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랴서 연구                                  


  먼저 이스라엘의 예언의 역사와 예언자들의 독특성에 대해 알아보고 스가랴서 연구에 들어가고자 한다.




  이스라엘 예언의 역사개요1)




  이스라엘 예언의 완전한 역사를 저술하려면 모든 예언 자료의 문학사나 전승사에 대한 세밀한 연구와, 예언자 신학의 철저한 검토, 그리고 우리가 계속 논의해 온 사회학적 문제들에 대한 체계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구약성서의 연구가 아직은 어떤 명확한 예언 역사를 기술할 수 있을 정도까지 진전된 것은 분명히 아니다. 많은 관련 논제들이 여전히 학자들간의 논쟁의 주제로 남아 있고, 자료의 빈곤과 복잡성으로 인해 시안적인 역사를 구성할 만큼의 충분한 합의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수집한 자료를 종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조사에서 드러난 몇가지 요소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1) 포로 이전 시대의 에브라임 예언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에브라임 예언자들의 다양한 사회적 기능과 본래 실로와 연관된 북쪽  레위 제사장의 변화하는 사회적 신분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이미 예언자들이 왕정 이전 시대에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던 것 같으나 왕정수립 이후로는 주변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단지 몇 가지 예외들이 히스기야와 요시야 재위 동안에 나타나는데 그 때에는 에브라임 유형의 예언자들(이사야, 훌다)이 중앙 체제에 소속되었던 것 같다. 에브라임 예언의 기능에 있어서 이러한 변천들은 우리가 실로(Shiloh) 제사장직의 역사에 대해서 아는 바와 대체로 부합된다.  실로는 왕정 이전 시대에 주요 성소였던 것 같으며, 에브라임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의 활동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왕정 수립 직전에는 그 성소 자체가 더 이상 중요한 제의 중심지가 아니었으며, 북쪽에서 야웨 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에브라임의 관할에서 옮겨가게 되었다. 동시에 실로의 제사장들은 에브라임의 종교생활 중심에서 차지했던 그들의 지위를 일시에 상실하게 되었다. 실제로 북쪽 제사장 중에서 실로 계통은 사울이 놉에서 제사장들을 살해했을 때 거의 멸절 되었는데(삼상22:11-19), 제사장들 가운데 아비아달이 도망쳐서 다윗에게 도움을 청했다. 후에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가져왔을 때 아비아달은 중앙 제의의 두 제사장 중의 하나에 임명되었으며, 그리하여 북쪽 제사장의 종교적 권력을 회복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솔로몬 시대 이후로는 계속되지 않았다. 솔로몬은 아비아들을 아나돗으로 추방했으며 사독 가문에게 성전 관할권을 주었다(왕상2:26, 27, 35). 그 이후로, 아비아달의 자손들은 예루살렘 종교 체제의 변두리에 존속했던 것 같다. 더구나 북쪽 왕국이 세워진 이후로도 역시 에브라임에서 주변적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여로보암이 주요 성소에 비레위족 제사장들을 임명했기 때문이다(왕상 12:31).


  오직 히스기야와 요시야 재위 동안에만 에브라임 족속이 예루살렘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회복하였다. 이 두 왕들이 옛 에브라임 신학에 일치하는 개혁을 실시하므로, 아비아달의 자손들은 이전의 종교적 권위를 회복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변하는 역할과 에브라임 제사장 중의 한 분파의 사회적 지위 사이의 밀접한 상관 관계는 이러한 레위 집단이 에브라임 예언자들을 지지하는 그룹을 형성했다는 윌의 초기 가설을 뒷받침해 준다. 만일 우리가 가정한 대로 이 특별한 레위인들이 에브라임/신명기 전승(Ephrasmite/Deuteronomic)도 전달했다면, 예언자들이 에브라임 문헌에서 그렇게 두드러진 역할을 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다.




  2) 포로 이전의 에브라임 예언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주변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에브라임의 예언관이 현재 성서 자료에 지배적으로 나온다. 신명기 사가들은 예언을 다루는 최상의 계율(규칙)을 제시했으며(신13:1-5, 18:9-22). 포로 이전 이스라엘 역사의 해설에서는 에브라임 예언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뿐만 아니라 유다 예언자들에 의해 쓰여진 많은 문서들은 포로기나 포로기 이후의 어느 때에 신명기적 편집을 받았던 것 같다.




