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계선교의 동향과 전략적 이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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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21세기

저명한 교회사가인 케넷 라토렛은 2천년 교회사를 정리한 그의 방대한 전집에서 개신교 선교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19세기를 ‘위대한 세기 the Great Century’라 명명했다. 윌리엄 캐리가 인도를 향해 선교의 발길을 내딛으면서 봇물 터지듯 시작된 본격적 개신교 선교시대의 도래를 감안할 때 19세기를 가히 위대한 세기라 부를 만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20세기는 더욱 위대한 선교의 세기였고, 선교의 마지막 세기가 되리라 예견되는 21세기는 더더욱 위대한 세기가 될 전망이다.
선교사 출신으로 성경신학자이자 선교역사가인 스티븐 니일은 19세기가 1789년에 시작되었고, 20세기는 1917년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물리적으로는 19세기가 1801년에, 20세기가 1901년에 시작되었지만, 19세기를 특징짓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과 20세기를 특징지운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1917년이야말로 새로운 세기를 연 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절대권력이 일인내지 소수 엘리트 계층에 편중돼 있던 왕조/봉건 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풀뿌리 민주주의 시대를 연 상징적 사건으로 19세기에 수많은 평신도 선교사들을 배출하는 사상적 기조를 제공했다. 한편 볼셰비키 혁명은 20세기를 냉전이라는 독특한 상황으로 몰아갔고, 동서 이데올로기 양대세력의 극한대결 구도 속에서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판이하게 갈리는 시대를 연출했다. 선교적 시각에서 볼 때, 20세기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어떤 국적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선교적 입지가 확연히 달라지던 시대였다.
그렇다면 21세기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에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 세계사의 칠십 여년을 풍미한 공산 이데올로기가 붕괴하면서 하루아침에 냉전이 끝나고 전혀 새로운 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우리의 가치와 관점을 여전히 사로잡고 있는 냉전 멘탈리티에서 속히 벗어나 새롭게 열린 21세기의 현실을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당면한 시급한 과제라 할 것이다.


21세기의 주요 특징

1. 새로운 선교적 기회

21세기에 들어선 이래 세계는 냉전 종식에 따른 정치, 외교, 군사, 경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 있다. 장기간 냉전이라는 고착된 틀에 익숙해 있던 세상은 홀연히 양대 버팀목이 무너진 이후 새롭게 형성되는 역학관계를 파악하고 각자의 자리를 재정립하면서 변화된 힘의 균형을 모색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가 되고 과거의 원수가 새로운 친구가 되는 변화가 우리 주변에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한때 친미주의자였던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사조직 알 카에다의 미국 테러, 과거의 친미 회교지도자 사담 후세인과 미국의 전쟁 등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이러한 재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선교적 기회들을 제공하고 계신다. 과거 한국 교회에게는 불가능했던 구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공산권 선교의 새로운 기회가 그 좋은 예이다. 세상이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분할되었던 냉전시대에는 극우 반공을 국시로 삼던 대한민국에서 접근할 수 있는 대상과 불가능한 대상이 분명하게 구분돼 있었고 그만큼 우리의 선교적 입지도 열악했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으로 우리는 사실상 중립적 위상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접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꼭꼭 닫쳐있는 곳은 없다. 물론 선교를 위해 활짝 열린 문은 없지만 지혜롭고 창의적으로 노력해서 접근하지 못할 대상은 이제 없다.

2. 서구 기독교의 급속한 쇠퇴와 비서구 기독교의 급성장

21세기는 기독교의 급속한 쇠퇴와 성장이라는 상반된 현상이 공존하는 독특한 시대이다. 한편에서는 지난 2천년간 기독교계를 주도해온 서구 교회가 역사상 유래 없는 규모와 속도로 무너지면서 이른바 탈기독교(Post-Christian) 시대를 연출하는가 하면 , 다른 한편에서는 비서구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전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히 기독교의 무게중심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서구에서 비서구로 이동되고 있다는 표현이 실감되는 독특한 세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선교적 관점에서 우리 시선을 이제 서구 교회가 아닌 2/3세계 교회를 주목하게 한다. 바렛과 존슨의 통계 에 근거해 작성된 아래 도표에 따르면 서구 교회는 지난 30년간 18% 성장한 반면, 새롭게 부상하는 비서구 교회는 같은 기간에 131%나 성장했다. 수치상으로 볼 때 이 시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미 교회가 주도하고 있는데, 그들은 숫자만 많을 뿐 아니라 생동감이 넘치고 핍박과 가난 속에서도 성장한 교회들이다. 지구촌에 12명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 산다고 가정했을 때, 북미주에 2명, 중남미에 2명, 아프리카에 3명, 아시아에 3명, 그리고 유럽과 태평양에 각각 1명이 살고 있는 셈이다. 1800년에는 아마도 1% 정도의 개신교도 만이 유럽과 북미주가 아닌 곳에 살았을 것으로 추산되지만, 1900년에 이르러 그 규모는 10%로 늘었고, 오늘날은 약 2/3의 개신교도 및 구교도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

