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와 세례의 차이점


1. 구약 시대의 할례와 신약 시대의 세례는 그 의미에 있어서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르다고 하면 하나는 구약 시대에 사용된 방식이고, 육체에 표시를 내는 것인 반면에, 세례는 신약 시대에 사용된 방식으로 육신보다는 영적인 표시(마음의 할례)가 강조되는 점입니다.


2. 할례에 대해서
구약의 할례는 신약시대의 세례의 모형입니다. (골 2:11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스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 2:11)

할례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언약의 징표였습니다. 할례에 대한 명령은 (창 17장)에 나오는데, 이 곳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명하셨습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하나님은 11절)에서 '이것(할례)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라'고 선언하셨고, 13절에서 "모든 사람이 다 할례를 받아야 할지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언약의 표시로 이스라엘 백성의 몸에 새겨진 흔적이었습니다. 할례는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라!"는 징표이며, 상징이었고, 또한 표시(mark)였습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명서, 즉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할례는 옛 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예식이며 증거였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확실한 표시였습니다.


3. 세례에 대해서
신약 시대에 오면 할례가 세례로 바뀌어집니다. 할례가 육체에 증거를 남긴 반면에, 세례는 물을 통해서 영적인 변화를 표시했습니다. 할례가 유대인이나, 유대인이 되려는 이방인들에게 육체적으로 행해졌다면,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사람이 행하는 영적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자신의 육체를 물에 장사지내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자녀)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세례를 받기 위해서 몇 가지 요청되는 것이 있습니다.

1) 첫째는 회개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너희가 각각 회개함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회개는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들이 죄에서 돌이켜서 주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2)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자신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영생의 보증은 죄의 고백과 세례에 임하시는 성령의 은사인 것입니다. (벧전 3:21)을 보면 세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 말씀을 보면 베드로는 세례를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주시는 "구원의 표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세례는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표시로 행하는 거룩한 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세례는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고백한 사람에게만 베풉니다. (행 8장)을 보면 에디오피아 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빌립의 전도를 받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노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빌립은 그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 받는 예식이 세례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세례는 "구원의 표"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음을 표시하는 거룩한 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할례와 세례의 관계(진정한 할례(세례)의 의미)
다음 구절들은 할례와 세례의 의미가 동일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

예레미야는 범죄한 유대인들에게 육신의 몸을 베지 말고, 마음의 가죽(완악한 마음과 불순종)을 베어내라고 쵹구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할례는 신약 시대의 세례의 정신과 일치합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 2:28-29)"

바울은 형식적인 육신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 즉 신령한 할례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육체의 자국과 흔적을 남기는 할례보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순종하는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할례의 정신은 세례의 정신과 일치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할례당이라고 자랑했으며, 이방인은 무할례당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고 선언했습니다(렘 9:26). 또 바울도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라고 말했습니다(갈 6:15).

또한 바울은 (고전 10:1-)에서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 바다를 건넌 것을 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세력과 바로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신약에서 세례가 구원을 받고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과 그 의미가 일치합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며, 또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베푸는 징표입니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씻고, 새로운 삶을 사는 생활의 변화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가죽을 베어내는 마음의 할례와 그 의미가 같습니다. 물로 받는 세례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세례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예식은 마음의 세례(성령 세례)가 있을 때에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회개하거나 주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http://biblenara.org/q&a/Q53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