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정경화 과정
가. 구약 성경의 기록과 정경화 과정
구약 성경이 어떻게 수집되었으며, 정경으로 결정되게 되었는가?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히브리서 기자는 (히1:1)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옛적에 하나님께서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말하는 "옛적에"란 말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인 구약 시대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분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번 말씀해 주셨으며, 그들에게 그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 말씀들을 기록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데 실수나 오류가 없도록 성령으로 도와주셨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감동이란 말은 하나님의 호흡이란 말과 같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과 숨결이 살아 움직이는 책이다. 성경은 사람들이 기록했지만, 하나님은 그 배후에서 성령으로 함께 역사하셨다.
가) 모세오경
하나님은 먼저 모세를 통해 구약의 첫 번째 책 다섯 권을 기록하게 하셨다. 모세는 당시 세계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애굽에서 왕자로 자라나면서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모세 이전의 역사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록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기록들을 언약궤 옆에 두라고 명령하셨다. 후에 요시아 왕은 성전을 청결케 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가 되었다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에, 그들은 그들의 신앙의 기초가 되는 율법 책을 매우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에스라는 고국에 돌아온 후에 무너져 버린 유대 민족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이 율법 책을 다섯 권으로 묶은 후에 이 책들을 정경으로 삼았다. 이 책들이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창세기-신명기까지의 책이다.
나) 역사서와 선지서
하나님은 모세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와 마지막 사사 사무엘을 통해서 가나안 정복부터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를 기록하게 하셨다. 히브리 예언서들은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구분이 되는데, 전기 예언서는 우리가 역사서 라고 부르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이고, 후기 예언서는 대선지서와 12개의 소선지서를 말한다. 선지자들은 그 책이 기록될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예언이 성취되게 되자, 백성들은 그 예언서를 인정하게 되었다. 더우기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고 헬라 문화를 그들에게 주입하려고 하였을 때 유대인들은 히브리 인들의 정경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하여 주전 250-175년경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서와 선지서들이 수집되고 정경으로 선택되었다.
다) 시가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열왕들의 역사와(열왕기), 시문서들이 기록되었다. 원래 시편은 교회에서 예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되었고, 잠언서는 교육용으로 제작되었으며, 전도서는 장막절, 아가서는 유월절에 읽혀졌다. 주전 175-165년경에 시리아 왕 에피파네스가 유대인들을 헬라인으로 개조하기 위해 유대인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유대인들의 성경을 없애려고 했다. 이때에 이스라엘은 큰 위협을 느끼고 그 동안 사용했던 거룩한 책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주전 150년경에 열왕기와 시가서가 편집 작업을 마쳤다.
그 후 70년경에 예루살렘은 로마에 의해 멸망했는데, 로마 역시 유대인들을 해체시키려고 하였다. 이때에 유대인들 사이에서 어느 것이 진짜 정경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어났다. 특히 이때에 기독교가 일어나 유대인들을 압박하게 되었다. 이로인해 유대인들은 정경을 결정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주후 90년 경에 얌니야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 지금과 같은 구약 39권을 정경으로 체택하게 되었다.
라) 구약 정경 결정의 기준
첫째,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배할 것을 천명하고 있는가?
둘째, 그 책 속에 그 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거하는 본문이 있는가?
셋째, 기독인: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 책을 정경으로 인정해 주었는가?"
넷째, 그 책이 성령께서 영감 시키셔서 쓴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나. 신약 성경의 기록과 정경화 과정
가) 신약 성경의 기록
* 야고보서와 갈라디아서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20여 년이 지났을 때에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다.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 성도들이 점차적으로 복음에 대한 감격과 경건심을 잃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심령을 일깨우기 위해 참된 믿음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따라야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기록한 책이 바로 야고보서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와 반대 상황에서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다. 그는 갈라디아 지역에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복음을 전한 후에 유대인 교사들이 와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바울의 ㄱ리가 도전을 받게되었다. 이때에 바울은 구원 받기 위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치지에서 기록한 책이 바로 갈라디아서이다. 후에 이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교회 지도자 회의가 열렸다. 이때에 이 회의의 의장은 야고보였는데, 그는 바울의 입장을지지하여 구원을 받는 일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결정하였다.
