 그 안에 있던 모든 후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⑴ 그들은 실제적으로 그 안에 있었다. 그들은 그의 허리에 있었다. 레위는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을 때 그 안에서 십일조를 바쳤다고 했다(히 7:9). 이와 같이 아담의 후손은 그의 허리 안에서 죄를 지었다.

⑵ 그들은 대표적으로 그 안에 있었다. 아담은 모든 인류의 우두머리로 대표가 되기 때문이다.


⑥ 아담의 후손이 대표자인 아담과 함께 넘어진 데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는가?

행위언약으로 인해서이다. 행위언약은 순종을 조건으로 생명이 약속되었는데 이는 아담에게만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까지 포함되어 맺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서 있는 것이요, 그가 넘어짐은 그들 모두가 그와 함께 넘어진 것이다.


⑦ 아담의 후손들 어느 누구도 그들 대표자를 선택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서 그가 그들 모두의 대표자가 될 수 있었겠는가?

⑴ 아담은 그들 모두의 조상이었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그가 모든 인류의 대표자가 되는 것이 적합하였다.

⑵ 그들이 그를 대표자로 선택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셨으며, 그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처럼 그들이 적임자로 택하여 세우셨다.



제 13 강  타락한 인간의 지위


제17문 : 이 타락은 인류를 어떠한 지위로 전락시켰는가?

답 : 이 타락은 인류로 하여금 죄와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하였다.


제18문 : 사람의 타락한 지위가 죄되는 것은 어찜인가?

답 : 사람의 타락된 지위가 죄되는 것은 아담의 첫 범죄가 죄되며 근본 의가 없으며 온 성품이 부패한 것인데, 이것은 보통 원죄라 불리우며, 이 원죄로부터 나오는 모든 죄는 자범죄라 불리운다.


① 타락된 인간의 상태에 부여된 죄는 몇 가지가 있는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원죄이고 다른 하나는 자범죄이다.


② 원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원죄는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⑴ 아담의 첫 범죄. ⑵ 근본 의의 결핍. ⑶ 온 성품의 부패.


③ 어떻게 전 인류가 아담의 첫 범죄에 동참케 됐는가?

전 인류는 전가(imputation)에 의해 아담의 첫 범죄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것은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의가 모든 신령한 후손, 즉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전가된 것과 같으며, 이와 같이 첫째 아담의 죄는 그의 허리에서 나온 모든 혈통적 후손에게 전가되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④ 근본 의의 결핍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본 의의 결핍은  ⑴ 마음속에 신령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⑵ 의지와 사상에 선을 행할 의사나 능력이 없고 신령한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8)


⑤ 근본 의의 결핍이 죄란 말인가?

그렇다. 그것은 원래의 의와 본성적인 의, 그리고 실제적인 의를 요구하는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⑥ 만약 하나님께서 이 근본 의를 주지 않으신다면 그는 죄의 조성자이신가?

그렇지 않다. 인간은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찾아야만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회복시켜 주셔야 할 책임이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죄가 아니며 하나님이 그것을 주지 않으실 때는 첫 번째 죄에 대한 형벌로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⑦ 아담의 후손들이 영혼은 아직 지음 받지 아니하였고 아담과 관계를 맺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들이 근본 의를 빼앗길 수 있단 말인가?

아담 후손의 영혼은 아담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육체에 영혼이 주입되고 결합됨으로 지음을 받았고, 머리되는 아담과의 관계를 통해 형벌에 동참하게 되었다.


⑧ 인간 전인의 부패는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인간 전인의 부패는 타락한 이후 인간의 모든 지체 속에 스며든 보편적인 부패를 말한다.

⑴ 어두움과 마음의 오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엡 5:8),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딛 1:15)

⑵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역행하는 의지와 심령의 왜곡과 증오심.

“육신의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하나님의 율법에 굴복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음이니라”(롬 8:7). 심령이 원죄로 부패되어 있었을 때 그곳에 모든 모양의 죄의 씨앗이 심기워져 있었으며 심령은 죄로 향해 기울기 시작했고 그 죄는 극악한 것이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 15:19)

⑶ 감정의 무질서와 분노.

이 모든 것들은 천성적이 부패로 인해 잘못된 대상을 향해 있다.

⑷ 육체의 지체들도 오염되어 불의의 병기와 도구로 사용됨.(롬 6:13)


⑨ 모든 인생의 후손들에게 전가된 본성의 부패는 어떠한 것인가?

⑴ 그것은 모든 선의 저작자이신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비록 근본 의는 보류하시지만 원래의 부패를 주입하지 않으신다.

⑵ 그것은 자연적인 생육법에 의해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고 연합될 때 전달되어진다. 원래의 의(original righteousness)가 결핍된 혹은 없는 영혼은, 마치 오염된 것처럼 이 부패성으로 오염된다. 그러나 그 전가의 방식은 신학상에 있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이다.


◆ 우리가 이 전가의 방식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부패를 부인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⑴ 성경은 우리의 본성이 타락한 이후 부패했다고 주장한다.

“아담이(하나님의 모양을 닮았지만)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이때에는 부패한 본성으로 주입된 아들을 낳았음)(창 5:3),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요 3:6),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⑵ 인간 경험은 모든 사람의 본래적인 천성이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집에 화재가 났으면 왜 불이 붙었느냐고 묻는 것보다 그 불을 끄는 것이 더욱 훌륭한 지혜인 것같이, 이 부패가 왜 전가되었느냐고 따지는 것보다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 더 훌륭한 지혜이다.


◆ 성화 된 사람은 본성의 부패 없는 자녀를 낳았는가?

그렇지 않다. 성화 된 부모라 할지라도 부분적으로 성화 되었을 뿐 그들 본성의 나머지 부분은 여전히 부패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본성에 따라 자녀를 낳으며 은혜에 따라 낳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키질한 옥수수를 심으면 껍질을 가진 알맹이가 자라나듯, 혹은 할례 받은 유대인이 육체는 물론 마음에도 할례 받지 못한 자녀를 생산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 이 죄는 왜 원죄라 불리우는가?

우리는 나면서부터 본래적으로 그것을 갖고 있었으며, 우리의 모든 자범죄는 그것에서부터 유래하기 때문이다.


◆ 자범죄는 무엇인가?

자범죄는 태만죄이든지 과실이든지, 혹은 사상, 생각, 언어 혹은 행위에서든지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리는 모든 죄를 말한다. 이 죄는 계명에 더 많이 관계한다.



제 14 강  타락의 결과


제19문 : 인간이 타락했던 상태의 비참함은 어떠한 것인가?

답 : 모든 인류가 타락함을 인하여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고 그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생전에 모든 비참함과 사망과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받아야만 한다.


① 타락으로 인한 인간의 비참함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타락으로 인한 인간의 비참함은 다음 세 가지로 표현된다. ⑴ 무엇인가를 인간은 잃어버렸고  ⑵ 무엇인가에 인간은 굴복당했고 ⑶ 무엇인가를 인간은 감수해야만 했다.


② 인간이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다.


③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교제는 어떠한 것인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교제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의 감미로운 교제와 즐거움 그리고 그의 자비로운 임재와 은총이었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해 박탈당한 것이었다. 그의 모든 후손들은 타락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갖고 있지 못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에덴 동산에서 내어 보내어 …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창 3:8, 23, 24),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2)


④ 하나님과의 교제의 상실이 극도의 비참과 상실이었는가?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요한 선이시며 그와의 교제가 인간의 주요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한 것은 인간 최대의 상실이다.


⑤ 인간은 타락으로 어떠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가?

인간은 타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다.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즉 모든 불신자들의 경우와 같이 행위 언약에 속한 모든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갈 3:10).


⑥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은 극도의 비참함을 말해주는 것인가?

그렇다. 하나님의 은총이 생명보다도 나은 것이듯이 그의 진노와 불쾌해 하심은 죽음보다도 더 극악한 것이다. 그의 축복은 인간을 복되고 행복하게 하며 그의 저주는 인간을 처참하고 비참하게 한다.


⑦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받게 된 형벌은 무엇인가?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⑴ 현생의 모든 비참   ⑵ 죽음 자체  ⑶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형벌로 받아야 했다.


⑧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현생에서 받게된 비참함은 어떤 것인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현생에서 받아야 할 비참함은 외부적, 내부적 그리고 영적인 면에 미친다.


⑨ 타락으로 인류가 현생에서 받아야 할 외부적인 비참함은 어떤 것인가?

세상에 존재하거나 존재해 왔던 모든 외부적 비참함은 타락의 결과이다. 죄는 인간을 모든 종류의 비참함으로 몰고 간다.

⑴ 보다 공개적이고 일반적인 재앙, 이를테면 역병, 기근, 칼, 포로 등과 같은 것이다.“내가 기근과 악한 짐승을 너희에게 보내어 외롭게 하고 너희 가운데 온역과 살육으로 행하게 하고 또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 (겔 5:17)

⑵ 죄는 인간을 보다 개인적이고 특수한 비참에 빠지게 한다. 이를테면 ⓐ 육체에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질병. ‐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상한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신 28:22). ⓑ 부동산의 손실. ‐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과실을 쓰지 못할 것이며” (신 28:30). ⓒ 그들의 이름에 미친 비난과 불명예. ‐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램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신 28:37). ⓓ 관계의 상실과 다른 모든 외적인 고통, 그리고 비참함은 인생들이 그들이 죄로 인해 이생에서 받아야 할 것들이다.


◆ 인생이 타락으로 인하여 이생에서 감내해야 할 내적이고 영적인 비참은 어떤 것인가?

타락한 인생은 ⑴ 마귀의 속박을 받으며 그가 원하는 대로 그에 의해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딤후 2:26)

⑵ 마음의 맹목적인 분별력과 사악한 감정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롬 11: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⑶ 마음의 완악함과 양심의 마비와 무감각에 지배를 받아야한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롬 9:18),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딤전 4:2),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엡 4:19)

⑷ 비열한 행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롬 1:26, 27)

⑸ 미혹에 사로잡히고 저주받을 거짓을 믿게 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1, 12)

⑹ 마음의 고통과 난처함, 심령의 공포와 두려움, 확실한 미래의 진노에 대한 염려와 절망적인 고뇌에 빠지게 된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 10:27)


◆ 타락한 인생이 현생의 마지막에 받을 형벌은 무엇인가?

타락한 인생이 현생의 마지막에 받아야 할 형벌은 사망 자체이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 사망은 모든 사람에게 형벌로 임하는가?

⑴ 사망은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죄의 결과로써 임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신자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찌르는 것이 못된다. 그것은 비참에서 벗어나 영광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⑵ 악인과 불신자에게 있어서 사망은 두려운 형벌이며, 공포의 왕이며, 하나님께서 악인을 잡아 미래의 고통가운데로 이송시키기 위해 보내신 무자비한 하수인이다.


◆ 타락한 인생이 저 세상에서 받게 될 형벌은 무엇인가?

타락한 인생이 저 세상에서 받게 될 형벌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다.


◆ 지옥의 고통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지옥의 고통은 ⑴ 상실의 고통 ⑵ 감각의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 지옥에서 받는 상실의 형벌은 무엇인가?

지옥에서 받는 상실의 형벌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추방당하는 것과 천국에서 배척받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거기서 기쁨과 행복을 영원히 만끽하며 누리게 될 것이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마 25:41),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눅 13:28),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 지옥에서 받는 감각의 형벌은 어떠한 것인가?

지옥에서 받는 감각의 형벌은 영혼과 육신 모두에게 임한다.

⑴ 지옥에 있는 악인의 영혼은 공포와 고뇌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거기서 하나님이 직접적인 원수 갚으심의 채찍과 결코 죽지 않는 구더기의 양심을 물어  뜯음으로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다.“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⑵ 지옥에 있는 악인의 육체는 모든 부분과 지체에 가장 극악하게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13:41, 42)



제 15 강  인류 구원의 계획


제20문 :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죄와 비참한 상태에서 멸망하게 버려 두셨는가?

답 : 하나님은 홀로 그 아름다우신 뜻대로 어떤 자들을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선택하시고 은혜언약을 세우사 구원자로 말미암아 그들을 죄와 비참한 지위에서 건져내시고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하셨다.


① 인류는 타락으로 인하여 죄와 비참 가운데 멸망하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 대하여는 그들을 죄와 비참한 상태에서 이끌어 내어 구원의 상태로 이르게 하셨다.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빌 1:28)


② 하나님은 누구를 구원의 상태에 이르게 하시는가?

하나님은 그가 선택하셨던 모든 선민들을 구원의 상태에 이르게 하신다.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③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영생을 얻기로 선택된 자들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영생을 얻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④ 하나님은 누구로 말미암아 그의 백성들을 구원의 상태에 이르게 하시는가?

하나님은 그의 선민을 구속자로 말미암아 구원의 상태로 이르게 하신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그의 선민들을 구원의 상태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은 자기의 선민들을 언약의 방법을 통하여 구원의 상태에 이르게 하신다.


⑥ 그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어떠한 하나님의 언약의 효능을 통해서인가?

⑴ 행위언약의 효능을 통해서는 아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다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갈 3:10, 21)

⑵ 선택자가 구원 얻는 것은 은혜 언약을 통해서이다.


⑦ 은혜언약은 누구와 함께 맺어졌는가?

행위언약이 첫째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과 맺어졌듯이, 은혜언약은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선민, 즉 그의 씨인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맺어졌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즉 모든 민족들로 복 받게 하신다는 약속이 아니라),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 3:16),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히 8:10).


⑧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선택자들과 맺어졌던 언약과 동일한 언약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중보자이시며 선택자들의 대표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세우신 언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과 세우신 은혜언약 안에 약속되어진 모든 은혜의 기초가 되었다.


⑨ 하나님께서 선택자들의 머리와 대표로서 그리스도와 세우신 언약은 무엇이었던가?

하나님은 선택자들의 대표자로 그리스도에게 언약과 약속을 세우셨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선택자들의 죄로 인한 형벌을 받으시고 중보자의 직분을 감당하심으로써 그들을 의롭게 하시고 구원시키신다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와 뜻을 성취하리로다 …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사 53:10, 11)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맺으신 언약, 이 언약이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는 데도 이것을 은혜언약이라 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대표자가 되신 바 그의 선택자들의 관계에서 은혜언약이라 한다. 여기에서 행위 언약이 그들에게 요구하였던 순종은 그들의 대표자의 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전 1:9)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택자들과 세우신 은혜언약의 약속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택자들과 세우신 은혜언약의 약속은 보다 일반적인 것이나 보다 특수적인 것이다.

⑴ 보다 일반적인 것.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택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는 것이다. 이 두 약속은 보다 일반적이며 포괄적이어서 나머지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라”는 약속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이 땅 위에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위해 일시적이고 영적인 선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며, 저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주신다.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는 약속은 그들에게 그 신분과 관계에 필요한 모든 은사와 자격을 부여하신다는 것을 포함한다.


⑵ 보다 특수적인 것.

하나님은 은혜언약 안에서 선택자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것이 있다.

 ⓐ 조명(illumination) ‐ 그는 그들에게 자신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신다. 이것은 그들이 다른 누구에 의해 가르침 받았고 또 가르침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더욱 완전하고 분명하게 가르치신다는 것이다.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가 다 나를 앎이니라”(히 9:11).

 ⓑ 사죄(remission) ‐ 그는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12)

 ⓒ 성화(sanctification) ‐ “그날 후로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히 8:10). 이 언약에 속한 성화에 대한 다른 약속도 또한 있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5‐27)


◆ 은혜언약의 조건은 무엇인가?

은혜언약의 조건, 즉 선택자가 약속된 것에 실제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믿음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며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선택자에게 세워진 언약이 왜 은혜언약이라고 불리우는가?

선택자들에게 약속된 것은, 그들이 조금도 받을 값어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 혹은 하나님의 무상의 선물이기 때문이며, 또한 이 믿음 자체도(이 언약의 조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요 그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엡 2:8), “너희가 …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 하나님께서 옛날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은 행위언약인가 은혜언약인가?

하나님께서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과 세우신 언약은 행위언약이 아니라 복음에서 알려진 그것과 동일한 은혜언약이다.

이유는 ⑴ 타락한 아담의 후손 중 어느 누구도 행위언약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된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⑵ 이스라엘의 자손은, 현재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언약의 중보자와 구속자 즉 모세에 의해 상징되고 율법 하의 희생제물에 의해 예시되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⑶ 그들도 동일한 사죄와 구원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⑷ 그들도 상징과 비유 속에서 나타난 그리스도를 보고 붙잡을 수 있게 하는 동일한 믿음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복음 하의 은혜언약의 시행과 율법 하의 은혜언약의 시행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복음 하의 은혜언약의 시행과 율법하의 은혜언약의 시행은 다음과 같은 점에 있어서 다르다.

⑴ 복음 하에 있는 언약의 간편함에 있어서.

율법 하에 있는 언약은 번거러운 것이었다. 요구되었던 의식과 사역은 ‘종의 멍에’(갈 5:1)라 불리웠으며 이 멍에는 지금 제거되었다.

⑵ 복음 하에 있는 언약의 명백성에 있어서.

율법 하에서 그리스도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상징과 비유와 희미한 그림자로 나타났다. 특별히 영생의 약속은 더욱 막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그림자는 물러갔으며 본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생명과 불멸성은 복음에 의해 더욱 분명히 밝혀졌다.(딤후 1:10)

⑶ 능력과 효능성에 있어서.

율법의 시행에는 약점이 있었고 그래서 그것은 폐지되었다.(히 7:18). 복음 하에서는 보다 능력있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으며 그것은 보다 풍성하게 약속되었다.(행 2:7)

⑷ 그것의 범위에 있어서.

율법의 시행은 유대 민족에게만 제한되었으나 복음의 시행은 이방인과 모든 민족에게까지 확산되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제 16 강  구속주 예수


제21문 :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의 구속주는 누구인가?

답 :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의 구속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셨으며 그렇게 존재하셨으며 두 가지 구별되는 성품인 신성과 인성을 입으시고 거하셨으나 영원히 한 인격을 갖고 계셨다.


①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의 구속주는 누구이신가?

 하나님의 선택자들의 구속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② 왜 그는 주님이라 불리우는가?

그의 우주적인 주권과 통치권으로 인해서이다.

“그는 만유의 주이시니”(행10:36)


③ 왜 그는 예수라 불리우는가?

그는 자기 백성들의 구세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마1:21)


④ 왜 그는 그리스도라 불리우는가?

그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그의 직임에 기름부으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령은 그에게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부어졌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행10:38),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3;34)


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을 어떻게 구속하시는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을 다음과 같이 구속하신다.

⑴ 값으로 사심으로.

그는 그들을 사시기 위해 그의 피값으로 지불하셨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딤전 2:6)

⑵ 정복하심으로.

그는 그들을 구하시기 위하여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전에 그들로 포로 삼았던 마귀의 올무에서부터 그들을 이끌어 내셨다. “정사와 권세를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⑥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의 아들이신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⑦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다른 아들들과 어떻게 다르신가?

⑴ 천사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우나 그들은 창조 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쁨으로 노래하였느니라”(욥 38:7)

⑵ 성도들은 양자와 중생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운다.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갈 4:5),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요일4;7)

⑶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출생으로 인하여 자연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히 1:5)


⑧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선택받은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어떻게 되셨는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선택하신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갈 4:4)


⑨ 그리스도께서 그의 선택하신 자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인간이 되셔야 할 필연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선택받은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셔야할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⑴ 그는 인간이 되셔야만 그들을 위해 고난의 죽음을 당하실 수 있으셨다. 하나님으로서는 그것을 능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의 고난 없이는 사죄도 없고 구원도 없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느니라”.(히 9:22)⑵ 그는 그들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 대제사장이 되셔야 했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니라”.(히 2:16,17)


◆ 선택받은 자들의 구속주가 인간과 동시에 하나님이 되셔야할 필연성은 존재하는가?

그렇다. 만약 그가 인간과 동시에 하나님이 되시지 못했다면, ① 그는 인간의 죄로 인해 그에게 뒤집어 씌워진 진노의 잔을 견딜 수도 없고 거기에서 놓여날 수도 없었다. ② 그의 고통은 제한된 정도의 것이기 때문에 죄로 깨뜨려진 하나님의 무한한 공의를 만족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이 되셨는가?

그리스도는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인격 속에 합성이나 혼합되지 않고 구별되면서, 본질적 혹은 인격적 연합을 통해 신인 양성인 하나님과 인간이 되셨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인 양성의 연합은 분리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두 가지 구별된 신인의 양성을 입으시고 그리고 한 인격으로 영원히 계셨고, 계속해서 존재하신다.

“예수는 영원히 계신 고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히 7:24)


◆ 신성의 성품이 인성으로 묘사되거나 인성의 성품이 그리스도의 신성으로 묘사될 수 있는가?

한 성품을 다른 성품으로 묘사하는 것이 부적절하기는 하지만 한 인격 안에 있는 양성의 연합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인격의 각 성품이 교통하게 된다.



제 17 강  동정녀 탄생


제22문 :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인간이 되셨는가?

답 :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탄생하였으나 죄는 없으시다.


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것이 그의 자원하는 행위였는가?

그렇다. 그는 인성을 취하셨으므로 우리의 구속자로서의 자격을 합당하게 갖추신 것이다.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6,7),  “그는 그에게서 아브라함의 씨를 찾으셨으니”(히 3:16)


②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진정한 인간이 되셨는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두 가지 본질적인 요소를 취하심으로 실제적인 인간이 되셨다.

⑴ 그는 살과 피와 뼈의 실제적인 몸을 취하셨다. 환상적인 몸이 아니라 실제로 현현된 몸이었던 것이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9)

⑵ 그는 이성적인 영혼을 실제로 취하셨으며 그의 신성도 그 영혼의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다.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사 53:10),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마 26:38)


③ 그리스도의 출생이 다른 사람의 출생과 같은 것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처녀, 즉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사7:1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 1:24,25)


④ 어떻게 그리스도께서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셨는가?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 기적적으로 잉태되셨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4:35)


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간과 같이 죄 중에 출생했는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본성을 취하시고 여러 가지 인간의 연약함을 가지셨지만, 죄성의 연약함에서는 완전히 자유하셨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제 18 강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제23문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속자로서 무슨 직분을 행하시는가?

답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속자로서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분을 행하시되 낮아지시고 높아지신 양 지위에서 행하신다.


① 직분을 행하심은 무슨 뜻인가?

직분을 행하심은 그 직분에 속하는 일들을 행하거나 수행하는 것이다.


②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속자로서 행하시는 직분은 몇 가지가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자로서 행하시는 직분은 세 가지다.

⑴ 선지자직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행3:22)

⑵ 제사장직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히5:6)

⑶ 왕직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2:6)


③ 그리스도께서는 무슨 위치에서 이 직분들을 행하시는가?

⑴ 그리스도께서는 여기 이 땅위에서 비하 (humiliation)의 위치에서 이 직분들을 수행하셨다.

⑵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천국에서 승귀(exaltation)의 위치에서 이 직분들을 수행하신다.



제 19 강  그리스도의 선지자직


제24문 :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시는가?

답 :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시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그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내는 것이다.


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선지자로서 우리에게 나타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나타내신다.


② 그리스도께서 나타내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나?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모든 계획,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행하게 하시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③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내시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신다.

⑴ 그의 말씀으로 나타내신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⑵ 그의 성령으로 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④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는 바 그의 말씀은 어떤 것인가?

구약의 모든 성경과 특별히 신약의 모든 성경책이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 1:10,11)


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그의 말씀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데 충분한 것인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말씀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데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에 필요한 것들을 식별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⑥ 그리스도의 말씀이 없는 그의 성령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치는데 충분한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말씀 없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실 수 있으시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하나님의 뜻이 그의 말씀 속에 계시되었기 때문에 그는 말씀을 떠나서 가르치신다고 약속하지도 않으셨다. 따라서 성령 없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칠 수 없고 말씀 없는 그리스도의 성령은 그렇게 하지도 않으실 것이다.



제 20 강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제25문 :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시는가?

답 : 그리스도께서 제사장 직분을 행하시는 것은 단번에 자기를 제물로 드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으며 우리를 하나님으로 더불어 만족케 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항상 간구 하시는 것이다.


①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히8:3)


② 제사란 무엇인가?

제사란 하나님의 임명받은 제사장에 의해 하나님께 바쳐지는 거룩한 바침을 의미한다.


③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임명받은 제사장이셨는가?

그렇다. 그는 이 직분을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 부름 받았고 임명받았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히 5:4‐6)


④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어떤 희생을 드리셨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친히 희생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께 바침이 되셨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⑤ 어째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되시고 하나님께 바침이 되셨는데, ⑴ 그것이 그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함이었다. ⑵ 그것은 그가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함이었다.


⑥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것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⑴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은, 하나님으로서 무한한 권위를 가지신 그분이 친히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의 죄로 인해 무한히 깨뜨려진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는 데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⑵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은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바쳐졌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⑶ 우리의 희생이 되셨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죽음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죄와, 우리의 죄로 인한 형벌을 담당하셨다. 그러며 그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 죄를 어떻게 짊어지셨는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벧전 2:24). 그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몸을 대속물(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임)로 바치신다고 하셨다.(마 20:28)


⑦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신 만족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의 희생으로 인한 만족의 결과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시키신 것이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6)


⑧ 그리스도 제사장 직분의 두 번째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스도 제사장 직분의 두 번째 요소는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intercession)를 드리심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사 53:12)


⑨ 그리스도께서 중보의 기도로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실 때 우리의 변호자로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기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죽으심의 공로를 인하여 실제적으로 화해되고 우리의 인격이 용납되고 우리의 죄가 사함받고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고 우리의 양심은 평정되고 마침내 우리의 영혼은 구원을 받는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며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

 

⑩ 그리스도께서 어디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시는가?

그리스도께서 하늘 나라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신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⑪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시는 것은 잠시동안 하시는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계속적으로 영원히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신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위하여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의식적인 율법하에 있는 제사장직분과 다른가?

⑴ 율법 하에 있는 제사장은 아론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지만,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서 아버지도 없고 하나님으로서 어머니도 없는 멜리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시다.(히 7:1‐20)

⑵ 율법 하에 있는 제사장은 죄가 있지만 그리스도는 거룩하시고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시고 거기에서 완전히 떠나 계신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히 7:26)

 ⑶ 율법 하에 있는 제사장들은 죽을 인생들이기 때문에 그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대제사장이시며 영원히 계속적으로 거하신다.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히 7:23,24)

 ⑷ 율법 하에 있는 제사장은 맹세 없이 구별되고 그 직분을 맡게 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맹세로 되신 것이다.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히77:21)

 ⑸ 율법 아래 있는 제사장은 변하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분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히 7:12,24)

 ⑹ 율법 하에 있는 제사장은 여러 가지 제물들, 즉 소와 염소와 다른 여러 가지 피를 바쳤으나 그리스도는 단번에 하나의 희생제물, 즉 자신의 피를 바치셨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히 9:25)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⑺ 율법 하에 있는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는 물론 자신의 죄를 위하여 즉 그들 스스로를 위하여 제물을 바쳤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게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다른 사람만을 위해 제물을 바쳤다.

“저가 저 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7:22)

 ⑻ 율법 하에 있는 제사장들은 바친 희생제물은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것들 안에 죄를 도말시키는 요소가 충분치 못하며 그리스도께서 그것들 안에 보이시지 않는 한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이 되심은 예표되어졌던 것이며 그 자체 안에 사죄를 위한 유효한 효능이 있으며 그것 자체가 열납되어졌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14)

 ⑼ 율법 하에 있는 제사장들은 손으로 지어진 거룩한 처소인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백성들을 위하여 나아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신다.

 “그리스께서는 참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히 9:24)

 ⑽ 율법 하에 있는 제사장은 제사장 직분만 행하나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행하신다.



제 21 강  그리스도의 왕직


제26문 :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왕의 직분을 행하시는가?

답 : 그리스도께서 왕의 직분을 행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며 보호하시고 자기와 및 우리의 모든 원수를 막아 이기시는 것이다.


① 그리스도께서는 누구 위에서 왕직을 행하시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왕직을 수행하시는데, ⑴ 그의 백성들 위에서 행하신다. “ …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 1:49)  ⑵ 그와 그들의 원수들의 위에서 행하신다.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시 110:2)


②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선택하신 백성들 위에 그의 왕직을 어떻게 수행하시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선택하신 백성들 위에 왕직을 수행하시는데 ⑴ 그들을 자신에게 복종시키시고  ⑵ 통치하시고  ⑶ 보호하신다.


③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을 자신에게 복종시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자기에게 복종시키시는 것은 그들이 최초에 완악하고 그에게 불순종하고 반역하고 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하는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향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딛 3:3),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 ”.(골 1:21)


④ 그리스도께서 그의 선택하신 백성들을 자기에게 복종시키심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스도께서 그의 선택하신 백성들을 자신에게 복종시키심은 그들에 대한 그의 유효한 부르심을 의미하며 그들을 자신의 통치하에 두시고 그의 말씀과 영으로 그들의 완악함과 원수를 정복하심으로 그들을 자발적인 백성들로 삼으신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시 110:3)


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의 백성들을 통치하시는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통치하신다.

⑴ 그들에게 율법을 주심으로 통치하신다. 그들을 율법에 그들의 마음과 삶을 일치시킨다.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시는 자시오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사 33:22)

⑵ 그들에게 율법을 불순종하면 형벌을 순종하면 보상을 주신다는 경고와 약속을 주심으로 통치하신다.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23)

⑶ 교회 직원을 세우심으로 통치하신다. 그들은 그의 율법을 선포하고 반포할 뿐만 아니라 경고를 주고 시행할 권세를 받았다. 그들은 교의의 요의는 물론 권징의 요의까지 위임받았으며 교회 안에서 그의 지배를 받아 통치하며 교회 어떤 견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매기도 하고 풀기도하며 완화시키기도 하고 면직시키기도 하는 권세가 있었다.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⑷ 대부분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사 내적으로 통치하신다. 그는 성령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그의 율법을 기록하시고 그가 요구하시는 바 순종을 그에게 할 수 있도록 능력과 의지를 주신다.

“내가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히 8:10),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 3:3)


⑥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어떻게 보호하시는가?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보호하신다.

⑴ 그들은 그의 날개 아래 숨기심으로 보호하신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마 23:37),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시 91:4)

⑵ 그와 우리의 모든 원수를 제어하고 정복함으로 보호하신다.


⑦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의 원수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의 원수는 마귀, 육체 ,세상, 사망이다.


⑧ 그리스도께서 그와 그의 백성의 원수를 어떻게 제어하는가?

그리스도께서 그의 원수들이 그의 백성들에게 간여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묶고 제한하심으로 제어하신다.


⑨ 그리스도께서 그와 그의 백성의 원수를 어떻게 정복하시는가?

그리스도께서 원수들의 능력을 제거하시고 그의 백성들 위에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심으로써 원수들을 정복하신다. 그러나 그는 모든 원수들을 그의 발아래 두시고 그것들을 철저히 무효화시키고 폐하심으로써 완전히 정복하신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그가 모든 원수들을 발아래 두실 때까지 통치하시리라”.(고전 15:25)



제 22 강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제27문 :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어떠한 것인가?

답 :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곧 그의 탄생하심인데 또한 비천한 지위에 나셔서 율법 아래 복종하시고 금생에 여러 가지 비참함과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받으시고 묻히셔서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신 것이다.


① 그리스도는 어떤 점에서 낮아지셨는가?

그리스도는 ⑴ 그의 탄생에서 ⑵ 그의 생애에서 ⑶ 그의 죽으심에서 낮아지셨다.


② 그리스도는 그의 탄생에서 어떻게 낮아지는가?

그리스도는 그의 탄생에서 낮아지셨는데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는 시간 세계에서 인간이 되셨고, 지체 높은 왕녀가 아니라 비천한 처녀에게서 웅장한 왕궁에서가 아니라 마구간에서 요람이 아니라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


③ 그리스도는 그의 생애에서 어떻게 낮아지셨는가?

 ⑴ 그는 친히 율법에 종노릇하셨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 게 하신 것은”.(갈 4:4)

 ⑵ 그는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 4:1)

 ⑶ 그는 악인의 음모와 비난과 조소를 감내하셨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기억하라”(히 12:3),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사람들이랴”.(마 10:25)

 ⑷ 그는 육신의 허약. 이를테면 피곤, 배고픔, 목마름과 그와 같은 것들을 그리고 영혼에 대해서는 고뇌와 슬픔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는 죄는 짓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요4:6),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 주리신지라”.(마 4:2) “그는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53:3)


④ 그리스도는 그의 죽으심에서 어떻게 낮아지셨는가?

그리스도는 그의 죽으심에서 낮아지셨다.

⑴ 죽음의 예고에서 ⑵ 죽음 자체에서 ⑶ 죽음의 결과에서


⑤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을 예고함에서 어떻게 낮아지셨는가?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을 예고하심에 있어서 낮아지셨다.

 ⑴ 유다에게 자기를 배반하도록 허용하셨다.

 ⑵ 군병들에게 자신을 잡도록 하셨다.

 ⑶ 베드로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말을 들으셨다.

 ⑷ 사람들의 조롱과 침 뱉음과 구타를 당하시고, 빌라도의 채찍과 정죄를 당하시고, 그를 넘겨준 사람들의 모욕과 치욕을 받으셨다.(마26, 27장)


⑥ 그리스도는 그의 죽으심 자체에서 어떻게 낮아지셨는가?

 그리스도는 그의 죽으심 자체에서 낮아지셨다.

 ⑴ 그의 죽음의 종류는 저주받은 치욕스런 죽음이었으며 장시간의 고통스런 십자가의 죽으심이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⑵ 그는 십자가상에서 그의 육체의 고통과 함께 그의 영혼에 인간의 죄로 인해 기인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다.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⑦ 그리스도는 그의 죽으심의 결과에서 어떻게 낮아지셨는가?

 그리스도는 그의 죽으심의 결과에서 낮아지셨다.

⑴ 그는 장사되셨다.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주고” (마 27:59,60)

⑵ 그는 잠시 동안, 즉 삼일 동안 사망의 권세 아래 계셨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40)


⑧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우리에게 무엇을 확신시켜 주는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우리에게 그의 고난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속을 확신시켜 준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 1:7)


⑨ 그리스도의 비하(낮아지심), 특별히 그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비하는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가르쳐 준다.

⑴ 우리도 우리의 주님과 같이 낮아지고 겸손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⑵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 같이 우리도 죄에 죽고 만일 그가 죽음으로 우리를 부르신다면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를 위해 고난받고 죽어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 지어다”(롬 6:8,1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벧전 4:1)



제 23 강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제28문 :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어떠한 것인가?

답 :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과 하늘로 올라가신 것과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 것과 마지막날에 세상을 심판하려 오시는 것이다.


①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의 첫 부분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의 첫 부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이다.


②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증명하는가?

⑴ 그가 부활하신 이후 그를 보고 그와 대화를 나눈 많은 사람들의 증거에 의하여.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고전 15:5,6)

⑵ 만약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라면 죄책은 우리에게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며 우리에게 아무 소망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③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심은 누구로 말미암아서인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능력과 성령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포되셨다.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요 10:17,18),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롬 1:4)


④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죽으신 후 얼마 만에 살아셨는가?

그리스도께서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4)


⑤ 그리스도께서 다시 부활하셨을 때 장사지내기 전에 가졌던 몸과 동일한 몸을 가지셨는가?

그리스도는 전과 동일한 몸을 가지시고 부활하셨다. 그는 손과 발에 못 자국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옆구리에는 창 자국이 있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⑥ 그리스도의 몸은 여느 사람들의 몸과 같이 무덤에서 부패되었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부패를 당하도록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 하였나니”.(행 13:37)


⑦ 그리스도의 몸은 부활 후 없어졌는가?

 아니다. 그때 그의 몸은 불멸성을 지녔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 앎이로다”.(롬 6:9)


⑧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무엇을 확신시켜 주는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육체도 마지막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⑨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의 두 번째 부분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의 두 번째 부분은 하늘로 올라가심(승귀)이다.


⑩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그를 본 자들의 증거가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서이다.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눅 24:51)


⑪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그의 승천하심 사이의 기간은 얼마였는가?

그리스도의 승천은 부활 후 40일만에 있었다.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은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2,3)


⑫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로 오르셔서 무엇을 하시는가?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로 오르심으로 다음의 일을 하셨다.

⑴ 그의 인격(하나님‐사람)은 거기서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을 누린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⑵ 그는 (교회 머리로서) 그의 모든 지체들을 위하여 천국의 처소를 마련하셨다.

“앞서가신 예수께서 …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느니라”.(히 6:20)


⑬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그리스도의 승천은 우리로 위에 있는 것들, 즉 그리스도가 현재 계신 그곳을 사랑해야 함을 가르친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2)


⑭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의 세 번째 부분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세 번째 부분은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이다.


⑮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심의 의미는?

그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심으로써 하늘에서 최고의 영광과 능력과 은총의 자리에 계심을 뜻한다.


⑯ 그리스도께서는 천국 하나님 우편에서 지상에 있는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시는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다음의 일을 하신다.

⑴ 그의 백성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신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⑵ 그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 천국에서 처소를 예비하고 계신다.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요 14:2)


⑰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의 네 번째 부분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네 번째 부분은 세상을 심판하려 다시 오심이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마 25:31,32)


⑱ 언제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려 오시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다. 그때 세상은 종말이 되고 만물은 풀어질 것이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⑲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날에 어떤 영광으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가?

그리스도는 자신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과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실 것이다.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눅 9:26)


⑳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시는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셔서 세상을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행 17:31),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제 24 강  구속에 참여하는 방법


제29문 :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에 참여하게 되는가?

