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서 연구 1

<개요>

“묵은 땅을 갈아 엎고 정의를 심어라.”(10, 12)

격동의 세기를 살아간 북이스라엘의 예언자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몰락을 바라보며 온몸으로 예언한 사랑의 예언자입니다.
여로보암 2세를 정점으로 몰락으로 치닫는 북이스라엘의 정치·사회·종교적 현상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호세아는 지배계층의 타락과 외세의존정책, 그리고 야훼종교의 바알화가 결국 파멸의 원인이 될 것임을 명백히 선언하였습니다.

출애굽할 때 광야에서 야훼와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은 청순한 신부 같더니 가나안에 들어서자마자 호세아의 아내가 호세아를 버리고 정부를 따라 나선 것처럼 야훼를 배신하고 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에게 정조를 바치고 우상과 단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매춘부같은 이스라엘 위에 야훼의 심판이 불같은 분노로 임하지만 호세아가 간통한 자기 아내를 지극한 사랑으로 다시 데려오듯 야훼의 애절한 사랑이 분노의 심판을 이기고 이스라엘을 새롭게 다시 세워 줄 것을 약속합니다.
정의와 공평, 뜨거운 애정과 진실에 입각한 계약의 갱신, 이것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향한 야훼의 변함없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사랑의 분노는 이 분노를 넘어서는 사랑의 메시지가 한데 어우러져 호세아의 불행한 결혼과 쓰라린 그의 삶을 통해 당 시대를 메아리치며 오늘 우리 세대를 향해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호세아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온 몸으로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할 자 누구이겠습니까?

“지혜가 있거든 이 일을 깨달아라. 슬기가 있거든 이 뜻을 알아라.”(14, 10)


1. 서론

70년대는 아모스를 많이 보았지만 80년대는 호세아와 예레미야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서는 우리의 상황 속에서 읽는 것이므로 상황이 변함에 따라 성서는 늘 재해석 되어야 마땅합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교가 나아가야 할 좌표 설정을 모색하면서 우리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성서를 재해석하고, 단지 객관적 지식의 섭렵에 그치는 것이 아닌 고백적인 공동체적 삶의 차원에서 성서를 보려고 합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최종적 결론이 아닌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하나의 과정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2. 본론

1) 정치사적 배경 ― 북왕조의 몰락

(1) 역사적 배경

B.C. 8세기, 북이스라엘의 예언자 호세아가 활동한 역사적 배경은 여로보암 2세 통치말기부터 북왕조의 멸망 때까지 북왕조의 쇠퇴기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여로보암 2세 시대에 이스라엘은 내전문제로 세력이 약화된 이집트와 앗수르의 세력적 공백 속에서 정치적 안정과 군사적 승리, 영토확장, 활발한 국제무역으로 인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다윗-솔로몬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안정과 성장 내면에는 급격한 사회구조의 변화가 수반되었는데 무엇보다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따른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소수의 부자들이 당시 사회의 지배계층을 형성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신앙 전통상 평등과 자유의 토대위에 있던 계약공동체가 깨졌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정체성의 위기(Crisis of Identity)를 맞은 이스라엘은 풍요 속에서 득의와 자만에 빠져 그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새로 일어나는 아시리아의 세력을 인식치 못한 채 안으로부터 해체의 과정을 밟습니다.
그리하여 한때 최대의 판도를 자랑하던 여로보암 2세의 태평성대가 그의 죽음으로 끝나자마자 이스라엘은 무서운 혼란을 겪으며 채 25년도 안되어 역사위에 그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그 25년이란 한마디로 음모와 무정부 상태의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 혼란상은 여로보암 Ⅱ세 사후 10년간 왕이 5명이나 바뀌고 그것도 그 중 3명은 쿠데타로 왕위를 빼앗은 데서 여실이 드러나며 이러한 폭력적 정권 탈취는 쓰러져가는 이스라엘의 죽음을 재촉한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들 즈가리야는 즉위한지 6개월만에 살롬에 의해 암살당하고 살롬은 또 6개월만에 므나헴에 의해 숙청되었습니다.
므나헴이 왕위를 탈취한 해에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이 침공해 들어오자 그는 정치적으로 북부지방(갈릴래아)을 바치고 “왕의 자리를 지키도록 도와달라”(열왕기하 15, 19)고 하며 막대한 공물을 바쳤습니다.

그의 대내적인 야만적 폭력정치와 대외적인 굴욕적 유화정책은 정권유지에 성공을 거두어 10년 동안 왕좌를 지킬 수 있었으나 그의 종속적 굴욕 외교는 이스라엘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반앗수르 감정을 촉발시켰습니다.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위에 오르지만 반앗수르파인 베가가 그를 살해하고 집권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정책은 반앗수르 정책으로 전환되었고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반앗수르동맹이 체결되었습니다.
남유다가 이 동맹에의 참여요구를 거절하여 시리아와 에브라임의 연합전쟁이 일어났는데 이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몰아가는 전쟁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공격받은 유대왕 아하스는 앗수르에 원조를 청함으로서 결국 외세의 개입을 자처하였습니다.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는 즉각 출병하여 시리아를 정복하고 이스라엘도 이에 굴복해야 했습니다.」

멸망 직전에서 앗수르의 신임을 받은 호세아에 의해 베가가 살해됨으로서 잠시 위기를 넘기지만 결국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 앗수르에 충성하던 호세아는 무거운 조공을 감당키 어려워지자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가 죽고 살마네셀 5세가 등위하자마자 소국가들과 연맹을 맺고 앗수르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호세아는 일면 이집트의 원조를 기대하였지만 그것은 정세판단의 오류였고 곧 호세아는 앗수르에 의해 체포되며 3년동안 격렬히 방어하던 사마리아도 마침내 B.C. 722년에 함락됨으로써 북이스라엘은 200년 역사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피정복지에 대한 앗수르의 철저한 민족주의 말살정책에 의해 27,280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대신 제국의 여러 지방 주민을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주시켜 이스라엘은 혼합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라는 남북왕조 분열 이후 북왕조 최대의 전성기가 점차 그 허실을 드러내면서 계속되는 쿠데타와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몰락으로 치닫는 시기에 예언한 예언자입니다.
우리가 70년대에 아모스를 많이 읽은 이유는 여로보암 2세라는 북왕국 최대의 전성기의 허구성에 대한 너무나도 분명한 비판이 아모스서에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의 예언이야말로 70년대의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녹아나고 있던 우리에게는 가장 분명한 예언의 목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80년대에 들어서서 호세아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호세아가 바로 아모스 시대의 그 ‘번영과 성장’이 어떻게 결론을 맺는가를 지켜본 예언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더이상 정통성을 간직할 수 없는 계약이 파기된 공동체로 전락하였고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간통한 아내 이스라엘을 향해 ‘돌아오라’고 외치는 호세아의 절규를 들으면서 우리도 우리의 위기의식을 절감하여야 하겠습니다.
[참고 : 80년대 ‘광주사태’ 이후 우리 사회의 현실과 일본의 신군국주의와 미국의 개방압력과 같은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정세의 변화를 보면서 우리는 외형적 성장추구와 외세적 개입이 결국 국가를 멸망으로 인도하였던 북왕국의 역사와 우리의 현실을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종교적 상황 - 야훼종교의 바알화

