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기도

미국의 독립 전쟁이 한창이던 때, 죠지 워싱턴 장군은 포지 계곡에 진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진지는 말뿐이지 군대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고, 도무지 이 군대를 이끌고는 전투에 나갈 형편이 아니었다. 그저 암담하고 허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한창 눈보라가 몰아치는 영하의 추위로 군인들이 모두 벌벌 떨고 있는 데, 방한복도 제대로 입지 못한 군대는 식량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굶다시피 한지가 벌써 여러 날이 되었다. 무장상태도 형편없었고 게다가 장갑도 없이 추위에 얼어 뻣뻣해진 손으로 총을 쥘 수도 없었다. 그들의 목전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패전뿐이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워싱턴은 맥이 빠지고, 서 있기조차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러나 워싱턴은 미국 독립에 대한 소망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이번 전쟁은 단순한 승패를 초월하여 미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독립은 그동안 그렇게도 염원하여 왔던 미국 국민의 거룩한 꿈이기도 하였다. 워싱턴은 미국국민의 간절한 소원과 피 끓는 열망을 결코 외면 할 수가 없었다.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워싱턴장군은 한 자나 쌓인 눈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오로지 하나님의 법도와 권능으로 다스려지는, 인류복음화를 선도하는 나라를 세울 수 있 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밤이 되도록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높이 들고 목이 쉬도록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워싱턴을 어느 장교가 흔들어댔다.

“장군님! 적군이 후퇴 했습니다. 한 명도 없이 전원 후퇴했습니다” 기후의 악화로 전쟁이 불가능해지자 적군이 먼저 후퇴한 것이다. 워싱턴은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된 채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또 찬양했다. 하나님은 눈물로 부르짖는 워싱턴의 손을 들어 주신 것이다. 그의 기도는 마침내 미국의 독립을 가져왔고 그는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시편 102장)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과 더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게 된다. 인간은 평안할 때보다 고난이 찾아올 때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장래의 소망을 바라보아야 한다.

욥에게 고난이 닥친 후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였듯이, 우리의 현재의 고난이 하나님의 영 원한 섭리와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소망을 가져야 한다. 고난 속에서 장래의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은 고난을 좀더 진지하고 성실하게 대면할 뿐 아니라 낙심하지 않도록 힘을 주기 때문이다. 고난은 할 수만 있다면 회피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럼에도 고난과 고난에 대한 승리의 경험이 없는 삶은 거푸집과 같이 무기력 할 뿐이다. 고난을 이겨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신앙의 성숙을 가져오며,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의 시간이요, 장래의 소망을 바라보게 하는 소중한 보배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난에 대해 그 크고 적음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친히 다 알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신다. 참으로 고난 가운데 있는 우리는 고난을 호소할 대상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원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