  3) 에브라임 예언은 대체로 포로기까지의 독특한 종교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 이후로 에브라임의 예언 특성은 유다 체제가 만들어낸 자료에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포로기 이후 문헌에는 에브라임과 유다의 예언관이 혼합되어 나타나고, 개인적 예언자들은 언어, 혹은 행동의 근거로써 더 이상 어느 한 편만의 전통에 서 있을 수 없다.




  4) 포로 이전의 예언 활동을 묘사하는 이야기들은 대립 관계의 예언자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었던 것과 예언자들과 그들 사회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까지 계속되는 것 같은데, 그때 대립되는 신학적 , 정치적 당파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예언자와 사회 사이에 보다 많은 긴장이 있었다는 것은 예언자의 권위의 쇠퇴와 이스라엘의 예언활동에 대한 관용도가 점차 떨어짐을 암시한다.




  5) 포로기 이후의 문헌에서는 예언자 자신들이 포로 이전의 자료에서보다 현저하게 덜 나타난다. 그 결과 우리는 이러한 후기 예언자들의 행동 특성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으며, 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이름조차도 모른다(제2이사야; 말라기). 이렇게 예언자가 시야 밖으로 사라짐에 따라 예언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점차 문서에 의존하게 되었다.




  6) 예언 활동이 점차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문시적 활동이 증가된 것 같다. 원 묵시적(protoapocalyptic) 특징들이 후기 예언서에 나타나며, 묵시적 자료 모음이 이사야서나 에스겔서 같은 초기의 예언서에 첨가되어졌다.




  성경의 예언자, 그 독특함2)




  예언자는 세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존재인가?


  과연 어떤 사람을 일컬어 예언자라고 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은 비판적 학자들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작업도 아니거니와 또 그들의 관심사도 아니다. 예언자의 첫째 가는 중요한 모습은 그가 스스로 예언자임을 주장하는 것, 메시지를 남들에게 전달하라는 목적으로 지고자(至高者)가 몸소 자신에게 말씀하셨음을 스스로 증언하는 것, 결단과 지향이 초월자의 행위로서 그에게 임한 사건을 스스로 의식하는 것이다.


  다른 고대 종교들에도 그들의 무당과 점장이, 그들의 사제와 예언자, 그들의 현자와 영감받은 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의 무당과 점장이들은 무엇을 후대에 남겼는가? 만인을 위한 말씀이요 진리임을 스스로 주장하느 계시는 어디에서 왔는가? 혹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의 것임을 자처하는 음성은 어디서 들렸는가?


  이스라엘의 예언은 한 개인의 생애에 발생한 토막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역사 속에서 발생한 조명(照明)이다. 수세기에 걸쳐 진행된 사건들을 한데 묶은 경험의 사슬은 인류 역사에서 유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즉 예언자는 외톨이가 아니다. 그는 스스로 예언자의 대(代)를 잇는 사슬 고리임을 알고 있다. (아모스3:7f.; 2:12). "너희 조상들이 에집트에서 나오던 날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나의 종 예언자들을 줄곧 보냈다.” (렘7:25; 11:7; 25:4; 26:15; 29:19). 예언자는 선배 예언자들의 경험과 그들이 전한 메시지를 계승하므로써 그가 본 계시 또한 이전 예언자들이 보던 계시와 일관된 것임을 안다. 히브리 예언자는 창시자가 아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예언하는 행위, 계시가 나타나는 순간은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겪게 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서 모세까지, 사무엘에서 나단까지, 엘리야에서 아모스까지, 아모스에서 이사야까지, 예레미야에서 말라기까지 오랜 세월 뻗어내려 온 예언자의 선(線)은 그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스가랴 3)




  1. 인물과 시대적 배경




  스가랴라는 이름의 뜻은 ‘야웨가 기억하시다’이다.  마우츠(Mauch)는 구약성서에 스가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31명이나 된다고 보고 있다. 스가랴 1장 1절은 스가랴가 잇도의 손자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느헤미야 12장4절에는 주전 520년 스룹바벨과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온 제사장 명단에 잇도라는 이름이 수록되어 있으며, 느헤미야 12장 16정에는 스가랴가 잇도 제사장 가문의 수반으로 명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가랴가 제사장  가문 출신임을 알 수 있다. 뉴섬은 스가랴가 제의 예언자로서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제의 회복에 큰 공헌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스펠트도 스가랴가 제의 예언자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스미스도 스가랴를 에스겔과 마찬가지로 제사장 출신의 예언자로 보고 있다.


