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를 따라 삶

로마서 1-14

 

* 성도의 거룩한 인격적인 삶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이루어진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제는 구원받은 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육신을 좇아 행하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육신은 사람의 죄악된 본성을 가리킨다.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자들이요,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주여, 주여하는 자들이 아니고, 여실하게 구원의 표를 가진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비록 부족과 연약은 있지만 결코 정죄함이 없다.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복음이다.

복음은 성령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원리이다.


이 성령은 우리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피를 뿌려서 우리에게서 죄책의 얼룩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성별하여 참된 순결에 이르게 한다.

바울은 덧붙여 말하기를, 성령이 생명을 준다고 하고 있다. 히브리 문법에 따르면, 소유격은 형용사로 취급하여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생명의 성령은 생명을 주는 성령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율법의 의문에 매이게 하는 자들은 그를 죽음에 복종케 하는 셈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한편, 율법의 의문에서 결과하는 육신의 왕노릇과 사망의 폭군노릇을 바울은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칭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율법은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 중간에 위치한 것이 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의를 가르쳐 주기는 하지만 그것을 줄 수 없으며, 대신 우리를 죄에 매이게 할 뿐만 아니라 더 강한 오랏줄로 사망에 매이게 할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의미는 이렇다. 사람들이 율법의 의무아래 있는 한, 그들은 죄의 굴레에 매여 있게 됨으로 해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이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은 육체의 무절제한 정욕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법을 폐하며, 동시에 사망의 죄책에서 우리를 건져내 준다.


어떤 주석가들처럼, ‘죄와 사망의 법을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는 해석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지나치게 귀에 거스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율법이 죄를 증가시킴으로써 사망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바울은 이러한 비위에 거스리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극히 삼갔던 것이다. (    부분은, 칼빈의 주석)


참된 성도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는 까닭은, 생명의 성령께서 복음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율법으로부터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으로 말미암은 칭의와 새 생명 때문에 성도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사람은 본성의 연약성과 죄악성 때문에 어찌 할 수 없는죄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과 죄 때문에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시키셨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의 짐을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는 구원받은 자를 묘사한다.

그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는 이제 육신의 죄성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산다. 이들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

율법의 요구는 완전한 의()이다.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이루신 의이다. 이 의가 진실히 예수 믿는 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본 절의 육신과 영은 사람의 육체와 영을 가리키지 않고 사람의 죄악된 본성과 성령을 가리킨다.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몸과 영이 대립된다기보다는 죄악된 본성과 성령이 대립된다.

사람이 죄악된 본성을 따라 산다면 그 결과는 죽음일 것이지만, 성령을 따라 산다면 그 결과는 의와 생명과 평안이다.

 

[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전적으로 부패하였고 무능력하여졌다.

그 부패성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치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정도이다.

그러므로 본성 그대로의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우리의 성화는 본성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된다.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영에 있나니라는 말은 성령 안에 있나니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이다. 또 성령께서는 구원 받는 자 속에 오셔서 영원히 거하신다. 이것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복이며 신약 성도에게 주신 특권이다.

이렇게 성령께서 그 속에 거하시는 성도는 더 이상 육신 즉 타고난 죄악된 본성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지!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과 동일시된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여기에 삼위일체의 신비가 증거되어 있다. 참 성도는 이미 성령을 받은 자요 성령을 받지 못한 자는 참 성도가 될 수 없다.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그리스도는 지금 하늘에 계시지만, 그는 신성으로 그의 영 곧 성령을 통하여 우리 속에 계신다.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과 같고 또 어느 날 죽게 될 것이지만,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는 생명이시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생명을 시작하시고 생명을 유지시키시는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성령은 의를 인하여 산 것(생명)이니라.’고 말씀한다. 성도 속에는 생명의 성령께서 계신다.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아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성도 속에 계시다면, 부활의 하나님께서는 성도 속에 계신 자신의 영으로 장차 성도의 죽을 몸까지도 다시 살리실 것이 확실하다.

성도의 미래의 몸의 부활은 확실하다.

그리스도께서 빈 무덤을 남기고 부활하셨듯이, 예수 믿는 성도도 빈 무덤들을 남기고 부활할 것이다.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그것을 보증하신다. 성도는 반드시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이다.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우리는 육신 즉 우리의 죄성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 우리는 죄성대로 살 의무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의 빚을 졌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값없이 은혜로 구원하셨다.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새 생명을 주셨다. 이것은 우리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큰 빚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은혜이다.

지옥 갈 죄인을 천국에 가게 하신 구원의 은혜의 값을 어떻게 환산할 수 있겠는가?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본 절은 성도가 육신의 죄성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말씀은 중생한 성도가 죄 가운데 살다가 마침내 영원히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구약 율법의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는 말씀이 사람이 율법을 행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본문의 경고는 성도의 구원이 중도에 실패하거나 잃어버릴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시고 성령께서 중생시키신 백성은 반드시 다 구원을 받고 영광에 이를 것이다(8:30). 그러나 이러한 경고는 성도에게 필요하다.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영으로써라는 말은 성령으로써라는 뜻이다.

본문은 성도의 삶을 성령으로써 몸의 죄악된 행위들을 죽이는 삶으로 묘사한다. 그것이 성화의 삶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성화를 위해 우리 속에 거주하신다. 우리는 성령으로 우리의 죄악된 행실을 죽여야 한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본절에서 하나님의 영이라는 말씀은 앞 절에서 ’(프뉴마)이라는 말이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키는 말임을 증거한다.

성도(곧 하나님의 아들)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로 묘사되었다.

성도의 거룩한 삶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항상 사모하고 의지해야 한다.


- 출처: 김효성 목사의 강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