호세아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종교적 타락입니다.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에 정착할 당시 가나안 지방의 지배적인 신은 바알이었습니다.
바알은 풍부한 다산(多産)의 신이며 땅의 성장과 소출을 관장하는 농경의 신이었습니다.
이 바알의 아버지는 엘(EL)신이었지만 가나안 신전의 실권자는 바알로 나타나며 다른 신들 위에 으뜸가는 왕으로 군림합니다.

바알의 의미는 아내와 종의 주인, 그리고 풍요로운 대지와 가축의 주인입니다.
바알종교의 의식은 땅의 풍요를 비는 의식으로 하늘의 남신과 땅의 여신의 교섭으로 묘사되었고 구체적으로 신전의 성창(제의창녀)과 제사장이 성행위를 함으로써 예배의 절정에 도달하였습니다.
특히 신년축제 때에는 점을 치면서 결혼 적령기의 처녀들이 사제들에게 몸을 바치며 새해의 풍년을 빌었는데 이처럼 제의에서 행해지는 성적결합의 행위는 아마도 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에 있어서 생식의 힘을 증진시키려는 상징적인 행위로서 되어진 것 같습니다.
비가 대지의 비옥도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가나안 지역에서는 바알이 어머니, 대지 위의 남편으로서 즉 바람과 구름 그리고 그의 정액으로서 대지 위에 떨어지는 비와 관계있는 신으로 생각되어진 데서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가나안 사람들에게서 농사짓는 기술을 배운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사의 풍요를 약속해주는 바알제의의 의식에 쉽게 빠져들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사실 자연계에 대한 바알의 권위는 너무나 절대적인 것이어서 이스라엘 사람들까지도 그의 생산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급속도로 바알종교에 물들어 갔는데 그들이 희생제사에서 바알로서 경배한 야훼는 벧엘이나 사마리아 같은 중앙성소에서는 주철로 만든 송아지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송아지상은 왕국이 남북으로 갈린 후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야훼 종교의 상징으로 세웠던 것이지만 백성들에게는 그것이 바알 종교의 상징인 황소와 동일시 되었고 백성들은 주저없이 경배하며 입맞추었습니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권에서 송아지는 풍요의 전형이었고 그 강한 생식력으로 바알을 상징하였던 것입니다.

바알종교가 이스라엘에서 결정적으로 깊숙히 침투한 것은 아합왕이 페니키아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한 후입니다.
아합왕은 아내 이세벨을 위해 바알의 신당을 짓고 이세벨이 페니키아에서 수많은 바알 예언자들을 데려와 녹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이 바알종교와 외로운 투쟁을 위해 야훼종교의 승리를 가져오지만 바알종교의 침투는 너무나 집요하여 근본적으로 막지 못하였으며 예후혁명의 과감한 조처로도 근절시킬 수 없었습니다.
여로보암Ⅱ 시대에 와서 바알종교는 야훼종교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종교가 되었고, 중앙성소 뿐 아니라 지방성소에까지 야훼종교의 바알화는 심각하였으며 이스라엘은 형식적으로만 야훼를 섬기고 내용적으로는 바알을 섬기는 혼합종교의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의미에서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풍요와 다산, 성장 이데올로기를 수용하였다는 의미에서 계약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은 그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해방 후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수많은 신흥종교가 대부분 성(性)과 깊은 관계를 맺고 하나같이 풍요와 다산을 비는 종교라는 사실과 한국교회 안에조차 이 물결이 깊숙히 들어와있는 상황이 오늘 우리로 하여금 호세아 시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2) 호세아서의 특징

예언서에 대해 일반적으로 전제되는 점은 먼저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다양한 신학적 전통에 의하여 영향받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 신학적 전통은 일정한 지원그룹에 의해 보존되고 예언자들은 이 지원그룹의 기대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호세아가 주전 8세기 예언자 중 유일하게 북왕국 출신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라는 점은 그가 에브라임 전승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에브라임 전승은 다윗 전승과 대조되는 모세 전승을 이어받고 있으며 E전승(Elohist 전승)으로도 불려집니다.
에브라임 전승은 모세를 예언자로 봄으로써 반제국주의적 전통을 이어받고 예언자를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 봅니다.
호세아도 “야훼께서 한 예언자를 시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려내 오시고 그 예언자를 시켜 지켜주셨다(호세아 12, 13)”고 단언함으로써 이 전승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다윗전승은 우주적이고 정적이자 영원성을 강조하는 반면 모세 전승을 이어받은 에브라임 전승은 구체적이며 운동적입니다.
이 두 전승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관계로 이스라엘 역사에 두 요소로 작용하였으며 상호보완적 관계를 지녀왔습니다.
전승사적으로 호세아는 에브라임 전승의 정수 중의 정수이며 북왕조의 멸망 이후 에브라임 전승은 지하전승으로 유대로 흘러들어가 미가를 거쳐 예레미야에서 다시 꽃피웁니다.

호세아서를 보면 그만큼 모세 시대를 깊이 이해할 예언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출애굽, 광야생활, 호렙산에서의 계약, 가나안 정복 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자기 시대의 사건과 상황을 조명하였습니다.
호세아는 그 개인에 대한 정보를 거의 남기지 않아 그의 출신이 북왕국이라는 것과 아버지가 브메리, 그리고 고멜이라는 여자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았다는 이야기밖에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도망간 자기 아내를 다시 데려오는 몸값으로 은 열다섯세겔과 보리 한 호멜반이라는 적은 액수를 지불한 점과 부정직한 상인들에 대해 적대적이었다는 것은 그의 계급적 위치가 하층임을 짐작케 하며 왕과 예언자 사제들에 대한 그의 철저한 비판과 그를 보고 지배층이 “이 어리석은 예언자야 신들린 미친 녀석아(9, 7)”라고 한 것은 그가 변방예언자에 속함을 예증해 줍니다.
한편 지명이나 인명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아모스와 달리 호세아는 민중들의 유언비어같은 구전으로도 은유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고 아모스가 사회적 불의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호세아는 종교비판을 그 중심에 놓고 사회비판을 하였습니다.
호세아의 종교비판은 아모스의 사회비판보다 더 과격하고 충격적인 사회비판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존재 기반은 그들의 야훼신앙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종교비판은 가장 본질적인 것에 대한 비판인 것입니다.
호세아의 종교비판은 사회전체가 합의한 계약이 파기됨을 지적한 것으로 이것을 이스라엘의 간음으로 묘사했습니다.