실제로 선교사 파송 추이도 크게 변했다. 필립 젠킨스는 이렇게 말한다: “10년 전에는 대략 91%의 해외 선교사들이 서구에서 파송되었으나 2000년에는 그 비율이 79%로 줄어들었다. 비서구 세계는 대단히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파송 선교사의 수가 3배로 증가했다. (중략) 선교사 파송의 가장 극적인 성장은 한국에서 일어났는데, 그 수는 1990년 2,032명에서 2000년 10,646명으로 늘어났다. (중략) 비서구권 선교사 파송의 두 번째 성장을 기록한 나라는 브라질로 1,08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고, 그 다음은 필리핀으로 678명의 타문화권 선교사를 파송했다. 46,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현저한 선두를 지키고 있고 지난 10년간 6,000명의 새로운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반면에 노르웨이와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전통적 파송국가들은 해외 선교사의 심각한 수적 감소를 경험했다.”

3. 이동하는 무게중심, 변모하는 기독교

21세기 들어 교계의 무게중심이 급속히 이동하면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면모의 기독교를 창출해내고 있다. Wycliffe & SIL International Conference 2002에 강사로 초청된 교회사가 앤드류 월스는 복음이 특정 중심부에 머물기보다 끊임없이 주변부로 흘러가는 특성을 가졌고, 기독교 역사상 복음이 특정 지역에 고착된 때는 교회가 영적으로 부패한 시기였다고 갈파하면서 결국 선교하는 교회가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 역사상 3대 주요 전환기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유대민족 중심의 예루살렘으로부터 그리스/로마로 무게중심이 옮겨진 초대교회 때였고, 두 번째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럽 변방의 야만족(Barbarians)으로 옮겨진 시기였다. 그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기독교계(Christendom)는 사실상 서구 교회였고, 선교의 남은 과업도 결국 그간 선교계를 주도해온 서구 교회가 대부분 감당하게 되리라 예견되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과거에 예견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는데 바로 기독교의 무게중심이 서구로부터 비서구로 옮겨진 일이다. 월스는 이 세 번째가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전환점이며 그런 점에서 20세기는 1세기 이래 가장 놀라운 세기라고 말했다.
이제 기독교는 더 이상 서구종교로 오인 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동하는 무게중심이 기독교의 면면을 새롭게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와 비서구, 북반구와 남반구, 인종과 문화와 언어와 국적을 초월해서 함께 아우르는 기독교의 모습은 우주적 종교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진면목을 21세기 들어 세상에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교계 안팎으로 세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젠킨스의 책 ‘The Next Christendom: The Coming of Global Christianity’ 는 바로 그러한 관점을 드러내는 중요한 저작이다.



세계교회, 전진인가 후퇴인가?

21세기 선교의 전략적 이슈들을 짚어보기에 앞서 우리는 서구 교회의 급속한 쇠퇴와 비서구 교회의 급성장이라는 상반된 두 흐름 속에서 세계교회가 과연 전진하고 있는지 후퇴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그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는 가운데 당면 현안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측정 기준

윈스턴 크롤리는 그의 책 ‘World Christianity 1970-2000: Toward a New Millennium’ 에서 지난 30년간의 세계교회를 조망하기 위한 도구로 교회사가 라토렛이 사용한 네 가지 측정 기준을 도입한다. 첫번째는 기독교인의 숫자고 둘째는 지리적 확산이며 셋째는 영적 생동성이고 넷째는 사회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력이다. 처음 둘은 흔히 사용되는 기준이지만 나중의 둘은 대부분 간과되는 데다가 계량화하기도 힘든 기준이다.
현대 기독교와 선교의 중대 현안이 나중의 두 가지 기준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이 네 가지 기준을 고루 적용하여 세계교회의 전진 및 후퇴를 평가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십자가를 달았다고 곧 복음이 아니고 교회를 표방한다고 다 정통한 기독교일 수 없으므로 계량적 방식만으로 세계교회의 진퇴를 측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처음 두 기준을 먼저 다룬 후 질적인 평가를 한 데 묶어 살펴보기로 한다.

