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선교원리  
Paul's Missionary Thought and Work

        -  배 정 양



           I. 들어가는 말

한국에 복음이 전파된지 이제 2세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세계 교회사에 기록될 만한 놀라운 성장을 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성령님과 말씀의 역사를 강하게 보여주셨는가?  그것은 이 시대에 한국교회를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실로 한국교회의 사명은 중대하다.  복음의 빚진자로써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교회에게 “가서 모든 족속들로 제사 삼으라”(마28:19~20)고 명령하심으로 이방인 전도를 정당화하셨다.  "이방인들에게 교회가 전도를 함으로써 예수의 전도는 완성되었고, 구약성경의 약속이 완전히 실현되었다".  마태복음의 핵심은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명령이다.  대 위임명령은 대 전환점이다.  "누군가 의식적으로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서 의도적으로 그 명령을 실현시켜아 한다.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분명히 세계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도의 직분이다:제자를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든 족속에게로 나아갈 때에야 가능한 일이다"  마태복음의 이 명령은 "이방의 체계적인 선교"를 위한 출발점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전도를 이스라엘에게만 한정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가르치심으로 세계 선교에 기초를 준비하셨다.  모든 족속을 제자 삼는 것은 복음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 위대한 사도요, 선교사인 바울을 통해 선교의 성경적 사상과 사역을 배우고 적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울의 선교 원리는 한마디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의존함에 있었다.  그는 성령께서 문을 열어 주시는대로 선교의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또한 그의 유명한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써의 전도방법이다.  그리고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 정책으로써 이것은 보다 많은 선교를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Ⅱ.본      론

1. 바울의 어린시절
   
바울은 수리아 안디옥 동북쪽으로 약 백여리 밖에 있는 길리기아 다소(Cilicia of Tarsos)에서 엄격한 전통적인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출생한 시기는 아마 유대 베들레헴에서 예수께서 사시던 때와 거의 같은  것 같다.  그는 가정에서 일찍이 유대교의 신앙과 전통적인 기본적 훈련을 받았다.  그의 부모는 바울을 감화력 있고 능력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면밀한 계획하에 학교교육을 시켰다.  그 초기의 교육은 대부분 유대교 신앙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에서, 또한 당대의 가장 위대한 랍비 중의 하나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우게 했다. 그의 부모의 계획은 조상적부터 섬겨오던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율법사가 소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유능한 젊은 바울에 대하여 예정하셨던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곧 하나님의 섭리는 바울로 하여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적 지도자가 되도록 하시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한 유대인의 랍비로서가 아니라 위대한 그리스도의 선교사로서 새로운 신앙을 로마 전국의 주요도시에 전하는 것이었다.  

2. 바울의 회심

처음에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모르고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스데반의 죽음에 가편 투표를 하고, 다메섹에까지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려고 하였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행9:1-2)고 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주님의 예정하심과 뜻을 이루시려고 작정하신대로 행하셨다.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을 향해 가고 있던 사울을 부르셨다.  다메섹에 가까이 갈 즈음에 하늘로서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추는지라 사울이 땅에 엎드러졌다.  그때 하늘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사울은 "주여 뉘시오니까?"하며 두려워 떨었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일를 자가 있느니라"  
그후에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겁없이 당당하게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려고 달려가던 사울은 이제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러가서 사흘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 때에 아나니아라고 하는 제자가 환상 중에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인데 그를 안수하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처음에는 아나니아가 대답하기를 사울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 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는 말씀을 따라 사울에게 안수하여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려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고 일어나 세례를 받았다.
이 다메섹 사건 이후로 바울을 "주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하는 주님의 부르심을 확신하여 생명을 걸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