3) 호세아의 결혼과 계약

호세아는 특이한 형태로 소명을 받습니다.
그가 야훼로부터 받은 첫 소명은 창녀와의 결혼이었습니다.[“너는 바람기 있는 여자와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아라(1, 2)”]
예언자는 입으로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몸으로, 구체적인 삶으로 예언합니다.
호세아에게서도 그의 어처구니 없는 결혼이 그의 메시지입니다.
호세아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곧 고멜과의 결혼입니다.
이 이야기는 1장과 3장에 나오는데 1장이 3인칭의 전기이고 3장이 자서전적인 1인칭 서술문이어서 1장과 3장의 여인이 같은 고멜인가가 의심받고 있지만 일단 호세아의 전체 문맥상 같은 여인으로 간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호세아는 야훼의 소명을 받고 고멜과 결혼하여 첫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그 첫 아들은 예후가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벌인 장소의 이름을 빌어 이즈르엘이라고 부름으로써 예후 집안에 대한 심판을 상징하였고 둘째 자녀인 딸을 도루하마 곧 ‘사랑을 받지 못한 자’로 이름지어 야훼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을 거두었음을 선언하였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태어난 아들은 ‘내 백성이 아니다’란 의미의 로암이라고 지어 야훼께서 이스라엘과의 계약관계를 끊어버렸음을 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호세아의 결혼과 자녀 이야기는 전적으로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관계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계약을 결혼에 비유하여 해석한 예언자는 호세아가 처음이며 이에 영향을 받아 예레미야도 같은 의미로 결혼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12지파가 야훼신앙을 중심으로 연합한 동맹체이자 계약공동체입니다.
출애굽이 이 계약의 바탕이며 광야에서 야훼와 이스라엘이 계약을 맺음으로써 둘의 관계는 성립하였던 것입니다.
계약은 피의 계약으로 한 쪽이 계약을 어기면 죽음을 의미합니다.
구약에 있어서 계약의 문제는 생명의 문제이며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공동체는 계약에 의해 묶여지고 개인은 이 공동체에 참여할 때에만 생명을 보장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로부터의 이탈은 계약파기이며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야훼와의 계약파기는 이스라엘의 자기파멸로 결과되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자기를 배반하고 간음하듯 이스라엘이 야훼를 버리고 바알을 따르는 것은 곧 간음이요, 계약파기로서 이 때문에 당대 이스라엘의 모든 문제가 생겨났으며 파멸이 닥쳐올 것이라고 호세아는 선포하였고 구체적으로 자기 자식의 이름을 통해 증거하였습니다.

계약이란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성립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불신하고 풍요의 신 바알을 신뢰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형식적인 제사와 제물에만 만족하는 것을 보고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헤세드)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다오.
(6, 6)”하면서 충실한 사랑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헤세드(사랑)와 하느님께 대한 지식은 하느님과의 계약의 내용입니다.

여기의 지식은 오늘날의 의미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 지식은 계약전승에 관한 인식적 지식이자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전인적인 응답이며 하느님의 역사참여에 대한 동참입니다.
야훼만이 참 하느님이요 절대이며 역사의 주관자임을 알 때 현실의 절대적인 억압체제를 뚫고 나갈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지식이 없어서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호세아는 지적합니다.(2, 10)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의 여론이 분열된 것은 하느님의 역사에 대한 바른 지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일제 말엽 한국교회가 신사참배에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한 것도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던 현실의 일본 제국주의 세력을 절대화하고 야훼 하느님의 절대 주권을 신뢰하지 못한 데서 연유합니다.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고 약속을 주시며 우리를 불러내 주시는 하느님을 아는 것이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입니다.
이 약속을 믿는 자만이 절대적인 것 같은 현실을 상대화시키면서 그 우상의 실체를 벗길 수 있는 역사적인 눈을 갖습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안목을 우리는 ‘신앙적 역사의식’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란 하느님이 누구냐라는 것에 대한 철학적 지식이 아닌 하느님이 구체적인 이 현실 속에 어떻게 개입해 들어오시는가, 하느님이 현재 어떻게 활동하시는가에 대한 역사적 지식입니다.
무지한 이스라엘에게 호세아는 자신의 결혼과 자식을 통해 이스라엘의 계약은 파기되었음을 선포하고 야훼의 심판이 닥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7, 13)

처음에는 자식들에게 자기 어미를 고발하라고 촉구한 것을 보아 어미 세대를 자식 세대가 극복하기를 바란 것 같으나(2, 4) 자식들도 바람 피우니 조금도 불쌍한 데가 없다(2, 6)고 곧이어 실망하고 맙니다.
이러한 세대 문제는 8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70년대의 유산을 극복해야 할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제 회개와 계약 회복은 기성세대나 자식세대에 의해서도 더이상 불가능해졌습니다.
오직 야훼에 의해서만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호세아서 3장에서 호세아가 몸값을 지불하고 자기 아내를 다시 아내로 맞아들이듯 야훼께서 무너진 계약을 다시 회복시킵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찾아오는 모습이 여기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은 일정기간동안의 단절을 필요로 합니다.
회복의 조건으로 3장 4절에 오랫동안 ‘왕도 대신도 없고 희생제물도 석상도 없으며 에봇도 수호신도 없이 지낼 것이다’고 한 것은 계약파기의 원인이 이것들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나타내줍니다.
다음에서 우리는 계약파기의 상황을 호세아의 메시지를 통해 구체적으로 연구할 것입니다.
4) 호세아의 메시지 - 심판과 구원

