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상권.1-23]
- 이사야서43:15-21 -
[이사야서43:18-20]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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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참된 소망을 가지게 하시는 예언의 말씀이다. 특히 이 말씀에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 예언되어 있는 것 같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 (이사야서43:19)
1. 내가
[이사야서43: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1) 여호와 [יהוה Jehovah] (출애굽기3:14-15)
(2) 거룩한 자 (계시록15:4)
(3) 창조자 (창세기1:1, 이사야서40:26)
(4) 왕 (디모데전서6:15)
2. 새 일을 행하리니
(1)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이사야서43:18)
+ 이전 일, 옛적 일은 ‘이사야서43:16-17’의 말씀을 보아 출애굽 때에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참고; 출애굽기14:21-31>
+ 왜, 출애굽의 일과 광야 40년의 일을 기억하며 기념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하셨는가? <참조; 신명기5:15, 8:2>
ⓐ 이전 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크고 놀라운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 새 일은 마치 태양의 빛이 천지에 가득할 때 그 광채로 인하여 별들이 빛을 잃고 사라지는 것과 같다. (칼빈의 주석)
ⓑ 이전에 애굽에서 죄 가운데 살던 것과 종살이하며 고통을 당하던 것을 이제는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 같다. <이사야서55:7, 9>
(이사야서55:7, 9)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 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너희 조상들과 같이 하나님을 거스려 죄악을 범하지 말고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새 일을 소망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참고; 마태복음3:8-9>
[마태복음3:8-9]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2)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 (이사야서43:19-20)
+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
- 광야와 같은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으로 구원의 길이 열렸다. 사막과 같은 이방인의 땅에도 생수의 강이 열렸다. (메츄헨리의 주석) <참고; 요한복음4:13-14>
+ “...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 새 일이란 이 땅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속하시는 일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요한복음6:53, 로마서3:29>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로마서3: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 이제 나타낼 것이다.
⑴ 새 일로 인하여 그 백성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서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⑵ 새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금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히브리서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바울은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1:18-19)”고 했다. 바울의 기도가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기를 바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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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
- 시 104:27~31 -
“27.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28.주께서 주신 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 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29.주께서 낯을 숨기신 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 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31.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서언: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5:17)
하나님께서 세상에 나타내시는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는다.
* 주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행하신다(시 39:6-9)
*6.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9.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시39:6-9)
*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다. (욥1:21-22)
"21.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22.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1:21-22).
1.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밀한 섭리" - 하나님의 말씀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눈에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信仰によって,私たちは,この世界が神のことばで造られたことを悟り,したがって,見えるものが目に見えるものからできたのではないことを悟るのです."(ヘブ 11:3)
(1) 하나님은 ‘창조주’(creator)이시며, 만물의 ‘통치자’시며, ‘보존자’이시다.
* 지으신 분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양육하신다.
지으신 분의 뜻이 없으면 참새 한 마리도 그저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천지가 여호와의 ‘말씀’과 ‘입 기운’으로 이루어졌다(시 33:6). 우주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은밀한 영감으로’ 생기를 얻는다. 인생도 그러하니,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모든 사람을 굽어보신다(시 33:13). 우리가 살고 움직이는 것은 오직 그 분을 ‘힘입어’ 그러하다(행 17:28).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히 11:3).
* 성령 하나님의 역사는 만물의 창조와 운행에 미친다.
주께서 자신의 영의 역사로 새 기운을 불어 넣어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부성적인 호의’를 거두지 아니하시고 돌보신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이 없다면, 하늘의 별이 흩어질 것이며 땅의 수목이 뽑혀질 것이다. 그러하다면, 지상의 뭇 인생들이 다 스러질 것이다. [본문]
(2) 하나님은 단지 지켜보시기만 하지 아니하시며, 친히 일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 분의 눈에 못지않게 그 분의 두 손에도 속한다.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기를 원하시되 자신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다(창 22:8). 그 분께서는 자신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 1:3)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신다’(시 115:3).
삼위 하나님께서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시 113:6) 그 때나 이제나 영원토록 함께 일하신다(요 5:17). 하나님께서 ‘현재(顯在)하는 자신의 손으로’ 천지와 그 중의 생물들과 사람들에게 힘과 양분을 주셔서 보존하시고 자라게 하신다.
*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의 걸음을 인도하신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리이다”(렘 10:23).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잠 20:24).
* 하나님의 섭리는 통상 자연의 운행에 미친다.