3. 바울의 사도직분

바울의 사도로서의 사역은 무할례자인 이방인들을 위한 것있다(갈2:7,9).  바울은 회심의 때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행9:15, 26:16~18).  바울은 처음에는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 사회에서, 나중에는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역을 했으나, 결국 안디옥 교회의 선교 사역과는 독립적으로 전체 이방 셰계를 최종 목적으로 하여 그 자신의 선교 사역을 전개했다고 생각한다.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광범위한 사역과 서바나로 가는 도중에 로마를 바문하려던 그의 계획(행19:21)은 이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바울의 비전은 전 세계적이었다.  그의 선교여행은 그가 선교 사역을 수행했던 일련의 중심 지역을 설정해 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모사하고 있다.  이전에 기독교 복음의 거의 전해진 적이 없었던 지역에서 처음에는 고린도가, 다음에는 소아시아의 에베소가 중요한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그리하여 "이제는 이 자방에 일할 곳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고,  로마와 서바나로 옮겨 갈 수 있었다.  그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모든 것이 구비된 교회를 남겨 둔채 떠나써다.  새로운 교회가 설립되어 모든 것이 갖춰지면, 교회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끄어 가도록 했다.  바울은 분명히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신자들의 무리를 만들면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질서정연한 방법으로 이동했다.  바울은 새로운 교회들을 다시 방문했고, 임명된 장로들을 보았고, 더 많은 교훈을 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었다.  자울은 각 지방에서 적절한 교육을 하고 굳건한 토대 위에 서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오랜 기간을 체류했다.

바울은 회심한 이후부터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서도록 권고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를 느꼈다(행20:21, 고전9:16,19).  사도의 직분의 목적은 모든 이방인들을 믿어 순종케 하는 것이다(롬1:5, 6:26).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곤경은 바울의 선교에 있어서 동기가 되었다.  그는 사도로서의 사역을 수행하면서 변화하는 요구들과 환경에 그 자신과 그의 메시지를 적응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해 늘 개방적이었다.  사도로서의 그의 사역과 사상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선교사로서 타 문화에서 어떻게 전략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성경적이고 전략적인 안목을 제공해 줄 것이다.

4. 안디옥 교회의 파송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가운데 성장하던 안디옥 교회가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13:2)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게 되었다.  그날로부터 시작하여 위대한 선교사역은 시작되었고 각 지역으로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다.
이리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바울은 세계적인 선교의 역사를 이루고 안디옥 교회는 최초의 선교 본부가 되었다.  그후 약20년 동안에 36차례의 전도여행을 했고 4차는 로마로 간 것이 최종적인 전도여행이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복음은 각처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고,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5. 바울의 사상

바울의 선교 원리는 "첫째는 유대인에게"라는 점이다.  그러면 바울은 어떤 뜻으로 이 말을 사용했을까?  그것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소명이나 하나님의 보편성에 모순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점은 바울이 "첫째는 유대인에게"란 말이 우리의 선교가 언제나 유대인들에게 먼저하고 그후에 이방인들에게 하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이 종종 그 순서에 있어서 유대인을 먼저 꼽은 것은 구원사에 있어서의 그들의 위치 때문이지 시간적 순서를 말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대답은 특별히 로마서 9장에서 10장에서 자세히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되었고 또 이방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충만한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점이다.  사실 이 말씀은 대단히 난해한 구절임에는 틀림없으나 문맥으로 보아 "충만한 수의 이방인"에대한 해석은 그것이 과연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는 것인지 일부만을 말하는지 잘 알 수가 없다.  비록 전자의 경우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택한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하여간 바울은 처음부터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들에게 중점적으로 선교하였고 예수의 지상명령을 가장 조직적으로 실천한 유능한 선교사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다.