(1) 계약파기의 상황

① 지배계층

에브라임 전승은 자유와 평등의 계약공동체 이상에 강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지배계층에 대해 생리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왕권수립 과정에서의 반왕정파의 입장을 대변한 E전승은 왕권의 강화에 따라 지하전승으로 스며들어 흐르다가 엘리야와 엘리사 때 강력하게 솟아오르고 그 후 아모스와 호세아에 의해 힘차게 표출되었습니다.
먼저 호세아는 사제들, 예언자들 그리고 왕족 등 지배층은 법을 세워야 할 책임적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스스로 악을 조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공박하고 있습니다.(5, 1-3)
정치적·종교적 지도자들은 정치적 부패와 혼란, 그리고 야훼종교의 바알화에 앞장섬으로서 결정적으로 계약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호세아는 암살과 음모가 난무하는 비참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궁중 내부에서는 간신과 정상모리배들이 작당하여 음모와 모략이 판을 치고, 잇달은 테러와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무절제한 방탕과 향락이 극에 달하여 정치는 공백상태에 빠져버리고 정치 지도자들은 백성을 위한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정권 탈취에만 몰두하게 되므로 정치의 단절현상과 무정부적 혼란만 극심하였습니다.(7, 3-7)
지배계층의 폭력성과 부패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정치적 야욕을 채우기 위해 음모와 폭력을 휘두르는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호세아는 혐오를 보내고, “내가 세우지도 않은 것을 왕이라고 모시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대신이라고 받들며, 은과 금으로 우상을 만들어 제발로 죽을 땅에 걸어 들어가는구나.”(호세 8, 4)하면서 정권의 정통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해 버립니다.
국민적 합의와 계약적 토대없이 오로지 힘에 의해 지탱하는 정권에 대해 “너희가 병거를 믿고 군인이 많다고 우쭐대지만 바로 그 때문에 너희 가운데서 반란이 일고 요새가 모조리 함락되는 것이다.”(10, 13-14)고 선언하면서 필연적으로 내부 모순이 연속적인 쿠데타로 표출되면서 결국 자멸할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군부정권은 군비증강에 힘을 쏟으며 군부에 자신을 의지하지만 역으로 최대의 적은 군부 안에 있는 법입니다.
그처럼 강력하게 보이던 공화당의 유신체제가 내부분열에 의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보십시오.
비합법적인 권력의 기만적 속성은 선심공약과 제반 악법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백성과 계약을 맺고는 마음에도 없는 약속이나 하고,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것들, 악법만이 밭고랑에 독초 돋듯 돋아난다.”(10, 4)

도시건설과 군수산업을 번창시키며(8, 14) 바른말하는 자들을 탄압하면서(9, 7-8)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파멸은 더욱 빠르게 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의 첫 번째 결과는 왕도 대신도 없는 것입니다.(3, 4)
야훼가 너무 화가나서 왕을 집어치웁니다.(13, 11)

사제나 예언자들은 어떠합니까?
“사제야, 내 백성이 다 너희와 같은 꼴이 되었구나. 너희 사제라는 것은 대낮에 거꾸러지고 밤에는 예언자도 함께 거꾸러지리라. 이 백성은 너희 때문에 망한다.”(4, 4-5)
정치지도자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그들의 죄악은 더욱 심각합니다.

“이런 사제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나에게 짓는 죄가 많아진다. 그 자랑스런 직책을 부끄럽게도 밥벌이로 만드는 것들, 내 백성의 허물 덕분에 먹고 살며 내 백성이 짓는 죄에 침을 삼킨다.”(4, 7-8)
사제직은 노골적인 영업행위나 다름없고 죄는 오히려 그들의 반기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도층의 타락과 또한 타락조장은 전 사회적인 타락을 초래하였습니다.

이제 호세아는 정치적인 혼동과 사회의 무질서 및 부정부패가 국가의 정치적 생명의 존폐를 위태롭게 하며 종교 지도자의 타락으로 계약공동체가 와해될 위험에 처했음을 추상같은 고발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② 외세의존

정권의 정통성과 합법성이 결여되었고 백성의 지지기반이 허약한 정권은 자기들의 지지기반을 해외에서 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대개 제국주의 세력에의 종속적 굴욕 외교의 형태로 나타나며 제국주의의 꼭두각시 놀음을 자처합니다.
아합왕 때와 여로보암 2세 때를 제외하고는 늘 주변세력에 시달려온 북왕조는 더욱이 여로보암 2세 사후 빈발하는 쿠데타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앗수르의 세력강화라는 주변정세의 변화 속에서 강대국에 대한 무분별한 의존정책으로 정치적 곡예를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구원은 아시리아에도 이집트에도 없습니다.

“에브라임은 죽을 병이 든 줄 알아 아시리아를 찾아가고, 유다는 제 몸에 입은 상처를 보고 대왕에게 특사를 보내나, 그는 저희 병을 고치지 못하고 너희 상처를 아물게 하지 못하리라.”(5, 13)
역사의 주관자인 야훼를 신뢰하기보다 외세에 더 의존하는 나라가 가는 길은 그 결과가 호세아의 눈에 뻔한 것이었습니다.
“이 민족 저 민족에게 빌붙는 에브라임, 에브라임은 뒤집지 않고 구운 과자다. 외세가 제 힘을 먹어 치우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그 역시 모르는구나.”(7, 8-9)

비둘기처럼 철이 없고 어수룩한 에브라임이 이집트로 달려가고 아시리아로 가서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7, 11) 그들은 만방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까.(7, 16)
줏대없는 외교정책은 화를 자초하고 강대국의 개입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막대한 공물과 선물로 일시적인 화를 면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은 민족들 속에 파묻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쓰레기가 되었습니다.’(8, 8-9)
전란을 피해 도망가지만 이집트가 받아줄 리 없고 단지 그들의 무덤이 될 뿐입니다.(9, 6)

북이스라엘의 외세의존은 단순한 정치적 의미에서만 비판받은 것이 아닙니다.
외세의존의 전술과 전략이 잘못이 아니라 야훼께 대한 근본적인 신앙의 태도가 잘못입니다.
야훼가 저희 하느님이건만 저들은 야훼를 찾지 않고 외세에 기대어 목숨을 부지한 것은 분명히 야훼에 대한 민족적 배신이나 다름없습니다.