2. 기독교인의 수

바렛과 존슨의 통계 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기독교인의 수는 무려 61.7%나 성장하였다. 일견 참으로 놀랍고 고무적인 전진으로 보이지만, 세계인구도 덩달아 폭증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단순한 산술적 증가보다는 세계인구 대비 기독교인의 비율을 살펴보는 것이 더 정확한 방법일 것이다. 1970년에 33.5%였는데 2000년에 33.0%로 오히려 감소한 사실은 산술적 통계와는 달리 우리를 실망시키는 추이다.
그러나 이 비율은 복음적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구교와 다양한 분파들을 비롯하여 기독교를 표방하는 모든 대상을 포함한 것이며, 대부분의 배교 및 이탈은 주로 명목상의 신자들 가운데서 발생했고 소위 ‘지상명령 그리스도인’은 세계인구보다 훨씬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세계인구 대비 기독교인의 비율이 감소하는 주요 원인이 기존 서구 기독교 국가들의 낮은 출산율과 높은 이탈율에 있다는 사실이 다소 위로는 되지만, 선교의 남은 과업 완수를 위해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에서 기독교계 전체의 비율이 증가하지 않고 감소세로 돌고 있는 것은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 지리적 확산

지리적으로 복음은 꾸준한 확산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위 미전도종족 선교시대를 맞아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했거나 복음적 영향력이 미미한 지역에 선교사역의 우선순위가 매겨지면서 복음의 지리적 확산이 날로 가속되는 추세라 할 수 있다. 한편 끊임없이 이동하는 무게중심으로 더 이상 ‘기독교 종주국’이란 개념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미 거론한대로 이런 일은 기독교가 서구 종교의 혐의를 벗고 점차 세계종교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한편 미전도종족 선교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선교의 대상을 더 이상 지리적 관점이 아닌 종족집단의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재분류 하게 만들었고, 지난 30여년의 세계 선교는 그런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전환을 감행한 셈이다.

4. 영적 생동성 & 사회적 영향력

복음적 생동성의 회복과 사회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 제고는 21세기 기독교와 선교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복음의 선포(proclamation)와 삶을 통한 입증(demonstration)이라는 두 기둥이 증인 및 증거 공동체로서 갖춰야 할 마땅한 균형임을 천명한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의 기안자 존 스톳은 21세기를 앞두고 세계교회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현안이 복음의 가시성(visibility) 회복이라고 주장했다. 복음은 들려줘야 하지만 동시에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한 사람들이 지구촌 곳곳에 상당수 남아있는 게 사실이지만, 2천년 선교역사를 통해 대부분의 세상은 이미 직접/간접적으로 복음을 접해왔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에 식상해 있다. 수많은 이들이 복음을 듣고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외치는 소리만큼 복음적 가치가 우리 삶 속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좀처럼 성화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삶이 복음을 저해하는 가장 큰 장해물인 셈이다. 따라서 현대 전도/선교의 진정한 과제는 띠를 두르고 시끄럽게 외치는 노방전도의 증가나 더 많은 단기선교 팀의 파송에 있기보다 우리가 그토록 소리 높여 외치는 복음을 삶 속에 구현하는 일이다.
한국 초대교회의 최권능 목사 같은 분이 그저 “예수, 천당”만 외쳐도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는 비록 수는 적었지만 세상에서 인정 받던 당시의 한국 교회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반증한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 초대교회 역시 신자들뿐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공동체였기에 그토록 위대한 전도의 능력이 드러났던 것이다. 복음적 가치를 삶에 구현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증거공동체의 뒷받침이 있어야 개인전도도 힘을 받는 법이다. 세상을 선도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기보다 오히려 다원주의나 배금주의 등 세속적 가치관/세계관에 말려들어 기독교를 천박한 종교로 전락시키고 있는 현대교회의 당면 과제는 종교적 활동의 강화가 아닌 변화된 삶을 통한 사회적 영향력 제고임이 분명하다. 최근 들어 값싼 복음(cheap gospel)과 천박한 교회의 심각성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21세기 세계 선교의 방향 및 과제

1. 변화된 상황의 인식과 능동적 대처

21세기 들어 서구 교회와 선교가 급속히 쇠퇴했을 뿐 아니라 정치, 군사, 외교, 문화 등 선교 외적인 요인도 서구 교회의 입지를 심각하게 약화시키고 있다. 20세기만 해도 세계는 친 서구/친미 정서로 가득하여 미국이나 캐나다를 비롯한 서구 열강의 시민권이 마치 사도행전 시대에 바울이 누렸던 로마 시민권과 같은 막강한 힘을 과시했고, 당시 구소련이나 중국 등 공산권 선교를 꿈꾸던 한국인 중에는 목적 달성을 위해 북미주나 유럽으로 이민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반 서구/반미 정서가 부쩍 증폭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특히 걸프 전쟁과 아프간 전쟁, 9/11사태,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진 극단적 대립은 냉전시대의 동서 양분현상에 버금가는 새로운 대결구도를 조성하고 있는데, 자칫 기독교계와 비기독교계의 갈등으로 비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낼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서구 선교가 과거의 열정과 건강을 회복하도록 중보해야 하겠지만, 설령 새로운 부흥이 일어난다 해도 당분간은 이러한 선교 외적인 악재 때문에 서구 선교의 입지가 극도로 제한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은 비서구 선교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요구한다. 좋든 싫든 준비되었든 안 되었든 작금의 선교적 상황은 비서구 교회가 더 이상 관중석에 앉아있거나 서구 선교의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옵션을 남기지 않는다. 비서구인이 곧 선교적으로 적합한 인력이라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지만, 온 세상에 팽배한 반 서구 정서는 비서구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환영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국적과 무관하게 어떤 인종인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황에 대해 요즘 선교계에서는 “국적(passport)보다 안면(passport photo)”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가 서구 및 비서구 교계에서 급속히 확산되면서 세계 선교계는 바야흐로 대안 모색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국제 규모의 비영리단체, 선교단체, 민간단체의 발 빠른 대처가 눈에 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는 20세기말부터 적극적으로 비서구 교회 동원 과 비서구 지도자 영입, 비전과 목표의 재조정, 조직과 구조와 운영방식의 변화 등을 통해 서구 주도의 단체로부터 탈피해 진정한 국제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Wycliffe & SIL 의 국제이사회도 수년 전부터 서구인 중심에서 벗어나 되도록 다양한 국적과 문화와 인종적 배경을 가진 지도자들을 영입하여 바람직한 균형을 맞추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간 항상 미국에서 열려온 3년 간격의 국제총회도 차기부터는 상징성을 고려해서 미국이 아닌 비서구 지역에서 열리게 된다. 구제 단체인 국제기아대책기구가 최근 국제본부를 미국에서 태국으로 옮긴 것도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내린 결정이다.


