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광 목사/ 열린문교회,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사랑에 대한 태도에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이들은 사랑의 의미를 서로 나누게 된다. 둘째, 사랑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이는 이기적이고 교만한 자로 나타난다. 셋째, 사랑을 받고 배신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서로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모든 행위는 이웃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성경에는 두 가지 대야가 언급되고 있다. 하나는 예수님의 대야이다. 주님은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이는 봉사와 희생의 대야로 쓰여졌다. 또 하나는 빌라도의 대야이다. 그는 대야에 물을 담아 손을 씻고는 예수를 군중들에게 내어준 일에 책임을 전가시켰다. 즉 그는 나만 살겠다는 비열한 행동을 보였다. 두 대야는 선의 몫과 악의 몫을 하는데 사용되었다.

 

고통에도 몫이 있다. 여인의 고통 중 해산의 고통이 대표적이다. 또한 맹장을 앓을 때도 매우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과연 해산의 고통이냐 맹장의 고통이냐 어느 쪽이 더 힘든 고통이냐? 실제로는 둘 다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르다. 해산의 고통은 생명을 얻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질고의 고통은 참아도 의미가 없다. 그저 견뎌야 하는 고통이기에 더 원망스럽다. 고통이란 형태와 길이보다 깊이와 의미가 더 중요하다. 즉 무엇을 위해 고난을 당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웃 사랑에 대한 사례가 많다. 특히 연말연시에 많은 베픔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웃은 사랑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요 악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 사랑은 수직적이고 이웃 사랑은 수평적이다. 또 하나님의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하여 증거되고 온전케 된다. 사람이 형식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할 길이 없다. 즉 하나님께 선물을 보낼 수도 없고 하나님께 맛난 식사를 대접해 드릴 수도 없다. 그러나 주님은 어린 소자 중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일러 주셨다.

 

그리스도인은 충성함과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이겨야 한다. 또 성도는 이웃도 이겨야 한다. 이웃을 이기는 길은 바로 믿고 용서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은 마침내 승리케 하는 그리스도의 방법이다. 이러한 승리에는 보복이 없다. 성도는 이웃을 이겨버려야 이웃과의 갈등을 해소해 갈 수 있다.

 

하나님의 질서 중 심은대로 거두는 것과 수고한대로 먹는 것이 있다. 그 중에서 수고의 떡을 먹는 자는 복되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수고하는 자에게 몫을 주시고 심은 자에게도 몫을 주신다. 남의 몫을 챙기면 결국 범죄에 이르게 된다. 신자는 자기의 몫을 정당하게 누리면서 이웃의 몫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인생의 삶에는 몫이 있다. 즉 하나님의 몫과 이웃의 몫과 자신의 몫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명백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의 몫을 반드시 돌릴 것을 명하고 있다.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고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고 하신다(레 23:22). 이웃의 몫은 네 가지이다.

첫째는 구제이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에게 베풀고 살아야 한다. 구제 십일조는 이웃의 몫이다. 반드시 드려야 하는 몫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곧 구제이다.

 

둘째는 품삯이다. 너는 이웃의 품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두지 말라(레 19:13)고 하셨다. 품삯은 내 몫이 아니다. 반드시 주어야 하는 이웃의 몫이다. 어느 사업가는 이윤이 남지 않아도 공장을 가동시켜서 온 직원들과 더불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계속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용인에게 둘려줄 품삯을 내게 있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 빚은 이웃의 몫이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빚진 자는 상대를 잊어버릴지라도 돈을 준 자는 상대를 잊지 않는다. 빚으로 이웃을 상심시키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기름을 주어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두 아들과 더불어 생활하라고 말했다. 빚을 갚는 일은 회개의 원리이기도 하다.

 

넷째로 세금은 이웃의 몫이다. 국가에 내는 세금은 온 국민을 위한 몫이다. 성도에게 있어서 절세(節稅)는 가하지만 탈세(脫稅)는 불가하다. 예수님도 성전세를 내셨다(마 17:27).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몫과 이웃의 몫을 구분하고 돌려 드려야 한다. 그리고 내 몫을 누려야 한다. 하나님은 내 몫을 가장 많이 주신다. 그가 베푸시는 은혜와 복을 받아 누려야 한다. 언약의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를 감당할 때 주시고도 기뻐하신다.

 

소유가치냐 존재가치냐의 이론이 있다. 욥은 존재가치의 인생이었으나 그의 아내는 소유가치의 인생이었다. 우리는 부자와 가난한 자 중에서 항상 옳은 자 편에 서야 한다. 성도는 의로운 부자 또는 의로운 가난한 자로 살아야 한다. 의로운 삶이란 삶의 몫을 바르게 구분하는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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