답 :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에 참여하는 것은 그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구속을 효력 있게 적용하심으로 인해서이다.


① 우리의 구속은 누구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는가?

우리의 구속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염소와 송아지와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히 9:12)


② 우리의 구속은 누구에 의해 적용되는가?

우리의 구속은 우리 안에 유효적으로 활동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적용되어진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으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딛3:5,6)



제 25 강  구속에 대한 성령의 사역


제30문 :  성령께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을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시키시는가?

답 :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이루어 놓으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것은 우리 안에 믿음으로 역사 하시고 또 유효한 부르심으로써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는 것이다.


①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이 우리에게 적용되며 우리가 그것에 관련을 맺게되는가?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에 관련을 맺게 되는 것은 유효적인 부르심으로 우리를 그와 연합하게 함으로써이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1:30),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롬8:30)


②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연합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우리가 함께 합쳐서 하나가 됨을 말한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③ 우리는 어떻게 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 것은  

⑴ 하나님 편에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서이다.

그는 우리를 이끄시사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신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⑵ 인간 편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서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에게 나아가고 그를 붙잡는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 3:17)


④ 믿음은 우리에게서 난 것인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가?

믿음은 우리의 행위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령의 역사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2:8), “너희가 …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제31문 : 유효적 소명(effectual calling)은 무엇인가?

답 :  유효적 소명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인데, 이로써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고 또 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권하사 복음을 통해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시는 것이다.


① 유효적 소명(효력 있는 부르심)과 무효적 소명(효력 없는 부르심)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⑴ 무효적 소명은 단순한 말씀의 외적인 부르심인데, 모든 죄인들이 그로 말미암아 생명과 구원을 얻도록 그리스도께로 자유로이 초대받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는 그에게 나아오기에 불충분하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

⑵ 유효적 소명은 말씀의 외적인 부르심을 동반한 성령의 내적인 부르심인데, 그가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바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로 초대받을 뿐만 아니라 그의 품에 안기게 된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


② 우리의 유효적 부르심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무엇인가?

유효적 부르심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이중적이다.

⑴ 우리 마음에 ⑵ 우리 의지에


③ 유효적 부르심 안에 있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마음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유효적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마음에서 ⑴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한다. ⑵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우리를 밝게 비추신다.


④ 성령께서 우리의 죄와 비참을 어떻게 깨닫게 하시는가?

성령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죄책에 대해 분명하고 명백하게 보여주고 납득시켜 주며,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진노와 우리가 죄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지옥의 끝없는 고통, 매 시간마다 거기에 드러내진 적나라한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해 주실 때, 그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마음 가운데 죄와 비참을 깨닫도록 역사하신다. 그 상태는 우리의 생각과 양심을 짓누르며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까 하는 조바심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 책망하시리라”(요 16: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⑤ 성령께서 무엇으로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시는가?

성령께서 율법과 율법에서 기인되는 위협으로써 우리의 죄와 비참을 깨닫게 하신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⑥ 우리가 죄와 비참을 깨달은 후 성령께서 어떠한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밝게 비추시는가?

성령께서 죄와 비참한 상태를 깨닫게 하신 후 다음과 같은 지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밝게 비추신다.

⑴ 그리스도만이 구원하실 수 있으시고 그것을 행하시기에 완전 충족하시다는 것.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⑵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오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길 원하신다는 것.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⑶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일을 하셨으며 그것을 충성되이 수행하신다는 것.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히 2:17)


⑦ 성령께서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우리를 조명하시는가?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지식으로 우리에게 조명하시사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케 하고 우리의 눈을 열어 거기에서 발견하였던 그를 분간하게 하신다.

“이스라엘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행 26:17,18)


⑧ 우리의 유효적 부르심 안에서 우리의 의지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은 무엇인가?

우리의 유효적인 부르심 안에서 우리의 의지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은 그들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⑨ 어떻게 함으로 우리의 의지가 새롭게 되는가?

성령께서 그들에게 새로운 성향과 마음을 넣어 주실 때 의지가 새로움을 입는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⑩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고 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에게로 돌이킬 수 없는가?

그럴 수 없다. 우리로 납득을 하게 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길 수 있게 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뿐이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엡 1:19)



제 26 강  유효적 소명의 유익


제32문 : 유효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금생에서 무슨 유익을 얻는가?

답 : 유효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금생에서 의롭다하심과 양자로 삼는 것과 거룩하게 하심을 얻고 또 금생에서 이와 함께 받는 여러 가지 유익과 여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유익을 받는다.


제33문 : 칭의(justification : 의롭다 하심)는 무엇인가?

답 : 칭의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행위인데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여겨 받으시는 것이며, 그 의는 다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가시키신 의며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다.


① 우리의 칭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우리의 칭의는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에서 ⑵ 우리를 의로 여기심에서


② 우리의 칭의의 저작자는 누구이신가?

하나님이 우리 칭의의 저작자이시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


③ 하나님은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공로를 보시고 의롭다 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값없는 은혜의 행위로 의롭다 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④ 우리의 의롭게 된 것은 누구의 의로 말미암아서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⑤ 어떻게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로 되어지는가?

그리스도의 의는 전가(imputation)에 의해 우리의 의로 되어진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롬 4:6)


⑥ 그리스도의 의는 어떻게 우리에게 전가되는가?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되는데, 그 의는 그리스도안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마치 우리가 우리 안에서 스스로 이룬 것인양 우리의 것으로 여긴다.


⑦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우리에게 전가되어진 그리스도의 의는 무엇인가?

우리의 칭의를 위하여 우리에게 전가되어진 그리스도의 의는 그가 우리 대신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이루어진 의다. 먼저 그는 피동적인 순종을 하셨는데 그가 모든 고난을 받으시고 특별히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는 모든 고난을 받으시고 특별히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는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다음은 그가 능동적인 순종을 하셨는데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로 받아들여졌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⑧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고 적용시키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아들이고 적용시킨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⑨ 우리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며 조금이라도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전체이든지 부분이든지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그러면 왜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라”(약 2:24)라고 했는가?

⑴ 사도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다는 것을 여러 가지 논증을 통해 분명하게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이 서신을 기록할 때 동일한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했던 야고보의 논증도 이 교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⑵ 야고보는 이 장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칭의에 대한 관계를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 앞에서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에 대하여 다루었다. 그래서 그는 칭의가 행위로 말미암는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 2:18). 믿음은 우리 인격을 의롭게 하며 인간 앞에서 의롭게 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선포한다. 인간들은 우리의 믿음을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으나 우리의 행위는 그렇지 않다.


⑩ 당신은 우리가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⑴ 온 세상 죄책을 짊어졌고, 죄책을 짊어진 사람들은 행위의 완전한 의를 가질 수 없고 완전한 의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의로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사도는 로마서 1장과 2장에서 그리고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롬 3:19)는 말씀 속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인이라고 확정지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 3:20)

⑵ 만약 우리가 행위로 의롭게 된다면 그 보상은 은혜가 아니라 빚이 될 것이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롬 4:4), 그러나 그 보상은 빚이 아니라 은혜이다. 그래서 의롭게 된 자들은 행위의 의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경건치 아니한 자로서 의롭게 되는 것이다.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롬 4:5)

⑶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비록 그가 의로운 행위를 하였었지만 그는 그 행위로써 의롭게 된 것이 아니었다. 만일 그가 행위 없이 의롭게 되었다면 다른 의롭게 된 모든 자들도 행위 없이 의롭게 된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롬 4:2) 그러나 아브라함은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었다.


당신은 우리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⑴ 그것은 사도가 시도한 여러 가지 논증에서 적극적으로 주장되며 이끌어 내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⑵ 칭의와 같은 것 바로 이러한 것은 행위로는 증명될 수 없다. 칭의는 믿음 이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증명될 수 없고 때문에 결국 그것은 믿음으로라야만 된다.

⑶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의 칭의에 완전하고 충분하다. 그의 의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며 하나님의 계산에서 우리의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⑷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의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인간 안에 있는 어떤 자랑의 요소를 배제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 3:27)

⑸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며 다른 모든 사람들도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⑪ 믿음은 어떻게 의롭게 하는가?

믿음은 우리 안에 있는 행위로써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적용시키는 도구로써 의롭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근거로 하여 의롭게 되는 것이다.


⑫ 우리는 비록 우리 안에 의가 조금도 없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지만, 이 칭의는 항상 성화(sanctification)를 동반한다. 성화를 통해 이 의가 우리 안에 역사하며 이것 없이 우리의 칭의도 사실일 수 없다. 우리의 인격이 의롭게 되는 바 이와 동일한 믿음으로써 우리의 마음 또한 깨끗게 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행 15:9)



제 27 강  양자됨의 의미


제34문 : 양자로 삼는 것(adoption)이란 무엇인가?

답 : 양자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정하신 것인데 이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수효 중에 들게 하시고 그 모든 특권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가?

우리는 ⑴ 중생에 의하여 ⑵ 양자에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


② 사람들은 자녀들을 양자 삼을 때 어떻게 하는가?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가 아닌 낯선 자들을 취하여 그들로 그들의 자녀로 여김으로써 양자 삼는다. 따라서 그들이 마치 그들의 자녀인양 보살핌을 받는다.


③ 하나님은 자녀들을 양자로 삼으실 때 어떻게 하시는가?

하나님은 본래부터 나그네요 진노의 자녀된 자들을 취하여 그의 가족의 일원이 되게 하시고 그들로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누리는 모든 특권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심으로써 양자를 삼으신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3,19),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후 6:18)


④ 하나님이 사람들을 양자 삼으시는 것은, 마치 사람들이 양자 삼을 때와 같이 그들 안에 어떤 동기가 있어서인가?

하나님께서 어떤 자를 양자 삼으시는 것은 그들 안에 어떤 장점이나 사랑할 만한 자격이나 그 외 어떠한 것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와 사랑에서 나온 동기에서 기인된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


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양자된 자녀들인가?

그렇지 않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만 양자가 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6)


⑥ 양자된 자들이 받아 누리는 특권은 어떠한 것인가?

하나님의 양자된 자들이 받아 누리는 특권들은 다음과 같다.

⑴ 그들은 세속적 그리고 영적인 악에서 부성적(父性的)인 보호를 받는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시 121:7)

⑵ 그들은 영혼과 육신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공급받는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10)

⑶ 그들은 부성적인 징계를 받는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히 12:6)

⑷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께 들으심이 된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⑸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롬 8:17)



제 28 강  성화의 의미


제35문 : 성화(sanctification)란 무엇인가?

답 : 성화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역사이신데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온 사람 이 새로워짐을 얻고 죄에 대하여는 점점 죽고 의에 대하여는 점점 살게 되는 것이다.


① 성화는 칭의나 양자와 어떻게 구별되는가?

성화는 다음에 있어서 칭의나 양자와 구별된다.

⑴ 칭의와 양자는 우리 밖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행위이지만 성화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이시다.

⑵ 칭의와 양자는 상대적인 변화이지만 성화는 실제적인 변화이다.

⑶ 칭의와 양자는 처음부터 완전한 것이지만 성화는 완전을 향하여 점차로 변화되는 것이다.


② 성화의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⑴ 우리가 성화의 주체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성화의 주관자나 그것을 유효케 하는 원인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럽힐 수는 있으나 깨끗케 하거나 새롭게 할 수 없다.

⑵ 성화는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진, 즉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③ 사람들이 성화 되기 전에 그들 안에 성화 받을 만한 어떤 가치가 있었는가?

없었다. 모든 인생들은 본래부터 완전히 죄로 오염되었으며 그들이 성화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서 나온 것이다.


④ 우리의 성화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우리의 성화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의와 거룩으로 새롭게 되는 데 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⑤ 우리의 성화의 주체는 무엇인가?

우리의 성화의 주체는 우리의 전인(全人)인데 곧 지식, 의지, 양심, 기억, 사랑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은 자격에 있어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며, 우리 몸의 모든 지체들은 사용에 있어서 변화되어 의의 병기로 되는 것이다.


⑥ 우리의 성화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우리의 성화는 우리의 중생과 유효적 부르심에서 시작된다. 거기에서 우리의 마음은 최초로 조명을 받게 되며 우리의 의지는 새롭게 되며, 모든 은혜의 모든 성향들이 주입된다.


⑦ 성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의 성화는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과 은혜를 더욱 많이 베풀어주시기 위해 그의 뜻과 법도를 내려 주실 때 점차로 변화되어 나가는 것이다.


⑧ 우리의 성화는 어디에서 완성되는가?

우리의 성화는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놓여 자유하게 될 때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에 완전히 도달할 때 즉 우리의 영화의 단계에서 완성된다.


⑨ 성화의 요소는 무엇인가?

⑴ 죽임(mortification) ‐ 우리는 점차로 죄를 죽여 나간다.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 여길지어다”.(롬 6:11)

⑵ 살림(vivification) ‐ 우리는 의를 향해 살아나간다.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제 29 강  구원의 확신의 유익


제36문 : 금생에서 칭의, 양자, 성화됨을 깨닫고 그것들을 바라봄으로써 얻어지는 유익은 무엇인가?

답 : 금생에서 칭의, 양자 성화 됨을 깨닫고 그것들을 바라봄으로써 얻어지는 유익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양심의 화평과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과 은혜의 증가함과 끝날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① 의롭다 함을 받고 양자가 되고 성화된 자들에게 속하는 유익은 어떤 종류가 있는가?

의롭다 함을 받고 양자 되고 성화된 자들에게 속하는 유익의 종류는 ⑴ 금생에서의 유익 ⑵ 죽음에서의 유익 ⑶ 부활시의 유익


② 의롭다 함을 받고 양자 되고 성화된 자들이 금생에서 받는 유익은 무엇인가?

금생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에게 속하는 유익은 다음 5가지이다. 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  ⑵ 양심의 화평  ⑶ 성령 안에서 기뻐함  ⑷ 은혜의 증가  ⑸ 끝날까지 은혜 안에서 인내함.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1,2,5),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③ 칭의, 양자, 그리고 성화를 깨닫고 또 그것들을 바라봄으로써 얻어지는 유익은 무엇인가?

칭의, 양자, 그리고 성화를 깨닫고 또 그것들을 바라봄으로써 얻어지는 유익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양심의 화평을 누리며 성령 안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다.


④ 칭의 받지 못하고 성화 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유익들 중 어떤 것을 얻게 되는가?

칭의 받지 못하고 성화 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짓으로 확신할 수는 있겠으나 진정한 확신이 없다. 가질 수 있을지언정 참된 영적인 화평이 없다. 그들은 세속적으로 기쁨이나 근거 없는 영적인 기쁨은 누릴 수 있겠으나 성령으로 말미암는 천국의 진정한 기쁨이 없다. 이러한 유익들은 오직 참으로 칭의 받고 양자 되고 성화 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들이다.


⑤ 칭의 받고 양자 되고 성화 된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유익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사람들은 칭의, 양자, 그리고 성화를 깨닫거나 바라보지 못하고 오히려 의심가운데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평화 대신 양심의 고통을 성령 안에서 기뻐하는 대신 심령의 우울함을 면치 못한다.


⑥ 하나님의 자녀는 그의 칭의, 양자 됨의 확증을 어떻게 얻는가?

하나님의 자녀는 성화 됨으로 말미암아 칭의와 양자 됨의 확증을 얻는다.


⑦ 성화의 확증은 무엇인가?

성화의 확증은 은혜가 증가되는 것이다.


⑧ 칭의, 양자, 성화의 이룸에서 얻어지는 유익은 무엇인가?

칭의, 양자, 성화의 이룸에서 얻어지는 유익은 은혜가 증가되고 끝날 까지 인내하게 되는 것이다.


⑨ 참으로 의롭게 되고 양자 되고 성화 된 자들은 모두 은혜가 증가됨을 깨닫게 되는가?

⑴ 참으로 의롭게 되고 양자 되고 성화 된 자들은 모두 동시에 은혜가 증가됨을 깨닫는 것이 아니다. 그들 중에 얼마는 때에 따라 은혜가 내리막길로 치달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⑵ 그들은 항상 자라나는 성향을 가지고 있고 또 은혜 안에 자라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스스로 자라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타락하고 있다고 두려워할 때도 역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⑩ 참으로 모든 칭의 받고 양자 되고 성화된 자들을 끝날 까지 은혜 안에 인내하게 되는가?

참으로 모든 칭의 받고 양자 되고 성화된 자들은 끝날 까지 은혜 안에서 인내하며 천국의 유업을 분명코 얻게 된다.


⑪ 당신은 어떻게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⑴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사랑과 천국은 물론 인내에 대해서도 약속하셨기에 그 약속의 성실성으로부터 증명할 수 있다.

⑵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관계를 맺었음과 그가 그들을 보살피고 계심으로부터 증명할 수 있다.

⑶ 그들 안에 계신 하나님의 성령의 영원히 내주, 내재하심으로부터 증명할 수 있다.

⑷ 은혜의 본성으로부터 증명할 수 있다. 이 은혜는 어느 누구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내재하는 씨앗이다.


⑫ 어떤 신자에게 죄에 떨어짐으로 은혜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어떤 신자에게 잔존하는 부패와 사단의 시험이 거세어짐으로 인해 죄에 넘어지고 따라서 은혜에서도 어느 정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결단코 은혜에서 완전하게 최종적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서 그들이 이전에 고백했던 그 공언에서 완전히 최종적으로 떨어져 나간 것을 볼 때가 있는데, 그 경우 그들이 이전에 그들 스스로 고백했던 공언이 진정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 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9)



제 30 강  신자의 죽음


제37문 : 신자가 죽을 때 그리스도로부터 무슨 유익을 받나?

답 : 신자가 죽을 때 그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 중에 들어가고 그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하여 부활 때까지 무덤에서 쉰다.


① 신자가 죽을 때 받는 유익은 몇 가지인가?

신자가 죽을 때 받는 유익은 두 가지다.

⑴ 영혼에 관하여   ⑵ 육신에 관하여


② 신자가 죽을 때 영혼에 관하여 받는 유익은 무엇인가?

신자들의 영혼은 죽을 때  ⑴ 거룩함에 있어서 완전을 이룬다.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들과”.(히 12:23)

⑵ 그들은 즉시 영광 중에 들어간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 1:23)


③ 신자들의 영혼이 죽을 때 가지게 될 완전한 거룩은 어떠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⑴ 죄와 오염에서 완전히 자유를 얻으며 죄의 존재나 경향성에서도 자유를 얻게 된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계 21:27)

⑵ 영혼의 완전한 의로움과 그리스도의 형상에 완전한 일치함을 맛보게 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④ 신자들의 영혼이 죽음에 이르러 즉시 맛보게 되는 영광은 어떠한 것인가?

신자들의 영혼이 죽음에 이르러 즉시 맛보게 되는 것은 ⑴ 영광스런 장소  ⑵ 영광스런 교제  ⑶ 영광스런 상태이다.


⑤ 신자들의 영혼이 죽음에 이르러 즉시 맛보게 되는 영광스런 장소는 어떠한 것인가?

신자들의 영혼이 죽음에 이르러 즉시 맛보게 되는 영광스런 장소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늘나라 아버지의 집이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요 14:2)


⑥ 신자들의 영혼이 즉시 누리게 되는 영광스런 교제는 어떠한 것인가?

신자들이 영혼이 즉시 누리게 되는 영광스런 교제는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것이요 또한 영광 중에 있는 천사들과 성도들의 영혼과 함께 누리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6‐8),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히 12:22‐24)


⑦ 신자들의 영혼이 죽음에 이르러 즉시 누리게 되는 영광스런 상태란 어떤 것인가?

신자가 죽은 후 그 영혼에게 즉각적으로 임하는 영광스런 상태는 복 받은 자들의 안식의 상태이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⑧ 신자들이 죽음에 이르러 그들의 육체가 받는 유익은 무엇인가?

⑴ 신자들의 육체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 비록 죽음이 잠시 동안은 그들의 영혼을 육체로부터 분리시켜 놓을지 모르나, 죽음은 이 둘을 그리스도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그의 본질적 혹은 인격적 연합은 그대로 상존해 계셨으며 그의 신성은 천국에 계신 그의 영혼과 땅 위 무덤에 계신 육체와 연합되어 계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자들도 죽을 때 그들의 신비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대로 상존해 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영광 중에 계신 그와 그들의 영혼과 연합해 계시며 또한 바로 무덤에서 썩고 있지만 그래도 그의 지체인 육체들과 함께 연합해 계신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5),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

⑵ 신자들의 육체는 부활 때까지 침대에 잠을 자듯이 무덤에서 쉰다.“그는 평안에 들어 갔나니 무릇 정도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사 47:2)


⑨ 여기에서 말하는 부활은 무엇인가?

여기에서 말하는 부활은, 창세 이래 모든 세대를 통해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서 일어나는 최종적, 그리고 일반적인 부활을 말한다. 마지막 날에 먼저는 의인이 다음은 악인이 부활할 것이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6)


⑩ 당신은 그와 같은 일반적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그리고 말씀의 계시로부터 분명히 증명된다. 만일 하나님이 무한히 능력이 많으시고 그래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실 수 있으시며 무한히 참되시고 말씀 속에서 그가 모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리라고 계시하셨다면, 분명코 일반적 부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히 능력이 많으시고 모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실 수 있으시고 무한히 참되시고 그의 말씀 속에서 그가 모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리라고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부활이 있을 것이다. 부활을 부인했던 사두개인들의 오류의 근거는 이 교리의 두 가지 근거 즉 하나님의 능력과 성경에 관한 것을 분명히 몰랐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막 12:24)


⑪ 죽은 자들을 전에 살아 있을 때 입었던 몸과 동일한 몸으로 일으키심을 받는가?

죽은 자들은 동일한 몸을 일으키심을 받는다.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 19:26).(그러나 And though after my skin worms destroy this body, yet in my flesh shall I see God'라고 원문에 기록되어 있음‐역자주)


⑫ 당신은 죽은 자들이 이전의 것과 동일한 몸을 입고 일어나리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⑴ 만약 죽은 자들이 동일한 몸으로 부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떠한 의미로도 부활이라 불리워질 수 없고 다만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⑵ 최초의 몸이 의나 죄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보상이나 형벌에도 참여해야 한다.


⑬ 육체가 부활할 때 지금 갖고 있던 육체와 다른 것인가?

부활한 육체는 지금 갖고 있던 육체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본질이나 존재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성질에 있어서 상당히 다르다.


⑭ 불신자들이 죽을 때 그들의 육체는 신자의 육체와 어떤 점에서 다른가?

불신자들의 육체는 죽을 때 무덤이라는 감옥에 갇히고 그들의 영혼은 지옥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그들은 거기서 마귀와 다른 저주받은 영들과 함께 두려움과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대심판 날 때까지 어두움의 사슬에 매인 바 된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 3:19,20),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제 31 강  신자의 부활


제 38 문 : 신자들이 부활할 때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는가?

답 : 신자들이 부활할 때 영광 중에 다시 살아남을 입어 심판 날에 공적으로 인정함을 받고 무죄선고를 받으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흡족하게 즐거워하는 완전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① 신자들이 부활할 때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유익은 몇 가지인가?

신자들이 부활할 때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유익한 다음 세 가지로 생각될 수 있다.  ⑴ 부활 자체에 관하여  ⑵ 부활 후 심판 날에 관하여  ⑶ 심판 후 천국에 관하여

 

② 신자들은 부활 자체로부터 무슨 유익을 받는가?

신자들이 부활 자체로부터 받는 유익은 그들이 영광 중에 일으키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③ 이 영광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신자들의 육체가 부활할 때 덧입게 될 영광된 것으로, 그 육체는 원래 죽어서는 무덤에서 썩고 있었던 육체요 살아서는 죄의 도구가 되어 질병과 죽음에 굴복한 비참한 육체였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1)


④ 부활시 신자의 육체에 덧입혀질 영광은 어떠한 것인가?

부활시 신자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지고한 영광스런 육체와 같이 가장 건강하고 강건하고 신령하고 썩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런 존재가 될 것이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1),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전 15:42‐44,53,54)


⑤ 신자들이 부활 후 심판 날에 받는 유익은 무엇인가?

심판 날에 ⑴ 그들은 천사들에 의해 모든 땅 구석구석에서 모아질 것이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1)

⑵ 신자들을 하늘에서 큰 소리로 나타나신 주 예수님을 영접하려 구름 속으로 이끌림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⑶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우편에 서게 될 것이다.

“양은 그 오른편에 … 두리라”.(마 25:33)

⑷ 신자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공적으로 그의 것이라는 인정함을 받을 것이며, 그들에게 퍼부어졌던 거짓된 모든 중상과 비방에서 그리고 그들이 실제적으로 범했던 모든 죄책에서 그들의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용서함을 받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며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롬 8:33.34)

⑸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영광스런 유업을 받기 위해 초대받고 환대 받을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⑹ 신자들은 악한 천사와 악한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배석할 것이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6:2,3)


⑥ 신자들은 심판 후 천국에서 어떠한 유익을 받을 것인가?

천국에 있는 신자들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과 완전한 기쁨과 복락의 자리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⑦ 천국에 있는 신자들의 완전한 복락은 어떤 것인가?

천국에 있는 신자들의 완전한 복락은  ⑴ 모든 악과 죄와 비참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혹은 제외되어 있는 상태.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7),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⑵ 지고한 선 자체이신 하나님을 완전히 즐거워하는 상태.


⑧ 천국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즐거워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자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즐거워한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들을 의미한다.

⑴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존전에 서게 될 것이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계 21:3)

⑵ 그들은 그의 얼굴을 직접 목도할 것이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계 22:4),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고전 13:12), “우리가 …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⑶ 그들은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고 그를 향하는 가슴 속 깊은 완전한 사랑을 인지하고 깨달을 것이다. 이 사랑은 천국에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본 데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사랑이다.

⑷ 그들은 완전한 넘치는 기쁨을 갖게 될 것이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시 16:11),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유 24)


⑨ 천국에서 신자들이 하나님을 충만히 즐거워함으로 얻게 되는 행복은 어떠한 것인가?

천국에서 신자들이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얻게 되는 행복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그것은 중단도 없고 끝도 없다.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⑩ 마지막 날 신자들의 상태와 불신자들이나 모든 악한 세상의 상태와 어떻게 다른가?

불신자들이나 모든 악한 세상의 상태는 심판 날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될 것이다.

⑴ 그들의 육체는 무덤에서 일어나 죄수와 같이 나아올 것이며, 어떠한 능력과 불멸의 존재가 그들 위에 임하여 그들을 영원히 고통스럽게 하고 비참하게 할 것이다.

⑵ 그들은 그들에게 보복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꽃 중에 두려움과 무서운 소리와 함께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살후 1:7,8)

⑶ 그들은 그리스도의 보좌와 심판대 앞에서야 할 것이다. 그 앞에 그들의 모든 죄를 기록한 책들이 펴져 있고 그 책의 내용에 따라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선고받는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계 20:11,12),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⑷ 그들은 주님의 존전에서 지옥으로 쫓겨나 거기서 영과 육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극단적인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것이며 그 고통은 조금도 완화되거나 중지됨이 없이 영원에서 영원까지 지속될 것이다.

“저희는 영벌(ever lasting punishment)에,… 들어가리라”(마25:46),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롬2:8,9),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계 14:11)



제 32 강  인간의 의무


제 39 문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는 의무는 무엇인가?

답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그의 계시하신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① 인간의 의무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라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인가?

인간의 의무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창조주이시며 은혜 베푸시는 자이시며 지고한 주권자이시며 왕이시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 이외는 인간의 양심을 주재하며 인간에게 순종을 요구할 수 있는 어떤 다른 주가 없는가?

하나님은 양심을 주재하는 유일한 주이시다. 비록 우리는 관리들과 부모님과 주인에게 복종을 해야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행하기를 요구하시기 때문에 이것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어떤 것을 행하라고 우리에게 명한다면, 우리는 세상 누구에게보다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기 때문에 그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


③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규칙을 주사 그것에 따라 온전히 순종하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바 우리의 온전히 순종해야 할 유일한 규칙은 그의 계시하신 뜻이다.


④ 하나님은 그가 계시하셨던 뜻 이외에 다른 어떤 뜻을 갖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발생하는 만물에 대해 은밀한 뜻을 갖고 계시나 이것은 최상의 것으로서 미리 알려질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순종의 규칙이 될 수 없다.


⑤ 하나님의 은밀한 뜻과 계시하신 뜻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밀한 뜻은 행해지고 있고 행해질 모든 일들에 관계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인간의 의지나 의도를 넘어서서 허용하시고 결정하시고 인도하시는 바 죄된 행위에까지 미친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하신 뜻은 행해야만 하는 모든 일들에 관계하며 의무가 되는 것들과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는 모든 것들에만 미친다. 이 계시하신 뜻은 인간이 순종해야 할 유일한 규칙이 된다.


⑥ 하나님의 계시하신 뜻은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하나님의 계시하신 뜻은 성경에서 발견되어진다. 이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모든 의무가 알려진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제 40 문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종에 대한 규칙으로 처음 계시하신 것은 무엇인가?

답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종에 대한 규칙으로 처음 계시하신 것은 도덕법이었다


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법들 중 다른 어떤 것이 있는가?

여호와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다른 실증법들을 주셨다. 그들은 의식법(ceremonial laws)과 같은 이러한 종류의 법들에 순종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법들은 모든 민족 모든 세대에 걸쳐 순종에 관한 영구한 율법이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잠시 후 이 법들은 폐지되고 취소되었으며 우리 시대에 와서 이 법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② 이 도덕법은 복음 시대에도 순종의 규칙으로 상존하는가?

이 도덕법은 최초로 인간 순종의 규칙으로 계시되었으며 이것은 세상 끝날 때까지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까지 효력을 미친다.


③ 이 도덕법은 어떻게 이교도들과 불신의 세상에까지 순종의 규칙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 그들은 성경의 빛을 받지 못하므로 도덕법을 알 수 없지 않는가?

성경의 빛을 받지 못하면 이 도덕법을 명백히 발견할 수 없음은 사실이지만, 자연의 빛으로써 그것은 모든 민족에게 어느 정도 알려지며 이것으로 이교도인들도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조금도 남겨주지 않는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4,15)


④ 어떤 인간이 도덕법에 순종함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는가?

만일 어떤 인간이 이 도덕법에 완전히 순종할 수가 있었다면 그는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죄책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순종은 불가능하며, 그것으로 인한 생명은 획득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은 타락한 인생에게 생명을 얻도록 부여된 것이 아니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갈 3:12),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다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갈 3:21,22)


⑤ 율법이 어떻게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가?

율법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은 다음 몇 가지로 말미암아서이다.

⑴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함으로써 율법의 금지사항은 그들로 위범죄를 깨닫게 하며 율법의 권장사항은 그들로 태만죄를 깨닫게 한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⑵ 그들에게 자신들의 죄로 인해 응당 받아야 할, 그리고 모든 죄책을 짊어진 죄인들이 처한 하나님의 저주를 발견케 함으로써.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⑶ 죄된 양심을 일깨우며 그것으로 인해 예속과 공포를 조장시킴으로써 종의 영인 율법과 함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써 그들에게 불순종으로 인한 위험 천만함과 미래의 진노를 보여준다.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갈 4:24).이렇게 하여 인간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완전한 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며 그것 없이는 생명도 없고 구원도 없음을 깨닫는다.


⑥ 사람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와 그에게 연합되면 이 도덕법은 그들에게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가?

신자들은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가짐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동안 이 도덕법의 저주와 정죄에서 그리고 그것의 엄정함과 저주에서 해방되지만, 그러나 이 도덕법은 여전히 신자들에게 사용되며 그들 대신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께 감사를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며, 또 그 규칙에 따라 신자들은 마음과 생활에 일치하도록 힘써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현 생애에서는 이 율법의 완전한 요구를 이룰 수 없는 것이긴 하더라도).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6,12),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원문에는 ‘teaching us’라고 나와 있음‐역자 주) 경건치 않는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심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딛 2:11,12)


제 41 문 : 이 도덕법이 어디에 요약되어 담겨 있는가?

답 : 이 도덕법은 십계명 속에 요약되어 담겨 있다.


① 도덕법이 십계명 속에 요약되어 담겨 있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인가?

도덕법이 십계명 속에 요약되어 담겨 있는 것은 율법의 총체요 주요한 골자가 거기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② 십계명에서 표현되어 있는 것 이외에 도덕법에서 명령되거나 금지되는 것을 포함하는 어떤 것이 있는가?

도덕법은 신령하고 대단히 넓어 인간의 모든 내적 생각과 모든 외적 담화에까지 이르며 계명 속에 있는 10개의 총체적인 골자는 여러 가지 특수한 지체와 지류를 포함한다.

⑴ 어떤 한 계명 속에서 금지되는 무슨 죄이든지 여기에 상반된 의무가 명령되며 이와 동일한 모든 종류의 죄도 동시에 금지된다. 그리고 이것은 말과 죄의 경향성이 있는 약간의 몸짓을 포함한 모든 외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원인과 수단과 경우와 외양과 함께 죄에 대한 모든 내적인 애정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든지 그것으로 나아가게 자극을 주는 모든 요소도 또한 금지된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1,22,27,28)

⑵ 무슨 의무이든지 명령되면 그와 상반된 것이 금지되며, 이와 동일한 모든 종류의 의무를, 즉 거기로 향하는 모든 합당한 애정들과 함께 거기에 이르는 데 도움을 주고 촉진시키고 조장시키는 모든 수단의 사용 그리고 우리의 현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을 순종하도록 도움을 주고 고무시켜 주기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과 의무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제 33 강  십계명 서론


제 42 문 : 십계명의 대강령은 무엇인가?

답 : 십계명의 대강령은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사랑하기를 자기 몸같이 하라 하신 것이다.


① 십계명은 최초로 몇 개의 판에 기록되었는가?

십계명은 최초로 하나님께서 산에서 친히 기록하신 것이며 두 돌판에 모세에게 전달되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 … 여화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신10:1,2,4)


② 이 판들에 기록된 십계명의 포괄적인 의무는 무엇인가?

십계명의 포괄적인 의무는 사랑이다.


③ 이 율법의 첫 돌판의 요의는 무엇인가?

이 율법의 첫 판의 요의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


④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사랑의 지고함과 불붙음(?) 그리고 활동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의 지고한 선으로서 그를 선택하고 그에게 애착을 두고 그를 즐거워하며 우리의 영혼과 육체의 모든 기능과 능력을 사용하며 사랑에서 기인된 순종을 하게 된다.


⑤ 이 율법의 둘째 돌판의 요의는 무엇인가?

이 율법의 둘째 돌판의 요의는, 인간에게 관계된 것으로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


⑥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⑦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행하듯이 이와 동일한 진실함과 사랑의 확고함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제 43 문 : 십계명의 서문은 무엇인가?

답 : 십계명의 서문은 이렇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제 44 문 : 십계명의 서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답 : 십계명의 서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은 주님이시며 또 우리 하나님이시요 구속자이시므로 우리는 그의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① 십계명의 서문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다 지켜야 한다고 하는 말을 몇 가지로 논증하고 있는가?

십계명의 서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말을 세 가지고 논증하고 있다.

⑴ 하나님은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   “나는 주님이시다.”

⑵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시다.”

⑶ 하나님은 우리의 구속자이시기 때문이다. ‐  “나는 너의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다.”


② 하나님은 현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신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시겠는가?

하나님은 옛날 지상의 애굽과 노예생활에서 그의 백성들을 이끌어내셨듯이, 지금은 그의 백성들을 영적인 의미의 애굽에서와 마귀와 정욕의 종노릇한 데서 이끌어내신다.


③ 그가 주님이시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그가 주님이시라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는 주님이시며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지고한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고 백성들이기 때문에 그에게 온전한 순종을 하여야 한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2.3),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이는 주께 당연한 일이라”.(렘 10:7)


④ 그가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그가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으로서 우리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우리로 그 자신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를 섬겨야 할 더욱 큰 의무가 주어져 있다.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 직임과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신 11:1)


⑤ 그가 우리의 구속자이시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그가 우리의 구속자이시라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단의 종노릇 한 데서 자유케 하셨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에게 순종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우리를 구속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눅 1:74,75)



제 34 강  제 일 계명의 의미


제 45 문 : 제 일 계명은 무엇인가?

답 : 제 일 계명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는 것이다.


제 46 문 : 제 일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일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으로 알고 인정하며 그러므로써 그를 예배하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① 제 일 계명에서 요구하는 의무는 주로 몇 가지인가?

제 일 계명에서 요구하는 의무는 주로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⑴ 하나님을 아는 것.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대상 28:9)

⑵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네가 오늘날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신 26:17)

⑶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


②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⑴ 하나님의 존재 혹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며,

⑵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신 모든 영화로운 속성들과 완전성 가운데 계시다는 것이다.


③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으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고전 8:6),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시48:14)


④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하고 영화롭게 해 드리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신적인 예배와 존영을 드리기에 합당하고 유일한 대상이기에 그에게 경배하고 그를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한다.

