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의 知識


내용 요약


啓示라는 말은 宗敎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啓示란 말은 희랍어 "아포칼룹시스"를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아포칼룹토"라는 동사에서 온 말로서 "나타나게 하다, 뚜껑을 열다"라는 뜻이다. 희랍세계에서는 평범하게 사용되는 日常用語. 특별한 종교적 용어는 아니었으나 신약성서가 이 말을 종교적인 見地에서 사용한 후부터 이 말이 神學的으로 중요한 용어가 되었다.


옛날 로마인들이 機能的으로 믿었던 반면에 희랍인들은 超自然的이고 특이한 방면으로 人間에 대하여 役事한다고 믿었다. 여러 가지 神話人間들에게 어떻게 나타나며 그 결과에 따라 人間社會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희랍 종교에는 啓示槪念이 분명치 않다.


신비주의에 있어서도 비슷한 理解를 가지고 있다. 神秘主義人間이 전적으로 에 의해 좌우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통한 사람이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舊約聖書에 있어서 啓示라는 개념은 다른 종교의 개념과 비슷한 점도 있으나, 또한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점도 있다. 비슷한 면은 신이 사람들을 통해서 어떤 異象을 나타내시거나 영적인 능력을 나타낸다거나 꿈을 꾸게 하고는 그 꿈을 잘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서 神自身의 뜻을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특유한 啓示方法으로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신으로 나타나며, 聖者로서 나타나신 동시에 慈悲하신 로 나타나며, 世界創造者主管者라고 한다.


新約聖書는 대체로 구약성서의 啓示觀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유대교의 終末論的 啓示觀도 받아들여 계시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확대해서 이해하고 있다. 일반 宗敎에서부터 시작된 啓示思想은 구약성서를 통해서 그 槪念精華되었다가 新約聖書에 이르러 더 분명하게 되었다. 특히 요한은 啓示를 단지 어떤 사람이나 自然界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役事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신약에 와서는 신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므로 야웨을 우리에게 정확하게 직접적으로 계시해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그외의 모든 것은 간접적인 啓示에 지나지 않는다. 自然을 통한 啓示라는 말은 적당한 말이 아니다. 自然被造物이기 때문에 本質이나 屬性을 우리에게 啓示해 줄 수 없다. 또한 聖書도 하나의 글로서는 啓示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古代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와는 관계가 없이 을 알수 있고 對話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한다. 희랍의 哲學思想에는 一般啓示의 가능성을 강조한 學派가 많다. 스토아의 학설에 의하면 사람은 언제든지 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연을 통해서나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어떤 요소를 통해서 을 알 수 있고 또한 과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啓示觀中世紀에 이르러서는 두 가지 방면으로 전개된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存在證明할 수 있다는 주장(Anselm)과 우리가 직접적으로는 을 알 수 없으나(부정신학) 다만 類比로써 알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이다(Thomas). 이러한 생각이 종교개혁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루터(Luther)의 은폐설을, 칼빈(Calvin)可知性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다같이 그리스도의 절대적 啓示性聖書를 통한 知識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근대에 이르러 形而上學的 追求對象으로 생각되어(Descartes, Spinoza, Leibniz) 우리의 이성적 知識對象이 된다고 하는 한편 理神論이 대두되어 신은 創造作業에 있어서 우주를 완전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그 창조 솜씨를 보아서 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現代神學者들 가운데서는 그리스도 밖에도 啓示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일반계시라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이 갈라진다. 그리스도의 啓示性만을 인정하고 그 이외의 啓示性을 인정하지 않는 바르트(K. Barth)와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啓示性을 인정하면서도 "여러가지 종류의 啓示"가 있다고 하는 브루너(E. Brunner)의 입장이 있다.


저자는 그외에도 피조물을 통한 신 지식에 있어서 합리주의적 신의 존재증명(존재론적 증명, 우주론적 증명, 목적론적 증명, 도덕론적 증명, 역사적 증명)과 신비적 신 지식(자연신학)에는 논쟁으로 남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나의 생각


神 知識論 形成에 있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종성 교수가 강조한 그리스도에서 출발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을 알아보아야 한다는 점에 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사람은 을 알 수도 없고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출발점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해서 人類의 역사 속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고 그를 통해 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야웨의 유일한 啓示者. 끝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내가 알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는 귀한 교훈을 받아 들여야 한다. 神認識은 알고 믿을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출처: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