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중요성듀크 대학(Duke University)의 채플린인 윌리암 윌리몬(William Willimon) 목사가 한 번은 침체기에 빠져있고 수적으로도 성장이 멈추고 거기에다가 젊은이들의 출석도 저조한 교회에 부임했다. 그는 그 상황을 빨리 타개하기 위해 그의 목회 활동에서 심방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먼저 (1)최근 방문자들, (2)비활동적인 멤버들, 그리고 (3)청년들을 심방하고, 그리고 나서 (4)설교를 준비할 계획이었다. 그는 이 목회 활동 계획을 첫 당회모임에서 당회원들에게 제시했다. 그런데 그날 당회는 정 반대의 결과를 내놓았다. 당회는 윌리몬 목사가 먼저 (1)설교준비와 가르침에 전념하고 그리고 난 후 (2)심방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왜 이렇게 순서가 뒤바뀌어진 것일까? 당회원들은 준비된 설교는 (1)새신자들을 끌수있고, (2)비활동적인 멤버들에게 새힘을 북돋아 주고, 또 (3)청년들도 잘 돌볼 수 있기에 심방보다 더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참 지혜로운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II. 성경적 이유(Biblical Reason) 목회 활동의 이러한 실제적 유익뿐만이 아니라 성경적인 이유 때문에 설교는 또 중요하다. 행6:4절을 보면, 초대교회의 사도들도 다른 일보다 “기도와 말씀 전하는데 전무”하기로 했다. 설교야 말로 성도들의 신앙에 초석을 놓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목회의 삼대 활동이 있었는데 그것은 복음을 (1)가르치고 (2)설교하고 그리고 병자들을 (3)고치시는 일이었다(마 III. 신학적 이유(Theological Reason) 마지막으로 신학적 이유 때문에 또한 설교는 다른 목회 활동에 그 자리를 내어 주어서는 안 된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설교”(the preaching of Christ is Christ preaching)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설교에서 그리스도의 실제적 현존”(the real presence of Christ in preaching)을 주장했다. 죤 칼빈(John Calvin)도 “복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설교될 때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설교자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렇게 설교는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체험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때문에 쯔빙글리(Zwingli)의 제자였던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는 그의 “1566년 제 2 헬베틱 고백”(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of 1566)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면서 종교 개혁자들의 설교 이해를 역설했다. 오래 전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이렇게 설교를 이해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를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바로 그] 말씀’으로 받음으로 하나님을 경험했다(살전
*** 캐나다 토론토에서 목회하면서 토론토 크리스챤 포스터 신문에 연재한 설교 원리에 관한 글들(I부 26회)을 요약해서 올립니다. 나눔의 장이 되고 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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