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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마음

- 고린도전서2:1-16 -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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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복음을 깨닫고 믿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진리들을 분별하고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께서 주신 지식인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1.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1-5)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1-2)

"십자가에 못 박히신"이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바울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십자가 이외에는 아무 것도 선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그 겸손이 그리스도를 선포하는데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귀한 성구이며, 우리는 여기에서 신실한 사역자들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것을 배울 수 있고, 또 우리가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배워야 할 바를 배우게 된다.

 

"하나님의 증거"라는 말은, 복음은 죄사함과 영생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진리이다. 하나님의 증거는 참되며 확실하다. 그것은 인간의 말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복음은 전달 방법보다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 복음의 핵심적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전도할 때 이 복음만을 전하겠다고 작정하고 결심하였다. 사람이 복음을 아름다운 말로 단장한다고 복음이 더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복음의 효력은 인간의 아름다운 말에 있지 않고 그 내용 자체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이 죄인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된다.

 

(2)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3-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 위엄으로 우리를 강권하시는데 강력한 힘으로써 그 말씀은 우리를 순종하게 한다.

다른 한편 인간의 지혜는 그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매력으로 이 지혜가 교묘하게 환심을 사며, 또 화려한 장식을 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지혜는 이런 것으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것을 대항하여 바울 사도는 대부분의, 해설가들이 기적이라고 정의하는 성령과 능력의 증거를 제시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광범위한 의미로 해석한다. 즉 하나님의 손길은 사도들을 통하여 모든 방법으로 능력이 있게 나타나도록 그 능력의 손길을 뻗치고 계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능력에 대하여 환치법을 사용함으로 성령과 능력을 나타낸다고 보이거나, 혹은 성령의 임재가 그의 사역에서 어떻게 분명히 나타나는가를 기적과 결과들을 통하여 확실히 나타내려고 하는 것같이 보인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성령의 능력 위에서만, 그들의 믿음이 그 기초를 세우는데, 이것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 위에 기초를 둔 것이다.

바울은 전도하며 설교할 때 인간적 지혜의 권하는 말로 아니하고, 성령과 능력의 나타남으로 하였다. 여기에 전도자의 자세가 있다. 복음전도자는 인간적 지혜의 권하는 말로 전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그 능력은 단지 외적으로 나타나는 기적들뿐만 아니라, 또한 내면적 변화의 능력, 즉 죄인을 회개시키고 믿게 하는 구원의 능력을 가리킬 것이다.

만일 사도 바울의 설교가 유창한 웅변술에 의하여 유지되었다면, 그는 더 탁월한 웅변가에 의하여 타도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더구나, 웅변가의 화려한 웅변에 의존하는 그런 진리라면, 아무도 그것을 참 진리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진리는 세련된 웅변에 의하여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진리가 웅변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전도는 사람의 아름다운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의 사실을 단순히 전하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오늘날도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복음은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이다.

 

2.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다. (6-13)

 

(1)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6-7)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여기에 온전한 자들이란 복음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믿음을 가진 자들, 곧 영적으로 성장한 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미 복음 신앙에 굳게 선 이들 가운데서는 우리가 지혜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이 세상의 없어질 정치가들의 지혜가 아니다.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말은, 우리가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곧 만세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예정되었으나 오랫동안 감추었던 내용이었다.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은, 우리의 구원의 목표를 보인다. 우리의 구원은 영광스런 상태로의 회복이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영광스러운 존재로 창조되었었다. 그러나 사람은 죄를 범함으로 그 영광스러운 형상, 즉 그 거룩하고 의로운 형상을 잃어버렸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본래의 영광스런 상태의 회복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이 구원 계획은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완전한 설계자요 계획자이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인류 구원의 일도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구원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작정하신 방법이다.

 

(2)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8-9)

이 세상의 정치가들은 하나님의 이 비밀한 지혜, 감추었던 지혜를 알지 못하였다. 만일 로마 총독 빌라도가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을 박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이 예수님을 영광의 주라고 부른 것은 그의 신성(神性)을 증거한다. 그는 초라한 유대인에 불과한 자가 아니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주님이셨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 곧 성도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이나 귀나 마음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택함을 입은 성도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섞여 살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신 자들 곧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천국과 영생을 사랑하지만,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은 돈과 쾌락과 덧없이 지나가는 세상의 헛된 것들을 사랑한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의 도리로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세상의 지혜자와 권세자들에게 감추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곧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에게 그 지혜를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지혜를 감사하자.