6. 바울의 사역

1) 1차 선교여행

바울과 바나바가 요한 마가의 고향인 구브로로 떠난때는 A.D.45년쯤이었다.  이들은 구브로섬에서 얼마동안 전도하다가 구브로를 떠나 소아시아 본도로 돌아왔는데 행  13:4 ~ 14:28을 읽어보면 제1차 선교일정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주의할 것은 바울은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함으로써 바나바와 바울의 위치가 바뀌어 바울과 바나바로 부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바울과 바나바, 요한 마가가 소아시아 본도인 산이 많은 해안에 상륙하자 요한 마가는 일행에서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후 바울과 바나바는 소아시아의 각 도시로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여, 새로운 교인들고 하여금 성령안에서 큰 기쁨을 얻게 하였다.  이처럼 복음이 널리 전파되자 차츰 유대인 권력자들의 반대가 심해져갔다.  그들은 선교사들과 새로 믿는 교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루스드라에서는 바울이 돌에 맞아 거의 죽게 되어 성밖으로 끌어내어 버림을 당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바울과 바나바는 다음 도시로 옮겨갔다.  이들은 여러달 동안 소아시아 각처로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다가, 바울의 고향인 다소성으로 가기 전에 다시 자기네들이 설립한 새 교회를 순방하였다.
이들은 새로 믿기 시작한 교인들에게 믿음을 굳게 지키며, 비록 반대와 핍박을 당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길을 걸어가라고 권고하며, 자기들이 없는 동안 교회를 다스려 날가 장로들을 임명하여 교회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여기서 보면 바울은 언제나 가장 청중을 많이 끌 수 있고, 또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회당과 성을 찾아다니면서 전도하였다.  그의 선교전략은 로마의 국토를 따라 여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고 효과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전도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대로 작은 도시나 시골까지도 교회를 세웠지만 바울이 특히 주도한 계획을 세운 곳은 가장 많은 사람을 접할 수 있고, 또 교회를 세워 놓으면 전도에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전략적인 중심지였다.  바울 일행은 소아시아에서의 전도사업을 마친 다음에 바로 안디옥으로 갔다.
제1차 선교여행을 마친 다음에 예루살렘 교회에 말썽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바울 일행의 선교로 많은 이방인들이 회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 사이에 말썽을 일으켰던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 교인들은 누구나  교회에 들어오려면 일정한 의식과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바울과 바나바는 이러한 절차나 의식이 필요치 않다고 주장하고, 또 사실 그것을 부시하고 이방인들을 교회에 들어오게 하였던 것이다.  행15장을 보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열렸던 예루살렘 회의의 기록이 있는데, 결과는 바울의 생애와 사역에 결정적인 전기를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에 대한 선교는 유대인의 전통주의나 의식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여전히 계속하게 되었다.  복음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의 복음이지 율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안디옥과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에 전한 복음이었다.

2) 2차 선교여행

바울은 1차 선교여행 동얀에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기 위하여 제2차 선교여행을 계획하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느냐, 안 데리고 가느냐의 문제로 인해서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그 결과 바나바가 요한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게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북쪽으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가서 교회들을 더욱 굳게하기로 하였다.
이들이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에 제1차 선교여행 때에 전도한 디모데가 자진하여 바울 일행에 참가하여 충실한 동역자로써 끝까지 활동하였다.  교회들을 순방한 뒤에 바울의 개척자적인 정신은 더 널리 개척전도를 소원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하면 북쪽에 있는 큰 지방 비두니아와 남서쪽에 있는 인구가 조밀한 아시아로 들어가서 전도할 생각이 불일 듯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은 그렇지 않았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바는 이 두 지방 사이에 있는 서쪽 지방으로 가라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성령의 지시하는대로 서쪽으로 가면서 전도하다가, 얼마후에 드로아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곧 소아시아의 서북 해안에 있는 고을이다.