2. 비서구 선교의 준비

2.1.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 학습

변화하는 선교현장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주체는 어느 누구보다 비서구 교회이다. 월스의 표현대로 비서구 교회는 이제 바야흐로 주변부(periphery)에서 중심부(center)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가슴 벅찬 일이지만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서구 교회가 운전하는 버스에 편승하는 승객이 되기는 쉬웠지만 그들과 함께, 혹은 그들을 대신하여 운전대를 잡기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중심부로 나설 준비가 되었는가? 객석에서 무대로, 관중에서 주연으로 나설 실력을 갖췄는가?
세계 선교가 2천년간 쌓아왔고 개신교 선교가 지난 2백년간 축적해온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학습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비서구 선교가 시대적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하려면 먼저 지금까지 이룩한 금자탑을 딛고 거기에 우리의 독특한 장점을 보태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 문제는 우리를 포함한 비서구 선교가 학습을 통한 전략적 접근보다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행동주의적으로 일을 저지른다는데 있다. 한국의 삼성전자가 유수한 서구의 대기업들을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부분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업으로 온 세상에 우뚝 선 것은 그간 축적된 전자산업의 노하우를 학습한 후 “플러스 알파”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주체사상을 주장하며 전자산업의 금자탑을 무시한 채 자체의 능력과 방법으로 도전했다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한 시도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근대 한민족 선교운동이 본격화된 지난 20여년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많은 업적을 이루는 쾌거도 있었지만 불필요한 수많은 시행착오도 병행되었다. 우리가 선교의 물꼬를 처음으로 트는 상황이라면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겠지만, 장구한 선교역사의 경험과 교훈을 통해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고 마땅히 피했어야 할 시행착오를 굳이 되풀이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참으로 애석하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일이다. 선교의 성경적, 역사적, 문화적, 전략적 관점을 균형 있게 다루는 탁월한 선교교육 과정인 ‘미션 퍼스펙티브’ 는 모든 신학교, 선교훈련원, 지역교회, 선교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양질의 프로그램이다. 선교사의 훈련 과정도 2천년 선교의 금자탑을 섭렵하고 전략적 안목을 갖춰주는 내용과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한편 삼성선교포럼과 같은 실속 있는 전략회의도 더 많아지고 일반화되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우리 선교계가 기껏 하는 일이 엄청난 인력과 물량을 투자해 감정만 자극하고 승리주의에 도취해 자화자찬하는 일과성 잔치들만 벌이는 것은 이제 심각히 재고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파송 선교사 수가 어언 1만2천을 헤아리는 한민족 선교계에서 변변한 전문 선교잡지 하나 없이 20년을 보냈다는 것도 우리네 열악한 선교 수준을 노출하는 부끄러운 일이다. 2001년 가을부터 ‘한국선교 KMQ’가 출범되어 그런대로 지속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지만, 아직 참여도 부족하고 독자층도 부끄러울 정도로 일천한 형편이다. 우리의 선교 외형을 생각할 때 그와 유사한 수준의 여러 전문지들이 다양하게 분화된 형태로 활발하게 출판되고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2.2. 대안적/상황적 모델 제시

서구 선교의 모델을 우리에게 바로 대입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라도 비서구 상황에 맞는 대안 모색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 매우 시급하게 요청된다. 현재 비서구 선교의 선봉에 서있는 한민족 선교는 비서구 선교계에 대안적이고 상황적인 선교 모델을 제시해야 할 시대적 책임을 안고 있다. 서구식 모델이 맞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또 다른 시행착오의 악순환 고리에 빠져서는 안되고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서구 모델 중 우리 상황에 맞는 것은 살리고 맞지 않는 것은 고쳐서 쓰면 될 것이다. 목욕물을 버리면서 어린아이까지 함께 버리는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분야별 사안별 전략모임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한편 단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주의가 난무하는 선교적 사사시대를 방지하고 진정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민족 선교계가 폭 넓게 참여하는 전략포럼의 일상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에서 삼성선교포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에서도 비서구 선교의 대안적/상황적 모델 제시를 위한 선교 지도자들의 전략포럼을 겨냥한 물밑작업이 목하 진행 중에 있다.


