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견인과 하나님의 은혜

로마서8:31~39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요즘 초등학교에서 한문 교육의 필요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으나, 어떤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안중근 의사’가 누구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어떤 학생이 말하기를 “제가 다니는 병원에는 그런 의사가 없어요” 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義士(의사)를 醫師(의사)로 알았던 것입니다.


오늘 살펴보게 되는 “성도의 견인”이라는 말도 한글로만 보면 오해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견인”이 뜻이 뭡니까? 불법 주차된 차를 끌고 가는 것도 견인입니다. “끌 牽(견)”, “당길 引(인)”자를 씁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말하는 ‘성도의 견인’이라 할 때는 “굳을 堅(견)” “참을 忍(인)”자를 씁니다. “굳게 참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라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까지 5주에 걸쳐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첫 주에도 말씀 드렸듯이 칼빈이 만든 교리가 아닙니다. 이 교리는 이단으로 정죄된 ‘알미니우스’가 주장한 ‘인본주의 구원교리’를 칼빈의 제자들이 ‘성경적인 구원 교리’로 바로 세우고 체계화시킨 교리입니다.


한번 기억을 더듬어 살펴보시죠. 칼빈주의 5대 교리가 뭐죠?


1)전적타락(Total Depravity)-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2)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하나님이 우리를 택할 때 어떤 조건이 있어서 택한 것이 아닌 무조건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3)제한속죄(Limited Atonement)-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만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택한 백성을 위한 속죄라는 것입니다.


4)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인간이 거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다섯 번째로 살펴보는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입니다.


오늘은 이 성도의 견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은혜 받기를 축원합니다.



1. 성도의 堅忍(견인)이란 무엇인가요?


“성도의 견인”교리는 다른 표현으로 ‘성도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 표현이 훨씬 이해가 빨리되는 표현입니다. 이 교리는 성도가 한 번 구원을 받으면 그 구원은 영원히 보장되기에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결코 중도에서 잃어버리거나 빼앗기거나 스스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알미니안들은 구원을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성경에 접근하기에 구원받은 인간이 남은 생애의 기간 동안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날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와 의지의 따라서 구원의 향배(向背)가 좌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구원 받은 자도 지옥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견인” 교리는 이와 같은 잘못된 주장을 반증(反證)하기 위해 나온 교리입니다.


이 “성도의 견인” 교리는 독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4가지 교리, 전적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그리고 불가항력적 은혜 교리와 불가분의 연속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 구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 택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제한 속제를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철저히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기에 인간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유효하게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렇게 얻어진 구원은 중도에 취소되거나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견인 교리입니다.


또 우리 장로교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 1항을 보면 이런 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는 독생자 안에서 용납해 주시고 그의 성령으로써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또한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타락할리가 없으며 그들은 마지막 날까지 꾸준히 인내하여 머물러 있게 되며 또한 영원히 구원을 얻게 된다.”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어렵지요. 학자들은 이렇게 말을 길고 복잡하게 합니다.


그래서 “학자는 간단한 것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이고


“목사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제가 누굽니까? 목사입니다. 저는 쉽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 말을 쉽게 요약하면 참 그리스도인이 되면 두 번 다시 아주 타락하여 멸망하는 일은 없고, 비록 일시적으로 죄에 빠져 들어가는 일이 있다 해도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서 반드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해됩니까? 믿어집니까? 아멘?



여러분들 중에는‘내가 만일 신앙생활을 하다가 타락하면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이렇게 걱정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마7: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뭘까요?


요6: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러기에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크게 두 가지의 견해로 나뉩니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살펴보는 칼빈주의 교리입니다. 칼빈주의의 ‘성도의 견인’ 교리의 핵심은 “한번 선택된 성도는 절대로 지옥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멘?


또 다른 한 가지의 견해는 알미니안주의 견해입니다.


이들은 “우리 인간의 행함 여부에 따라 천국에 갈 수도 있고,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많은 성도들이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도 이런 주장을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맞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는 그분을 이해합니다. 저도 신학을 공부하기 전, 청년시절에 그렇게 믿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학을 제대로 공부해 보니 그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우리 교회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가지고 가르쳐 주려고 해도 듣지를 않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성경의 진리를 양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세전에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택자를 구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제한 속죄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것도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번 받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인간에 의해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은 아주 불안한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인 중에 주님을 믿다가 타락한 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입장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이들이 진짜 성도일 경우와 또 하나는 가짜 성도일 경우입니다.


진짜 성도일 경우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택한 자로 ‘제한 속죄’와 ‘유효적 은혜’를 입은 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어떤 방법을 통하든지 돌아오게 하고 구원받게 하십니다.


그러나 가짜 성도라면 어찌 될까요?


가짜란 일시적으로 마음이 이끌려서 교회에 나오기는 했지만,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취미로 나오고 명예나 재미로 교회를 다니는 경우를 말합니다. 물론 중간에 회심하여 구원벋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가짜는 가짜이기에 처음부터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가롯 유다가 진짜인가요? 가짜인가요? 가짜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가라지’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마귀가 와서 좋은 땅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이들 가라지는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가짜를 말합니다. 그 가짜 중에는 불신자도 있지만 이단 무리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를 미혹합니다.