  쉬툴뮐러는 스가랴가 제사장 가문 출신이기에 그의 메시지가 성전의 청결(5 : 1-4)과 대제사장의 순결 문제(3장)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본다. 학개가 페르시아의 총독 스룹바벨에 강조점을 두었던 것에 비해 스가랴는 정치 지도자 스룹바벨보다는 제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메시아 왕국의 중심지도 성소인 것으로 강조되고 있다. (1:16, 4: 9, 6 : 12-13). 한편 스가랴의 예언자적인 변모는 고대 예언전승을 잘 인용하고 있는 데서도 볼 수 있다. 편집자는 스가랴를 ‘옛적 선지자들’과 이어주고 있다(1 : 4-6, 7 : 7,12, 8 : 9). 그리고 환상과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도 오래된 전통이라고 쉬툴뮐러는 설명한다. 왜냐하면 환상기사는 아모스(암7 :1-9)나 에스겔(겔40 : 3-4)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가랴의 예언은 동시대 예언자인 학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포된 신탁의 정확한 연대가 언급되어 있다. 스가랴의 첫 번째 신탁은 다리오왕 2년 8월(슥 1 : 1)이기 때문에(B,C 520년) 그것은 학개의 마지막 신탁이 다리오왕 2년 9월(학2 : 10) 에 선포되었으므로 그보다 한달 앞서 발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신탁의 연대는 다리오왕 4년9월(슥7 :1)로 되어있다(B,C518년). 그러나 학개가 스가랴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스가랴의 예언은 학개와 마찬가지로 성전 개전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한편 학개와는 달리 종말론적인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며 여기에 맞추어 묵시적 형태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이 특색이다.  쉬툴뮐러는 이 점에 관해 학개의 임박한 메시아 운동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가랴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래의 메시아 왕국을 내다보았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학개와 스가랴가 활동한 포로기 이후의 시대적 배경에 관해서는 고레스 칙령 이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까지 팔레스타인 주변 정세와 이스라엘 공동체내의 사회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필자가 이미「이스라엘 포로기 신학」에서 자세히 서술한 바 있다.4)  스가랴를 학개와 동시대인으로 보는 것은 스가랴 1-8장에 국한된 것이며, 9-14장의 경우는 그 시대적 배경이 다른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뉴섬은 그 시기를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재패하던 때라고 본다. 알렉산더 대제는 주전333년 이수스(lssus)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오 3세의 군대를 크게 물리쳤고, 332년에 두로를, 그리고 331년에는 이집느까지 점령하였으며, 326년에는 이집트에서 동부의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방대한 제국의 영토를 총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같이 전혀 다른 시기의 작품인 스가랴 9-14장이 어떻게 포로기 직후 작품인 스가랴 1-8장에 결합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 절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2. 스가랴서 형성과 구성


 


  스가랴는 12소예언서 중 제일 긴 책이다. 호세아서가 14장에 197절로 되어 있는데  비해 스가랴서는 14장에 211절로 되어 있다. 스가랴서는 또 12소예언서 중 제일 난해한 책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미스는 의의 스승이 오시기까지는 스가랴의 참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중세의 어느 랍비 말을 인용하고 있다.




  스가랴 1-8장의 예언은 그 선포된 시점을 기중으로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A. 다리오왕 2년 8월 (B,C. 520년) 1 : 1 - 6 서론


  B.          2년 11월 (B,C. 520년) 1 : 7 - 6 : 15 여덟 개의 환상


  C.          4년 9월 (B,C. 518년) 7 : 1 - 8 : 23 금식에 대한 설교


              :  메시아 시대의 약속




첫 번째 신탁은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신탁과 여덟 개의 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여덟 번째 환상에는 온 세상이 평화스럽고 그 때에는 학개가 예언했던 대로(학 2 : 20 - 23) 다윗 가문의 스룹바벨이 즉위하여 야웨 대신 통치하게 될 것을 그리고 있다. 백성들은 이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슥 8 : 13), 사이에 공의와 평화가(8 : 16)깃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명성은 온 열방에 퍼져 많은 이방인들이 몰려오게 될 것이다. “그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다.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8 : 23)