2.3. 비서구 교회/선교 지도력 양성

비서구 교회 및 선교의 폭발적 성장 이면에는 지도력의 공백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무슨 단체나 운동이든 짧은 기간에 고속성장을 하게 되면 반드시 이 문제가 불거지게 마련인데, 한민족 선교도 예외는 아니다. 선교의 전략적 접근은 선교 지도력이라는 주요 이슈와 맞물려 있다. 지도자의 질이 선교의 질을 상당 부분 결정하기 때문이다. 선교의 신흥 세력이라 할 수 있는 한국과 중국,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이른바 2/3세계의 늘어나는 선교 외형에 걸맞은 수의 지도자를 확보하는 일과 세계 선교의 큰 흐름을 파악하면서 비서구 선교를 균형 있게 이끌어갈 지도력을 양성하는 일이 전략적 영순위에 해당하는 주요 사안인 셈이다.
중국 교회의 예를 보자. 지난 반세기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한 중국 교회의 주요 현안이 지도력 공백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선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는 ‘Back to Jerusalem Movement’ 는 중국 교회의 엄청난 잠재력을 생각할 때 참으로 기대되는 운동이지만, 지도력 부족으로 영적 혼란 가운데 빠진 중국 교회의 다소 순진한 꿈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서 섣불리 샴페인을 터뜨리기보다 그 허실을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국 국무성의 중국 전문가로 25년간 일한 바 있고 현재 조지 메이슨 대학교의 중국관계 자문 및 교수로 활동 중인 햄린은 외국 교회의 중국 선교나 중국 교회의 해외 선교 공히 대체로 지속성이나 전문성 및 전략적 심도를 결한 단편적 시도들 임을 지적하면서 심각한 내적 성찰과 구체적인 준비 없이 중국 교회가 선교의 남은 과업을 감당하겠다는 식의 발언을 쉽게 하는 일의 위험을 경고한 후 중국 교회 지도자들을 멘토링 해주고 세워주는 일의 우선순위를 강조한다.
선교지나 2/3세계 선교 지도력을 어떻게 양성해야 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서구에서 빌어온 방식, 곧 신학교를 통한 정규교육에 대부분 의존해왔고 선교지에서도 동일한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서구 선교의 모델이 우리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지적하면서도 유독 이 부분에 관해서는 별다른 비판 없이 서구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규교육이 목회자나 지도자를 양성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신학교 체제를 수출한 서구 교회 당사자들이 인정한지 오래다. 해서 이미 상당수의 서구 신학교들은 근본적인 틀의 개선과 전환을 향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판인데, 우리도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지도자 양성의 방안인지 함께 고심하며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 성경에 올바른 해법이 이미 나와있다. 바로 주님이 모범을 보이셨고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이 뒤따른 제자도가 바로 그것이다. 한 사람이 다수를 상대하는 목회나 선교는 결코 제대로 된 지도자를 양성할 수 없고, 예수님처럼 선택된 소수와 삶을 나누면서 지식뿐 아니라 인격을 전수하는 것이 올바른 성경적 모델이다. 일방통행 방식보다는 참여자 방식, 강의보다는 현장중심의 도제관계를 통해 제대로 된 지도력이 양성되는 것이다. 수많은 신학교나 세미나 방식의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들이 전혀 무익한 것만은 아니지만 2/3세계에 지도력 양성을 위해 수출할 정도로 효과적인 방식은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는 건설적 대안을 모색하고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필자도 그간 다양한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들을 통해 나름대로 유익을 얻었지만, 수년 전부터 국제훈련연맹(ITA)이 개발하여 제공하는 교회/선교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Leadership Matters라는 이름으로 2-3주간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지식 위주의 강의를 배제하고 참여자 방식의 웍샵을 통해 지도력의 기본을 내면화 하도록 도와주는 효과적인 훈련 프로그램이다. 많은 내용을 전달하기보다 지도력의 기초에 충실하면서 훈련 기간 중 그것을 완전히 소화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대안이라 생각된다. 필자는 이 프로그램을 즉시 한국에 도입하기 원했으나 스탶과 피훈련자가 끊임없이 교감하고 대화하는 특성상 통역이 불가능하므로 결국 한인 중 상당수가 기초 훈련과 스탶 훈련을 받은 후 그들을 중심으로 우리 상황에 맞게 프로그램을 재정비하여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삼성선교포럼에 참석한 지도자들 중에서도 이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 바란다.

