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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 칼럼] 무슬림들은 무슨 기도를 할까?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루 세 번 식사할 때만 기도한다. 하지만 식사기도는 기도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부분이 있다. 식사를 위한 절차라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하기야 요즘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식사기도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기독교인은 하루 세 번의 식사기도에 새벽기도까지 도합 네 번을 기도한다.
무슬림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무적으로 정확한 시간에 맞춰 하루 다섯 번 씩 메카 방향을 향해 돌멩이를 놓고 이마를 땅에 대며 기도한다. 그들은 과연 무슨 기도를 하는 것일까?
무슬림들은 본인이 생각하는 기도내용으로 기도하지 않는다. 정해진 구절을 암송할 뿐이다. 이 구절은 매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것이며 앞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무슬림들의 기도내용은 코란 1장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을 ‘개경 장(Opening Chapter)’이라고 하는데 무슬림들은 기도할 때마다 2~3번씩 이 개경 장을 암송한다. 아침에 2번, 점심에 4번, 오후에 4번, 해질 때 3번, 밤에서 자정 사이에 4번 암송하는 것을 다 합치면 하루에 최소한 17번 암송한다.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에서 행해지는 공적, 사적인 중요한 행사의 모든 첫 순서는 공이 개경 장을 암송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2003년 성탄절 바로 다음 날 새벽에 이란의 도시 밤(Bam)이 지진으로 폐허가 되고 4~5만 명의 인명피해를 입었을 때 한국교회가 정성을 모아서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펼쳤다. 우여곡절 끝에 집이 완공 되어서 2005년 주민들에게 집을 넘겨주는 행사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 측에서는 한국교회 대표와 대한적십자사 등이 참석을 했고 이란 측에서는 시장과 시의원, 적신월사 대표 등이 참석을 했다.
그 때 한국교회 및 NGO 대표가 요구한 것은 “한국교회가 기독교인들의 사랑과 정성을 모아 지은 집이니까 어렵더라도 코란 낭송 순서는 생략하자”고 했고 밤 시장 이하 모든 분들이 흔쾌히 동의해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행사는 이란의 사회자가 진행했고 나는 통역을 맡았다.
그런데 이란의 사회자가 갑자기 코란의 개경 장을 암송하는 것이었다. 나는 통역을 할 수 없어서 멍청하게 서 있었다. 코란이 아랍어라서 통역을 할 만큼 이해 할 수도 없었지만 코란 낭송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고서 마이크를 잡자마자 개경 장을 낭송하는 것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개경 장은 총 7절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2. 온 우주의 주님이신 알라께 찬미를 드리나이다.
3. 그 분은 자애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4. 심판의 날을 주관하시도다.
5. 우리는 당신만을 경배하오며 당신에게만 구원을 비노니
6. 저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7. 그 길은 당신께서 축복을 내리신 길이며 노여움을 받은 자나 방황하는 자들이 걷지 않는 가장 올바른 길이옵니다.
지면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 구절들을 모두 주석을 달고 설명을 할 수는 없으나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7절에 있는 ‘노여움을 받은 자나 방황하는 자’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노여움을 받은 자란 유대인을 말하며 방황하는 자란 기독교인들 말한다는 것을 무슬림들은 어려서부터 귀가 닳도록 배운다. 최영길 번역 한국어 코란 주석에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세상의 모든 무슬림들이 매일 17번씩이나 의무적으로 암송하고 있는 구절이 유대교와 기독교와는 담을 쌓는 내용인 것이다.
그러니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이 말하는 ‘기독교인들은 우리의 친구이고 같은 신을 믿는 이웃이며 창조주의 말씀을 가진 경전의 백성으로 우리는 그들을 존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소리인가를 알 수 있다. 아무리 평화를 외치는 무슬림일지라도 그 구절을 매일 17번씩이나 외우며 유대교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인도해 달라고 알라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무하마드가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특별히 미워한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우상 숭배자도 코란이 거짓인 것을 알지 못한다. 성경을 미리 읽어 본 유대교도와 기독교인만이 그가 계시 받았다고 말하는 내용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내용인지를 분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하마드가 계시를 받았다고 말할 때마다 앞장서서 반박한 이들이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뿐이었다. 이 때문에 무하마드는 특별히 기독교인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의 계시를 거짓이라고 하고 무시하는 자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지나갈 수 없듯이 그들이 낙원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Q 7:40)
“진리가 나타나도 이를 거짓말이라 이르는 자처럼 악한 자가 더 있을까.”(Q 29:66)
“오 믿는 자들이여 나의 적도 그대들의 적도 벗으로 삼지 말아라.”(Q60:1)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 이렇게 씌어 있는데도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모르고 무조건 따라다니는 무지한 무슬림이든지, 알면서도 기독교인들을 속이는 무슬림이든지 둘 중에 하나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슬림들과 똑같이 우리도 벽을 쌓자고 한 것이 아니다. 그들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기독교에 대한 증오의 실상을 알고 지혜롭게 접근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런 이슬람의 실상을 알고 품어주는 것과 모르고 속아서 품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무슬림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무적으로 정확한 시간에 맞춰 하루 다섯 번 씩 메카 방향을 향해 돌멩이를 놓고 이마를 땅에 대며 기도한다. 그들은 과연 무슨 기도를 하는 것일까?