이 비유는 농부는 주님이시고 농사를 짓는 땅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교회에 가라지. 즉 가짜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자들은 교회에 다닌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어놓은 성도, 즉 창세전에 택하시고 구원키로 하신 성도는 이 세상의 온갖 권세와 악한 영이 공격을 한다고 해도 절대로 넘어지지 않고 멸망을 당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타락하고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절대로 구원에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바로 ‘성도의 견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성도의 견인 교리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요?


모든 교리는 성경적 근거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견인 교리도 확실한 성경적인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몇 구절을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 나누시길 축원합니다.


1)롬8:38~39절입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이 택하시어 구원하신 백성, 그들은 거룩한 속죄로 갚을 치룬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기에 그 어떤 세력도, 그 어떤 피조물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왜 일까요? 일단 참 성도가 된 사람들은 그 안에 ‘성령’께서 거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그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그는 이미 거룩한 존재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에 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약하기에 때로 실망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 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으로 인해서 넉넉하게 이기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멘?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빌1:6절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뭘 확신합니까? 우리의 구원을 완성할 것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러기에 당신께서 택하여 구원하신 백성을 인간의 죄악된 행동에 의해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이 아니면 내버려 두십니다. ‘가인’이 그랬고, 애굽 왕 ‘바로’도 그랬습니다. 모세가 바로왕에게 한번도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롯 유다’가 대표적 인물입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한번도 주라고 고백하질 않았습니다. 선생님, 랍비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택자가 아닌 遺棄者(유기자)입니다. 버린 자입니다. 그러기에 그냥 두십니다.


그러나 택한 자는 절대로 그냥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의 부자 관계를 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치 육신의 자녀가 그 부모와의 관계를 상실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 요일4:9~10절입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잘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구원은 우리의 공로를 근거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행위나 의지에 따라 주어진 구원이 취소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전 과정은 하나님에 의해 계획되고 인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철회하시고 백성을 지옥에 보내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실패하셨다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 성도의 신앙을 성장케 하기위해 여러 가지 연단하시고 시험하십니다. 그래서 실패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있다고 버리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이 그렇게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번 얻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3) 롬9:10~13절입니다.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 아직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에서’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야곱’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 성경은 에서와 야곱 이야기를 기록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행위의 근거가 인간의 선행의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근거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야곱의 생애를 살펴보면 성격 면에서나 행동 면에서 결코 형 에서에 비해 나은 점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약삭빠르고 매사에 계산적이며 교활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형 ‘에서’의 약점을 이용해서 장자 권을 팥 죽 한 그릇으로 차지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노환으로 시력이 떨어진 아비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채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의 행위와 무관하게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그의 행위에 근거해서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 기초해서 하신 것입니다.


물론, 야곱의 죄악과 행동은 혹독한 대가와 징계를 받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속인후 수많은 사람에 속임을 당합니다. 외삼촌에게도 당하고 자식들에게도 당합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먹고 22년을 감쪽같이 속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아주 버리시거나 구원을 다시 거두지는 않으십니다. 때문에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되는 성도의 견인교리의 근거가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4) 요10:28절도 보세요.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성도의 구원은 절대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생입니다. 그러니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신 창조자이시고 주권자이시기에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취소되거나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보증하십니까? 하나님이 보장하고 계십니다.



3. 성도의 견인교리가 주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요?


오늘 우리가 살펴본 성도의 견인교리는 칼빈주의 5대 교리의 결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칼빈주의 5대 교리의 내용인 전적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의 결과로‘성도의 견인’교리의 성립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성도의 견인”교리는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를 주십니다.


어떤 은혜입니까?


1) 구원을 의심치 않고 확신케 합니다.


성도의 견인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은 이것입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이냐?”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구원을 받게 된다는 의미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새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된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은 성령의 소욕을 좇는 삶에로 방향전환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도 일시적으로 타락하고 넘어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육체의 소욕에 끌려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도하고 그 심판을 받기도합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밧세바를 범합니다. 돌이키기 힘든 죄를 지어 혹독한 대가를 치루며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그냥두지를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케 하십니다. 그래서 강권하여 돌아서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면 구원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 구원을 확신하십시오.


2)구원의 감격과 감사의 삶을 누리게 합니다.


이 성도의 견인 교리는 구원의 영원성과 영속성을 보증합니다. 그래서 한번 구원받은 성도는 어떤 이유로도 중도에서 결코 구원을 잃거나 믿음에서 아주 떠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이유로 우리가 받은 구원이 취소되거나 버려진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구원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그 성격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 편에서나 다른 어떤 피조물에 의해 결코 영향을 받을 수도, 받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그 은혜와 그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 은혜와 그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의 견인교리는 그 내용과 성격의 특징상 주체가 하나님입니다.


구원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인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러기에 구원을 얻은 성도들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신앙 때문에 환난이 닥치고 고난이 찾아오고 핍박이 닥쳐도 잘 인내하고 견디어 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견인, 즉 참고 인내하는 것조차도 사람의 의지가 아닌 주님의 은혜로 이겨내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내주하셔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을 주장하시고 우리가 천국에 이르도록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그러기에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의 기초를 바로 세우고 취소될 수 없는 구원의 은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다시 봅시다. 33절부터 보세요.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9절도 보세요.


39절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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