하나님께서는 태양을 머물게도 하시며(수 10:13), 구름과 바람과 화염으로 자신의 사역자 삼으시며(시 104:3~4),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시 136:25). 그 분께서는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시 147:9) 인생의 머리카락이라도 세신 바 되셨다(마 10:30). 하나님의 확실한 명령이 없으면 한 방울의 비도 떨어질 수 없다.
*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계획과 의지까지도 다스린다.
우연히 일어나듯이 보여도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이 없지 아니하다; 운명에 묶여 필연적으로 일어나듯이 보여도 하나님의 지금 일하심을 통하지 않고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의 뜻은 만물의 최고의 원인이며 제일의 원인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연과 운명을 모두 넘어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뻐하심에 따라서 모든 일을 뜻하시고, 뜻하신 즉 이루시고, 이루신 즉 선하시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밀한 손’의 작용으로 말미암는다.
2. 변개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한 뜻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계획하시고 행하심에 있어서 ‘최고의 이유’를 가지고 계신다.
* 만사에 있어서 ‘가장 의로운 원인’은 하나님의 뜻이다.
맹인이 나면서부터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었다(요 9:3).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비밀을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비함’이다.
하나님의 부성적(父性的) 호의와 자비, 혹은 그 분의 엄하심과 심판이 하나님의 섭리의 전체 과정에 종종 밝게 빛나지만, 모든 일들의 원인들은 숨겨져 있다.
*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의 지혜와는 비교할 수 없다.
‘나타난 일’은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속하나 ‘감추어진 일’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다(신 29:29). 하나님의 놀라운 뜻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다. 이 섭리는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지만 그곳에서는 오직 선한 것만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의의 유일한 법칙이며 가장 의로운 원인으로 여기고 겸손히 고백하며 그 분을 찬미해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섭리가 이러하므로 우리는 모든 책임을 면제 받게 되는가?
* 우리는 모든 것을 운명으로 돌리고 그저 눕고, 졸고, 쉴 것인가?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기도로 자신의 일을 이루심에 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이차적인 손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일을 이루심에 있다. 모든 것을 정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열심을 요구하신다.
*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미 정하시고 미리 아신다.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이 우주와 사람과 교회 위에 충만하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끝까지 다 정하시고 나그네와 같은 우리를 이끄신다. 다만 우리 심중의 계획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잠언 기자의 고백은 마땅하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이루시되 사람들을 자주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저자’(主著者)이시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하나님의 뜻이 제 일 원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이차적 원인’으로 사용하신다.
죄로 인하여 비참한 상태에 빠진 인류가 무엇으로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겠는가?
열심히 행하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 행위자는 얼마나 더 비참함을 느끼게 될 것인가?
‘여호와는 내편이시라’(시 118:6). 주께서 만사의 처음이요 끝이라는 고백과 그 분이 자신을 위하신다는 고백이 없이 행하는 자는 얼마나 곤고할 것인가?
경건한 사람의 위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아니면 어떤 일도 이루시지 아니하시되 그 뜻은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심에 있음을 믿는 고백에 있다. 우리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찬미함은 그 분의 뜻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충실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불변하다.
*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게 하셨으나 실상 그들을 구원하기 원하셨으니 그 분의 뜻은 변하지 않았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후회하심에 대한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창 6:6; 삼상 15:11; 렘 18:8; 욘 3:4, 10; 사 38:1, 5; 왕하 20:1, 5). 그러나 사울을 세우심에 대한 후회를 언급한 동일한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께서 사람이 아니시므로 자신의 뜻을 변개치 않으심을 분명히 하셨다(삼상 15:29).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실 자를 용서하시고 징계하실 자들을 벌하심으로써 자신께서 ‘영원히 정하신 바’를 성취하신다.
하나님께서 다양한 상황들을 조건으로 삼으시되 일의 끝을 이미 정하신 바대로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간혹 자신이 행하신 일에 대해서 후회하신다고 하시는 말씀을 사용하신 것은 그렇게 표현하심으로써 우리 인생의 능력에 맞추어 주셔서 깨닫게 하기 위함이시다.
* 만사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고 그 뜻은 항상 동일하다.
우리에게는 그 뜻이 다양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뜻을 변개치 않으신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 아니라면 사람도 천사도 아무 일을 행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패역한 무리와 이방인들의 손을 통하여서 자신의 유일하신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셔서 죽음에 이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자신의 아들을 내주셨다(행 2:23).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미리 알게 하신 것’을 행악자들의 손을 통하셔서 이루게 하셨다(행 3:18). 하나님께서는 사탄이라도 사용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가르침’을 구별해서 보아야 한다.