⑴ 우리의 지성으로는 그를 생각하고 묵상하고 기억하고 그에게 지고한 가치를 둠으로써 그에게 경배하고 그를 영화롭게 해 드린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시63:6), “하나님이여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시 71:19)

⑵ 우리의 의지로는 그를 우리의 지고한 선으로 선택하고 그를 섬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한다.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수 24:22)

⑶ 우리의 마음으로는 그를 사랑하고 그를 사모하고 그를 두려워하고 그를 믿고 신뢰하며, 그를 거스려 지은 죄에 대하여는 슬퍼하고 그를 소망하고 그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신10:12), “ 주의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사26:8), “여호와 백성이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 14:31),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사 26:4),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시 38:18).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 130:7), “여호와를 기뻐하라.”(시 37:4)

⑷ 우리의 입술로는 그를 부르고 그의 이름을 높인다.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시 145:21)

⑸ 우리의 삶으로는 그에게 전적인 순종을 다하며 그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을 내며 그를 기쁘시게 하며 그를 노하시게 하는 것을 삼가 두려워하며 그 앞에서 겸손히 행함으로 그에게 경배드리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렘 7:23),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골 1:10),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제 47 문 : 제 일 계명에서 금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 : 제 일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참되신 하나님을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그를 예배하며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예배와 영광을 우상에게 돌리는 것이다.


① 제 일 계명에서 금하는 주요한 죄는 무엇인가?

제 일 계명에서 금하는 주요한 죄는 ⑴ 무신론(Atheism) ⑵ 신성모독(Profaneness) ⑶ 우상숭배(Idolatry)이다.


② 무신론은 무엇인가?

무신론은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2)


③ 본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신성모독은 무엇인가?

본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신성모독은 참되신 하나님을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으로 경배하지 않고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이다.


④ 이 신성모독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영광에 비추어 볼 때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신성모독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영광에 비추어 볼 때 다음의 경우에 나타난다.

⑴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않거나 하나님을 곡해할 때 나타난다.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렘 4:22),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시 50:21)

⑵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 나타난다.

“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렘 2:32)

⑶ 사람이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하나님 보다 자기 자신과 다른 어떤 것을 더 사랑할 때, 하나님 보다 피조물을 더 사모하거나 하나님보다 육신의 팔을 더 신뢰하거나 하나님보다 감각의 대상을 더 즐길 때, 사람이 하나님보다 세상에 있는 어떤 것에 사랑을 둠으로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질 때 나타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롬 8: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2)

⑷ 사람이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경배와 영광을 그 사람의 속마음으로든지 외부적으로든지 돌리지 않거나 무시해 버릴 때 나타난다.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하였으며”.(사43:22)


⑤ 제 일 계명에서 금하는 우상숭배는 무엇인가?

제 일 계명에서 금하는 우상숭배는 응당 하나님께만 돌아가야 할 경배와 영광을 다른 어떤 대상에다 바치는 것이다.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 1:25)


⑥ 사람들은 본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우상숭배의 죄를 몇 가지 방법으로 범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본 계명에서 금하는 우상숭배의 죄를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범하고 있다.

⑴ 사람들이 이교도의 신들이나 천사들이나 성자들을 섬길 때와 같은 방법으로 참되신 하나님 이외 다른 신들을 모시거나 경배함으로 범하고 있다. (외부적인 형태를 동반하여)

⑵ 응당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존귀와 영광을 세상에 있는 다른 어떤 것에 돌림으로 범하고 있다. (이때에는 마음의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 3:5)


제 48 문 : 제 일 계명 중에 “나 외에”란 말이 우리에게 특별히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일 계명 중에 “나 외에”라는 말이 우리에게 특별히 가르치는 것은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섬기는 죄를 내려다보시고 매우 불쾌하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신다는 것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신다는 것은 그가 편재(어디든지 아니 계시는 곳이 없음)해 계시며 지혜가 무한한 데서 나타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 147:5)


② 왜 하나님께서는 어떤 다른 신을 섬기는 죄에 대해 그렇게 예의 주시하시며 그렇게 불쾌해 하시는가?

다른 신을 섬기는 죄는 거룩하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눈에 매우 불쾌하게 보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다른 누구에게 주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 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시 44:20,21),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제 35 강  제 이 계명의 의미


제 49 문 : 제 이 계명은 무엇인가?

답 : 제 이 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니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다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는 것이다.


제 50 문 : 제 이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이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말씀 가운데서 지정하신 모든 종교적 예배와 규례를 받아 순종하고 순수하고 완전하게 지키라는 것이다.


① 본 계명에서 요구하는 예배와 제 일 계명에서 요구하는 예배와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

제 일 계명에서 요구하는 예배는 예배의 대상에 중점을 두며, 거기에서 우리는 참되신 하나님께만 예배드려야 하며 그밖에 아무에게도 예배 드리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제 이 계명에서 요구하는 예배는 예배의 방법에 중점을 두며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과 수단에 따라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하며 다른 어떤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② 하나님께서 예배의 방법을 지정하셨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예배의 방법을 지적하신 유일한 방법과 수단은 그가 말씀 속에 지정하셨던 것인데 그것은 그의 규례이다.


③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이 준수해야 할 예배의 수단이었던 바 그의 말씀 속에 지정하셨던 규례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예배의 수단으로 그리고 그의 백성들이 준수해야 할 것으로 그의 말씀 속에 지정하셨던 규례는 다음과 같다.

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공중예배에서 공적으로 드리는 기도이든지 가정에서 사적으로 드리는 기도이든지 골방에서 은밀하게 드리는 기도이든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2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눅 1:10),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를 부으소서”(렘 10:25),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⑵ 성경을 읽고 궁구함.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행 15:21),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⑶ 말씀을 전파하고 청종함.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권하라”(딤후 4:2),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55:3)

⑷ 찬송을 함.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송할 지어다”(시 149:1), “너희 중에 …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⑸ 성례(세례와 성찬)를 시행하고 받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3‐25)

⑹ 금식.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눅5:35)

⑺ 여호와의 율법으로 자녀들과 가족들을 가르침.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창 18:19),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 6:6,7),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⑻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담화함.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말 3:16), “제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⑼ 묵상.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시 77:12),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그러나 원문에는‘Meditate upon these things; give thyself wholly to them, that thy profiting may appear unto all’이라 되어 있음).(딤전 4:15)

⑽ 주께 서원을 함.

“너희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시 76:11)

⑾ 합당하게 요구하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함.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 6:13)

⑿ 교회의 권징을 실시함.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5‐17)


④ 하나님께서 그의 규례와 예배의 방법에 관하여 제 이 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의 규례와 예배의 방법에 관하여 제 이 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은, ⑴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⑵ 그것들을 준수하는 것이다. ⑶ 그것들을 순수하고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다.


⑤ 하나님의 규례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규례를 받아들이는 것은 지성으로 이것들을 인정하고 의지로는 기꺼이 맞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⑥ 하나님의 규례를 준수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규례를 준수하는 것은 그 규례가 요구하는 것을 수행하며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⑦ 하나님의 규례를 순수하고 온전하게 지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규례를 순수하고 온전하게 지키는 것은, 이 규례에 어떤 것을 추가하거나 삭제함으로 부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신 12:32)


⑧ 이 계명에서 요구되는 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모든 종교적인 예배와 규례를 순수하고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준수하고 지키는 것은, “너를 위하여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고  금지하신 내용과 어떻게 대비되는가?

하나님께서 새긴 형상을 만들거나 그것에게 절하는 것을 금지하신 것은 다음의 사실로써 명백히 대비된다.

⑴ 하나님은 어떤 수단에 의해 예배 받으시는 분이라는 점.

⑵ 새긴 형상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죄라는 점.

⑶ 따라서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수단으로 예배 드림은 죄라는 점.

⑷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규례가 순수하고 온전하게 받아들여지고 준수되고 지켜지도록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


제 51 문 : 제 이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이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우상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정하지 아니 한 다른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이다.


① 제 이 계명에서 금하는 죄 중 가장 큰 죄는 무엇인가?

제 이 계명에서 금하는 죄 중 가장 큰 죄는 우상숭배 죄(the sin of idolatry)이다.


② 제 이 계명에서 금하는 우상숭배 죄와 제 일 계명에서 금하는 우상숭배 죄는 어떻게 다른가?

제 일 계명에서 금하는 우상숭배 죄는,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예배와 영광을 다른 대상에게 둘 때 저지르게 되는 바 그 대상에 관계되며, 제 이 계명에서 금하는 우상숭배 죄는, 우리가 형상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저지르게 되는 바 예배의 수단에 관계된다.


③ 사람들은 형상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범하게 되는 이 우상숭배의 죄를 몇 가지 방법으로 저지르게 되는가?

사람들은 형상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다음 경우와 같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다.

⑴ 그들이 형상이나 조상으로써 가장된 거짓 신들에게 경배할 때인데, 이러한 것은 이교도들이 그들이 신전에다 형상을 세워놓고 쥬피터(Jupiter; 고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나 쥬노(Juno; 쥬피터의 아내이며 결혼을 관장하는 여신)나 아폴로(Apollo; 태양신)나 다이아나(Diana; 달신)나 그 밖의 다른 가장된 남신과 여신들에게 경배 할 때 범하는 우상숭배이다.

⑵ 그들이 본 계명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물에 있는 어떤 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에 대한 형상이나 주상을 만들어 그것을 통해 참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할 때이다.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신 5:8,9), “여호와께서 호렙산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 만들까 하노라”(신 4:15‐18). “그들이 …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출 32:8)

⑶ 그들이 예배드릴 때 마음속에 육신적인 상상물이나 하나님의 조상을 가질 때이다. 이는 마치 하나님이 하늘에 앉아 계시는 노인이나 그와 비슷한 무엇처럼 보인 것과도 같을 것이다.


④ 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림에 있어서 도움을 얻기 위한 형상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가?

⑴ 하나님께서 그것을 절대적으로 금지하시기 때문이다.

⑵ 형상들은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헌신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상은 우리의 마음속에 참되신 하나님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최상의 우월한 존재이시고 모든 피조물 위에 무한히 떨어져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한낱 죽은 형상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그분의 영광에 큰 불명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나 그림을 가지고 그것들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그것들로 하나님을 삼지도 않는데 그것들 자체가 합당치 못하단 말인가?

하나님의 형상이나 그림은 가증한 것이고 철저히 부당한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낮추고 우상숭배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⑥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인 동시 사람이신 고로 그의 조상을 가진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을 가진다는 것은 전혀 부당하다. 왜냐하면 그의 신성(divine nature)은 도무지 주상으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며 그의 인성 또한 현재 영광 중에 있어서 그렇게 나타나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우리의 헌신을 분기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헛것이며, 만일 그것이 우리의 헌신을 분기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형상이나 주상숭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제 이 계명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⑦ 제 이 계명에 위반되는 두 번째 큰 죄는 무엇인가?

제 이 계명에 위반되는 두 번째 큰 죄는 미신이다.


⑧ 제 이 계명에서 금하는 미신은 무엇인가?

제 이 계명은 금하는 미신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속에 지정하셨던 방법과는 다른 어떤 수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행위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에 자신들이 고안해낸 어떤 것들을 덧붙임으로써 사도가 정죄한 바 있는 자의적 숭배를 범하였다.

“너희가 …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儀文)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골 2:20‐23)


⑨ 하나님께서 예배드림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것 이외 어떤 것도 덧붙여질 수 없는가?

하나님께 예배 드림에 있어서 예배의 요소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묘사되거나 지정된 것 이외 어떠한 것도 덧붙여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적인 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 고로 단지 헛된 예배일  뿐이며 그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못하고 그 예배로 인해 자신들에게 하등 유익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 15:9)


⑩ 인간의 우둔한 마음으로 일깨워 보다 더욱 열심을 내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요한 의식은 허용될 수 없는가?

⑴ 하나님께서 율법 하에 세우셨던 의식들도 부당하거든 하물며 인간이 예배의 요소로 세운 의식이야 더욱 부당하지 않겠는가?

⑵ 중요한 교훈적인 의식들은 그것들이 하나님에 의해 지정되었다면 참된 예배의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의미심장한 의식들이라 해도 하나님에 의해 지정되지 않았다면 그것들은 잘못된 예배가 되며 그것들이 사용될 때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⑶ 하나님의 세우신 제도가 아닌 중요한 교훈적인 의식은,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지 못할 뿐더러 어떠한 은혜를 받음에 있어서도 무의미하며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⑪ 교회는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라는 명령에 보여진 바와 같이 온당함과 질서를 위하여 의식을 정할 수 없는가?

교회는 이 명령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온당함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교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시행함에 있어서, 이를테면 시간과 장소와 그와 같은 것을 편리하게 함에 있어서 온당하게 차서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 자체를 실제적으로 정해 놓았으며 이것이 없었다면 예배를 진행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에게 그것들이 중요한 교육적 의식이라고 증명되더라도 그것들을 새로운 예배의 요소로 정하거나 소개할 자유가 부여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그런 것들은 성경의 아무런 보증도 없이 우상숭배하는 로마 교회가 사용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예배에 온당한 것이라 불리울 수 없다.


⑫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로마 교회의 우상숭배와 미신은 어떤 것이 있는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로마 교회의 우상숭배와 미신적 행위는 다음과 같다. 빵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고 주장하며 성례 시 무릎을 꿇는 우상숭배, 십자가로 그리스도께 예배드리는 우상숭배, 하나님의 형상이나 조상 앞에 꿇어 엎드리는 우상숭배, 제단에서와 동쪽을 향해 절을 하는 우상숭배, 천사와 성자, 특히 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 로마교는 마리아를 신성시한 나머지 예수님을 낳고 난 후도 처녀로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여기서도 동정녀 마리아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성경 여러 군데서 입증 받지 못한다 : 역자주) 에게 기도 드리는 우상숭배, 피 없는 성체(聖體) 희생의 봉헌, 사순절에 금식하고 육식을 금하는 미신적 행위, 성체에 크림, 기름 그리고 침을 바르는 행위, 미신적인 축제일들, 미신적인 사제의 중백의(中白衣), 세례 시 십자가로 노래 부르기, 종의 세례(baptizing of bells), 염주로 기도 드리기,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미신적인 관습이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은 성경에서 조금도 명하고 있지 않다.

 

⑬ 우리가 어떻게 할 때 제 이 계명을 거스리고 죄를 짓게 되는 것인가?

우리가 제 이 계명을 거스리고 죄를 짓게 되는 것은 비단 우상숭배와 미신적인 행위뿐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세우신 제도에 따라 순수한 예배를 드림에 열심을 내지 않거나 우리의 현 위치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나와있는 모형에 따라 예배를 개혁시키려고 애쓰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예배의 수단으로 세우신 규례 중 어떤 것을 남용하거나 경시하거나 특별히 경멸하거나 반대할 때 그와 마찬가지 결과가 되는 것이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 2:17),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as the manner of some) 하지 말고”(히 10:25),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살전 2:16),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4‐46)


제52문 : 제 이 계명에 부가된 논증들은 무엇인가?

답 : 제 이 계명에 부가된 논증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주권자가 되시며 우리의 소유주가 되시며 그에게만 경배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①. 제 이 계명에 부가된 것 중 첫 번째 논증은 무엇인가?

 제 이 계명에 부가된 것 중 첫 번째 논증은 ‘나 여호와’ 란 말에서 보여지는 바 하나님이 우리의 주권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②. 이 첫 번째 논증의 효력은 무엇인가?

첫 번째 논증의 효력은, 하나님은 우리 위에 계신 위대한 주권적 왕이시며 자신이 예배 받으시기 위해 방법을 설정하시는 단독 유일하신 권위자이시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며 그의 율법과 규례를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에 지정된 방법 이외로는 절대로 예배 드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오 모든 신위에 크신 왕이시로다”.(시 95:2,3)


③. 제 이 계명에 부가된 두 번째 논증은 무엇인가?

 제 이 계명에 부가된 두 번째 논증은 ‘너의 하나님’, 즉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에서 보여지는 바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유주가 되신다는 것이다.


④. 이 두 번째 논증의 효력은 무엇인가?

이 두 번째 논증의 효력은, 우리는 주님께 속해 있으므로 그와 그의 명하신 것에 가까이 나아가야 하며, 마음을 그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우상숭배와 미신을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시 95:6,7), “저희가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숭배하여 … 큰 일을 행하신 그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나니”.(시 106:19,21)


⑤. 제 이 계명에서 부가된 세 번째 논증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위한 예배에는 열심이 특심하므로 그의 예배와 제도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된 질투심 역시 특심하시다. 그는 자신의 것들에서 돌이켜서 인간들의 고안품으로 향하는 자들에게 지극히 분노하신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신 5:9),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


⑥. 하나님의 예배에 대한 열심과 질투심은 어디에 나타나는가?

하나님의 예배에 대한 열심이나 질투심은 다음의 사실들에서 나타난다.

⑴ 하나님은 이 계명을 위반하는 자들을 그를 미워하는 자들로 간주하시며 그들에게 삼 사대까지 벌을 내린다고 경고하신다.

⑵ 하나님은 이 계명을 지키는 자를 그를 사랑하는 자들로 간주하시며 그들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약속한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10)


⑦ 공평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아버지의 죄를 자녀들에게 전가시키시는가?

⑴ 만일 자녀들이 그들 부모와 동일한 죄의 길로 걷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들 부모의 죄로 자녀들에게 벌하지 않으신다.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비의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겔 18:14,17)

⑵ 만일 하나님께서 아비들의 죄를 그들 자녀들에게서 찾으신다면, 그것은 그 자녀들이 아비의 지었던 죄와 동일한 죄를 범했을 경우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 그 분량을 다 채웠을 때다. 그래서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것은 가장 공평하며 가장 의로우시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겔18:25)



제 36 강  제 삼 계명의 의미


제53문 : 제 삼 계명은 무엇인가?

답 : 제 삼 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이다.


제54문 : 제 삼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삼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칭호와 속성과 규례와 말씀과 사역을 거룩하게 그리고 존경심을 가지고 사용하라는 것이다.


① 본 계명에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였던 그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본 계명에서 망령되이 일컬어서 안 되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셨던 어떤 것에 대해 보편적으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② 하나님은 어떠한 것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통해서이다.

⑴ 그의 이름, 특히 성경 속에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 주,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 등을 통해서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 6:4),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3,14),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 6:3)

⑵ 그의 칭호를 통해서인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인생의 창조자와 감찰하시는 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열방의 왕, 성도들의 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 긍휼의 아버지, 구원의 하나님, 기도를 들으시는 이, 등등.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사 1:9).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사 60:14), “나는 …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 까지 창조하신 자”(사 40:28),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욥 7:20),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딤전 6:15),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렘 10:17),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뢰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 15: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 1:3),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시 68:20),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시 65:2)

⑶ 그의 완전성과 성품을 나타내고 있는 바 그의 속성을 통해서이다. 그는 이것으로 자신을 모든 피조물과 구분시키시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전능성, 영원성, 비가시성, 무한한 지혜, 편재, 거룩, 불변성, 자비, 사랑, 등등.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딤전 1:17),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 147: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시 99:9),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말 3:6).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시 145:8),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⑷ 그의 규례 이를테면 기도와 청종과 성례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그러나 원문에는 ‘The way, O God, is in the sanctuary’로 나와 있음).(시 77:13)

⑸ 그의 말씀, 즉 율법과 복음을 통해서이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라”(시 138:2)

⑹ 그의 사역 즉 창조와 섭리를 통해서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시 9:16),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행 14:17)


③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신 것들과 관련하여 제 삼 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신 것들과 관련하여 제 삼 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⑴ 그것들의 사용.  ⑵ 그것들을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거룩한 목적을 갖고 그것들을 사용해야 하며, 그것들로써 자신을 알려지게 하신 하나님의 위엄에 합당한,  경외하는 태도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계 15:3,4),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시 96:8)


④ 이러한 것들에 관련한 우리의 거룩과 경외심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의 거룩과 경외심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야 한다.

⑴ 하나님의 이름, 칭호, 그리고 속성에 관련하여 나타내야 한다. 우리는 경건하고 경외하는 마음가짐으로 그것들을 묵상하고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존중하고 경외하고 사랑하고 사모하고 즐거워한다. 우리는 경건하고 경외하는 태도로 그것들을 우리의 혀로 조심스럽게 언급해야 할 것이다.

⑵ 하나님의 규례에 관련하여 나타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그것들을 사용해야 하며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기다리고 구해야 한다.

⑶ 하나님의 말씀에 관련하여 나타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생각하며 그것에게 기꺼이 순종을 해야 한다.

⑷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에 관련하여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지혜와 위대함을 거룩하고 경건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⑸ 하나님의 섭리의 사역에 관련하여 나타나야 한다.

우리의 거룩하고 경건한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섭리적 사역과 축복하심에 순응하고 받아들이며 그의 모든 은총을 찬양하며 그의 징계와 채찍을 감내하며 참아야 한다.


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것들을 특별히 언제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하여야 하는가?

모든 때, 즉 항상 그것들을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하지만 특별히 우리가 직접적인 예배의 직임에 부름 받았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 지도록 이것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거룩하고 경건해야 한다.


⑥ 제 삼 계명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예배와 제 일 계명과 제 이 계명에서 요구하시는 예배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 일 계명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대상에 관계된 것이고, 제 이 계명은  예배의 수단에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제 삼 계명은 예배의 태도에 관계된 것이다. 여기에서 요구하는 것은 그것을 겸손과 거룩한 경외심과 함께 그리고 성실함과 열정과 모든 종류의 거룩한 사랑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제55문 : 제 삼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삼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알게 하신 것을 모독하거나 남용하는 것이다.


① 하나님의 이름과 칭호와 속성은 어떻게 모독 받으며 남용되는가?

하나님의 이름과 칭호와 속성은 다음의 경우에 모독되고 남용된다.

⑴ 사람이 그것들에 합당한 애정을 두지 않고 그것들을 시시하게 혹은 불경스럽게 대할 때 그러하다. 특별히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멸시나 증오나 혐오감으로 채워질 때이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 1:6)

⑵ 사람이 하나님에 관하여 불경스럽게 말할 때 그러하다. 그들이 일상 대화에서 하나님의 이름이나 칭호나 속성에 대해 언급하거나,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중에 이것들을 염두에 두지 않거나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개의치 않고서 오 주님 오 하나님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 나를 구원해 주이옵소서 라고 무턱대고 부르짖을 때이다.

“주의 원수들아 헛되이 주의 이름을 칭하나이다”.(시 139:20)

⑶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때인데, 특히 그들의 일상적인 언어에 거짓 맹세를 덧붙이거나 새로운 맹세를 날조하면서도 그것을 거듭 강조함으로 사악하게 헛되이 할 때이다. 또한 사람이 관원이나 그 밖의 어떤 사람 앞에서 합당하게 맹세를 해야 할 경우 거짓으로 맹세할 때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4,37),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슥 5:4)

⑷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 스스로에게든지 다른 사람에게든지 농담삼아 악과 비슷하게 저주를 할 때 그러하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삼상 17:43),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마 26:74)

⑸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알리셨던 그의 이름이나 칭호나 속성 중 어떤 것을 거스려 말하거나,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어떤 것을 돌림으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할 때이다.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훼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왕하 19:22),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

⑹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어떤 주술에다 사용할 때 그러하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행 19:13,16)


② 하나님의 규례는 어떻게 함으로 모독되고 남용되는가?

하나님의 규례는 다음의 사실들로써 모독되고 남용된다.

⑴ 사람이 그것을 수행함에 있어서 불경하게 굴 때 즉 그들이 기도하거나 말씀을 전파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성례를 집행하거나 다른 어떤 예배에 관계되는 일을 할 때 외적인 몸가짐에 있어서 웃거나 이야기하거나 잠을 자거나 다른 어떤 불손한 짓을 할 때이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전 5:1),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

⑵ 사람이 규례를 집행함에 있어서 마음의 내적인 상태가 시시하고 형식적일 때, 그들의 마음가짐은 왔다 갔다 하고 산만하고 그들의 가슴은 죽어있고 무디어 있으며 그들이 이 규례를 통해 시중드는 바 그 하나님의 위엄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을 때(하나님은 영이시며 그를 섬김에 있어 신령한 부분을 가장   중요시 여기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지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⑶ 사람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규례를 모독하고 남용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진지한 마음으로 힘쓰고 애씀이 없이 사람들에게 신앙이 좋다 라는 평판을 받고 싶어서 이 규례를 행하며 종교상의 공언을 하는, 즉 탐욕과 악의와 육욕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종교의식을 수행하는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딤후 3: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과부의 재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마 23:14) (한글판 개역성경에는 이 구절이 생략되어 있음. 여기서는 이 구절과 유사한 눅 20:47을 인용했음 ‐ 역자 주)


③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모독되고 남용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받고 남용되는 것은 다음의 경우이다.

⑴ 사람이 시시하게 생각하거나 말을 할 때 특별히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 중 어떤 부분을 모독적인 언사로 곡해할 때이다.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하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사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씀이니라”.(렘 23:33,36)

⑵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 교리로 곡해하거나 거기에 내포된 온전하고 건전한 교리를 왜곡시킬 때이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리라”(딤전 6:3‐5)

⑶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적용시킬 때, 의인으로 슬프게 하기 위해 겁을 주고 악인으로 더욱 악한 길에 행하게 하기 위해 약속을 주는 등이다.

“내가 슬프게 하지 아니한 의인의 마음을 너희가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며 너희가 또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하였은즉”.(겔 13:22)


④ 하나님의 말씀(?)(‐>섭리사역)은 어떻게 모독되고 남용되는가?

⑴ 사람이 육욕을 충족시키고 정욕을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피조물을 무절제하게 사용할 때이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 14)

⑵ 사람이 번창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그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과 은총을 죄의 기회로 이용하려 할 때이다.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호 13:6),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롬 2:4,5)

⑶ 사람이 역경을 만날 때 불평하거나 인내하지 못할 때, 그들의 마음이 점점 완악해지고 죄에 더욱 강팍해질 때이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여 그들을 거의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렘 5:3)


제56문 : 제 삼 계명에 부가된 논증은 무엇인가?

답 : 제 삼 계명에서 부가된 논증은 이 계명을 파하는 자가 비록 사람에게는 형벌을 피할지라도 주 우리 하나님은 저희로 하여금 그 의로우신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가 사람의 형벌을 피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가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로부터 형벌을 피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음의 이유로 인해서이다.

⑴ 인간의 어떠한 율법도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모든 작태들에 간여하거나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⑵ 신성모독, 위증, 저주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더욱 가증한 죄를 다루는 이같은 율법들은 대부분 권위자들에 의해 시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권위자들은 종종 그들 자신이 신성모독자요 행악자이기 때문에 정작 신성을 모독하는 자들에게 벌을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자들에게 벌을 주려 하는 것이다.


②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됨은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그리고 그는 그들을 결단코 죄 없는 자로 간주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③ 주께서는 그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을 언제 벌하시는가?

⑴ 하나님은 이따금씩 그들의 죄를 무서운 재앙으로 이생에서 벌하신다.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신 28:58,59)

⑵ 그러한 재앙이 혹 이 땅 위에서 없을지라도 이후에 오는 영원한 진노와 보복은 조금도 피할 수 없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제 37 강  제 사 계명의 의미


제57문: 제 사 계명은 무엇인가?

답 : 제 사 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하는 것이다.


제58문 : 제 사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사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를 그의 앞에 거룩히 지키는 것이니 특별히 칠일 중에 하루를 종일토록 그의 거룩하신 안식일로 삼으라는 것이다.


① 이 제 사계명에서 요구하는 것과, 제 일, 제 이, 제 삼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제 일 계명은 예배의 대상에 관계된 것이고, 제 이 계명은 예배의 수단에 관계되었으며 제 삼 계명은 예배의 태도에 관계된 것이지만, 이 제 사 계명은 예배의 때에 관계된 것이다.


② 제 사 계명에서 요구하는 예배의 때란 어떠한 것인가?

제 사 계명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 지정하셨던 바 일정한 예배의 시간을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히 지킬 것을 요구한다.


③ 로마 카톨릭 교회의 축일들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축일들은 당연히 지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이 이것을 보증하지 않았고 이를 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④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서 자신을 위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신 정한 때는 어떠한 때인가?

하나님은 그의 말씀 가운데서 칠일 중 하루를 구별하여 그 날을 온전히 안식일로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다.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로 지켜 거룩하게 하라”.(신 5:12)


⑤ 칠일 중 온전한 하루를 구별하여 여호와께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그 온전한 하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칠일 중 온전한 하루라는 것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혹은 아침동틀 때부터 저녁이나 밤까지의 인위적인 온전한 하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으로 구성된 온전한 자연적인 하루를 말한다.


⑥ 성일(聖日) 혹은 안식일은 전날 저녁부터 시작되는가 아니면 밤중으로부터 이어지는 아침부터 시작되는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전날 저녁에는 우리가 안식일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안식일 자체는 저녁이 다 지날 때까지 시작되지 않고 밤 열두시 이후 아침에 시작된다.


⑦ 성경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저녁에 시작해야 하기를 요구하지 않는가?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너희는…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레 23:32)

⑴ 비록 그것이(저녁이) 먼저 언급되었다고 해도 첫째 날 저녁이 그날 아침 이전에 나왔던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셈(Shem)과 함(Ham)은 순서상으로 야벳(Japheth)보다 앞서 나열되었다고 해도, 그들이 야벳보다 나이가 많은 자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창 10:1), (그러나 야벳은 손위형이라고 불려진다(21절 참조) 여기서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이 잘못된 듯 하다. 야벳이 셈의 형이 아니고 셈이 야벳의 형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의 다른 번역들을 참고로 조사해 보았다. King James ‐ “Unto Shem also, the father of all the children of Eber, the brother of Japheth the elder, even to him were children born”, New International ‐ “Sons were also born to Shem, whose older brother was Japheth, Shem was the ancestor of all the sons of Eber”, Living Bible ‐ “Eber descended from Shem, the oldest brother of Japheth” ‐ 역자주). 그러나 모세는 첫째 날 하나님의 사역을 계수함에 있어서 저녁부터 아침까지로 되돌려 언급하였으며 이것들이 첫째 날을 구성한다고 하였다. 확실히 모든 민족을 계수함에 있어서나 성경상의 계수에 있어서도 아침은 저녁 앞서 나와 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 예수께서 오사 …”(요 20:19). 여기서 저녁후 저녁때나 그날 앞선 저녁때는 같은 날 저녁 때로 불리워진다.

⑵ 레위기 같은 곳에서는 안식일에 관해 저녁부터 저녁까지 의식을 행하라고 하는데, 이 경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심령을 상하게 하는 일곱째 달 제 10일 대 속죄일이나 의식적인 안식일에만 관계된다. 그것은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에는 관계되지 않는다.


⑧ 당신은 성경 상에서 주 중 안식일이 아침에 시작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주 중 안식일이 아침에 시작된다는 것은 다음 사항으로 미루어 볼 때 명백하다.

⑴ 출애굽기 16:23에 의해서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만일 안식일이 저녁에 시작되었다면 모세는 “이날 저녁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일이 안식일의 휴식날이라고 하였다.

⑵ 가장 분명한 것은 마태복음 28:1에 보면 안식일이 아침에 시작되며 저녁에 시작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식일이 다 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되었던’이 원문에 가까움 : 역자 주)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만약 유대 안식일의 끝남이 밤 어둑해질 무렵의 저녁이 아니고 주 중 첫날 동터오려고 했을 때 즉 아무래도 저녁이라고 판단할 수 없는 그때였다고 한다면, 안식일은 역시 저녁이 아니라 아침에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시작과 말미는 항상 동일한 시각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는 유대 안식일의 끝남에 관해 명백히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시작에도 관계된다.

⑶ 더욱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인의 안식일인 첫날이 밝아질 동틀 무렵에 시작되는 것이지 어두워질 무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안식일은 아침에 시작된다.

⑷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인의 안식일은 저녁이 아니라 이른 아침이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막 16:9). 그러므로 이 안식일은 아침에 시작되어야 한다.

⑸ 만약 안식일이 전날 저녁에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그 날 저녁에 끝나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안식일 날 저녁에 사람들이 합당하게 직장에 나가거나 오락을 즐기거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날의 성역을 감당했던 바로 그 시작 이후였기 때문에 매우 불합리한 것이었다.


⑨ 안식일을 지키라는 이 사 계명은 의식적인가 도덕적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주셨던 이 계명은 의식적이고 폐지되었으며 기독교인들이 더 이상 지키지 않는 것이지만, 주 중 안식일에 관한 본 사 계명은 도덕적이고 모든 민족 모든 세대를 묶는 것이다.


⑩ 제 사 계명이 의식적이 아니고 도덕적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제 사 계명의 도덕성은 다음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

⑴ 어떠한 의식이 있기 전 순수 무흠한 상태, 즉 낙원에서 최초로 안식일 제도를 주셨던 것에서부터 나타난다.

⑵ 여러 가지 논증들로서 그것은 의식적이 아니라 영구적이다.

⑶ 그것은 십계 혹은 십계명의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아홉 계명은 모두 도덕적이기에 이 계명도 도덕적이다. 이것은 다른 계명과 함께 돌판에 하나님에 의해 기록된 것이며 영구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⑷ 이방인들과 타인들은 물론 나그네까지도 이것을 지킬 것을 요구받았으나, 그들은 모두 의식적인 율법 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⑸ 이것은 그리스도의 증거로부터도 나온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20). 이들의 도망은 베스파시안(Vespasian)치세 예루살렘 멸망시에 이루어졌다. 그 때 모든 의식들은 폐지되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우리 주님은 시행 중인 안식일에 대해 언급하신 것이다. 안식일을 어긴다는 것은 그들에게 더없이 큰 슬픔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59문 : 하나님께서 칠일 중에 어느 날을 안식일로 정하셨는가?

답 : 세상 시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하시기까지는 하나님이 이레 중에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하셨고, 그후로부터 세상 끝날에 이르기까지는 이레 중에 첫날을 정하셨으니 이날이 곧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다.


① 칠일 중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여호와의 안식일로 항상 지켜야 하는가?

수에 있어서 일곱째 날은 항상 거룩하게 안식일로 지켜져야 한다. 우리 시간의 일곱째 부분은 하나님께 속하며 본 계명에 의하면 이것은 일반적인 사용과 분리시켜 그에게 예배드리고 보다 직접적으로 그를 섬기는 데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일곱째 날은 순서에 있어서는 창세로부터 반드시 안식일로 지킬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날의 순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그의 능력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은 최초로 칠일 중 어느 날을 안식일로 정하셨는가?

하나님은 최초로 칠일 중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하셨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 … 아무 일도 하지 말고”.(신 4:13, 14)


③ 하나님은 왜 일곱째 날을 최초로 안식일이라 명하셨는가?

하나님이 최초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명하신 것은, 그 날이 그의 창조 사역에서 안식하신 날이며 인간들도 그들의 일을 쉬고 그의 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시기 때문이었다.

“이는 엿새 동안에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출 20:11)


④ 하나님은 언제 최초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정하셨는가?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최초 창조 후 즉시 안식일로 정하셨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창 2:3)


⑤ 하나님이 시내산 돌판에다 이 계명을 기록하여 모세에게 넘겨주시기 전에, 이 일곱째 날은 안식일로 지켜졌는가?

아마도 이 일곱째 날은 진실한 하나님 숭배자들에 의해 다른 모든 율법의 명령들과 같이 그대로 지켜졌을 것이다 (비록 약 천년기간의 사건들에 대해 그것을 언급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이를테면 므두셀라는 확실히 고대 세계 모든 시대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가르쳤을 것이며, 아브라함 시대까지 살았던 셈(십중팔구 그는 멜기세덱으로 생각되어진다)은 이 계명을 새로운 세계에 있는 그에게 계속적으로 전수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의심할 나위 없이 그의 후손들에게 그것을 다른 명령들과 함께 가르쳤으며 그들은 그것을 모세 시대 때까지 서로 서로에게 가르쳤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일은 여호와께서 거룩하게 드릴 안식일이라고 말했다(출 16:23). 그때 그는 그들에게 보다 확실한 것들과 관례들에 관해 언급했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율법을 전수해 주시기 얼마 전이었다.


⑥ 일곱째 날은 얼마 동안 안식일로 지켜져야 했는가?

일곱째 날은 세상 창조로부터 그리스도 부활 때까지 안식일로 지켜져야 했다.


⑦ 그리스도 부활 이후 안식일로 지켜졌던 날은 어떤 날인가?

그리스도 부활 이후는 주 중 첫째 날이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세상 끝날까지 안식일로 지켜져야 한다.


⑧ 어떻게 일곱째 날인 안식일이 칠일의 마지막 날에서 칠일의 첫째 날로 변경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성경에서 칠일의 마지막날의 취소에 대해 명백히 읽을 수 없지 않은가?

⑴ 하나님께서 안식일로 정하신 것은 칠일 중 하루이다. 본 계명에서 하나님은 일곱째 날이 아니라 안식일을 복 주시고 거룩케 하셨다. 이 날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순서상 다른 일곱째 날이 될 수도 있는 날이었다.

⑵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정하신 것은 칠일 중 단 하루이다. 하나님은 주 중 다른 육일간은 일하라고 하셨다.

⑶ 하나님이 다른 날을 거룩한 안식일로 대치하시고 제정하신 것을 의미한다.


⑨ 주 중 첫째 날이 하나님에 의해 안식일로 제정된 것은 어떻게 증명되는가?

⑴ 첫째 날이 제정된 것과 일곱째 날이 제정된 것은 동일한 이유에서이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제정하신 이유는 그가 창조사역을 쉬셨음에 근거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첫째 날을 제정하신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 근거한다. 첫째 날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속으로 인한 고난의 사역에서 쉬신 날이다. 그래서 그는 안식으로 들어갔다고 기록되었으며 우리는 이것을 더욱 기억해야 하였다.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 4:10)

⑵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 중 첫째 날에 자기의 이름을 두셨다. “주의 날(Lord's day)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계 1:10).여기서 언급된 주의 날은 주 중 첫째 날이었음을 믿어야 할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 날은 특별히 구별된 날이며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거룩한 이름으로 잘 알리워졌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주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 중 첫째 날에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곤 했었으므로, 그렇게 불리우는 것은 당연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또한 주께서 이날에 자신의 이름을 주신 다른 이유가 되는 있는데, 그것은 주님 이외 어느 누구도 어떠한 날에 그의 이름을 둘 권위가 없다는 것이다. 사도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그날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주의 날이라 명명하였지만, 마땅히 그렇게 불리우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이 날이 그에게 거룩한 날로 사용되고 준수되어야 함이 그의 뜻이었던 것이다. 제 이 성례가 주님에 의해 제정되었기 때문에 주의 만찬(Lord's Supper)이라 불리우듯이, 칠일의 첫째 날이 주님에 의해 제정되었기 때문에 ‘주의 날’이라 불리워져야 했다. 이렇게 제정된 이 날 이외 다른 어떠한 날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준수되어서는 안 된다.