여기서 바울은 환상 중에 "마게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18)는 부름을 받아 곧 유럽으로 건너가기로 작정하고 그 준비를 하였다.  이것은 선교발전에 중요한 시기였다.  복음은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  유럽에 있어서의 기독교 신앙의 첫 발자국 은 바울 일행의 제1세기 후반 초기에 빌립보, 데살로니가,베뢰아, 아덴 및 고린도 각지에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게 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나 바울 일행은 가는 곳마다 반대를 당하고 쫓김을 당하고 또한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또한 그들이 가는 곳마다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새로 설립된 교회들의 헌신과 충성심의 기념비라고 할만한 훌륭한 교회들과 열심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 꾸준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가장 효과를 거둔 곳은 마게도니아 교회들이었다.  곧 빌립보, 베뢰아, 데살로니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가 세운 어느 교회 성도들 보다도 그 믿음이나 생활이 거의 이상적인 것에 가깝게 보였다.  그래서 그 교회들은 어느 교회보다도 바울에게 큰 위로와 감명을 주었다.  그러나 고린도와 아덴에서의 반응은 이와는 전연 달랐다.  이들은 국제적인 도시이며 종교적인 도시이고 지식층이 많이 살고, 상업이 번성하는 도시들은 그 중심에서 기독교 교회를 창설하는데 격심한 문제를 일으켰다.  더구나 아덴에서의 전도같은 것은, 다른 어느곳 보다도 거의 실패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

다음에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을 끝낼 무렵에 에베소를 잠시 방문하고 하나님의 섭리로 후일에 다시 방문을 약속하고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바울은 안디옥과 예루살렘에서 얼마동안 아시아와 유럽에 있는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님의 크신 역사를 자세히 보고하고 제 3차 전도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였다.

3) 3차 선교여행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의 기간은 A.D.56년경부터 58년경까지로 본다.  이때의 노정과 선교활동 사역은 사도행전 18:23 ~ 21:15까지에 잘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제1차와 제2차 선교여행 중에는 소아시아의 희랍에서 오래 머물렀다.  아마 이 기간 중에 로마로도 가기를 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오랫동안 로마를 위하여 기도도 많이 했고 또한 로마로 가기를 매우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우선적으로 로마를 먼저 방문하지는 않았다.  이 전도여행 초기에 바울은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을 심방하고, 3차 여행의 말기에 이르러서는, 희랍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엿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다시 말해서 약 3년 동안이나 주로 큰 국제 도시인 에베소에서 지냈다.  에베소 도시는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여서 클 뿐만이 아니라 종교 도시로서도 유명하였다.  그래서 문제도 많이 일어났고 선교사역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바울은 심혈을 기울여서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3년동안의 생을 에베소를 위하여 바쳤다.  그리하여 그는 튼튼하고도 잘 가르침을 받는 교회를 에베소에 세우게 되었다.

그 외에도 바울은 이 기간 중에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밀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를 세웠는데 이곳들은 소아시아 남서부에 있는 도시로서 이 교회들은 바울의 동역자이며 아시아에 있어서의 후계자인 디모데가 책임 맡고 다스리게 되었다.
바울의 3차 여행은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아마 약간 단축되었던 것 같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으며 오랜 사역을 마친 뒤에, 희랍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하였다.  그리고는 다시는 에베소 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없으리라고 느껴져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 항구로 청하여 작별 인사를 하였다.  
이 때에 교우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위험한 일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적극적으로 만류했으나 바울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노라"고 굳은 결심을 말하고 떠났다.
이것으로 바울의 3차 여행은 끝났다.  이것은 사실에 있어서 바울의 자발적인 선교여행의 끝이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까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적의를 가지고 있었으며 유대인 기독교인 중에는 아직도 율법에 열성적이어서 바울의 선교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거의 10년 전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결의한 것을 반대하고 바울은 물론 전체 교회에 대하여 말썽을 일으켰다.  군중심리에 의해서 격분한 유대인들은 바울을 포위하고 성전 밖으로 끌고나가 치기까지도 했다.  만일 로마의 당국자들이 간섭하지 않았다면 바울은 죽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더욱 격분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했다.  유대인 지도자들과 폭도들은 음모하여 죄수 바울을 자기들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이 있었다.  결국 로마 관원은 바울을 가이사랴로 보냈다.  여기서 가이사랴의 총독인 벨릭스에 책임하에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2년 후 벨릭스의 후계자인 베스도가 총독이 되었을 때, 바울에 대하여 어떠한 결정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아그립바왕이 가이사랴에 왔을 때에 베스도는 바울을 왕에게 끌어내어 그의 변호를 듣게 되었다.
바울의 변호와 증거를 들은 왕은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다면 놓을 수 있을 뻔 하였다"고 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오랫동안 로마에 있는 교회를 방문할 길이 열리기를 위해 기도하였다(롬1:9~13).  그가 아직 예루살렘에 있어 앞으로의 전망이 매우 암담할 때에도 주님께서는 바울이 장차 로마를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다(행23:11).  가이사랴에서 옥에 갇힌지 2년 후에 바울은 로마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 자유로운 선교사로서 간 것이 아니라 사슬에 매인 환 죄수로서 간 것이다.  그는 난항을 거듭한 후에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상륙하였다.
그곳에 믿는 형제들은 그를 반가이 맞아 바울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그의 기도은 드디어 응답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로마에서도 옥중에 있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바울은 선교사역의 본을 세우고 개척하여 여러지방에 교회를 세웠을 뿐아니라, 자기가 세운 교회와 동역자들에게 서신을 보냈는데, 그 중의 몇은 의미가 심장하고 하나의 지혜와 섭리를 가르치는데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7.  바울의 동역자들