  스가랴서의 구성에 대해서 학자들은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제1에는 스가랴의 환상도 없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대한 언급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지도자인 여호수아나 스룹바벨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1 - 8장에는 스가랴가 4번이나 언급되지만 9 - 14장에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다리오왕이나 그밖의 어느 왕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문체면에서 스가랴 9장, 12장, 그리고 말라기는 모두 히브리어 ‘마사’(신탁)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어휘 사용법도 다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라다이(Radday)와 폴라체크(Pollatsheck)는 통계 언어학의 입장에서 스가랴서를 분석하여 문장의 길이, 음절, 조사, 특수 용어, 많이 사용되는 어휘 등을 조사해 본 결과 스가랴 8장과 9장 사이에 단절이 생겼다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11장과 12장 사이에는 분명한 단절이 보인다고 말한다. 스가랴 9 : 1 - 8절의 침입에 대한 언급을 알렉산더 대왕이 333년 팔레스타인에 침입한 것으로 보는 이들은 9 - 14장을 4세기 말에 쓰여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쉬툴뮐러는 스가랴 1 - 8장과 9 - 14장을 아래와 같이 비교하고 있다.


 

  슥 1 - 8 장

    슥 9 - 14장

연      대

520년  10/11월에서

518년  11월까지

아무런 연대 언급 없음

역      사

스룹바벨, 여호수아

다리오, 성전 재건

아무런 인명 언급 없음

저      자

스가랴 3인칭

무명

문      체

산문, 환상

시 형태, 한상 없음

묵시문학적 형태

분  위  기

평화적이며 안정적

군사적이며 불안정

종교지도자

존경함

부족하다고 판단

다 윗 왕 가

조용히 사라짐

복귀를 기대

메시아희망

제사장 통치

야웨 - 왕 통치








   차일즈는 스가랴 1 - 8장과 9 - 14장 간에는 아래와 같은 유사점이 있다고 본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성벽없는 예루살렘 성, 낙원의 풍요, 고대의 계약 약속,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열방의 회개, 포로들의 귀환, 새로운 시대를 위한 제사의식, 성령으로 깨끗케 하심, 메시아 인물. 차일즈는 편집자들이 이 같은 내용의 유사성을 고려해 스가랴 9 - 14장을 1 - 8장에 첨부했을 것이라고 본다. 스미스는 스가랴 9 - 14장은 스가랴의 작품이 아니라 분명히 다른 시기에 쓰여진 것이긴 하나 그 내용면에서 앞부분과 유사점이 있어 하나늬 책으로 결합되었다는 점을 시인하면서, 그런 면에서 스가랴 전체의 통일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최근에 간행된 주석으로 피터슨(Petersen)은 스가랴 1 - 8장만 다루고, 미아어스(Meyers)도 스가랴 9 - 14장은 5세기 작품이라고 보아 학개와 스가랴 1 - 8장만 하나의 책을 묶고, 9 - 14장과 말라기를 다른 책으로 묶고 있다. 그러나 스미스는 스가랴 전체를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 




  3. 스가랴의 주요 메시지




  스가랴는 학개와 더불어 포로귀환 공동체는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을 다시 짓고 또 다윗 왕조를 복위해야 하리라는 확신을 피력하고 있다. 뉴섬은 스가랴의 제의적 관심과 열성 때문에 그를 ‘제2성전 유대주의’의 창시자 중의 하나가 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스가랴는 학개와는 달리 그의 환상체험을 통해 색다른 신학적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스가랴는 ‘야웨께서 말씀하시기를’(1 : 4, 2 : 6)이라는 사자문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만 그보다는 환상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우선 그의 환상 속에는 천사와 사탄이 등장한다. 여덟 개의 환상에는 모두 천사가 등장하며 예언자가 본 환상의 내용을 설명해 주고 있다. 뉴섬은 스가랴에 천사들이 등장하는 것은 결국 에스겔이나 제의 문서에서 나타나듯 야웨의 위엄과 초월성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가랴의 하나님은 인간세계와 멀리 떨어져 계시지만 동시에 인간세계의 모든 일을 굽어 살피시는 무소부재으 하나님이시다. 야웨의 천사는 온 땅을 두루 다니신다(슥 1 : 11). 스가랴의 하나님은 더 이상 예언자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는다. 야웨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그 소릭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천사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왕래하면서 신의 뜻을 설명해 주게 된다. 스가랴는 대제사장까지도 하나님 보좌 앞에서는 사죄함을 받아야 할 처지임을 강조한다(3장). 스가랴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무릇 혈기있는 자들이 야웨 앞에서 잠잠한 것은 야웨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2 : 13). 스가랴는 또 예언자 중 유일하게 사탄을 언급하고 있다(3 : 1-2). 여기의 사탄은 여호수아를 대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도록 허락하신다.