2.4. 선교운동의 국제화

비서구 선교의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선교운동의 국제화를 일궈내는 일이다. 서구 주도의 선교가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없는 한계점을 안고 있듯이 비서구 주도의 선교에도 심각한 한계와 편중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선교란 본질적으로 국제적 행위이므로 분파적이거나 배타적인 형태로 진행되면 반드시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현상적으로 한민족 선교를 포함한 비서구 선교가 세계 교회와 활발히 교류하기보다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진행되어 온 것은 대단히 애석한 일이고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중대 과제이다.
세계 교회가 함께 모여 전략을 논의하고 동역을 일궈내며 업무를 분담하는 대화와 협력의 장에 한민족 선교계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도움도 받고 공헌도 해야 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식으로 진행되는 선교는 이제 그쳐야 한다. 무려 1만2천명이나 되는 선교사를 파송한 한국 교회가 다양한 사역별 지역별 선교 전략을 의논하고 동역을 창출하는 자리에 도무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안타까운 현상이 21세기에는 제발 사라지기 바라는 마음이다. 먼 발치에서 서구 선교의 잘못을 탓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공식적 대화의 장에 참여하여 우리의 의견을 개진하고 선교의 균형을 함께 잡아가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3. 선교 종결운동의 가속화

3.1. 연합과 동역

19세기말 무디와 피어슨이 1900년까지 세계복음화를 완수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세계 교회의 참여를 호소한 이래 선교 종결운동은 꾸준히 진행되었다. 지난 세기에는 기독교 21세기 운동(AD2000 & Beyond)이, 금세기에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이나 로잔 운동, Great Commission Roundtable과 같은 연합운동에 의해 그 맥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 20세기 중/후반에 남은 과업에 대한 관점이 지역 개념에서 종족 개념으로 바뀌면서 이미 하던 일보다 아직 하지 못한 남은 과업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적 전환이 일어났고, 그 결과 선교 종결운동의 효율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 볼 수 있다. 선교의 마지막 세기가 될 것으로 예견되는 21세기 선교는 마땅히 미전도종족에 우선적 초점을 맞추는 전략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미전도종족이라는 개념은 대단히 전략적이지만 단순하지 않은 개념이다. 종족집단을 정의하는 문제나 분류 기준에도 이견이 많지만, 실제로 다양한 현장에 흩어져 사는 여러 종족집단들이 두부 자르듯 명쾌하게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해답보다는 아직 해결을 요하는 난제가 많고,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은 연구와 현장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미 확연히 분류되고 정의된 집단들에 대한 선교적 접근 또한 쉽지 않은 숙제다. 세계 교회가 손잡고 의논해가며 분담해도 어려운 실정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각기 주관적 성향과 기준에 의해 선교사를 파송하고 사역을 진행하고 있어서 어떤 곳은 중복투자로 몸살을 앓고 어떤 곳은 계속 미전도 상태로 남아있는 불균형이 초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선교의 남은 과업을 제대로 완수하고 선교 종결운동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선교 시행자들 사이의 연합과 협력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우주적인 몸의 지체들이라는 관점에서도 당위적으로 연합해야 하지만, 선교의 효과와 실속을 위해서도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 그래서 현대 선교의 핵심 화두는 바로 협력과 동역인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선교의 남은 과업 완수는 연합과 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형 동역이 없이는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하다.
선교를 위한 연합과 협력은 지역교회와 선교단체와 선교지 교회 모두가 동반자 관계로 참여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특히 선교의 시행자인 지역교회로 하여금 효과적으로 선교의 책임을 감당하도록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 지역교회 선교위원회의 효과적 운영을 돕기 위한 선교단체 ACMC의 1994년 연례총회에서 발표한 브루스 캠프의 글은 지역교회와 선교단체 사이의 바람직한 동역 모델을 제시한다. 선교 전반을 선교단체에 위임하고 선교비만 보내는 지원형(supporting)이나 지역교회가 선교에 관한 모든 일을 직접 시행하는 파송형(sending)은 둘 다 바람직하지 않고, 선교의 전문성을 확보한 선교단체를 지역교회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시너지 창출형(synergistic) 패러다임이 가장 효과적인 형태인 것이다.
한편 선교단체 입장에서도 지역교회의 자원을 빼내어 독자적으로 사역하려는 자세를 지양하고 지역교회의 선교적 역량을 구축하여 효과적으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돕는 자세가 중요하다. 필자가 소속한 Wycliffe & SIL International도 최근 전 세계 120명의 지도자들이 함께한 모임(Global Leaders Meeting)에서 종전의 단체 주도형 사역에서 벗어나 총체적인 사역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성경번역이라는 사역적 특수성과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선교단체 홀로 감당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며 세계 교회가 동일한 비전을 품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완수할 수 있는 사명임을 인식하면서 사역의 소유권(ownership)이 선교단체가 아닌 세계 교회에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3.2. 선교적 재생산