* 바울 서신들
그 후에 바울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각 나라들을 다녔다. 이때에 바울이 세운 각 교회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들을 복음 안에 굳게 세우기 위해서 약 13편의 편지를 썼다. 이러한 편지들은 주로 50-60년대에 쓰여지게되었다. 각 교회에서는 이 편지들을 거룩하게 여기고 잘 보관하였으며 이 편지들이 수집되어 오늘날 우리가 가진 바울 서신이 되었다.
* 마가복음과 베드로 서신
64년경 네로에 의해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큰 이협을 받게 되었다. 이때에 로마에 있던 마가는 극심하게 박해를 받고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주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기록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므로 그는 베드로의 통역 자가 되어 베드로의 증언을 토대로 로마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마가 복음을 기록했다. 주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박해가 심해지게 되자 죽기 전에 박해로 고난 받는 성도들의 신앙을 굳게 하기 위해서 편지 둘을(베드로 전후서) 기록하였다.
* 히브리서와 유다서
예루살렘 성이 멸망하기 직전인 70년경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인들이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박해가 심해지게 되자, 다시 유대교로 넘어가려고 했다. 이때에 알려지지 않은 한 저자가 그들을 복음 안에 굳게 세우기 위해서 히브리서를 썼다. 그리고 약 80년 경에 주님의 동생 유다가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유다서를 기록했다.
* 복음서
마태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 마가 복음을 토대로 해서 주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기록하였다(마태복음). 그리고 누가 역시 85년경에 모든 증언을 조사한 후에 그것을 토대로 해서 복음의 내용이 진리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그 기록을 데오빌로라고 하는 높은 지위에 있는 기독교인에게(누가복음과 사도행전) 헌정했다.
* 요한복음과 요한 계시록
마지막 남은 사도인 요한은 약 90-100년경에 박해와 이단의 위협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소아시아 교회들을 위해 요한 복음과 요한 서신들(1,2,3서)을 기록했다. 그리고 기독교 박해 때에 체포되어 밧모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요한은 그 곳에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소아시아의 7교회에 보내는 편지, 즉 요한 계시록을 써서 보냈다. 이렇게 해서 약 100년경, 즉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70년이 지났을 때에 신약 성경이 대부분이 완성되었다. 그 후 약 50년이 지난 150년경에는 기도교 교회에서는 구약 성경과 복음서들을 번갈아가면서 읽게 되었다.
나) 신약 성경의 정경화 과정
신약 성경이 구체적으로 정경 화된 계기는 말시온이라는 사람 때문에 일어났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만들어 마음에 맞는 책들을 골라 성경을 만들었다. 그는 바울 서신과 누가복음만을 인정하고 나머지 책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교회에서는 그가 만든 성경을 반대하였다. 이때에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성경에 포함시켜야 할 것진지"에 대해 논란이 생기게 되었다. 303-311년에 로마를 통치했던 디오클레티안은 기독교를 크게 박해하였는데, 박해 정책의 일환으로 기독교인들의 성경을 없애려고 했다. 디오클레티안이 성경을 압수하고 불태우게 되자,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책이 정경으로 가치가 있는지 결정해야만 했다. 그들은 황제의 박해로부터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책이 무엇인지 결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 27권이 수집되고 결정되었다. 그 후 397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교회 회의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구약 성경을 공식으로 정경으로 인정하였다. 교회 회의는 "이 66권의 정경 외에는 어느 것도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서 읽힐 수 없다"고 선포했다. 이때에 교회가 정경을 선택한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1) 사도들이나 사도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기록한 책인가?
2) 그 내용이 복음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3) 모든 교회의 교인들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책인가?
4) 성령의 인도를 받은 증거가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책을 기록할 때에 성령님의 영감으로 책을 기록하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 책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기록하게 해주셨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령의 인도를 통해 어느 것이 성경이고 어느 것이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었다. 성경은 조금만 진지한 마음으로 정독해 보면, 그것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알 게 되어 있다.
6) 각 나라 번역 성경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보존되었다. 그러나 이 성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다. 포로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라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 후세들은 본국 언어인 히브리어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언어에 더 익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