③ 우상숭배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것은 나 야훼 너희 하느님이다. 너희에게 나 외의 어느 하느님이 있었느냐. 나 말고 누가 너희를 구해 주었느냐?”(13, 4)

이스라엘의 시작은 야훼의 구원을 통해서 비롯되었습니다.
호세아에 의하면 야훼는 광야에서 신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야훼와의 충실했던 밀월기간은 무척 짧았습니다.
“이 백성은 아담에서 이미 계약을 깨뜨렸다. 거기서 벌써 나를 배신하였다.”(6, 7)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발을 들여놓은 ‘아담’에서부터 매춘부처럼 화려하게 치장하여 화대(번영과 안정)를 노려 ‘연인들’(가나안의 바알신)을 쫒기 시작했던 것이나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남편 야훼께서 준 것인줄도 모르고 정부 바알에게 제물을 바치고 몸을 팔았습니다.(2, 10-15)

역사의 신 야훼는 자연의 신 바알로 비역사화 되었고 풍요의 신에 대한 예배와 역사의 하느님께 대한 예배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처음부터 야훼의 사랑을 배신한 수치스러운 역사였습니다.
백성들은 다산과 풍요의 이데올로기에 놀아났고, ‘매춘의 신’이 전 사회에 만연하였습니다.
“산 꼭대기에도 언덕 위에서도 제물을 잡아 살라 바친다. 상수리나무, 버드나무, 느티나무 그늘이 좋아서 그 아래에서도 제물을 잡아 살라 바치다가 너희 딸은 바람을 피우고 너희 며느리는 외간 남자와 놀아났다.”(4, 13)

길갈과 베다웬 그리고 베델같은 중앙성소는 일찍이 타락하여 추잡한 꼴을 보였으며(6, 10) 지방성소에까지 바알신앙이 깊숙히 침투하였습니다.
물질적 번영 속에서 제단은 늘었지만 ‘죄를 벗으려고 세운 그 제단들이 죄를 더해주는 제단이 되었으며’(8, 11) 사회는 온갖 살인과 강도, 간음과 강간 그리고 유혈 참극이 그치지 않아 심지어 자연까지도 찌들어 갈 정도였습니다.(4, 1-3)
바른말하는 예언자마저 핍박하여 “이 어리석은 예언자야 신들린 미친 녀석아”(9, 7)하면서 야훼의 경고를 무시하므로 “저주받아라! 나를 떠나 방황하는 것들 죽어 없어져라! 나를 거스르기만 하는 것들.”(7, 13), “사마리아는 제 하느님께 반역했으니, 그 죄를 면할 길이 없구나. 칼에 맞아 거꾸러지고, 어린 것들은 박살나며, 아이 밴 여인들은 배를 찢기리라.”(14, 1)하고 야훼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야훼를 배신한 대가는 너무나 처절한 파멸이지만 호세아의 하느님은 심판 중에서라도 자비를 잃지 않으십니다.
심판을 넘어 여명이 동터옵니다.

(2) 계약과 갱신

3장에서 가출한 아내를 다시 데려오는 호세아의 모습은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야훼의 궁극적 사랑은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남에게 내어주겠느냐…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네가 너무 불쌍해서 간장이 녹는구나.”(11, 8)
“이스라엘은 나를 배신하였다가 병들었으나, 나는 그 병든 마음을 고쳐주고 사랑하여 주리라. 이제 내 노여움은 다 풀렸다.”(14, 5)
결국 사랑이 심판을 이기고 맙니다.
희망은 이스라엘의 행위에 있지 않고 하느님의 자비에 있습니다.
계약성립의 주도권이 야훼께 있듯 계약 회복의 주도권도 그에게 있습니다.
하느님의 분노 또는 심판은 구원을 위한 것이며 하느님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치유임을 호세아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제 야훼가 이스라엘을 고난을 통해 갱신시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를 꾀어내어 빈들로 나가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2, 14)
“내가 너희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너희를 다시 천막에서 살게 하리라.”(12, 10)
옛날 이스라엘이 계약을 부여받은 곳이 사막 ― 문화의 유혹이 없는 곳 ― 이었던 것 같이 계약이 갱신될 곳도 사막입니다.
거짓 안정과 문화적 허위 의식을 버리고 신뢰에 바탕을 둔 광야생활을 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이 옵니다.
[참고 : 왜 야훼는 사랑을 속삭이기 위해 화려한 도시와 오곡이 무르익는 달빛이 휘영청 비치는 농장으로 오시지 않고 하필 광야로 오시는가! 광야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라는 제국의 노예살이에서 가나안이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을 가기 위해 40년간이나 수련한 자유의 수련장이었기 때문이다]
광야는 계약 갱신의 무대로 야훼는 이스라엘과 약혼하면서 정의와 공평, 한결같은 사랑과 뜨거운 애정 그리고 진실을 약혼선물로 주게 될 것입니다.(2, 21-22)
오직 이스라엘은 “비록 못된 짓만 하였지만 용서하여 주십시오”(14, 3)하고 고백하면서 하느님께 돌아와 사랑과 정의를 지키고 하느님만 바라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12, 7)


3.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호세아서를 신학적 지식의 습득보다도 실천적인 삶의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성서연구는 지금 여기에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좌표를 찾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호세아서는 우리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좋은 거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이미 창녀의 길을 가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을 직시하고 잃었던 우리의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온몸으로 그 사명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절대적인 것같은 현실의 두터운 벽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에게 오직 야훼만이 절대자이며 그 어떤 것도 다만 상대적일 뿐이라는 호세아의 믿음은 현실의 모든 억압적 상황을 뚫고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새로운 믿음의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아멘.




호세아서 연구 2



호세아 : 선지자의 딜레마


신학과 예언서연구
98111007 김 정 훈

호세아는 고대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딜레마에 관해 어느 기록 선지자보다 더 잘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삶을 주관하신다는 의식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던 이 히브리 선지자는 백성들에 대한 강한 사랑을 품고 있었다. 호세아의 개인적 삶의 특징은 이러한 외적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호세아가 개인적 또는 국가적 위기에 처했을 때 보여준 힘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역시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은 선지자 호세아로 하여금 무너져 가는 사회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하나님과 백성들 간의 평화를 호소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면 그의 선지자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관점에서 표현된 하나님의 분노(호 11:8)는 부도덕한 아내이자 어머니에 대한 남편과 자식들의 호소에 견줄 수 있다(호 2:2).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다는 것은 선지자의 바른 태도이다. 그의 모든 삶은 이 소명을 수행하는데 바쳐졌다. 호세아만큼 위험에 처하거나 개인적 고통을 겪은 선지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위험이나 고통은 그가 하나님께로 더욱 다가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과 가까워진다고 해서 자신이 사역하는 사람들과 멀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이스라엘과도 더욱 가까워졌다.

1. 호세아의 생애
호세아는 북쪽 이스라엘에서 출생했는데, 아버지는 브에리이다(1:1). 유다의 전설에 의하면 호세아는 잇사갈 지파의 자손이고, 그는 자기의 고국을 매우 사랑했다고 한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랑이다. 그는 그 사랑에 근거하여 첫째, 이스라엘을 즉,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고, 둘째, 이웃을 사랑하고, 셋째, 아내를 사랑하고, 넷째, 죄인을 사랑하고, 다섯째, 자녀를 사랑하였다. 원 용국, 『구약 예언서』 (서울: 성광문화사, 1982), pp.237-38.

