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존스의 설교관과 설교의 3대 원리


정근두 목사


그의 설교관의 일반적인 고찰

1. 설교라야만 한다
로이드존스는 모든 것이 의문시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과 그 가운데서 설교의 위치와 가치 그리고 목적이 의문시된다는 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설교의 시대는 끝났고 강단은 과거를 가졌으나 미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 설교에 대해서 이러한 심각한 공격이 행해지는 시대에 로이드 존스는1) 교회의 기본적인 직무요 목사의 기본적인 직무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에게 있어서 설교는 교회의 고유적직무인 동시에 대체할 수 없는 임무이다. 그는 "개인 상담이나 모든 다른 활동들은 설교를 보충하도록 의도된 것이지 대체하도록 의도된 것은 아닙니다"2) 라고 계속 주장한다. "심방이나 다른 어떤 활동도 설교의 부족을 보상해줄 수 없습니다‥‥ 설교는 목사의 다른 활동을 위해 길을 마련해줍니다."3) 사람들은 로이드 존스가 다른 목회 사역에 충분한 자리를 주지 않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확신이 없는 로이드 존스를 생각할 수는 없다. 이 확신이 그로 하여금 탁월한 설교자로 만든 것이다. 궁극적으로 로이드 존스는4) 설교가 하나님이 선택한 방법이며 "설교에 의해서 교회는 항상 존재해" 왔다고 믿는다. 여기에 다시 한번 로이드 존스는 개혁주의 전통에 서 있다. 개혁교회의 모든 전통은 이 확신을 "교회는 말씀에 의해서 태어나고 유지된다"는5) 마틴루터의 확신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칼빈은 설교를 “교회의 중추신경이요, 그 영혼”6) 이라고 부르며 설교를 가장 중요한 교회의 사명으로 여긴 것은 학자들에 의해서 누누이 지적된 바이다7)

2. 설교는 정의되어야 한다
오늘날 설교의 위치가 하강하는 주된 요인이 잘못된 설교관에 있다고 생각한다.8) 그러므로 로이드 존스는, 무엇이 설교냐 하는 핵심적인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9) 이 기본 질문에 직면하기 전에는 설교의 기교나 방법 혹은 의사소통의 문제들을 먼저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달리말해 참된 설교의 부흥이 있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반드시 발견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설교에 대한 어떤 참된 정의도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에 관해서, 그리고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메시지에 대해서 말해야만 한다.”10) 그의 설교에 대한 정의는 최소한 설교의 세 가지 면을 포함하고 있다 : 첫째로,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그는 보냄을 받은 자요, 임무가 부과된 자이며 강단에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선다. 로이드 존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을 하도록 의도된 것은 분명히 아니며 모든 남자가 다 설교하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며 여자는 더구나 말할 것도 없다”11)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설교자에게 그 메시지를 위탁하신 분임을 믿는다. 설교자는 그에게 주어진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자이다. 메시지는 설교자가 받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개념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 설교의 임무는 하나님에 대해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된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다.12) 달리말해 참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강해이며 말씀의 신실한 강해 속에서 하나님 자신이 설교하는 것임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모든 개혁주의자들은 이 점에서 그에게 동의할 것이지만13) 실제에 있어서 그들이 그것을 믿는지는 항상 분명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와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설교와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며 가장 감동적인 일이며 가장 흥미로운 일이며 가장 값진 일이며 가장 놀라운 일입니다. 새로운 설교를 가지고 주일날 아침에 강단으로 올라갈 때에, 특별히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여러분이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해주기를 사모할 때, 그 느낌을 아무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14)

셋째로, 그의 청중의 신분에 관한 정의는 훨씬 실제적이고 비교의적이다. 개혁주의 전통에서 설교는 그리스도의 모여든 회중에게 한정한다.15) 이것은 교의적으로는 그럴듯할지 모르지만 실제적으로는 너무 엄격하다. 여기에 로이드 존스는 보다 성경적이고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의 실천과 일치하는 의미에서 성경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신약성경은 그들의 석교를 소위 언약의 회중에게 한정하지 않고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있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에 대한 일반적 정의를 하나 더 제공한다. : "(설교는)설교자와 청중 사이에 무언가 살아있는 어떤 것이 일어나는 거래 행위입니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보다 큰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16) 이 정의로부터 설교의 두 가지 측면이 제시된다.