  스가랴가 선포한 메시아 시대는 다윗 가문의 스룹바벨이 다스리고 레위 계열 제사장이 그를 보좌하여 이방인이 야웨를 찾게 되는(8 : 20)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적인 색체를 강하게 나타내지만 그래도 그 시대는 평화와 공의가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만군의 야웨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8 :19). 쉬툴뮐러는 스가랴가 학개처럼 임박한 메시아 시대를 주장하지 않고 보다 미래적인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예견한 것은 그가 보다 현실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포로기 이후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열방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이다.  스가랴는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뉴섬은 스가랴가 포로기 이전 예언자처럼 도덕적 순결을 강조하지 않는다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는 오히려 미래의 메시아공동체의 진실과 평화의 시대(8 :16)가 올 것을 예견함으로써 온 인류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제2스가랴는 예루살렘의 영광에 대한 예언적 약속(사 60 : 4 -7)이 실현되지 않으므로 인해 오는 공동체의 회의와 좌절감에 대해 야웨는 여전히 세상을 주관하시며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그의 백성을 보호하실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야웨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야웨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다”(14 : 9). 예루살렘은 야웨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영원한 도성이 될 것이다.




  제2스가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과 관련되어 제일 많이 인용되고 있는 책이다. 쉬툴뮐러는 신약성서에 인용되고 있는 스가랴를 아래와 같은 도표로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슥  9 : 9 - 마태 21 : 5,   요한 12 : 15

   11 :13 - 마태 27 : 9

   12 : 3 - 누가 21 : 24

   12 :10 - 요한 19 : 37,  요한계시록 1 : 7

   13 : 7 - 마가 14 : 27

   14 : 5 - 데살로니가전서 3 : 13

   14 : 8 - 요한 7 : 38

   14 :21 - 요한 2 : 16






  스미스는 스가랴의 대부분의 구절들이 초대교회에서는 메시아적 예언으로 이해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제롬(Jerome)이 1장 8절의 붉은 말을 탄 사람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라고 하는 알레고리적 해석을 하고 있다는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중세기의 이 같은 알레고리적 해석은 중교개혁 시절, 성서의 문자적인 해석의 발전과 더불어 지양되었으나 한국교회에서는 아직도 계속되고있는 실정이다.  스미스는 제2스가랴를 예수의 메시아 예언으로 직결시키는 것을 무리가 있다는 메이슨(Mason)의 견해를 소개한 뒤, 최근 브루스(F. F. Bruce)의 입장도 설명한다. 브루스는 예수가 스가랴 13장 7 - 9절의 목자와 흩어진 양, 9장 16절의 감사 할 줄 모르는 양떼, 9장 9 - 10절의 너의 임금을 보라, 14장 4절의 주의 날, 11장 12절의 은 30냥, 12장 10절의 창에 찔린 사람, 14장 4절의 장사꾼을 성전에서 쫓아내는 등의 구절을 통해 예수 자신의 메시아성을 새롭게 해석했다고 보고 있다.  초대 그리스도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구약성서의 메시아가 이루어졌다고 해석한 것이다. 구약성성의 메시아 해석은 구약성서 입장에서 주어진 본문이 예수에 대한 메시아 예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의 입장에서 구약의 메시아 예언이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스가랴 8 : 14 - 19




  스가랴 7장과 8장은 스가랴 예언의 결론이다. 쉬툴뮐러는 7장에서 사히 불의를 공격하며 8장에서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이 같은 낙관론적인 결론은 편집자가 첨부시킨 것이지만 이 편집자는 예언전승을 잘 이해하고 성전 봉사자들에게 인정받는 권위있는 인물일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또 7 - 8장은 1장과도 밀접한 관련을 짓고 있다. ‘옛적 선지자들’은 1장 4 - 6절에 언급되었고 동시에 7장 7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으며, ‘열방’도 1장15절과 8장 22 - 23절에 반복되고 있다.