호세아는 비록 빵 만드는 자(7:4-7)나 농부의 삶(6:11; 8:7)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나 R. K. Harrison R. K. Harriso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p.859. G. A. F. Knight, Hosea, p.13.
이나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대로 호세아가 역사와 정치를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농부가 아니라 중산층이나 고위층의 시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세아는 고멜과 결혼하여 두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낳았으나 고멜의 부정으로 곧 깨어지고 만다. 그의 삶이나 직업은 동시대인들에게 바보나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할 만큼 부정적인 인상을 주었다(호 9:7). 그러나 그의 용기나 순종심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남편과 자식을 버린 부정한 아내를 다시 데려 오라고 했을 때에도 그랬다.
호세아는 종교적 중심지였던 벧엘과 길갈, 그리고 수도 사마리아에서 공적은 설교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Hans Walter Wolff는 그의 논쟁(호 2:4; 4:1,4; 12:3)이나 파숫군적 연설(호 5:8; 8:1)의 형태로 미루어 볼 때 호세아가 이들 도시의 성문에서 외쳤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물론 제사하는 곳에까지 들어가서 말했을 수도 있다(호 2:4-17; 4:4-19; 9:1-9). Hans Walter Wolff, Hosea, p.xxii.


2. 호세아의 활동시기
호세아 시대는 유대 열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였고, 또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II세 시대였다(1:1). 그는 그 나라를 부흥시켰으나 그 부흥은 물질적인 부흥이었다. 원 용국, 『구약 예언서』 p.238.

이스라엘은 도덕적으로 퇴폐했고, 종교는 부패했다. 예후는 바알의 종교를 철폐했으나 여호와를 바알 종교의 의식으로 공경했고, 그에 따라 육적인 음란과 영적인 음란이 창궐했다. 그래서 호세아서는 “음행”이라는 단어가 16회나 나온다. 이것은 세속화와 이교화의 죄악인 것이다(4:1,2). 원 용국, p.238.

호세아의 활동 시기는 두 가지의 공인된 사실과 하나의 가설 사이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공인된 사실이란 서문(1:1)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는대로 그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시대에 활동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사역은 사마리아가 함락되기 이전에 끝났다고 생각되었는데 이것은 그 사건이 호세아서에 전혀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가능성이란 시리아와 에브라임의 전투가 본문에 암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의 활동은 주전 735년 이전에 끝났음이 틀림없다.
울프는 호세아 12:11이 길르앗의 범죄로 디글랏-빌레셋 3세에게 멸망당한 사실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Wolff, Hosea, p.215.

이스라엘이 어리석은 비둘기(7:11)의 모습으로 상징되고 있는 것은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적절히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시기적으로도 이 기간(주전 727-726년)과 잘 부합된다.
Harrison Harriso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p.860.
은 호세아 7:11; 9:6 및 12:2에 언급된 이스라엘과 애굽의 관계는 그의 활동 시기를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시대에까지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호세아의 사역시기는 약 30년간에 걸쳐 아마도 여로보암 2세의 통치 말엽으로부터 이스라엘 왕조의 마지막 시기까지인 주전 752-724년경으로 보인다.

3. 호세아서의 목적
호세아의 사랑은 배반하는 북쪽 10지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 있다. 이들 지파에게 멸망이 가까워 옴을 선지자를 보내어 깨우친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낸 목적은 죄악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민족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어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불순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호세아의 애정을 보여주면서 도덕과 영적으로 범죄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사랑하고 부르심을 보여준다. 원 용국, p.240.


4. 호세아서의 교훈
호세아의 메시지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불러 넘치는 사랑을 쏟아 부어주신 이스라엘의 과거에 근거를 둔다(11:1). 그는 걸음마를 가르치며 팔베개하던 이스라엘의 유아기와(11:3) 그를 사랑의 줄로 이끌던 시절(11:4)을 향수 속에 회상한다. 호세아의 상징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은 한없는 사랑을 가지신 인자하고 자비로운 아버지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상징은 호세아의 결혼이다. 이것은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상징한다. 여호와께서는 남편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아내가 된다(2:16). 호세아는 주전 8세기 선지자들의 바알 숭배에 대해 논박한다(호 8:4-6). 음행은 이 우상의 특징이다. 여호와께서 원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정결하게 자신만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사랑에서 우러나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의 특별한 대상이었다(1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던 초기에 그들로 인해 매우 기뻐했음이 틀림없다. H. Wheeler Robinson이 말했듯이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사랑에는 혁명적인 무엇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호세아가 언급한 부정한 아내와 자신, 그리고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도덕적 관계 속에 담겨진 원리는 뉴톤이 떨어지는 사과를 통해 유성을 발견한 것 보다 더 위대한 원리이다. 그것은 확신을 가지고 따라 나설 수 있는 영적인 길이 되었다. Wheeler Robinson, The Religious Ideas of the Old Testament, p.40.


자신을 자유롭게 섬길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은 배은과 부정으로 나타났다. 훗날 에스겔이 유다에 대해 언급했듯이(겔 16장) 이스라엘은 심지어 돈을 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으며 이것은 창기가 하는 일과 정반대되는 행위였다(8:9). 이스라엘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헌신적 사랑을 거절하셨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반응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그들의 실리추구적인 본성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모든 것을 시작하신 이는 여호와시며 그것을 갱신하는 것도 여호와에게 달려있다. 셀린과 포레의 말대로 호세아가 언약 신학을 모르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Ernst Sellin and Georg Fohrer,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p.422.
이와 달리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언약을 파기하였음을 책망한다(4:2; 8:1). 이스라엘이 버린 것은 언약의 양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질에 관한 것이다(8:12). 언약은 사실상 취소되었으며 이것은 모세에게 일러주신 여호와의 이름과 관련하여 설명된다. “그 이름을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스스로 있는자, 출 3:14)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호 1:9). 그러나 그 즉시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계약 조건을 변경하고(호 1:10) 아브라함과의 언약적 용어(창 22:17)를 사용하여 이스라엘과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이란 주제는 호세아 2:14-23 및 14:4-7을 통해 더욱 진전된다.
호세아서의 중요한 교훈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몰랐다고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교훈의 말은 호세아 2:5-8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호세아 2:20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언급이 기록되어 있다.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알다라는 동사는 여호와를 안다라는 뜻으로 호세아 5:4 및 6:3에도 언급되어 있다. 전자는 그들의 행위가 회개하고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후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로부터 듣기를 원하시는 회개의 기도 속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유다에 대한 이사야의 메시지에도 있었으며 몇 세대가 지난 후 에스겔의 예언에도 나타난다. 이것은 단순히 지적인 기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감정을 포함한다. 그것은 마음의 기능이며 하나님과 율법, 역사 및 예언에 나타난 그의 계시에 대한 전인격적 반응이다. H. B. Huffmon, "The Treaty Background of Hebrew Yada," pp.31-37. "알다“라는 말은 고대 근동 조약에서 종주국에 대한 ”인정“을 의미하였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은 잠언이나 시편기자가 여호와에 대한 경외를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 전부이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불행하게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저희가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8:2). 하나님을 아는 것에 부족하다는 것은 비극적이지만 부족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치명적이다.