넷째로, 설교는 “전인(全人)을 다룹니다. 청중은 자신이 다루어지며 이 설교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시고 다루시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 안에 무언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자기 삶 전부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17) 그러므로 설교는 로이드 존스에게 있어서 심각한 작업이다. 그에게 있어서 설교자의 임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나는 강단에서 유머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어려움을 발견합니다. 강단에서 나는 하나님과 지옥으로 가고 있는 영혼사이의 무서운 위치에 서있는 것을 느낍니다.”18)


 


다섯째로, 로이드 존스에게 있어서 설교의 참된 기능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신 의식, 하나님 임재의식을 주는 것이고 진리의 영광스럽고도 감동적인 측면의 무언가를 전달해주는 일이다. 설교의 임무는 사람들의 마음에 진리의 충격을 강하게 가져다주어 그 진리를 살아나게 만드는 것이다.19)


설교의 첫째 되고 기본적인 목표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인상을 심는 것이다. 설교를 통해 얻는 핵심 유익은 설교가 행해지는 순간 마음에 심겨지는 인상이다. 로이드 존스는20) 여기서 조나단 에드워즈와21) 완전히 일치한다. 달리말해 설교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다. 소위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과의 실존적인 만남이다. 하나님의 실재와 살아있는 조우이다. 인격적이고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이다.22) 이 점에 있어서 로이드 존스는 "여기서 설교는 사건의 단순한 전달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건입니다. 선포되는 것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한 프리드리히와23) 동일한 이해를 하고 있다. 로이드 존스는 이 면에서 역시 개혁주의전통과 일치한다. 이 전통에 서있는 판데르 발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청중에게 전달되어서 청중이 설교자를 잊어버리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귀에 들려지도록 말해야만 한다.”24) 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로이드 존스의 설교관을 분석하고 그의 설교관에 따라서 그의 설교의 몇 가지 주도적인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3. 설교는 구분되어야 한다
설교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설교문 혹은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이다. 로이드 존스는 메시지와 메시지의 전달 사이에 매우 엄격한 구분을 한다. 로이드 존스는, 이 두 요소는 서로 다르며 이 두 요소가 참친 설교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참 설교는 이 두 요소-설교문과 설교행위 -의 바른 배합에 있다.26) "여러분은 둘 중 어느 하나에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설교문에 의존해서도 안되고 설교행위에만 의존해서도 안됩니다. 참 설교에 있어서 둘 다 필수적입니다."27) 한번 더 로이드 존스는 설교문에서 중요한 구분을 한다. 첫째는 내용이고, 둘째는 그 내용에 주어진 형태로서 구분한다. 이 내용이 주어진 형태는 설교문의 두 번째 측면으로 구별되어야한다. 설교문의 형태야말로 "우리가 다루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28) 라고 로이드 존스는 고백한다. 그는 동시에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한 성경의 메시지에 있는 두 주요부분을 로이드 존스는 인식하고 있다. 첫째는 구원의 메시지, 케리그마로서 전도설교를 결정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주로 하나님의 존재와 성격에 관한 선포로 이루어져 있다. 둘째는, 가르침의 요소, 디다케로서 이미 믿는 신자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 이 주요한 구분은 "우리의 설교와 메시지 준비에 주도적인 요인이어야 한다"29)고 말하고 있다.

그의 설교의 세 가지 근본 원리

1. 제1원리 : "설교는 반드시 신학적이어야 한다"
(1) 설교의 내용을 지배하는 원리

설교의 내용에 관해서 로이드 존스는 "설교는 반드시 신학적이어야 하고 항상 신학적 기반을 가져야 합니다" 라는 일반적인 명제를 제시한다.31)
"우리의 기본적 부름은 이 온전한 메시지, 이 '하나님의 전 경륜'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항상 개별적인 부분의 메시지보다 더 중요합니다."32)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개별 메시지는 개별적인 본문에서부터 나와야 하지만 반드시 이 진리의 총체의 한 측면 혹은 한 부분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은 개별 본문이 지니는 논지의 예리함을 말살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 이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
그의 제안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33)
1) 단일체로 이루어져 있는 전 성경적 메시지를 잘 파악하라.
2) 설교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고 배경을 구성하는 조직신학에 대한 지식을 갖추라.
3) 개별 메시지를 분리된 어떤 것으로 취급하지 말아라.
4) 개별적인 본문에 담긴 각 메시지는 보다 큰 전체의 한부분임을 항상 명심하라.
5) 당신이 가진 체계를 어떤 본문에든지 무리하게 강요하지 말라. 그러나 동시에 이 전체적 진리에 의해서 해석을 점검하고 통제하라.
6) 비록 개별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순간에도 항상 이 전체를 설명하라.
7) 이미 알려지고 믿는 바에 근거해서, "그러므로"의 기초 위에서 적용하라.