아마도 현대 선교계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이슈가 토착교회 자립의 원리일 것이다. 이 원리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성경적으로 바른 틀이고 무엇보다 선교 종결운동과 직결돼있기 때문이다. 토착교회를 영적, 재정적, 행정적으로 자립하도록 돕는 사역이 돼야지 선교사가 계속 지도력을 점하여 의존심을 길러주면 아무리 선교사의 사역이 번창해도 토착교회가 선교적 동력으로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선교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 보다는 어떤 철학과 방향으로 사역하느냐가 훨씬 중요한 사안이다.
남은 과업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완수를 위해서는 제자도에 기초한 선교적 재생산 구도로 회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상명령은 곧 제자 삼으라는 명령인데(마 18:18-20) 제자도의 근간은 출중한 지도자가 많은 성과를 거두는데 있지 않고, 평범한 사역자가 소수의 제자들을 길러내고 그들이 같은 방식으로 다른 제자들을 낳는(딤후 2:2) 이른바 승법번식에 있다. 오늘날 교계와 선교계의 문제는 복음사역의 핵심 전략인 제자도가 무시되고 몇몇 거물들의 영웅적 대리사역에 평신도와 토착교회의 잠재력이 묶여있는 데 있다. 제자도를 통한 세계 복음화의 가장 중요한 비결은 연쇄적 재생산이다. 능력이 뛰어난 한 지도자(super leader)의 역량에 복음적 열매가 제한되기보다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다른 몇몇 사람을 키워내어 대를 물리며 복음을 재생산함으로써 복리식 일파만파의 효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교의 진정한 목표는 단순한 토착교회의 설립(church planting)이 아니라 토착교회로 하여금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이른바 ‘mission planting’이라 할 것이다. 이 표현을 필자가 처음 들은 것은 약 십년 전인데, 당시 선교전략가 랄프 윈터(Ralph Winter)는 북미주 복음주의선교학회(EMS) 모임에서 선교역사상 가장 큰 실수가 토착교회는 세웠지만 선교하는 토착교회를 세우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선교계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이 개념은 제자도 원리를 공동체에 적용한 것으로 미국 남침례교단 선교부는 이것을 ‘교회개척운동 church planting movements’으로, 선교학자 와그너(Peter Wagner)는 ‘한바퀴 선교 Full Circle Mission’로 표현한다. 와그너는 가장 바람직한 선교를 원을 한바퀴 돈 것으로 본다면 선교역사상 선교가 90도나 반 바퀴 혹은 270도에 머문 경우가 많았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선교가 종결되지 못한 채 항상 선교사를 필요로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또한 선교계나 민간 구제/개발 단체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는 ‘역량 구축 capacity building’ 및 ‘지속성 sustainability’과 맞물린 개념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옳다는 것인데, 이 역시 제자도에서 나온 개념이다. 사역자는 많은 물고기를 가지고 필요에 따라 나눠주는 사람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서 사역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사람인 것이다. 에베소서 4장12절 말씀처럼 교회의 지도자는 사역을 모두 떠맡는 영적 거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영적 역량을 구축해서 그들로 하여금 사역자가 되도록 만드는 사역자인 것이다. 따라서 선교사도 토착교회의 역량을 구축하여 선교를 불필요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지속성 역시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개념이다. 선교의 목표는 잠시 활짝 폈다 이내 시들고 마는 꽃이 아니라 시절을 좇아 지속적으로 결실하는 열매에 있다. 선교사가 사역하는 동안 얼마나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선교사가 떠난 후에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즉 진정한 평가는 선교사가 현지를 떠난 후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선교사의 관심은 자신이 당대에 쌓을 금자탑이 아니라 물려주고 떠날 영적 유산에 있어야 한다. 제자도는 역량 구축을 통한 토착교회의 지속적 성장과 재생산을 담보하는 가장 탁월한 전략이다.

