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신학생이었을 때, 나는 친구들 몇 명과 함께 가가와 도요히코의 강연을 들으러 뉴욕에 갔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일본의 도시들에 폭격을
가하다가 격추당한 미국의 비행조종사들을 구하려고 끊임없이, 용감하게 일했던 사람이다. 이 폭격이 동포들에게 어떤 짓을 해놓았는지 보면 가슴이
찢어졌지만, 그는 적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부상당하고 공포에 질린 채 어려움에 처한 그들을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외딴
섬에 감금된 미군 비행조종사들을 찾아가 음식을 가져다주고 다친 데를 싸매주었다.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평생을 남을 위해 헌신한
가가와가 강연을 할 때, 가냘픈 그의 목소리는 들릴락 말락,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저 간단한 복음만을 전할 뿐이었다. 우리가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평화주의와 권력에 대한 철학적인 변론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때, 내 옆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뭐 별 이야기도 없네.” 그러자 내 앞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한 여성이 뒤돌아보더니 두 젊은 친구들에게 예리한 지적을
했다. “십자가에 달렸던 분은 아무 말씀도 하실 필요가 없으셨지.”
교회의 모든 설교에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많은 크리스천들도
정작 예수님의 이런 스타일이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따라가야 할 본보기임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사랑하기에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궁극적으로 드러내 보이기 위해 자신의 힘과 권력을 사용하시기를 거절하셨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통해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수고하고 계신다. 그분은 자신을 우리의 삶에 강요하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몇 년 전, 내가 가르치는 이스턴 대학교 학생들 몇 명이 도미니카공화국의 생활환경과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했다. 연구
조사를 하던 중 학생들은 어려움에 빠진 그 나라가 설탕을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분개했다. 걸프 앤 웨스턴이라는
기업이 그 나라 동부의 반이나 장악하고 있었다. 걸프 앤 웨스턴은 설탕 사업뿐 아니라 성장 일로에 있는 관광 산업의 일환으로 호텔과 골프장 등의
시설에 주요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회사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입지가 너무나 확고해서, 국가의 그 어떤 일이라도 회사 내의 유력자들과
협력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참다못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부를 끌어내리고 걸프 앤 웨스턴의 자산을 동결한 후, ‘국민들의
유익을 위해’ 정부를 재편성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폭력에 의지해 목적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 학생들은 걸프 앤 웨스턴의 주식을 사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소액주주로 주주총회에 참석할 수 있었고, 거기서
도미니카공화국 국민들의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변화들을 주장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비슷한 관심을 가진 세력들을 규합했다. 그리고 다른
주주들로부터 대리 투표권을 얻어 다음 총회에서 강력한 연합체를 구성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세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실패했고,
그로 인해 학생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려고 했던 방법을 재평가해보게 되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정의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강압적인 권력을 사용하실지에
대해 자문했다. 많은 토의와 심사숙고 후 그들은 방법을 바꾸었다. 그들은 회사의 몇몇 중역들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그들이 기꺼이 도미니카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협력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너무나 뜻밖에도 이들 최고 경영진들은 도미니카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하는 품위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을 뿐 아니라 사업에도 유익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회사에
압력을 행사할 시도들을 포기하자, 경영진들은 그들이 현재 실행하고 있는 일들을 기꺼이 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걸프 앤
웨스턴 사의 부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들이 설탕을 재배했던 모든 토양을 검사해서, 식량을 재배하기에 알맞은 땅은 설탕 대신에
식량을 재배하고 나머지 땅만 설탕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도미니카공화국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사회, 경제, 교육 사업에 연간 1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는 앞으로 5년 동안 그 일을 할 것을 정식으로 언론에
발표했다.
사실 걸프 앤 웨스턴 사는 세계에서 부도덕한 회사들 중 하나로 사회운동가들의 요주의 리스트에 오른 곳이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이 회사는 국가 개발에 도덕적인 책임을 지고자 노력하는 회사로서 빛나는 본보기가 되었다. 어려움에 처한 도미니카공화국에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건설적인 세력들 중 하나가 되었고, 말 그대로 도미니카공화국의 동부 반쪽의 생활을 바꿔놓은 것이다.
- 『끝까지 사랑하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