⑶ 칠일의 첫째 날을 안식일로 제정한 것은 고린도전서 16:1, 2에서 추론될 수 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 주일 첫 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利)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이 사도는 주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주 중 첫째 날에 연보하라는 것을 갈라디아 교회와 고린도 교회에 전달했으며, 따라서 이방인의 다른 교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다른 날들에 번창하게 축복하셨던 것을 안식일 날로 새로 제정된 이 날에 바치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그가 또한 주님에게서 주 중 안식일을 첫째 날로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⑷ 우리는 제자들이 주 중 첫째 날에 함께 모였다는 사실과 예수께서 그때 그들 가운데 오셨다는 사실을 읽게 된다.(요 20:19). 그리고 팔일이 지난 후 그러니까 또 다른 첫째 날에 그들이 함께 모였으며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오셨다(26절). 더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주 중 첫째 날에 함께 모여 주께 예배 드리고 말씀을 듣고 떡을 떼며 주님의 만찬의 성례를 받던 것은 관례가 되었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행 20:7).바울은 그들과 7일을 머물렀으나(6절) 우리는 주 중 첫째 날 이외에는 어떤 엄숙한 모임에 관해서도 읽지 못한다. 그는 7일의 마지막 날에 그들과 함께 거했다. 그 날은 주 중 마지막 날인 옛날 안식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모여 엄숙하게 예배드렸던 날은 첫째 날이었다. 만약 그 날이 새로 제정된 안식일, 즉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안식일이 아니었다면, 바울에게 있어서 그가 밤중까지 신앙적인 사역을 하고서 다음날 아침에 여행을 떠났다는 것은 매우 불편스럽게 여겨졌을 것이다. 사도 시대로부터 실시되었던 관습을 모두 고려해 보면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전혀 거치는 것이 아니었음이 명백히 입증된다. 칠일 중의 첫째 날은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제정된 성일 즉 기독교인의 안식일이 된 것이다.


제60문 :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답 :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방법은 다른 날에도 할 수 있는 모든 세상의 일과 오락을 끊고 그 날을 종일토록 거룩하게 쉬며,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로 그 모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다만 부득이한 자비를 베푸는 일에 드려야 할 시간만큼은 예외이다.


① 어떻게 함으로 안식일은 거룩케 되는가?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룩하게 제정하셨으므로 그에 의해 거룩케 되며, 인간이 그것을 거룩하게 준수하고 지킴으로 그에 의해 거룩케 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② 우리는 어떻게 함으로 안식일을 거룩한 것으로 준수하고 지키게 되는가?

우리는 안식일에 부분적으로 거룩하게 쉬며 부분적으로는 거룩한 사역에 참여함으로써 그 날을 거룩하게 준수하고 지키게 되는 것이다.


③ 우리는 안식일에 어떻게 쉬는가?

우리는 안식일에 죄스러운 모든 것과 주간의 모든 날로부터 쉬어야 하며, 주간의 다른 엿새 동안에는 합당한 것인 바 세속적인 일과 오락을 끊고 쉬어야 한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9,10)


④ 우리의 특수한 직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주 중 다른 날들보다 안식일이 시기 적절하게, 그리고 유익하게 생각되므로 그 일들을 수행할 수 있는가?

우리의 특수한 직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안식일이 가장 시기 적절하고 유익하게 보이는 어떤 일들이 있을지라도, 그것들로부터 온전히 쉬며 그것들을 끊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에도 동일하다.

⑴ 월요 시장에 출하하기 위해 안식일에 짐승을 도살하는 일.

⑵ 안식일에 곡식을 경작하고 뿌리고 거두어들이는 일이나, 햇빛이 나거나 날씨가 가장 좋다고 하여 건초를 만드는 일.

⑶ 안식일에 가장 많은 단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과일을 팔거나 어떤 그릇들을 파는 일.

⑷ 날씨가 너무 더워 월요일까지 그냥 내버려두면 부패할 수 있는 물고기를 사고 파는 행위.

이와 같은 모든 세상적인 일들은 우리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본 계명에 의거하여 단연히 금해야 한다. 우리가 그러한 방식으로 참음으로 어떠한 상실을 당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을 상실한다는 것과 비교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자. 그것은 그것으로 인한 양심의 번민, 하나님의 율법을 어김으로 삶 가운데 나타나게 될 영혼의 영원한 상실과 비교될 수 없다. 그와 같은 일들을 안식일에 금해야만 한다면, 주 중에 행할 수 있는 우리의 직업과 같은 일들은 더욱 더 금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식물을 팔기로 그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또 두루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함으로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느 13:15‐18)


⑤ 우리는 이 날이 주간의 수고스러운 일들로부터 쉬는 날로 제정되었기 때문에 이 안식일에 우리 스스로를 즐기는 것이 합당하지 않는가?

우리는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당연히 우리 마음을 즐겁게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날들에 행해도 되는 말과 행위로써 혹은 정욕적인 즐거움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공중 예배가 끝났다고 해서 스포츠나 오락을 통해 우리의 육체를 즐기려 하는 것도 더욱 금물이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사 58:13,14)


⑥ 가정의 주인들이나 주관자들은 안식일에 쉬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들이 자녀들이나 종들에게 일을 하라고 명령하거나 오락과 놀이를 하도록 허용하면 이것은 가능한 것인가?

참으로 본 계명은 주로 가정의 주인이나 주관자들에게 지시한 것이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그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이나 종들로 육체적인 일이나 육신적인 오락을 행함으로 그 날을 깨뜨리지 못하게 하며, 안식의 이 날을 준수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⑦ 자녀들과 종들이 안식일인데도 그들의 부모들과 주인들로부터 일을 하라거나 오락을 즐기라는 명령을 받는다면, 그것은 합당한 행위나 놀이가 아닌가?

안식일에 그들의 자녀들이나 종들에게 일을 하라거나 어떤 다른 방법으로 안식일을 범하게 하는 것은 부모와 주인의 죄이지만, 그러나 그들이 안식일을 지킴으로 감수해야 하는 현세적인 상실이 어떠한 것이든지 그들에게 불순종해야 함이 자녀들과 종들의 의무이다. 그들은 땅 위에 있는 어떤 인간의 말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⑧ 안식일에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합당한 행위인가?

비록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안식일 날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를 모아들이지도 장만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었지만, 음식을 먹기 전에 그것에 가하는 육체적인 일, 이를테면 그것을 방앗간에서 빻거나 절구통에 찧어서 그것을 가공하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면 부당한 행위였다. 그리고 비록 그들의 처소에 불을 지펴 따습게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출 35:3), 즉 세상적인 일 (2절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일. 그리고 이 경우는 특별한 경우였음)을 금해야 했지만, 성경은 어디에서도 일용할 음식을 장만하지 말라고 하거나 그러한 목적으로 사용함에 있어서 불을 지피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음식의 합당성은 성경에서 이끌어 내어져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안식일 잔치집에 참석하셨으며(눅 14:1) 거기서는 분명코 많은 손님들을 위하여 음식이 장만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안식일에 가축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했다면 우리 자신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너무나 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⑨ 하나님께서 원칙적으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 이외, 그가 안식일에 우리에게 허용하시는 행위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원칙적으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 이외, 그가 안식일에 우리에게 허용하시는 행위는 필요와 자비에 관한 것이다. 이를테면 먹는 것, 마시는 것, 적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 가옥의 화재를 진압하는 것, 환자를 심방하는 것,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 가축을 먹이는 것, 기타 이와 같은 것들이다. 그와 같은 모든 일들을 행함에 있어서 우리 자신에게 주로 관계된 것들이나 어떤 세속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들이 아니어야 한다. 그것들을 통해 신령한 역사가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마 12:1‐4),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마 12:7),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 12:10‐12),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시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눅 13:14‐16)


⑩ 우리가 안식일에 주로 행해야 할 것을 명령받은 바 거룩한 활동이나 행위는 어떠한 것인가?

우리가 안식일에 감당해야 할 거룩한 활동이나, 주로 행해야 할 것을 명령받은 행위는, 공적인 예배와 사적인 예배인데 특별히 공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적인 집회에서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며 성례에 참여하고 시편을 노래 부른 것이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사 66:23),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 4:16),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7), “안식일의 찬송시”(A psalm or song for the sabbath‐day.(시 92편 표제어).


⑪ 어떻게 안식일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수행하는가?

우리가 안식일에 드리는 하나님의 예배에 관하여.

⑴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성실함과 진지함으로 돌려드린다.

“만일 …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사 58:13)

⑵ 몸과 마음을 두렵게 함으로 수행한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전 5:1),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사 66:2)

⑶ 부지런함과 관심을 가짐으로 수행한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행 16:13, 14)

⑷ 사랑과 열심을 가짐으로 수행한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⑸ 즐거움과 기쁨을 가짐으로 수행한다.

“만일 …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하여 …”(사 58:13)


⑫ 우리는 안식일에 하나님께 드리는 공중 예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우리는 안식일에 하나님께 드리는 공중 예배를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준비해야 한다.

⑴ 그 날이 오기 전에 그날을 거룩히 지키도록 그날을 기억하며 주간에 행하던 세상적인 모든 일들과 번거로운 잡무를 벗어버리고 토요일 저녁에 이를 완전히 끊어 버리고 안식일에 행해야 할 거룩한 의무를 차분한 마음으로 준비하다.

⑵ 안식일 아침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이날을 시작하며,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대하여 그리고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이날 부활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그의 구속 사역에 대하여 거룩하게 묵상한다. 이날 우리는 공중예배에 더욱 잘 부합되도록 하기 위해 성경책과 시간이 허용될 때면 얼마의 양서들을 읽는다. 특별히 우리는 개인적인 방에서와 가정에서 기도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자들, 우리에 대하여 그의 입이 되고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의 입이 된 그 사역자들을 도우시도록, 그가 성실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공중예배를 드리는 우리를 도우시도록, 그리고 우리로 더 많은 지식과 체험과 절제와 더 많은 은혜의 분량과 더 밀도 있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얻고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⑬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공중 예배가 끝난 후 안식일의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하나님께 드리는 공중 예배가 끝났다고 해서 안식일의 일이 끝났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정으로 되돌아 와서 (바깥에서 헛되이 무리를 지어 떠돌아다니며 쾌락을 구하려 하지 말고) 거기서 그날 들었던 것을 암송하며 어린이들과 종들에게 요리문답을 가르치며 시편을 부르고 가정 식구와 함께 기도를 드리며, 어떤 음료나 다과를 적당히 들면서 하나님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저녁에도 또한 개인적인 방으로 물러가 거기서 그날 하나님 앞에서 우리 마음의 자세가 옳았는가를 스스로 살펴본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보다 철저히 이루어졌는가를 묵상한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 앞에 은밀히 기도하는 중에 우리 마음을 부어 그에게 바치며 겸손히 죄를 고백하고 사유하심과 더 많은 은혜를 위해 뜨겁게 신앙적으로 간구하며 그의 모든 은총을 인하여, 특별히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말미암아 그의 안에서 주어진 복음의 은총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이와 같이 다양한 모든 거룩한 활동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바 온전한 안식일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그날이 다하여 갈 때 우리는 결단코 끝남이 없을 하늘나라의 안식일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제61문 : 제 사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사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명령한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혹 주의하지 아니하며 나태함으로써 그 날을 더럽게 하거나 죄 되는 일을 행하거나 세상의 여러 가지 일과 오락에 대하여 불필요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① 제 사 계명에서 금하는 죄는 어떠한 종류가 있는가?

제 사 계명에서 금하는 죄는 불이행죄와 이행죄가 있다.


② 불이행죄는 어떠한 것인가?

제 사 계명에서 말하는 불이행 죄는 다음과 같다.

⑴ 안식일에 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죄, 이를테면 그들에게 요구되는 필요에 의한 일과 자비에 관한 일을 이행하지 않는 것, 특별히 전체이든지 부분이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와 사적인 예배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날 하나님의 백성들의 집회를 잊어버리거나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거나 은밀히 하나님을 구하고 그에게 기도 드리지 않는 것이다.

⑵ 우리가 가식적이거나 무관심하거나 차디차거나 산만하거나 짜증스럽거나 경망스럽거나 졸리므로 안식일의 의무를 주의 깊게 수행하지 않거나, 진정한 마음이나 활기가 없이 규례를 집행하거나, 안식일이 우리에게 주 중 가장 지겹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 그 의무를 불이행하는 것이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7,8),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암 8:5),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1:13)


③ 본 계명에서 금하는 이행죄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본 계명에 금하는 이행죄는 안식일을 모독하는 죄이다.

⑴ 그것은 우리가 안식일을 보낼 때 태만함으로 빚어지는 죄이다. 그것은 우리의 부르심을 등한히 하거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의무에 우리가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서 집이나 바깥에서 귀한 시간을 무위도식하며 헛되고 나태한 생각이나 헛되고 무익한 말과 같은 등등의 행동이다.

⑵ 그것은 우리가 보다 사악하고 죄 되는 행동을 함으로 빚어지는 죄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그의 집으로 가지 않고 안식일 날 선술집이나 대포집으로 가서 술에 취하거나 사창가로 가거나 더러운 곳에 가는 죄이다. 안식일 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케 하거나 찬양하지 않고 또 그에게 기도 드리지 않고 일컫는 죄이다. 또 그의 백성들과 함께 예배드리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의 백성들을 핍박하거나 그들 안에 있는 그 경건함으로 인해 그들을 욕하고 비웃고 조소하는 죄이다.

⑶ 그것은 우리가 세상적인 일에 대해 불필요한 생각이나 계획을 함으로 인해 빚어지는 죄이다. 현세적인 일에 대한 불필요한 말이나 이야기, 우리의 특수한 일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불필요한 일, 다른 날 합당하게 수행해야 하는 육신적인 쾌락이나 오락을 행함으로 빚어지는 죄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우리 자신의 말로 말하고 우리 자신의 행위로 행하고 우리 자신의 쾌락을 추구함으로 이사야 58:13에서 금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제62문 : 제 사 계명에 부가된 논증은 무엇인가?

답 : 제 사 계명에 부가된 논증은,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일을 하도록 주 중 육일을 허락하신다는 것과 그가 일곱째 날에 대해서는 특별하신 소유권을 주장하신다는 것과 그 자신이 친히 모범을 보이신 일과 안식일을 축복하신 일이다.


① 제 사 계명에서 부가된 논증들은 몇 가지가 있는가?

제 사계명에서 부가된 논증들은 네 가지가 있다. 이것들은 우리로 안식일을 더욱 엄격히 준수하도록 효과적으로 권유하고 이끌어 주는 것이다.


② 제 일 논증은 무엇인가?

본 사 계명에 부가된 제 일 논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일을 하도록 주 중 육일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을 위하여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실 수 도 있으셨겠지만, 칠일 중 하루만을 요구하시고 다른 육일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심으로 우리의 특수한 직업과 필요한 오락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출 20:9)


③ 제 이 논증은 무엇인가?

본 사 계명에 부가된 제 이 논증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대하여 특별하신 소유권을 주장하신다는 것이다.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은 주님의 날이며 주께서 그 날을 일반적인 사용에서 구별시켜 거룩하게 하시고 자신에게 예배드리도록 하셨기 때문에, 이 날을 그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한도를 넘어서서 우리가 전체이든지 부분이든지 도용하려 할 때 그것은 도적이요 모독행위이다.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출 20:10)


④ 제 삼 논증은 무엇인가?

제 사 계명에 부가된 제 삼 논증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그의 창조 사역을 쉬심으로 친히 모범을 보이셨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는 우리에게도 또한 우리의 모든 특수한 직업에서 쉬고 그를 본 받아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함을 요구하신 것이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출 20:11)


⑤ 제 사 논증은 무엇인가?

본 사 계명에 부가된 제 사 논증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복 주셨다는 것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날의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그가 우리와 함께 임재하시는 임재의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1)



제 38 강  제 오 계명의 의미


제63문 : 제 오 계명은 무엇인가?

답 : 제 오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는 것이다.


제64문 : 제 오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오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윗사람에게나 아랫사람에게나 동등한 사람에게 대하여 각자 여러 지위와 관계에 따라 존경 드릴 자에게 존경을 드리고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① 본 오 계명의 주어는 무엇이며 본 계명의 의무는 누구에게 주어졌는가?

 오 계명의 주어 혹은 본 계명의 의무를 부여받는 자는, 부모와 손윗사람의 관계에 대한 자녀와 모든 손아랫사람들이며 포괄적 의미에서는 손아랫사람의 관계에 대한 손윗사람과, 상호간 관계에 있어서는 동등한 사람들까지도 포함한다.


② 우리는 아랫사람을 누구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우리는 아랫사람을 자녀들뿐만 아니라 아내, 종, 백성, 신하, 소년, 소녀, 은혜나 은사를 보다 적게 받은 자들까지 포함시켜 이해해야 한다.


③ 우리는 윗사람을 누구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우리는 윗사람을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으로 주어진 부모님뿐만 아니라 남편, 주인, 사역자, 주권자, 노인, 은혜와 은사를 보다 많은 자들까지 포함시켜 이해해야 한다.


④ 우리는 동등한 사람을 누구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우리는 동등한 사람을 형제, 자매, 친족, 친구 그리고 연령이나 신분, 지위, 권위에 있어서 별로 큰 간격이 없는 자들로 이해해야 한다.


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는 무엇인가?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는 총체적인 명령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 포함되어 있다.

⑴ 내적인 공경과 경외와 존경이다.

“아들은 그 아비를, … 공경하나니”(말 1:6),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3)

⑵ 외적으로 공경하는 태도와 행위이다.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그러나 KJV에는 ‘Her children rise up, and call her blessed’라 되어 있음)(잠 31:28),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 다시 위에 앉고 그 모친을 위하여 자리를 베풀게 하고 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왕상 2:19)

⑶ 부모의 가르침에 열심히 경청함으로이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잠 4:1),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잠 5:1)

⑷ 부모의 합당한 모든 명령에 거리낌없이 순종한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 3:20)

⑸ 그들의 바르게 함과 옳게 함을 받을 때에 온유하게 인내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히 12:9),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잠 15:32)

⑹ 그들의 직업이나 신분이나 결혼 등 생애의 중요한 문제에 관해 사리에 맞는 충고를 할 때 기꺼이 따른다.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출 18:24),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삿 14:2)

⑺ 그들이 늙었거나 궁핍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친절히 보살피며 먹을 것을 공급하며 잘 봉양한다.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룻 4:15), “요셉이 그 아비와 형들과 아비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창 47:1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 23:22)


⑥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의무는 무엇인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무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⑴ 그들이 어리거나 연약할 때 사랑과 관심을 갖고 보살핀다. 특히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주어야 할 때는 사랑과 관심을 갖고 보살펴야 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사 49:15)

⑵ 자녀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을 때 성경의 지식과 종교의 도리를 훈련시키며 여호와의 율법과 방법들로써 교훈을 심어준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딤후 3:15)

⑶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며 그들에게 거룩, 인내 그리고 의의 좋은 모본을 보여준다.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 1:5),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 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나는 비루한 것(wicked thing)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시 101:2,3)

⑷ 그들이 어릴 때 순종하게 하되 여호와의 율법에 합당치 않은 것은 그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눅 2:51). 자녀들이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함과 같이 부모들도 주 안에서 명령해야 한다.(업 6:1,4)

⑸ 친절한 외양과 말로써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선행에 대하여는 상을 주고 악행에 대하여는 견책과 책망을 한다.

“그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여 이 일을 행하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대상 28:20),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을 두지 말지니라”(잠 29:15, 17)

⑹ 현재 필요한 것들을 그들에게 공급하며, 미래를 위해 그들의 분량에 따라 자녀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고후 12:14)

⑺ 그들이 성장하였을 때 장사나 직업이나 결혼에 관심을 가지고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들의 능력이나 취향에 따라 상담하고 같이 생각을 해준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창 4:1, 2).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게 하라 …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고전 7:36, 38)


⑦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는 무엇인가?

 ⑴ 세상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남편들을 더욱 사랑한다.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딛 2:4)

⑵ 침소와 신분과 그들에게 위탁된 비밀들에 관하여는 정숙하고 충성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히 13:4),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딤전 3:11)

⑶ 남편을 존경하며 화내기를 두려워한다.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 5:33)

⑷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합당한 일에 대하여 그들에게 복종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 24)

⑸ 남편들의 기호와 성향에 맞추어 범사에 그들을 기쁘게 한다.

“시집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고전 7:34)

⑹ 남편의 짐을 져주는 것과 가정을 위하여 양식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니라”(창 2:18),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잠 31:27)

⑺ 가정의 안녕을 위하여 남편의 말을 귀담아 듣고 선한 것이라면 거기에 장단을 맞춘다. 남편들이 악한 길에 있을 때 온유함과 지혜로 친절함과 사랑스러운 충고로 정결함과 감미로운 속삭임으로 하나님의 길로 되돌아오게 한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벧전 3:1, 2)


⑧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는 무엇인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이토록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남편은 아내를 최선의 방법으로 사랑해야 한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5)

⑵ 아내들과 함께 거하고 지식에 따라 그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과 함께 있기를 즐거워해야 한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엡 5:31),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벧전 3:7).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 5:18, 19)

⑶ 그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그들 몸에 없어서는 아니 될 양식, 의복 기타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공급한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엡 5:28, 29)

⑷ 그들과 맺었던 결혼계약을 엄숙히 지켜 그들 이외엔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금해야 한다.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호 3:3)

⑸ 그들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며 그들의 연약함을 사랑의 날개로 감싸준다.

“다윗이 아말렉 사람의 취하였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삼상 30:1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⑹ 모든 합당한 것들로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이 잘 하였을 때에는 칭찬하기를 잊지 않는다.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고전 7:33)

⑺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에게 충고와 권면을 하며 그들을 범사에 돕되 특히 여호와의 길과 법도로 행하도록 도와준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눅 1:6)


⑨ 주인에 대한 종들의 의무는 무엇인가?

 주인에 대한 종들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⑴ 그들의 마음 중심으로 그리고 말과 행위로 주인을 공경하여야 한다.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말 1:6),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딤전 6:1)

⑵ 부지런함과 자원함과 두려워함으로 그리스도께 순종하듯 주인을 섬겨야 된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5‐7)

⑶ 그들에게 맡겨진 재산이나 신용에 대해 부지런하게 최선을 다해 관리함으로 범사에 주인을 기쁘게 해야 한다.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딛 2:9, 10)

⑷ 책망이나 매질에도 온유함과 인내로써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당연히 그러한 벌을 받아 마땅한 경우 뿐 만 아니라 벌을 받지 않아야 할 경우에도 해당된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18‐20)

 

⑩ 종들에 대한 주인의 의무는 무엇인가?

종들에 대한 주인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⑴ 종들을 인도하고 다스림에 있어서 지혜롭고 온유한 마음으로 대하고 그들의 근면성과 자발성을 인정하고, 주인도 또한 그리스도의 종임을 기억함으로 과실이 일어날 때마다 위협을 주기보다 그것들을 덮어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엡 6:9)

⑵ 그들을 위하여 충족하고도 만족할만한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

“염소의 젖은 넉넉하여 너와 네 집사람의 식물이 되며 네 여종의 먹을 것이 되느니라”.(잠 27:27)

⑶ 그들의 삯을 충분히 그리고 약정된 시간에 지불해야 한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 4:1), “곤궁하고 빈한한 품군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함으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신 24:14, 15)

⑷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책망을 하며 허물된 일을 범하였을 경우에는 말 이상의 어떤 것으로 시정해 준다.

“종은 말로만 하면 고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알고도 청종치 아니함이니라”.(잠 29:19)

⑸ 하나님의 길로 그들을 가르치며, 그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매일 그들 스스로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도록 시간을 허용하며, 그들로 할 수 있는 한 죄를 범치 않도록 하며 특히 외적으로 안식일을 범치 않도록 한다. 그들로 여호와를 섬기고 그에게 순종하도록 권면하고 설득을 시키며 그들에게 모본을 보이고 그들과 함께 한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창 18:19),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행 10:2)


⑪ 사역자들에 대한 백성의 의무는 무엇인가?

사역자들에 대한 백성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⑴ 그들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의 수고에 대하여 감사하기를 힘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2, 13),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갈 4:14, 15)

⑵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그리고 그들에 의해 어떤 계율이 시행될 때 그것들을 부지런히 지키도록 힘써야 한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눅 10:16)

⑶ 사역자들에게서 나온 호된 책망의 말씀에 온유하고 인내하는 태도를 지니며 그 명령하는 바에 기꺼이 순종할 마음가짐을 갖는다. 사역자들은 성경에서 가르침을 받아 백성에게 알려 주며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권징에 순종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약 1:21),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⑷ 현세적인 것들을 그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4),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⑸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라.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와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롬 15:30),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살전 5:25)

⑹ 비방이나 중상 모략의 말들은 귀담아 듣지 말고 증거가 없으면 아무 것도 믿지 말라. 불경건한 세상에 대항하여 굳게 서라. 거기에는 마귀에 의해 이용당하는 부패한 마음의 소유자인 위선자와 거짓 형제들이 많이 있다. 거기 사람들은 편견을 고집 삼으며 그들의 교리를 듣고 유익을 얻으려 하지만 결국은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되며 신성을 모독하는 길에서 완악해진다.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딤전5:19)


⑫ 백성들에 대한 사역자의 의무는 무엇인가?

 백성들에 대한 사역자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⑴ 백성들의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온화한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낸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 2:7, 8)

⑵ 백성들에게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말씀을 전파하며 모든 계율을 시행한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3, 4),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⑶ 자원함과 즐거움으로 그들을 치리하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벧전 5:2)

⑷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 안에 부여된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찬송한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 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엡 1:15, 16)

⑸ 그들에게 거룩한 삶과 선한 행실의 모본을 보인다.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딤전 4:12)


⑬ 주권자에 대한 신하의 의무는 무엇인가?

주권자에 대한 신하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⑴ 주권자를 높이고 공경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 2:17)

⑵ 그들이 그리스도의 율법에 상반되지 않는 한 그들의 지시에 따르고 그들의 법률에 복종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 13:1)

⑶ 세금을 기꺼이 바치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7)

⑷ 그들이 위험 중에 처해 있을 때 그들을 보호한다.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중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삼상 26:15)

⑸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 2:1, 2)


⑭ 신하들에 대한 주권자의 의무는 무엇인가?

신하들에 대한 주권자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⑴ 그리스도 아래서 신하들을 지혜와 정의와 관대함으로 다스리되 모든 것 위에 그들로 종교에 관심을 갖도록 애를 쓴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대하 2:1)

⑵ 신하들의 유익을 위해 훌륭한 법률을 반포하며 이것을 시행하기 위해 신실한 관리들을 임명한다.

“또 유다 온 나라 견고한 성에 재판관을 세우되 성마다 있게 하고 재판관에게 이르되 너희는 행하는 바를 삼가라 너희의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위함이니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대하 19:5‐7)

⑶ 신하들의 안녕을 도모한다.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비하되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하고 또 유다 땅과 그 아비 아사의 취한 바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대하 17:1, 2)

⑷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상을 베풂으로써 용기를 북돋워 주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벌을 주어 그것을 더 이상 행치 못하도록 한다.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벧전 2:14)


⑮ 노인과 연장자에 대한 어린자와 아랫사람의 의무는 무엇인가?

노인과 연장자에 대한 어린 자와 아랫사람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⑴ 존경하고 경외하는 마음가짐으로 그들 앞에서 일어서서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레 19:32)

⑵ 그들이 현명한 조언자를 따르듯이 연장자들에게 겸손하게 순종한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⑶ 그들의 은혜와 거룩한 대화를 보고 본을 받아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


⑯ 젊은 자와 아랫사람에 대한 연장자와 윗사람의 의무는 무엇인가?

젊은 자와 아랫사람에 대한 연장자와 윗사람의 의무는, 그들의 노년을 거룩하고 모범적인 언행으로 단장을 하고 그들이 받은 바 그 은혜의 능력을 나타내 보인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딛 2:2, 3)


⑰ 동등한 사람들의 상호간 지켜야 할 의무는 무엇인가?

동등한 사람들의 상호간 지켜야 할 의무는 다음과 같다.

⑴ 상호간에 화평한 가운데 거하며 진지하게 사랑하며 각자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긴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 12:9, 10),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3)

⑵ 동정심을 가지고 예의 바르고 규모가 있으며 상호간에 선을 도모케 하고 그것으로 즐거워한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벧전 3:8),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 12:15)


제65문 : 제 오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오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각 사람에게 속하는 여러 위치와 관계에 대하여 존경과 의무를 무시하거나 그것에 역행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①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제 오 계명에 역행하여 죄를 범하게 되는가?

 우리가 제 오 계명에 역행하여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은 두 가지 방법으로써이다.

⑴ 거기에 명시된 의무를 무시함으로써 이다.

⑵ 각 사람에게 속하는 여러 위치와 관계에 대하여 존경을 드리지 않는 것이다.


② 부모에 대한 자녀의 죄는 무엇인가?

부모에 대한 자녀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부모에게 존경을 드리지 않거나 말과 행위에 있어서 그들에게 불명예를 안겨주는 것이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6),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 등불이 유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잠 20:20)

⑵ 부모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 30:17)

⑶ 부모의 가르침을 듣지 않거나 거부하려는 행위이다.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잠 8:33),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잠 5:11‐13)

⑷ 부모의 책망과 꾸지람을 업수히 여기거나 완고하게 역행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였음이었더라”.(삼상 2:23‐25)

⑸ 부모의 재산을 허비하거나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치 않거나, 특히 부모가 노령이 되었을 때와 괴로운 중에 있을 때 그들에게 무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잠 19:26),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 23:22)

⑹ 부모의 동의나 충고를 듣지 않고 직업이나 결혼을 하는 행위.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창 26:34‐35)


③ 자녀에 대한 부모의 죄는 무엇인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특히 자녀가 어리거나 병들거나 유약할 때 그들에 대한 부성적인 사랑과 보살핌이 없는 것이다.

“무정한 자요”(without natural affection)(롬 1:31), “그 새끼에게 무정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욥 39:16)

⑵ 너무 맹목적인 사랑을 보이거나 그들의 뜻을 자녀에게 고집하거나 그들 스스로 그것에 탐닉하는 것이다. 편애를 보이거나 별로 칭찬 받을 만한 일이 없는데도 과분한 칭찬을 하는 것과 상당한 칭찬을 받아야 하는데도 별로 칭찬하지 않는 경우이다.

⑶ 자녀의 영혼을 경시하여 그들에게 훈도를 하지 않거나 합당하고 사리에 맞는 징계를 하지 않는 경우이다. 또한 그들의 육체를 경시하여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지 않는 경우이다.

“초달(rod)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⑷ 자녀를 잔인하게 다루거나 그들에게 불필요하게 화를 내게 하는 경우이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

⑸ 부모들이 잘못 명령을 내리거나 본을 보임으로 자녀들로 악행을 행하도록 자극을 주거나, 자녀들에게 불필요하게 금지시키거나 눈살을 찌푸리거나 불쾌를 표시함으로 그들로 선행을 행치 못하도록 기를 꺾는 것이다.

⑹ 자녀들의 직업이나 결혼에 있어서 참으로 유익한 것들을 못하도록 반대하는 것이다.


④ 남편에 대한 아내의 죄는 무엇인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다른 모든 사람에게 보다 남편에게 마땅히 바쳐야 할 온당한 공경과 존경과 사랑이 결핍된 경우이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삼하 6:16)

⑵ 결혼의 언약을 위반하는 부정한 행위나 남편이 그녀에게 맡긴 비밀을 폭로하는 경우이다.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그는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잠 2:16‐17)

⑶ 자만이나 사치스런 낭비 그리고 분수를 넘어 값비싼 옷치장을 하거나 다른 어떤 방법으로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이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벧전 3:3)

⑷ 남편이 마치 자기의 수하에 있는 자인 양 남편 위에 군림하거나 오만하게 굴며, 그녀의 머리로써가 아닌 그녀의 다스림을 받는 자로 여기는 경우이다. 이 경우의 아내들은 고집이 워낙 세고 성깔이 많아서 그녀들의 모든 악하고 수다스러운 말들로 인해 남편들은 금방 나가  떨어진다.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잠 19:13)

⑸ 이유 없이 남편에 대해 악하게 생각하거나 의심을 품는 경우이다. 또한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받는 어떠한 친절에도 불평을 토로하며, 남편의 과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들으라는 식으로 어리석게 말을 함으로 남편의 기분을 자극시키는 경우이다.

⑹ 남편이 아내의 품행을 고치기 위해 사랑스럽게 조언하거나 점잖은 책망을 하는 것을 억지로 듣지 않으므로 점점 좋게 되기는커녕 점점 악하게 되는 경우이다.


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죄는 무엇인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마땅히 아내에게 나타내 보여야 할 따뜻한 사랑과 친절은 없고 악의에 찬 말, 불친절하고 경우에 맞지 않는 질투심, 욕설 그리고 충고를 한답시고 노기를 품고 지껄이는 경우이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9)

⑵ 아내를 불신하거나 그들의 육체로는 간음을 행하고 영혼으로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충고하고 견책하고 가르치는 말들을 무시하는 경우이다.

“너희는 이르기를 어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말 2:14), “때에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거하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고 …”.(렘 44:15‐16)


⑥ 주인에 대한 종의 죄는 무엇인가?

주인에 대한 종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합당하고 온당한 명령에 불순종하거나 마지못해 순종하는 태도나, 주인이 등을 돌렸을 때 일을 하지 않는 순전히 눈가림만을 일삼는 행위.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2‐23)

⑵ 상전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행동이나 말, 즉 주인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비난의 말을 일삼거나 주인 앞에서 무례하고 건방진 행동을 할 때이다.

⑶ 어떤 방법으로든 주인을 속이거나 물건을 숨기는 것이며 재산을 잠식하거나 사취하는 것이다.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시 101:7)

⑷ 이유 없이 불평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분노하고 불만이 가득 차 있고 골을 내고 그리고 잘못을 책망 받을 때 말대꾸하는 것이다.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딛 2:9)

⑸ 주인으로부터 어떠한 가르침도 받지 않으려거나 가정예배에 빠지거나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졸면서 참석하는 것을 말한다.


⑦ 종에 대한 주인의 죄는 무엇인가?

종에 대한 주인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종들에게 그 자체가 죄 되는 일인데도 그것을 행해야 한다고 명령하거나 강요하는 행위, 혹은 그들이 그렇게 본을 보임으로 종들로 덩달아 죄를 범하게 하는 경우이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사 37:4)

⑵ 그들 자신만을 위해 종들에게 모든 시간을 요구하거나 그들에게 충분한 휴식시간이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시간을 할애해 주지 않는 행위이다.

⑶ 종들에 대해 오만하고 거만한 태도를 취하거나 그들을 혹독하게 다루거나 열심히 하느라고 했는데도 한도 끝도 없이 그들을 나무라고 꾸짖고 위협을 주고 불만을 토로하거나 심심하면 그들의 실수를 들추어내어 책망하는 것이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엡 6:9)

⑷ 종들이 아플 때 그들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고 인색하게 하거나 합당한 임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는 것이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 5:4)

⑸ 종들의 영혼을 무시하고 그들과 함께 드리는 가정예배를 무시하는 처사이다.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렘 10:15)


⑧ 사역자에 대한 백성의 죄는 무엇인가?

사역자에 대한 백성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그들을 손이나 혀로 괴롭히고 증오하고 비방하고 아무 증거도 없이 험담을 하는 것이며, 사역자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혹은 하늘에서 그들에게 보냄을 받은 사신으로 깍듯이 존경하고 모시지 않는 것이다.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는도다”(요삼 10),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고후 10:10),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눅 10:16)

⑵ 사역자들의 말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지 않거나 부주의한 마음으로 조심 없이 듣는 것이다. 또한 불신앙, 마음의 완악함, 결실치 못함, 그들 중에 당파를 조성함, 불안정함 그리고 사역자가 그들에게 전파한 복음에 합당치 못한 언행 등으로 인해 사역자들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3‐4),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막 3:5), “내가 큰 환란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고후 2:4)

⑶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거나 그들에게 합당한 굴종과 순종하기를 거부하거나 그들에게 필요한 사례를 지급하지 않거나 사역자들에 대한 백성들에게 부과된 의무를 경시하는 태도 등.


⑨ 백성들에 대한 사역자의 죄는 무엇인가?

백성들에 대한 사역자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백성들에게 무언가 좋은 것을 주려 하지 않고 그들로부터 지상의 것을 받으려고만 하거나 그들의 영혼을 위한 진지하고 따뜻한 사랑이 없는 경우이다.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고후 12:14), “그 파수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사 56:10)

⑵ 백성들을 위한 기도하는 일과 연구하는 일과 말씀 전파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경우이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렴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딤전 4:13‐14)

⑶ 백성들에게 부주의하게 대하거나 가르침에 있어 유익을 주지 못하거나 교리와 신앙고백에 따른 언행이 일치하지 않거나 강단에서 가르친 것을 생활 가운데서 가르치지 않는 경우이다.