 

(3)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0-11)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신성(神性)을 가지셨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 본문은 성령께서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고 말한다. 전지(全知)의 속성은 하나님만의 속성이다.

성령은 단순히 하나님의 기운이나 세력이 아니고 인격적 존재이시다. 그는 무엇을 아시는 분이시다. 또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무엇을 지시하기도 하셨고(10:19) 바울이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으나 그것을 허락지 않기도 하셨다(16:7). 또 그는 우리 속에 계시며 우리가 기도할 말을 알지 못할 때 우리 속에서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기도 하시고(8:26) 우리가 범죄할 때에 근심하기도 하신다(4:30).

 

하나님께서 영이시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구별되신 성령에 대해 증거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는 분명하게 구별되신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고 또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있었다(3:16-17).

요한복음14:16-17에 보면,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요한복음15:26에서는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또 요한복음16:7에서도 그는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고 말씀하셨다.

 

(4)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믿는 사람들이 계속적인 혼란의 상태에 있다는 궤변가들의 극악한 본질을 논박할 수 있는 적절한 구절이다.

그들은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든지 아니든지 간에,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를 원하고 있으며, 그들이 인정하는 유일한 구원의 확신은 도덕이나, 그럴듯한 어떤 추리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믿음을 두 가지 방법으로 파멸시키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만일 우리가 은혜에 상태에 있는가 의심하게 되기를 원하고, 둘째로, 그들은 우리 자신의 최종적인 견인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사도 바울은 일반적인 방법, 즉 선택받은 자들이 성령의 확신에 의하여 그들이 영원한 구원의 소망을 갖도록 되었다는 사실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알려주고 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공공연하게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에 의하여, 양심이 우리의 양심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의 분명한 증거인 믿음의 확신을 알며, 이것이 분명히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한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에서, "알게"라는 단어는 신뢰에 대한 확신을 더 갖게 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적인 방법으로나 또는 우리의 정신적인 이해력에 의하여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계시에 의하여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죄의 용서를 통하여 하나님께 우리가 화목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축복이며, 이 축복으로 우리가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를 중생케 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이 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며, 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하며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1:18에서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요약하고 있다.

 

(5)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3)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이란 말은, 인간의 지식의 향취를 나타내거나, 혹은 청취자들의 찬사를 받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자랑스럽게 철학적으로 과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이란 말로써 사도 바울은, 공허하고 허식적이기보다는 신실하고 단순한 문체에 적합한, 그리고 성령의 위엄을 보존하기에 더 적절한 그런 뜻을 의미하고 있다.

말을 잘하기 위해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지혜가 억지로 또 공중의 찬사를 우리가 받지 못하게 할까봐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설교 방법은 성령의 능력이 그의 설교 안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그런 방법이었으며, 어떤 외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설교를 하였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라는 말은, 바울이 그 말들을 실재에 적응시킬 때,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적용시키거나, 혹은 결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가 신령한 하늘의 지혜를 언어의 검소성과 적절하게 결합시키고 있으며, 그런 방법으로 성령의 그 능력이 친히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사도 바울은, 과장된 문체와 지혜를 과시하면서, 인간의 갈채 받기에 급급해하며 마치 순수한 진리가 완전히 부족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허식으로 하나님의 영적 교훈을 더럽히려는 그런 사람들을 질책하고 있다.

 

하나님의 깊은 것도 아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감취었던 지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 진리를 사도들에게 계시해주셨다. 예수께서는 성령께서 오시면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그가 그들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14:26) 또 그가 오시면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고 장래 일도 알려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6:13). 사도들은 하나님께로 온 영곧 성령을 받았고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하셨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성령께서 주신 진리 곧 영적인 진리이다.

우리는 동일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진리들을 다 깨닫게 되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셨다. 그는 사도들을 통해 주신 신약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셨고 믿고 구원을 받게 하셨다. 하나님의 진리는 이 세상의 지혜로 분별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분별할 수 있다.

