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여야만 하는가 ?

채경호 목사(대전 언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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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경호 목사

얼마 전 한 일간지 사설에 ‘세상이 염려하는 한국기독교의 부활절’이라는 주제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글을 읽으며 한국기독교가 지금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는 맛 잃은 소금으로 버려지고 있으며, 불 없는 등잔으로 꺼멓게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무엇인가?

 

첫째, 기복주의의 문제이다. 20세기 성공의 아이콘이 었던 미국의 짐 베이커는 그의 책 <내가 틀렸었다>에서 한때 미국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냈던 그가 불륜관계, 공금횡령 등으로 45년 형을 언도받은 후 감옥에서 다시 연구해본 원어 성경을 통해, 자기가 그토록 주장했던 기복주의적 축복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힌다. 그는 요한복음10장 10절과 요한 3서 2절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는 구절을 헬라어 성경으로 연구해 본 결과 돈, 부자, 물질적 취득과 어떤 관련성도 없음을 발견했다. 마찬가지로 이제껏 그토록 물질축복을 강조했던 대형교회들의 몰락은 기복주의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신학의 정체성 문제이다. 한국교회에서 이제까지 인기를 누렸던 프로그램들의 문제는 신학의 정체성에 있다. 웨스트민스터의 마이클 호튼 교수는 영지주의는 권위, 신조, 교리, 의식, 성례전을 무시한다고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에는 신학적인 동질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성공한 인물을 위주로 한 프로그램에 집착하는 현상이 만연화 되었다. 이것은 기복주의와 함께 진리의 무질서를 초래하였고, 많은 이단이 우후죽순으로 솟아오르는 온상으로 작용했다.

셋째, 교회 교육의 부재이다.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기초로 만든 헌법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신학”을 대변하고 있고, 반대로 현대의 여러 프로그램은 여로보암 신학, 즉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는 율법신학임에도 많은 목회자들은 헌법을 율법으로, 그리고 많은 프로그램을 은혜로 착각한다. 이는 교회교육이 얼마나 형편없이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칼빈주의 밖에 없다.

 

첫째, 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는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 마이클 호튼 교수는 하나님이 교통하시는 수단은 ‘시각’이 아니라 ‘성경’이었으며, ‘소리’가 아니라 ‘설교’였고, ‘맛봄’이 아니라 ‘성찬’이었다는 사실을 강조 한다.

둘째, 하나님을 가장 높이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다. 성경은 결코 인간을 높이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행복은 첫째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셋째,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불행은 물질의 없음이나, 신분의 낮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떠난 것에 있다. 그러기에 다윗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시73:27)고 고백한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성경이 보여주는 축복의 인생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으로 설명이 된다. 하나님은 삶에서 그 분을 가장 앞에 두는 사람들에게 복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장 앞에 두는 인생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기복주의, 물량주의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이런 한국교회를 안티기독교와, 이단들이 사정없이 공격해댄다.

 

이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높이는 칼빈주의 신학의 토양 위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를 살리는 대안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