2. 제 2원리 : "설교문은 반드시 강해적이어야 한다"
(1) 설교의 형태를 지배하는 원리

설교의 형태에 관해서 로이드 존스는 "설교는 반드시 강해적이어야 합니다" 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오늘날 소위 강해설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강해설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을 그들은 보여주고 있습니다"라고 한다.34)
'강해설교'라고 할 때 로이드 존스는 참설교의 모든 측면을 서술하지 않고 참설교의 한 측면인 형태에 관해서만 말한다. 강해설교에 대한 그의 기본논지는 다음과 같다. "설교에 가장 필수적인 특징은 그것이 가진 특별한 형태입니다. 이 형태야말로 설교문을 설교문으로 만듭니다." "강해에 기초하지만 이 강해를 특정 형태의 메시지로 바꾸어야 합니다."35)
강해설교라는 말은 한 구절이나 몇 구절에 대한 강해도 아니고 그것에 대한 연속적인 주해도 아니며 그 본문에 대한 탁월한 설명들을 모은 것도 아니다. 강해를 강해설교로 만드는 것은 특정한 형태를 가진 메시지가 될 때이다.36) 그는 "설교문은 교향곡이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특정한 형태를 가져야만합니다. 교향곡은 형태를 가지고 있고 그 부분과 소절이 있습니다. 그 구분들은 분명하며 구별하여 인식될 수 있습니다만 교향곡은 또한 전체가 하나를 이루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한다.37) 그리하여 "설교문을 설교문으로 만드는 것은 그것을 다른 모든 것과 구별해주는 이 특별한 '형태'에 있습니다"라고 결론짓는다.38)
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점을 보는데 실패하고 있다. 로이드 존스에게는 모든 참된 설교는 강해적이지만 모든 강해설교라고 해서 참 설교는 아니다. 로이드 존스는 강해라는 용어를 가지고 참설교의 하나의 중요한 측면을 의미하지 그 이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 이 원리를 구현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제안하지만39) 이것을 한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마술적 처방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40)
1) 한 본문의 강해로 시작하라.
2) 이 개별적 본문의 핵심사상 혹은 교리에 도달하라.
3) 이 개별적 교리의 상관성을 전개하라.
4) 이 개별적 교리를 평행 구절로 강화하라.
5) 주제를 대지로 나누어 이 중심교리를 분명하게 하라.
6) 이 대지들을 점진적으로 배열하여 절정을 향하도록 하라.
7) 말하면서 계속 적용하라.
8) 설교는 반드시 적용과 권면의논조로 끝나도록 하라.

3. 제 2원리 : "설교는 성령의 통제 아래서 행해져야 된다"
(1) 설교의 전달행위를 지배하는 핵심원리

로이드 존스에 의하면 설교의 제 2의 커다란 측면은 설교문의 '전달', 설교의 '행위'이다. 전달하는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움의 요소는 로이드 존스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는 전달 문제에 대한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시한다.41) "설교는 항상 성령 -그의 능력과 통제-아래서 행해져야만 합니다. 무엇이 일어날지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유하십시오." 이것은 그의 설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인 동시에 정의하기 매우 어려운 어린 것임을 수긍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설교라는 것은 사람이 그것을 들을 때에 알 수 있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그것에 관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이상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분이 진정한 설교를 듣게 될 때 어떤 것은 반드시 내재해야만 합니다:”라고 그는 말한다.42)