무슬림들은 본인이 생각하는 기도내용으로 기도하지 않는다. 정해진 구절을 암송할 뿐이다. 이 구절은 매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정해져 있는 것이며 앞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무슬림들의 기도내용은 코란 1장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을 ‘개경 장(Opening Chapter)’이라고 하는데 무슬림들은 기도할 때마다 2~3번씩 이 개경 장을 암송한다. 아침에 2번, 점심에 4번, 오후에 4번, 해질 때 3번, 밤에서 자정 사이에 4번 암송하는 것을 다 합치면 하루에 최소한 17번 암송한다.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에서 행해지는 공적, 사적인 중요한 행사의 모든 첫 순서는 공이 개경 장을 암송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2003년 성탄절 바로 다음 날 새벽에 이란의 도시 밤(Bam)이 지진으로 폐허가 되고 4~5만 명의 인명피해를 입었을 때 한국교회가 정성을 모아서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펼쳤다. 우여곡절 끝에 집이 완공 되어서 2005년 주민들에게 집을 넘겨주는 행사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 측에서는 한국교회 대표와 대한적십자사 등이 참석을 했고 이란 측에서는 시장과 시의원, 적신월사 대표 등이 참석을 했다.
그 때 한국교회 및 NGO 대표가 요구한 것은 “한국교회가 기독교인들의 사랑과 정성을 모아 지은 집이니까 어렵더라도 코란 낭송 순서는 생략하자”고 했고 밤 시장 이하 모든 분들이 흔쾌히 동의해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행사는 이란의 사회자가 진행했고 나는 통역을 맡았다.
그런데 이란의 사회자가 갑자기 코란의 개경 장을 암송하는 것이었다. 나는 통역을 할 수 없어서 멍청하게 서 있었다. 코란이 아랍어라서 통역을 할 만큼 이해 할 수도 없었지만 코란 낭송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고서 마이크를 잡자마자 개경 장을 낭송하는 것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개경 장은 총 7절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2. 온 우주의 주님이신 알라께 찬미를 드리나이다.
3. 그 분은 자애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4. 심판의 날을 주관하시도다.
5. 우리는 당신만을 경배하오며 당신에게만 구원을 비노니
6. 저희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7. 그 길은 당신께서 축복을 내리신 길이며 노여움을 받은 자나 방황하는 자들이 걷지 않는 가장 올바른 길이옵니다.
지면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 구절들을 모두 주석을 달고 설명을 할 수는 없으나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7절에 있는 ‘노여움을 받은 자나 방황하는 자’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노여움을 받은 자란 유대인을 말하며 방황하는 자란 기독교인들 말한다는 것을 무슬림들은 어려서부터 귀가 닳도록 배운다. 최영길 번역 한국어 코란 주석에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세상의 모든 무슬림들이 매일 17번씩이나 의무적으로 암송하고 있는 구절이 유대교와 기독교와는 담을 쌓는 내용인 것이다.
그러니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이 말하는 ‘기독교인들은 우리의 친구이고 같은 신을 믿는 이웃이며 창조주의 말씀을 가진 경전의 백성으로 우리는 그들을 존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소리인가를 알 수 있다. 아무리 평화를 외치는 무슬림일지라도 그 구절을 매일 17번씩이나 외우며 유대교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인도해 달라고 알라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무하마드가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특별히 미워한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우상 숭배자도 코란이 거짓인 것을 알지 못한다. 성경을 미리 읽어 본 유대교도와 기독교인만이 그가 계시 받았다고 말하는 내용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내용인지를 분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하마드가 계시를 받았다고 말할 때마다 앞장서서 반박한 이들이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뿐이었다. 이 때문에 무하마드는 특별히 기독교인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의 계시를 거짓이라고 하고 무시하는 자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지나갈 수 없듯이 그들이 낙원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Q 7:40)
“진리가 나타나도 이를 거짓말이라 이르는 자처럼 악한 자가 더 있을까.”(Q 29:66)
“오 믿는 자들이여 나의 적도 그대들의 적도 벗으로 삼지 말아라.”(Q60:1)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 이렇게 씌어 있는데도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모르고 무조건 따라다니는 무지한 무슬림이든지, 알면서도 기독교인들을 속이는 무슬림이든지 둘 중에 하나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슬림들과 똑같이 우리도 벽을 쌓자고 한 것이 아니다. 그들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기독교에 대한 증오의 실상을 알고 지혜롭게 접근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런 이슬람의 실상을 알고 품어주는 것과 모르고 속아서 품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