⑷ 전파하는 말들이 상스럽거나 백성들의 마음에 잘못된 사상을 심어주는 경우이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


⑩ 주권자에 대한 신하의 죄는 무엇인가?

주권자에 대한 신하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그들을 타도하고 멸망시키기 위해 모반을 도모하거나 반역을 꾀하는 경우이다.

“악한 자는 반역만 힘쓰나니 그러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가 보냄을 입으리라”.(잠 17:11)

⑵ 선하고 의로운 법률에 굴복치 않거나 불복종하는 행위.

“그러므로 불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롬 13:5)

⑶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악담을 일삼는 행위.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벧후 2:10)

⑷ 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그들 앞에서 불경스러운 행위를 일삼는 경우이다.

“너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며 백성의 유사를 저주하지 말지니라”(출22:28),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 신복들이 자기를 향하여 옴을 보고 나가서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삼하24:20)

⑸ 당연히 바쳐야 할 세금을 바치지 않거나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을 속이는 경우이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런 빚도 지지 말라”.(롬 13:8)


⑪ 신하에 대한 주권자의 죄는 무엇인가?

신하에 대한 주권자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하나님의 법과 상반된 법률을 입법하는 경우이다.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이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단 6:12)

⑵ 그들의 다스림에 있어서 압제와 전제와 잔악함이 나타날 때이다.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잠28:15,16)

⑶ 공동의 유익을 추구하기보다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에 급급해할 때이다.

⑷ 선한 자와 의로운 자의 말을 듣지 않거나 실망시키고 사악한 자와 불의한 자의 말을 더 좋아하고 그들을 부추길 때이다.

⑸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치 않고 악한 본을 보임으로 다른 사람들로 그 같은 행동을 하게 할 때이다.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시 12:8)


⑫ 연장자와 강한 자에 대하여 아랫사람과 연약한 자의 죄는 무엇인가?

연장자와 강한 자에 대하여 아랫사람과 연약자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그들 안에 있는 지혜와 가치에 대하여 연장자와 우월한 자의 그것보다 낫다고 자고하며, 자긍하고 방자하여 심중에 그들을 업신여기고 판단하는 것이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 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딤전3:6),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롬14:3)

⑵ 그들에 대하여 무례하고 불손하게 대하거나 불경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이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눅 14:8,9)

⑶ 그들의 현명한 충고와 유익을 위한 조언을 듣지 않고 완전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하는 생각이나 완고한 의지이다.


⑬ 아랫사람과 연약한 자에 대한 연장자와 강한 자의 죄는 무엇인가?

아랫사람과 연약한 자에 대한 연장자와 강한 자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⑴ 그들에게 불경건. 탐욕, 불의, 조급함이나 사악함의 본을 보이는 경우이다.

⑵ 그들에게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선한 동기에 합당한 격려를 하지 않는 경우이다.

⑶ 그들의 연약함을 보살피지 않거나 그 연약함을 인하여 멸시하는 경우이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롬14:3)


⑭ 상호간 동류에 대하여 짓는 죄는 무엇인가?

상호간 동류에 대하여 짓는 죄는 다음과 같다.

⑴ 상호간에 대하여 증오, 시샘, 원한, 무절제한 분노, 악담을 하는 것과 어떤 방법으로든 서로 해치고 명성을 떨어뜨리고 존영을 해치는 경우이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1,32)

⑵ 상호간에 사랑과 선행을 불일도록 자극하기보다 서로가 미혹을 받고 또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도록 미혹을 주는 경우이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잠 1:10)

⑶ 상호간의 선을 열심히 부지런히 도모하지 않고 사적이고 인색하고 이기적인 정신상태를 가지는 경우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제66문 : 제 오 계명에 첨부된 논증은 무엇인가?

답 : 제 오 계명에 첨부된 논증은, 이 계명을 지키는 모든 자에게 장수하고 번성하리라는 (이 약속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자신에게는 선이 되는 한에서) 약속이다.


① 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첨부된 약속은 무엇인가?

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첨부된 약속은 장수의 약속이며, 이 계명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임을 강조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② 제 오 계명에 보면 첨부된 약속 중에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나오는데, 어떻게 제 오 계명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 되는가?

제 오 계명에 첨부된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그 계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러한 정신으로 다른 모든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해당된다. 그러나 이 장수하리라는 약속은 이 오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특별히 적용되는 말씀이다.


③ 이 장수하리라는 약속에는 어떠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가?

이 장수하리라는 약속에는 생명을 오랫동안 부지하는(그 중에는 너무 비참하여 죽음을 오히려 동경하는 삶도 될 수 있음) 삶뿐만 아니라 축복과 생명의 번성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④ 그러면 부모를 공경하는 모든 자들이 땅에서 오래 살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인가?

⑴ 부모를 공경하고 상관 관계의 의무를 충실히 지키는 많은 자들이 땅위에서 오래 살고 번성하는 복을 받는다. 그것은 그 약속으로 인해서이다. 그와 반대로 행하는 많은 자들은 젊어서 요절을 당하고 그들의 날에 죽임을 당하고 그들의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 가난과 빈궁의 저주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세속적인 약속과 심판은 영적인 것으로 종종 바꾸어졌던 후기 신약 시대보다 이전의 구약 시대에 더 많이 성취된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⑵ 이 약속은 비상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 계명을 지키는 모든 자들의 진정한 유익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이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그들의 젊은 나이에 연수를 줄여서 그의 집으로 취하심으로 살아 있는 자들에게 더 이상 그 고통이 임하지 않게 하시며 이 땅에서의 오래 사는 것보다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그들은 유익을 얻는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禍厄)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사 57:1),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 2:25)



제 39 강  제 육 계명의 의미


제67문 : 제 육 계명은 무엇인가?

답 : 제 육 계명은 “살인하지 말지니라” 하는 것이다.


제68문 : 제 육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육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합당한 노력을 함으로 우리 자신의 생명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다.


① 제 육 계명은 무엇을 중시 여기라고 하는가?

제 육 계명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중시 여기라는 것이다.


② 우리 자신의 생명에 관해 제 육 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 육 계명이 우리 자신의 생명에 관해 요구하는 바는, 모든 정당한 노력을 통해 그것을 보존하라는 것이다.


③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를 소유하기 위해 우리의 생명을 당연히 버려야 한다면, 우리의 생명을 보존함으로 인해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와 그의 진리를 부인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보존함에 있어서 합당한 수단이 못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방법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생명을 구원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영원히 잃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 10:33), “누구든지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5,26)


④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함으로 우리의 생명을 구원코자 해서는 안 되는가?(이삭이 그랄 지방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그를 죽일까봐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말한 것과 비교해 보라, 창26:7)

이 문제에 대해 바울 사도는 이렇게 답한다.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은 것이 옳으니라”(롬 3:8). 그러므로 이삭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거짓말 한 것은 하나님에게 죄이며 진노를 쌓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서 우리로 본을 받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조심하게 하기 위해서 기록으로 남긴 다윗의 간음 사건보다 조금도 못한 것이 아니다.


⑤ 우리는 안식일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의무를 중단하고 공격을 하는 적에 대항해 생명을 보존해야 하지 않겠는가?

 죄는 어떠한 선한 명목으로도 범치 말아야 한다. 그것은 모든 시대를 어거하는 부정적인 명령이다. 그러나 모든 시대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죄를 범치 않고서도 이 의무를 잠시 중단하고 수행해야 할 적극적인 명령이 있다. 즉 우리의 생명이 적군의 침범으로 위기를 당해 예배의 의무를 다른 방법으로 수행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날에 그의 예배를 면제하신다.


⑥ 우리가 생명을 보존 받기 위해 수행해야 할 정당한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가 생명을 보존 받기 위해 수행해야 할 정당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⑴ 우리를 죽이려 하는 자객이나 도적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무기와 병기를 사용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한다.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눅 22:36)

⑵ 기후와 추위와 맹수를 막기 위해 옷을 입고 집안에 있음으로 보호함을 받는다.

“그 집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집사람을 위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며”.(잠31:21)

⑶ 식사와 음료수와 잠을 적당히 절제하여 사용함으로 우리 몸에 영양을 공급하고 원기를 북돋아 준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엡 5:29),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5:23),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요 11:12)  

⑷ 노동이나 적당한 오락을 함으로 몸을 사용한다.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전5:12),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전3:4)

⑸ 병에서 낫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의약을 사용한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

⑹ 우리의 건강을 보존하고 우리 몸의 기분을 상쾌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훌륭한 수단, 즉 인내, 평강, 만족, 명랑 그리고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한다.

“마음의 즐거움이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⑦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제 육 계명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제 육 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합당하게 노력하는 것이다.


⑧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원수들에 의해 부당하게 생명의 위험이 경각에 달했을 때와 같은 경우 타인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어떠한 거짓말도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가?  라합은 거짓말함으로 그녀의 집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했고 그로 인해 그는 칭찬을 받고 기록되었으며 도시의 다른 모든 집은 멸망하였으나 그녀와 그녀의 집은 구원함을 받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⑴ 이러저러한 어떠한 이유로 거짓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가장 의로운 사람의 목숨이 죽는 것은 가장 보잘것없는 죄악만큼 악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⑵ 라합은 그녀의 믿음을 보임으로 칭찬을 받았으며 그것은 그녀가 죄를 지었던 거짓말로 인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녀에게 세웠던 약속으로 인해서이다. 용서 없는 죄는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히 11:31)


⑨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

⑴ 주권자, 재판장, 그리고 손에 권세를 갖고 있는 자들은 무죄한 자가 압박을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생명의 위험에 직면해 있을 때 그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 지라 하시는도다”(시82:3,4),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잠 24:11,12)

⑵ 모든 사람은 가난하고 곤궁한 자와 같은 사람에게 각기 능력에 따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주위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2:15,16)

⑶ 모든 사람은 모든 악행을 금지하여야 하며 어떤 사람에게 해를 주어도 안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이 있다 해도 그들의 과오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빌 2:15),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제 69문 : 제 육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육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명이나 우리 이웃의 생명을 부당하게 끊거나 또한 그러한 결과로 이끄는 모든 일이다.


① 제 육 계명은 우리에게 누구를 죽이지 말라고 하는가?

제 육 계명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든지 타인이든지를 막론하고 아무도 죽이지 말라고 하였다.


②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직접적으로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취함으로써, 간접적으로는 그러한 결과로 유도함으로써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


③ 다른 사람이 우리를 고문과 치욕으로 죽이려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합당한 일인가? <마치, 케이토(Cato, Marcus : 로마의 장군, 정치가. 234‐249 B.C)와 이교도들이 자살을 감행한 것처럼, 그리고 사울이 할례 받지 않은 불레셋 사람들에게 치욕스럽게 죽임을 당치 않기 위해 자신의 칼로 죽었던 경우처럼>

⑴ 어떤 경우에도 자살을 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행 16:27,28)

⑵ 비록 이교도들이 어떤 경우에 자살을 감행하는 것이 일종의 덕목으로 간주되고 용감무쌍한 영웅적 행위로 추앙 받지만, 하나님의 법은 그러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한 자를 자살자로 간주한다.

⑶ 사울이 그같이 행함으로 죽은 것은 그의 죄이다. 우리는 고통스럽다고 우리 자신에게 폭력을 가해  죄 가운데 죽음으로 그 후에 회개할 기회와 장소를 얻지 못하는 것보다, 결국 다른 사람의 죄가 될 그들의 고통과 고문을 감내해야 한다.


④ 어떤 자가 자살을 하고서 나중에 이 죄를 회개할 수 있을 때 구원받는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⑴ 이 경우 대단히 희귀하지만 어떤 자가 자살을 하고서 죽기 전에 회개하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⑵ 하나님의 자녀들인 어떤 자가 광란 중에 (사단이 그렇게 하도록 유도한 것임) 자살을 한다는 것은 (물론 습관적인 신앙과 회개로서 구원에 이르기는 하지만) 가능한 일이다.


⑤ 어떤 경우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합당한 일인가?

⑴ 특별히 살인자와 같은 경우 공적인 법률의 정당한 선고를 받아 사형을 집행하는 것.

“무릇 사람을 죽인 자 곧 고살자를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민35:30)

⑵ 합당한 전쟁에서 죽이는 것.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당할 것이로다”(렘 48:10)

⑶ 어쩔 도리가 없는 자기 방어를 목적으로 하다 죽인 경우.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출22;2)


⑥ 두 사람이 결투하다가 죽이는 것은 합당한 일인가?

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공격을 받아 싸움을 피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사적인 결투는 부당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원수의 공격을 받아 싸워 죽이는 것은 정당한 방위이므로 합당한 것이다.

⑵ 군대의 우두머리인 한 명의 원수가 도전을 제기하여 더 많은 피를 흘리지 않는 수단으로 공적인 결투를 하는 것은 합당하다. 다윗은 이러한 결투를 잘 하였기 때문에 골리앗을 죽인 것이다.


⑦ 우리가 직접적으로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취하지 않으나, 어떤 다른 방법으로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취하게 되는 경우는 없는가?

우리는 간접적으로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이도록 유인함으로 결국 그들의 생명을 살인하는 죄를 짓게 되는 경우가 있다.

⑴ 생명을 보존하는 합당하고 필요한 수단들이 있는데도 이를 방관하고 금하므로 살인죄를 짓게 된다. 이를테면 그러한 것은 양식, 음료, 잠, 의복, 의약품, 필요한 휴식, 기타 등등이다. 우리가 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거나 사단의 유혹으로 인해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용하지 않을 때 이것은 그 권리를 포기하고 종국을 재촉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살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지나친 탐욕이나 무자비함으로 인해 상대방이 극도로 궁핍해 있는데도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지 않을 때, 우리는 타인을 살인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⑵ 과다하게 먹고 마시고 고민하고 시샘하고 지나치게 슬퍼하고 지치게 하는 어떤 것을 행하고 우리 마음의 원기를 빼앗고 우리 몸의 정력을 소모시키는 그러한 것들을 행함으로 자살로 유도하는 죄를 범케 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 14:30),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⑶ 증오, 분노, 악의, 욕설, 억압을 통해서, 특별히 다른 사람의 몸을 때리고 상처 입히고 가해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살인하는 경우이다. . 이러한 것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를 살인죄라고 규정하였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1,22),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같으니라”(잠 12:18),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겔 22:7)



제 40 강  제 칠 계명의 의미.


제 70문 : 제 칠 계명은 무엇인가?

답 : 제 칠 계명은 “간음하지 말지니라”하는 것이다.


제 71문 : 제 칠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제 칠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마음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우리 자신과 이웃의 순결을 보존하는 것이다.


① 제 칠 계명은 무엇에 관계된 것인가?

 제 칠 계명은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의 순결을 보존하라는 것이다.


② 제 칠 계명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순결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 칠 계명은 우리 자신과 다른 삶의 순결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 자신이 오염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오염을 물리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살전 4:3)


③ 우리가 본 계명으로써 우리 자신과 이웃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인가?

 우리가 본 계명으로써 우리 자신과 이웃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이다.

⑴ 마음에서이다.  

순결하고 정결한 상호간에 모임을 사랑하고 동경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인의 친구로서 남자이든지 아니면 남자들의 친구로서 여인이든지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서 말이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⑵ 언어에서이다.

상호간에 담소를 나눌 때 말씨가 부패하지 않고 상대방을 교화시키고 성화시키는 데로 나아가게 이끄는 것이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⑶ 행위에서이다.

대화나 행위가 온당하며 정결해야 한다.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벧전 3:1,2)


 ④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순결을 보존해야 하는가?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순결을 보존해야 한다.

⑴ 경성함으로(by watchfulness) 보존한다.

ⓐ 마음과 영혼에 일어나는 불결한 생각을 물리친다. 그것은 최초에는 사모하게 되고 그것에로 마음이 이끌리게 되고 마침내는 생각 속에 터를 잡고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말 2:16). ⓑ 우리의 감각을 통제한다. 눈을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들에서 돌이킨다.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욥 31:1). 귀는 모든 음탕한 말들을 멀리한다. 우리는 또한 부정한 욕망을 자극시키는 것들로써 접촉하거나 바람끼 있는 장난을 삼가야 하며, 가볍고 외설적인 무리들과도 조심해야 하며, 불결함의 죄로 나아가게 하는 모든 일들을 피하고 그러한 유혹들을 물리치도록 힘써야 한다.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잠 5:8),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7‐9)

⑵ 직업에 열심을 냄으로써 보존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부지런히 활동함으로써 불결한 일들과 욕망을 물리칠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은 게으른 사람들에게 곧 잘 전염된다.

“그 집안 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잠 31:27,29)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창 34:1,2)

⑶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함으로써 보존한다.

이것들을 과다하게 배불림으로써 몸을 둔하게 하면 정욕의 자극을 받게 된다.

“그들은 살지고 두루 다니는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렘 5:8),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그러나 KJV역서에는 ‘thine eyes shall behold strange women’이라 번역되어 있음)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잠 23:31‐33)

⑷ 절제함으로써 보존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빈번히 금식을 행함으로 육체를 제어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고전 9:27)

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언제나 그의 존전에 있어 항상 그의 보시는 바가 됨으로 경건한 태도를 지님으로 보존한다.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잠 5:20,21)

⑹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서 덕을 이끌어 냄으로 보존한다.

 우리는 그로부터 심령을 깨끗케 하고 육체적인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는 효능을 얻는다.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행 15:9),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

⑺ 심령을 깨끗케 하고 불결한 것을 정복케 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적용함으로써 보존한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겔36:25),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9),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⑻ 성령의 도우심으로써 보존한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⑼ 빈번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 드림으로써 보존한다.

“하나님이여 …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1‐2,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시 119:37)

⑽ 어떠한 수단도 타오르는 정욕을 제어하지 못할 때 결혼을 하라. 그러나 그것도 주 안에서 하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전 7:9,39)


⑤ 왜 우리는 우리의 순결을 보존하여야만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순결을 보존하여야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⑴ 우리는 아무런 법도 없는 짐승들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성의 법칙과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마음에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명백히 말씀으로 기록되어 우리로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고 있다.

⑵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경외하지도 않는 이교도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살전 4:5),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엡 4:17‐19)

⑶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며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보존해야 한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5,16,19,20),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7)



제72문 : 제 칠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칠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부정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다.


① 제 칠 계명에서 금하는 죄는 무엇인가?

제 칠 계명에서 금하는 죄는 모든 부정과 불결이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엡 5:3)


② 모든 불결과 부정은 어떤 점에서 금지되어야 하는가?

모든 불결과 부정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금지되어야 한다.

⑴ 마음의 생각과 욕망, 이를테면 방자한 생각과 육감적인 욕망에 있어서 금지되어야 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⑵ 말과 언어, 이를테면 이와 같은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모든 음탕한 말, 색정적인 가요, 외설적인 언어에 있어서 금지되어야 한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4),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잠 7:18,21)

⑶ 행동, 즉 불결하고 부정한 행동과 그것에로 이르게 하는 모든 행동에서 금지되어야 한다.


③ 금지된 바 불결하고 부정한 행동들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금지된 바 불결하고 부정한 행동들은  결혼 관계를 떠나서이거나 결혼한 사람들 사이에 행해지는 죄이다.


④ 결혼 관계를 떠나서 행해지는 부정하고 불결한 행동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금지된 바 결혼관계를 떠나서 행해지는 부정하고 불결한 행동은 다음과 같다.

⑴ 자위 행위

⑵ 간음과 사통.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갈5:17,19), “너는 타인의 아내와 통간하여 그로 자기를 더럽히지 말지니라”.(레 18:20)

⑶ 근친상간.

“너희는 골육지친을 가까이 하여 그 하체를 범치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8:6)

⑷ 강간이나 어떤 사람을 강제로 부정의 죄를 짓게 하는 행위.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거든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신22:25)

⑸ 남색


⑤ 결혼한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불결하고 부정한 행동은 어떤 것이 있는가?

금지된바 결혼한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불결하고 부정한 행동은 부부의 동침 자리를 비상식적이고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너는 여인의 경도를 불결한 동안에 그에게 가까이 하여 그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레18:19),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 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7:5)


⑥ 부정과 불결에 이르도록 하는 행동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부정과 불결에 이르게 하는 행동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⑴ 술취함(drunkenness).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창 19:33)

⑵ 무위도식(gluttony and idleness).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겔16:49,50)

⑶ 방자한 몸가짐과 옷차림(wanton gestures and attires).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사 3:16),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계집이 그를 맞으니 … 계집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 …” (잠 7:10,13)

⑷ 방정맞고 외설적인 무리들과 교제함(frequenting light and lewd  company).

무리들은 색정적인 책들을 읽으며 선정적인 영화를 보며 정욕을 자극시키는 것들을 행하기 때문이다.


⑦ 모든 사람이 모든 불결과 부정, 그 중에서도 특별히 보다 더 가증한 죄인 사통과 간음을 금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모든 사람이 모든 불결과 부정, 그 중에서도 특별히 보다 더 가증한 죄인 사통과 간음을 금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⑴ 사통(fornication : 미혼 남녀들의 죄) 과 간음(adultery : 결혼한 남녀들의 죄‐역자 주)은 하나님을 대단히 격노케 하고 그에게 엄청난 불명예가 되는 죄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 더불어 동침하매 …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 11:4, 27)

⑵ 사통과 간음은 그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대단히 해악스럽고 표독스럽기 때문이다. ⓐ 그것은 그의 몸에 역행하는 죄로서 그 몸을 더럽히고 때에 따라서 몸을 지나치게 하며 쇠약하게 한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두럽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잠 5:8,11).ⓑ 그것은 그의 영혼에 역행하는 죄로서 그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그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그 결과 그의 영혼을 파괴시킨다.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호 4:11),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잠 6:32).ⓒ 그것은 그의 이름에 사어를 주고 먹칠을 한다.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잠 6:32,33).ⓓ 그것은 재산과 자산을 탕진시킨다.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잠 5:10),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잠 6:26).ⓔ 그것은 많은 사람을 불시에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잠6:26),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잠 7:26)

⑶ 사통과 간음은 타인에게도 해악을 주기 때문이다. 부정한 일을 행한 상대방도 똑같은 죄에 연루된다. 그 상대방이 결혼했다면 결혼한 자의 배우자에게도 상처를 주는 것이다.



제 41 강 제 팔 계명의 의미



제73문 : 제 팔 계명은 무엇인가?

답 : 제 팔 계명은 “도덕질하지 말지니라”는 것이다.


제74문 : 제 팔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팔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타인의 부와 재산을 합법적으로 얻고 또 그것을 증진시키는 일이다.


① 제 팔 계명은 무엇에 관계된 것인가?

제 팔 계명은 우리 자신과 타인의 부와 재산에 관계된 것이다.


② 제 팔 계명은 우리 자신과 타인의 부와 재산에 관하여 무엇하기를 요구하는가?

제 팔 계명은 우리 자신과 타인의 부와 재산에 관하여 그것을 얻고 보존하는 일이다.


③ 우리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재산과 부를 얻고 보존하기 위하여 어떤 수단들을 사용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의 부와 재산을 얻고 보존하기 위하여 합법적인 수단 이외에는 아무 것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④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와 재산을 얻고 보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와 재산을 얻고 보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노력해야 한다.

⑴ 우리에게 합당하고 알맞은 직업을 선택하고 또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창 4:2),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전 7:20,24)

⑵ 우리의 직업을 통해 이 세상의 선한 것들을 증진시키기 위해 관심을 가짐으로 한다. “밭을 간품하여 사며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잠 31:16)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2:17)

⑶ 우리 직업상의 일들을 잘 관리함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고자 할 때 분별과 신중을 기함으로 한다.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시 112:5),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잠2;11)

⑷ 근검 절약하여 불필요한 지출을 금하고 우리의 육감적인 욕망과 정욕을 도모하려고 하는 호화스럽고 값비싼 치장을 거부함으로 한다.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잠 21:20), “저희가 배 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요 6: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딛 2:12)

⑸ 우리의 직업에 열심을 내어 근면하게 일을 함으로 한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 10:4),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잠 13:11),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⑹ 우리의 노력에 그의 축복이 함께 하기 위해 여호와께 간구하며 현세적인 양식 얻기 위해 그를 의지함으로 한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 10:22),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그리하면 그가 이루시리라”.(벧전 5:7)

⑺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눠주신 선한 것들을 유쾌하게 사용하고 다른 사람의 궁핍에도 기꺼이 나눠줄 준비를 갖춤으로 한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복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25)

⑻ 우리가 사악하게 굴거나 거기에 집착해 있을 때 본래 우리에게 속해 있는 의를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온당하게 노력을 해서 우리의 명분을 세움으로 한다.


⑤ 우리 자신의 소유를 보호하거나 회복하기 위하여 사람이 법률에 호소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일인가? 우리 주님께서와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는가?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5:40), “너희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고전 6:7)

⑴ 성경의 이 두 구절 중 어느 것도 우리 권익을 보호하거나 회복함에 있어서 도무지 어떤 때에라도 인간의 법률에 호소하지 말라고 명하는 것은 아니다.

⑵ 우리 주님의 말씀은 다만 겉옷과 속옷과 같은 조그마한 것들, 즉 그것들로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쉽사리 나눠가질 수 있는 것들로 인해 왈가왈부 싸움하는 것을 금하셨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만약 어떤 자가 보다 큰 것으로 우리의 권익을 침해하거나 그것을 양보하기를 요구함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취하려 한다면 우리로 법률에 호소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 말씀을 곡해한다면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악인들에 의해 생계의 모든 수단들을 순식간에 빼앗기고 탈취당하고 말 것이다.

⑶ 사도 바울의 이 말은, 신자들이 공언하는 기독교 신앙의 문제를 가지고 이교도나 불신자들 앞에 나가 판단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 중의 시시비비를 그들 중에서 해결하지 복음에 손상을 끼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 국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법률에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거나 회복함 받기 위해 호소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스캔들과 같은 조그마한 문제들에 대해 법정에서 언성을 높여 싸우거나 불필요하게 법률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⑷ 하나님이 세우신 재판관들에게 우리의 권익을 보호받거나 회복함 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이 법률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합법적으로 시행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그들의 권익을 보호받고 회복함을 받기 위해 이러한 법에 송사를 제기했다. 이와 동일한 이유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


⑥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을 획득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노력해야 하는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을 획득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공공의 정신을 발휘함으로 우리의 재산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며 다른 사람의 사적인 부와 유익을 구하며 구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


⑦ 가난하고 빈핍한 자에 대하나 우리의 의무는 무엇인가?

가난하고 빈핍한 자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특별히 그들이 믿음의 권속들이라면 우리의 능력과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들에게 물질을 대여해 주거나 무상으로 공급해 줌으로써 “그들을 구제하는 일을 도와 객이나 우거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레 25:35),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42), “만일 형제나 자매나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 2:15,16),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요일 3:17)


⑧ 모든 타인의 부와 재산에 관한 우리의 의무는 무엇인가?

다른 모든 사람의 부와 재산에 관한 우리의 의무는 공평과 정의이다.


⑨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에 관해 우리가 보여야 할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에 관해 우리가 보여야 할 태도는, 사랑과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그 부를 점점 증진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라”(갈 6:10),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롬 16:1,2)


⑩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에 관해 지켜야 할 정의의 척도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에 관해 지켜야 할 척도는 우리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대로 그들에게 합당하게 해 주는 것이다.“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⑪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의를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의를 나타낼 때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행해야 한다.

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나타낸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시 15: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⑵ 우리의 합당한 언약과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며 우리에게 위탁된 신용은 무엇이든지 성실히 수행한다.“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시 15:4),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⑶ 물건을 사고 파는 일에 있어서 공평을 기한다. 우리가 사는 것에 대하여는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며, 파는 것에 대하여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익을 취하여야 한다..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라”(레 25:14)

⑷ 모든 사람에게 마땅히 줄 것을 주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7,8)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잠 3:27,28)

⑸ 우리에게 맡겨진 저당물이나 우리가 발견한 타인의 물건이나 훔치거나 사기해서 취득한 어떤 것을 되돌려 주라. “빼앗은 것이나 늑봉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 보내되 그 본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레 6:4,5),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겔 18:7),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눅 19:8)



제75문 : 제 팔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팔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 이웃의 부와 재산을 부당하게 저해하거나 방해하는 일이다.


① 우리 자신의 부와 재산을 저해하는 일에 대하여 제 팔 계명은 어떻게 금하는가?

우리 자신의 부와 재산에 관하여 제 팔 계명은 다음의 사항을 금한다.

⑴ 탐식, 음주, 선정적인 모임, 노름 등과 같은 일로 우리의 재산을 탕진하거나 허비하는 것이다.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눅 15:13), “술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 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 23:21),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잠 28:19)

⑵ 매우 불확실한 어떤 것에 무분별하게 모험하거나 함부로 보증 서는 일을 하거나 우리의 직업을 아무렇게나 다룸으로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이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잠 28:22),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잠 22:26,27)

⑶ 우리의 특수한 직업상의 의무를 게으르고 나태하게 대하는 경우이다.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23:21)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 24:30‐34)


② 우리 자신의 부와 재산을 자나치게 늘임에 관해 제 팔 계명은 어떻게 금하는가?

우리 자신의 부와 재산을 지나치게 증식시킴에 관해 제 팔 계명은 다음과 같이 금한다.

⑴ 부자가 되고자 하는 무절제한 욕망과 걱정함으로 재산을 모으는 일이나 육체가 쇠약해질 정도로 일을 하거나 종교적 의무를 위한 시간도 배제하고 일만 하려는 과욕을 금한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 13:5),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고전 7:32),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어떤 사람은 아들이 없고 형제도 없으니 아무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하기를 마지아니하며 부를 눈에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도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 심령으로 낙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고”(전 4:8)

⑵ 우리가 세상의 선한 것들을 얻기에만 급급해 하고 사용할 마음은 두지 않는 즉 탐심을 갖는 것이다.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폐단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전 6:1,2)

⑶ 성물의 매매, 성령의 은사와 사죄의 은총을 판매하고 또 그것을 시여하는 것 등의 당한 행위이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

⑷ 공공의 정의를 굽게하는 뇌물행위.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하느니라”(출 23:8),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사 1:23)

⑸ 온당치 못한 예술, 점성술, 수자판 던지기 등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여 돈을 모으는 일이다. “네가 네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네가 많은 모략을 인하여 피곤케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월삭에 예고하는 자들로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케 하여 보라”(사 47:10,13),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행 19:19,24)


③ 제 팔 계명은 곤궁한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 것을 금하는가?

제 팔 계명은 곤궁한 사람들 구원치 않는 것과 또한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금한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 21: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신 15:7)


④ 제 팔 계명은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 것을 금하는가?

제 팔 계명은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불의와 부정 행하는 것을 금한다.

⑴ 우리가 물건을 살 때 그것이 당연히 좋은 것인 줄 알면서도 과소 평가하거나 다른 사람의 상품의 가치를 얕잡아 봄으로 실제보다 평가 절하 시키는 부정행위이다 “사는 자가 물건이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잠 20:14),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라”.(레 5:14)

⑵ 우리가 물건을 팔 때 우리의 양심을 거스리고 그것이 형편없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매우 좋다라고 말하거나 그 상품의 부당한 가격을 붙이거나 물건을 출하할 때 무게와 부피를 속여 파는 행위이다.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살전 4:6),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 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 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신 25:13‐15),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1:1), “악인의 집에 오히려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 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미 6:10,11)

⑶ 특별히 팔 계명은 상호간에 훔치는 것을 직설적으로 금하고 있다. “도적질하지 말지니라”(출 20:15),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거짓말 말며”.(레 19:11)


⑤ 제 팔 계명에서 금하는 바 훔치는 행위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제 팔 계명에서 금하는 바 훔치는 행위는 가정 안에서와 가정 밖에서 도적질하는 것을 말한다.


⑥ 제 팔 계명에서 금하는 바 가정 안에서 훔치는 행위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제 팔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가정 안에서 훔치는 행위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⑴ 종들이 그들 주인의 물건이나 재산을 속이거나 낭비하는 것과 같은 절취행위가 있다. “종들로는 자기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딛 2:9,10),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돌린지라”.(눅 16:1)

⑵ 자녀가 그들 부모의 재산을 속이거나 훔치는 행위.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케 하는 자의 동류니라”(잠 28:24),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잠 19:26)


⑦ 제 팔 계명이 금하는 바 가정 밖에서 행해지는 훔치는 행위는 어떤 것이 있는가?

제 팔 계명은 가정 밖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및 사적인 모든 절도 행위를 금지한다.


⑧ 제 팔 계명이 금하는 바 공적인 절도 행위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제 팔 계명이 금하는 바 공적인 절도 행위는 다음과 같다.

⑴ 거룩한 목적에 바쳐진 어떤 것을 폭력이나 속임으로 빼앗음으로, 혹은 성별된 사람이 정당한 명분 없이 그들의 직무에서 이탈함으로 신성모독 죄를 짓는 경우이다.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롬 2:22), “함부로 이 물건을 거룩하다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되느니라”(잠 20:25),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덕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 3:8,9)

⑵ 정의로운 자유나 특권을 탈취하거나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공익에 손상을 주는 일을 함으로 그 공동체를 속이고 그르치거나 공공의 재물을 훔치는 행위이다. 그러한 부정행위 중에는 공유지를 사유지로 법제화 시키는 것이나, 마음을 딴데로 돌리게 하는 것이나, 매점매석, 독점 등 그와 같은 것들이 있다.


⑨ 제 팔 계명에서 금하는 바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절도행위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제 팔 계명에서 금하는 바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절도행위는 다음과 같다.

⑴ 노예로 보내거나 팔기 위한 목적으로 남자를 훔치거나 여자를 훔치거나 어린이를 유괴하는 일.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명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딤전 1:9,10)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6)

⑵ 육로나 해로를 통해 돈, 가축 혹은 어떤 물품을 강탈하는 일. “세겜 사람들이 산들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하여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무릇 그 길로 자나는 자를 겁탈하게 하니 혹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고하니라”(삿 9:25), “그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가시나무 가운데 있는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욥5:5)


⑩ 제 팔 계명에서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제 팔 계명에서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⑴ 훔친 물건이나 그밖에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것을 도적과 몫을 나누는 것.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어 다니지 말라.....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잠 1:14‐16) “도적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맹세함을 들어도 직고하지 아니하느니라”(잠 29:24) ,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시 50:18)

⑵ 길을 잃거나 잃어버린 어떤 것을 감금해 놓음. “네 형제의 우양의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 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네가 혹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릴지니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무릇 형제의 잃은 아무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 하지 말것이며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체 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지니라”(신 22:1‐4)

⑶ 약속을 한 것이나 맡겨진 어떤 일들에 거짓되거나 불성실한 경우.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요 12:6)

⑷ 우리에게 빚진 사람에게 조금의 동정심이나 인내심이 없이 너무 무자비하게 요구할 경우.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마 18:28‐30)

⑸ 이웃의 생계의 수단이 되었던 저당물을 잔인하게 차압해 놓은 경우.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하 자임이니라”(출 22:25‐27)

⑹ 당연히 제 때에 지불해야 할, 즉 종이나 노동자의 임금이나 품값을 체불하는 모든 것.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 도다”(시37:21),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군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출 19:13) “변을 위하여 꾸이지 아니하며 이식을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악을 짓지 아니하며 사람 사람 사이에 진실히 판단하며”(겔 18:8)


⑪ 왜 우리는 모든 형태의 절도 행위와 타인의 것을 부당취득 함으로 부유케 되려는 시도를 금해야만 하는가?

 우리가 모든 형태의 절도 행위와 타인의 것을 부당취득 함으로 부유케 되려는 모든 시도를 금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명백히 기록된 하나님의 금기사항이기 때문이며 인간의 심성에 기록된 자연법이 그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또한 절도나 부당행위로 부유케 된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가 k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보복은 저 세상에서 분명코 그런 자들 위에 불위와 절도죄로 임할 것이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이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슥 5:3,4),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라 되리라‘(렘17:1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 5:1‐3)


⑫ 우리는 어떻게 함으로 본 계명에서 금하는 죄들을 짓지 않게 되는가?

 우리가 본 팔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죄를 멀리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대한 욕망을 끊어 버리고 위에 있는 것들에 대해 사랑을 불일 듯 일깨우고, 공의를 사랑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특별한 섭리를 믿고 그외 모든 필요한 양식 주실 것을 믿음으로 힘써 행해야만 할 것이다.



제 42 강 제구계명의 의미


제 76문 : 제 구 계명은 무엇인가?

답 : 제 구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하는 것이다.


제77문 : 제 구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구 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과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 사이의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고양시키라는 것이다. 특히 증언하는 일에 있어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① 제 구 계명은 6 ,7 그리고 8계명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제 구 계명이 6, 7 그리고 8계명과 다른 점은 제 육 계명이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의 생명에 관계된 것이며, 제 칠 계명이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의 순결에 관계된 것이며 제 팔 계명이 우리 자신과 우리 이웃의 부와 재산에 관계된 것인데 반해, 본 구 계명은 우리 자신과 우리이웃의 평판에 관계된다는 것이다.


② 제 구 계명이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제 구 계명이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요구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실을 유지하고 고양시키는 것이다.


③ 어떻게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진실을 유지하고 고양시키게 되는가?

우리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진실을 유지하고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각자 상호간에 아주 솔직하게 마음으로부터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슥 8:16),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 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 4:25),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려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시 15:1,2)


④ 제 구 계명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평판에 대하여 특별히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 구 계명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평판에 대하여 특별히 증언하는 일에 있어서 그것을 유지하고 고양시키기를 요구한다.


