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육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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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목사(Director of Religious Education)를 위한 기독교교육학강의(1)

손원영 교수(대한기독교대학)

    

  나는 몇 일전 기독교교육학 수업을 시작하면서 성서의 몇 귀절을 학생들과 함께 읽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죄짓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죄짓게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를 죄짓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17:1-2).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별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12:3).

  나는 앞의 귀절, 곧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찔리다못해 덜컹 주저앉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교회에서 교사생활을 거의 20년 정도 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나의 시행착오로 인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상처받았을까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특히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그 때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고 있었는데, 나의 반에는 유독 불량끼가 넘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중에 한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심한 욕설을 친구들에게 뿐 아니라 심지어 교사에게까지 예사롭게 하곤 하였다. 나는 그 아이를 불러 세워놓고 꿀밤을 준 뒤, 몇마디 나무란 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주부터 일어났다. 그 아이가 교회에 다시 모습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십 수년이 흘렀지만, 나는 앞에서 인용한 예수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그 아이의 생각이 떠오르며 가슴이 아프다. 혹시 나 때문에 실족하지는 않았을까? 얼마나 나를 미워할까? 영락없이 나는 연자맷돌을 메고 바다로 가야할까 보다. 나의 미숙한 행동에 대해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던지, 지금까지 그 기억은 나에게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 그 아이는 지금도 종종 나에게 다가와 네가 기독교사의 자격이 있느냐 묻고 있다.

  그런데 몇 년전 보스턴 컬리지(Boston College)에서 공부를 할 때였다. 수업시간에 그룸(Thomas H. Groome) 교수님이 ", 우리 성경을 함께 가슴으로 외우면서 수업을 시작합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다니엘 123절을 펴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귀절을 중얼거리다가, 깜짝 놀라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Those who are wise shall shine like the brightness of the sky, those who lead many to righteousness like the stars forever and ever!!"(NRSV). "아니, 이런! 나에게도 희망이 있구나!! 연자맷돌을 메고 바다로 가야할 판이었는데, 가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잘하면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소중한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일종의 회심과도 같은 교육적 경험을 하게되었고 기독교교육학을 공부한 것에 대한 감사가 흘러 넘쳤다.

  나는 학생들과 위의 성경귀절을 함께 읽은 뒤, 그들에게 두번째 질문을 던졌다. "누가복음 171-2절 말씀과 다니엘 123절 말씀은 표면상 서로 모순되는 듯 보입니다. 앞의 누가복음 말씀은 교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경고하는 말씀이고, 뒤의 다니엘서 말씀은 훌륭한 교사에 대한 축복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두 귀절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려면, 어떤 말을 넣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한국교회 기독교교육의 현실을 고려하면서 적절한 말들을 찾아봅시다."

    

  서로 모순되는 듯한 두 귀절을 서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어떤 말이 적절할까? 만약 우리가 연자 맷돌을 멜수 밖에 없는 문제의 교사이지만, 만약 우리(교회 혹은 교회학교)가 변화된다면 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빛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우리가 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되지 않을지라도, 연자맷돌을 메고 빠진 바다가 하느님의 은혜로 죽지 않을 만큼 얕기라도 한다면 다행일텐데 말이다. 어느 한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교수님, 우리 교사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깊이 체험하고, 그 기초 위에서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좀 가능할 것 같은데요." 옆에서 듣고 있던 또 다른 학생이 이렇게 덧붙인다. "그런데 사랑은 너무 추상적인 개념이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의미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기독교교육은 학생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모두를 획일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니까요." 그 후, 몇 명의 학생들이 더 자신의 의견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합의에 이르고 있었다. "교수님, 적어도 우리가 연자맷돌을 안멜려면, 그리고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려면, 아무래도 아는 것과 사는 것이 분리가 되면 않되겠네요. 교사와 학생 모두 자신들이 가르치고 배운 내용을 직접 몸으로 살아낼 때, 기독교교육이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합의에 이르게 되자, 나는 자연스럽게 기독교교육이란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되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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