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아라비아에서 보낸 삼 년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뒤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고, 거기서 3년 동안 체류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그는 자신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고 분명히 진술합니다. 그러나 아라비아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거기서 조용히 칩거하면서 깊은 기도와 묵상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최근에 어느 주석학자는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모든 인간적인 접촉을 끊고 하나님과 홀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이것은 새롭게 개종한 유대 바리새인이며 기독교 박해자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바울은 회심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에게 계시된 복음의 진리에 비추어 기독교에 대해 자신이 이전에 견지했던 입장을 반성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 모든 기간 동안 바울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자신이 정통해 있던 구약과의 관련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생각했을 것이다(그랜트 오스본[편], 「에베소서」[성서유니온선교회, 2006], 73).

말하자면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보낸 3년은 본격적인 복음 사역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던 셈입니다. 사역을 하기 전에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냈고,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기도와 묵상과 성경연구로 사역을 준비했다고 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도 바울이 체류한 ‘아라비아’를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와 동일한 곳으로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25절에서 ‘아라비아’라는 지명이 다시 등장하는데, 이 본문에서 바울은 아라비아 시내 산이 있는 곳이라고 명시합니다. 회심한 뒤에 바울이 간 곳이 시내 산이 있는 아라비아 사막이라면 그곳에서 그가 3년 동안 기도하고 묵상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보입니다. 광야나 사막에서는 기도와 묵상 이외에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의 다른 증거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9장 19-20절에서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라고 말합니다. 사울(바울)은 회심한 후에 다른 준비 없이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확신하는 일은 눈이 먼 상태로 보낸 3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행 9:9).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과정에서, 또는 핍박하기 전에 복음의 내용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을 정통 유대인이라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불온하고 심지어 참람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강력하게 핍박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했고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복음이 참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울의 인생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복음을 만민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멸하는 자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더구나 다메섹 체험은 단순한 ‘회심’(conversion)이 아니라 ‘부르심’(calling)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 자신이 고백하듯이 그 부르심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는 데 있었습니다(갈 1:16). 따라서 바울이 다메섹에 머무는 며칠 동안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한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런 형편에서 그가 멀리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까지 가서 새삼스럽게 3년 동안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사역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아라비아에 간 목적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라비아에 갔다고 할 때 ‘아라비아’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광야나 사막 지대라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F. F. 브루스와 리처드 롱게네커를 포함한 많은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3년 동안 체류한 ‘아라비아’가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 사막이나 광야가 아니라 아라비아의 나바티아(Nabatea) 왕국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이 왕국은 다메섹 동남부에서 시내 반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데가볼리 성들의 일부와 거라사 등이 이 왕국에 속해 있었고, 남부의 페트라(Petra)와 북부의 보스트라(Bostra)가 이 왕국의 주요 도시였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나바티아 왕국이 아라비아에 포함되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로마 시대에 나바티아 왕국은 아라비아의 나바티아로 알려졌습니다. 회심 후 바울은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 사막이 아니라 다메섹의 동남부에 있는 아라비아의 나바티아 왕국에 가서 그곳에 형성된 유대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3년 동안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고린도후서 11장 32-33절에 기록된 바울 자신의 증언에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이 사건은, 거의 모든 성경학자들이 옳게 지적하고 있는 대로, 사도행전 9장 23-25절에 기록된 사건과 동일합니다. 이 본문에서 누가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내리니라.” 두 사건은 모두 다메섹에서 일어났고, 두 사건에서 모두 사울(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 탈출합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본문에서는 아레다 왕의 방백이 사울(바울)을 잡으려 한 반면, 사도행전 본문에서는 유대인들이 사울(바울) 죽이기를 공모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아라비아와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이 사울(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하고 아레다 왕의 방백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입니다. 또는 바울이 아라비아(나바티아 왕국)에서 3년에 걸쳐 유대인들뿐 아니라 나바티아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문제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전하는 것에 분개한 유대인들과 협력하여 나바티아인들이 바울을 체포할 목적으로 다메섹 성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본문에서 ‘여러 날’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표현은 사실상 오랜 기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많은 날’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다메섹 성에서 탈출한 사건은 그가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와 나바티아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혀 다메섹으로 돌아온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다메섹까지 바울을 추격한 유대인들과 나바티아인들은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과 공모하고 그 지역을 총괄하던 아레다 왕의 방백의 지휘 아래 바울을 체포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받아 밤에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도망한 것입니다.    

바울이 나바티아 왕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은, 고린도후서 본문에 나오는 ‘아레다’ 왕이라는 표현에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레다 왕은 주전 9년부터 주후 40년까지 나바티아 왕국을 통치한 아레다 4세(Aretas IV)입니다(그는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장인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헤롯은 아레다 왕의 딸을 버리고 자기 형제의 아내이자 조카딸인 헤로디아와 결혼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34-39/40년 사이에 아레다 왕이 다메섹을 통치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기간에 바울이 아레다 왕의 방백의 손을 피해 다메섹 성을 탈출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34-62년 사이에 주조한 로마 동전이 다메섹 지역에서 출토되지 않았다는 다소 빈약한 증거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 기간에 다메섹이 로마의 통치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당시에 다메섹에 많은 나바티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아레다 왕의 영향이 다메섹까지 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레다 왕은 다메섹에 있는 나바티아인 공동체의 지도자를 방백으로 세웠을 것입니다. 바로 이 방백이 유대인들과 나바티아인들과 함께  바울을 체포하려 한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 증거(갈 1:17; 고후 11:32-33; 행 9:19-20, 23-25)를 이렇게 이해하면, 바울은 회심 후에 아라비아의 나바티아 왕국에 갔으며, 그곳에서 3년 동안 깊은 기도와 묵상과 성경연구를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곳에서 3년 내내 복음을 전파하는 일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 전파와 함께 정기적으로 기도와 묵상도 했을 것이고, 성경 연구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복음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더욱 깊어졌을 것이고, 그 결과 복음을 더욱 힘 있게 전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라비아의 나바티아 왕국에서 그가 주로 한 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할수록 유대인들과 나바티아인들의 반대도 극렬해졌을 것이고, 결국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아라비아에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조용히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했다면 반대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레다 왕의 방백이나 유대인들이 그를 체포하거나 죽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사역을 위한 준비 없이 즉시 다메섹에서, 그리고 아라비아(나바티아 왕국)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에도 복음 사역을 위해 따로 준비할 필요 없다고 주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는 특별합니다.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전통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리고 다메섹 도상의 체험을 통해 구약의 가르침과 유대교의 전통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지닌 의미를 극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하나님께서 벗겨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빛을 그의 마음에 비추어주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바울은 이미 준비된 그릇이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체류한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신실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응답한 점입니다. 그가 상황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이방지역에 들어가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지경까지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이런 모습은 종교적 관용을 미덕으로 예찬하고 기독교 복음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시대에 모든 기독교 사역자들이 따라야 할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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