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를 요약

진정한 은혜에 속한 종교적 정서

- 그 진위는 무엇으로 가려지는가  -

“저는 저 자신이 종교적 정서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종교의 위대한 요소를 생각할 때마다 엄청난 감동에 젖어듭니다.”

살펴 볼 사항
1. 자기가 종교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족해서는 안 됩니다.
2. 그보다 더 위험한 일은 종교에 있어서 정서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인양 모든 정서의 존재나 효용성을 부정하고 정죄하는 일입니다.
3. 그러나 종교적인 감동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참된 은혜를 받았거나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감동을 받은 사람으로 무조건 인정해 버리는 일은 더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옳은 방식은 종교적 정서들의 진위를 구분해 내는 일입니다. 곧 그 정서가 어떤 유의 것인지를 분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두 가지 일을 하고자 합니다.
1. 그 정서들이 참된 종교에 속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어떠한 방식으로도 확실하게 보여 주지 못하는 표증들을 언급하겠습니다.
2. 신령하고 은혜로운 정서와 그렇지 못한 정서를 구분하고 분별하게 해 주는 몇 가지 상황을 관찰할 것입니다.


먼저 정서들이 은혜에 속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나타내는 표증이 아닌 몇 가지 경우를 살펴봅시다.

1. 정서의 진폭의 크고 작음이 정서의 진위를 가리는 표증은 아니다
종교적인 정서가 매우 높은 정도에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 참된 종교의 본질에서 떠나있다고 매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서를 매우 높게 드러낸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광신주의자로 몰아세우는 것은 큰 실수를 범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종교적인 정서가 크다고 해서 그것이 영적이고 은혜로운 성질에 속한 것이라는 말 또한 결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는 이 본질에 속한 것들을 판단하는 확실하고 틀림없는 원칙이 있습니다.
영적이지 못하고 구원과는 아무 상관없는 종교적인 정서이면서 매우 높게 나타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에서 자기들을 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을 때, 그 자비로움 속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금방 하나님의 일을 잊어 버렸습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기이한 표증을 보여 주셨을 때 그들은 다시 크게 감동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룩하신 언약을 제안하셨을 때에도 기꺼운 마음으로 거기에 응하였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며 순종하겠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기꺼운 마음과 뚜렷하게 드러났던 정서가 얼마나 빨리 종식되고 말았나요! 그 얼마나 신속하게 눈을 돌려 다른 신들을 좇으며, 자기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즐거워하고 그 주위에서 소리쳤던가요!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이적을 보고 감명받은 허다한 무리들이 크게 흥분하였고, 예수께서 나증에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에 얼마나 큰 소동을 벌였습니까. 그들은 겉옷을 벗어 길에다 깔고 큰 소리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습니다. 예루살렘 온 성이 울릴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큰 소리를 질러대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사람들이 이러한 소동을 벌인 까닭은 나사로를 살려 내신 이적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요12:18)
그러나 그 당시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은 몇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열광적으로 주를 맞았던 이들이 얼마나 재빨리 돌아섰습니까! 바로 그 예수님께서 결박을 당한 채 조롱삼아 입힌 홍포를 입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침밷음과 저주를 받으시고, 욕설을 들으실 때 그러한 모든 것이 자지러졌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때도 허다한 무리들 중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큰 소리로 외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번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호산나, 호산나’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으라, 십자가에 못박으라.’ 였습니다.
모든 보수적인 성도들의 한결같은 소리는, 종교적인 정서들이 매우 높은 데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참된 종교와는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 육신에 나타나는 반응이 참된 정서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몸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그 정서가 영적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전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효과가 때로는 세상의 일시적인 것에 대한 큰 정서에서 야기되는 경우가 빈번하며, 어떠한 방면에서도 종교에 관심이 없는 경우에도 그러한 효과는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정서는 어떤 측면에서나 또 어느 정도가 되든 몸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어떤 생각을 하거나, 어떤 일에 마음을 쓸 때 어느 정도까지 몸에 영향을 끼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몸의 어떤 부분에 그에 상응하는 활동이나, 움직임의 변화를 어느 정도는 가져옵니다.
상대적으로 크고 강한 정서의 행사는 역시 상대적으로 몸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차원에서나 영적인 차원에서 매우 큰 정서들이 있다고 하다면 몸에 미치는 큰 영향들이 이러한 두 종류의 정서로부터 나타안다는 것이 결코 의아한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몸에 나타난 영향들은, 그 정서가 어떤 유에서 나온 것인지를 보여 주는 표증이 결코 되지 못합니다.

3. 신앙을 뜨겁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 참된 은혜의 정서의 표증일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정서적 양상을 보고 그것에 대하여 선입견적인 반감을 가집니다.
지나치게 말이 많은 사람을 보면, 그것이야말로 그들을 바리새인들이나 고집 센 외식자로 정죄할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반면에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서 나타나는 효과를 보고 매우 무지하고도 신빙성이 없게 그 사람들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성령의 구원하시는 감화 아래 있다고 단정해 버립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근거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단정은 여러 가지 사례들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짧은 판단과 부족하고 불충분한 체험의 소치에 불과합니다.
바로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지혜와 분별력만을 믿고 성경대신 자신들의 관념을 법칙으로 삼는 데서 오는 실수입니다.

성경은 우리 자신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나타내는 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보여 주는 원칙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효과를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성경 어디에도 우리 자신이나 이웃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좋은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여질 것이라는 원칙제시는 없습니다.
그런 식의 생각은 입과 혀의 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성경에서 무성한 나뭇잎으로 상징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나무가 잎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잎이 무성하다고 해서 그 나무가 좋다는 증거가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정서가 어떤 종류이든지, 또 그것이 대상으로 삼는 것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 정서가 강하면 강할수록 감동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받은 일을 매우 많이 말하도록 합니다. 그런 것이 정서의 본질입니다.
종교에 속한 것에 대하여 매우 풍성하고 열렬하게 많은 말을 한다는 것이, 그가 종교에 속한 일로 크게 감동되었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증거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은혜에 속한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체험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하고, 어느 곳에서나 자기 체험을 얘기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며, 또 동료들 앞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려고 합니다. 그런 경우는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잎으로 무성한 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는 경우는 드물며, 큰 바람을 동반하여 많은 비를 쏟아내릴 것만 같은 구름이, 마르고 갈한 땅에 단비를 뿌리는 경우는 드문 것과 같습니다(잠25:14, 벧후2:17).
거짓된 정서가 참된 정서와 동일하게 강한 모습으로 드러난다면, 참된 정서보다 오히려 더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말하자면 바리새인의 경우처럼 외양이나 어떤 규례를 지키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거짓된 종교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Daum cafe "JonathanEd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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