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렙과 옷니엘

 (수15:13-19)

오늘 본문은 특별히 내 자신과 우리 교회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여호수아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과 정복 전쟁을 마무리 중이다. 전쟁은 쉽게 정복한 땅도 있었지만 아이성과 같은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정복해야만 하기도 했다. 헤브론 성 같이 취하기가 어려운 곳을 분 깃으로 원했는데 그곳에는 세 명의 거인들이 있었다. 아낙의 세 아들인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였다. 그 당시는 청동기 시대였기 때문에 요즘처럼 예리하게 만든 총이나 칼이 없었다. 청동기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몸의 심장 같은 치명적인 부위를 있는 가까이에서 강한 힘으로 깊게 찔러야 죽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기를 다루는 사람의 덩치와 힘은 중요했다. 이렇게 거인 자손들이 살고 있던 그 땅을 취하는 일은 힘든 일 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거의 팔십에 가까웠던 갈렙은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시기로 한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반드시 그 산지를 취할 것이라 고백하며 도전하여 취했다. 이런 갈렙의 모습은 오늘 이 땅에 이민 와서 새 삶을 개척한 부모님 세대들에게 좋은 귀감이 됐을 것이다. 갈렙의 세대가 보여준 또 하나의 귀감은 믿음을 말로만 보여주지 않았다. 갈렙은 말로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렵지만 도전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몸과 삶으로 보여주었다. 이것은 다음 세대에 진취적인 삶의 모습으로 비쳤다. 우리도 다음 세대에게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구체적인 믿음의 계승을 해야 할 것이다.

본문은 드빌 거민을 친 이후 이제 기럇세벧을 치기위해 전진 중이다. 이때 갈렙은 재미있는 제안을 한다. 드빌을 쳐서 취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은 내주어 사위를 삼겠다고 한다. 1세대인 갈렙이 직접 그 땅을 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이 기회를 잡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갈렙의 조카가 되는 옷니엘이다. 이 일은 목숨을 거는 문제였다. 그곳도 거인들이 살고 있던 쉽지 않는 땅이었다. 그러나 옷니엘은 도전해보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이것은 1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일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취적인 신앙의 모습을 갖춘 다음 세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결국 옷니엘는 승리하고 기럇세벧을 취하게 되었다. 갈렙은 약속대로 옷니엘에게 딸 악사를 내주어 사위를 삼아 아들이 없던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옷니엘의 이야기는 사사기 1장을 통해 반복되어 소개된다. 그는 이스라엘의 제 1대 사사가 되었다.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정복시대가 끝난 후 사사 시대의 첫 지도자가 되었다. 1세대의 신앙을 계승 받아 다음세대의 지도자가 된 것이다. 갈렙의 안목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갈렙은 다음세대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자신들의 계승을 받지 못하게 했다. 그는 부모 세대들의 진취적인 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도전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런 신앙의 모습을 따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말씀을 적용해보자. 1세대들은 미국으로 이민 와 새벽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수고한다. 무슨 목적을 두고 열심히 살고 있는가? 새벽제단을 쌓으며 기도를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들에게는 우리세대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하나님의 보살핌과 축복이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지난 4월에 ‘홀리 웨이브’ 라는 귀한 예배를 시작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을 통해 도전을 받는다. 신앙은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안주하려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음세대에게 신앙을 계승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용장 밑에 약졸이 없다” 라는 말이 있다. 아주 강한 장군 밑에는 오합지졸의 모습을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 봤을 때 다음세대의 삶을 결정하는데 부모세대의 영향력은 무척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녀가 어떤 모습을 갖기 원하는가? 어떤 배우자를 선택하길 원하는가? 옷니엘과 같이 다음 세대였지만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신앙의 모습을 갖길 원하기 보다는 1세들보다는 편한 신앙의 삶을 살기 원하지는 않는가? 더욱 심각한 것은 부모들은 안이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녀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다면 진취적인 신앙의 계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녀들에게 진로를 지도하면서 혹은 배우자를 선택하게 할 때 부모들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입으로는 신앙을 말하지만 세상적인 안목과 가치수준에만 맞춘다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바라는 자녀들은 어떤 모습인가? 부모 세대의 진취적인 신앙의 모습을 계승 받아 도전적으로 사는 모습인가 아니면 부모 세대가 이루어놓은 것들을 누리며 안주하는 신앙의 모습인가? 사사기를 통해 안주해버린 신앙인의 비참함을 본다. 편안한 삶을 사는 것 같았지만 결국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고 신앙을 잘 계승하지 못해 종의 삶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이 일은 불과 40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조상들의 신앙의 긍지를 잃어 버리고 종의 자리까지 가고 말았다. 정복시대와 사사기 시대를 사는 큰 차이는 야성과 도전적인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녀세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은 지금 부모세대의 삶의 모습으로 결정 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새벽을 깨우는 개척자의 정신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는 부모세대가 되자. 남 가주 사랑의 교회는 바로 이런 개척 정신으로 지금까지 왔다. 많은 어려움과 도전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믿음으로 승리하고 귀한 교회를 이루어 왔다. 중요한 것은 현재에 안주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다음 세대들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주해버리면 다음 세대들은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이들에게 언제 기럇세벧을 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겠는가?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모두에게 도전하고 싶다. 특히 자녀세대들은 부모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자세보다는 진취적인 자세를 갖추길 바란다. 부모세대를 뛰어넘어 하나님이 원하는 새로운 차원의 신앙의 모습으로 점프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부모세대가 흘린 눈물과 땀보다 더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진취적인 생각 없이 그저 물려받은 것에 안주한다면 자칫 그것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갈렙과 옷니엘처럼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모두에게 하나님이 정복시대 때 주셨던 영광을 경험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안주하는 시대로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산지를 보여주신다. 우리 주변과 이웃들을 바라보면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갈렙과 옷니엘처럼 주님께서 주신 산지라면 다음세대를 통해 그 산지를 취할 수 있도록 스스로 진취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승해야 한다. 우리들 가운데 갈렙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옷니엘이 일어나기를 축원한다.
김일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