 

3.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14-16)

 

(1)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4)

"육에 속한 사람"이라는 말을, 사도 바울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듯이 비열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나, 또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나타낸다고 의미하지 않고, 인간적인 능력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다. 신령한 사람은 그의 마음이 성령의 조명의 인도를 받는 사람을 나타내고 육에 속한 사람은 그들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육신적인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을 의미함이 틀림없다. 영은 육신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 초자연적인 은사로 나타나신다.

"육에 속한 사람" 육적인 사람이다. ‘육적인이라는 원어는 영적인이라는 말과 대조되는 단어로 감각적 성질 즉 욕구와 격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육적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일반 사람, 즉 믿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그는 성령을 받지 못한 자이다. 이단자들도 육적인 자들이다(19).

육적인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고전1:21), 깨닫지 못하고(3:11), 하나님을 경외함과 섬김이 없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1:21; 3:18), 우상숭배에 빠져 있다(1:23).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치 않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탄과 악령들을 따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온갖 죄와 부도덕에 빠져 있다(15:19; 3:12-15; 2:2-3; 4:17-19).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교훈을 받지 않고 믿지 않는다. 그는 성령께서 계시하여 주신 하나님의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기며 성령의 일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되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복음 진리들은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만 깨닫고 분별되고 판단될 수 있다.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라는 말은, 바울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그 능력을 갖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믿음이란 우리의 결정에 의하여 좌우되는 무엇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라는 말은, 복음의 교훈은 성령으로부터 오게 되는데 이 성령만이 복음의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참된 해설자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성령의 조명을 받을 때까지는 판단력에 있어서 인간의 마음은 필연적으로 흑암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서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이 본연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논증은 실패하고 만다. 물론 우리 모두의 인간 생활에 필요한 요소인, 말하자면 이성의 빛이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왔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만 값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하늘의 지체인 특별 계시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라는 말의 뜻은 이렇다. 이 관계에 있어서는 육체의 분별력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하나님의 신비에 대하여, 거짓에서 진리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인간의 날조와 구별할 수 있고 또 속지 않는 그런 확고하고 건전한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참으로 신령한 사람이다.’ 한편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라는 것은 믿음에 확신이 자기들 좋을 대로 하나가 파멸하고 마는 인간의 지배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 대권은 인간에게 직접으로가 아니라, 신령한 자들이 판단을 할 때 그들의 안내자로 삼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이며, 이것은 참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포하신 것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의하여야 한다.

더구나 "판단"이라는 말에 주의하자. 사도 바울은 그 말을 우리가 진리를 깨닫도록 성령의 조명을 받을 뿐 아니라, 우리가 진리와 오류 사이의 의혹 속에서 방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분별의 영을 받고, 또 우리가 어떤 것을 피하고 또 어떤 것을 따라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의 조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누가 신령한 사람이며, 그렇게 많은 빛을 받는 사람을 우리가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가 항상 많은 무지로 둘러싸여 있고, 가중하여가는 악의 위험에 빠지기 쉬운 때에, 더구나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 거듭 타락하여 가고 또 파멸하여 가고 있는 이때에, 그 해답은 간단하다. 곧 사도 바울은 모든 잘못으로부터 하나님의 성령으로 새롭게 된 모든 사람들을 그가 말하는 것처럼, 이 능력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는 단순히 인간의 지성이란 종교의 교훈을 부과하는데 무용할 뿐이며, 이런 방법에 있어서 판단할 권리는 오직 하나님의 성령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자신이 거듭났는지에 따라, 또 그가 받은 은혜의 분량에 따라, 올바르게 판단하고 또 확신을 갖는다. 그 이상은 결코 될 수 없다.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말은, (칼빈)는 이미 왜 바울이 신령한 자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가의 이유, 곧 오직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만 기초를 둔 믿음의 진리는 인간의 취향에 따라 유지되거나 또는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휘프 우데노스)는 말하자면 중성인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의하여로 읽을 수 있으므로 그것은 어떤 사물을 나타낼 수는 있어도 인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그 대조는 더 완전하여진다. 즉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가 인간의 지혜나 이성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하여 모든 의식과 율법, 그리고 인간의 비난으로부터 경건한 사람의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3)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16)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라는 말은,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1:13).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오셨다. 바울은 또 갈라디아서3:2에서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다고 말한다. 바울은 로마서8:9에서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바울은 또 로마서8:15에서 우리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養子)의 영 곧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말했다(8:15).


- 존 칼빈 주석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