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개관


1. 저자
 
본 서의 저작자는 세베대의 아들이며 예수의 수제자 중의 한사람이었던 사도 요한이다. 본문에는 저자의 이름이 직접 밝혀져 있지 않으나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요21:20,23,24)와 동일 인물로 생각된다. 본문의 내중에 의하면 그는 유대인으로 유대인의 절기와 풍습, 장례법등에 익숙해 있고 히브리어와 아람어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다. 특별히 그는 팔레스타인 지형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팔레스틴에 거주한 유대인으로 보인다. 그는 사건의 직접적인 목격자로서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요1:14),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요19:35)라고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본 서의 기자는 열두 제자 중의 한 분이었음에 틀림없다. 또한 제4복음서에는 사도 요한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다른 제자, 또는 사랑하시는 형제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책을 저술하는 사람이 자기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심리 작용일 것이다. 이상과 같이 살펴볼 때 본 서의 저자는 사도 요한임이 드러난다. 역사적으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2C), 오리겐(A.D.185-245년), 이레나이우스(A.D.130-200년) 등 초대 교부들도 사도요한이 본 서를 기록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폴리갑(사도 요한의 제자)의 제자 이레나이우스는 초대교회의 유력한 증언을 들어 저자가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라고 말했다.
 
2. 저작 연대
 
어떤 학자는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돌아온 뒤에 이 책을 기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밧모섬에 가기 전에 저술하였다고 함이 유력하다. 본 서의 기록 연대는 크게 나누어 볼 때 사울의 핍박으로 예루살렘성에서 기독교인들이 흩어졌던 주후 45년 직후부터 2세기 중엽 사이의 어느 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 서는 공관복음서가 모두 완성된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아 본 서의 기록 연대의 최하한선을 주후 7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책이 90년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주후 90-100년에 나온 로마 클레멘트의 문헌에 요한복음의 사상이 벌써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서의 최대 한계선은 사도 요한이 도미키안 황제 때 밧모섬으로 귀양가기 전인 주후96년이다. 이와 같이 볼 때 본 서의 기록 연대는 주후 70-96년으로 좁혀진다. 그런데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사도 요한의 행적등을 역사적 문헌에 의거하여 살펴볼 때는 본 서는 주후 85-9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3. 배경
 
1) 헬레니즘적 배경
 
① 스토아주의, 플라톤주의 : 플라톤주의는 그리스적인 이원론을 그 핵심으로 하며, 스토아주의는 구원보다는 안정의 추구를 중요시하며 내재적 이성으로서 삶의 원칙이 되는 로고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본 서에서 발견되는 영과 육의 구분, 위와 아래의 구분은 스토아주의의 영향을 받은 독자들을 배려한 표현이다.
② 영지주의 : 이들은 물질을 악하며 정신은 선하기 때문에 선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세계를 창조하셨을리 없다고 주장햇다. 또한 역사적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단지 인간일 뿐이라 규정하여 그 신적 실체를 부정하는 가현설을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에 직면하여 저자는 본 서 서두에서부터 성육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근본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③ 만다이파 : 영지주의파의 일종인 이들은 자신들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라 공언하였다. 이들의 신적 존재인 구속자가 어두움을 정복하고 다시 빛의 세계로 승귀한다. 빛과 생명과 어두움의 대비, 진리와 거짓의 대비의 사상이 나타나므로 요한이 만다이 사상에 의존하여 본 서를 저술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 유대주의적 배경
 
① 구약성경 : 본 서에서 헬레니즘적인 요소가 많이 발견된다 할지라도 그 근본은 유대주의적 사고 방식과 관습에 기초하고 있다. 이의 증거로 요한은 유대주의 사상의 근조를 이루고 있는 구약성경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본 서의 서두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환기시켜 준다. 이외에도 하늘에 닿는 사닥다리에 해한 야곱의 환상(창28:12), 광야에서 장대에 매여 달린 뱀(요3:14), 족장 야곱이 땅을 산 일(요4:5-45), 광야에서 장대에서는 구약성경의 주된 조류를 반영하고 있는데 바로 메시야 사상이다.
② 랍비들의 해석과 교훈 : 본 서에 나타난 랍비들의 영향을 밝히기 어려운 것은 랍비들이 주후 200년에 와서 랍비 문학을 성문화시켰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자기들의 교훈들을 기록된 문서로 보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서가 랍비적 교훈에 영향을 받아 기록되었다고까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요한이 당시의 이러한 교훈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③ 필로의 사상 : 주후 1세기의 저술가로서 당시 그리스 철학과 유대주의를 종합하려고 노력하였다. 필로와 요한의 유사점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인간의 주요 목적이라고 파악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빛을 강조한다. 이외에도 빛과 어둠의 충돌이나 물을 생명의 상징으로 보는 것, 하나님의 역할을 목자와 양으로서 강조하는 면 등에서 유사점은 발견되지만, 요한에게는 로고스가 인격적인 데 반해 필로에게 있어서는 비인격적인 존재로 남는다. 또한 요한은 상징에 관심을 쏟는 반면 필로는 비유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
④ 쿰란문서 : 쿰란에서 발견되 사해 산들은 본서 기자의 사상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된다. 왜냐하면 본 서와 쿰란 문서의 유사성은 다른 어느 책들보다도 많으면 동시에 쿰란 문서들이 주후 70년 이전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진리의 영이나 빛과 어둠의 충돌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매게체로서 성령을 등장시킨다. 또한 당시에 만연된 물질과 정신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이 아닌 선과 악의 충돌을 강조하는 수정된 도덕적 이원론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요한이 쿰란 문서에 직접 의존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다만 요한이 쿰란적 사고를 숙지하였다거나 쿰란 본파 자체로부터 다소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상정할 수 있다.
 
