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마치 빙판 위를 누비는 피겨 스케이팅 복식조의 모습이다. 남녀 한 쌍이 서로 팔다리를 비껴 맞춘 채로 음악에 맞추어 완벽하게 일치되어 빙빙 돈다. 둘의 동작은 별개이며 서로 다르지만 하나로 여겨질 정도로 안무가 섬세하다. 갑자기 둘은 갈라져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가 싶더니, 아름답게 한 바퀴씩 돌고는 다시 하나로 만난다. 이것은 ‘한 몸’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을 담은 아름다운 그림이다.

결혼하고 첫 10년 동안, 나는 내 행동 때문에 하마터면 우리의 결혼 생활을 망칠 뻔했다. 나는 아내가 또 하나의 나이기를 기대했다. 누군가가 당신을 자기의 복사판으로 찍어내려고 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내 의견과 관심사가 곧 아내의 의견과 관심사이기를 원했다. 아내가 생각도 나와 같고, 입맛도 나와 같고, 문제를 푸는 방식도 나와 같기를 원했다. 그 이유는 그게 옳았기 때문이다!

유난히 어둡던 어느 저녁을 나는 잊지 못한다. 우리는 부부상담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풀리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여보,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파트너’라는 말로 미화시키지 마세요. 당신은 기분 좋고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요.” 그 말과 함께 아내는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가 방문을 닫아걸었다.

나는 주방 식탁에 앉아서 그간 내게 생겨난 버릇들, 아내를 향한 일방적이다 못해 거의 신경증적인 요구들을 뼈아프게 되돌아보았다. 조그만 것 하나하나까지 내 멋대로 아내를 구속했던 부분들이 떠올랐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내가 큰 잘못을 했음을 깨닫고 위층으로 올라가보니 아내는 울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말했다. “당신 말이 옳아요…. 이제 달라질게요.”

그 뒤로 거의 4년 동안, 여태껏 우리가 부부로서 해본 가장 힘겨운 작업이 이어졌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에 눈을 떠야 했다. 하지만 보상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여전히 나는 가정을 이끌었지만 자유가 훨씬 많아졌고, 아내에게도 자기다워질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주었다. 점차 조금씩 아내는 나의 사랑과 날로 더해가는 존중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자기 편이고 자기를 믿어준다고 느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내 안에서 전에 몰랐던 한 여자를 발견했다. 새로 출현한 여자는 전에 없던 존중심을 내 안에 불러일으켰다. 나는 아내를 인정해주고 높여줄 더 새로운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인사이트 포 리빙>이라고 하는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이 일이 살아남고 성공하려면 아내가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게는 그 일을 훌륭히 해낼 시간이나 소질이나 기술이 없었다. 고맙게도 아내는 목사의 아내(지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와 네 자녀의 어머니(그보다 더 힘든 일!)라는 기존 직무들 위에 그 일 하나를 더 맡아주었다. 방송이 거듭되면서 아내에게 맡기기를 잘한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아내가 이 라디오 방송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모임에 종종 참석한다. 몇 년 전의 한 모임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그때 아내가 했던 말 때문이다. “이 일의 가장 좋은 부분은 남편이 제 파트너라는 사실입니다.” 문득 15년 전의 일이 머릿속에 스쳤다. ‘파트너라.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진정한 파트너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한 몸’을 이룬 것이다.

하나님이 원래 만들어놓으신 결혼 계획을 인식하고 우리가 그 과녁을 얼마나 빗나갔는지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부부간의 하나됨을 회복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지난날의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과녁으로 되돌아가려는 걸음을 내딛기 시작할 때 우리는 배우자에게 희망을 주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우리가 신실한 자로서 우리 사회에 주는 희망이기도 하다. 옳은 일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이미 우리는 결혼할 때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영원히 한 몸이 되겠다는 ‘헌신’ 서약을 했다. ‘헌신’은 평생 가는 결혼의 열쇠이며,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의 명령들이 다 그렇듯이 이것도 당장 눈앞의 상황 너머를 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며, 거기에 순종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보상이 따른다. ‘헌신’은 감정에 따라 변하지도 않고, 심지어 배우자의 태도에 달려 있지도 않은, 선택과 결단이다. 헌신은 당신의 배우자에게 이렇게 말하게 한다.

“나도 일이 틀어진 것을 안다. 나는 당신이 잘못을 저질렀고,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도 지금이 가장 힘든 때임을 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당신과 함께 남겠다.”

- 『행복한 가정의 탄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