(2) 진정한 설교에 수반되는 요소
성령의 능력 아래서 행해지는 참된 설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가 진정한 설교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1) 로이드 존스는 진정한 설교의 첫째 특성으로 설교자의 전 인격이 연루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는 필립스 부룩스가 한 '인격을 여과한 진리'라는 설교의 정의를 받아들인다. 그는 "설교에는 사람의 모든 기능이 연루되어야만 하고 전인이 관련되어야만 됩니다"43) 라고 말한다. 그는 효율적인 연설에는 행동이 연루되는 것을 믿는다.
2) 그가 강조하는 두 번째 특성은 회중과 순서를 지배하는 권위와 통제의식이다.44)
3) 그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번째 특성은 자유로움의 요소이다.
설교문이 주의 깊게 준비되어도 설교자는 반드시 설교의 행위에 자유로워야 한다. "준비에 너무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점입니다. 이것은 설교행위의 요체입니다."45) 왜냐하면 그는 설교를 성령의 능력과 영향 아래서 행해지는 활동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말하기를 "한사람이 말하는 것 중에서 가장 최선의 것은 미리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에도 생각한 적이 없고 다만 실제로 설교할 때에 주어진 것입니다"46) 라고 한다.
4) 설교자와 회중사이에 교환의 요소가 중요하다. 설교자는 말하는 중에 어떤 의미에서 영성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이끌어내어야만 한다. 이 상호작용은 때때로 설교에 있어서 매우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47)
5) 진지함의 요소이다. 설교자는 사람들이 지금껏 생각해온 것들 중에서 "가장 엄숙한 문제를 다루는"48) 진지한 자이다.
6) 활력의 요소는 진지함의 요소가 엄숙함이나 슬픔, 침울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설교자는 생동감이 있는 동시에 진지해야만 한다.
개혁주의 전통에 속한로이드 존스는 많은 젊은 개혁주의 설교자들이 매우 지루하고 따분한 설교자인 것을 우려한다. 만약 설교자가 자기가 주장하는 교리를 참으로 이해했다면 성경의 그 위대한 주제를 가지고 따분하고 지루한 설교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49)
7) 열심의 요소,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만 한다. 열심이란 설교자가 자기가 말하고 있는 바에 의해서 사로잡혀 있는 인상을 전달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그 주제에 의해서 감동되었기에 그는 이 진리를 다른 사람과 나누기를 원하는 자이다.50)
8) 이것은 다음의 특성인 뜨거움의 요소로 인도한다. "만약 그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을 믿는다면 그 진리에 의해서 감동되어야만 한다. 감동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것이 뜨거움의 요소로 인도한다.51)
9) 다음은 설교자와 그의 회중사이에 긴밀한 접촉이 있어야 한다.52)
10) 긴박감의 요소: “만약 우리가 이 긴박감에 대해 무언가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참설교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53) 왜냐하면 "복음의 메시지는 연기할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다음 주일까지 혹은 하루 동안에도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청중이 살아있을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54)
11) 설교는 반드시 설득력으로 특징지워져야만 한다.55)
12) 다른 특별한 요소는 감정적 요소이다. 로이드 존스에게 파토스란 참된 설교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마음에 부은바 될 때 감정이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이 감정적 요소, 정서적 요소는 이 세기에 있어서 특별히 개혁주의자들 사이에서 심각히 결여된 것으로 본다. "하나님에 의해서 사람에게 주어진 필수적 부분" 인56) 감정을 멸시하는 지나치게 지적인 사람들에게 로이드 존스는 "만약 여러분이 설교자로서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 영광스러운 진리를 묵상하면서 감동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영적 시력에 무언가 결함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57)
13) 진정한 설교의 마지막 요소는 성령의 기름부음에 의한 능력이다. 로이드 존스에게는 능력이 없으면 설교가 아니다. "참 설교는 결국 하나님의 활동입니다. 설교는 사람이 말들을 지껄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서 사용되어 집니다. 그는 성령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58)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

설교란 무엇입니까? 불붙는 논리입니다. 웅변적인 이론입니다 ‥‥설교는 불타는 신학입니다. 불을 당기지 못하는 신학은 결함이 있는 신학입니다. 최소한 그 사람의 이해에 결함이 있습니다. 설교라고 하는 것은 속에서 불붙은 사람을 통해서 나오는 신학입니다. 진리의 참된 이해와 경험은 여기로 인도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사람이 이러한 진리들을 열정 없이 말할 수 있다면 그는 강단에 올라설 아무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강단에 올라서도록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

(3) 진정한 설교를 위한 몇 가지 제안
다시 한번 이 제안들이 진정한 설교를 할 수 있는 요술적인 처방으로 여겨서는 안되는 것을 로이드 존스는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설교하는 순간에 성령의 영향에 자신을 개방하기 원하는 자에게 도움을 주는 제안이다.
1) 기록된 원고를 암기하는 것보다 기록된 원고에서 요약을 하라.
2) 이 요약으로부터 설교하라.
3) 여러분이 완전히 자유 할 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하라.
4) 설교문보다 성령을 신뢰하라.
5) 성령을 항상 구하라. 간절히 그를 사모하라

4. 세 가지 필수적 원리의 도표
로이드 존스의 설교관의 일반적 구분에 따라서 세 가지 필수적 원리들은 그의 설교의 각 측면을 지배하는데, 다음과 같은 도표로 그려볼 수 있다. 지금껏 3회에 걸쳐 로이드 존스의 일반적인 배경을 기술했다. 이 일반적인 배경은 그의 설교의 원리와 방법을 바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음 회부터 각 원리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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