1. 본서의 특징
 
요한복음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공관복음과 다르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활동하신 장소에 대해 마지막 주간만 제외하고 주로 갈릴리 사역을 다루고 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유대 지방에서의 사역이 강조된다. 시간상으로도 공관복음은 한 번의 유월절만 언급하고 있으나, 요한은 3번 언급하여 3년 이상의 공생애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언어상의 용법에 있어 공관복음이 비유적, 교훈적인 진술을 가미한 짧고 생생한 구절들과 쉽게 기억될 수 있는 간단한 사건들이 많은 반면, 요한복음은 긴강론 형식을 취한다. 관점에 있어서도 공관복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나라에 중점을 두는 반면, 요한은 예수님 자신에 관한 것과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영생이라는 주제에 집중되고 있다. 전체 구조에 있어 공관복음이 현재와 미래 사이의 종말론적인 이중적 역사 구조를 가진 반면에 요한복음은 현재와 미래의 긴장 대신 위와 아래, 하늘과 땅, 하나님의 영역과 세상의 영역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2. 저작 목적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부인하는 케린투서(Cerintus)의 가르침에 의해 크게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따라서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들이 받은 참된 교리에 다시 한 번 확고히 세워 줄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본 서는 당시 헬라 사도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또한 요한은 이미 복음을 접한 성도들에게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내포된 심오한 신학적 의미를 보다 확연히 밝혀 주기위해 그리고 당시 팔레스틴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반기독교적 이방 사상으로부터 복음을 보호하고 변증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하고 있다.
 
3. 요한과 바울 사상
 
요한의 사상은 골로새서에 나오는 바울의 사상에 가깝다. 골1:15-19에서 바울은 요한의 사상과 매우 유사하게 일련의 그리스도에 관한 주장을 제시해주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그리스도에 관한 바울의 묘사는 요1:18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라는 그의 주장은 요1:3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아버지(하나님)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라는 전술은 비록 요한복음에서 정확한 어구적 병행을 찾아볼 수 없으나 그의 사상과 충분히 합치되며, 더욱이 요1:16과 함께 '충만'이라는 단어와 공유하고 있다. 특히 바울은 골로새에서 통용되던 어떤 이단적인 관념들을 논박하기 위해 골로새서를 기록하였는데, 이 도시는 에베소가 수도인 아시아지방에 있었으며 이 지방은 전통적으로 요한복음이 유래된 장소로 알려졌다. 요한과 바울 사이의 접촉점은 헬라주의자들의 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두사람은 처음으로 기독교를 이방 세계에 제시하는 문제에 대해 당면하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요한이나 바울은 서로 의존하여 요한복음이나 골로새서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상황에서 기록한 결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 것이라 결론지을 수 있다.
 
4. 요한복음과 요한서신
 
요한복음과 요한서신들 사이의 사상과 언어의 유사성을 많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세베대의 아들 요한을 저술자로 돌린다. 그럼에도 몇몇 학자들은 저자의 동일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예컨대 요일2:18에서 "마지막때"는 저작 시기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종말론적으로 결정적인 '때'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를 가리킨다(요12:33). 반면에 '보혜사'라는 용어는 요14:16,26, 요15:26, 요16:7에서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지만 요일2:1에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그리고 일상적인 접속사 '그러므로'가 요한복음에서는 약 200번 정도 발견되지만, 요한서신에서는 단 한 번, 요삼1:8에 나온다. 따라서 일부 비평주의자들은 이러한 차이점을 들어 두 서신 사이에는 다른 방식과 사상이 존재하므로 같은 저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이점은 두 서신의 당시의 배경과 상황들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점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은 세베대의 아들이며, 예수의 제자인 요한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전통적인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