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개관


1. 저자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예수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는 목격자들에게서 실제적인 증언을 수집했고, 성령의 감동으로 어느 복음서보다도 적나라하게 예수의 행적을 기록했다. 누가는 예수의 비유를 독특한 것으로 많이 기록했으며, 예수의 인성에 대한 전반적인 강조를 그림처럼 전개하였다. 그리고 비유를 통해서 소개되는 인물들의 인간적인 개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었으며,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방인을 위한 인자, 인애, 아름다운 찬송시로서 복음서를 기록하였다.
 
2. 기록목적
 
누가복음의 수신인(受信人)인 테오빌로는 로마인으로서 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누가가 '각하'라는 존칭을 붙이면서 문안하고 있는데, 이 말은 누가가 로마 고관들에게만 사용하던 용어이다(행24:3;행26:25), 데오빌로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눅1:3과 행1:1밖에 없지만 그는 개종한 자로서 자기의 새로운 신앙에 관하여 더 자세한 것을 알기 원하는 초신자였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기록 목적은 초신자를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가르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3. 본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누가는 마태나 마가와 다르게 '다윗의 아들'이라든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권위에 초점을 맞추려 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러운 우주적인 구세주로 기술하고 있다. 또한 신적인 권위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가난하고 힘 없는 연약한 인간에게 가장 가까움을 느끼게 하는 친근감으로 예수를 비유하였다. 그리고 누가는 예수의 계보를 요셉으로 시작하여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 족속이나 특권을 무시했다. 이 방법에선 아브라함도 무시되었고 오직 믿음만이 용납됨을 나타낸다. 만인의 구주로 오신 인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과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심정으로 죄인 곁에 죄인 같은 모습으로 오셨다. 그 인자는 세상의 죄인들을 찾으시는 선한 목자의 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구세주는 우리의 연약과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가난을 담당하러 오셨다. 눌린 자에게 특권을 가진 자가 대단한 위용으로 나타난다면 눌린 자는 더욱 공포에 질리든지 자포자기하게 된다. 에덴 이후로 세례 요한 때까지 인류는 혹사당하고 억압과 파괴로 지치고 찌들대로 찌들어 있었다. 그 찌들고 병든 현장에 힘 없는 모습으로 우리 가까이에 찾아오신 그분이야말로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인애로운 인자이신 그리스도이시다.
 
4. 본 서에 나타난 이방인
 
누가는 헬라인이다. 그는 예수가 뽑았거나 예수를 보았거나 한 일도 없는 이방인이다. 또한 본 서 서두에 데오빌로 각하에게 이글을 보내어 그 이방인으로 하여금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고 이글을 쓴다고 했다. 또한 강도 만난 자와 그를 구해 주는 사마리아인, 외로운 세리 삭개오, 거지 나사로 등 다른 복음서에 제시되지 않은 멸시받는 이방인에 대해 많이 기록하였다. 그리고 누가는 헬라인으로 이방인인 것은 확실하나 그는 의사이며 바울의 동료였다. 그는 바울과 함께 온 이방 세계에 전도 여행을 하면서 사도행전을 기록했다. 그의 신망은 겸손하면서도 뜨겁고 그리고 잘 정리된 수준 높은 것이다. 또한 데오빌로는 개종한 자로서 이 새롭고 놀라운 신앙 세계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어하는 초신자였다. 본 서는 그 신분 높고 사려 깊은 이방인을 지도하기 위해 이방인들에 관한 비유를 세밀하게 기록한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이다(눅2:32 ; 눅4:25-27 ; 눅10:30-37), 따라서 어차피 야곱의 계보가 아닌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강도 만난 자와 같은 우리를 선민인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외면하고 그대로 버려두는 복음이라면 우리가 그 예수를 구세주로 맞아 섬길 수 있겠는가? 주님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인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데려다 싸매고 돌보듯 우리 이방인들을 위험 지경에까지 찾아 오셔서 구원해 주시는 인애로운 주님이시다.
 
5. 사회적인 복음서
 
1) 인간의 개성과 비유
 
바리새인과 세리의 대조적인 기도 모습, 잃어버린 아들과 그의 돌아옴을 너무도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 아홉 명의 그냥 간 문둥병자와 한명의 감사하는 사마리아인 등 각 사람의 개성이 뚜렷하게 부각되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죄인, 가난한자, 약자들이 본 서 전면에 대두되는가 하면 아름다운 찬송시가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더불어 예수님의 어린아이와 여성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여 준다.
 
2) 그리스도의 인성
 
의를 자랑하는 바리새인에 비해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는 세리의 겸손하고 진정한 모습과 아무도 알아 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에 데려다 주고 부비까지 마련해다 주는 진실 무구한 사마리아인의 모습 그리고 아홉 명은 감사한 생각도 못하고 가버리는데 홀로 발길을 돌려 무릎을 꿇어 감사하는 문둥병자의 모습 등에서 우리는 지극히 낮아지므로 우리 속에 오신 그리스도의 인성을 느끼고 만져 보게 된다. 사회의 구석 구석에 어떤 어두운 골짜기라도 찾아가시고 찾아내시는 인자의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3) 찬송시 속의 인자
 
잉태한 마리아의 찬송과 사가랴의 축복의 찬가, 천사들의 영광송 그리고 시므온의 고별의 찬송시들을 통하여 인자로 오실 그리스도와 인자의 사역과 고난 및 승리가 아름답게 흐른다. 누가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상봉, 예수의 어린시절, 나인 성 과부와 아들, 기름 붓고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씻긴 여인, 막달라 마리아 등의 기술을 통해 인자로 오신 그리스도의 지대한 관심과 인애가 여성과 어린이 및 사회 전반에 걸쳐 임재함을 보여 주고 있다.
 