  쉬툴뮐러는 8장이 열 개의 짧은 설교로 구성되었다고 본다(1-2, 3, 4-5, 6, 7-8, 9-13, 14-17, 18-19, 20-22, 23). 그는 이 중 제일 긴 9-13절 같은 설교는 성전설교의 유형을 띠고 있다고 본다.  스가랴 8장은 야웨가 성전에 계시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8장의 마지막 절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23절). 야웨는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실제로 성전에 임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공동체 안에 있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까지 관심을 가지신다.


  스가랴는 8장 14절에서 ‘만군의 야웨가 말하노라’라는 사자문체를 사용하여 야웨가 전에는 이스라엘 열조에게 벌주시기를 계획한 것을 그대로 시행하셨으나, 이제는 그 뜻을 돌이켜 이스라엘을 위해 ‘은혜’로 번역한 어구가 히브리 분문에서는 ‘선을 행하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용어는 계약관계에서 사용되는 어구라고 보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주어진 것이다(15절). 피터슨은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지적한다. 그것은 야웨가 전에는 주어졌다는 것이다. 피터슨은 야웨가 왜 그의 뜻을 바꾸었는지 스가랴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아마도 예루살렘이 야웨의 거주지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스가랴는 하나님의 축복이 실현될 것은 확실하지만 그 성취의 시기와 장소는 백성들의 반응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사회정의와 성실한 마음, 그리고 야웨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17절). 이것은 성문 앞에서 이루어지는 공공연한 법적 재판이나 또는 개인간에 이루어지는 상거래에 있어서도 정직과 성실이 전제되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는 죄와 재난으로 인해 슬퍼하던 종교적인 금식일이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될 것이다. 크레기는 당면한 현상 세계를 뛰어넘는 스가랴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환상이 구체적으로 18절과 19절의 금식의 절기가 희락의 절기로 바뀐다는 메시지를 선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금식일에는 과거의 그들 역사에 일어난 예루살렘 성전 파기와 같은 비극적인 사태를 기억하는 날이었으나, 스가랴는 과거에만 집착하면 자기 연민이나 동정으로 끝나지만, 앞날의 희망을 내다본다면 강한 믿음과 열성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스가랴는 슬픔의 날을 기쁨의 날로 바꿀 것을 주장한 것이다. 스가랴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근거로서 진실과 화평을 제시한다. 진실은 예루살렘의 패망을 자초했던 모든 거짓된 생활을 청산할 수 있으며, 화평은 계약의 하나님 야웨가 그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요소만을 간직하면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스가랴 13 : 7 -9


 


  스가랴 13장 7 - 9절은 환난의 시기가 끝난 다음 찾아올 희망과 구원에 대한 종말론절인 신탁이다. 야웨는 자신으 칼을 불러 심판을 내리시며 그 결과 삼분의 일만 남게 되며, 그들은 불로 고난을 받은 뒤 야웨의 이름을 부르며 야웨와 새로운 계약을 맺게 될 것이다.


  심판의 날이 닥치면 지도자인 목자는 넘어지고 백성인 양떼들은 흩어질 것이다. 본문의 목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핸슨(Hanson)은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 공동체 사제 집단의 지도자인 제사장이라고 보지만, 스미스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라고 본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는 길에 이 구절을 인용하시며 자신을 목자로 이해하신 것이다(막 14 : 27). 쉬툴뮐러는 그런 면에서 이 구절은 승리와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메시아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본다.


  스바냐는 목자가 쓰러지면 양떼들은 흩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크레기는 나쁜 정부는 선한 백성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친다고 본다. 쉬툴뮐러는 왜 선한 사람들이 악한 자들의 죄 때문에 함께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본문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고 본다. 다만 철강이 시련을 통해 강해지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택한 남은 자들은 야웨와의 새로운 계약관계를 수립하게 될 것이며, 이 같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관계는 스가랴가 내다본 새로운 시대의 묵시적 환상이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과 사회 / 예찬사 / Robert R. Wolson / 최종진 역. 1992 .4. 10


예언자들 (하) / 종로서적 출판사 주식회사 /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 이현주 역. 1988.5.30 pp 285-286


히브리서 예언서 연구 / 대한 기독교서회 / 장일선 . 1993.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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