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평판을 유지하고 고양시키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평판을 가치 있게 하고 보호함으로써 유지하고 고양시키는 것이다.


⑥ 우리는 어떻게 좋은 평판을 받게 되는가?

우리는 비록 하나님 앞에서는 그 중 어떤 것도 받을 만한 값어치가 없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선한 존재가 되고 또 선을 행함으로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다.


⑦ 우리는 사람들 중에서 선한 이름을 얻기 위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며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사람들 중에서 선한 이름을 얻기 위하여 우리의 내적인 성향과 성품에서 거룩하고 겸손하고 악의 없고 현명하고 사랑스럽고 인내하고 온유하고 바르고 의롭고 침착하고 정숙하고 참되고 정직하고 그리고 매사에 자상하고 덕스러워야 한다. 또한 우리의 대화와 행위도 칭찬받을만 하고 좋은 평판이 날 만하게 거기에 부합되어야 한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함이라”(벧전 3:15,16),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 2;15),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리의 해석을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전 8:1),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 3:12),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덕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8,9)


⑧ 우리는 우리의 평판을 어떻게 보호하는가?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평판을 보호한다.

⑴ 원수로부터의 중상모략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한 자로 밝히며 거짓 고소로부터 우리의 무죄함을 변호함으로써이다.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지 열 이틀밖에 못되었고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행 24:10‐13)

⑵ 필요에 따라서는 우리 자신을 자랑하여 말함으로써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대단히 삼가는, 조심성있는, 겸손한, 어쩔 수 없어 말하는 그러한 태도로 스스로를 비하하여 자랑해야 한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 자신 안에 칭찬받을 만한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태도로 말해야 한다.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후 12:11),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⑨ 특별히 누가 자신의 평판을 유지시키고 고양시키는가?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평판을 유지하고 고양시켜야 하겠지만, 특히 모든 신자들과 신앙을 공언하는 자들 그리고 주로 관리들과 공적 신임을 위탁받은 자들, 영혼을 책임맡은 사역자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에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러 함이라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딛 2:7‐10)


⑩ 어찌하여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평판을 유지하고 고양시켜야 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평판을 유지하고 고양시켜야 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이 땅 위 종속적인 위치에서 자신의 존영을 목적삼고 도모해 나가야 할 주된 의무가 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⑵ 훌륭한 이름은 존귀하게 하고 그 사람으로 더욱 쓸모있게 하며 상호간 사랑을 분발시키고 신뢰하게 하며 상호간에 관심과 이익을 놀랍도록 증진시키게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전 7: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 22:1)


⑪ 제 구 계명은 이웃의 평판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제 구 계명은 이웃의 평판에 관하여 그것이 우리 자신의 것인양 유지하고 진척시키기를 요구하며, 또한 그것은 우리 자신의 경우에 있어서와 다른 경우에 있어서 모두를 망라하고 있다.


⑫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우에 있어서 이웃의 평판을 어떻게 유지하고 고양시켜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우에 있어서 우리 이웃의 평판을 어떻게 유지하고 고양시켜야 하는가?

⑴ 다른 사람 안에 있는 가치와 훌륭한 점들을 바라보고 합당한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4),,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3)

⑵ 다른 사람의 훌륭한 평판과 명망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것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이다.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도미이로다”(롬 1:8)

⑶ 다른 사람에 대한 선한 보고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들로 기쁨을 누린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요삼 3),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 13:6)

⑷ 이웃을 헐뜯어 거스려 말하는 자와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와 악담하는 자와 중상모략 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이다.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시 15:3),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잠 25:23)

⑸ 이웃에게 불명예가 되는 과오를 슬퍼하고 그들로 다시 고침 받고 평판을 회복함 받도록 하기 위해 소망하고 노력해야 한다.“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2:4)


⑬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 이웃의 평판을 유지하고 고양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행해야 한다.

⑴ 그들에게 합당한 존영을 드리고 그들이 안보는 데서 그들을 칭찬하며 그들의 은사와 장점과 훌륭한 점들을 솔직히 인식하고 그것을 좋아해야 한다.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 2:17),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요삼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 1:4‐7),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 12:10),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⑵ 사람들의 평판과 훌륭한 이름을 보호해야 한다. 그들에 대한 악하고 거짓된 보고를 못하도록 혹은 멈추도록 애를 쓰며, 우리가 특별히 관리 앞에 호출 받아 그들의 무죄를 증언해야 할 경우 그것이 사실과 부합된 한에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들을 변호해 주어야 한다.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모신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삼상 22:14)

⑶ 우리도 그럴지도 모르는 그들의 과오와 약점을 감싸주고 덮어준다. 그들의 불명예스런 점, 드러내기를 꺼리고 특히 그들이 죄 중에 사로잡혀 있거나 죄악에 떨어졌을 경우 그들로 회복할 수 있도록 온유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살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마 1:19),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 하라”(갈6:1)

⑷ 필요에 따라서는 그들의 상태를 참작하고 그들 안에 있는 칭찬받을 만한 일을 기억함과 동시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책망하기도 한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고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게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마18:15,16),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2,4)



제78문 : 제 구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구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진실에 어긋나는 것이나 우리 자신이나 이웃의 평판을 해치는 일이다.


① 제 구 계명에서 일반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본 계명에서 일반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⑴ 진실에 어긋나는 일

⑵ 우리 자신이나 우리 이웃의 평판을 해치는 일


② 제 구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바 진실에 어긋나는 일은 어떠한 일인가?

 제 구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바 진실에 어긋나는 일은, 모든 종류의 거짓과 속임 그것이 타인을 거짓 고소함으로 해롭게 하는 것이든지 말을 왜곡시킴으로 해롭게 하는 것이든지를 막론하고서이다. 혹은 괴상하거나 거짓된 소식을 조장시킴으로 놀라움을 일으키든지 거짓된 농담으로 재미를 보든지. 혹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과오를 은폐 시키는 수단으로 변명하기 위해 거짓말하는 모든 경우를 망라한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골 3:9),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계 21:8)


③ 제 구 계명에서 금하는 바 우리 자신의 평판을 해치는 일은 어떠한 것을 말하는가?

제 구 계명에서 금하는 바 우리 자신의 평판을 해치는 일은 다음과 같다.

⑴ 사람들 중에 우리의 평판을 해치는 일이나 나쁜 소문을 불러 일으키는 어떤 일들을 저지르는 경우이다. 이를테면 하나님께만 불명예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불명예가 되는 간음, 절도, 사기 그리고 모든 종류의 비열한 일과 악행 등이다.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잠 6:32,33),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24,30)

⑵ 모든 자랑과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경우이다. 그것은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지 않은 은사를 자랑하든지 아니면 실제로 갖고있는 은사를 자랑하든지 막론하고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와 보다 사려깊은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품위를 떨어뜨리고 경멸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고전 13:4,50,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잠 25:14),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⑶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우리 스스로 죄 지은 것으로 거짓 증거하거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사와 은혜를 거부함으로 우리의 존영을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골 2:18)

⑷ 악인들과 불경건한 자들의 비웃음에 대상이 되도록 약점들을 불필요하고 무분별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④ 제 구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바 우리 이웃의 평판을 해치는 것은 어떠한 것을 말하는가?

제 구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바 우리 이웃의 평판을 해치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⑴ 위증이나 거짓 맹세와 거짓 고소, 혹은 우리 자신이 거짓 증거하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서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를 하게 하는 경우.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8:17),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딤후 3:1‐3), “불의한 증인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네게 힐문하여 ”(시35:11),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도 피치 못하리라”(잠19:5),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행 6:12,13)

⑵ 이웃에 대해 악하게 말하거나 판단하거나 성급하게 비난하는 경우이다. 우리도 그와 같거나 그보다 오히려 더 큰 죄를 범할 수 있는 데도, 좀 의심스럽다. 그 보다 더 작은 문제로 인해 그와 같이 호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실지 못하게 하심이로다”(행 28:4),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1‐3),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 2: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약 4:11)

⑶ 이웃의 정당한 평판을 떨어뜨리고 망가뜨리기 위해 이웃의 면전에서 그들을 비웃거나 조소하거나 욕설을 퍼붓거나 비난의 말을 하거나 험담을 하는 경우이다.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시 50:19,20),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시 15:1‐3),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6),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딤전 5:13)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고후 12:20)

⑷ 우리 이웃에 대하여 좋은 말은 하지 않고 나쁜 말만 떠벌리거나 거론하기를 좋아하는 경우이다. “너는 허망한 풍설(風說)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誣陷)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출 23:1),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시 15:3,4), “관원이 거짓말을 신청하면 그 하인은 다 악하니라”(잠 29:12)



제 43 강 제 십 계명의 의미


제79문 : 제 십계명은 무엇인가?

답 : 제 십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하는 것이다.


제80문 : 제 십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십계명에서 요구하는 것은 우리 이웃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에 대하여 옳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우리 자신의 형편에 대하여는 완전히 만족을 느끼는 일이다.


① 우리 자신에 관해 제 십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자신에 관해 제 십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형편에 대하여 완전한 만족을 느끼는 일이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② 우리의 형편에 대하여 만족을 느끼라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우리의 형편에 관하여 만족을 느끼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현재의 위치로 인도해 주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상태를 우리에게 최상의 가장 적합한 상태로 수용하라는 것이다.


③ 우리가 이생에서 부와 낙을 누릴 때 그러한 가운데서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생에서 부와 낙을 누리게 될 때 그러한 가운데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다음과 같다.

⑴ 우리는 그러한 때 우리의 마음을 너무나 많은 부에 집착시키지 않고 또 그것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저희에게 이르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set not your heart upon them )말지어다”.(시 62:10)

⑵ 우리의 주된 행복을 하나님과 위에 있는 것들에 두며 우리의 소유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고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5,6)

⑶ 다른 사람이 궁핍한 처지에 있을 때 그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어준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로써 위대한 사랑을 나타낸 자들에게 그의 사랑하심과 축복하심을 더 하신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7,8)

⑷ 이러한 만족의 은혜를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한다. 그러한 만족이 없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의 소유욕은 더욱 확대되고 반대로 우리의 만족은 점점 식어질 것이다.


④ 우리가 이생에서 가난하고 어렵고 고통스런 상태에 있을 때 어떻게 만족을 누릴 수 있는가?

 우리가 이생에서 가난하고 어렵고 고통스런 상태에 있을 때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만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⑴ 진정한 경건생활을 함으로써이다. 진정한 만족은 거기에서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⑵ 우리로 그러한 정황 가운데 처하게 되고 고통을 받게 하신 지혜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깨닫고 그것을 진지하게 바라봅으로써이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시 39:9)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 이니이다.”(시 119:75)

⑶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거기에 관심을 둠으로써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지어 최악의 상황에 처할지라도 우리의 선을 위하여 함께 일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⑷ 겸손히 우리의 죄를 의식함으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얻을 만한 존재가 못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한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창 32:10),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단 9:8)

⑸ 세상에서 우리보다 더 고통 받는 자들이나 더 가난한 자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을 누리는 자들을 바라보라. 우리 주님께서는 이 땅위에서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셨다. 세상에 가치를 두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확실한 거주지도 없고 곤핍하고 괴로움과 고통을 받는다.

⑹ 영적인 부를 더욱 풍부히 누리도록 애를 쓰면 쓸 수록 세상적인 것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만일 우리가 의를 얻기 위해 세상적인 유업을 포기하고 믿음으로 천국의 유업을 얻는 데 진력한다면 그때 가장 가난한 때가 가장 부유한 때가 될 것이며 의무적인 고난은 오히려 가장 심원한 기쁨이 될 것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니 하셨느냐"(약 2:5),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 1:6)

⑺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온 것도 없고 또 그것을 가지고 떠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생각함으로써 이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욥 1:21)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것이니라”(딤전 6:7,8)

⑻ 보편적인 만족에 대해 교훈을 주시는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어떠한 상태에 처하든지 이러한 은혜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그로부터 능력을 얻어내자.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13)


⑤ 우리의 이웃에 대해 제 십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이웃에 관하여 제 십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이웃과 그의 소유에 대하여 옳고 사랑스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⑥ 우리의 이웃과 그의 소유에 대하여 옳고 사랑스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이웃과 그의 소유에 대하여 옳고 사랑스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들을 말한다.

⑴ 우리의 이웃과 그의 안녕에 대하여 사랑과 소망과 기쁨의 감정을 갖는 것이며, 이웃의 악과 고난에 대하여는 함께 슬픔과 비통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 12:10,15),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히 13:3)

⑵ 우리의 이웃을 향한 이와 같은 감정을 습관적인 성품과 자발적인 성향이 되도록 한다.


⑦ 우리는 우리 이웃에 대한 그와 같은 감정과 사랑에 어떻게 이를 수 있는가?

우리가 이웃을 향한 그와 같은 감정과 사랑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함으로써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율법을 사랑하게 되고 그것을 행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⑵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둠으로써 상호간에 올바른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 5:1)

⑶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대해서와 상호간에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갈 5:6)

⑷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제81문 : 제 십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제 십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싫어하면서 우리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표하는 일과 이웃의 소유에 관하여 부당한 행동을 하거나 탐욕을 가지는 일이다.


① 제 십계명에서 금하는 죄는 무엇인가?

십계명에서 금하는 죄는 ⑴ 우리 자신의 재산에 대하여 불만을 느끼는 것과 ⑵ 우리 이웃의 재산에 대하여 시기심을 갖는 것과 ⑶ 그 자신의 것에 대하여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그와 같이 다루는 것이다.


② 우리 자신의 재산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우리 자신의 재산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것은, 현재의 형편에 대해 만족이나 기쁨을 느끼지 않고 계속 투덜거리고 불평을 하고 초조해하고 안달하고 걱정하고 괄괄대고 어떠한 안정도 침착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 지로다 하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왕상 21:3,4)


③ 우리의 재산에 대한 불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우리의 재산에 대한 불만은 다음의 요인들에 의해 생겨난다.

⑴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못하거나 신뢰하지 못하는 가운데 생겨난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정하시고 그것을 인해 우리에게 최상의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9‐30)

⑵ 우리 스스로의 교만과 과대평가로부터 생겨난다. 마치 우리의 장점들이 우리 자신 안에서 생겨난 것처럼 우쭐대거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하게 하신 환경보다 나은 위치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는 자체가 그런 것이다.

⑶ 자아를 사랑하는 일에 너무 집착되어 있는 이른 바 육신적인 생각에서 기인된다. 그러한 생각은 만일 하나님의 섭리가 육신의 생활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면 안달해 하고 슬퍼하며 잠시도 안정을 누리지 못한다.

⑷ 외부적인 것들에 너무 무절제하게 과욕을 부리거나 거기에 기대를 너무 많이 두는 경우에서 기인한다. 그렇게 되면 그것들을 상실한 경우에는 너무나 많은 슬픔과 괴로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기대한 바가 못 미치면 심한 불만과 낙망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④ 우리는 어떻게 함으로 우리의 재산에 대한 불만에서 치유함을 받을 수 있겠는가?

 불만 자체를 죄악으로 여기고 슬퍼하며 사유와 신유를 얻기 위해 우리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시키며 진정한 만족의 은혜에 이르기 위해 그러한 수단들을 부지런히 사용한다.


⑤ 제 십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두 번째 죄는 무엇인가?

제 십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두 번째 죄는 시기심이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6)


⑥ 시기심은 무엇인가?

시기심은 다른 사람의 선에 대하여 슬퍼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보다도 더 많은 지혜의 은사, 육신의 능력이나 아름다움, 부나 번영, 존경과 영광 그 외 어떤 선한 것을 가졌을 때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시 112:9,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였더라”(느 2:10)


⑦ 왜 우리는 서로 서로 시기하는 것을 금해야만 하는가?

우리가 서로서로 시기하는 것을 금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⑴ 이 죄는 하나님을 대단히 격노케 하며 그의 선하심에 대단한 불명예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5)

⑵ 이 죄는 시기하는 영인 마귀에 의해 격동되고 또 우리를 마귀와 같이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

⑶ 이 시기심의 죄는 우리가 시기하는 대상인 상대방에게 저지르게 되는 바 마음속의 살인자요 투쟁과 쟁투와 많은 악행과 해약의 원흉이 되기 때문이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약 3:16)

⑷ 이 시기심의 죄는 우리에게 대단한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 육신에게 그것은 낭비와 부패를 주장시키며 많은 성격이상과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 14:30)ⓑ 우리 영혼에게 그것은 우리의 영혼으로 하나님의 예배에 어울리지 못하게 하고 벗어나게 한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영혼과 육신 모두에게 이 죄는 회개하지 않고 조절하지 않으면 영혼과 육신 모두를 지옥으로 빠뜨리우는 것이다.


⑧ 우리는 어떻게 함으로 시기심의 죄로부터 구원함을 받게 되는가?

다음으로 우리가 시기심의 죄로부터 구원함을 받게된다.

⑴ 그것의 죄악됨을 정죄하고 그것을 심히 유감으로 여김으로

⑵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피에 적용시킴으로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⑶ 우리의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자비를 고양시킴으로써,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고전 13:4)

⑷ 이 죄가 조절되고 죽임당할 수 있도록 성령의 내주하심으로써. “너희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리”(롬 8:13)


⑨ 제 십계명이 금하고 있는 세 번째 죄는 무엇인가?

제 십계명이 금하고 있는 세 번째 죄는 우리 이웃의 소유에 대해 부당한 행동을 하거나 탐욕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골3:5)


본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부당한 행동과 탐심은 무엇인가?

본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부당한 행동과 탐심은 우리 이웃의 것. 즉 그의 집이든지 그의 아내든지 그의 남종이든지 그의 여종이든지 소나 나귀든지 아니면 다른 아무 것이라도 탐내는 것을 말한다.


   왜 우리는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가 우리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⑴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그것을 금하셨기 때문이다.

⑵ 이웃의 소유를 탐내는 것은 그 이웃에 대한 무자비함과 불의를 조장시키기 때문이다.

⑶ 이웃의 것을 지나치게 바라거나 탐냄으로써 우리 자신의 소유에 대해 만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⑪ 본 십계명은 이웃의 소유를 실적으로 탐내는 것만 금하는 것인가?

본 십계명은 이웃의 소유를 실제적으로 탐내는 것만 아니라, 그것에로 이르는 모든 습관적인 성향 그리고 의지의 동의에 선행하는 정신에서 기인되는 모든 부당한 행위까지도 포함한다. 탐심은 원래 원죄의 일부분이었던바 인간의 본성을 보편적으로 오염시켰고 타락시켰던 장본인이었다.



제 44 강 불완전한 인간


제82문 :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가?

답 : 인간은 타락하였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 오히려 날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이 계명들을 어긴다.


①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하게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온전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을 의향과 성향, 생각, 열정, 말, 대화에 있어서 이것들 중 어떤 것도 범하지 않고 언제나 지킨다는 것을 말한다.


② 누군가가 과거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하게 지킨 적이 있었는가?

최초의 인간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그에게는 최초 창조시 행위언약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되어 있었으며, 그 행위 언약에는 온전히 순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한 이후 어떠한 인간도 이것을 지킬 수 없었다.


③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이 계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으셨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을 능히 지킬 수 있으셨고, 또 그렇게 행하셨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한 인격 속에 신 . 인 양성을 지니셨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 아멘”(롬 9:5).


④ 앞으로 어떠한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겠는가?

성도들은 비록 이 땅위에서는 불가할지라도 이후 천국에서 온전함을 입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실지라도 그것을 온전히 순종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그러나 KJV 역에는 ”우리가“로 나와 있음)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히 12:22.23)


⑤ 이 땅위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가?

 이 땅위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성실하게 지키지만 온전하게 지키지는 못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 130:3)


⑥ 어떠한 성도도 여기 이생에서는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⑴ 모든 성도들은 완전에 이르기 위해 힘쓰고 애쓰며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⑵ 그러나 어떠한 성도들도 여기 이 땅위에서는 언제나 범사에 죄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른바 절대 완전한 상태에 이른 적이 없었다.


⑦ 어떠한 성도들도 이생에서 완전한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증거 할 수 있겠는가?

어떠한 성도들도 이생에서 완전하나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로서 증명된다.

⑴ 가장 고상한 성도들이라도 이생에서 부분적으로 밖에 변화 받지 못하며, 육체와 부패의 남아 있는 것들로 인해 성령을 거스르고 대항하는 소욕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⑵ 성경은 우리에게 죄 없는 자는 아무도 없고 그렇게 말하는 자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고 명백히 표현하기 때문이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 7:20),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왕상 8:46),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약 3:2),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2:8,10)

⑶ 성경은 역사상에 살았던 가장 거룩한 사람들의 죄악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아내에 대해 속임. “아브라함이......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창 20:2). 이와 마찬가지로 이삭이 속임. “그 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 함이었더라”(창 26:7) 야곱이 아버지를 속임. “이삭이 가로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창 27:24)요셉이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함.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창 42:15)모세가 망령된 말로 함부로 함.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시 106:33).성경에는 노아의 술 취함. 롯의 근친상간, 다윗의 살인과 간음, 욥과 예레미야의 조급함과 생일을 저주한 것, 베드로가 맹세와 저주함으로써 주님을 부인하고 나중에 유대인들 앞에서 모른 체한 것, 바울과 바나바가 분쟁을 일으킨 것 등에 대해 기록되었다. 이 같은 사람들이, 즉 성령으로 충만함 받고 많은 은혜를 소유한 자들이 죄 없는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안심하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생에서 어떠한 성자라도 절대 완전의 상태에 도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⑧ 성경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고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이와 같이 성도들이 이생에서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들은 완전한 자들이 아닌가?

⑴ 만일 이 구절의 의미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면 하나님께로서 난 모든 신자들에게는 죄 짓는 것이 발견되지 않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위에서 보여주었던 대로 많은 중생한 신자들의 죄악을 열거해 주었고 또 인간 경험이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 전혀 죄를 짓는다는 것을 증거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일 수 없다.

⑵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도 죄를 짓는다. 즉, ⓐ 그들은 그들의 의지가 완전히 동의하는 죄를 짓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부분적으로 변화되었으며 점차로 변화되어 갈 때 죄를 거스리고 대항하게 된다. 비록 그들이 이따금씩 시험의 완력과 세력에 의해 넘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을 점차로 이겨나가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 그들은 불신자의 경우와 같이 죄의 저주 아래 살고 있지 않다. ⓒ 그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는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즉,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요일 5:17,18)


⑨ 하나님은 욥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그는 완전한 사람이었다고 증거하지 않으셨던가?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a perfect man')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나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1:8).또 히스기야가 병들어 누웠을 때 여호와께서 간구하기를 그가 완전하게 행하였다고 하지 않았는가?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왕하 20:3)그리고 바울은 자신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내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빌 3:15). 그런데 어째서 성도들이 이생에서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단 말인가?

⑴ 성경에서 성도의 완전성에 대해 논했던 것은 절대적인 완전이나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입은 그러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실성에 관계하는 이른바 복음적인 완전이며 절대적 완전이 아닌 상대적인 그러나 극도의 완전을 의미한다.

⑵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욥에 대해 증거하신 완전성을 이해하여야 한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a perfect man')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즉 그는 ’완전하고 정직한 인간‘이었다. 그의 완전성은 정직과 성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욥이 절대적으로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나중에 그의 난 날을 저주하였던 죄에서 나타난다.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욥 3:3) 나중에 그는 죄 지은 자로 정죄 받는다. “그가 그 죄 위에 패역을 더하며 우리 중에서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욥 34:37)

⑶ 이와 같이 히스기야가 간구했던 완전함도 그의 성실함 이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with a perfect heart) 주 앞에 행하며..........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왕하 20:3), 그리고 성경은 그가 절대적으로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나중에 조그마한 죄를 지었다고 하였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대하32:25)

⑷ 사도 바울이 자신과 다른 그리스도인이 완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동일한 부분에서, 그는 자신이 완전치 못하였음을 시인한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그러므로 그가 15절에서 말한 바 그가 이루었던 완전은 복음적인 완전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이루지 못했던 완전은 절대적인 완전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성도도 이생에서 절대적인 완전에 이를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것에 도달하였다고 위안 삼는 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의 범위에 대해 무지함에서 나온 결과이다.


⑩ 모든 사람들과 성도들은 이생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리는가?

성도들과 성도 아닌 자들은 더욱 더 하나님의 계명을 생각과 말과 행위로 범한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3:8) ,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⑪ 모든 죄된 생각은 그것이 악한 말이나 행위로 나타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리는 것인가?

모든 죄 된 생각은 악한 말이나 행위로 나타나지 않아도 그것이 악한 성향이나 소욕, 욕망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 15:19)


⑫ 성도들은 이생에서 죄된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로 끊을 수 없는가?

⑴ 성도들은 이생에서 모든 죄된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를 전적으로 단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장 성화된 성도라도 남아 있는 부패성으로 인해 매일 연약과 약점에 굴복해 있기 때문이다.

⑵ 성도들은 이생에서 모든 큼직한 죄악된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를 끊을 수 있다. 그들은 죄의 지배하는 세력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⑬ 성도들은 큼직한 죄와 지배하는 죄의 세력들을 물리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도들은 큼직한 죄와 지배하는 죄의 세력들을 물리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행해야 한다.

⑴ 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도록 해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를 시초에서부터 끊어 버려야 한다.

⑶ 생각에 죄가 틈타지 않도록 경성해야 한다.

⑷ 죄에 기회를 주지 않고 그것에 이르는 시험은 근절시켜야 한다.


제83문 : 율법을 어기는 일은 모두 하나같이 가증스러운가?

답 : 어떤 죄는 본질적으로 악하고 또는 여러 가지 무서운 죄로 발전하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다른 죄들 보다 더 가증스럽다.


① 죄가 가증스럽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죄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진노케 하기 때문에 가증스럽다.


② 모든 죄가 하나님에게 가증스러운 것이 아닌가?

 모든 죄는 하나님께 가증스러우나 하나님께 똑같이 가증스러운 것이 아니다. 어떤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다른 죄보다 더 가증스럽기 때문이다.


③ 하나님 보시기에 다른 죄보다 더 가증스러운 죄는 어떠한 것들인가?

⑴ 어떤 죄가 그들 자체 안에서 더 가증스럽다.

⑵ 어떤 죄는 여러 가지 다른 죄를 유발시키기에 다른 죄보다 더 악하다.


④ 죄 자체에 있어서 다른 죄보다 더 악한 죄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⑴ 율법의 첫 돌판에 기록된 것을 어기는 죄는 율법의 둘째 돌판에 기록된 것을 어기는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그래서 우상숭배는 간음보다 더 가증스러우며, 불경죄는 도적질보다 더 가증스러우며, 신성모독 죄는 이웃에 대하여 악담하는 것보다 더 가증스럽다. 이에 따라 하나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가해진 극악한 죄는 인간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가해진 극악한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하나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가해진 가장 보잘것 없는 죄는 인간에 대하여 가해진 가장 보잘 것 없는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삼상 2:25)

⑵ 둘째판에 기록된 계명을 어기는 어떤 죄는 같은 돌판에 기록된 계명을 어기는 다른 죄보다 그 자체에 있어서 더 가증스럽다. 이를테면, 살인은 간음보다 더 악하며 간음은 도적질보다 더 악하며 도적질은 이웃의 집을 넘보는 것보다 더 악하다. 그리고 지금 이 부분에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죄가 행동으로 결과 되었다면 그것은 생각이나 의향 속에만 맴돌던 죄보다 그 자체에 있어서 더 악하다. 하나님이 둘째 부분의 계명을 어기는 어떤 죄보다 첫째 부분의 죄들을 미워하며 죄된 생각보다 죄된 행위를 더 미워하신다는 것은 성경에서 볼 때 명백하게 드러난다.

⑶ 복음에 역행하는 죄는 율법에 역행하는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복음에 역행하는 죄는 지금까지 인간에게 나타났던 가장 위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리는 죄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은 가장 악명 높고 사악한 이교도들이 받아야 할 형벌보다 더 클 것이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마 11:20‐24)


⑤ 보다 가증스러운 죄로서 다른 어떤 죄를 유발시키는 죄는 무엇인가?

보다 가증스러운 죄로서 다른 어떤 죄를 유발시키는 죄는 죄를 짓도록 자극을 주는 요소들이다.


⑥ 이러한 죄의 최초의 요소는 무엇인가?

이러한 죄의 최초의 요소는 사람에게 자극을 주는 것이다. 관리, 사역자, 부모, 연장자 그리고 모든 통치자의 죄는 똑같은 죄를 지어도 백성, 하급자, 어린이, 연소자 그리고 통치를 받는 모든 사람들의 죄보다 훨씬 더 가증스럽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의 나쁜 본이나 악영향은 아랫 사람의 그것들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왕상 14:16), “내 백성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왕상14:16),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미 3:5).또한 고백자들과 하나님 백성들의 죄는 똑같은 종류의 죄를 지어도 행악자와 불경건한 자들의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은 그것으로 인해서 더 모독을 당하며 행악자들은 그들의 죄에 더 완악해졌기 때문이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3,24)


⑦ 이 죄의 두 번째 요소는 무엇인가?

 이 죄의 두 번째 요소는 장소에 관계되는 죄이다. 즉 빛을 받은 곳에서 범해진 죄는 어두움의 땅에서 범해진 동일한 죄보다 더 무겁다.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사 26:10)이와 같이 큰 구원과 자비가 있은 땅에서 범해진 죄는 다른 곳에서 범해진 동일한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우리 열조가 애굽에서 주의 기사를 깨닫지 못하며 주의 많은 인자를 기억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시106:7).또한 다른 사람들이 쉽사리 유혹받고 오염될 수 있는 공공 장소에서 범해진 죄가 은밀한 곳에서 범해진 동일한 죄보다 더 악하다.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지붕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부친의 후궁들로 더불어 동침하니라”(삼하 16:22)

 

⑧ 이 죄의 세 번째 요소는 무엇인가?

이 죄의 세 번째 요소는 시기에 관계한다. 안식일날 범하는 죄는 평일날 범하는 동일한 죄보다 더 가증스럽다. 술취함과 간음은 어떤 날에도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럽다. 그러나 술취함이나 간음 혹은 이와 같은 죄들은 안식일 날 하나님 앞에서 더욱 가증스럽다. 고통이나 고난의 때 혹은 그 바로 직후에 범하는 죄는 다른 때에 저질러진 죄보다 더 악하다.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대하 28:22),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사 1:5). 이와 같이 여호와께 회개한 후나 언약을 세운 후 범한 죄는 회개와 그러한 언약 전에 범한 동일한 죄보다 더 악하다. 또한 충고와 책망을 들은 후 범한 죄는 충고와 책망을 받기 전에 범한 죄보다 더 악하다.


⑨ 이 죄의 네 번째 요소는 무엇인가?

 이 죄의 네 번째 요소는 태도의 문제이다. 알면서 짓는 죄는 모르면서 짓는 죄보다 더 악하다. 고의적으로 짓는 죄는 어쩔 수 없어 짓는 죄보다 더 악하며, 순간적으로 심사숙고하여 짓는 죄는 돌발적인 감정이나 시험에 급작스런 이끌림을 받아 짓는 죄보다 더 악하다. 즐거움과 욕심에 이끌려 짓는 죄는 유감과 소심함으로 짓는 죄보다 더 악하며, 반복적으로 장기간 계속해서 죄를 짓는 것은 단 한번 혹은 드물게 죄를 짓는 것보다 더 악하다.



제84문 : 모든 죄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은 무엇인가?

답 : 모든 죄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은 이생에서와 오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는 일이다.


① 모든 죄가 보응을 받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죄가 보응을 받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는, 하나님께서 죄지은 자에게 그의 죄 값으로 지불하는 모든 형벌을 의미한다.


② 하나님께서 죄지은 그의 죄값으로 지불하시는 형벌들은 어떠한 것인가.

하나님께서 죄지은 자에게 그의 죄값으로 지불하시는 형벌들은 금생에서 현세적인 심판과 영적인 심판을, 내세에서 지옥의 형벌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이미 19문에서 보아왔던 바이다.


③ 모든 죄가 금생에서와 내세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되는가?

모든 죄가 금생에서와 내세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는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무한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며 그의 공의는 무한한 만족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죄인이 어떤 현세적인 형벌에서는 회피하게 될지언정, 영원한 지옥의 형벌은 피할 수 없다. 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족을 얻지 못한다면 그곳에서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제45 강 진노와 저주를 피하는 방편



제85문 : 우리로 죄 때문에 마땅히 당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답 : 우리로 죄 때문에 마땅히 당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혜택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데 사용하시는 모든 외적 수단을 우리가 힘써 사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하는 일이다.


① 하나님은 죄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기 위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는가?

하나님은 죄로 인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기 위해 우리에게 다음 세 가지를 요구하신다.

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 들일 것.

⑵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할 것.

⑶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혜택을 우리에게 전달하시는 데 사용하시는 모든 외적 수단을 힘써 사용할 것.


②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그의 진노와 저주를 피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라고 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그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를 우리에게 요구시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되며 그의 전가된 의를 소유하게 되며 그의 사죄와 구원의 약속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9),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43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2:8)


③ 왜 하나님은 우리로 그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도록 하기 위해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하라고 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그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도록 하기 위해 생명에 이르는 회개하기를 요구하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서이다. 즉 죄 용서함의 약속은 회개로 말미암아 얻어지기 때문이며,,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자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존영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행 3:19),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 20:21)


④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그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모든 외적 수단들을 부지런히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그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기 위해 모든 외적 수단들을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비록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구원하실 수가 있으시지만 구속과 구원의 혜택들이 어떤 다른 방법으로 전달되지는 것을 우리가 기대할 수 없도록 하셨으며 수단들을 제정하신 것이 그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행 8:22)



제86문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구원의 은혜이다. 그것에 의하여 우리는 복음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대로 그분만을 받아들이고 의지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다.


① 어떻게 믿음이 구원의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는가?

믿음은 행위를 의미하는 바 믿는다는 행위 자체로써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행위로써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모든 행위와는 상반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완전하신 의를 붙잡게 하고 적용시키는 도구로서 그것으로써만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바 구원시키는 은혜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②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이 믿음의 조성자는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이 믿음의 조성자는 하나님이신 바 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 속에 믿음의 은혜를 일으키신다.“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너희가....죽은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③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 속에 이 믿음의 은혜를 어떻게 불어넣으시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 속에 이 믿음을 넣으시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전파된 말씀을 듣게 함으로써 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고전 15:11)


④ 이 믿음의 은혜의 대상은 무엇인가?

 이 믿음의 은혜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의이며 그로 말미암아 은혜 언약 안에서 세워진 약속이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서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실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 3:22)


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주체는 무엇인가?

⑴ 이 명명의 주체 혹은 믿음의 은혜만을 주장하는 자들은 선택받은 자들 뿐이다.“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 소망을 인함이라”.(딛 1:1),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 13:48)

⑵ 믿음이 본래적으로 속해 있는 속성의 주체 혹은 영혼의 지체는 생각과 인식 뿐 아니라 의지와 마음이기도하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KJV역에는 이 말이 ‘were persuaded of them and embraced them 이라고 되어 있으나 한글 개역에는 ‘환영하며’ 라는 한 단어로만 표현되어 있어 본 해설에 다소간 문제를 야기시킨다. (히 11:13), 이 약속의 진리를 납득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이며 약속되어진 것을 받아드리는 것은 의지의 행위이다. ”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롬 10:10)


⑥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행위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행위는 다음과 같다.

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⑵ 구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만을 의뢰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음과 그의 이름을 믿음에 대해 증거하는 모든 성경 구절 속에 포함되어 있다.


⑦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 속에서 우리에게 제공되었던 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⑧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 속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제공되어지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 속에서 우리에게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 제공되어진다.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그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⑨ 영혼이 구원을 얻기 위해 그를 의지하는 때는 언제인가?

 영혼이 구원을 얻기 위해 그를 의지하는 때는, 영혼이 죄로 말미암아 상실되어졌다는 것과 자신의 무력함과 이러한 상태에서 회복하기 위하여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불충분하다는 것을 납득하는 일이며, 그리스도의 능력과 구원 얻고자하는 열의를 발견하고 확신하는 일이며 피조물에의 기대를 다 포기하고 그 자체의 의를 거부하고 구원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만 신뢰를 두는 때이다.



제87문 : 생명에 이르는 회개란 무엇인가?

답 :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구원을 얻게 하는 은혜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죄에 대한 참된 의식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를 이해하는 가운데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며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여 새로운 복종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또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① 왜 회개가 생명에 이르는 회개라 불리우는가?

 그것은 구원을 주는 은혜이며 생명과 구원을 획득함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기 때문에 생명에 이르는 회개라 불리운다. 또한 그것은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세상의 슬픔에서 구별을 시켜주기 때문이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행11:18),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겔 18:2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② 어떤 사람이 본성의 능력으로 자신의 지은 죄를 회개할 수 있는가?

 아무도 본성의 능력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할 수 없다. 이유는 모든 인간의 심령은 본성적으로는 돌과 같이 무디어 죄를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굽히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심령 속에 이 은혜를 역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이 있어야 한다.“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③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주로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⑴ 죄에서 돌이키고 죄를 떨쳐 버리는 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겔18:30),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⑵ 하나님께로 향하는 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


④ 회개시 죄에서 돌이키기 위하여는 어떠한 선결조건이 있어야 하는가?

 회개시 죄에서 돌이키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선결조건이 있어야 한다.

⑴ 죄에 대한 진면목을 본다.

⑵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는다.

⑶ 죄를 슬퍼한다.

⑷ 죄를 증오한다.


