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천국(天國)과 불교의 극락(極樂)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곳이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즐거움과 고통이 교차하는 곳이다. 평화와 불안이 함께 하는 곳이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은 슬픔과 고통이 없는 세계,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한 세계,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세계를 꿈꾼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종교들이 그런 이상적인 세계를 신자들에게 제시한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천국’(하나님 나라)이 그런 곳이고, 불교 경전에서 가르치고 있는 ‘극락’(정토) 또한 그런 곳이다.

 

그런데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세계에 대해, 기독교에서는 일관성 있게 천국(하나님 나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에 비해, 불교에서는 경전에 따라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다. 원시불교 경전에서는 윤회의 세계 가운데 하나로 천계(天界)를 말하고 있는 반면에, 대승불교의 경전들에서는 미타정토(彌陀淨土),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등 경전에 따라 각각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의 제목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에 대한 상대 개념으로 ‘극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불교 경전에서 가르치고 있는 이상세계를 ‘미타정토’의 다른 이름인 ‘극락’이라는 용어로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이 글에서는 먼저 기독교의 천국에 대해 살펴본 다음, 불교 경전에서 제시하는 이상세계들 가운데 원시불교의 천계와 대승불교의 일파인 정토신앙의 미타정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성경에서 증언하는 천국

 

교회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천국 백성들의 모임이다. 그러면 성도들의 소망인 천국은 어떤 곳인가?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말씀하고 있지는 않지만, 천국과 지옥의 특징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천국은 좋은 곳, 지옥은 나쁜 곳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천국은 우리가 가야할 곳이고, 지옥은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이다.

 

천국은 슬픔이 없는 곳이다. 애통하는 것도 없으며, 곡하는 것도 없다. 아픈 것도 없고, 사망도 없는 곳이다. 요한계시록 21:4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천국은 저주가 없는 곳이며(계 22:3), 마귀 사탄의 유혹도 없는 곳이다(계 20:10).

 

천국은 주림과, 목마름과 상함의 고통이 없는 곳이다(계 7:16). 세상이 우리를 얼마나 곤고하게 만드는가? 한 고비를 넘었는가 싶으면 더 어려운 고비가 우리를 삼키려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천국은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그 어떤 악한 것이 나를 상하게 하지도 않는 곳이다.

 

또한 천국은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종류의 과실을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풍성히 맺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2).

 

천국은 이렇게 좋은 곳, 우리가 날마다 바라보고 소망해야 할 곳,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나라이다.

 

 2. 불교의 이상 세계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불교에서는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세계에 대해 경전에 따라 각각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원시불교의 천계, 대승불교의 미타정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원시불교 경전에서 말하는 천계(天界)

 

불교에서는 우주가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한다.

욕계는 각종 욕망의 지배와 고통을 받는 곳으로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人), 그리고 육욕천(六慾天: 욕계에 속한 여섯 개의 하늘)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옥은 죄의 결과로 태어나게 되는 가장 고통스러운 세계이다. 불교에서는 무수한 지옥을 말하는데, 경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설명되고 있다. 장아함경에서 8종류의 대지옥과 이 대지옥에 각기 소속된 16종류의 소지옥이 있다고 말한다. 팔대지옥은 상지옥, 흑승지옥, 퇴압지옥, 규환지옥, 대규환지옥, 소적지옥, 대소적지옥, 무간지옥 등이다. 이 8대지옥은 같은 지옥이지만 죄의 무게에 따라 차이가 있어 죄가 무거울수록 아래에 있는 지옥에 태어나게 되며, 무간지옥은 가장 극악한 죄를 지어 태어나는 곳이라고 말한다.

 

천계는 선한 행위의 결과로 태어나게 되는, 윤회하는 세계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이다. 먼저 욕계의 하늘에는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등 여섯 종류의 하늘이 있다. 그리고 욕계천 위에 색계천과 무색계천이 있다.

 

색계는 저속한 욕망이 단절된 곳이지만, 그곳에 머무는 자가 여전히 형상과 신체를 가지고 있는 세계이다. 색계천에 포함되는 하늘의 종류에 대해서는 경전에 따라 22천설, 18천설, 17천설 등 차이가 있는데, 대체로 17천설과 18천설이 지배적이다.( 오형근, 『불교의 영혼과 윤회관』p. 387.)

 

무색계는 삼계 중 최고의 하늘로서, 욕망도 없고, 형체도 없는 생명체가 사는 곳이다. 이 세계는 물질로 구성된 세계가 아니며, 고정된 장소나 방향도 없는 무형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 세계 역시 업력에 의해 생활하는 곳이므로 좋고 나쁜 차별이 있고 또한 복력(福力)의 차별도 있다. 또한 이 세계 역시 수명의 한계가 있으며, 이곳에서의 인연이 다하면 다시 욕계나 색계에 태어나게 된다. 무색계천에는 공무변천(空無邊天), 식무변천(識無邊天), 무소유천(無所有天),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 등 네 종류의 하늘이 있다.

 

이 욕계, 색계, 무색계의 하늘은 영원한 세계가 아니라 윤회하는 세계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따라서 원시불교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윤회하는 천계(天界)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윤회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서 열반에 드는 것이다.

 

  *참조. 열반(涅槃)

 

열반은 ‘불이 꺼진 상태’ 즉 ‘연소의 괴멸’을 뜻하는 범어 ‘니르바나’, 팔리어 ‘닙바나’를 음역한 것이다. 니르바나를 ‘멸(滅)’, ‘멸도(滅度)’, ‘적멸(寂滅)’, ‘원적(圓寂)’ 등으로 의역하기도 하였으나, 본래의 뜻이 잘 나타나지 않으므로 결국은 ‘열반’이란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불교에서 니르바나(열반)는 마치 바람이 타고 있는 불길을 끄듯이 지혜가 번뇌의 불길을 꺼서 일체 번뇌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킨다. 곧 진리를 깨달아 미혹과 집착을 끊고 윤회전생(輪廻轉生)의 세계와 같은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를 말한다. 여기서 의미가 전이하여, 불교계에서는 승려가 죽었을 때 이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에서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열반’에 관한 고타마 싯다르타의 교설은 그 자신이 말한 ‘무상’(無常)의 교설과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불교와 관련하여 여러 권의 저서와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중국의 팡리티엔(方立天)은 그의 저서 『불교철학개론』에서 “석가모니는 인생의 ‘무상’(無常)을 말하여 일체 현상이 모두 연기하는 것이며, 서로 인과가 된다고 하면서, 동시에 ‘열반’이라는 영구한 상태를 궁극적 이상으로 삼았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은 앞뒤가 모순되는 것이어서, 그 설을 조화시키기 어렵다”고 말한다.(팡리티엔(方立天), 『불교철학개론』p. 34.)

 

  (2) 정토신앙의 미타정토(彌陀淨土)

 

미타정토는 대승불교 정토부 경전인 무량수경과 아미타경에서 주로 주장하고 있는 이상세계로서 ‘극락(極樂)’, 극락정토(極樂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 서방정토(西方淨土) 등으로도 불린다. 정토부 경전에서는 서방극락세계에 대해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거기에서 쓰는 모든 기구는 갖가지 보물로 되어 있으며, 온갖 향내를 내뿜고, 도처에 연꽃이 있어 좋은 향을 발하며, 새들이 아름답게 지저귀는, 고통이 없고 무한한 기쁨을 누리는 곳이라고 묘사한다. 불교의 종파 가운데 정토종은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불을 전념함으로써 이 미타정토에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글의 출전

임헌준, 『아는 만큼 보인다』(서울: 쿰란출판사, 2005), pp. 1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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