5. 호세아서의 문학적 특성
맛소라 사본의 형태나 이것을 원형으로 한 현대 영어사본은 호세아서의 대부분이 시로 되어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본문전체가 이러한 형태로 통일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호세아 1-3장은 시라고 보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전형적인 히브리 평행구가 일관성 있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산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Francis I. Anderson이나 David Noel Freedman Francis I. Anderson and David Noel Freedman, Hosea, p.132.
같은 경우는 이러한 형태를 선지서의 독특한 문체로서 시와 산문의 중간 형태라고 주장한다.
반면 William Rainey Harper William Rainey Harp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Amos and Hosea, p.clxiv.
는 시편의 시와 선지서의 시를 구분하고 있는데 그는 전자는 기록용이며 후자는 연설용이라고 말하고 연설용이 훨씬 자유로운 문체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Anderson과 Freedman은 호세아 4-14장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결과 대부분의 본문은 모든 선지서 가운데 가장 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Anderson and Freedman, p.132.


6. 호세아서의 내용해석 원 용국, pp.241-48.

가. 호세아의 가정 (1-3장)
이 부분에는 호세아 선지자의 혼인이 기록되어 있고, 그의 가정 형편이 나타나 있다. 그는 음한한 여자 고멜과 결혼하고, 3남매를 낳았다. 그 후에 그의 아내는 간부를 따라 호세아를 떠났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아내를 속량할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사 오라고 했다. 호세아는 그 말씀에 순종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무한하고 무조건적임과 동시에 죄인들을 구속하시는 구속의 은총을 보여준다. 마치 호세아가 음란한 여자를 맞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택하여 선민으로 삼고 은혜와 축복을 주심과 같다.
A. 여호와의 말씀
ㄱ. 말씀이 누구로부터 왔는가?
소명과 말씀은 여호와께로부터 온 것이다. 과연 하나님은 호세아를 직접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을 주시어서 그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이스라엘의 죄악과 패역에 대한 내용이다.
ㄴ. 말씀이 누구에 의하여 주어졌는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호세아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시려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호세아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뜻만 나타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시는 역사도 보여주신다.
ㄷ. 말씀이 누구에게 주어졌는가?
그 말씀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임했다. 그들은 그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에 옮겨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은 주전 722년에 망하였다.
B. 고멜
ㄱ. 어떤 학자는 ‘고멜’은 실질적인 인물이 아니고 환상적이고 비유적인 가상 인물이라고 한다.
ㄴ. 어떤 학자는 그녀를 ‘창녀’라고 한다.
ㄷ. 그러나 성경을 연구하여 보면 그녀는 정당한 처녀이다. 그녀는 미혹을 받아 그릇된 행실로 나아가 타락한 것이다.
C. 고멜이 낳은 자녀
호세아와 결혼한 고멜이 낳은 자녀는
ㄱ. 이스르엘이다. 이스르엘은 축복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스르엘은 저주의 명칭이 되었다. 이 명칭은 본래 지명이었으나, 인명이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본래 인명이었으나, 지명이 되었다.
이스르엘은 나봇이 아합왕에 의하여 죽은 곳, 즉 의인이 악인에 의하여 죽은 곳이다(왕상 21장). 그 후에 예후의 일가가 몰살한 곳이다(왕하 10:11). 그러므로 이곳은 죄악으로 인하여 피흘린 곳이다. 피흘린 곳은 저주의 장소이다. 호세아가 이렇게 자기의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은 이스라엘이 피흘림으로 저주를 받을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ㄴ. 딸은 로루하마로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 또는 “긍휼을 받지 못할 자식”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상징인데 그 나라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할 것을 의미한다(1:6).
ㄷ. 아들 로암미(1:8)로 그 어근은 암(םꘝ)에서 나왔다. 즉 “나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이다. 거기에 로(אꗟ)가 붙어서 “나의 백성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저주와 비극을 당할 것을 말한다.
D. 책망과 징계
ㄱ. 2:1-2은 위의 메시지가 반복되고 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ㄴ. 2:3-13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책망과 징계를 주실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i.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신다(히 12:5-14).
ii. 하나님께서 자신의 품으로 가까이 부르시는 징계이다(눅 15:11).
iii. 하나님께서 연단하시는 징계이다(신 32:11).
이스라엘의 큰 죄는
i. 연애하는 자를 따른 것인데 그것은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ii. 감사를 연애하는 자에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방에게 조공을 드리는 것이다.
ㄷ. 2:14-23, 회복선언.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징계로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다음에 소망이 있게 하고, 하나님을 찾게 한다. 또 하나님께서 모든 토지와 소산물을 준다. 이것은 그들에게 축복주심을 의미한다.
ㄹ. 호세아로 아내를 속량케 함
3:1에는 호세아가 음란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그 당시 사회의 한 면을 보여준다. 영적인 면뿐만 아니라 육적이고 사회적인 면이 그와 같이 타락하고 부패함을 반영하여 준다. 그 사실은 성결하고 신앙과 진리에 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할 이스라엘이 이방인에게 동화되어 이방의 우상 즉 가나안 종교화 한 것을 보여준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아내를 사게된다.
3:4에는 이스라엘의 참상이 나타나 있는데 그들이 망하여 왕이나, 지도자나, 제사장이나, 우상도 없이 패망한 자리에 들어갈 것이다. 즉 포로가 되어 고난을 당한다. 정치와 종교의 수난기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가운데서 영적으로 경성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주신다. 포로 후에 70년이 되어 포로에서 귀환하게 하심을 말씀한다.