⑤ 회개의 선결조건인 죄에 대한 참된 의식은 어떠한 것인가?

 회개의 선결조건인 죄에 대한 참된 의식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 인하여 비참하고 낮은 신분임을 내적으로 깨닫는 것이며 죄에 대한 대가로 지옥의 영원한 형벌이 주어질 것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의 양심은 갈기갈기 찢겨지고 상처 입어 이러한 상태에서는 잠시도 안정과 휴식을 취할 수 없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⑥ 진정한 회개를 위하여 죄를 그와 같이 깨달아야 할 필요성은 어디에 있는가?

 진정한 회개를 위하여 죄를 그와 같이 깨달아야 할 필요성은, 죄를 깨닫지 않고서는 죄인들이 죄를 도무지 떨쳐 버릴 수도 없으며 사죄와 치유하심을 얻기 위해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의탁할 수도 없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2,13)


⑦ 회개를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참된 회개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며 너무도 친절하시다는 것과 그는 회개하는 죄인들을 용서하기를 즐겨하시며 그들에게 기꺼이 마음을 누그러뜨리신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출 34:6,7),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롬 2:4)


⑧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사죄하시는 은총을 받을 수 있는가?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사죄하시는 은총을 깨달을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무한히 의로우시고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 밖에 있는 죄인들에 대하여는 소멸하는 불이시며, 죄에 대해 그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그의 아들을 통해서만이 죄인들과 화해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⑨ 우리가 회개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아야만 하는가?

 우리는 회개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가 죄를 자복하고 통회함에 있어서 그의 아들과 우리를 화목시키는 그의 자비를 깨닫지 못한다면, 괴로움 가운데 빠질 것이며 더욱 심하게는 이전보다 죄를 심하게 범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는 그 괴로움에 견디다 못해 고통과 절망의 심연에 빠지게 되며 가룟 유다의 경우처럼 자포자기하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개달음으로 우리는 죄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그에게로 돌아갈 용기를 얻게 되며 죄에 대하여는 온화하고 경건한 슬픔으로 우리의 가슴을 적시게 될 것이다.


⑩ 죄에 대한 진정한 슬픔은 어떠한 것인가?

 죄에 대한 진정한 슬픔, 그것이 마치 우리를 완전한 파멸에 몰아 넣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에 불명예를 끼친 것처럼,, 그것이 마치 우리의 양심에 타격을 가한 것일 뿐 아니라 우리의 구세주에게 타격을 가한 것처럼, 그것이 마치 회개하지 않은 우리 영혼에 저주를 몰고 오는 것일 뿐 아니라 영혼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비열하게 하는 것처럼 애통하고 한탄하는 것이다.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시 38:18),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시51:3,4),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3:10),”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5,6)


⑪우리는 죄를 인하여 울지는 않지만 참으로 슬퍼할 수는 있는가?

⑴ 우리가 다른 것들로 인하여 슬퍼하면서도 죄를 인하여서 울지 않는다면 우리슬픔의 진정성은 참으로 문제시될 만하다.

⑵ 우리는 원래가 메마른 성품의 소유자이거나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잘 울지 않는 기질을 타고났다면 눈물을 흘림이 없이도 죄에 대해 참으로 막심하게 슬퍼할 수가 있을 것이다. 어떤 자에게는 눈에 눈물이 너무 흔해빠져 눈물을 흘리지만 마음에 슬퍼함이 없는 경우가 있으며 또한 어떤 자에게는 눈물이 거의 없어 울지는 않지만 슬퍼함이 극심한 경우가 있다.


⑫ 왜 회개할 때 죄를 인하여 반드시 슬퍼하게 되는 것인가?

 죄를 인하여 슬퍼함은 회개의 필수조건이다. 그것은 마음으로 자원하여 죄를 멀리하도록 역사하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시며 죄를 인해 애통하는 자에게 자비를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4:9),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며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같이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 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처년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렘 31:18‐21)


⑬ 진정한 회개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바 죄를 증오함은 어떠한 것인가?

 진정한 회개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바 죄를 증오함은, 죄를 이 세상에서 가장 가증스러운 것으로 마음속 깊이 미워하고 경원시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마치 하나님께서 죄를 가장 혐오하고 미워하시는 바와 같이 우리 자신이 그것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겔 36:31)

 

⑭ 죄를 미워함이 진정하나 회개의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죄를 미워함은 진정한 회개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마음의 어떠한 감정도 증오 이상으로 죄에 대해 거스리는 작용을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죄에 대해 슬픔의 농도가 짙을수록 죄를 증오함은 우리로 그 죄에 대항하여 싸울 무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⑮ 진정한 회개의 한 요소인 죄에 돌이킴은 어떠한 것인가?

진정한 회개의 한 요소인 죄에 돌이킴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말한다.

⑴ 우리의 행위와 대화 가운데서 생기는 그 외 모든 죄악에서 돌이킴을 말한다.

⑵ 우리의 마음과 감정 가운데서 생기는 그 외 모든 죄악에서 돌이킴을 말한다.


⑯ 죄에서 참으로 회개한 자는 회개할 때 지었던 것과 동일한 죄를 다시금 짓지 않는가?

⑴ 죄를 참으로 회개한 자는 그들이 전에 지었던 것과 동일한 과정의 죄된 길로 가지 않는다. 어떤 자가 회개 휴 동일한 죄의 길로 빠져든다면 그것은 그 회개가 진정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나타내는 표시가 된다.

⑵ 어떤 자가 참으로 회개를 했는데도 시험에 의해 붙잡혀 넘어지는 예가 있을 수 있으나 그들은 그때마다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 지은 죄를 한탄하고 주께로 돌이키게 되는 것이다.


⑰ 주께로 돌이키는 것 (진정한 회개의 또 다른 요소)은 어떠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가?

주께로 돌이키는 것은 다음 세 가지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⑴ 죄의 용서와 그의 자비를 얻기 위해 그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일.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시 51:11)

⑵ 우리 하나님과 지고한 선을 얻기 위해 그를 선택하는 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시니이다.”(렘 3:22),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슥 13:9)

⑶ 우리 자신을 온전히 그에게 넘겨주므로 순종하는 일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로 내 발을 돌이켰사오며”.(시 119:59)


⑱ 우리가 주께로 돌이키기 위해 순종해야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주께로 돌이키기 위해 순종해야 하는 것은 복음에 대한 새로운 순종을 의미한다.


⑲ 왜 복음에 순종한다는 것이 새로운 순종이라 불리우는가?

복음에 순종이 새로운 순종이라 불리우는 것은, 그것이 새 언약 안에서 요구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인간 영혼 속에 불어넣어진, 새로운 영, 새로운 성향, 새로운 은혜의 원리와 신령한 생명에서 나타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6)


⑳ 언제 우리가 이 새로운 순종이 도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게 되는가?

우리가 이 새로운 순종이 도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게 되는 때는 다음과 같다.

⑴ 우리가 그것에로 완전한 결단과 의지를 가질 때.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 119:106),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행 11:23)

⑵ 우리가 그것에로 향하여 부지런함과 열심을 품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거스리지 않고 새로운 순종의 길로 꿋꿋이 걸어나갈 때.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눅 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6)


21. 참으로 회개한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순종의 도에 완전히 따르게 되는 것인가?

 참으로 회개한 사람일지라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여기 이 생에서 어떠한 결함이나 흠도 없이 이 새로운 순종의 도를 완전히 따를 자 없다. 하지만 그러한 자들은 그것을 행하기 위하여 힘써 노력한다. 그들이 거기에 못미칠 때 그들의 슬픔과 고통이 있어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시38:17)



제88문 :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은혜를 우리에게 전달하실 때 쓰시는 외적인 수단들은 무엇인가?

답 :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은혜를 우리에게 전달하실 때 쓰시는 외적인 그리고 통상적인 수단은 그의 규례. 특히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며, 이러한 것들은 모두 택함을 받은 자들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없어서는 아니될 중요한 요소이다.


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혜를 주시는 바 모든 외적이고 일상적인 수단들은 무엇에 포함되어 있는가?

주님의 규례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혜를 주시는 바 모든 외적이고 일상적인 수단들을 포함하고 있다.


② 주님의 규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님의 규례들은 주께서 세우시고 그의 말씀이외 다른 곳에서 명령하신 바 없는 은혜와 구원의 수단들을 의미한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게 받은 것이니”(고전 11:1,2,23)


③ 우리는 구원 얻기 위해 인간이 세운 어떤 규례를 사용할 수 없는가?

 우리는 구원얻기 위해 인간에 의해 세워진 어떤 규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헛되고 무례한 것인 바 자의적 수배(will worship)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주님의 축복하심을 안전히 기대할 수 없고 어떤 규례의 혜택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 규례들로써만이 가능한 것이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 지혜있는 모양이나 …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골 2:20,22,23),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어 경배하는 도다”.(마 15:9)


④ 왜 규례들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혜들을 전달해주시는 일상적인 방법이라 불리우는가?

이 규례들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혜를 전달해 주시는 일상적인 방법이 되는 것이 주께서는 그 규례들에 자신을 전적으로 제한시키거나 묶어놓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비상한 방법으로도 자연의 상태를 은혜의 상태로 일으킬 수 있으셨다. 그것은 바울의 경우 하늘에서 빛이 비취고 소리가 들려옴으로 개종하였던 경우와 같다. 그러나 이 규례들은 개종과 구원에 이르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요 수단들이다. 우리는 이것을 사용치 않으면 구속이 은혜를 받아들일 어떤 훌륭한 그거를 기대할 수 없다.


⑤ 주께서 세우신 주요한 규례들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주께서 세우신 주요한 규례들은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⑥ 이 규례들은 구원을 위해 유효한 것들인데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규례들은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구원 얻기에 유효한 것들이다.“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제 46 강 말씀과 구원



제89문 : 어떻게 말씀이 구원을 얻음에 있어서 유효한 것이 되는가?

 답 :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의 낭독, 특히 말씀의 전파를 효과적인 방편으로 삼으셔서 죄인들로 죄를 깨닫고 회개케 하시며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다.


①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케 하는 바 말씀에 관계된 주님의 규례나 제도는 무엇인가?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케 하는 바, 말씀에 관계된 주님의 규례나 제도는 다음과 같다.

⑴ 우리가 말씀을 읽는 것이다.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 17:1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즐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⑵ 우리는 말씀이 전파되는 것을 듣는 것이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 55:3),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0)


② 왜 말씀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유효케 하는 것인가?

말씀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유효케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⑴ 말씀은 죄인과 불경건한 자들에게 다음의 수단들이 되기 때문이다. ⓐ 그것은 그들에게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그들로 죄를 통회하게 한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고전 14:24,25)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 날선 어떤 검보다 더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그것은 그들로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과 연합시킨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시 19:7),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2:41)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행 4:4)


⑵ 말씀은 회개하는 자들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효과 있게 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경건과 위로 가운데 굳게 서게 한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1‐13)


③ 말씀이 어떻게 성도들을 거룩하게 세우는가?

 말씀이 성도들을 거룩하게 세우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⑴ 말씀은 그들로 하나님의 형상을 점차 본받도록 역사하며 그들 안에 모든 은혜가 풍성해지도록 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⑵ 말씀은 견책하며 시정하며 의로 교육시키며 그들로 점점 완전케 하며 선한 일을 하는데 합당케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⑶ 말씀은 영혼 속에 있는 요새를 허물어뜨리고 모든 생각과 감정을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도록 인도하는 수단이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4,5)

⑷ 말씀은 성도들로 마귀의 시험에 대적할 수 있도록 견코케 하며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부패를 물리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3,17),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마 4:10),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9)

⑸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와 길에 성도들을 굳게 세우며 오류와 미혹에 대항하여 그들을 싸우게 하는 수단이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나신 바 되었으며...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롬 16:25,26),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4)


④. 말씀이 어떻게 성도들로 위로함에 굳건히 서게 하는가?

말씀이 성도들로 위로함에 굳게 서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⑴ 그것이 사죄와 영생의 약속과 같이 위로를 함에 있어서도 가장 주요한 근거를 제공하고 계시해 주기 때문이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사 40:1,2)

⑵ 그것은 영혼에게 가장 감미롭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성령의 기쁨을 제공해 주는 수단이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 1:6)


⑤ 말씀은 그 자체의 효능이나 능력에 의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인가?

 말씀은 그 자체의 효능이나 능력에 의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사역에 의해서 이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


⑥ 말씀이 어떻게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하게 역사하는가?

 말씀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하게 역사한다.“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제90문 : 말씀이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한 것이 되게 하려면 우리는 말씀을 어떻게 읽고 드러야 하는가?

답 : 말씀이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한 것이 되게 하려면, 우리는 부지런함과 준비와 기도로써 말씀에 따르고 믿음과 사랑으로써 그것을 받아 들이고 마음에 간직하고 생활에서 실행해야 한다.


① 말씀이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한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 말씀을 듣기 전에 무엇을 가주어야 하는가?

말씀이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한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 말씀을 듣기 전에 갖추어야 할 요소는 ⑴ 준비와 ⑵ 기도 이 두 가지다.


② 말씀을 듣기 전에 갖추어야 할 준비는 어떤 것인가?

말씀을 듣기 전에 갖추어야 할 준비는 다음과 같다.

⑴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하심을 생각하며 그 존전에 우리가 서 있고 그의 말씀을 우리가 듣는 것임을 명심한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

⑵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말씀의 구원시키는 역사를 방해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발견하고 제거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보살핀다.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다니며”(시 26:6),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약 1: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③ 말씀을 듣기 전에 갖추어야 할 기도는 어떤 것인가?

말씀을 듣기 전에 갖추어야 할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전파하는 사역자들을 도우시도록 하기 위해, 그의 말씀에 축복 주시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그것을 유효케 하기 위해 은밀한 기도와 가정에서 드리는 기도가 있다.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살후 3:1)


④ 구원에 효과적으로 역사하기 위해 말씀을 읽고 듣는 일에는 무엇이 요구되는가?

구원에 효과적으로 역사하기 위해 말씀을 읽고 듣는 일에는 세 가지가 요구된다.

⑴ 주의력 ⑵ 믿음 ⑶ 사랑


⑤ 말씀을 읽고 들음에 있어서 요구되는 바 그 주의력은 무엇인가?

말씀을 읽고 들음에 있어서 요구되는 바 그 주의력은 우리가 읽고 들은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 2:1,2,5)


⑥ 말씀을 읽고 들음에 있어서 요구되는 믿음은 무엇인가?

말씀을 읽고 들음에 있어서 요구되는 믿음은 다음의 사실들을 의미한다.

⑴ 일반적으로 모든 성경의 신적인 권위성, 즉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신앙적으로 수납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이 여러 시대에 걸쳐 여러 명의 거룩한 사람들에 의해 저술되어 완성을 이루었으며 그 저작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이 아니고서는 저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⑵ 말씀을 읽고 들음에 있어서 요구되는 믿음은 특별히 다음의 사실들을 의미한다.

ⓐ 모든 성경 역사의 진정성과 탁월성을 신앙적으로 동의하는 것,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생애,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의 역사성에 대해서 더욱 그러하다. ⓑ 모든 성경 예언의 진정성과 탁월성을 신앙적으로 동의하는 것. 심지어는 그것이 아직 성취되지 않아도 가장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 특히 만물의 종말에 관한 것과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심판주로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은 더욱 그러하다. ⓒ 모든 성경 교의의 진정성과 탁월성에 대해 신앙적으로 동의하는 것. 특히 삼위일체와 성육신의 교의와 인간 구속의 방법은 더욱 그러하다. ⓓ 모든 성경적인 경고 ‐ 그것이 율법서에서 나왔든지 복음서에서 나왔든지를 막론하고 ‐ 의 진정성과 의로움에 대해 신앙적으로 동의하는 것. ⓔ 모든 성경적인 교훈의 거룩과 의로움과 선함에 대해 신앙적으로 인정하는 일. 그리고 우리 생활을 관장하고 범사를 주관하는 성경규칙의 완전함에 대해서도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이다. ⓕ 모든 성경의 약속을 성실하게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모든 신자들에게 관계되는 보편적인 것인 한 가장 확고하고 참되고 귀중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 약속 안에 이 땅에와 저 세상에 우리의 선과 행복에 관계되는 것은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⑦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음에 있어서 요구되는 바 그 사랑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음에 있어서 요구되는 바 그 사랑은 말씀에 대한 사랑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의 법도 사랑함을 보옵소서.........내 심령이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시 119:159,167)


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야 한다.

⑴ 이 세상에서 가장 긴요하고 가장 귀중한 것으로 모든 것 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는 것이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욥 23:1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나이다.”(시 119:72)

⑵ 말씀을 가장 진지하게 사모하는 것이다.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⑶ 말씀 안에서 우리 자신이 즐거움을 누린다. ‘주의 근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counsellors)니다 …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시 119:24,111,162)


⑨ 말씀이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한 것이 되기 위해 그것을 읽고 들은 후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말씀이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한 것이 되기 위해 그것을 읽고 들은 후 요구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⑴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기억을 이 신령한 보고의 창고로 만듦으로써 말씀을 그 마음의 창고에 간직한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⑵ 우리는 말씀을 우리의 삶 가운데 적용시키며 우리가 말씀에서 읽고 들은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의 의무로 삼아 즐거이 순종하고 실행한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2,25)



제 47 강 성례와 구원



제91문 : 성례가 어떻게 구원의 유효한 수단이 되는가?

답 : 성례가 구원의 유효한 수단이 되는 것은 성례 자체가 가지는 어떤 효능이나 그것을 집례하는 사람안에 있는 어떤 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축복하심에 의해 그리고 성례를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의한 것이다.


① 부정적인 의미에서 성례가 구원에 유효한 수단이 못되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인가?

 부정적인 의미에서 성례는 구원의 유효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⑴ 그것은 성례 자체의 어떤 효능에 의해서 그것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자에게 은혜와 구원이 주어진다는 의미에서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은혜 없이 혹은 복음의 구원에 참여함이 없이 성례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잘못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행 8:13,20,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 11:27)

⑵ 성례는 그것을 집례하는 자 안에 있는 어떠한 효능이나 의도에 의해 구원이 주입된다고 하는 의미에서 잘못된 것이다. 가장 거룩한 사역자라 할지라도 그들이 성례나 다른 어떤 법도를 집례함으로 말미암아 그들 자신 안에 있던 은혜가 주입된다거나 구원에 이를 만한 능력이 역사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7)


② 긍정적인 의미에서 성례가 구원에 유효한 수단이 되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인가?

 긍정적인 의미에서 성례는 구원에 유효한 수단이 된다.

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례와 다른 법도들에 대하여 그는 거기 임재하시고 그것들에 축복하셨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⑵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례와 법도들에 생명과 덕과 효능을 불어넣으며 그곳에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시고 임재하셨다는 결과와 증거로써) 성령께서 역사하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모든 성례는 완전히 죽은 것이며 전적으로 무효한 것이 된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한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③ 성령의 어떤 자에게 성례를 통해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하게 역사하시는가?

성령은 성례를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자에게 구원에 이르도록 유효하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자에게 역사한다..



제92문 : 성례는 무엇인가?

답 :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한 예식이다. 이 예식에 있어 사람이 지각할 수 있는 표적들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은혜들이 신자들에게 나타나고 인쳐지고 적용되는 것이다.


① 성례라는 말의 고유한 의미는 무엇인가?

 성례라는 말의 고유한 의미는 옛부터 사용되었던 바 군대의 맹세에 사용되었다. 장군은 이것을 두고서 부하를 신실하게 사랑할 의무를 지녔으며 부하는 이것으로써 장군에게 충성을 다해 싸워야 할 의무를 지녔다.


② 우리가 성경 어떤 부분에서도 성례라는 말을 찾아 볼 수 없는 데 왜 그리스도의 규례 중 어떤 것을 성례라 칭하는가?

성례라는 말은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으며 더군다나 삼위일체라는 말도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성경 상에 보면 성례, 삼위일체,, 기타 다른 용어로 의미되어진 명칭들이 나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말을 합당하게 사용할 수 있다.


③ 성례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례라는 의미는 은혜언약에 인을 치는 의식이다. 이것으로써 주님은 우리에게 이 언약의 약속을 성실히 성취시킬 의무가 있으시며, 우리가 이 인을 받음으로써 주님의 것이 되었고 그에게 참으로 신실하게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할 의무가 있다.


④ 우리가 사용해야 할 성례는 인간의 제도와 방식에서 생겨난 규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제도와 방식에서 생겨난 거룩한 규례이다. 교회의 유일한 주관자이신 그리스도께서만 거룩한 규례와 성례를 제정하실 권위를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⑤ 성례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는가?

성례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⑴ 외적이고 감각적인 표지

⑵ 그 표지로 말미암아 의도된 표지


⑥ 성례시 감각적인 표지와 의도된 표지는 어떻게 다른가?

 성례시 감각적인 표지와 의도된 표지는 다음의 사실로 볼 때 다르다. 즉 감각적인 표지는 외적인 표지에 의해 나타나는 바 인식과 믿음의 객체라는 것이다.


⑦ 성례시 감각적 표지는 어떠한 종류의 것인가?

⑴ 성례시 감각적 표지는 본래적인 표지가 아니라 마치 새벽녘 동틈이 그 날의 다가옴을 알리는 표지인 것처럼 연기가 불이 피어남의 표지인 것처럼 그러나 독단적인 표지이며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진 제도이다.

⑵ 이것은 단순히 의미하는 혹은 나타내는 표지가 아니라 그것으로서 보여주고 전달하고 적용시키는 것이다. 마치 증서나 마지막 유언이나 증언에 인을 침으로 그것이 증서나 마지막 유언이나 증언을 한 사람의 뜻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 안에 약속되거나 서명되어진 권리를 보여주고 전달하고 확증하고 적용시키는 결과로까지 나아간다. 사역자가 성례시 그 표지나 외적인 요소들을 줄 때 주께서 그것을 값있게 받아들이는 자에게 의도된 표지를 확증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⑧ 성례시 외적이고 감각적인 표지로써 의도되어진 표지는 무엇인가?

 성례시 외적이고 감각적인 표지로써 의도되어진 표지는 그리스도와 새로운 언약의 혜택들이다.


⑨ 그리스도와 새로운 언약의 혜택들에 관련된 성례시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⑴ 그리스도와 새로운 언약의 혜택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⑵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혜택들을 보증하고 적용시키는 것이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 4:11)


⑩ 성례는 누구에게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혜택들을 나타내고 인치고 적용시키는가?

 성례가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혜택들을 나타내고 인치고 적용시키는 대상은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이다. 믿음은 영혼의 눈을 가지고있기에 나타내어진 것을 식별하며 영혼의 손을 가지고 있기에 인치고 보여진 것을 받아들인다.



제93문 : 신약 성경이 말하는 성례는 어떤 것들인가?

답 : 신약 성경이 말하는 성례는 세례와 성찬이다.


① 교회에서 신약의 성례들 이외 어떤 다른 성례가 사용된 적이 있었는가?

일반적으로 구약 성경에서는 유대인들 중에 다른 성례들을 사용했으며 신약 성경의 성례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② 구약 시대 유대인들 중에 사용된 일반적인 성례는 무엇이었는가?

구약 시대 유대인들 중에 사용된 일반적인 성례는 할례(circumcision)와 유월절 식사였다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지 혹은 무효화되었으며 복음시대 교회에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③ 그러면 복음 시대 교회 안에서 사용된 성례들은 무엇인가?

 복음시대 교회 안에서 사용된 신약의 성례들은 세례(baptism)와 성찬(the Lord's supper)이다. 세례는 단 한 번만 받는 것으로 입교시 최초로 행하는 할례를 대신한 것이며, 성찬은 자주 받는 것으로 영양공급을 받기 위해 행하는 유월절 식사를 대체한 것이다.


④ 신약 성경의 성례들 종류에 대한 교황주의자들의 교의는 무엇인가?

 성례시 수자에 관한 교황주의자들의 견해는 신약 성경에 칠성례(seven sacraments)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세례와 성찬에다가 견진(confirmation), 임직(ordination), 결혼(marriage), 종부(extreme unction)를 덧붙인다. 그런데 이들 중 어떤 것들이 즉 결혼과 임직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미신적인 방법으로 행하는 이것들 중 어떤 것도 신적인 제도로서의 인을 받은 것이 아니며 성례로서 사용되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성례가 아니라 교황주의 자들의 자작품으로 그들에 의해 덧붙여진 것이다. 이것들은(성상숭배 (image‐worship)를 반대하는 십계명의 제 이 계명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율법과 법도에서 벗어난 혹은 덧붙인 그러한 자들은 교황주의자들 회의의 어떠한 저주(anathemas)나 정죄보다 더욱 가혹한 저주 아래 놓여있다. “내가 이 책의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제 48 강 세례의 의미


제94문 : 세례란 무엇인가?

답 : 세례란 성례의 하나로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을 가지고 씻는 예식이다. 그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받음과 은혜언약의 혜택들에 참여함에 우리가 주님의 것이 된다는 약속을 표시하고 확증하는 것이다.


① 세례의 외적인 표지 혹은 요소는 무엇인가?

세례의 외적인 표지 혹은 요소는 물, 즉 순수한 물이다. 그런데 거기에다 기름이나 소금이나 침을 섞는다는 것은 (교황주위자들이 세례식 때 행하는 것임)의식에 대한 가증스러운 모독이다.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행 10:47)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히 10:22)


② 물세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물세례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


③ 세례의 외적 행위는 어떠한 것인가?

세례의 외적 행위는 세례(baptism)라는 말뜻이 의미하는 바 몸을 물로 씻는 것이다. 그것은 물을 얼굴에 부음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뿌려짐을 의미하며 혹은 물을 얼굴에 뿌림으로 그 피가 뿌려짐을 의미한다(또한 그것은 우리의 양심에 뿌려짐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히10:22)


④ 세례를 받을 때 몸을 물에 담그거나 뛰어들게 하는 것이 필수조건이 아닌가?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들이 세례를 받을 때 물로 내려갔다고 여러 번 말하지 않는가?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무덤 안에 들어가셨던 것처럼 물에 들어가 완전히 잠김으로 세례를 받아야 옳지 않는가?

반드시 몸을 물에 완전히 잠기게 함으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세례를 받을 때 물로 내려갔다는 성경구절을 읽는데 이것들은 그들이 머리와 귀를 온통 물에 완전히 잠겼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물을 얼굴에 붓거나 뿌림으로 세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성경에서 말하는 장소에 대해 여행자들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곳들은 발목 깊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그곳에서 사람들이 뛰어들어 물어 잠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아르논 강에는 물이 많았다고들 하는데 그 말 원어의 의미는 깊은 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얕은 물로 말라버린 많은 개울들을 의미한다. 그곳은 물론 몸이 잠길 만한 장소로 합당치 못하였다.

⑵ 어떤 사람은 세례를 받을 때 물로 내려갔지만 성경은 그들이 모두 그렇게 했다고 하지 않는가. 간수와 그의 모든 가족이 밤중에 세례를 받을 때 가장 가능성이 있는 물을 아마 집(바울이 갇혀있는)으로 가져왔을 것이다. 그는 사도들(그 당시는 죄수들)에게 밖으로 나가기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는 그와 죄수들과 함께 그의 모든 가족을 데리고 나가 다른 모든 죄수들은 남겨두고 어떤 강을 찾아 세례받고 물에 잠겼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⑶ 세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하는 것은 성령의 세례로 말미암아 영혼 안에 있는 죄가 장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몸이 실제로 장사된다거나 몸 위로 물이 잠기도록 붓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몸에는 물을 부음이나 뿌림, 즉, 침수나 씻음이 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과 같다. 베드로는 주님에 의해 온 몸을 씻음받기 원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발을 씻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특히 유아의 경우 추운 날씨에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는 강물에 잠길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것을 성경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증명할 수 없다.


⑤ 물로 몸을 씻음은 무엇을 나타내며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례 받음에 있어 물로 몸을 씻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영혼을 죄로부터 씻어내는 것을 나타내고 의미한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계 1:5)


⑥ 사람은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사람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⑦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뿐만 아니라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권위와 믿음, 공언, 그리고 순종함으로 세례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⑧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편에 확증되고 인쳐지고 보증됨은 무엇을 말하는가?

⑴ 그렇게 함으로 그는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접붙이신다.

⑵ 그렇게 함으로 그는 우리를 새 언약의 혜택들에 참여자가 되게 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 6:3)


⑨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접붙임을 받음으로써 우리의 본성의 묵은 가지를 잘라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우리의 뿌리가 되는 그에게서 효능을 빨아들이며 그때 우리는 그 안에서 성장하며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 15:5)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되었은즉”.(롬 11:17)


⑩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가 참여하게 될 은혜 언약의 혜택들은 무엇인가?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가 누리게 될 은혜 언약의 혜택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⑴ 가시적인 교회(visible church)회원이 된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마 28:19)

⑵ 그리스도의 피로써 죄사함을 받는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⑶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중생과 성화를 맛본다.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⑷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됨으로 양자가 된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갈 3:26,27)

⑸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한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고전15:29),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4,5)


⑪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의 편에 보증되고 인쳐진 것은 무엇인가?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의 편에 보증되고 인쳐진 것은 우리가 주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⑴ 영혼과 육체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우리의 모든 능력과 기능과 지체들은 의와 새로운 순종의 도구로서 그로 말미암아 사용되어진다.

⑵ 우리는 온전히 주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의 마귀와 육체와 세상 섬기던 것을 거부하고 주님의 깃발 아래 주님과 우리 영혼의 원수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에 종사한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의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4,11‐13)



제 95문 : 세례는 누구에게 베풀어지는가?

답 : 세례는 가시적인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자신의 믿음과 복종을 공언한 후에야 세례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가시적 교회 교인들의 유아들은 그러한 공언이 없어도 세례받을 수 있다.


① 세례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것인가?

세례는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가시적 교회 밖에 있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것도 아니다. 언약 밖에 있는 자들은 언약의 인을 받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2)


② 이교도들과 불신자들은 세례를 받을 수 없는가?

이교도들과 불신자들은 그들이 불신의 상태로 남아있는 동안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질 때에 회개하고 믿으며 그리하여 그 믿음을 공적으로 표명하고 순종하기로 결단하면 그들도 교회 안에 속한 자들이므로 이 세례의 의식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그것이 그들에게 부인될 하등 이유가 없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5,16),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


③ 유아들은 세례를 받을 수 없는가?

 (1) 이교도와 불신자의 유아들은 그러한 가운데 있는 한 세례를 받지 못한다. 그들의 부모들과 자녀들은 모두 이 언약 밖에 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인들이나 믿는 부모들의 유아들은 가시적 교회 회원들이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수 있고 또 세례를 받아야 한다.


④ 가시적인 교회회원들의 유아들이 세례를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한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가시적인 교회 회원의 유아들이 세례를 받을 수 있고 또 당연히 받아야만 하는 것은, 그들이 언약 안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언약의 약속이 그들에게 속해 있을뿐더러 언약의 인침 또한 그들에게 속해 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9) 이 말씀은 이 언약의 약속이 어떤 사람에게 적용되는가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주어졌다. 그 후손들은 아직 유아들이었지만 할례의 인을 받았다. 이 언약의 약속이 아브라함과 후손들 모두에게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이유로 믿은 부모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 또한 이들 모두에게 세워졌던 약속, 즉 세례의 인침을 받게 된 것이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리.........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7,10)


⑤ 율법 하에 있던 유대인의 유아들은 은혜언약의 약속과 보증, 즉 할례를 받았으므로 가시적인 교회 회원으로 인정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복음 하에 있는 기독교인의 유아들도 그 은혜언약의 약속을 받고 세례의 보증을 받았으므로 가시적인 교회 회원으로 인정함을 받는다. 당신은 이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⑴ 그리스도인이 유아들이 아브라함과 함께 은혜 언약의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그 언약은 영원성을 지닌 언약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 .이 언약은 그리스도가 중보자(mediator)가 되신 것이며 이것은 신약 성경에서 모든 믿는 자들과 함께 새롭게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율법 하에 놓여 있는 유아들이 그 언약에 포함되었자면 복음 하에 놓여 있는 유아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⑵ 율법 하에 있던 유아들의 특권(교회 구성원이 된다는 것)이 복음 하에 이는 그리스도인 유아들에게도 속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특권은 복음 하에서 결단코 폐지되거나 무효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⑥ 복음 하에 가시적인 교회 회원으로 인정된 유아들의 특혜가 결단코 폐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증명하는가?

  ⑴ 이 특권이 만일 폐지되었다면 우리는 그것이 성경 상에서 폐지된 흔적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책을 통해 볼 때 이 특권을 폐지한 언급이나 그러한 암시조차 찾아 볼 수 없다.

  ⑵ 그리스도께서 이 교회의 특권을 폐지하거나 축소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확대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가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유대 교회의 유아들은 교회 회원이지만, 그리스도교 교회의 유아들은 이교도나 불신자들과 같이 제외되어 있는 자들이라고 감히 상상할 수가 있겠는가?

⑶ 성경은 명백히 그리스도인의 유아들이 거룩하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고전 7:14). 유대인들은 할례를 인하여 가시적인 교회 회원이 되었으므로 성경에서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라 표현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자녀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거룩하다고 불리운다. 즉 그들은 세례로 인하여 가시적인 교회 회원이 되었으므로 동일하게 거룩하다 불리우는 것이다.


⑦ 세례로 인해 가시적인 교회 회원으로 된다는 것은 어떠한 연유에서 기인되는가?

  복음 하에서 세례로 인해 가시적인 교회 회원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것은 교회로의 입회나 가입이 그러한 성례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 주님은 그의 교회로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명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너희는 가서 무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세례를 주고”(마 28:19).헬라어의 ‘제자를 삼으라’는 말은 ‘제자를 만들다’ 혹은 ‘제자로 받아들이다’를 의미한다.


⑧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요구하신 것은, 백성들이 세례받기 전에 가르침을 받고 믿어야 하며 적어도 신앙을 공언해야 한다고 하시지 않으셨던가? 그러므로 가르침을 받을 수 없고 신앙을 공언할 수 없는 모든 유아들은 세례의 특혜에서 제외되어 있지 않는가?

  ⑴ 우리 주님께서 세례받기 전에 가르침을 받고 신앙을 사실적으로 공언해야 한다고 하신 것은 이방의 민족들을 상대로 하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는 그들을 상대로 제자들을 보내셔서 전파하게 하셨다. 그들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세례받지 못한다. 그러나 가시적 교회 회원들의 자녀들에 관해서는 그와 같은 이유가 해당되지 않는다.

  ⑵ 가르침을 받을 수 없고 신앙을 실제적으로 공언할 수 없는 교회 회원의 자녀들이 세례의 특혜들에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은 일할 수 없는 자가 ‐계명에 표현된 바와 같이‐먹을 자유가 없다는 것보다 그 이상에 해당하는 말이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 그러나 그러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일할 수 없는 유아들은 먹어야만 한다. 이와 같이 신앙을 공언할 수 없는 유아들도 세례를 받는다.

  ⑶ 유아들은 그들이 비록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없고 신앙을 고백할 수 없을지라도 성령의 은밀한 역사로 말미암아 이 언약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그들이 이 언약의 은혜를 받을 수 없었다면 어려서 죽은 모든 유아들은 분명코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누가 그런 소리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도 이 언약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이 세례의 인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⑨ 우리는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 볼 때 유아세례에 대한 명령이나 전례를 발견할 수 없는데 유아들이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가능한 일인가?

  ⑴ 이 세례의 제도는 그것의 본질에 관한 한 신약 성경에서 우리 주님에 의해 명백히 제정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그것을 시행하는 시기를 성경에서 결론을 명확히 추론해 낼 수 있기 때문에 그 경우 구태여 잘못된 제도를 재정할 필요가 없었다.

  ⑵ 우리는 성경 상에서 모든 명령이나 전례를 볼 때 여인들이 성만찬에 참여하리라는 자극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도 성경시대에 성만찬에 참여했다고 믿는다. 그들도 매한가지로 교회 회원들이며 은혜에 참여할 수 있는 신자들이기 때문에 분명코 이 성례에 참여할 권리가 있었다.

  ⑶ 우리는 성경 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유아들이 교회 회원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도 세례 받을 권리 또한 갖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그들도 거기에 입회가 이루어졌다. 그 특혜가 취소되었다고 밝히는 성경은 단 한 구절도 없다.

  ⑷ 우리는 유아들 스스로 세례 받았다고 하는 어떠한 명령이나 전례를 발견할 수 없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유아 때에는 세례 받지 않고 기다리다가 그들이 다 성장하고 장성한 후 믿음을 스스로 공언하고 세례 의식에 참여했다고 하는 기록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왜 그들에게 성경적인 명령도 전례도 없었다고 주장하는가?

  ⑸ 성경에 기록된 어떤 경우들에서 신자들의 유아들이 어렸을 때 세례 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온 가족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부분에서 그 집 식구 중 유아들은 제외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들 중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우무 곳에서도 제외시키지 않으셨던 유아들을 이 의식에서 제외시킨단 말인가?



제 49 강 성찬의 의미


제96문 : 성찬( the Lord's supper)이란 무엇인가?

답 : 성찬이란 성례의 하나로서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대로 떡과 포도주를 주고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나타내 보이는 예식이다. 그것을 합당하게 받는 자들은 육체적이고 육욕적인 방식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믿음에 의한 자로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자가 되며 그의 모든 혜택을 받고 은혜 가운데서 영적인 양육과 성장을 얻게 되는 것이다.


① 성찬에서 가장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몇 가지가 있는가?

성찬에서 가장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여덟 가지가 있다.