바울이 사역을 할 때 그는 철저히 동역자들과 팀 사역을 이루어 효과적으로 사역하였다.  그의 탁월한 사역이 가능할 수 있었던 그 배후에는 신실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 바나바

바나바의 어렸을 때 이름은 요셉인데 그는 한 레위인으로서 구브로 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일반에게 인정을 받아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행11:24)라는 칭호를 받았다.  교회에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항상 그를 내세웠고, 그는 또한 언제나 기꺼이 그 일을 받아 성의껏 하였다.  
바울로 하여금 사역을 할 수 있돌록 그를 추천한 장본인이었고, 안디옥에 데리고 가서 함께 사역하였다.  그러면서 항상 바울의 옹호자요, 협조자로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바울과 더불어 일을 하면서도, 바울에게 양보하면서 지원하고, 바울로 하여금 마음놓고 사역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2) 실  라

실라는 신임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회의가 끝난 후,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의 택함을 받아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을 가게 되었고, 바울이 바나바의 후임으로 그를 택하였다.  실라는 고난과 핍박을 무릅쓰고 바울과 함께 사역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 백성에게 전하여,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를 막론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일생을 바쳤다.

3) 디모데

디모데는 가정에서부터 신앙의 훈련을 잘 받은 청년이었다.  디모데는 바울의 1차 선교여행 중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듣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다.  디모데는 신실하고 정직하며, 또한 충성스러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다.  스승 바울의 가장 신임받는 유능한 협력자이며 동역자가 되었으며, 또한 능력있는 설교자와 유력한 감독이 되었다.

4) 그 외의 동역자들

누가는 바울이 "사랑받는 의원 누가"라고 불렀던 것 처럼 그는 매우 충성스러운 사람으로서 바울과 함께 어려움을 견디어 가며 일하였다.  
마가 요한 은 처음에는 경험이 적은 청년으로서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전도 여행에 함께 했었으나 중도에 낙심하고 두려워하여 포기하고 말았다.  그 일로 인하여 후에 제2차 여행 때 바울과 바나바가 결별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후에는 바울이 옥중에서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고 하였다.
그리고 디도, 빌레몬, 두기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아볼로, 데마 등이 바울의 사역을 도왔다.

 


           III. 마치는 글

바울의 선교원리는 한마디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는 성령께서 문을 열어주시고 인도하시는대로 선교의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내 의지와 내 계획이 아니라 철저히 주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
동시에 그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써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함으로 예수님의 성육신 원리를 그의 선교에 적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남의 터 위에는 건축하지 않는 정책으로써 아직 복음이 닿지 않은 곳을 찾아 선교하였다.  요즘 많은 선교사들이 대부분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현상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지나 동시에 미전도 종족을 향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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