간혹 그 분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자신의 뜻을 마치 포기하시기라도 하시는 듯이 말씀하시나 실상 그 분의 뜻은 언제나 동일하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기경하셔서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배울 수 있도록 감화하심이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우리의 지혜는 우리의 마음이 겸손히 하나님께서 가르치실 만한 상태가 되어서 성경에서 가르쳐진 것은 무엇이든지 비난하지 않고 수납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결언:
하나님의 뜻(하나님의 말씀)은 만물의 최고 원리이다.
하나님은 친히 섭리하시되, 사람의 기도와 열심을 요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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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사전; 섭리(摂理): 1.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 2.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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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을 행하리라.
- 이사야 43:18-21 -
샬롬선교회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서언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참된 소망을 가지게 하시는 예언의 말씀이다. 특히 이 말씀에는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 예언되어 있는 것 같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 (이사야 43:19)
본문강해
[18절]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애굽의 왕 바로의 병거들을 멸하신 사건을 가리킨다.
[출애굽기 14: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할 새 일이 너무 크기 때문에 출애굽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셨던 크신 구원의 일 조차도 잊어버리라는 뜻이라고 보인다.
- 애굽에서 나올 때에 모세가 이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홍해의 물속에 난 길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광야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에도 여호수아가 이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차게 흐르는 요단강 안에 난 길로 건널 수 있었다.
하나님은 역사의 무대 안에서 놀랄만한 훌륭한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러나 그러한 과거사를 떠올리지 말라, 생각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라고 말씀하셨다.
[19-20절] "새로운 일"이란 그 뒤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으로,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낸다."는 것이다. "광야"에 내는 "길"(데레프 דֶּרֶךְ)는 단수이지만 "사막"에 내는 "강"(나하르 נָהָר)은 복수이다.
- 광야(황야)에는 길이 없어서 광야라고 한다. 황무지에는 강이 없기 때문에 사막이 된다. 그렇게 "광야"에 길을 놓고 "황무지"에 강을 흘려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새로운 일"인 것이다.
광야에 길을 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돌아오게 하는 것, 곧 그들의 포로귀환을 암시한다. 또 광야에 물들이 흐르게 하고 사막에 강들을 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심령의 회복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와 징벌로 인해 심령이 메말라지고 목말라졌을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생수를 주시고 기쁨과 위로와 소망을 주시고 진리의 지식과 깨달음, 영적인 위로와 만족을 주실 것이다.
- 20절에는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러한 일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부터 해방할 때에는 없었던 일이다.
그 이유는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라고 한다.
+ 본문에서 강조되는 것은 '물'(마임 מַיִם)이다.
- 하나님의 나라에서 "물"은, 하나님의 "생명" "진리" "기쁨" "하나님의 영"과도 관계하는 지극히 중요한 어휘이다. 게다가 흥미로운 것은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인 "에덴"(עֵדֶן)의 히브리어 의미는 "풍부한 물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이사야서에 있는 명확한 메시아 왕국에도 어김없이 "물"이 등장한다.
- "물"('마임 מַיִם)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는 584회 쓰이고 있는데, 이사야서 58회, 창세기 54회, 시편 53회 순이다. 위의 성구들은 모두 메시아 왕국의 도래와 관련된 예언인데 거기에는 반드시 '물'에 관한 어휘가 등장한다. "물", "강"(네할로트 נְהָרוֹת), "샘"(마우어 노트 מַעְיָנוֹת), "흐름"(이브레이 마임 יִבְלֵי־מַיִם), 그것들은 모두 복수형으로 나타나는 명사이며, "물의 풍부함"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물이야말로 모든 생물(사람, 동물, 식물)을 살리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또 그 "물"은 하나님의 말씀, 혹은 성령의 상징이기도 하다.
+ 마침내 찾아오는 메시아 왕국에는 갈증이 없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물과 그 흐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신천신지의 "거룩한 수도" "새로운 예루살렘"에도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있다(요한계시록 22:1).
- 물은 요한복음서의 중요한 주제이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7:38) - "성경에 이름과 같이"라고 되어 있듯이 이 축복은 이미 구약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어 언급되었던 것이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복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이사야 55:1)."라고 부르고 계신 것이다.
[21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목적을 다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과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동일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이다. [에베소서 1:6, 12, 14]
결언
(1) 우리는 하나님의 새 일을 알자.
"새 일" 곧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일을 나타낸다. 또 들짐승도 하나님을 공경할 것이라는 말씀은 이방인의 구원을 나타낸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아가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