  ⑴ 그것의 본질 ⑵ 그것의 창시자 ⑶ 외적인 요소와 행위 ⑷ 내적인 신비와 의미하는 바 ⑸ 그것의 객체 혹은 그것을 받아들일 권리를 가진 자 ⑹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 ⑺ 그것의 유익 ⑻ 그것의 목적


② 성찬의 본질은 무엇인가?

 성찬의 본질은 성례의 일종이며 은혜 언약의 보증이다. 하나님 편에서와 인간 편에서 세례로 인해 맺어졌던 상호간의 의무가 이 안에서 새롭게 되고 확증된다.


③ 성찬의 창시자는 누구인가?

 성찬은 성례의 일종으로서 인간의 고안품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의 창시자이시다. 그것은 그의 세우신 제도이며 관례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게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고전 11:23)


④ 언제 주 예수께서 이 성찬의 예식을 제정, 설립하셨는가?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그날 밤에 이 성찬의 제정, 설립하셨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고전 11:23), 그것은 유월절 방에서 있었기 때문에 밤이었다. 그것은 그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가 잡히시던 날 밤이었다..


⑤ 우리 주님께서 최초로 이것을 시행하시고 제정하셨던 때가 그리스도인들이 최초로 이것을 받아들였던 때 밤이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도 밤에 이 성례를 받아야 할 의무가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밤에 이 성례를 받았던 이러한 전례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으며, 또한 다락방에서 그것을 받아야만 한다거나 최초에 그것에 참여했던 자들이 12명이었다는 전례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때 유월절에 먹었던 사도들이 했던 대로 밤에 그것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비록 그것을 받는 때는 무관할지 몰라도 정오(우리 주님이 영으로 일어나셨을 때) 때가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안성마춤일 것이다. 특히 그때부터 몸과 마음은 정상적으로 볼 때 가장 원기왕성하고 거의 지치거나 나른해지지 않은 때이기에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최상의 상태일 것이다.


⑥ 어떠한 자세로 이 성례를 받아들였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친히 계셔서 그것을 그들에게 행하셨을 때 그 자세는 가장 겸손했을 것이며 결코 불손하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⑦ 이 성찬의 예식은 누구에 의해 시행되어야 하는가?

 이 성찬의 예식은 세례의 그것과 같이 어느 누구에 의해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규례에 따라 이 직무에 부르심을 받고 취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에 의해 시행되어야 한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사자들이다. 이들 외 어느 누구도 이 천국의 인을 치는 권위를 부여받지 못했다.


⑧ 성찬의 외적 표지와 요소는 무엇인가?

성찬의 외적 표지와 요소는 떡과 포도주이다.


⑨ 성찬에서 어떠한 떡이 사용되어야 하는가?

 일반적인 떡이 사용될 뿐이며 교황주의 자들의 방식에 따른 성체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흰떡이 가장 무난하다.


⑩ 성찬에서 어떠한 포도주가 사용되어야 하는가?

 성찬에서 어떤 종류의 포도주가 사용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포도나무의 열매를 마셨다는 것을 읽는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포도주인지 알 길이 없다. 그것의 가장 가능성이 있는 바는 그리스도의 피를 생생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인 붉은 포도주(tdnt)나 진홍빛 포도주(claret wine)와 같은 붉은 빛깔일 것이다.


⑪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은 떡과 포도주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은 떡과 또한 포도주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이 성례에 대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었던 교훈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11:26,28),그러므로 교황주의자들이 백성들로부터 잔을 제거해 버리는 관례는 보증받지 못하는 것이며 위험한 발상에서 나온것이다.


⑫ 이 성만찬의 예식에서 외적인 행위는 무엇인가?

이 성만찬의 예식에서 외적인 행위는 다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⑴ 사역자의 역할로는 그 요소들에 축복을 하고 성례의 사용을 위해 구별을 지우며 해당되는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위해 감사와 기도를 드린다. 주님께서 최초로 이 성례를 세우셨을 때와 같이 그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떡을 취하여 떼며 잔을 취하여 떡과 잔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준다.

  ⑵ 백성들의 역할로 그 외적인 행위는 떡과 포도주를 취하여 전자는 먹고 후자는 마시는 것이다.


⑬ 이 성례에 있어서 떡과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나타내는가?

 이 성례에 있어서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의하고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고전 11:24,25)


⑭ 우리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성례에 사용되는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으로 변화거나 황하는 것이 아닌가?

 이 성례에 사용되는 떡은 그리스도의 실제 몸으로 변화거나 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몸의 상징이나 표현일 뿐이다.


⑮ 당신은 이 성례에서 사용되는 떡이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증거하는가?

  이 성례에서 사용되는 떡이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다음 여러 가지 논증들에 의하여 증거될 수 있다.


◉ 논증I.

떡이 성별된 후에도 전과 같이 여전히 그 떡으로 남아 있음은 감각과 이성 모든 것으로 볼 때 명백히 판명된다. ① 먼저 그것은 감각의 면에서 명백해지는 데 , 즉 떡의 양이나 크기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떡의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떡의 조각이나 위치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떡의 색깔, 맛, 냄새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이 그 떡이 성별되었다 해서 감각적으로 볼 때 전혀 변경된 것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② 다음은 이성의 면에서도 명백해지는데, 즉, 그 떡이 또 다른 물질로 변화될 수 없으며 그것의 성격기 도무지 변경되거나 바꾸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을 때 그 물은 그것의 본래적인 재료를 잃었으며 또한 그것은 색깔, 냄새, 맛 그리고 다른 속성들도 상실했다. 물에서 만들어진 그 포도주는 포도주의 속성은 물론 포도주의 색깔과 맛 , 냄새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성례를 통해 그 떡의 색깔, 맛, 모양 그외 어떤 속성들이 변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성적으로 판단해 볼 때에도 그 떡이 어떤 다른 속성으로 변해진 것은 아니다. 성례식에 우리는 떡의 속성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옷 입혀드려야 하며 그의 몸이 바로 그 떡과 같은 모양, 맛, 색깔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의 몸을(지금은 하늘에서 영광 중에 계시겠지만) 떡의 모양과 같이 품격을 떨어뜨리며 모양도 풍채도 없는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결과가 되어 그것은 어느 누구도 시인하지 못하는 터무니없는 신성모독이 되는 것이다. 그외 또 다른 것으로 만일 떡의 속성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전가될 수 없는데 떡의 재료가 나가고 그리스도의 몸의 재료가 그곳에 들어온다고 한다면 떡의 속성은 그 내용물이 없이 존재하는 셈인데 이것 역시 가장 터무니없는 이성에 어긋나는 논리이다. 우리는 감각으로써 그와 같은 색깔, 맛 그리고 모양을 감지한다. 그러면 그와 같은 색깔, 맛 그리고 모양이 그리스도의 몸일 수 없다. 만일 이 같은 속성들이 있는 곳에 다른 물질이 없다면 이 색깔, 맛 그리고 모양을 가지고 있는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결론이다. 따라서 성례에의 그것은 흰색의 무(無), 향긋한 무(無), 한 덩어리의 무(無), 한 조각의 무(無)를 말하는데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이다. 떡의 속성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동안 떡의 재료가 그대로 변치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은 이성적 판단으로 볼 때 이보다 더 명백한 증거는 있을 수 없다.


◉ 논증II.

이 성례에서 떡이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다고 한다면 두 가지 문제가 대두되는데, 하나는 모든 성례에서 먹는 떡의 조각들 만큼이나 그리스도의 몸이 많아야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은 모두 하나이고 동일한 몸이라는 것이다.

① 모든 성례에서 먹는 떡의 조각들 만큼이나 그리스도의 몸이 많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이유로, 첫째,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수천 아니 수백만 몸체를 가진 거대한 괴물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둘째, 사역자의 권한에 따라 그의 마음대로 그리스도의 몸을 자르고 하나님은 그때마다 기적을 창출하는 역사를 시행하셔야만 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것은 그리스도의 일체감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그리스도의 일체감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그리스도의 몸은 오직 하나이외 다른 어떠한 것들도 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오직 한 몸만이 십자가상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리스도께서 천국에서 갖고 계신 이들 모든 몸들은 오직 하나만을 제외하고는 영혼이 없으며 그래서 이것들은 모두 성례에서 이것들을 먹는다고 영혼을 구원하기에 미흡하여 신령한 생명이나 은혜를 주입하기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② 성례에서 변화된 떡이 그리스도와 같은 한 몸일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다음의 문제가 야기된다. 첫째, 그리스도의 몸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몸으로 천국에서 가시적이고 성례에서 비가시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같은 한 몸은 천국에서와 지상 여러 곳에 동시에 임재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장소에서 할례받은 동일한 한 몸이 수천의 다른 곳들에 동시에 현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 이성에 배치되는 발상이다. 결과적으로 말을 정리하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며 존재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는 이만저만한 억측이요 엉터리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것이 성례에 있다면 천국에는 존재치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나누어지지 않으며 부분 부분으로 어떤 것은 이쪽에 어떤 것은 저쪽에 동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리스동의 몸은 무한하지도 않으며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계시지만) 그렇다면 그의 몸은 육신 입기를 원치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은 여러 곳에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천국에 계시며 성례에 계시지 않는다.

 

◉ 논증 III.

 만일 성례에서 떡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다고 한다며 그것을 먹은 후, 그것이 하늘로 되돌아가거나 (그것은 이미 거시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것을 먹는 자들과 함께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부분은 우리 몸의 재료로 화할 것이고, 우리가 악하게 된다면 이 동일한 몸들이 일으킴 받을 때, 그것은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받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어떤 부분은 외진 곳에 던져져 부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두 부분의 발상은 가장 잔인한 신성모독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교황주의자들의 화체설 교의(the popish tenet transubstantiation)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증오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 논증 IV.

만일 성례에서의 떡이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으로 변한다면, 그 성례의 성격과 목적은 와해되고 말 것이다. 성례의 성격은 상징이며 그것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생각되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이 성례는 상징과 기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만일 이 떡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화한다면 그것은 현존해야만 한다.


◉ 논증VI.

 이 성례에서 먹는 것은 떡이지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다. 그래서 사도는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분명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다. “누구든지 주의 떡이니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 11:26‐28) 그래서 그것이 이 성례에서 먹게 되는 바 떡이 사실이라면 분명코 그 떡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이 될 수 없다.


⑯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성례를 세우실 때 명백히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하셨으며 그가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 떡이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으로 변화된 것을 뜻하지 않겠는가?

 모든 성경의 표현들이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면 이 표현도 그렇게 이해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상에서 자주 비유적인 표현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스도에 관한 표현 역시 비유적인 표현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스도에 고나한 표현 역시 비유적인 것이 많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그렇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위나 돌로 변하셨다는 뜻인가? 동일한 의미로 유대인의 성례에서 쓰이는 유월절 어린양(Paschal lamb)이 유월절(Passover)로 불리우고 그리스도인의 성례에서 쓰이는 떡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불리우는데 그러나 유월절 어린양은 어떠한 의미로도 유월절이 될 수 없다. 유월절(Passover)이라는 말은 천사가 애굽의 장자를 죽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위를 통과한 그 천사의 행위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어린양이 천사의 행위로 변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 같은 어불성설이 또 어디 있겠는가?(What absurdity is it to say) 확실히 현존하는 물질은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이나 행위로 변화될 수 없다. 그것은 다만 그 행위에 대한 상징이요 기념일 뿐이다. 그러므로 한 몸이 또 다른 몸으로 그 속성들을 그대로 두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떡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타내는 표지이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것이다.


⑰ 하나님은 그의 무한하신 능력을 통하여 떡을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으로 변화시킬 수 없으신가?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으실진대 왜 우리는 그가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실제로 그것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가?

 하나님은 실로 그의 무한하신 능력을 통하여 모든 것을 실행할 수 있으시지만,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상호 모순된 것을 조작하거나 터무니없는 것이나 신성 모독적인 결과를 낳게 하는 것들은 행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⑱ 이 성례에서 떡과 포도주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가?

 이 성례에서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의미한다는 것은 떡과 포도주가 육신을 강건케 하고 거기에 영향을 공급하고 새 힘을 주며 본래적인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이것을 성례에서 받음으로 영혼을 강건케하고 거기에 영양을 공급하고 새 힘을 주며 신령한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⑲ 사역자가 떡을 취하여 떼며 잔을 취하여 이 두 가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줌에 있어서 그의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역자가 떡을 취하여 떼며 잔을 취하여 이 두 가지를 백성들에게 나눠줌에 있어서 그의 행위가 뜻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의 아들을 취하시고 그로 상하게 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심을 의미하며, 그가 이 성례를 통하여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구속자와 구주가 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⑳ 백성들이 떡과 포도주를 받고 그것들을 먹는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가?

 백성들이 떡과 포도주를 받고 그것들을 먹는 행위는 그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바 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성례에서 그를 먹는 것을 뜻한다.


21. 이 성례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은 새 언약의 혜택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게되는 것인가?

 오직 합당하게 받는 자들만이 새 언약의 혜택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22. 합당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은 어떻게 그 모든 혜택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게 되는 것인가?

 합당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 모든 혜택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게 된다

  ⑴ 육체적이고 육신적인 방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거기 참여하여 음식과 음료로써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들과 그의 실제적인 살과 피와 연합함으로써이다.

  ⑵ 그러나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그들의 영혼과 연합하며, 그래서 그의 죽으심의 효능과 능력과 열매와 혜택들이 그들에게 적용되고 그들은 신령한 양식을 먹고 은혜 가운데서 성장해 나간다. “우리는 이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고전 10:16)


23. 신자들은 어떻게 이 성례에 참여함으로써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고 은혜 가운데 성장하게 되는가?

신자들은 이 성례에 참여함으로써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고 은혜 가운데 성장한다.

  ⑴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효능을 이끌어 내며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고 죄를 죽이고 정화시킨다. 육체와 죄는 신령한 양식을 먹고 성장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⑵ 주님은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전달하시며 그들은 이 성례를 통해 믿음으로 그의 은혜를 더욱 많이 받아 누리게 된다. 그것은 그가 죽으심으로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것이며 그의 은혜의 언약을 통해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다.(이 성례를 보증하는 인이기 때문이다.)


24. 이 성찬(the Lord's supper)예식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성찬 예식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표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받아들인 것을 공적으로 공언하고 신앙을 증거하고 구원의 소망 가운데 서게된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제97문 : 성찬을 합당하게 받으려면 무엇이 요구되는가?

답 :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들이 주님의 몸을 분간하는 지식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그들의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의 회개와 사랑과 새로운 복종에 대해서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다. 성찬에 합당하지 않게 참여하다가 결국 자신에게 임하는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① 성찬을 합당하게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⑴ 성찬을 합당하게 받아들이려면 우리가 마치 우리자신의 공로나 가치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방자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와 그의 혜택의 결과임을 인식해야 한다.

  ⑵ 우리가 성찬을 합당하게 받아들이기 위하여는, 거기에 나아가기 전에 온전한 준비를 함으로 그리고 주님의 식탁을 대할 때 조심스런 행동으로 성찬을 받아야 한다.


② 성찬을 합당하게 받기 위한 준비사항은 무엇인가?

 성찬을 합당하게 받기 위해 요구되는 준비사항은 ⑴ 성찬을 받는 자가 은혜스런 상태에 있기 위해 평상시에 준비하는 것이며 ⑵ 그들의 은혜가 실제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③ 성찬을 합당하게 받아들임에 있어서 평상시의 준비(habitual preparation)와 실제적인 준비(Actual preparation)의 필수요건은 무엇인가?

 성찬을 합당하게 받아들임에 있어서 평상시의 준비와 실제적인 준비의 필수요건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피는 일이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 11:28)


④ 성찬을 준비함에 있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인가?

성찬을 준비함에 있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 있어서 자신을 살펴야 할 것이다.

  ⑴ 우리는 떡에 의해 의미되는 바 주의 몸을 분별하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9)

  ⑵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를 먹음으로 그에게서부터 효능과 신령한 양식을 이끌어내어야 한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

  ⑶ 우리는 주님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바 우리의 지은 죄에 대하여 참회와 자기자신을 판단함과 경건한 슬픔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고전 11:31)

  ⑷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에 사랑으로 그에게 보답하며 동일한 피로써 구속함을 받은 형제들을 사랑하여야 한다.

  ⑸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주님의 능력으로 강건함을 받기 위해 복음에 새롭고 성실한 순종을 다 바친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8)


⑤ 성찬을 준비함에 있어서 자신을 살피는 일 외에 다른 필수요건은 무엇인가?

잔을 준비함에 있어서 자기를 살피는 일 외에 다른 필수요건은,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과 성령의 도우심을 위해 그에게 기도 드리고 우리의 사랑을 북돋우고 우리의 은혜를 일깨우기 위해 묵상하는 일이다.


⑥ 주님의 식탁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⑴ 주님의 식탁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하는 자들은 평상시에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되는대로 불신자의 경우처럼 지내다가 나아오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믿음이 없기에 주님의 몸을 분간할 수 없고 그를 영적으로 먹을 수 없다. 이런 자들은 회개와 사랑과 새로운 순종을 행치 않기에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없고 수찬을 받는다고 그와의 연합을 누릴 수도 없다.

  ⑵ 주님의 식탁에 합당치 못하게 참여하는 자들은 또한 평소에 준비를 하고 은혜를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인 준비를 함에 있어서는 무관심하여 자기를 보살피는 일이나 기도하고 묵상하는 일에는 안중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고 이 의식의 혜택들을 상실하고 만다.


⑦ 은혜 생활을 하는 자가 자기를 살피는 일과 다른 의무들을 힘써 수행함으로 준비를 갖추고자 하였지만 아직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면 그들은 합당하게 수찬을 받을 수 없으며 주님의 식탁에 나아올 수 없는가?

 은혜생활을 하는 자가 자기를 살피는 일과 다른 의무들을 힘써 수행함으로 준비를 갖추고자 하였지만 아직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해도 그들은 주님의 식탁에 나아 올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의식을 통하여 그들을 용납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려깊고 감동있고 따뜻한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수행할 수 없다면 그들은 거기 머물러 기다리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를 섬겨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의 성실성이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⑧ 우리가 참으로 은혜 가운데 머무르고 있는지를 몰라서 두려워하거나 의심스러울 때 주님의 식탁에 나아올 수 있는가?

우리가 합당하게 성찬에 임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주님의 식탁을 대하는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몸의 외적인 몸가짐과 우리 마음의 내적인 자세를 겸손하고 경외하는 자세로 가져야 한다. 우리는 그 의식에서 의미되고 표현되고 나타나진 그 대상을 경건하게 바라보며 우리의 외적 행동이나 요소 하나 하나에 지극히 조심스럽게 대한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그렇게도 모욕을 당했고 고통을 당하셨던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에 대해 묵상하며 그의 죽으심과 원인이 되었던 우리의 죄를 슬퍼하고 그를 간절히 찾고 사모하며 그의 죽으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혜택들을 갈구하고 언약과 신약성경에 나타난 약속들 ‐ 유언자의 죽음으로 효능을 나타내는 ‐을 적용시킨다. 주님 안에 충족히 잠재해 있는 양식과 신령한 모든 것들을 그로부터 이끌어 내며 그의 사랑을 기뻐하며 그의 은혜에 감사를 돌리며 우리의 언약을 새롭게 하며 그 중에서도 특별히 주님을 믿음과 더욱 특별히 주님을 사랑하고 또 그의 사랑 안에서 상호간에 사랑하는 것들이다.


⑨ 성찬에 참여한 자가 주님의 식탁에서 물러난 후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는 무엇인가?

 성찬에 참여한 자가 주님의 식탁에서 물러난 후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는 그들이 몸가짐과 결과에 관하여 자신을 살펴야 한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그들의 결함을 슬퍼하고 사죄를 성실히 구하고 유익을 구하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며 앞으로는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교정하기를 애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보다 힘을 얻고 신선한 용기를 얻었다면 그 도우심과 용기주심에 대해 감사드리며 그들이 그러한 마음가운데 있기 위해 애쓰며 세상과 육체와 정욕을 이기기 위해 그리스도로부터 많은 능력을 구하기를 힘쓰며 사단과 죄와 육정적 욕구에 대항해 싸우며 그들이 서약했던 서원을 수행하며 새롭게 세웠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유의한다.


⑩ 성찬을 합당치 못하게 받는 죄는 무엇인가?

성찬을 합당치 못하게 받는 죄는 주님의 살과 피를 범하는 죄, 즉 주님의 살과 피에 대하여 불손하며 무례하게 대하는 죄를 말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 11:27)


⑪ 성찬을 합당치 못하게 받을 위험성은 무엇인가?

주님의 성찬을 합당치 못하게 받을 위험성은 우리 자신 스스로의 판단에 의거하여 행함은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즉 이것은 우리가 성찬을 합당치 못한 방법으로 받아들임으로 주님의 노를 격발시킴으로써 우리는 결국 현세적인 것이나, 신령한 그리고 영원한 심판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고전11:29,30)



제 50 강 기도의 의미


제98문 : 기도는 무엇인가?

답 : 기도는 우리의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부탁드리는 일이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긍휼을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리는 일이다.


① 기도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는가?

기도에는 세가지 요소 ‐ 간구, 고백, 감사 ‐ 가 있지만 기도의 가장 고유한 요소는 간구에 있다.


② 어떠한 종류의 기도가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기도인가?

 마음의 사모함이 없이 입술로만 드리는 간구는 인간이 보기에는 기도같으나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는 그에게 간절한 소망을 갖고 그 앞에 마음을 쏟아 붓는 것이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


③ 우리의 기도는 누구를 향해서 바쳐져야 하는가?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서만 바쳐져야 한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게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5:2,3)


④ 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향해서만 바쳐져야 하는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향해서만 바쳐져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⑴ 기도는 종교적인 예배의 한 요소이고, 하나님은 종교적인 예배의 유일한 대상이시기 때문이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⑵ 하나님만이 모든 곳에 편재하셔서 그의 백성들을 감찰하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다”(시 34:15)

  ⑶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소원을 만족시키시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주신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시 145:18,19)


⑤ 우리는 어떠한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가?

  ⑴ 우리는 어떠한 죄악된 욕망을 만족시키시 위해 기도해서는 안 된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⑵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그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만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한다.“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을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⑥ 우리가 당연히 구해야 할 바 하나님의 뜻에 부합된 것들은 무엇인가?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할 것들은 하나님의 은밀한 뜻에 부합된 모든 것들이 아니다. 앞으로 발생할 모든 것들 심지어 저질러진 가장 사악한 죄들까지도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과 영원한 결정에 부합된다. 그러나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속에 명백히 계시하신 그의 뜻에 부합된 것들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와 여기 이 땅위에서 그의 은혜, 신령한 생명과 능력을 공급받는 일과 이후에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공급받는 일과 영적이고 영원한 악에서 구원받는 일과 또한 우리가 필요로 하는 현세적인 물질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언약 속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들 ‐ 그것은 명백히 표현된 것이든지 암시적으로 표시된 것이든지를 막론하고 ‐ 을 말하고 있다.


⑦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누구의 이름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Lord Christ) 기도 드려야 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⑧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림은 우리 기도의 끝부분이나 어떤 부분에 단순히 입술로써만 그리스도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가 받아들여지고 응답받기 위해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함께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니라”(엡 3:12)


⑨ 우리는 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하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즉 하나님은 무한히 거룩하시고 질투심이 많으시며 무한히 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시며 우리는 무한히 불경건하고 죄악이 가득찼으며 우리의 기도는 잘해봤자 매우 불완전하고 더러운 냄새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들은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의 중재없이는 인정받지 못하고 우리의 기도가 들림받지 못한다. 우리의 기도에 나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그의 공로와 향기로운 향을 섞어 아버지 하나님의 관심을 끌어 들이고 그의 명분만을 사용함으로 우리의 기도는 응받을 받는다. “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즉 주 예수 그리스도인이신 언약의 천사를 말한다.)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3,4)


⑩ 우리는 가톨릭 교도들이 가르치고 시행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기도에 도움을 받고 최소한 천국에 있는 이들의 관심을 진척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천사의 이름이나 성모 마리아(Virgin Mary)의 이름이나 그외 다른 성자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기도 드릴 수 없는가?

  ⑴ 어떤 피조물에게 우리의 기도가 드려진다는 것은 우상숭배(idolatry)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만이 기도와 다른 모든 종교적 예배의 대상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들에게 (그들은 예배 받기를 거부한 자들이다.) 기도를 드리거나 더군다나 어떤 성도들에게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골 2:18), “내가 그 발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를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계 19:10)

  ⑵ 천국에는 무리를 위하여 오직 한 중보자와 도고자가 있을 뿐이며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도고자로서 어떤 천사나 성자들의 이름을 사용하여 기도하는 것은 그를 격노케 하는 짓들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⑶ 우리는 성경에서 천사나 성자들에게 혹은 그들에 의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어떤 명령도 전례도 보지 못했으며 어떤 약속도 받지 못했다.

  ⑷ 천국에서 가장 훌륭한 성도들도 지상에 있는 우리의 상태에 대해 무지하며 그들이 있는 곳에서 어찌할 도리도 없고 더군다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할 수도 없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사63:16)그러므로 이 점에 있어서의 가톨릭 교도들의 교의와 관습은 인정받을 수 없을 뿐더러 가증스러운 것이다.


⑪ 우리의 기도가 그에게 인정함을 받고 그로 말미암아 응답받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드려야 하는가?

  우리의 기도가 그에게 인정함을 받고 그로 말미암아 응답받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드려야 할 것이다.

  ⑴ 성실함으로 기도 드려야 한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⑵ 겸손함으로 기도 드려야 한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하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시 10:17)

  ⑶ 믿음으로 기도 드려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약 1:6)

  ⑷ 간절함으로 기도 드려야 한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⑸ 인내함으로 기도 드려야 한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것을 ”(눅 18:1)

  ⑹ 우리는 기도한 후 응답이 있을 것을 기다린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미 7:7)


⑫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많나 기도를 드릴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를 가르쳐 주실 때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의 말살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는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6,27)


⑬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바쳐진 모든 기도들을 받으시며 응답하시는가?

  ⑴ 하나님은 악인의 기도는 받지도 응답하지도 않으신다. “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5:8)

  ⑵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마음속에 불의를 품을 때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⑶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에게 바쳐지는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그의 뜻에 합당할 때 응답해 주신다. 그는 그들이 기도하던 것들을 주시거나 혹은 그밖에 그것과 동등한 어떤 것이나 그것보다 훨씬 나은 어떤 것을 주시기도 하신다.


⑭ 기도의 두 번째 요소는 무엇인가?

기도의 두 번째 요소는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고백이다. 그것과 더불어 우리는 사죄에 대한 간구와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⑮ 우리는 기도에서 어떠한 죄에 대해 고백해야 하는가?

우리는 기도에서 죄를 고백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율법과 복음에 역행한 원죄와 자범죄(original and actual sins)에 대해, 태만죄와 수행죄(omission and commission)에 대해 생각과 마음에서 지은 죄에 대해, 입술과 생활에서 지은 죄에 대해 죄를 고백해야 하며, 우리는 마땅히 그것들로 인해 현세적이고, 영적이고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그 응분의 대가로 받아야 함을 인정해야 한다.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게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시 32:5),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4,5), “주여 수욕이 우리에게........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게 패역하였음이오며”(단 9:8,9)


⑯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죄를 어떻게 고백해야 하는가?

우리는 기도 중 우리의 지은 죄를 고백할 때 그것을 슬퍼하고 그것을 미워함으로 그리고 확고한 목적과 확고한 결단으로 그것을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겸손하게 충분하게 자유롭게 해야 한다.


⑰ 기도의 셋째 요소는 무엇인가?

기도의 세 번째 요소는 감사이며 이는 여기 이 땅위에서의 현세적이고 영적인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저기 천상에서의 생명과 행복의 약속에 대해 인식함으로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감탄과 믿음과 사랑과 기쁨과 그 외의 모든 종류의 합당한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제 51 강 주기도의 내용


제99문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지침으로 주신 것은 무엇인가?

답 : 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우리에 대한 기도의 지침이다. 그러나 특수한 기도의 지침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의 형태인 이른바 주기도(The Lord's Prayer)


① 일반적인 의미에서 기도의 지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기도의 지침으로 사용된다. 그것은 기도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기도에 가장 합당하게 사용되어야 할 표현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② 우리가 드려야 할 특수한 기도의 지침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드려야 할 특수한 기도의 지침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의 형태로 이른바 주기도(The Lord's Prayer)라 불리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 6:9)


③ 주기도에는 몇 가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가?

주기도는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것은 머리말, 간구, 결론으로 되어 있다.



제100문 : 주기도의 머리말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답 : 주기도의 머리말 곧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란 부분은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대하는 것처럼 우리를 도울 수 있고 또 언제나 도울 뜻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께 거룩한 경외심과 확신을 가지고 가까이 나아가라는 것이며 또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① 주기도의 머리말은 무엇인가?

주기도의 머리말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것이다.


② 머리말 “우리 아버지”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머리말 “우리 아버지”는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가르친다.

  ⑴ 하나님은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고 또 기꺼이 도우시기 원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야 함을 가르친다. 또한 자식이 아버지에게 대하듯이 자식으로서의 사모와 사랑과 기쁨의 감정을 갖고 그에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⑵ 하나님은 그의 모든 백성들에 대한 공통된 아버지이시므로 하나님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기도해야 함을 가르친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③ 우리는 하나님께 성도들과 그의 자녀로 인정되는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물론 성도들과 그의 자녀로 인정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또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일반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권리자와 관리들‐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며 우리의 친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시122:6),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 2:1,2),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④ “하늘에 계신” 이란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늘에 계신”이란 말은 하나님은 지상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멀리 떨어져 계신 지존자이시기 때문에 거룩한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 5:2)



제 101문 : 첫째 간구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답 : 첫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방법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모든 일에 우리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능히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되도록 처리해 주시도록 구하는 것이다.


① 주기도의 둘째 부분은 무엇인가?

 주기도의 둘째 부분은 간구이다.


② 주기도에는 얼마나 많은 간구들이 나와 있는가?

 주기도에는 여섯 개의 간구들이 나와있다.


③ 주기도의 첫째 간구는 무엇인가?

 주기도의 첫째 간구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④ 하나님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심에 있어서 기뻐하신 바가 된 그의 명칭, 속성, 명령, 말씀 사역이다. 이것은 54문의 해설을 참조하라.


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거룩하게, 영광스럽게 그리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시 96:8,9)


⑥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간구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간구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위대하게 하심으로써 그리고 모든 것들은 그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하게 하옵소서”(삼하 7:26), “여호와여 수치로 저희 얼굴에 가득케 하사 저희로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시 83:16,18)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영광을 가로채는 바 우리의 죄악을 고백하고 떨쳐버려야 하며, 그의 영화로운 명칭들과 속성들로 인해 그리고 그의 무한하신 탁월함과 완전함을 인해 그를 존중하고 공경하며, 그의 말씀을 믿고 사랑하고 순종하며, 그의 예배와 명령을 준수하고 따르며, 그의 사역으로 인해 그를 높이고 그의 영광을 위해 그의 피조물을 사용하며, 우리의 위치와 관계에서 그의 존영과 관심을 진작시키기 위해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의 주된 의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능력 주셔서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빛으로 우리에게 비취사(셀라)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시 67:1‐3),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



제 102문 : 둘째 간구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답 :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둘째 간구에서 우리는, 사단의 왕국이 멸망되도록 기도해야 하며, 은혜의 왕국이 임하므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 거기에 거하는 것과 영광의 왕국이 속히 임하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① 둘째 간구에서 우리가 임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둘째 간구에서 우리가 임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다음의 사실을 의미한다.

 (1) 여기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이 임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2) 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9)


②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이 임하기를 위해 기도함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이 임하기를 위해 기도함에 있어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요구해야 한다.

  (1) 사단의 왕국과 하나님 나라의 모든 원수들이 멸망하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안에서 사단이 다스리고 있는 바 모든 죄악의 세력들이 정복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시68:1),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이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2) 일반적으로 하나님 은혜의 왕국이 이 세상에서 다른 모든 왕국들 위에 솟아오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사 2:2)

  (3) 보다 특수하게는 하나님의 사역과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 안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살후 3:1),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하고”(행 26:17,18),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롬 10:1)

 (4) 이미 은혜의 왕국으로 들어온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그 안에서 강건하게 그리고 확실한 은혜로 거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


③ 하나님의 영광의 왕국이 임하기를 기도함에 있어서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의 왕국이 임하기를 기도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 재림때 온 세계 만방에 확연히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가 속히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제 103문 : 셋째 간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

답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셋째 간구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모든 일에 그의 뜻을 알고 순종하고 복종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① 우리는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그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데 그 뜻은 다음의 사실을 의미한다.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바 하나님의 명령의 뜻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2)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에게 행하기를 기뻐하시는 바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다.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한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 1:10),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 3:17)


② 하나님의 명령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때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명령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해야 한다.

  (1) 본래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관해 캄캄하고 무지한 우리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알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8,17), “우리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골 1:9)

  (2) 본래적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율법에 역행하는 적대감을 품고 있던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이 명하는 무엇이든지 마음을 기울이고 순종하고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시 119:36),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시 143:10),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7)


③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뜻에 순종해야 하며 자비로우신 섭리를 감사함으로 받고 고통스런 섭리는 인내함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행 21:14)


④ 하나님의 뜻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보편적이며 점진적으로 쉬임없이 부단하게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20,22)


제 104문 : 네째 간구에서 우리는 어떻게 간구해야 하는가?

답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넷째 간구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충분히 받고 그 모들 것과 아울러 그의 축복을 누리게 해 주실 것을 구하는 것이다.


① “일용할 양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용할 양식”은 매일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모든 외적인 양식을 의미한다.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시 135:15)


②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함에 있어서 우리는 어떻게 구해야 하는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함에 있어서 우리는 많은 양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하고 가장 절실한 것들로서의 이 생의 선한 것들을 구한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 30:8)


③ 우리가 구하지 않으면 필요한 양식을 얻지 못하는가?

 우리는 구하지 않아도 외적인 양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시면 그것들을 받을 수 없다.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시 145:15)


④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양식을 얻는다면 우리는 왜 구태여 그것들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매일의 양식을 구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구해야 할 것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10)

  (2)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함에 있어서 그것들과 함께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얻기 때문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출 23:25)



제 105문 : 다섯째 간구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답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간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하는 다섯째 간구에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거저 용서해 주옵소서 하는 것이다. 그의 은혜에 의해서 우리가 진심으로 남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기에 우리가 격려를 받아 이런 간구를 하게 되는 것이다.


① ‘우리의 죄’(원어에는 ‘our debts'라 나와 있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죄’는 하나님에 대해 역행하는 죄를 의미한다. 우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지 않고서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바 하나님의 공의에 빚을 지고 있다.


② 모든 사람은 다 사죄의 필요성과 용서받아야 할 죄가 있는가?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사죄의 필요성이 있으며 어떠한 죄도 (성령을 거스리는 죄를 제외한 모든 죄) 용서받아야 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시 130:3,4)


③ 우리는 우리의 공로를 인하여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우리 자신에게 아무런 공로를 갖고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공로와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시 51:1)


④ 우리는 아무런 공로 없이도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죄 용서함을 구할 소망이 있는가?

 하나님은 무한히 자비로우신 만큼 무한히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사죄를 얻기 위해 그 앞에 공로를 가져가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갖고 있지 않고 그가 그의 아들 안에서 우리를 위해 그것을 제공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를 구속하신 바 그리스도의 공로를 인하여 사죄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⑤ 우리로 하나님에게 죄 용서함을 구하도록 용기를 주는 요소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의 은혜를 인하여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해 줄 때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죄 용서함을 구할 수 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 6:14)



제 106문 : 여섯째 간구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답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하는 여섯째 간구에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시험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무리를 보호하사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시거나 우리가 이미 시험을 만났을 때에는 우리를 붙들어 구원해 주옵소서 하는 것이다.


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기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기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시험에 빠져 죄를 짓지 않게 해 달라고 해야 한다.


②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에 빠져 죄를 짓지 않도록 어떻게 지키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압도적인 시험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마귀(인류의 가장 무서운 시험하는 자)를 제한시킴으로써, 혹은 시험이 우리를 기다리는 길목에서 우리를 피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죄에 빠지지 않게 하신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26:41),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시19:13)


③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에서 우리는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가?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즉 우리가 마귀나 육체나 세상에 의해 시험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시험을 거부하고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의 능력으로써 죄악에 빠진데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고전 10:13),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후 12:7‐9)



제 107문 : 주기도의 결론 부분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답 : 주기도의 결론 부분 곧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만 기도의 용기를 얻을 것과 우리의 기도가 나라와 권세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그를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을 아뢰며 그것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리라고 확신하면서 우리는 “아멘”이라고 말해야 한다.


① 주기도의 결론은 무엇인가?

 주기도의 결론은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다.


② 이 주기도의 결론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첫째 요소는 무엇인가?

 이 주기도의 결론 부분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첫째 요소는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만 기도할 용기를 얻으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은 나라와 영원한 주권, 권세와 영원한 충족 그리고 영원한 영광을 갖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의 미쁘심, 선 그리고 가장 자비로우신 긍휼에 있어서 무한히 영화로우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우리의 요구하는 무엇이든지 그가 원하시는 무엇이든지 능히 주실 수가 있으시며 또한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주시리라고 확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단 9:18,19),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시 5:2),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3:20,21)


③ 이 주기도의 결론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둘째 요소는 무엇인가?

 이 주기도의 결론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둘째 요소는 우리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그를 찬양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 29:10,11,13),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딤전 1:17)


④ 왜 우리는 “아멘”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우리가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소망과 확신을 표명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혹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