6. 누가복음과 인자
 
누가복음은 인자로 오신 예수의 일생을 가장 완벽하게 묘사했다. 이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를 인자로 이해하게 되면서 인간을 향한 주님의 연민에 접하게 되고 그분의 인간미에 닿게 된다. 그분의 이러한 사랑 앞에는 모든 계급들이 무너지고 죄의 장벽들이 힘을 잃는다. 구원의 문만이 넓게 열린다. 그리고 근시안적으로 조급하게 사람들을 판단하고 멸시하는 소견자들에게 치명적인 경고가 내려진다.
 
1. 누가
 
누가는 이방인이었으며 수리아의 안디옥에 거주하던 의사였다(골4:11). 그는 디도의 형제로 여겨지기도 한다(고후8:16-18 ; 고후12:18). 그는 일찍이 바울의 2차 전도 여행때 동행하였는데, 이는 그가 초기의 이방인 회심자들 중의 하나였다고 추측케 한다. 누가는 적어도 바울과 실라가 다소에 빌립보로 갈때부터 함께 동행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눅16:10-12). 2차 전도 여행 이후 누가는 3차 전도여행에도 동행하였다. 그는 바울과 함께 마게도냐, 드로아, 소아시아 해안을 따라 밀레도로두로와 가이샤랴를 거쳐 예루살렘에 이르는 먼길을 여행하였다. 3차 여행 이후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고초를 겪은 끝에 체포되었을 때도 바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를 돌보아 주었으며, 로마에까지 이르러서 동역하였다. 그는 바울의 가장 가깝고 진실한 친구로서 말년에 투옥되어 죽음을 기다리던 때에도 떠나지 않고 그를 지켜 주었던 것으로 나타난다(담후4:10,11).
초대교회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방인 누가의 업적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의 업적중에 가장 큰 일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집필하여 복음의 독특한 한 측면을 보여 준 것과 교회와 선교의 초기 역사를 수려하고 문학성이 뛰어난 필체로서 일목요연하게 알려준 것에 있다.
 
2. 그리스도의 성육신
 
성육신(Incarnation)은 '몸을 취하다'라는 의미의 신학 용어이다. 여기서 몸을 취하였다 함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여 오신 것을 말함이다. 성육신과 유사한 개념들은 이방종교에도 나타나곤 한다. 힌두교에서는 그들의 신 비쉬누(Vishnu)의 성육신을 믿으며,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의 태양신 라(Ra)의 성육신을 바로(Pharaoh)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고대의 많은 민족들도 왕을 신의 현현으로 믿곤 하였다.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신들은 여러 사람이나 동물로도 성육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성육신임을 선언한다(요1:14). 따라서 구원은 그를 통하여서만 가능한 것이며 신앙 또한 그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고, 그만을 믿음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성육신의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낸 사람은 사도 요한이다. 그는 예수님의 신성보다는 인성을 먼저 언급하고 소개하였던 마태나 누가와는 달리 태초로부터 계셨던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그의 복음서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여기서 그 선재하신 하나님은 lovgo"(로고스 ; 말씀) 이신데, 곧이어 그 말씀이 육신으로 화하셨다는 것이다. 이때 육신이 라는 말은 육체적인 인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문맥으로 따져 볼 때 확실하다. 이는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서 실재적인 인성을 소유하셨음을 분명히 밝히는 내용인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인성의 규명
 
복음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면서도 보통 인간과 같은 육체적 한계성을 안고 계셨다.
그는 피곤함을 느끼기도 하셨으며(요4:6), 배고픔을 느끼기도 하셨고(마21:18), 갈증을 느끼기도 하셨다(마11:19). 또한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에는 죽음을 앞에 두고 심한 고통을 겪기도 하셨다. 아울러 그는 인간의 모든 감정들, 즉 기쁨이나(눅10:21), 슬픔(마26:37), 혹은 사랑(요11:5), 연민(마9:36), 분노(막3:5), 놀람(눅7:9) 등을 보통 사람과 똑같이 느끼셨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셨던 것이다. 따라서 칼빈(Calvin)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감정을 갖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사람으로 인정치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으로 예수께서는 보통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죄의 유혹에 빠지기도 하였으며,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았다(마4:1-11 ; 눅11:15-20 ; 히4:15). 또한 그의 지식에도 어느 정도 제한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모든 사람들의 심증을 꿰뚫어 보시고 친히 아셨음에도 그가 아는 것에 제한되어 있음을 시사하셨는데, 이는 그의 인성을 시사해준다.(막13:32).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사건에도 그의 인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십자가 위에 나약하게 매달려 돌아가신 모습은 결코 신의 모습일 수 없는데, 굳이 신이 죽어야만 한다면 인간의 모습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도 그의 인성을 증거해 주고 있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명백히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지만 따뜻한 감정과 위로를 보이시고 제자들을 결속하시는 모습 속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친근함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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