3.3. 한인/아시안 디아스포라 - 전략적 틈새 자원

지상명령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완수를 위해서는 전통적 자원뿐 아니라 그간 간과하고 있던 전략적 틈새 자원을 찾아내고 개발하여 선교적으로 동력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필자가 소속한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는 2025년까지는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모든 미전도종족의 말로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 최소한 시작되게 하자는 목표 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등 비전통적 선교자원을 새롭게 동원하는 실천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시안 디아스포라(Asian Diaspora)는 특히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다.
지난 세기만 해도 대부분의 아시아인들은 그들의 인종언어적(ethnolinguistic) 경계 내에 거주했었다. 한민족도 불과 20-30년 전까지 대부분 한반도에 갇혀 지냈다. 한인의 한반도 편중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멀리는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가깝게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체제가 종식되던 90년대부터라 할 수 있다. 일제 36년의 침탈을 통해 한민족은 당시 약 2천만을 헤아리던 한반도 인구의 무려 삼분지 일이 해외로 흩어지는 민족 대이동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 이후에도 1937년 스탈린에 의한 연해주 교포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라든지, 한국동란과 월남파병을 통한 분산, 1960년대 중반 이후 가속화된 남북 아메리카와 유럽 이민물결, 73년을 지속한 냉전체제의 압박, 20세기말 급속한 냉전의 종식과 그에 따른 범세계적 민족이동 등 한반도 안팎의 크고 작은 다양한 사건들이 코리안 디아스포라 과정을 가속시켰다.
동방 ‘은자(隱者)의 백성 the hermit nation’ 한민족을 긴 동면에서 깨어나게 하고 세계 방방곡곡으로 흩으신 하나님의 섭리 이면에는 선교적 목적이 있었다. 로마제국의 침략을 통해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고 흩어져서라도 세계를 품고 선교의 과업을 감당하게 하신 ‘선교의 하나님’ 께서 불과 백 여년 역사를 통해 교회사상 전례 없는 괄목할만한 부흥과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를 선교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 한인들을 강권적으로 흩으신 것이다. 현재 약 650백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인 디아스포라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다양한 문화와 언어와 인종에 노출되어 함께 섞여 사는 가운데 자문화 중심적 편견과 아집을 벗어버리고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 이상적으로 준비된 자원이다.
이것은 비단 한민족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인종들에게도 해당되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현재 전 세계에는 8천만에서 1억에 달하는 화교들이 흩어져 살고 있고, 인도계 디아스포라가 3천만, 필리핀계 디아스포라가 7백만, 일본계 디아스포라가 3백만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본국의 동족들보다 복음에 대해 더 열려있어서 전도와 선교의 측면에서 매우 전략적인 자원인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수동적으로 이국 땅에 옮겨진 한인동포를 포함하여 자발적으로 이주한 이민과 유학생에 이르기까지 요즈음은 세계 어느 곳에 가든 한인이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십여 년 전에 미국에서 시작된 연례 유학생수련회(KOSTA)만 하더라도 이제는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하여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러시아,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잘 준비된 선교사들을 심심찮게 배출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파송한 선교사 수가 1만2천을 헤아린다지만, 650만 코리안 디아스포라 중 10%만 그리스도인이라 가정해도 그 수는 무려 65만이나 된다. 그들은 언어, 문화적으로 잘 준비된 인력이고 해외 선교현장에 정착해 살고있는 전략적 일꾼들이다. 그들에게는 비자 문제도 없고, 재정적 지원이 없어도 자비량하며 사역할 수 있다. 그들은 선교지 사회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섞일 수 있는 용모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주한 나라의 비주류 소수계층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선교지 소수민족의 입장을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서구인들에 비해 더 장기적인 헌신을 하는 편이며, 불리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수많은 애환을 경험했기 때문에 선교지에서의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아시안 디아스포라 사회는 학문적 열심과 전문성에 대한 성취욕이 높은 편이어서 선교지 비자 습득을 위해서나 토착교회의 역량을 구축하고 현지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측면에서 매우 유리하다. 그들의 시각이 열려 많은 디아스포라 일꾼들이 선교에 참여하게 된다면 남은 과업이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완수될 수 있겠는가!


마지막 세기, 마지막 주자

냉전시대만 해도 우리는 지난 2천년간 세계 교계와 선교계를 주도해온 서구 교회가 선교의 마지막 세기에 마지막 주자 역할마저 감당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비서구 교회의 부흥이 20세기 중반까지는 미미한 편이었기 때문에 서구 교회가 주도하는 선교를 비서구 교회가 옆에서 거드는 정도의 가능성을 예측했을 뿐인데, 20세기말이 지나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우주의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우주적 교회의 완성을 위해 인류역사에 개입하시고 섭리하신 결과, 이제 더 이상 서구도 비서구도 북반구도 남반구도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않고 세계 교회가 최종주자로 함께 뛰는 진정한 동반자 선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선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슈바이처나 리빙스톤 같은 서구인을 자동적으로 떠올리던 시대가 지나고, 나라와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초월한 우주교회의 모습이 선교현장에서부터 구현되는 참으로 위대한 21세기가 우리 앞에 도래한 것이다.
릴레이의 최종주자는 가장 탁월한 선수라야 한다. 2천년을 면면히 이어온 선교의 대장정을 마무리할 오늘의 교회는 이 위대한 시대적 과업을 효과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자질과 전략을 겸비한 선교공동체로 거듭나려는 청지기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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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 소속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한 후 한국지부(GBT) 공동대표로 섬긴 바 있고, 지금은 국제본부에 속하여 흩어진 아시안 디아스포라 교회를 세계선교에 동원하는 프로젝트(Asian Diaspora Initiative)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아내 이재진과의 사이에 세 자녀(1남2녀)를 두고 있다.
Min-young_jung@si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