나. 호세아의 메시지 (4-14장)
A. 이스라엘의 죄악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이 당한 그 고통은 죄악 때문이라 한다. 이 호세아서를 아모스서와 비교하여 보면 아모스서는 사회적 죄를 지적하는 반면, 호세아서는 개인적 죄, 윤리적 죄를 기술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죄악
ㄱ. 지식이 없는 죄 - 4:6
하나님을 아는 지식, 즉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출발한다.
“하나님을 알라”(6:1,3,6).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패망한다(4:14). 겉으로는 하나님을 아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4:11-12, 5:1-4에서 말하고 있다. 그 증거는 그들의 세속적인 향락, 생각, 음욕 등이다. 그들의 뜻은 하나님의 나라에 둔 것이 아니라, 세상 나라에 두었고, 무관심을 가졌는데 그것 역시 죄악이다.
ㄴ. 이스라엘의 교만 - 5:5
이스라엘은 교만으로 인하여 넘어진다. 그와 같이 유다도 결국은 교만으로 인하여 망한다. 5:6에 의하면 그 교만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5:14에는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게 됨을 선언하신다.
ㄷ. 불안정한 마음(뿌리없는 마음) - 6:4
불안정한 마음은 뿌리없는 믿음을 낳게 된다. 뿌리 없는 믿음은 형식은 갖추었으나 윤리와 참 신앙이 없다. 즉 “뿌리”인 인내와 지식이 없는 것이다. 인내는 행위이고, 지식은 신앙이다.
6:11의 “추수”는 축복이다. 이 축복은 소망이다. 이 소망은 꼭 필요한 계시이다.
7:4의 뜨겁다는 잘못된 뜨거움이다. 즉 맹목적인 열심이고 형식적인 열심이다. 그것은 곧 감정적인 행위이다.
ㄹ. 혼잡(세속화) - 7:8
“뒤집지 않은 전병”은 이방에 동화된 것인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혼잡이다. 하나님은 혼잡을 원치 않으신다. 오직 이방이 유대화하는 것을 원하신다. 유다가 이방화되는 것은 금물이다. 즉, 이방인이 유대화 되어 하나님을 섬기고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이스라엘의 빛이다.
11절의 어리석은 비둘기는 맹목적으로 원수를 따라 가는 것이다. 즉, 열왕기하 17장에 의하면 애굽을 청빙하고 그들을 신종하는 것이다.
14절의 침상에서 부르짖는 것은 성심성의가 없는 것에 대한 표현이다. 8:1-14는 결론이다.
ㅁ. 패괴(부패) - 9:9
저들의 종교는 부패하였고 정치적 부패는 더 말할 것이 없이 부패하였다.
그들의 부패는
i. 선지자의 부패, 8.
ii. 제사장의 부패, 10. 그들은 바알부올에게 가서 더러운 죄를 지었다(민 25장).
iii. 방백의 부패, 9:15.
위의 선지자의 부패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위곡되었고, 제사장의 부패로 인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위곡되며, 그로 인하여 방백들이 부패하여 백성들을 오도하고 패망케 한다. 그래서 9:17에는 정치적 부패를 선언한다.
ㅂ. 계책(인위적 방법) - 11:6-7
하나님의 사랑은 점점 더하여 가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더욱 멀어진다. “내 아들”은 역사적인 이스라엘이다.
i. 역사적으로 이루어졌고(과거),
ii. 영적으로 현재 이루며
iii. 미래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본문에서 반역하는 자들에게 향한 하나님은
i. 사랑의 줄, 4. 이것은 선민을 향한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이다.
ii. 긍휼의 불꽃, 8. 버리지 않음.
iii.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언약은 불변하고 반드시 성취되고 또 성공하고야 만다.
iv. 불러 모음. 이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12:1 이하에 계책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2:3에는 야곱이 받는 환난과 보응이 있다. 그러나 12:4에는 ‘울며’(회개), 12:8에는 ‘돌아오고’(신앙), 12:6에는 ‘축복’이 임한다.
ㅅ. 우상의 죄 - 13:2
이스라엘에 멸망이 임한다고 선언한다(13:3). 그 이유는 죄 때문인데, 그 죄는 우상숭배죄이다. 13:9에 의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왕을 구한 죄(삼상 8:5)인데 그 죄는 우상을 숭배한 죄와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13:11에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가 그들에게 쏟아진다.
그러나 13:13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권면하시고 14장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그래서 회개하는 자는 축복을 받는데 그들은 ‘남은 자’이다. ‘남은 자’는 의인이다.

호세아서 개관

서론 (1:1)
I. 호세아의 결혼(1:2-3:5)
1. 결혼과 가정, 언약과 심판의 상징(1:2-9)
2. 언약 갱신(1:10-2:1)
3.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및 하나님의 심판(2:2-4)
4. 고발과 심판(2:5-8)
5. 바알주의에 대한 이스라엘의 음행(2:9-13)
6. 언약갱신(2:14-23)
7. 언약 갱신의 상징으로서 호세아의 결혼의 회복(3:1-5)
II. 호세아의 메시지(4:1-14:9)
1.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논박(4:1-5:14)
1) 일반적인 사항(4:1-3)
2) 제사장에 대한 논박(4:4-10)
3) 백성들에 대한 논박(4:11-4:19)
4) 지도자에 대한 논박(5:1-14)
2. 회개와 죄의 실체(5:15-6:10)
1) 회개(5:15-6:3)
2) 아침 구름과 새벽이슬(6:4-5)
3) 하나님에 대한 견고한 사랑과 지식(6:6-10)
3. 심판(6:11-7:16)
1) 유다에 대한 추수(6:11)
2) 안과 밖에서 도덕질(7:1-3)
3) 달궈진 화덕(7:4-7)
4) 뒤집지 않은 전병(7:8-10)
5) 어리석은 비둘기(7:11-12)
6) 거짓 경배(7:13-16)
4. 종교적 정치적 부정(8:1-8:14)
5. 이스라엘의 음행과 선지자의 행동(9:1-9)
6. 여호와의 언약의 의미와 위반(9:10-11:12)
1) 광야에서 만난 포도(9:10-17)
2) 무성한 포도나무(10:1-10)
3) 길들인 암소(10:11-15)
4) 유아시절(11:1-12)
7. 이스라엘의 역사(12:1-13:16)
1) 야곱과 그의 길(12:1-6)
2) 출애굽과 광야 생활(12:7-9)
3) 선지자 모세(12:10-14)
4) 출애굽과 광야에서의 반란(13:1-9)
5) 무능한 왕조(13:1-9)
6) 사마리아에 대한 심판(13:12-16)
8. 회개에 대한 요구 및 언약 갱신(14:1-9)
1) 국가적 고백(14:1-3)
2) 언약 갱신(14:4-8)
3) 지혜에 대한 말씀(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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