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영성신학 비판: 관상신학을 중심으로

 

라은성(국제신대)

 

 

1. 들어가는 말

 

1960년에 와서 영성과 관련된 주제가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국교회에서는 1990년에 들어와 기독교인들에게 영성은 관심을 폭넓게 부추기고 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기독교 서점가에서 영성에 관련된 서적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 한국교회의 견해들을 수렴하고 주도하는 잡지들도 영성이란 주제를 특집으로 다루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으며 더욱이 각종 집회들과 훈련들까지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행한다는 것은 동시에 영성개념에 관한 혼란의 시대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여러 신학자들은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에 대한 제작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성의 본질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지 못한다든지 신학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기도 한다. 교파들 간에 추구하는 목적들에 따라 다양한 영성운동은 영성이라는 미명아래 정확한 개념 정리도 되지 않은 채로 한국교회의 삶속에 뿌리고 내리려고 한다. 아니 무분별하게 자행되는 영성운동으로 인해 개신교적 정체성마저 흐려지고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본질적 이유로서 영성이라는 용어 정립에 관한 것, 즉 중립적 개념을 가졌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영성이라는 용어가 불교나 요가, 또는 뉴 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에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영성의 용어 정립을 분명히 하든지 아니면 다른 용어를 사용해야만 한다는 움직임도 있기도 하다.

 

그리고 영성운동이 혼란을 빚는 또 다른 이유는 시대적 상황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상적 결과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사회 현실 상황,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물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은 성경적이고, 신학적이고, 그리고 역사적인 바른 대안을 내어놓기 보다는 물질만능주의에 무릎을 꿇고 성장위주의만을 일삼고 있는 상황이다. 양적 결과에만 치중하는 목회적 현장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신학적 점검도 채 이루어지지 전에 무턱대고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개혁주의 신학적 답변과 실천적 대안이 없는 상황이기에 과도기와 같은 시기에 비성경적이지도 않으면서도 역사적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영성운동을 따르고 있다 하겠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현상적인 이유보다는 세 번째로 영성에 관련된 내면에는 신학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성운동은 자발적으로 일어난 성령운동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에 의해 근간에 와서 세속적인 충동에 의해 자궁책으로 그리고 종합적으로 교묘하게 고안된 것이다. 그 때문에 이러한 고안은 교회의 역사에서 늘 있어왔고 실패와 악영향을 끼쳤다. 대안으로 제시되다보니 이면에 있는 위험성을 제대로 걸러내지 않았다. 그 결과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늘 쇠퇴, 타락, 그리고 분열이 빚어졌다. 그 이유는 이러한 사실적 근거들을 신학적으로 점검도 하지 않고 역사적인 점검도 없이 단순히 시대 흐름에 답변이나 목회 현장에서 갱신이나 성장의 프로그램으로 사용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교회 갱신이나 성장을 위한 재반응들은 늘 바르지 못한 결과들을 빚어내었다. 영성운동이란 주제의 근저에는 수도원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은 신약성경시대에 시작된 혼합주의적 영지주의(Gnosticism) 영향 하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서 근간에 일어나고 있는 영성운동은 로마 카톨릭 수도원 운동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을 뿐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나온 뉴 에이지 운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더욱이 신비주의적이고 심리학적인 관상신학과 밀접하게 연관을 맺기 때문에 한국교회 영성운동을 가리켜 영지주의적이라는 대 가정을 이 소논문에서 세워본다.

 

복잡한 사회적 정황과 정신적 정황 속에서 빚어진 한국교회 영성운동은 초창기에는 기도운동과 말씀운동에 입각한 성령운동으로 시작되다가 점점 더 은사운동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수도원적 영성의 영향을 받아 관상적 영성운동으로 기울이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먼저 복잡한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의 현주소를 밝히기 위해 간략하게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의 역사적 발자취와 끼친 영향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두 번째로 그 관상적 영성운동에 영향을 끼친 현대 시대적 상황들, 즉 포스트모더니즘, 뉴 에이지 운동, 그리고 심리학적 관상신학 등이 초대 교회에 혼란을 빚게 했던 영지주의적 형태를 띠고 있음을 밝히려고 한다. 이런 면을 밝히기 위해 의사 제퍼리 새티노버(Jeffrey Satinover) 박사가 쓴 Homosexuality and the Politics of Truth The Empty Self: Gnostic and Jungian Foundations of Modern Identity를 중심으로 비평하려고 한다. 한국교회 영성운동들의 현상적 근거들을 밝힌 뒤 그 대안으로 개혁적 입장에서 본 올바른 영성을 위해 용어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대안으로 청교도적 묵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개혁적 입장의 용어 정의를 위해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중심으로 살필 것이고, 청교도 묵상이라고 할 때, 교도 에드먼드 칼라미(Edmund Calamy, 1600-66)가 쓴 The Art of Divine Meditation과 청교도 토머스 맨턴(Thomas Manton, 1620-1677)이 쓴 The Works of Thomas Manton17권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아쉬운 것은 지면상 교회사적으로 흘러온 영성운동의 역사를 밝히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있다. 교회사적 고찰을 원한다면 브래들리(P. Holt Bradley)가 쓴 기독교 영성사(Thirsty for God) 와 풀러 신학교의 교수인 라이스 박사(Howard L. Rice)가 쓴 개혁주의 영성(Reformed Spirituality)을 추천하는 바이다. 본 논문 자체를 한국교회의 영성운동, 즉 근간에 있는 영성운동으로 제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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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영성신학 비판.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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